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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지의 서역정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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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2,964회 작성일 04-07-1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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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개념이 없었다. 출세가 우선이다 라는 지난번 이정기 논란이 있었지만 패전국의 후손들은 서러움이 있었다는 점은 사실이다. 출세에도 제약이 걸리고 정치쪽에 관여를 할수있는 자들 특히 문관쪽 임관은 거의 불가능 했어. 이정기와 마찬가지로 고선지도 그렇다보니 당나라 군대로 입대한다.


당시 당나라는 고구려 정벌과 함께 서역으로의 영향력을 확대시키고 있었다. 실크로드의 교역권을 점하여 금전적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는 이것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고 국고가 풍족해지면 귀족들도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선지의 아버지 고사계는 고구려가 멸망한 뒤 중앙아시아 깊숙히 강제이주를 하게 된다. 영주지방에 남아있는 고구려 유민들이 다수였지만 일부는 남방지역의 토지개척사업 동원, 북방의 목축사업 동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방의 실크로드 주변지대 등으로 이주하여 흩어졌다.


지역을 점령한 뒤 자국민을 이주시키거나 노예들을 이주시켜서 건물건축과 시설개간등을 하는것은 고대에서부터 이용되던 방법이다. 즉 당나라 조정은 위험한 지역에 유민들을 이주시켜 지역지배를 강화하려는 한편 여러가지 토목공사에도 동원하기 유리했기에 이런 행동을 했다. 고선지의 아버지 고사계는 실크로드의 최중심지역 쿠차의 안서도호부로 왔다.



고선지의 어린시절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그가 군의 입대한 이후의 기록은 있다. 당고서에 따르면 고선지는 어렸을때는 병약했으나 무장 출신의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청년이 된 후 건강하게 잘생긴 미청년으로 성장했다고 했다.



무인출신인 고사계는 당나라 군대에 입대했었고 어느정도 공로를 세웠었다. 그로인해 당시 벼슬을 되물림 해주는 당나라 체제의 관습대로 고선지는 고사계가 퇴역 후 안서도호부 유격장군직을 제수받는다. 정5품은 낮은 직책은 아니였다. 그 이유는 정3품의 벼슬이 서역전체를 다스리는 위치였기에 어느정도 실권이 있던 자리였다.



고구려 유민은 중앙아시에서도 5개로 나뉘어져 강제 이주되었다. 당은 원래 영주지방에 하나로 묶으면서 국가공사에만 동원시키려 했지만 검모잠등의 고구려 부흥운동군과 백제부흥군을 보면서 고구려-백제 인들은 찢어놔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구당서에 따르면 당조정이 고구려 부흥군이 상당히 골칫거리 였다는 기록이 있다.



6개주에는 고구려족 외에도 이전에 서역을 다스렸다가 당에게 멸망했던 강족(삼국지에도 나와서 촉나라에 붙었다 말았다 하는 그 강족이다)의 유민들을 집단속에 섞어 불온한 움직임을 막으려 했다.



그리고 당나라는 서역 국경지역에 강족-고구려인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웠다. 전쟁에 나서 공을세우거나 살아돌아오면 포상과 벼슬을 준다고 회유했기에 많은 고구려 청년들은 생존을 위해 군대로 자원입대했다. 강제노역등에 시달려서 배곪아 죽는것보단 더 나은 어쩌면 유일한 방법이였기 때문이다.



고선지가 군을 이끌고 쿠차로 오기전에 고구려 출신 장수 고현이라는 자가 고구려 유민 출신 철기병(개마무사의 후손들로 유추된다)을 이끌고 돌궐과 토번의 침입군을 크게 격퇴한 적이 몇차례 있어서 당조정에서의 서역방위=고구려가 짜응 이라는 인식이 붙었고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따른것이 큰 힘이 되었다.



그 고현이 퇴역하고 고선지가 쿠차로 온지 얼마 되지않아 서역유목부족 국가인 달해부가 당나라의 조공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741년 2월, 고선지는 2천의 고구려출신 철기병대를 이끌고 달해부로 출격했다. 고선지의 원정군은 보병이 철저히 제외된 순수 기병대로만 구성되었다.


천산산맥 능령에서 쇄엽성을 공격하려던 달해부 군사와 고선지 부대는 능령에서 달해부군사 수천과 조우했다.


산맥을 넘어왔던 달해부 군사들은 매우 지쳐있었고 아직 고선지의 부대의 존재도 파악하지 못했다.


고선지는 지쳐있는 적들에게 총 공격을 퍼부었고 달해부는 지쳐있는 상태에서 당한 기습으로 참패를 당한다. 그 길로 달해부 본거지로 들어간 고선지는 완벽하게 굴복시킨다. 고선지의 원정 첫경험이자 장군으로써의 첫승이다.


고선지의 등장에 당나라 조정은 고무되었다. 당시 토번은 매우 강성하여 당나라 조정은 오랑캐라고 하대하던 그들에게 왕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들을 선별하여 결혼동맹을 제의하는 등 그들을 달래기 바빴다. 북쪽의 돌궐도 언제나 위협적이였지만 돈줄의 위협을 가하는 토번이 더욱 당에게는 무서웠다.



그런 와중에 고선지가 토번으로 붙은 달해부를 별 피해없이 크게 격파한 사건은 당나라 조정을 기쁘게 만들었다. 달해부의 반란이 성공했다면 서역지방을 완전히 상실할수도 있는 큰 위기를 맞을뻔한 당은 고선지를 크게 칭찬했다. 고선지가 달해부를 점령할때, 토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당나라 속국은 소발률을 기습적으로 공격해 멸망시켰다. 



토번이 소발률을 함락시키고 무력적 압박을 가하자 20여개국의 서역 소국들이 모두 토번에게 귀순했다. 이에 당현종은 고선지에게 소발률의 그 소국등을 점령하고 오라는 명을 내렸다.



고선지는 안서도호부의 임시 절도사로 임명되어 1만병사를 이끌고 소발률도 향했다. 그는 사막지역에서 보병의 힘은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모든 보병들을 기병대로 훈련시켜서 바꿔어 놓았다. 즉 1만병사가 전부 기병대로 탈바꿈하여 출병했다.

기마술에 익숙하지 않은 보병들은 이동할때 개인소유 말을 주어 행군속도를 중시했다.



쿠차에서 떠난 고선지는 악슬덕을 지나 20여일만에 총령수착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행군을 시작한지 40여일뒤, 현 중국서쪽 끝 파밀천에 고선지의 부대는 도달했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 고원,  지옥의 원정-암벽길이지만 고선지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고원을 넘기 시작할 무렵 많은 수하들이 보병들에게도 말을 지급하는것에 의아했던 수수께끼가 모두 풀렸다.

2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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