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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분할시도사 1. 삼국시대와 고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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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2,474회 작성일 09-03-18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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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분할시도 역사


한반도는 북서쪽의 중국, 북동쪽의 노서아, 남동쪽의 일본, 태평양 너머의 미국 간에 위치하여 지정학적으로 북방의 대륙세력( 중국, 노서아 )과 남방의 해양세력( 일본, 미국 )의 접경지에 자리잡고 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진출 시 한반도는 그 진출의 대립과 대치의 주 요충지가 되었으며 그 결과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과의 전장이 되거나 열강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목적 하에 분할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전근대와 근현대에 한반도 주변의 국가들은 한반도 분할을 거듭 시도하였으며 이 결과 한반도는 종국에는 분단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문의 주제는 역사에서의 한반도 분할 분쟁이다. 한반도분할론의 과거를 살펴보며 현재 분단의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와 한반도 통일을 생각해보는 것이야말로 한반도의 역사를 탐구해보는 또다른 하나의 노력이 될 것이다.



1. 한반도의 분할의 시초

한반도의 분할은 고대 한사군(漢四郡)설치(기원전 109년)나 고려 때 철령과 자비령 이북을 원나라가 직할지로 21년간(1270-1290) 지배한 것에서부터 분할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위의 예는 외세에 의해 실제로 점유된 경우이다. 이 후 안으로 제안된 7세기의 당-신라의 경우와 16세기 명-일 강화희에서의 한반도 할지론, 청-일전쟁시 한반도 분할론, 러-일 전쟁시 한반도 분할론이 언급되었다.

< 자비령 >

황해도 황주군 구락면, 봉산군 산수면, 서흥군 소사면·목감면 사이에 있는 고개. 높이 489m. 절령역(岊嶺驛)이 있어 일명 절령이라고도 한다. 언진산맥 말단의 연암(蓮巖, 590m)과 자비산과의 안부에 위치한다.

황주준평원(黃州準平原)과 재령평야에 쌓인 보명산(保命山, 584m)·가마산(可馬山, 481m)·정방산(正方山, 480m) 등의 비교적 낮은 산지를 횡단하는 고개로 남쪽사면은 재령강의 지류인 서흥강의 상류계곡으로 통하고, 북쪽사면은 대동강의 지류인 황주천(黃州川)의 상류계곡으로 연결된다.

이 고개는 예로부터 개성에서 평양을 잇는 행정적·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고려의 역신 최탄(崔坦)이 난을 일으켜 서경을 비롯한 북계(北界) 54성과 자비령 이북의 6성을 합하여 모두 60여성을 가지고 몽고에 귀순하여 이 곳을 동녕부(東寧府)라 칭함으로써 1270년(원종 11)부터 1290년(충렬왕 16)까지 자비령이 여·원의 국경이 되었다.

또, 1361년(공민왕 10) 11월에는 홍건적이 쳐들어와 이 고개에 방책을 쌓고 방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또한, 명나라 사신들이 황주 남쪽 10m 지점에 있는 극성진(棘城鎭)의 극성로(棘城路)를 통하여 내왕하므로 이 고개의 영로(嶺路)를 폐하고 역을 서쪽의 봉산 북쪽 6㎞ 지점에 있는 동산역(洞山驛)과 봉산 동쪽 16㎞ 지점에 있는 검수역(劒水驛)으로 옮겼다.

≪참고문헌≫ 韓國史(震檀學會, 乙酉文化社, 1978)












2. 삼국시대의 한반도 분할론




단지 안으로 제시되었던 경우로는 7세기 중-후반에 당태종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浿水 이남은 신라가 다스리며 그 이북은 내가 다스리겠다"고 김춘추에게 제의한 예가 있다. 이 때는 삼국통일 후 라-당 전쟁으로 한반도에서 당을 몰아내어 분할론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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