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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기억, 상실 위기"로 치닫는 일본 극우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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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1,655회 작성일 14-06-2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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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기억, 상실 위기”…다치바나 다카시

(14/03/12 14:45 교도통신)

일본은 지금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전후(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이 되는 2015년이 내년으로 다가온 가운데 사회를 형성해 왔던 시스템 및 가치관은 어떻게 변모하려 하고 있는가. 제1회는 평론가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 씨가 전후 일본이 걸어온 길을 거시적 시점에서 다시 자리매김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 대한 평가 및 향후 전망에 대해 밝혔다.

✓일본은 내년에 전후 70년을 맞는다. 큰 역사의 흐름에 어떻게 자리매김될 것으로 보는가.

“70년이라는 시간은 세대가 바뀌고 일국의 역사적 기억을 완전히 일신해 버릴 수 있는 시간이다.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여겨져 왔던 그 전쟁의 기억을 잃어버릴 상황에까지 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전쟁이 국민에게 강요한 막대한 희생의 기억이 아니라, 그 전쟁을 시작하기로 결단한 일본의 위정자들이 하나같이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결단을 했다는 기억을 말이다”

▽또 하나의 선택

✓다른 결단은 가능했을 것인가.

“일국의 지도부의 어리석음은 일국을 멸망에까지 이르게 한다. 일본은 1945년에 ‘대일본제국’으로서 사실상 멸망했던 것이다. 국가가 미증유의 인적, 물적 손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7년간 점령 당하며 국가주권 자체를 잃었다. 지금, 냉정하게 생각하면,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전쟁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전쟁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의 강경 자세로 궁지에 내몰린 마지막 단계에서 기도 고이치(木戸幸一) 내대신은 일기에 또 하나의 선택지를 적었다. 삼국간섭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와신상담’을 선택하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지금이라면 누가 생각해도 그것이 정답일 것이다.

일본의 국가적 위기의 처음은 페리의 흑선 내항에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다. 그로부터 70년 후인 1938년에 일어난 일은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해 전쟁 일변도의 체제를 구축하고 국민 전체를 극단적인 내셔널리즘에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다만, 지금의 일본이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려고 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민족차별적인 헤이트 스피치(증오표현)를 하는 사람들의 한편에는 그것을 멈추게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근본에 헌법 9조

✓전후에 일본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헌법 9조이다. 패전 후, 불탄 들판의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일본은 경제적으로 급성장했고 세계적 성공 국가가 됐다. 이것은 9조에 의해 전쟁을 완전히 방기했기 때문이다. 전후 일본의 번영의 근본에는 헌법이 있었던 것이다”

✓아베 신조 수상을 어떻게 보는가. 개헌을 내걸고 있고, 특정비밀보호법을 성립시켰다.

“제1차 아베 내각의 실패로부터 학습해서인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개헌으로 곧바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국내 정치의 균형 상으로도 국제 정치의 균형 상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권력이 역사의 심판을 받지 않고 넘어가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일본인은 전전, 전후와 점령기의 역사를 충분히 분석하지 못한 채 역사의 교훈을 국민 전체의 공유재산으로 삼지 못하고 있다. 당시 서류가 대량으로 처분돼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밀보호법에 의해 사실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정치를 검증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전후에 장기 일당 지배를 계속한 자민당은 어떤 정당인가.

“다양한 정치 집단이 합쳐져서 생긴 복합 구조를 지닌 정당이다. 다만 자민당의 주류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등 관료 출신자다. 결국 메이지 이래 일본은 관료 통치 국가였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같은 정당인파는 방류다. 아베 수상은 관료파도 정당인파도 아닌 문벌파일 것이다. 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이미지를 쫓는 나머지 폭주할 위험도 있다”

✓다치바나 씨가 1974년에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를 분게슌주(文芸春秋)에 발표한 지 40년이 됐다. 자민당에 자리잡은 금권(金權) 체질을 비판해 정치개혁 경향이 생겨났다.

“다나카 가쿠에이의 연설을 몇 번이나 들었는데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솜씨가 있다. 이해를 조정하고 정책을 실현하는 힘이 있고 자금을 다루는 데도 뛰어났다. 거금이 당내 정치를 좌우했었다. 그러한 거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가쿠에이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잠시 정권이 교체됐다. 양당의 차이는 무엇인가.

“민주당은 관료의존 탈피를 내걸며 자신들이 정부를 움직일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통치기구를 움직일 기본이 거의 돼 있지 않았다. 관료를 능숙하게 이용하는 자민당과 큰 차이가 있다”

▽미•중을 균등하게

✓아베 수상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영토문제로 대립 중인 중•한 양국과의 관계가 긴박해졌다. 어떤 시각이 중요한가.

“일본의 시점만으로 세계를 보면 그르친다. 각국의 각각의 시점을 이해하고 복잡한 국제정세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일본인이 약한 역사, 지정학 등의 교양이다. 특히 중국사의 교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세계를 보는 견해가 다르다. 메이지를 만든 사람들은 중국의 정치 드라마가 응축된 ‘사기(史記)’를 당연한 듯이 읽었다.

오키나와(沖縄)의 미군기지 문제도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전후에 미군 통치하에 들어간 오키나와의 역사와 시점을 모르면 본질을 잘못 보게 된다. 나하(那覇)의 슈리성(首里城)에 있는 접대소는 중국의 책봉사와 사쓰마번(薩摩藩)의 각각의 건물로 나눠져 있다. 오키나와는 류큐(琉球)왕국 시대부터 복수의 권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왔다. 오키나와에는 오키나와 독자적인 시점이 있는 것이다”

✓일본의 장래를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일본은 지금 미국도 중국도 균등하게 응시할 유리한 위치에 있다. 또한 헤이세이(平成) 원호 덕에 세계의 변화를 자동적으로 의식할 수 있다. 세계의 질서를 크게 변화시킨 냉전 종결은 헤이세이 원년(1989년)이었기 때문에 헤이세이 26년인 올해는 냉전 종결 26년째인 것이다.

일본은 전전에 세계의 지배자가 된다는 야망을 품었지만, 전후에는 평화헌법 하에서 비길 데 없는 성공을 거뒀다. 이것은 세계 각국이 언젠가 뒤쫓아 올 길이라고 생각한다. 전후 70년을 앞두고 일본은 세계의 선도자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교도통신】

【다치바나 다카시 약력】

1940년 나가사키시(長崎市) 출생. 도쿄대학 졸업. 분게슌주의 잡기 기자 등 거쳐 프리렌서로 활동. 1974년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를 발표. ‘우주로부터의 귀환’ ‘뇌사’ ‘천황과 도쿄대’ 등 저서 다수. 최근 저서는 ‘자신의 역사를 쓰는 법(自分史の書き方)’ ‘독서 뇌’. 1983년 기쿠치칸상(菊池寛賞) 수상.

【후기】다음 세대에 기대와 희망을

5살 때 중국에서 패전을 맞은 다치바나 다케시 씨는 잔류 고아가 될 뻔한 상황에서 1956년 일본으로 귀환했다. 국가의 붕괴를 목격하고 쓰라린 고통을 경험한 세대다. “전쟁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던 세대의 사람들이 줄어들면 일본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다치바나 씨는 “새로운 세대가 낡은 사고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구축해 나간다. 이를 되풀이하는 것이 수 천년 계속된 인류의 역사이기에 걱정하지 않는다”며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이번 인터뷰는 다음 세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담은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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