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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패수의 위치비정으로 본 고조선의 강역-압록강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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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4,439회 작성일 06-12-0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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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설



16세기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제기되는 견해이다. 근대 이전 시기에는 대동강설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최근에는 청천강설에 대한 보완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제기되고 있다.



압록강설이 처음으로 주장되어진 것은 관찬지리지인『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이다.



『新增東國輿地勝覽』卷51,「平安道」, <平壤府>, 山川條, ‘大同江’.

“今按司馬遷列傳, 漢興, 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 衛滿亡命, 東走出塞, 渡浿水, 都王險, 則以鴨綠江爲浿水矣. 又唐書, 平壤城漢樂浪郡也, 隨山屈繚爲郛, 南涯浿水, 則至今之大同江也, 又高麗史, 以平山府猪灘爲浿江, 則百濟始祖此以浿江爲界, 及唐帝泊浿江西浦, 布錢下陸, 到松岳郡者, 疑指此也, 以此觀之, 本國境內, 自有三浿水, 而古今衆所的知者, 則獨大同江也”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편찬한 지리지에서 한대의 패수를 압록강으로 명시하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띤다. 즉, 대동강설이 더 이상 국가적인 정론이 아니라는 것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의 영향력은 대단하여 이후 조선시대의 각종 사서와 지리지 등에서 압록강설을 주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것들로는 지리지로는『동국여지지』 등을 들 수 있고 사서로는 오운(1540~1617)의『동사찬요』



『東史纂要』卷1上,「箕子朝鮮」.

“按遷史, 漢興, 修遼東古塞, 至浿水爲界, 衛滿亡命, 渡浿水云, 則以鴨綠江爲浿水矣. 又唐書, 平壤城南涯浿水, 則今之大同江也, 又高麗史, 以平山府猪灘爲浿江, 則國內自有三浿水, 而古今的知者, 則獨大同江也”


등을 들 수 있다.




이외 조선시대의 연구자로는 이익(1681~1763)과 정약용(1762~1836) 등이 있는데, 이들 중 정약용은 연구의 방법론을 제고시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근대시기 이후 관련 역사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이익은 산해관과의 거리 산출과 만번한의 위치 비정을 통해서 압록강설을 도출하였고



ꡔ星湖先生僿說ꡕ 卷1, 「天地門」, 「檀箕疆域」(ꡔ星湖全書ꡕ 第5冊 所收).

“舜十有二州, 封十有二山……, 檀君與堯竝立, 至十二州時, 已百年矣, 雖未知疆土遠近, 而箕子繼立, 其後孫朝鮮侯時, 與燕爭强, 燕功其西, 取地二千餘里, 至滿蕃汗爲界, 朝鮮遂弱, 自燕印, 本無許多地, 滿蕃汗卽今鴨綠水, 卽滿者是滿洲, 蕃是瀋之誤也, 鴨綠之外距山海關, 不過千有餘里, 其爲燕所侵, 奪者遼瀋之外, 更無其地, 然則檀君亦必在虞廷風化之內, 而東方之變, 壽爲夏久矣……, 箕子雖都平壤, 而與燕接界”




정약용은 연진장성이 소기하는 수성현의 위치를 ꡔ통전ꡕ 등의 기록을 인용하여 의주 창성지역 또는 압록강 이서의 수책 동쪽지역으로 비정하고, 이어 패수를 압록강으로 고정하였다.




『與猶堂全書』6集, 「疆域考」卷1, <朝鮮考>.

“鏞按, 浿水有四, 此云浿水者, 今之鴨綠河也”

『與猶堂全書』6集, 「疆域考」卷1, <四郡總考>.

“太康地理志云, 樂浪遂城縣有碣石山, 長城所起, 通典云, 碣石山在漢樂浪郡遂城縣, 長城起於此山, 今驗長城, 東截遼水而入高麗, 遺址猶存, 鏞按, 若如通典之說, 則遂城當在今義州昌城之地, 鴨水之界, 不然或在鴨水之西, 今樹柵東頭之地”



그가 자신의 견해를 세우는 데에 있어「조선열전」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을 기초로 하였음은 물론이다.



『與猶堂全書』6集,「疆域考」卷3, <浿水辯>.

“鏞案, 燕與朝鮮畫浿爲界, 若以大同江當此浿水, 豈復有朝鮮乎, 王險者, 平壤也, 衛滿旣渡大同, 自不得復都平壤, 浿水之爲鴨綠, 不旣明乎, 又按, 今人或執此文, 又以巨流河爲浿水, 尤大謬也, 漢興復修遼東故塞, 則旣度遼矣, 旣度遼寧復得以遼水爲界乎, 遼河鴨水之間, 更無大水, 浿水者, 鴨綠也, 又按, 張守節所云, 樂浪縣者平壤也, 大同江在平壤之東張, 旣以浿水在樂浪縣西, 則亦以鴨綠爲浿水者也”



이들의 연구는 이후 일제시기 일인학자들인 통구융차랑, 백조고길, 진전좌우길, 삼상차남, 지내굉, 임태보

등에게 수용되었다.




1945년 이후의 것으로는 정찬영과 노태돈의 연구를 대표로 들 수 있다. 정찬영은 고조선의 유물인 변형각형토기가 압록강을 넘지 못하고 중국계의 유물인 삼족토기가 압록강 이남에서는 보이지 않는 점을 들어 패수를 압록강으로 비정하였고 요하와 압록강 사이는 ‘진고공지’로 비정하였다.


노태돈은 ꡔ한서ꡕ 「지리지」의 문헌기록과 압록강지류인 애하하구에서 발견된 ‘안평악미앙’명문와편 및 요령지역에서 발견된 장성유적 등을 통해 당시의 요동군이 현재의 요동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면서, 관련기록과 그간의 고고학적인 성과를 토대로 한대 패수는 압록강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아울러 한代 이전 연과의 경계선은 청천강으로 비정하였다.


노태돈의 연구는 문헌의 고증과 고고자료의 활용이 합리적이고 체계적이며 치밀하다는 점에서 기왕에 제출된 견해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디시인사이드 역사겔러리 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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