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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화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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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4,537회 작성일 06-08-2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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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화 여행




중국은 신화가 빈곤한 나라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현실을 숭상하고 공상을 경시하는 중국인의 현세주의와 그 속에서 생성된 유교적 이념의 제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정통적인 경서, 사서는 모두 <괴(怪), 역(力), 난(亂), 신(神)을 논하지 않는> 공자(유교)의 교설에 충실한 나머지 낭만적인 신화적 요소를 밖으로 따돌리기나 한쪽 구석으로 치워 버려 일부러 무관심을 가장해 보이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이 고대 중국인의 소박하고 건강한 신화 전설의 존재 형태를 알려고 하는 경우에는 그들 정통적인 경서, 사서보다는 오히려 비정통적인 고전이나 민간 전승 속의 자료를 찾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1. 반고(盤古)의 천지창조

중국 신화의 의하면 천지와 함께 태어난 신의 이름은 반고이다. 그러나 반고의 이름은 처음 나타나는 것은 비교적 가까워 삼국 시대(서기3세기)에 씌어진 서정(徐整)의 <三五曆記>라는 책에 실려 있는데 거기에 적힌 바에 따르면 반고는 천지가 아직 나누어지지 않고 혼돈하여 계란의 알맹이 같은 상태였던 속에서 태어난 정신 없이 1만8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잠을 잔 후 하루에 1장씩 키아 자라는 눈부신 성장을 나타내어 그 체력으로 하늘과 땅을 상하로 밀어서 갈라 나갔다. 그리하여 다시 1만8천 년, 그 성장은 극점에 달하여 그의 키에 의해 갈라진 천지의 간격은 실로 90만 리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원시의 혼돈에서 천지를 분리시켜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 반고의 억센 <육체의 힘>으로 얻은 서업이었다고 하는 이 설화는 근로를 존중하고 인력을 신뢰하는 고대 중국 민중의 건강한 사념의 소산으로서 더욱 흥미 깊게 읽힐 것이다.




2. 반고의 사체화생설(死體化生說)




반고의 천지창조의 상태를 정확하게 말하면 전지전능한 천지창조신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그의 그 육체력의 초인간적인 점과 보통 사람이 아닌 점에 있어서 바로 신이며 자연 그 자체이었다.




그러므로 - 하고 다른 고전은 다시 말을 잇는다 - 반고가 죽음에 임했을 때 그 내뿜는 숨은 바람과 구름으로, 목소리는 천둥으로 화하고, 두 눈은 해와 달로, 혈액은 강하(江河)로 근맥(筋脈)은 도로로, 살과 가죽은 전토(田土)로 머리카락과 수염은 성신(星辰)으로 몸의 털은 초목으로, 치골(齒骨) 정수(精髓)는 금석주옥(金石珠玉)으로 흘러나오는 땀은 비와 이슬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죽음에 임하여 변신한 반고는 자기 몸 전체를 바쳐서 이 세상을 풍요하고 아름답게 하는 데 공헌한 것이다.




3. 삼황(三皇)




반고에 의어서 가장 오래된 신화적 세계에 나타나는 세 사람의 제왕(三柱의 神)을 <삼황>이라고 하는데, 누가 거기에 해당하는지는 제설(諸說)이 구구하다.




일설에 따르면 천황, 지황, 인황이라고 하나, 이것은 물론 천지, 인간의 성립을 의인적으로 설명하려고 한 합리적 신화이다.




그밖에 복희(伏羲), 여와(女와), 신농(神農)을 삼황으로 하고, 또 그 가운데 여와를 축융(祝融) 혹은 수인(燧人)에게 대치하는 설도 있으며, 예의 <십팔사략(十八史略)>에서는 복희, 신농, 황제(黃帝)를 이에 해당시킨다.




이들 제신에 관해서는 아래에 다시 언급하겠으나, 그 중에서도 여와의 인간 창조, 천지 보수(補修)의 신화는 가장 이색정채(異色精彩)에 뛰어나고, 다른 신들에게는 각각 인간의 문명 생활의 창조자, 추진자의 역할이 배정되어 있다.




4. 여와(女媧)의 인간 창조




성경의 하느님(여호와)은 흙먼지로 사람을 빚어 넣어 생명의 기운을 그 콧속에 불어 넣었으므로 <사람 즉 생명 있는 인간이 되었다>고 되어 있는데, 여와의 인간 창조도 얼마간 그것에 가깝다.




다만 그녀의 경우에는 인간 제조의 재료는 흙먼지가 아니고 황토이다.

그것을 손으로 주물러서 인간을 만드는데 아무튼 무대가 풍부한 황토지대인 중국이고 보면 재료에는 아쉬움이 없는 대신에 그만큼 일은 바빠진다.




그래서 그녀는 수고를 더는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내어, 먼저 흙탕에 반죽한 황토 속에 거친 새끼를 집어넣어 질척하게 휘저은 다음 적당한 때를 보아 새끼를 꺼내어 그 새끼 끝에서 땅 위로 뚝뚝 떨어지는 흙탕이 엉긴 것을 그대로 인간으로 만들었다. 얼마간 대량 생산 공정(工程)이다. 그러나 수고를 덜고 만든 인간과는 자연히 됨됨이가 달랐다. 즉 인간 중에 부귀한 자와 빈천한 자가 있는 것은 그것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긴 중국의 역사를 특색 짓는 사회 계급의 분화와 인구 과잉 현상을 설명하는 기발한 인간 창조설이 아닌가.




5. 여와보천(女媧補天)




천지가 개벽된 이후, 하늘에는 태양과 달과 별이 나타나고 지상에는 산천초목이 출현하였으며, 심지어는 길짐승,날짐승,벌레,물고기까지 출현하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신통력이 뛰어난 여와(女渦,水=">女)라는" 여신이 출현하였다. 그녀는 하루에도 70여차례나 변하였을 정도로 그 신통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어느 날, 이 위대한 여신은 초목이 무성하게 우거진 原野를 거딜며 주위의 풍경을 둘러보게 되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온갖 만물이 다 생겨났건만 이 오로움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녀는 천지간에 꼭 있어야만 할 것이 빠진 것 같은 허점함을 느꼈다. 도대체 무엇이 더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여와는 생각에 빠져 이리저리 거닐다가 피곤하여 우연히 어느 연못가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지없이 맑은 연못 물 속에 자신의 얼굴과 모습이 비쳤다. 그녀가 미소를 짓자 연못 물 속의 그림자도 따라 미소지었다. 그녀가 짐짓 화난 표정을 짓자 연못 물 속의 그림자도 따라 그녀에게 화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퍼뜩 그녀의 뇌리에 영감이 스쳐갔다.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생물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유독 나를 닮은 생물만은 존재하지 않는구나. 왜 나를 닮은 생물은 생겨나지 않았을까?" 그녀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체 연목가의 황토를 파서 물과 섞어 반죽하였다. 여와가 반죽을 하여 빚은 것은 바로 어린 아이의 형상이었다. 여와는 그것을 조심스레 땅 위에 내려 놓았다. 놀랍게도 흙으로 빚은 작은 덩어리는 땅에 닿자마자 생명이 깆들여져 이내 입을 열고 외쳐대는게 아닌가? "엄마!" 아이는 금새 깡총 깡총 뛰면서 환호성을 질러대며 생명의 환희를 마음껏 구가하였다. 여와는 자신의 손으로 빚어 창조한 총명하고 아름다움 생물을 기쁨에 빛나는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와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이 피조물에게 '인간'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인간은 몸은 비록 왜소하지만 신이 창조한 피조물로서 생긴 모습이며 거동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신을 꼭 빼어 닮았다. 하늘을 나는 새들, 땅 위를 기어다니는 짐승과는 전혀 달랐다. 얼핏 보기에도 온 우주를 지배할 만한 비범한 기개를 가지고 있었다. 여와는 자신이 빚어 창조한 이 피조물에 대하여 만족스러워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또다시 이 피조물을 만드는 일을 계속하였다. 그녀는 황토로 말을 할 줄 알며 땅 위를 걸러다닐 수 있는 귀여운 아이들을 많이 만들었다. 이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 그녀의 주위를 깡충깡총 뛰어다니자 그녀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과 위안을 느꼈다. 그 후부터 그녀는 더 이상 외롭거나 쓰쓸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하였다. 저녁 노을이 하늘 가득히 붉게 물들고 아름다운 별들과 달이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을 때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했다. 밤이 이슥해져서야 그녀는 머리를 벼랑에 기댄 채 잠깐 눈을 붙였다. 이튿날 동이 트자 그녀는 얼른 일어나서 다시 일을 계속하였다. 여와는 온 대지를 이 작고 영민한 생물로 가득 채우고 싶어 하였다. 천신여와는 부지런히 땀흘려 인류를 창조하는 위대한 사업을 완수하고 나서야 비로서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할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깊은 생각에 다시금 빠졌다. '인류를 영원히 이 대지 위에 생존케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인간을 누구나 죽게 마련인데 죽은 수만큼 인간을 창조해야하니 이 얼마나 번거롭고 귀찮은 일인가?' 그리하여 그녀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남자와 여자를 짝쥐어 주어 그들로 하여금 자식을 낳아 양육하게 하면 인류는 영원히 대대로 이어나갈 수가 있잖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여와는 즉시 사당으로 가서 인간들의 중매장이가 되게 해 달라고 상제에게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상제의 허락을 받아 낸 그녀는 인류를 위해 처음으로 혼인제도를 만들었다. 여와는 인류를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 최초의 중매장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그녀를 '혼인의 신' 으로 받들어 신묘를 세우고 성대하게 제사를 지내며 인간들에게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 준 그녀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다.




6. 고매신(高매神)




고매는 교매(郊매), 고매(皐매)라고도 적는다. 이것은 혼인의 신, 자식을 주는 신을 말하는데 그 고매신으로 모셔지는 것이 다름 아닌 여괘이다.




인간 창조의 큰 역사를 완수한 여괘는 창조한 인간들이 끊어지지 않고 영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인간의 남녀가 그들 자신으로 자손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혼인제도를 정했다. 사람들이 여괘를 고매 즉 혼인의 신으로 모시는 연유이지만, 동시에 결혼했어도 아이가 없는 자는 다시 한 번 고매에 대하여 자기들의 혼인이 완전히 성취되도록 기원한다. 이와 같이 하여 여괘는 인간의 창조신일 뿐만 아니라, 혼인의 신이기도 하며, 자식을 주는 신이기도 하다는 빛나는 영광을 지고 중국 민중의 신앙 속에 길이 생명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7. 유소씨(有巢氏), 수인씨(燧人氏)




수인씨의 이름은 <삼황>의 한 사람으로 꼽히지만, 이에 유소씨를 선행시켜 인간 생활의 진보를 설명하려 하는 합리적 신화도 있다.




한비자(韓非子)의 오낭편에 따르면, 상고 시대에는 백성이 적었고 금수와 뱀, 벌레의 해에 시달렸기 때문에 유소씨가 나타나서 나무 위에 둥우리를 지어 그 재해를 피하게 했다. 또 백성이 초목의 열매를 날로 먹고 조개 등 비리고 나쁜 냄새가 나는 것을 날로 먹어서 위장이 상해 병이 났으므로 수인이 나타나서 부싯돌을 써서 불을 일으켜 비린내를 가시게 하는 방법을 발명했다. 즉 인간의 소거(巢居) 생활, 화식(火食) 생활의 시작을 표징하는 것이 이 신들이다.




8. 복희의 발명




<십팔사략>에는 <태호(太昊) 복희씨, 풍성(風性), 수인씨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는데 몸은 뱀이요 머리는 사람이었다>고 적혀 있다. 수인씨는 화식의 발명자로 알려졌으나 복희도 역시 역시 그것과 인연이 없지 않다. 그의 이름은 포희(包羲) 또는 포희(포羲)라고도 했는데, 이 이름들은 <희생을 길러서 포주(포廚)를 채운다>든가 <희생을 포락(포烙)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므로 사람들에게 동물의 고기를 익혀서 음식으로 제공할 것을 가르친 것을 그의 공헌으로 친 것이리라.




그는 또 역의 팔괘를 만들어 인사의 길흉을 점치고 서계(書契="文字)를" 발명하고 그물을 짜서 물고기와 짐승을 잡는 기술을 고안해 내고, 다시 여괘를 처로 삼아 둘이서 혼인의 예를 정했다고 한다.




9. 신농(神農)의 발명




이 사람도 삼황의 하나로 꼽히는 신농, 즉 염제(炎帝) 신농씨는 그 이름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우선 농업의 신이다. 염제 즉 태양의 신이기도 한 그는 사람들에게 가래를 써서 경작을 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태양의 빛과 열로써 풍요하게 자라게 하여 인간의 식생활에 공헌했을 뿐만 아니라, 태양이 중천에 걸리는 한낮(정오) 때를 표준으로 하여 사람들을 사장에 모아 교역(="상업)의" 길을 가르쳤다. 이 점에서 그는 상업의 신이지만, 거기다가 다시 의약의 신으로도 모셔진다.




태양은 원래 건강의 원천이므로, 태양의 신인 그가 건강 지키기를 목적으로 하는 의약과도 깊은 관계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느 전설에 의하면 그는 산야를 돌아다니며 신통력을 가진 붉은 회초리(자편)으로 약초를 매질하여 각 풀의 독성의 유무나 각종 효능을 분별하여 사람들의 질병 치료를 도왔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맹독이 있는 단장초(斷腸草)를 빨았기 때문에 장이 녹아서 생명을 희생당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10. 정위전해(精衛塡海)




신농에게는 딸이 셋 있었는데 그녀들의 운명은 각기 달랐다. 한 딸은 단지 신농의 소녀라고만 불리고 있어 이름을 알 수가 없다. 그녀는 아버지 밑에서 비를 다스리는 일을 맡아 보았고, 후에 수련에 의해 선인이 된 적송자(赤松子)의 선술(仙術)을 동경하여 자기도 그 뒤를 따라 여선이 되었다고 한다.




또 한 딸은 여왜(女娃)라고 한다. 아직 젊었던 그녀는 어느 날 동해로 미역을 감으러 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익사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영혼은 정위라는 작은 새로 살았다. 정위는 자기 생명을 빼앗은 동해에 부질없이 끈질긴 보복을 꾀하고 매일 서쪽 한에서 작은 돌과 작은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거칠게 날뛰는 동해의 파도 상이에 떨어뜨려 이것을 다 메우려고 했다. 이것이 <정위전해>의 고사인데 일반적으로는 무모한 일을 꾀하여 헛일로 끝나는 비유로 삼고 있으나, 관점을 달리한다면, 일의 성사를 도외시하고 뜻에 순(殉)하는 끈기 있는 노력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다.




11. 요희(瑤姬)의 운명




나머지 한 아가씨인 요희도 역시 여왜와 같이 아주 아름답고 정열적인 소녀였으나, 나이 차서 더구나 아직 이성의 사랑을 받는 기쁨도 모른 채 처녀의 몸으로 죽고 말았다. 얼마 지나서 고요산이라는 산 중허리에 가련한 노란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은 한 포기 요초(瑤草)야말로 그녀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풀의 열매를 따먹은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이성의 사랑을 받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 봉오리인 채로 죽은 요희의 운명을 가련하게 여긴 천제는 이윽고 그녀를 사천성에 있는 무산에 파견하여 운우(雲雨)의 신에 봉했다. 그 후로 그녀는 아침에는 미련한 아침 구름이 되어 산꼭대기 근처를 떠돌아다니고 저녁에는 쓸쓸한 저녁비로 변하여 골짜기에 내려 풀 길 없는 가슴속의 정열을 달랬던 것이다.




훨씬 후세 - 전국시대(BC3세기) 말에 초나라의 회왕과 또 그의 아들 낭왕이 운몽택(늪의 이름)에서 노닐며 고당의 대(臺)에서 쉴 때 꿈길의 베갯머리에 환영처럼 나타난 무산의 여신- 요희가 타는 듯한 정열을 다하여 두 사람과 차례로 인연을 맺었다는 정사의 전말은 초나라의 궁정시인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 <신녀부(神女賦)> 두 편에 의해 세상에 전해진다. 남녀의 비사(秘事)를 무산의 꿈 또는 무산의 운우라고 익히 부르는 기원이 이것이다.







12. 도신(道神)




여와(女媧) 때에 난폭한 일을 일삼아 천리를 혼란에 빠뜨린 물의 신 공공(共工)은 이른바 황폐의 신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난폭자였고, 그의 어린이나 하인들도 모두 그를 본떴다. 오직 한 사람, 수(修)라고 하는 아들은 한량없이 착한 사람이었다. 소탈한 성품에 여행을 좋아하여 각지를 방랑하였고, 갈 만한 곳이면 어디라도 표연히 떠나는 식이었으므로 그의 사후 사람들은 그를 여행의 신으로 모시게 되었다. 소위 도신(道臣), 행신(行神)이라고 불리는 이가 그 사람이다. 그래서 후세에서는 사람들이 여행을 떠날 때에는 길가에서 도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아울러 송별 잔치를 베풀어 여행의 평안을 빈다. 이것이 이른바 도연(道宴), 도전(道餞)인데, 이 도신(道神) 신앙이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전래하여 보급되어 있는 것은 아는 바와 같다.




13. 황제(黃帝)의 출현




염제(炎帝) 신농씨 후 같은 성이 이어지기 8백 년이었고 바뀌어서 출현한 것이 황제 헌원씨(軒轅氏)이다. <황제>란 그 발음으로서는 <황제(皇帝)>와 통한다. 후세에는 진(秦)의 시황제 같은 현세의 황제도 나타나지만, 본래는 황제란 <皇天上帝>, 즉 천상을 지배하는 최고 주신(主神)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천상 세계의 황제는 그 중앙인 천궁(天宮)에 살며, 신들의 보좌를 받으면서 사방을 통할하는 중앙신이며 그에 걸맞게 네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황제, 황색의 제왕이란 중국에 군림하는 제왕이란 뜻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황색은 다름 아닌 중국의 빛깔이기 때문이다. 만만(漫漫)한 물이 천고(千古)에 흘러오고 흘러가는 황하와 그 주변의 멀리 바라다보이는 끝간 데 없이 메워 나가는 비옥한 황토의 평야로 구상되듯이 황색은 중국의 빛깔이기 때문이다.




14. 황제(黃帝)의 발명




누런 빛깔의 나라 - 중국 최고(最古)의 제왕으로서 황제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경앙(敬仰)의 표적이 되었다. 따라서 황제에게는 또 복희, 신농보다도 중국 문명의 개발자로서의 수많은 영예가 주어져 있다.




그는 소거(巢居)나 혈거(穴居) 대신에 처음으로 가옥을 만들었다. 그는 실과 삼으로 의복을 짜는 것을 생각해 냈다. 그는 배와 수레를 발명하여 교통의 편리를 개척했다. 문자를 만들고 천문역산(天文曆算)의 학문을 일으킨 것은 그였다. 약초를 조사하고 의료의 기술을 넓힌 것도 그였다. 시장에 엄중한 관문을 설치하고 또 격탁(擊柝, 딱딱이를 치는 일)으로써 외부로부터의 침입자를 막은 것도 전신의 무기로는 궁시(弓矢)나 지남차(指南車, 언제나 남쪽을 가리키는 방향 지시기를 단 병사용 수레로서 아마 자석의 응용이었으리라)를 발명한 것도 그라고 한다.




15. 치우(蚩尤)의 모반(謀叛)




황제의 부하에 치우라고 하는 사나운 신이 있었다. 그는 사람 몸뚱이에 소의 발굽을 가졌고 눈이 넷이요, 팔이 여섯 개 있었고, 더구나 구리로 된 머리에 이마는 쇠로 되어 있었고, 쇠와 돌을 주워 먹는 괴상한 모양을 한 괴이한 성품의 신이었고, 죽지 않는 몸을 가지고 싸움에 능한 난폭자였다. 이윽고 그는 그 형제로서 마찬가지로 구리 머리에 이마가 쇠로 된 괴신(怪神) 72인과 힘을 합쳐 풍백(風伯 : 바람의 신), 우사(雨師: 비의 신)도 자기편에 끌어들여 황제에게 반기를 들었다. 황제는 그 소식을 듣고도 우선 판천(阪泉="하북성의" 땅)에서 싸우고, 이어서 그 북쪽 탁록(涿鹿)에서 다시 결전에 임했다. 싸움이 시작되자 치우는 풍백, 우사의 활동으로 큰 바람과 큰 비를 일으켜 짙은 안개를 일게 하고 그 사이에 동두철액(銅頭鐵額)의 괴신군(怪神軍)과 이매망량의 요괴군을 활동시켜 황제군을 괴롭혔으므로, 만만찮은 황제군도 얼마간 고전을 면치 못하였으나, 그는 쩔쩔매는 군사들을 독려하며 예의 지남차를 선두로 하여 농무(濃霧) 속을 헤쳐 나가고, 또 천상으로부터 불러 모은 자기 딸 발(魃)이라는 여신의 도움을 받아 풍우와 농무를 물리치고 계속 싸웠기 때문에 치우도 마침내 힘이 다하여 황제의 군문에 항복하였고, 천하는 겨우 평온을 되찾았다고 한다.




16, 한발(旱魃)




황제가 치우와의 싸움에 왜 자기 딸인 발(魃)을 기용했느냐 하면 이런 이유가 있다.




그녀는 여신이면서 얼굴이 못 생긴 데다가 머리는 번들번들 벗겨져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체내에 대단한 열기가 충만하여 용광로처럼 이글이글 타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 열기를 토해 냄으로써 치우가 터뜨려 놓은 풍우와 농무를 소산(消散)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싸움을 끝낸 발은 이미 그 정력을 다 써 버려서 이미 천상으로 돌아갈 신통력을 잃고 지상에 머물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녀가 있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그 열기 때문에 가뭄이 들어 온통 건조하여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게 되므로, 사람들은 그녀를 <한발>이라고 부르며 원망하였다.




그래서 황제가 그녀를 적수(赤水="섬서성)" 북쪽으로 추방하고 논의 숙균(叔均)에게 명하여 그 행동을 감지시켰으나, 그녀는 감시의 눈을 피하여 가끔 도망을 꾀했고 도망간 데서는 또 가뭄을 만나며, 우선 논의 물길이나 골을 깨끗이 치고는 <신이여, 북쪽으로 가소서!> 하고, 가뭄의 원인인 발을 적수 북쪽으로 내쫓으면 된다고 한다.




17. 용염초(龍髥草)




치우(蚩尤)의 난 후에 황제의 천하는 평온이 계속되었다. 황제는 치우를 평정한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수양산에서 파낸 구리로 큰 보정(寶鼎)을 만들게 했다. 이윽고 천상의 신들은 오래도록 천계(天界)를 비웠던 황제를 맞아 귀환시키기 위해 한 마리의 신룡(神龍)을 파견하였다. 그리하여 황제는 지상의 생활을 고별할 결심을 굳히고 주된 신하와 황후들 70여 사람과 함께 그 신룡의 등에 업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 용의 수염에 매달리어 같이 데려가기를 탄원하였으나 원래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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