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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화상의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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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6,329회 작성일 05-09-20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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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산의 서왕모.jpg

반고 - 천지창조
중국에서는 천지창조와 더불어 생긴 신이 반고(盤古)로 되어 있다. 반고라는 이름은 삼국시대 (서역 3세기)에 쓴 서정(徐整)의 [삼오력기(三五歷記)]라는 책 가운데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 의하면 반고는 천지가 아직 나누어지지 않은 혼돈 상태에, 계란 속에서 태어나 의식없이 장장 1만 8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계속 잠만 자다가, 어느 날부터 하루에 한 길씩 키가 커지는 눈부신 성장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그는 그 체력으로 하늘과 땅을 상하로 갈라지게 떠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또 다시 1만 8천년, 그 성장은 극점에 도달했다. 그의 키와 힘으로 인하여 서로 멀리 떨어지게 된 천지의 간격이 실로 9만 리나 되어버린 것이다. 원시의 혼돈에서 천지를 떠밀어 멀리 갈라놓고서 세계를 창조한 것을 반고의 늠름한 육체의 결과로 치는 이 설화는 근로를 숭상하고, 인력에 신뢰를 거는 고대 중국인들의 건강한 사상의 소산으로서 매우 흥미있는 얘기다. 반고가 죽음에 임했을 때, 한숨은 풍운(風雲)이 되고, 목소리는 뇌정(雷霆) 으로 화하고, 두 눈은 태양으로, 그리고 신체는 산악으로, 혈맥은 강하 (江河)가 되고, 근맥(筋脈)은 도로로, 살갗은 전토로, 머리카락과 수염은 성진 (星辰)으로, 피모(皮毛)는 초목(草木)으로, 치골정수 (齒骨精髓)는 금석주옥 (金石珠玉)으로, 그리고 흘러내리는 땀은 비와 이슬이 되었다.


혼돈씨 - 인간의 작위로 파괴된 신
반고를 혼돈씨(渾沌氏)라고도 한다. 혼돈(渾沌)과 혼돈(混沌)은 같은 의미다. 천지개벽 이전의 불분명한 상태를 형용하는 말일 것이다. 장자의 [응제왕편 (應帝王篇)]의 우화에서는 그혼돈을 중앙의 천계를 지배하는 상제(上帝)의 이름으로 한다. 어느 날 남해제(南海帝) 숙과 북해제(北海帝) 홀이 중앙제(中央帝) 혼돈에게 와서 함께 있었다. 이제(二帝)는 혼돈의 환대에 아주 마음이 유쾌해졌다. 그리하여 서로 의논하였다. "인간의 얼굴에는 눈, 귀, 입에다가 코까지 합해서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쉰단 말이거든. 그런데 혼돈씨에게는 이게 없으니까 우리 오늘 환대받은 예의에 보답해서 일곱 개의 구멍을 뚫어드릴까?"
그래서 하루에 한 구멍씩 뚫기 시작했다. 7일만에 공사가 끝나자 이게 웬일? 가엾게도 혼돈은 이미 숨지고 말았다. 이 숙과 홀은, 별안간, 순식간, 혹은 순간이란 뜻이며, 덧없는 것, 유한한 생명, 인간의 작위(作爲)등을 상징한다. 혼돈자연(渾沌自然)의 상태는 인간적인 작위가 가해짐으로써 곧 파괴되고 사멸한다는 우의(寓意)다. 그런데 홀과 숙이라는 이름을 합치면 '번개'를 뜻하는 '숙홀'이라는 말이 된다. 따라서 창조는 번개가 혼돈을 뚫고 지나갈 때 시작되었다라는 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 이야기와 놀리우리만치 유사한 창조에 대한 견해가 20 세기에 과학적 이론으로 제출된 바 있다. 1934년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헤롤드 S. 유리(Harold S. Urey)는 어쩌면 번개일지도 모르는 모종의 에너지가 지상의 원시적 대기와 작용을 일으켜 생명이 생겨났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실제 1953년, 유리의 제자였던 대학원생 스탠리 L. 밀러(Stanley L. Miller) 는 실험을 통해 이 이론을 검증하려 했다. 밀러는 유리로 만든 공모양의 용기를 두 개 준비했다. 하나에는 원시 시대 때 지상의 대기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기체들이 들어 있었다. 다른 하나는 실험 결과로 나오는 기체를 담기 위한 것이었다. 밀러는 기체들에 전압 6만 볼트의 '번개'를 가했다. 놀랍게도 두번째 구체 안에 모인 일부 물질에는 핵산의 구성 성분인 뉴클레오티드와 아미노산의 성분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성문들이 결합하면 모든 생명체의 기본 구성 단위인 DNA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뉴클레오티드가 살아 있는 유기체와 관계 없이 생성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삼황오제(三皇五帝)
반고에 이어 가장 오래된 신화적 세계에 출현하는 세 제왕을 삼황(三皇)이라 부른다. 그런데 누구를 삼황으로 하느냐는 여러 설이 분분하다. 일설에는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으로 치는데 이는 물론 천지인 간의 성립을 의인적(擬人的)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합리적 신화다. 그밖의 복희, 여와, 신농을 삼황으로 하는가 하면, 또 그 중 여와를 축융(祝融) 또는 수인 (燧人)으로 대치하는 설도 있다. 예의 십팔사략에는 복희, 신농, 황제를 여기에 해당시킨다.

이중 여와의 인간창조, 천지보수(天地補修)의 신화는 가장 이색적이고 그 정채 (精彩)에 빛나는 것이다. 그밖의 딴 신들에게는 각각 인간의 문명생활의 창조자 및 추진자의 역할이 주어져 있다.
삼황(三皇)에 이어서 천하를 다스리게 된 것은
소호, 전욱, 제곡, 요제, 순제 의 오제(五帝)다.
오제 중 소호는 황제의 아들, 전욱은 황제의 증손, 제곡은 소호의 아들, 요제 는 제곡의 아들, 순제도 전욱 6세손이라고 하니까 오제는 아마도 황제일가(黃帝 一家)로 봐도 좋을 것 같다. 또 그들이 오제로서 표창(表彰)되는 것은 그들 모두 하나같이 고조(高祖)인 황제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덕이 높은 제왕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와 비슷하게 여와는 황토를 뭉쳐서 인간을 만드는데, 풍요한 황토 지대의 중국이고 보면 재료는 풍부했을 것이다. 만들다가 싫증이 난 그녀는 인간창조를 좀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한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우선 물렁 물렁하게 반죽이 잘 된 흙 속에 거칠게 꼬인 새끼를 집어 넣고 그것을 뒤죽 박죽이 되도록 잘 휘저은 다음 적당한 때를 보아서 새끼를 획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 새끼 끝에서 뚝뚝 지상에 떨어져 내리는 진흙덩이는 모두 그대로 인간을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귀찮다고 대량생산한 인간은 역시 하나하나 손끝으로 정성들여 만든 인간보다는 자연히 그 작품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인간 가운데 부귀한 자와 빈천한 자가 생겨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기나긴 중국의 역사를 특색짓는 사회계급의 분화와 인구과잉의 현상을 설명 하는데 있어 이 얼마나 기발한 인간창조의 설화인가.
인간창조와 함께 여와가 이룩한 대사업은 보천(補天), 즉 천공을 보수하는 사업이다. 어느 날 수신(水神)인 공공(共工)과 화신(化神)인 축융(祝融)이 큰 싸움을 한 끝에 싸움에 진 공공이 너무나 속이 상해서 그만 자기 머리를 부주산 (不周山)에 부딛쳤다. 부주산 꼭대기에는 하늘을 떠받드는 하늘기둥과 대지를 이어매는 땅줄이 있었는데 공공이 난폭한 짓을 한 덕분에 하늘기둥이 부러지고 땅줄이 끊어져서 하늘은 서북으로 땅은 동남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구멍이 뚫린 하늘로부터는 큰 비가 쉴새없이 쏟아지고 하천은 대홍수로 범람하여 산림이 서식하고 맹수와 흉조들이 발악을 하며 뛰쳐나와 인간을 마구 잡아먹으려는 등 큰 소동이 벌어졌다.
그것을 본 여와는 급히 강 속에서 오색돌을 따서 불에 녹여 반죽을 한 다음, 하늘에 뚫린 큰 구멍을 막았다. 그리고 바다 가운데 사는 거대한 거북의 네 발을 잘라 부러진 천주의 대신으로 삼고 또 물가에 난 갈대를 베어 모아서, 그것을 태워 그 재를 쌓아 범람한 강물을 막았다. 맹수와 흉조도 모두 때려잡아 겨우 지상의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천지가 기울어진 것은 완전히 고치지 못했으므로, 지금도 중국 대륙은 서북과 동남으로 기울어진 그대로이며, 홍수가 또한 때때로 사람을 괴롭힌다고 한다.


수인 - 집과 불을 만든 신
수인씨(燧人氏)의 이름은 삼황(三皇)의 하나로 헤아려지고 있으나, 여기에 유소씨(有巢氏)를 선행시켜서 인간생활의 진보를 설명하려는 합리적 신화도 있다. [한비자]를 보면, 상고시대에는 인간이 적어서 금수충사(禽獸蟲蛇)의 해로 많은 괴로움을 받고 있었다. 이때 유소씨가 출현해서 나무 위에 집을 짓고 그 재해를 피하게 해주었다. 또한 백성이 날것으로 초목의 열매나 조개 등으 먹어서 위장을 해쳐 병에 잘 걸렸다. 수인은 다시 부싯돌을 사용하여 불을 일으키고, 먹을 것을 익혀서 비린내를 제거하는 방법을 발명했다. 말하자면 인간의 소거생활(巢居生活), 화식생활의 개시를 상징하는 신들이다.


복희 - 포락과 문자를 만든 신
수인씨는 화식하는 방법의 발명자로서 알려져 있으나, 복희씨 또한 그와 무관 하지는 않다. 그의 이름은 포희(暑羲) 또는 포희(敍羲)라고 쓴다. 이런 이름은 [희생을 길러서 포주(敍廚)에 가득 채운다]라든가 [희생을 포락(暑烙 - 굽고 지짐)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니까 인간들에게 동물의 고기를 지지고 볶고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또한 역(易)의 8괘를 만들어 인간사회의 길흉을 점치고 문자를 발명했으며 그물을 짜서 생선이나 짐승을 잡는 기술을 고안했고 다시 여와를 아내로 삼아 둘이서 혼인의 예를 정했다고도 전한다.


신농 - 농상업과 의약의 신
신농(神農)도 삼황의 한 사람으로 헤아려진다. 즉 염제(炎帝)인 신농씨는, 그 이름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우선 농업의 신이다. 염제 즉 태양의 신이기도 한 그는 인간들에게 괭이를 만들어서 땅을 일구는 방법을 가르쳤다. 태양의 광열에 의해서 오곡을 풍요롭게 결실시켜서 인간의 식생활에 지대한 공헌을 했을 뿐 아니라 태양이 중천에 오르는 한낮을 눈금으로 해서 사람들을 시장에 모이게 하여 교역을 하는 길을 가르쳤다. 이 점에서의 그는 상업의 신이기도 하지만 게다가 또 의약의 신으로서도 받들어졌다.
태양은 원래 건강의 원천이므로 태양신인 그가 건강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의약과도 깊은 관계가 있을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산야를 헤메다가 신통력을 갖춘 붉은 채찍으로 약초를 때리면서 각자의 풀이 지닌 독성의 유무 라든가 각종 효능을 분별해서 인간의 병치료에 소용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후에는 맹독이 있는 단장초(斷腸草)를 핥아보았기 때문에 장(腸)에 탈나서 그 생명을 회생시켰다고 전하고 있다.
신농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운명은 서로 엄청나게 달랐다. 한 딸은 다만 [신농의 소녀]라고만 불리었을 뿐 그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녀는 아버지 밑에서 비를 관장하는 관리노릇을 하다가 뒤에 지극한 수련을 닦고 선인이 된 적송자(赤松子)의 선술(仙術)에 반해서 자신도 그 뒤를 쫓아 여선인(女仙人)이 되었다고 한다.
또 한 딸은 여와(女와)라 했다. 나이가 아직 젊었던 그녀는 어느 날 동해에 목욕하러 나갔다가 그만 큰 파도에 쓸려 물에 빠져 죽어버렸다. 너무도 억울했던 그녀의 영혼은 정위(精衛) 라는 작은 새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하여 발구산 (發鳩山) 이라는 산에서 살았다. 정위는 자기 명을 앗아버린 동해에 대해 원한을 품고, 가련하게도 끝까지 동해에 대한 보복에 큰 뜻을 품었다. 날마다 서쪽 산에서 조약돌이나 작은 나무가지를 입에 물고 와서는 큰 파도가 밀려오는 동해의 물결 사이에 떨어뜨리며 동해를 메워 버리려고 결심하는 것 이었다. 이것이 정위전해(精衛塡海), 즉 정위가 바다를 메우려한다는 고사이다. 일반적으로 무모한 일을 기도하여 헛된 고생을 되풀이하는, 소위 도로(徒勞)로 끝나는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또 다른 견해로 보자면 일의 성부 (成否)를 도외시하고 오직 자신이 세운 뜻밖에 굳건히 매진하다가 죽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도 한다.
신농씨의 또 한 딸은 요희라고 했는데, 여와(女媧)와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정열적인 소녀였다. 나이가 차서 처녀티가 날 무렵, 아직 이성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즐거움을 알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고요산이라는 산 중턱에 예쁘고 가련한 노란꽃이 피어 열매를 맺었다. 이 한 그루의 요초(瑤草) 야 말로 그녀의 화신이었다. 그래서 이 풀꽃의 열매를 따먹은 자는 누구나 반드시 이성으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어린 나이에 죽어간 요희의 운명을 가엾이 여긴 천제가 이윽고 그녀를 사천성에 있는 무산(巫山)으로 보내어 구름과 비의 신으로 봉했다. 그로부터 그녀는 아침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구름으로 화하여 산마루 위를 넘나들고 저녁 무렵에는 구슬픈 비가 되어 골짜기와 산기슭을 적셨다. 그리하여 마음속에 품었던 자신의 애달픈 정열을 가라앉히는 것이었다.
후세에 이르러 전국시대의 말엽에 초나라 회왕(懷王)과 또 그 뒤의 그의 아들 낭왕(囊王)이 운몽택이란 연못에서 놀다가 고당대(高唐台)에서 잠시 쉬며 잠들었을 때, 그 꿈속에 환영처럼 나타난 무산의 여신 요희가 타는 듯한 정열을 바쳐 사랑을 맺었다는 이야기가 초나라의 궁정 시인 송옥(宋玉)에 의해서 세상에 전해내려오고 있다.


황제 - 황색의 제왕
염제 신농씨 이후 계속 동성(同姓)이 이은 지 520년이나 지났다. 새로 바꿔 출현한 것이 황제(黃帝) 헌원(軒轅)씨다. 황제(黃帝)란 이름은 후세에는 진(秦) 나라 시황제 (始皇帝)와 같은 현세의 황제로 나타나긴 하지만 본래 황제란 천상을 지배하는 최고 주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천상세계의 황제는 그 중앙의 천궁에 살며, 여러 신들의 보좌를 받으면서 사방을 통괄하는 중앙신이다.
그 전설에 알맞게 헌원씨는 얼굴이 네개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황색의 제왕이란 중국에 군림하는 제왕이라는 뜻도 있다. 왜냐하면 황색은 다름아닌 중국의 빛깔이기 때문이다. 넘실거리는 누런 물이 천고로부터 흘러 오고 흘러가는 황해(黃海)와 그 주변에 펼쳐진 비옥한 황토의 평야로 알수있듯 황색은 중국의 빛깔이다.
황제는 중국의 모든 도사(道士)들을 보호하는 성인이다. 전설적인 제왕들 중 연대적으로 앞선 인물이지만 실제로 그는 마지막으로 찾아낸 인물이며 기원전 4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중국의 신화에 등장했다. 그는 언제나 노자(老子)와 결부된다. 아마도 기원전 100년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열자(列子) 에서는 많은 지면이 황제에게 할애되어 있다. 그의 치세는 15년 만에 어지러워졌다. 신하들이 황제의 은덕을 즐거워하는 동안에 황제는 "한없이 자신의 눈과 귀를 기쁘게 하고 코와 입을 충족시켰으므로 마침내 안색은 누렇게 뜨고 감각은 무디어졌다." 다시 15년간 재위하는 동안에 무질서는 만연했으며, "얼굴은 여위어 창백해졌고,감각은 더욱 둔화되었다." 그래서 황제는 나라의 정책 결정을 대신들에게 맡기고 측근들을 멀리했다. 그리고 일상생활을 단순화하고,"드넓은 안뜰에 암자를 짓고 그 속에 들어앉아 심신을 단련하기 위한 단식을 감행했다."
어느날 그는 잠이 들었는데, 신비스러운 통치자 복희(伏羲)의 어머니인 화서 (華胥)의 나라에 가 있는 꿈을 꾸었다. 그 왕국은 "배나 마차나 사람의 발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었다. 다만 혼(魂)만이 그 먼 곳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 그곳은 이사의 나라였으며 "우두머리나 통치자가 없었다. 단순히 스스로 되어갈 뿐이었다. 그곳 백성에게는 욕구나 갈망이 없었다. 그들은 단순히 그들의 자연스러운 본능에 따를 뿐이었다. 그들은 삶에 대한 기쁨이나 죽음에 대한 혐오도 느끼지 않았고 누구나 천수를 다했다. 그들은 자기에게 집착하지도 않았고 남에게 냉담하지도 않았다. 그처럼 그들은 애정에서도 증오에서도 떠나 있었다.......그들은 단단한 땅을 걷듯이 천공(天空)을 왕래했고 침대에서 자듯이 공중에서 잠을 잤다. 구름도 안개도 시야를 막지 않았고,벼락이 귀를 먹게 하지도 않았으며 아름다움과 추악함이 마음을 혼란하게 하지도 않았고 산이나 골짜기에 발을 헛딛지도 않았다.-그들은 다만 정신의 여행을 할 뿐이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어난 황제는 대신들을 부른 뒤에 말했다.길 곧 도(道)는 "감각들을 통해서 추구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들에게 말할 수는 없다." 그는 다시 28년간 제위를 하고 자신의 왕국이 화서의 왕국과 거의 같은 정도로 질서를 찾았을 때 불사(不死)의 존재인 선인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200년 동안이나 끊임없이 그를 추모하며 몹시 슬퍼했다.
긴 치세 기간 동안 진정한 황금시대를 이룬 경이적인 제왕의 전설은 여기서는 지혜의 예증으로 사용된다. 황제는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나 완전한 영역에 도달했다. 그는 또한 문화를 만들어낸 영웅이기도 하다. 무쇠 머리, 청동 이마, 칼이나 창처럼 곤두선 머리카락에 몸뚱이는 소이고 6개의 팔과 8개의 손가락을 가진 괴물인 치우(蚩尤)를 물리친 것 등 반역자를 무찌른 일들 말고도 황제는 통치제도를 도입했다. 몇몇 전승에 의하면 그는 나침판과 교환의 매개물로서 별보배조개를 대신할 화폐를 발명했고 그의 아내는 양잠과 수예에 탁월했다. 그의 가장 높은 신하가 처음으로 문자를 고안했을때 "모든 정령들은 그 때문에 자연의 오묘한 비밀들이 폭로될 것이라며 울부짖으며 분노했다고 한다."


치우 - 동의 머리와 철의 이마를 가진 신
치우(蚩尤)를 바라보는 관점은 우리나라와 중국이 서로 다르다. 고대 우리 동이족이 한반도에 한하지 않은 거대한 중국 영토까지 세력권을 확장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그당시의 역사는 우리의 것만이 아니라 중국의 것에도 속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 동이족이 그들 한족으로선 이민족이었으므로 동이족에 대한 적대감은 당연 하였으리라.


※우리 나라 고대사 관점에서...
치우(蚩尤) - 환웅의 신하. 천지를 움직여 휘두르는 힘과 바람 번개 구름 안개를 부르는 능력이 있었다. 칼 창 큰도끼 긴창 등을 만들어 초목 금수 벌레 물고기를 다스렸다. 그 후손들이 서남쪽의 땅에 살았는데, 지금도 묘(苗)족은 치우를 조상으로 여기고 있다. 유망(楡罔)과 전쟁을 벌여 소호(少昊)와 싸웠고, 유망을 제위에서 쫓아내고 공상(空桑)에서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탁록에서 황제(黃帝)에게 패해 요서지방으로 물러났다.

※중국 고대사 관점에서...
황제의 부하 중에 치우란 자가 있었다. 성격이 거칠고 포악한 신이었다. 그는 인신우제(人身牛蹄), 사목육수(四目六手), 게다라 동(銅)의 머리와 철(鐵)의 이마를 가졌다. 철석(鐵石)을 즐겨 먹는 이형이품(異形異稟)의 신이었다. 불사신(不死神) 이었고 전쟁을 잘하고 좋아하는 포악한 자였다.
이윽고 그의 형제들이며, 똑같이 동두(銅頭)를 지닌 괴이한 신 72인과 힘을 합하여 풍백(風伯 - 바람의 신)과 우사(雨師 - 비의 신)도 자기들 편에 끌어들여서 황제에게 모반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황제는 그 보고를 듣자 먼저 이들과 판천(阪泉)에서 싸웠다. 곧이어 그 북쪽인 탁록에서 다시 결전을 벌였다. 싸움이 시작되자 치우는 풍백과 우사의 힘을 빌어 거센 바람과 비를 일으켜 짙은 안개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둘러쳤다. 그 사이에 동두철액(銅頭鐵額)의 괴신군(怪神軍)과 요괴군들을 풀어서 황제군을 괴롭혔다. 이에는 아무리 황제라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황제는 머뭇거리는 자기편 군사를 독려하면서 예의 그 지남군(지남군)을 선두로 하여 짙은 안개 속을 뚫고 나왔다. 또한 천상으로부터 소환한 자기 딸 발(魃)이란 여신의 도움을 얻어 풍우와 농무를 소멸시키고 힘껏 싸워 쳐부셨기 때문에, 차우도 그때인 도리없이 황제의 군문(軍門)의 무릎을 꿇었다. 그리하여 겨우 천하는 평온으로 되돌아 갔다고 한다.


제준 - 태양과 달의 신
제준(帝俊)의 이름은 오제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또한 정통적인 사서 가운데서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고전에서는 이를 황제(黃帝) 또는 제곡이나 순제(舜帝)의 이칭이라고도 하나 은민족(殷民族)의 조선신(祖先神)이라고도 전해지는 것으도 보아 제곡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간주된다.
제준에게는 아황(娥皇), 희화(羲和), 상희(常羲)라는 세 아내가 있었다. 아황은 삼신국(三身國)을 낳았다고 전해지며, 희화는 태양의 여신으로서 열이나 되는 태양의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들을 번갈아가며 천상에 오르게 하여 하계에 빛을 주었다. 또 상희는 달의 여신으로서 열둘이나 되는 달의 딸을 낳았다. 이 딸들이 번갈아가며 하늘에 오르게 하여 밤을 환히 밝혔다.
열의 태양과 열둘의 달이란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의 사상과도 결부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태양이라든가 달의 어버이 신으로서 제준(帝俊)의 존재는 주목받을 만하다.


소호 금천씨 - 새가 지배한 나라
오제의 첫째에 위치하는 소호(少昊)는 십팔사략에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즉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는 황제의 아들로 청양(靑陽)이라고도 한다. 그가 선죽 봉조(鳳鳥)가 이르매 새로써 관(官)에 기(紀)하다>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영조(靈鳥)인 봉조의 출현은 원래 치세의 상징이며 <새로써 관에 기하다> 는 것은 그 봉조의 출현에 의미를 두어 제관의 관명을 붙였다는 뜻이겠으나 딴 고전의 참작해서 이것에다가 신화적 연역(演繹)을 붙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봉조란 세상에도 희귀한 영조이며, 좀체로 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영조가 하필이면 소호의 시대에 출현했다는 것은 그가 다름 아닌 조족(鳥族)의 신이었기 때문이라는 짐작이 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가 <새로써 관에 기하다>라는 것은 실은 <새로써 벼슬에 붙었다>, 즉 그가 세운 왕국이 조족이 지배한 나라였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그는 먼저 봉조로 하여금 수상에 임명하고 문상(文相)에는 온순한 비둘기 방위상에는 용맹한 매 건설상에는 조직적이고 깔끔한 뻐꾸기 법상에는 준엄한 독수리 등을 적재적소에 임용해 천하를 다스리게 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흔한 그런 물욕과 권세욕에 물든 내각이 아니었던 만큼 그 세상도 아마 무사하게 잘 다스려졌던 모양이다.


전욱 고양씨 - 인간 세계의 질서 확립
전욱 고양씨에 대한 설명을 보면, <남정(南正-관명)의 중(重)에게 명하여 하늘을 관장케하고 그로써 신(神)을 속하게 했다. 또한 화정(火正-관명)의 여(黎)에게 명하여 당을 관장케하고 그로써 민(民)을 속하게 하여서 서로 침법하여 모독하지 못하게끔 했다>고 되어 있다.
그 신화적 연역은 다음과 같다. 그 옛날 하늘과 땅은 반고(盤古)에 의해서 상하로 떠밀려져 멀어지긴 했으나, 그 후에도 천지간의 교통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러나 하늘과 땅, 그리고 신과 인간의 사이가 너무 헤이해서 우주질서의 확립을 위해서는 유해무익하다고 판단한 전욱은, 힘이 장사인 중(重)과 여(黎) 두 신에게 명하여 하늘과 땅을 힘으로 완전히 격리시켜서 신계질서를 구분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 인간세계에 있어서의 계급 사회 및 봉건 질서의 형성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딴 고전을 보면, 그가 예법을 엄정하여 남존여비 제도를 강화했다는 대목도 있다.


제곡 고신씨 - 악기와 음악의 문화 군주
제곡 고신씨(高辛氏)는 <태어나면서부터 신령하여 스스로 그 이름을 말했다> 고 써 있을 만큼 조숙한 신동이었다. 그는 갖가지 악기와 음악을 제작할 만큼 문화군주로 그 능력을 발휘했지만 그것보다도 그의 명성은 그의 아들인 요제 (堯帝)를 비롯하여 은왕조(殷王朝)의 시조인 설(契)이라든가 주왕조의 시조인 후직(後稷)을 나게 했다는 가계(家系)의 우수성으로써 더욱 높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사실상 계보 같은게 큰 문제될 턱은 없는 것이지만 사기나 십팔사략 같은 기록을 신용한다고 하면 제곡의 제후(諸候) 중 한 사람인 진봉씨 (陳鋒氏)의 딸을 맞아 자식을 낳은 이가 요제(堯帝)이고 두번째 부인인 간적 (簡狄)이 낳은 자식이 설(契)이다. 그리고 첫번재 부인인 강원이 낳은 아들이 주(周)의 후직(後稷)인 것이다.
제곡 고신씨(高辛氏) 시대에 만장(蠻將)인 방왕(防王)이 모반을 일으켰다. 제곡은 나라가 망하는 것을 염려하여 "만약 방왕의 머리를 베어오는 자가 있으면 황금 천일(千鎰)과 만가(萬家)의 읍(邑)을 포상으로 주고, 또한 나의 딸을 아내로 주겠다"고 포고했다.
그러자 제곡의 애견인 반호(盤瓠)가 잠시 동안 그 모습을 감추더니 이윽고 방왕의 목을 입에 물고 나타났다. 제(帝)는 상대가 개이므로 약속의 실행을 주저했다. 그랬더니 공주가 하는 말이 " 황제이신 아바마마가 약속을 지키시지 않으시다니 그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습니다"하고 스스로 자청해서 개 반호의 아내가 되었다. 그 사이에서 3남6녀의 자녀가 태어났다. 그리하여 그 자손이 점점 번성했으므로 사람들이 이를 일러 [견융(犬戎 )의 나라]라고 불렀다고 했다. 이것은 일종의 이족 결혼담이며, 또한 부족신설화이다. 반호는 천지개벽 신인 반고와 그 음이 거의 통하는 데서 양자를 관련시켜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요제, 순제 - 전설적인 성천자
요제(堯帝)와 순제(舜帝)라고 하면 논어, 맹자를 끄집어내지 않아도 우리들 에게는 가장 낯익은 고대의 성왕이다.
물론 현대 사학의 과학적 논증으로서 말한다면 요, 순은 아직도 유사 이전의 가상전설적인 인물에 지나지 않지만,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성천자로서의 이미지는 오늘날의 역사학자가 제 아무리 [요순말살론]을 펴보았자 결코 소멸되지는 않으리만큼 선명할 것이다.
유교경전인 오경(經)의 하나로 손꼽히는 서경의 기록도 먼저 요, 순의 사적 으로부터 쓰기 시작하고 있다.
고복격양(鼓腹擊壤)의 고사를 비롯하여 요, 순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은 대개 유교적 분식(粉飾)이 너무나 진한 것으로서 성천자(聖天子) 를 예찬하는 의식적인 것뿐이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은 이미 소박하고 건강한 신화의 테두리에서 빗나간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후예 - 아홉 태양을 쏜 활의 신
후예는 천상에 사는 활의 명인인 신이다. 요제 때의 일이다. 제준(帝俊)이 낳은 열 태양이 번갈아가며 천상에 올라가 있는 동안은 태평하였지만, 어느 날 그들이 서로 의논한 끝에 장난삼아서 열 태양이 한꺼번에 하늘을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상은 삽시간에 염열지옥으로 변하여 농작물은 타고 초목은 말라 비틀어졌으며, 하천은 말라서 먼지가 났다. 요제의 덕으로도 이 뜻밖의 천재지변에는 어쩔 도리가 없어서 마침내 제준에게 호소하고 나섰다. 이에 제준은 활의 명수인 후예를 하계에 파견하고 아무쪼록 온당하게 사태를 수습 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솜씨를 자랑하는 후예는 지상에 내려서자마자 약간 높다란 언덕에 서서 때마침 타는 듯이 뜨거운 햇볕을 내리쏟고 있는 열 태양을 향해 활을 잡아 당겼다. 드디어 훌륭한 솜씨로 아홉 태양을 쏘아맞춰서 떨어뜨려 버렸다.
그 뒤엔 단 하나의 태양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 덕분에 지상의 인간들은 다시 온화한 햇빛을 받아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후예는 그 수습하는 방법이 너무 거칠었다고 해서 제준의 노여움을 사고 지상에 추방되는 운명을 감수하게 되었다.
항아(嫦娥)도 천상의 여신이다. 후예의 아내였으나 추방되어 후예와 함께 신에서 인간으로 격하되어 버렸다. 어느날 후예는 곤륜산(昆崙山) 서쪽에 사는 서왕모(西王母)라는 여신이 불로불사의 약을 지니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찾아가 그 약을 얻어와 아내에게 맡겼다. 약을 맡은 아내 항아는 후예가 없는 사이에 몰래 그 약을 혼자서 삼켜 버렸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그녀의 몸이 아주 가볍게 둥둥 공중에 뜨기 시작하더니 차츰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계에서 추방당한 신세로는 새삼 다시 천계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우선 월궁(月宮)에 들어가 잠시 몸을 숨기자고 결심했다. 그러나 월궁에 도착 하자마자 그녀의 몸이 이상스럽게도 점점 짤막하게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대신 배와 허리가 옆으로 퍼지더니 입은 크게 찢어지고 눈은 흉하게 불거져 나왔다. 살결은 검어지고 게다가 또 동전 크기만큼씩 얽어서 곰보가 되었다. 참으로 보기에도 흉칙스런 두꺼비가 되고 만 것이다. 맑게 갠 밤, 달빛에 비치는 두꺼비의 그림자는 다름아닌 바로 이 항아의 변신인 것이다.


서왕모 - 질병의 신을 취제하는 여신
서왕모란 여신에 대한 이야기는 항아분월(嫦娥奔月)의 고사에도 약간 비친 바 있다. 그러나 서왕모의 전설은 각양각색이어서 하나로 통일되기는 어렵지만 [산해경(山海經)]이란 책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서왕모는 중국에서도 서쪽으로 멀리 옥산(玉山)이라는 산에 살고 있었다. 그 형상은 사람과 비슷하고 표범의 꼬리에 호치(虎齒)를 지녔으며, 휘파람을 잘 불고 봉발(蓬髮)에 화승(華勝-머리장식)을 꽂고, 천려와 오잔을 관장하는 여신 으로서 질병의 신을 취체하는 임무를 띤 괴수(怪獸)와 같은 모습을 지닌 여신 이었다. 이를 볼 때 겨우 봉발에 화승을 꽃았다는 것쯤에서 여성 비슷한 모습을 느낄 뿐이다.
그러나 서왕모는 후세에 이르러 기품있는 여신으로서 전해 내려왔다. 그리하여 동왕공(東王公)이라는 동방의 남신(南神)과 한 쌍이 된 여신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또한 후세에는 도교(道敎)의 신으로서 민중신앙의 대상으로도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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