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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패수의 위치비정으로 본 고조선의 강역- 대동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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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3,573회 작성일 06-09-18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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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동강설


浿水=대동강설을 가장 먼저 주장한 사람은 북위의 역도원이 아닌가 한다. 역도원(469~527)은 허신(30~124)과 상흠의 패수에 대한 설명 ----


許愼은 패수가 낙랑군 누방현으로부터 나와 동쪽으로 흘러 바다에 유입된다고 하였고, 桑欽은 누방현으로부터 나와 동남쪽으로 임패현을 경유하여 동쪽으로 흘러 바다에 유입된다고 하였다

(『水經注』卷14,「浿水」.

“浿水出樂浪鏤方縣, 東南過於臨浿縣, 東入于海, 許愼云, 浿水出鏤方, 東入海”).

역도원은 강이 동류한다면, 위만이 고조선의 서쪽지대인 漢으로부터 浿水를 건넜다는 기록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점과 요동군 이동지역에는 동류하는 大江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의문을 품었다.-----


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자신이 직접 북위에 파견된 고구려 사신에게 질의를 하여, 고구려 국도를 지나는 현재의 대동강이 바로 패수라는 결론을 내렸다.



『水經注』卷14,「浿水」.

“若浿水東流, 無渡浿之理, 其地今高句麗之國治, 余訪蕃使, 言城在浿水之陽, 其水西流, 逕故樂浪朝鮮縣, 卽樂浪郡治, 漢武帝置, 而西北流, 故地理志曰, 浿水西至增地縣入海, 又漢興, 以朝鮮爲遠, 循遼東故塞, 至浿水爲界, 考之今古於事差謬, 蓋經誤證也”




역도원의 이러한 판단은 또한『한서』지리지에 마자수가 서안평을 경유하여 바다로 들어간다고 되어 있어 현재의 압록강으로 비정될 수 있는 점에 힘입은 바도 크다. 즉, 마자수가 압록강이 될 경우, 고조선과 깊은 관련이 있는 浿水는 압록강 이남의 지역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역도원의 견해는 이후 중국학계에 깊은 영향을 주어, 당대에 들어와서는 패수="대동강설이" 정론화되기에 이른다. 이와 관련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사서들로는,


『주서』『周書』卷49,「列傳」第41, <異域>上, 高麗條.

“治平壤城, 其城, 東西六里, 南臨浿水”


『북사』『北史』卷94,「列傳」第82, <高句麗>.

“其王好修宮室, 都平壤城, 亦曰長安城, 東西六里, 隨山屈曲, 南臨浿水”


『수서』『隋書』卷81,「東夷傳」, <高麗>.

“都於平壤城, 亦曰長安城, 東西六里, 隨山屈曲, 南臨浿水”


『통전』『通典』卷186,「邊防」2, <東夷>, 高句麗條.

“又平壤城東北有魯陽山, 魯城在其上, 西南二十里有葦山, 南臨浿水”


『신당서』『新唐書』卷220,「列傳」第145, <東夷>, 高麗條.

“其君居平壤城, 亦謂長安城, 漢樂浪郡也, 去京師五千里而贏, 隨山屈繚爲郛, 南涯浿水, 王築宮其左”

등이 있다.




이러한 중국학계의 정론은 다시 역으로 통일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에 영향을 미쳐, 국내에서도 역시 연진한대의 패수가 대동강으로 고정되게 된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김부식(1075~1151)의 견해이다. 김부식은 위에서 소개한『당서』「고려전」과 동서「지리지」등을 전거로 하여 浿水가 곧 대동강임을 고증하였던 것이다.



『三國史記』卷37,「雜志」第6, <地理>4, 高句麗條.

“平壤城似今西京, 而浿水則大同江是也, 何以知之, 唐書云, 平壤城漢樂浪郡也, 隨山屈繚爲郛, 南涯浿水, 又志云, 登州東北海行, 南傍海壖, 過浿江口椒島, 得新羅西北, 又隋煬帝東征詔曰, 滄海道軍, 舟艫千里, 高帆電逝, 巨艦雲飛, 橫絶浿江, 遙造平壤, 以此言之, 今大同江爲浿水明矣, 則西京之爲平壤, 亦可知矣, 唐書云, 平壤城亦謂長安, 而古記云, 自平壤移長安, 則二城同異遠近, 則不可知矣, 高句麗始居中國北地, 則漸東遷于浿水之側”




김부식 이전의 자료로는 최승우가 후백제의 견훤을 대신하여 고려 태조 왕건에게 보낸 서신


『三國史記』卷50,「列傳」第10, <甄萱傳> 및『東文選』卷57,「書」, <代甄萱寄高麗王書>.

“……所期者掛弓於平壤之樓, 飮馬於浿江之水”


과 동왕 20년(937)에 세워진 서운사 요오화상 진원탑비문


“和尙, 諱順之, 俗姓朴氏, 浿江人也. ……豈謂浿水興兵, 遼陽動旅, 英雄鼎立, 群邑叛, 和尙難(缺字)……”

등이 있다.



이들 자료에서는 패수가 대동강의 명칭이었다는 사실만이 발견되지만, 당시 내외 사서의 기록을 참고하여 볼 때, ‘浿江’이라는 명칭 속에 김부식과 같은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음을 짐작하여 볼 수 있다.




패수를 대동강으로 보는 시각은 조선시대 전기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유지된다.『고려사』「지리지」에서는 대동강이 곧 浿江으로 일명 왕성강이라고도 하며 강의 하류가 바로 구진익수라고 설명하고 있고



『高麗史』卷58,「地理志」, <北界>의 大同江에 대한 註.

“卽浿江, 又名王城江, 江之下流爲九津溺水”



,『세종실록』「지리지」에서도 대동강이 곧 浿水라고 소개하고 있다.『세종실록』의 기록은『고려사』의 것에 비해 서술내용이 좀 더 상세하게 되어 있는데, 대동강의 원수와 유정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世宗莊憲大王實錄』卷154,「地理志」,〈平安道〉.

“大同江, 卽古之浿江(文獻通考曰, 平壤城東北有魯陽山, 魯城在其上, 西南二十里有葦山, 南臨浿江), 又云王城江(在中祀), 其源有二, 其一出自熙川郡加莫洞, 繞妙香山, 東歷德川价川順川殷山成川慈山, 至于江東, 其一出自陽德縣北文音山, 經谷山遂安祥原三登, 至于江東, 至此二泒合流, 入于平壤府境, 抱流城東爲大同江, 行九里爲亇屯津, 古名九津溺水(在小祀), 皆有舟楫濟人, 過江西至龍岡縣, 南入海”



또한『통고』에서 압록강이 패수인 듯하다고 한 것에 대해서 김부식의 견해를 들면서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世宗莊憲大王實錄』卷154,「地理志」,〈平安道〉.

“臣按, 文獻通考云, 漢興爲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 又云, 衛滿渡浿水, 擊破朝鮮王準, 又按, 金富軾曰, 唐書云, 樂浪郡也, 隨山屈繞, 爲郛南涯浿水, 又云, 登州東北海行, 南方海壖, 過浿江口椒島, 得新羅西北, 又隋煬帝東征詔曰, 滄海艫千里, 橫絶浿江, 逞造平壤, 以此言之令, 大同江爲浿水, 明矣. 則通考以浿水爲界, 似指鴨綠江爲浿水, 盖傳聞之誤”



이외 사찬의 사서인 박상(1474~1530)의『동국사략』에서도 패수를 대동강으로 보았다. 조선초 사서와 지리지에서 패수를 대동강으로 비정하였다는 것은, 그러한 인식이 국가적으로 정론화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대동강설은 이후 조선중기『신증동국여지승람』등에서 한대의 패수를 압록강으로 비정할때까지 국내의 정론으로 자리 잡는다.



16세기 중엽 패수="대동강설이" 공식적으로 폐기된 이후에도 조선후기에 이르기까지 대동강이 浿水라고 인식하던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었던 듯 하다. 이러한 점은 정약용이 그의 <패수변>에서 대동강="패수설을" 주장하는 당시인들을 비판한 것과 韓鎭書가 대동강설을 지지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대동강을 漢代의 浿水로까지 인식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동강을 浿江(九津溺水)이라 일컬은 자료는 17세기대까지의 개인문집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참고적으로 그러한 예에 속하는 약간의 자료들을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


南孝溫,『秋江集』卷3,「詩」, <謁檀君廟庭>; 河 演,『敬齋集』,「詩」, <浿江詞>.

金時習,『梅月堂集』卷9,「詩」, <浿江曲>; 蘇世讓,『陽谷集』卷1,「詩」, <浿江泛舟>.

崔慶昌,『孤竹遺稿』,「詩」, <浿江樓舡題詠>; 許 筬,『岳麓集』卷1,「詩」, <浿江泛月聯句>.

林 悌,『林白湖集』卷1,「詩」, <浿江泛碧>; 卷2, <浿江泛碧>․<浿江歌>.

李好閔,『五峯集』卷1,「詩」, <浿江古意>; 吳始壽,『水村集』卷6,「記」, <望日軒記> 等等.


근대시기에 들어와 대동강설을 주장한 학자로는 일본의 도엽암길과 청대의 양성오 가 있다.


(디시인사이드 역사겔러리 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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