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주(水經注)로 살표본 패수의 위치 비정 > 고조선

수경주(水經注)로 살표본 패수의 위치 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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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4,961회 작성일 07-10-2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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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주(水經注)는 5세기말부터 6세기 초에 활약한 북위(北魏)의 학자 역도원이, 3세기경에 쓰여진 수경(水經)이라는 문헌에 자세한 주석을 붙여서 쓴 책이다. 강물의 흐름과 그 주변의 지리에 대해서는 고대 중국의 지리서 중 가장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원본 수경은 매우 짧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도원은 이에 자신의 오랜 연구 경험을 통해 해석을 붙이고, 고사와 경관등을 함께 서술하여 이 수경주를 완성하였다.




어디까지나 중국의 하천에 대해 서술한 이 책이 한국사에서 중요해진 까닭은, 여기에 한국사의 고대국가, 특히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역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요수(遼水)와 패수(浿水)에 대한 설명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요수는 고구려의 서쪽 경계였으며, 패수는 또한 고조선의 서쪽 경계였다. 그런 한편, 고구려의 국도(國都) 평양 아래를 흐르는 강의 이름도 패수였다.




고금을 통해 어떤 사람은 패수를 대동강이라고 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압록강이라고 했고, 근래에는 대릉하(오늘날의 중국 요령성 중부를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는 강, 요하 서쪽에 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며, 난하(북경 동쪽, 산해관 근처에서 만리장성을 가로질러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하천)라는 설도 제기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는 근본에는, 될 수 있으면 우리 고대사의 영역을 넓게 잡고자 하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으나, 수경주가 성립되기 전에 전해져 내려오던 수경의 원문이 애매하다는 데 1차적인 원인이 있다. 이 글에서는, 수경주의 패수항목의 원문을 먼저 제시한 후, 이에 대해 제시된 여러가지 해석들을 병렬적으로 기술할 것이다.




浿水出樂浪郡鏤方縣, 東南過臨浿縣, 東入於海. (수경 원문)




-武帝元封二年, 遣樓船將軍楊僕左將軍筍체(한자없음)討右渠, 破渠於浿水遂滅之. 若浿水東流, 無渡浿水之理. 其地今高句麗國治, 余訪蕃使, 言, 城在浿水之陽, 其水西流逕故樂浪朝鮮縣, 卽樂浪郡治, 漢武帝置. 而西北流. 故地理志曰, 浿水至增地縣入海. 考之古今, 於事差謬, 蓋經誤證也. (역도원이 붙인 주석)




우선 원문에 대한 기본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다.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임패현을 지나서 동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 (수경 원문)




여기에는 패수가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고 지적되어 있다. 그런데 한반도 북부의 주요 하천들은 모두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한반도는 동쪽이 높은 지형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요하를 넘을 때 까지도 마찬가지이다. 발해만을 돌아 요서로 가기 전에는, 주요 하천들은 대개 서쪽으로 흐른다.




당연히 이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게 된다. 패수는 정말 동쪽으로 흐르는 어떤 강인 것일까? 이에 대해 역도원이 내놓은 해답은 이것이었다.




1. 수경이 틀렸다는 주장




역도원이 주석에서 무엇이라고 했는지 살펴보자.




"한무제 원봉 2년에, 누선장군 양복과 좌장군 순체를 파견하여 우거(당시 고조선의 왕)를 토벌하게 했다. 패수에서 우거를 격파하여 마침내 이를 멸망시켰는데, 만약 패수가 동쪽으로 흐른다면 패수를 건널수는 없는 것이다. 이 땅은 지금 고구려의 수도인데, 나는 고구려 사신을 만나 물어보았다. 사신이 말하기를, 성이 패수변에 있고 그 강은 서쪽으로 흘러 옛날 낙랑군 조선현, 즉 한무제가 설치한 낙랑군 치소를 지나간 다음 서북쪽으로 흐른다고 하였다. 옛 지리지에는 패수가 서쪽으로 증지현에 닿아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옛날과 지금의 이러한 증거들을 살펴볼 때 차이가 있으니, 수경은 잘못 고증한 것이다."




역도원의 6세조는 낙랑군에서 관리를 지냈던 사람이다. 당시는 아직 낙랑군 치소가 요서로 이치(移置)되기 전이었으며, 수경(水經)의 성립 당시 낙랑군도 이치 이전의 낙랑군이다. 따라서 이것이 한(漢)나라의 낙랑군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낙랑토성 유적은 평양시 대동강 남안의 토성동에 있는데, 대동강은 이를 지나 서쪽으로 흐르다가 하구에 이르러 서북방향으로 꺾어진다. 유적 조사 결과와 강의 흐름에 대한 묘사가 일치하므로, 역도원이 대동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역시 틀림없다. 역도원은 낙랑 지역의 지리에 대해 자신 이상의 전문가는 없다고 믿었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고구려 사신에게 직접 들은 말을 논거로 삼고 있다. 이 이상 정확한 정보가 또 있을까?




그런데 역도원의 논증 가운데서 사기(史記)조선전과 한서(漢書) 조선전의 패수를 일괄적으로 고조선의 왕성 근처의 강으로 본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이 당시의 패수는 고조선과 한나라의 경계였고, 왕험성(또는 왕검성)옆을 지나는 강은 열수(洌水)라는 이름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구려 사신과 만나는 수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역도원이 증명해 낸 것은 단지 고구려 수도 평양 주위를 흐르는 강이 대동강이며 이곳이 낙랑군 조선현이었다는 사실 뿐이다. 수경(水經)의 패수가 정확히 대동강이었는지는 여전히 분명치 못한 것이다.




2. 역도원이 오버했다는 주장




한편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은 그의 저서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와 대동수경(大東水經)에서, 수경 원문은 원래 아무 문제가 없으며 역도원이 공연히 의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수경 원문은 원래 다음과 같이 끊어 읽어야 한다고 했다.




浿水出樂浪郡鏤方縣, 東南過臨浿縣東, 入於海.




해석: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임패현의 동쪽을 지난 다음 바다로 들어간다.




딱 한글자를 붙여 읽었을 뿐인데, 뜻이 아주 달라져 버린다. 이렇게 되면 강의 흐름에 대한 묘사에서 모순이 없어진다. 대동강은 실제로 순천 인근에서부터 동남쪽으로 흘러 내려오다가 평양의 동쪽 20km 정도에서 꺾어져 바다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이런 관찰을 근거로, 수경의 묘사에는 잘못된 점이 없으며 이 패수는 대동강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그는 수경이 쓰여진 3세기의 패수는, 고조선 당시의 패수와는 다르다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그는 고조선의 패수는 압록강이라고 고증했다. 한 군현이 설치된 후에는 토착민들의 발음을 따라 마자수(馬訾水) 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았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는 실제로 압록강이 마자수( 馬訾水)라고 되어 있다. 이를 통해 사기, 한서, 수경의 기록이 아무런 모순이 없이 서로 이어진다.




정말 그럴까? 그런지도 모른다. 실제로 수경에는 저런식의 "어디로 흘러 어디의 어느 쪽을 지나..." 라는 구조를 지닌 문장이 대단히 많다. 물론 전부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패수조의 기록을 이렇게 해석해선 안될 것도 없다.




이 해석은 굉장히 매력적이어서(즉, 수경 원문을 굳이 부정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으므로), 한진서(한치윤의 조카)가 해동역사 속편 산수편에서 이 설을 채용하였고, 이마니시 류(今西 龍)도 자신의 논문에서 이 설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정약용의 이 해석은, 강의 흐름 가운데 왜 하필 순천에서 동남류 하는 것이 묘사되고 있느냐 하는 점을 설득력있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대동강은 하구를 제외하고 3번에 걸쳐 크게 곡류한다. 정약용은 "동남류" 하는 부분은 제대로 짚어냈지만, 왜 굳이 그 부분이 기록에 남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꺾어져서 바다로 들어가기 바로 전의 흐름 방향이 "동남류" 이기 때문일까? 혹은 수경이 편찬될 당시에는 사람들이 대동강의 근원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단지 가능성일 뿐, 사실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내용추가




새로 읽어보니 중요한 내용이 하나 빠졌습니다. 이미 읽어보신 분들께 정말 죄송하네요. 정약용의 설의 또 다른 문제점은, 수경의 원래 문장은 "바다로 들어간다" 는 "入於海" 가 나올때는 반드시 "어느 방향으로 들어가는지" 가 설명되어 있는데, 東入於海의 東을 앞에 붙여 읽으면 이 문장에서는 入於海가 동떨어져 버립니다.




물론 이렇게 읽어서 해석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경의 다른 문장과는 구조가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을 쓰는 것을 빠뜨려서, 여러 의견 중에 정약용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 처럼 되어 버렸네요.




3. 대릉하라는 주장




한편, 북한 학계는 수경에 묘사된 패수를 대릉하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 주장은 정인보에게까지 올라간다.




대릉하의 본류는 산해관의 동쪽인 요령 서부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흐르다가 조양(朝陽)에 이르러 다시 동남쪽으로 꺾어져서 바다로 들어간다.




대부분의 흐름이 동북쪽이라는 점이 켕기기는 하지만, 어쨌건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가기는 하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패수가 설명된 수경주 제 14권에 기록된 하천들은, 북경 서쪽의 상곡(上谷)으로부터 차츰 동쪽으로 나아가는 순서로 기재되어 있다. 패수의 앞에는 소요수가 있고, 그 앞에는 대요수가, 또 그 앞에는 유수가 있다. 이 강들은 각각 혼하, 요하, 난하로 비정된다.




패수가 대릉하라면, 왜 소요수까지 갔다가 다시 뒤로 돌아서 대릉하를 설명하고 있는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수경에서는 패수의 발원지를 낙랑군 누방현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대릉하의 발원지는 요서 지역이다. 낙랑군이 요서로 이치된 것은 4세기의 일인데, 사실 그 지역도 대릉하 발원지와는 떨어져 있지만, 어쨌거나 3세기에 쓰여진 수경에 이것이 나올 수는 없다.




4. 난하라는 주장




남한 학계에서 주로 윤내현 단국대학교 교수가 주장하는 학설이다. 이는 주로 진태강지리지(晉太康地理志)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는데, 잡다한 논의는 여기에서 생략한다. 다만 이 주장은 처음부터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 북경 동쪽의 난하는 수경주에 이미 유수(濡水)라는 이름으로 설명이 되어 있다.




이 유수는 춘추시대의 패자인 제(齊) 환공이 고죽을 정벌할 때의 사실과 관련이 있는 강으로, 춘추 당시로서는 중국의 범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지리 표지였으므로 수경에서도 매우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강을 뒤에 또 패수(浿水)라며 따로 설명할 이유가 없다. 패수 난하설은 현재까지 나온 모든 가설 가운데 가장 신빙성이 떨어진다.




지금까지 패수(浿水)에 대한 고금의 논의를 대강 살펴 보았다. 패수 대릉하설과 패수 난하설은 성립하기 어렵지만, 패수를 어느 한 곳으로 확정하기에는 아직까지 근거가 부족하다. 송호정 교원대학교 교수는 고조선의 패수를 청천강으로 보고 논의를 전개하는데, 이는 주로 고조선 시대의 유물 해석에 근거하고 있다.




이 글은 여러가지 학설과, 그와 관련한 논의를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한 것이므로, 어느 한 학설을 선택하기보다는 현명한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고자 한다.




출처 : [직접 서술] 직접 서술+참고문헌: [노태돈, "단군과 고조선사", 사계절, 2000], [송호정, "한국고대사속의 고조선사", 푸른역사, 2005], [윤내현, "고조선 연구", 일지사, 1995], [정약용, "아방강역고"], [정약용, "대동수경"], [역도원, "수경주"]







Barbarossa [펌]수경주(水經注) 패수(浿水)조의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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