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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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22
드라마 동이로 보는 장희빈과 숙빈 최씨 이야기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인 최동이는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가 모델이다. 역사무대에서 숙빈 최씨는 천한 무수리의 신분으로 숙종이 총애하는 후궁의 자리까지 올라간 입지전적 인물이다. 아마도 이 드라마가 동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그녀의 삶 자체가 지닌 이러한 극적 면.....
운영자 3989 04-15
21
호민론 -허균
호민론(豪民論) 허균 天下之所可畏者(천하지소가외자)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唯民而已(유민이이) 오직 백성뿐이다. 民之可畏(민지가외) 백성이 두려운 것은 有甚於水火虎豹(유심어수화호표) 홍수나 화재, 호랑이, 표범보다도 훨씬 더 심하.....
운영자 3938 11-06
20
고산자 김정호 옥사설의 진실
▲ 교육사이트 '에듀넷' 에 나와있는 김정호에 관한 설명 (http://down.edunet4u.net/KEDLAA/05/A4/2/A42050017P.jpg)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조정 대신들이 국가의 기밀을 누설했다는 죄명으로 옥에 가둠. 옥사함.....
운영자 3724 07-02
19
병자호란 다시읽기(4) - 누루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1] 앞에서 언급한 대로 명의 지배 아래 있던 여진족은 크게 건주, 해서, 야인의 세 종족으로 구분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강했던 종족은 해서여진이었다. 해서여진은 다시 예허부(葉赫部), 하다부(哈達部), 호이파부(輝發部), 울라부(烏拉部) 등 네개의 부족으로 나뉘어.....
운영자 3691 03-03
18
병자호란 다시읽기(5) - 광해군과 누루하치 그리고 명나라
[1]누르하치를 치는 데 동참하라는 격문을 받았을 때 광해군(光海君)이 보인 반응은 신중했다. 아니 냉정했다. 그는 누르하치가 ‘천하의 강적’이기 때문에 미약한 조선군의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왕가수가 격문을 보낸 것은 조선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
운영자 3623 03-03
17
[병자호란 다시 읽기] (3) 임진왜란, 누르하치, 그리고 조선
1. 조선이 中華에 빠진 틈타 누르하치 여진 통합 1592년의 임진왜란은 병자호란보다 44년이나 먼저 일어났지만, 두 사건은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1583년 군사를 일으켜 주변의 여진족 정복에 나섰던 누르하치에게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것은 하늘이 내려준 .....
운영자 3464 02-23
16
굴욕으로 점철된 인조연대기
굴욕으로 점철된 인조연대기 친명배금의 잘못된 외교정책으로 임란이후에 피폐해진 조선 땅에 또 다시 두 번의 전쟁을 겪게 만들어 백성들의 삶을 지옥보다 못한 곳으로 추락시킨 인조의 굴욕적인 일대기. 1623 -인조반정(仁祖反正). 광해군 폐위, 능양군(綾陽君, 인.....
운영자 3415 07-14
15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의 편지
고종 16년(1879년) 중국 북양 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이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유원(李裕元)에게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과 통상하여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할 것을 권하는 편지다. 2월경에 객(客)이 도착하여 작년 섣달 보름에 보낸 혜서(惠書)를.....
운영자 3357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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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다시 읽기] (2) 여진족과 만주
조선 사회에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남긴 병자호란의 발발은 16세기 후반∼17세기 중반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이른바 명청교체(明淸交替)의 여파가 조선으로 밀어닥친 결과였다. 명청교체의 주역은 여진족(女眞族)이었다. 그들은 병자호란 7년 뒤인 1644년 베이징을 접수하고.....
운영자 3286 02-23
13
살리하전역의 동선전투 심하전역 경과도
薩爾滸戰役[사르후전역]     사르후전역 1년 전인 1618년 4월 13일에 누루하치는 보병과 기병 2만을 이끌고 만주지역에 소재한 명군의 주둔지 정벌에 나서면서 소위 만주족의 한족에 대한 7가지 큰 원한을 적은 문서를 격문으로 삼았다. 누루하치는 2만의 군사를 좌.....
운영자 3133 06-15
12
병자호란 다시읽기(6)-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1]광해군은 노회한 명과 사나운 후금 사이의 대결 속으로 말려들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그가 정보를 수집하고, 기미책을 강구하며, 자강 능력을 배양하려 애썼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정세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비록 외교적 노력을 통해 누르하치와의 .....
운영자 3084 03-03
11
심하전역과 전적지 고찰
심하전역(深河戰役)과 전적지 고찰 사르후전역[薩爾滸戰役] 이 발생한 해는 서기 1619년으로 명나라 萬曆47년, 조선 광해군 10년이다. 명나라의 요동경략(遼東經略)으로 임명된 양호(楊鎬)는 조정의 결정의 따라 휘하의 군사를 4대로 나누어 후금의 본거지로 진공시켰.....
운영자 3031 06-19
10
명청의 심하전역(深河戰役)에 파병되어 산화한 조선군 병사들을 끝내 외면한 조국 조선
심하전역(深河戰役)에 파병되어 산화한 조선군 병사들…조국은 끝내 외면 “백수의 늙은 서생은 모래밭에 뒹구는 백골이 되는 신세를 면치 못할 운명인가 합니다.” 1619년 3월1일. 요동파병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이민환이 군량미 보급을 맡은 윤겸진에게 쓴 편지다......
운영자 2696 05-19
9
병자호란 다시읽기(7)-인조반정의 외교적 파장
[1]인조반정의 발생과 성공은 대외적으로도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다. 조선에서 정변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는 소식에 명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시 후금의 군사적 압박에 밀려 수세에 처해 있던 명에 조선은 가장 중요한 번방(藩邦)이었기 때문이다.....
운영자 2668 03-05
8
良·高位次 改換事件(양고위차개환사건)
良·高位次 改換事件(양고위차개환사건) 耽羅開國(탐라개국) 三神人(삼신인)의 位牌(위패)는 三姓祀(삼성사) 창건초부터 第一位(제1위)에 良乙那(양을나), 第二位(제2위)에 高乙那(고을나), 第三位(제3위)에 夫乙那(부을나) 次順(차순)으로 모셔져 있었다. 그러던 .....
운영자 266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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