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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선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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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3,529회 작성일 15-03-2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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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선조들

기원전 12세기 경 동이족이 세운 은왕조를 멸하고 주왕조를 창건한 주무왕은 은주(殷紂)의 아들 무경(武庚) 녹보(祿父)를 은나라 고토에 봉해 그 유민을 다스리며 선조들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무경 녹보는 반란을 일으켜 주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무경 녹보의 란을 진압한 주공(周公)은 동생 강숙(康叔)을 은나라 고토에 봉하고 국호를 위(衛)라고 부르게 했다. 그리고 다시 은나라의 유민의 반을 은왕조의 발생지였던 상구(商丘)로 이주시킨 후에 은주(殷紂)의 서형 미자개(微子開)를 봉하고 송(宋)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게 했다. 상구는 지금의 하남성 상구시 일대다.

기원전 10세기 경 송나라의 건국조 미자계로부터 4전한 송나라 군주 송민공(宋湣公)에게는 불보하(弗父何)와 부사(鮒祀)라는 두 아들이 있었지만 군주자리를 동생 자희(子熙)에게 전했다. 자희가 송양공(宋煬公)이다. 송나라 군주자리가 숙부에게 돌아간 것에 불만을 품은 차남 부사가 려공을 시해하고 그의 형 불보하를 추대하려고 했으나 불보하는 받아들이지 않고 동생에게 양보했다. 이에 부사가 송공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송려공(宋厲公)이다. 려공은 불보하를 상경(上卿)에 임명하여 송나라의 국정을 맡겼다. 려공이 죽고 아들 희공(僖公)이 섰다. 희공의 재위기간은 기원전 859년에 즉위하여 기원전 831년에 죽었다. 송나라 군주들의 재위연도는 확인되지 않다가 희공 때부터 분명해졌다. 희공의 뒤는 혜공(惠公)이 이엇다가 기원전 799년 대공(代公)으로 전해졌다.

불보하의 증손자 정고보는 송나라의 대공(戴公 : 재위 전799-766년), 무공(武公 : 재위 전765-748년), 선공(宣公 :재위 전747-729년) 삼세 70년을 거쳐 보좌했다. 그는 군주의 명을 받을 때마다 더욱 공손했으며 그래서 정(鼎)에 세겨 넣기를 ‘첫 번째 명에 몸을 숙이고, 두 번째 명에 허리를 굽혀 절하고, 세 번째 명에는 큰절을 한 뒤에 받았다. 길을 걸을 때는 가운데를 걷지 않고 담장 곁에 붙어 다녔으나 아무도 감히 그를 경멸하지 않았다. 정(鼎)에 ’풀과 죽을 쑤어 먹으며 청렴하게 살았다’라고 기록했을 정도로 그의 선조들은 청렴하고 공손했다.

송희공으로부터 5전하여 송선공(宋宣公) 대에 이르러 선공은 자기의 후계를 아들 풍(馮)에게 전하지 않고 동생 목공(穆公)에게 전했다. 목공은 다시 형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송공의 자리를 아들에게 전하지 않고 선공의 아들 여이(與夷)에게 전하고 아들 풍은 정나라에 보내 살게 했다. 여이가 송상공(宋殤公)이다. 이 때 불보하의 4대 손인 공보가(孔父嘉)는 군정을 총괄하는 대사마가 되어 송상공을 모셨다. 송상공은 정나라에 망명생활을 하고 있던 송선공의 아들 공자풍을 죽이기 위해 여러 번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침략하던 과정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수많은 군사를 잃었다. 이에 잦은 군사행동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게 된 송나라 백성들은 송상공을 크게 원망했다. 그때 송나라의 태재(太宰)는 화독(華督)이었다. 태재의 직무는 나라의 일반행정을 총괄하고 내외의 출납과 관청(官廳)의 사무를 담당했던 부서의 장으로 지금의 안행부장관에 해당한다. 그 화독이 어느 날 봄나들이를 갖다가 우연히 절세미녀인 공보가의 부인을 보게 되었다. 그녀의 미모에 정신을 빼앗긴 화독은 공보가를 죽인 후에 그 부인을 차지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화독은 송나라가 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전쟁 통에 잃게 된 것은 모두 공보가 때문이라고 심복들을 시정에 풀어 백성들을 선동했다. 마침내 송나라의 백성들은 난을 일으켜 공보가를 죽이고 내친 김에 송상공마저 시해했다. 란 중에 공보가의 처는 목을 메 죽었다. 화독은 정나라에 망명하고 있던 공자풍을 모셔와 송공으로 추대했다. 공자풍이 송장공(宋莊公)이다.

집안이 몰락한 공보가의 아들 목금보(木金父)는 화독의 가신이 되어 연명했다. 목금보의 손자 공방숙(孔房叔)은 화씨들로부터 계속 핍박을 받다가 일족을 이끌고 노나라에 망명했다. 공방숙이 노나라로 망명한 시기는 송성공(宋成公)이 재위했던 기원전 636년부터 620년 연간이다. 공방숙은 숙량흘(叔梁紇)을 낳고 숙량흘은 공자를 낳았다. 공자가 태어난 해는 기원전 55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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