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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의 아쉬운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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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252회 작성일 18-03-1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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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든 한자(漢字)로 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서기 414년 장수왕 때 만든 ‘광개토대왕릉비’이다. 거의 1600년 전 일이다. 나는 내용과 함께 글씨체에 주목했다. 단정한 예서(隸書)체 인데 매우 개성 있고 독창적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조선열전(朝鮮列傳)’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조선이다. 조선시대와 구별하기 위해 고조선으로 부르지만 사실은‘조선’이다. 고조선이 멸망할 당시 사마천이 37세였으니 당대의 역사를 기술한 것이다. 사기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도 있으나 사마천은 자기보다 100년 전 사람인 한고조 유방의 고향에 찾아가 유방이 건달 시절 다니던 단골술집 여주인 이름까지 추적해 기록한 걸 보면 사실에 입각한 역사서이다.

조선열전에 보면 고조선은 중국과 대등한 국력을 가진 강대국이자 문명국이었다. 한자를 문자로 사용하였을 것인데 자신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나라가 망한 뒤 500년 쯤 지나 만든 광개토대왕비는 당시 우리 역사를 알 수 있다.

삼국사기는 이미 고구려 건국 초기에 유기(留記)라는 100권의 역사책이 있었고 600년 태학박사 이문진에게 이를 축약하여 신집(新集) 5권을 만들게 했으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서기 720년에 편찬된 일본 최고의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세 권의 백제 역사서를 인용하고 있다. 백제신찬, 백제본기, 백제기가 그것이다. 백제는 4세기 후반 박사 고흥이 서기(書記)라는 역사서를 썼고 신라도 545년 거칠부가 국사(國史)를 편찬했다.

이런 책들이 지금 남아 있다면 중국의 동북공정이 얼마나 터무니없으며 한사군(漢四郡)위치나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 논쟁은 다 부질없는 것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기록과 유물유구(遺物遺構)에 의해 검증된다. 중국의 영원한 총리 주은래는 1963년 중국을 방문한 북한 조선과학원 대표단을 접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 한다. 조선이 고대부터 중국의 속국이었다거나 두만강, 압록강 서쪽은 중국 땅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 모두 역사학자의 붓끝에서 나온 오류이며 우리는 이를 바로잡아야한다”면서

“역사연구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출토된 문물에서 증거를 찾는 것이다. 역사서는 그대로 믿을 수 없는 2차 자료이다”라고 말했다. 대단한 인물이다. 지금 중국은 왜 저런 지도자가 없을까?

주은래의 언급은 백번 타당하나 유구와 유물이 마음대로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역사가가 기술한 책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반고(班固)의 한서(漢書)를 비롯해서 각 시대별 정사(正史)가 있다. 자신이 항상 중심이 되니 주변 국가를 오랑캐라고 폄하하면서 낮추어 기술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중국 정사에 나오는 우리 역사는 그만큼 신뢰가 있을 수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이전에 만든 우리 역사책이 없으므로 중국 정사에 나오는 우리 기록만 제대로 연구해도 큰 성과가 있을 것이다. 나는 전문 역사가는 아니나 중국 정사에 명확히 나오는 내용조차 애써 외면하는 학자는 이해할 수 없다.

또 소설로도 만들 수 없는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우리 역사를 침소봉대하는 것도 싫다. 평균인이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우리 역사를 보자는 것이다. 역사가 역사가들의 전문 영역이기는 하나 그들만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맹자도 중국에서 성인으로 받들고 있는 은나라 순(舜)임금이 동이인(東夷人:우리 조상)이라고 말한 기록이 있고 사기(史記)에는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만리장성의 기점이다 ’라고 쓰여 있다.

그러면 한사군 중의 하나인 낙랑군이 중국 하북성 갈석산에 있다는 얘긴데 한반도 안에 한사군이 있었다고 배운 것은 어떻게 되나? 중국 정사(正史)인 송서(宋書)나 남제서(南齊書) 등에는 백제가 중국 산동성, 하북성 등에 영토를 가졌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비단 이것 뿐 아니라 우리가 배우지 않았던 우리 역사가 중국 정사에 나온 것만이라도 관심을 갖고 봐야 한다. 중국이 좋게 기록할 이유가 없기에 오히려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우리가 과거 넓은 땅을 가졌고 중국과 대등한 위치였다는 전제하에 없는 사실을 가지고 주장하는 것도 안 되지만 엄연히 있는 사실을 부인하면 더욱 안 될 일이다. 역사는 다 자기 유리한대로 해석하기 마련이지만 중국, 일본의 작태를 보면서 한심한 우리 처지가 안타까운 것이다.

최근 정치, 문학, 연극계는 말할 것도 없이 사회 각 분야에서 미투(#MeToo)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고 있다. 우월적 지위나 ‘그들만의 리그’처럼 비판과 감시가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도 한 몫 했다. 역사학계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라는 이유로 나 같은 평균인도 납득 못하는 이런 현실에 더 이상 눈 감지 말고 적극적으로 논쟁도 하고 이해가 가도록 자상하게 설명도 해주는 친절함이 필요하다. 더 이상 강단에서 논문만 쓰면서 고고하게 있을 일이 아니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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