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지용수와 이성계에 의한 요동의 요양성(遼陽城) 정벌 > 고려

고려말 지용수와 이성계에 의한 요동의 요양성(遼陽城) 정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조회 3,417회 작성일 09-03-24 06:09

본문

1370년(공민왕 19) 1월과 8월 2차례에 걸쳐 고려가 요동의 요양(遼陽)에 있었던 원의 동녕부 치소를 공격하여 점령했다.


1월에는 동북면원수(東北面元帥)인 이성계(李成桂)가 기병 5,000명, 보병 1만 명을 이끌고 동북면에서 황초령을 넘어 우라산성(羅山城) 등지를 공격하여 항복받았고, 8월에는 서북면·동북면 군사의 합동작전으로 동녕부의 본거지인 요성(遼城 : 지금의 遼陽)을 함락시키고 부근지역을 회유했다. 당시 북으로 도망간 북원(北元)은 동녕부를 만주에서의 세력중심지로 삼고 있었다. 그곳에서 원의 평장사(平章事)인 기새인티무르(奇賽因帖木兒 : 기철의 아들)가 원의 남은 무리를 모아 요성에 웅거하면서 고려를 정벌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었다. 이때는 원·명 교체기로 이 지역에 강력한 세력이 들어서기 전이므로 고려가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북쪽 변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고려와 원의 관계를 매개하던 연결고리의 하나인 동녕부를 정벌해야 했다. 2차례의 정벌로 이 지역에 살던 고려유민이 많이 국내로 옮겨왔고, 주변의 여진족들도 고려에 신복하게 되어 북방이 안정되었다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11-03-20 08:25:39 고려(으)로 부터 이동됨]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