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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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22
호민론 -허균
호민론(豪民論) 허균 天下之所可畏者(천하지소가외자)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唯民而已(유민이이) 오직 백성뿐이다. 民之可畏(민지가외) 백성이 두려운 것은 有甚於水火虎豹(유심어수화호표) 홍수나 화재, 호랑이, 표범보다도 훨씬 더 심하.....
운영자 3920 11-06
21
허균과 율도국-이덕일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사형당한 허균, 그 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 이덕일 역사평론가 교산 허균의 생애처럼 수수께끼에 쌓이고, 생전은 물론 사후까지 끝없는 논쟁의 대상이 된 경우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의 부친 허엽(許曄)은 동인 영수였으며, 이복형 허성(許筬)과.....
운영자 2336 08-26
20
한국사 최고의 이단아 허균(許筠,
한국사 최고의 이단아 허균(許筠, 1569년음력 11월 3일 ~ 1618년음력 8월 24일)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학자이자 작가, 정치가, 시인이었다. 서자를 차별 대우 하는 사회 제도에 반대하였으며, 작품 《홍길동전》이 그의 작품으로 판명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
운영자 2551 08-26
19
성소부부고 [惺所覆瓿藁]- 허균의 문집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許筠)의 문집. 8권 1책. 필사본. 작성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만력(萬曆) 계축에 쓴 이정기(李廷機)의 서문으로 미루어 보면 1613년(광해군 5) 봄이나 그 전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
운영자 2322 08-26
18
良·高位次 改換事件(양고위차개환사건)
良·高位次 改換事件(양고위차개환사건) 耽羅開國(탐라개국) 三神人(삼신인)의 位牌(위패)는 三姓祀(삼성사) 창건초부터 第一位(제1위)에 良乙那(양을나), 第二位(제2위)에 高乙那(고을나), 第三位(제3위)에 夫乙那(부을나) 次順(차순)으로 모셔져 있었다. 그러던 .....
운영자 2655 12-25
17
한림학사(翰林學士) 양만용전(梁漫容傳) II
양만용전(梁漫容傳) 박메양씨팔절(梁氏八節)중의 한 사람인 양산축(梁山軸)의 아들로 1598년(선조 31년) 3월 24일 광산구 어룡동 박메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양산축은 임진왜란때 형들이 의병(義兵)으로 모 전장에 나가자 집안일을 도맡아 1597년 정유재란.....
운영자 2173 08-16
16
발해의 역사를 찾아와 한국사에 포함시킨 유득공
시대를 앞서간 역사학자, 유득공 김 병 기(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전문위원) 개혁군주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하고 자신의 개혁 정치를 뒷받침할 인재를 발굴해 요직에 등용시켰다. 각신(閣臣)으로 발탁된 이들은 정약용, 서유구, 남공철, 홍석주, 김매순 등 당시의 기라성같.....
운영자 2214 08-16
15
드라마 동이로 보는 장희빈과 숙빈 최씨 이야기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인 최동이는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가 모델이다. 역사무대에서 숙빈 최씨는 천한 무수리의 신분으로 숙종이 총애하는 후궁의 자리까지 올라간 입지전적 인물이다. 아마도 이 드라마가 동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그녀의 삶 자체가 지닌 이러한 극적 면.....
운영자 3980 04-15
14
심하전역과 전적지 고찰
심하전역(深河戰役)과 전적지 고찰 사르후전역[薩爾滸戰役] 이 발생한 해는 서기 1619년으로 명나라 萬曆47년, 조선 광해군 10년이다. 명나라의 요동경략(遼東經略)으로 임명된 양호(楊鎬)는 조정의 결정의 따라 휘하의 군사를 4대로 나누어 후금의 본거지로 진공시켰.....
운영자 3026 06-19
13
살리하전역의 동선전투 심하전역 경과도
薩爾滸戰役[사르후전역]     사르후전역 1년 전인 1618년 4월 13일에 누루하치는 보병과 기병 2만을 이끌고 만주지역에 소재한 명군의 주둔지 정벌에 나서면서 소위 만주족의 한족에 대한 7가지 큰 원한을 적은 문서를 격문으로 삼았다. 누루하치는 2만의 군사를 좌.....
운영자 3127 06-15
12
명청의 심하전역(深河戰役)에 파병되어 산화한 조선군 병사들을 끝내 외면한 조국 조선
심하전역(深河戰役)에 파병되어 산화한 조선군 병사들…조국은 끝내 외면 “백수의 늙은 서생은 모래밭에 뒹구는 백골이 되는 신세를 면치 못할 운명인가 합니다.” 1619년 3월1일. 요동파병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이민환이 군량미 보급을 맡은 윤겸진에게 쓴 편지다......
운영자 2689 05-19
11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의 편지
고종 16년(1879년) 중국 북양 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이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유원(李裕元)에게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과 통상하여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할 것을 권하는 편지다. 2월경에 객(客)이 도착하여 작년 섣달 보름에 보낸 혜서(惠書)를.....
운영자 3355 04-07
10
병자호란 다시읽기(7)-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
[1]인조반정의 발생과 성공은 대외적으로도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다. 조선에서 정변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는 소식에 명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시 후금의 군사적 압박에 밀려 수세에 처해 있던 명에 조선은 가장 중요한 번방(藩邦)이었기 때문이다.....
운영자 2660 03-05
9
병자호란 다시읽기(6)-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1]광해군은 노회한 명과 사나운 후금 사이의 대결 속으로 말려들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그가 정보를 수집하고, 기미책을 강구하며, 자강 능력을 배양하려 애썼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정세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비록 외교적 노력을 통해 누르하치와의 .....
운영자 3078 03-03
8
병자호란 다시읽기(5) - 광해군과 누루하치 그리고 명나라
[1]누르하치를 치는 데 동참하라는 격문을 받았을 때 광해군(光海君)이 보인 반응은 신중했다. 아니 냉정했다. 그는 누르하치가 ‘천하의 강적’이기 때문에 미약한 조선군의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왕가수가 격문을 보낸 것은 조선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
운영자 36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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