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패수의 위치비정으로 본 고조선 강역도-대릉하 설 > 고조선

4. 패수의 위치비정으로 본 고조선 강역도-대릉하 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조회 4,585회 작성일 06-12-04 18:01

본문

대릉하(大陵河)는 하북성과 요동성을 경계짓는 강으로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중국의 경계선이었다.


1960년대 이후 북한학계의 정설이다. 처음으로 대릉하설을 주장한 학자는 임건상과 이지린이다. 임건상은 浿水를 《수경》과 《산해경》의 기사를 통해 대릉하로, 요수를 난하로 비정하였다. 그는 고조선의 서변경계가 초기에는 난하하류였으나, 진개의 침략으로 현재의 요하 하류인 만번한으로 경계를 삼게 되었고, 그후 다시 요하 이서로 진출하여 위만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浿水 즉, 대릉하를 경계로 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 이지린 또한 임건상과 마찬가지로 문헌에 의거하여 고조선의 중심지에 대해 연구하였는데 임건상에 비해 연구수준이 확대, 보강되었다. 그 역시 요수를 란하로 비정하면서 고조선의 서변경계가 진개의 침략 이후로 만번한으로 일시 후퇴되었다가 후에 다시 진출하여 浿水="대릉하로" 경계를 삼게 되었다고 보았다. 이들의 설은 이후 북한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에도 古朝鮮의 영역에 관계된 연구물은 꾸준히 제출되었는데, 이 시기에 나온 연구물들에서도 기존의 통설인 大凌河說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들의 견해는 남한학계에도 영향을 미쳐 80년대까지 통설로 자리잡고 있던 고조선="평양설을" 재고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일정한 의의를 가진다. 첨언할 것은 이들이 고조선의 강역을 란하 이동안에까지 확대하고 패수를 大凌河로 비정한 것이, 기자조선의 도읍이 요서 광령현에 있었다고 되어 있는『요사』와『성경통지』등의 기록, 한대 요동군에 험독현이 있었다는 기록, 조선시대 후기 고조선의 강역을 요동으로까지 넓혀본 시각 등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