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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월-칠월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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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4,365회 작성일 07-02-10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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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풍은 시경 국풍 중 섬서성에 기원한 주나라의 풍속을 노래한 시가집이다. 주로 계절의 변화에 따른 농사의 절기를 노래한 것으로 중국 전원시가의 원조로 여겨지고 있다. 그림은 청조의 吳求의 작품으로 농가의 부녀자들이 옷을 짓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


國風15•豳風1

칠월(七月)

우순(虞舜)과 하우(夏禹)의 시대에 기(棄)가 태(邰)라는 곳에 봉해지고 농사의 일을 맡아보는 후직(后稷)이 되었다. 그 뒤를 이어 불줄(不窋), 국요(鞠陶), 공류(公劉)에게 차례로 전해졌다. 공류는 다시 후직의 일에 힘썼음으로 부유하게 된 백성들은 이끌고 빈(豳) 땅으로 옮겨 도읍으로 삼았다. 그로부터 팔전(八傳)하여 고공단보(古公亶父) 즉 태왕(太王)에 이르러 도읍을 다시 기산의 남쪽인 주(周) 땅으로 옮겼다. 빈 땅은 주나라가 천하를 얻기 전까지 10대에 걸쳐 도읍했던 곳이다. 빈풍에는 모두 7편의 시가로 되어 있는데 그 중 7월은 빈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백성들의 연중행사를 노래한 것이다.

태(邰)는 지금의 섬서성 무공현(武功縣), 빈(豳)은 기산(岐山)의 북쪽으로 지금의 섬서성 순읍(栒邑), 주(周)는 지금의 섬서성 봉상현(鳳翔縣)이다.


一.

七月流火(칠월류화)

칠월이면 대화성이 기울어 흐르고


九月授衣(구월수의)

구월이면 추워서 날 옷을 준비한다.


一之日觱發(일지일필발)

동짓달에 찬바람 불고


二之日栗烈(이지일율열)

섣달에는 매섭게 추워진다.


無衣無褐(무의무갈)

털옷과 갈포옷이 없으면


何以卒歲(하이졸세)

어찌 한해를 넘길까?


三之日于耜(삼지일우사)

정월엔 쟁기 준비하고


四之日擧趾(사지일거지)

이월에는 밭을 간다.


同我婦子(동아부자)

내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饁彼南畝(엽피남무)

저 남쪽 밭으로 밥 가져오면


田畯至喜(전준지희)

권농관이 기뻐한다.

부(賦)다. 7월은 북두성의 자루가 신방(申方)을 가리키는 달이니, 하(夏)나라의 칠월이다. 뒤에 범범히 월(月)이라 한 것은 이것을 따른 것이다. 유(流)는 내려감이다. 화(火)는 대화성(大火星)과 심성(心星)이니, 유월 저녁에 땅의 남방에 더해졌는데, 칠월 저녁에 이르면 내려와서 서쪽으로 내려간다. 구월에 서리가 내려 비로소 춥고 잠적(蠶績)의 공(功)이 이미 이루어졌다. 그럼으로 사람들에게 옷을 주어서 추위를 막게 한 것이다. 일지일(一之日)은 두병(斗柄)이 자방(子方)을 가리킴을 이른 것이니 일양(一陽)의 달이요, 이지일(二之日)은 두병(斗柄)이 축방(丑方)을 가리킴을 이른 것이니, 이양(二陽)의 달이다. 달을 바꾸어서 일(日)을 말함은 이 달의 날을 말하고, 뒤에 범범히 날만을 말함은 이를 따랐다. 대개 주나라의 선조들이 이미 이것을 써서 기년과 계절로 삼았다. 그럼으로 주나라가 천하를 소유함에 드디어 일대(一代)의 정삭(正朔)을 삼았다. 필발(觱發)은 바람이 찬 것이요, 율렬(栗烈)은 기운이 찬 것이다. 갈(褐)은 갈포로 짠 천이다. 세(歲)는 하정(夏正)의 세(歲)다. 우(于)는 감이요, 사(耜)는 밭을 가는 농구이니, 우사(于耜)는 밭에 나가 농구를 손질함이다. 거지(擧趾)는 발을 들어 밭을 갊이다. 아(我)는 가장(家長)인 본인을 말하고 엽(饁)은 들밥을 먹임이다. 전준(田畯)은 농사일을 독려하는 관리다.

7월이 되면 정남에 있던 화성이 서쪽으로 기울고, 9월이 되면 추워짐으로 가족들이 추위를 타지 않도록 겨울옷을 준비해 두어야만 한다. 11월이 되면 바람이 차가워지고 12월에는 오싹할 정도로 추워지는데, 만약 겨울 의복의 준비가 없다면 이 겨울을 어떻게 넘길 수 있겠는가? 해가 바뀌어 1월이 되면 봄이 다가오니 보습을 손질하지 않으면 안 된다. 2월이 되면 보습을 흙에 꽂고 밭을 일구어야한다. 그 때 나의 부인과 자식들이 저 햇빛 잘 드는 남쪽을 나왔다가 우리들이 농사에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권농관이 매우 기뻐하며 격려해 준다.


二.

七月流火(칠월류화)

칠월이면 대화성이 기울어 흐르고


九月授衣(구월수의)

구월이면 추워서 날 옷을 준비한다.


春日載陽(춘일재양)

봄날 햇살 살려서


有鳴倉庚(유명창경)

꾀꼬리는 울어대고


女執懿筐(여집의광)

아가씨들 대광주리 가지고


遵彼微行(준피미행)

저 좁은 길 따라


爰求柔桑(원구유상)

연한 뽕잎 따러간다.


春日遲遲(춘일지지)

봄날은 길기도해라!


采蘩祁祁(채번기기)

다북쑥 수북히 캐노라면


女心傷悲(여심상비)

여인들 마음 울적하고 서글퍼


殆及公子同歸(태급공자동귀)

간절히 공자에게 시집가고 싶어라!

부(賦)이다. 載(재)는 시작이요, 陽(양)은 온화함이다. 倉庚(창경)은 黃鸝(황리)로 꾀꽇리다. 懿(의)는 매우 아름다움이다. 遵(준)은 따름이다. 微行(미행)은 작은 길이다. 柔桑(유상)은 穉桑(치상)이다. 遲遲(지지)는 날이 길어서 따뜻함이다. 蘩(번)은 흰쑥으로 따서 누에를 키우는데 지금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사용한다. 아마도 누에가 난 것이 가지런하지 않아서 뽕나무를 먹을 수 없었다. 그럼으로, 이것을 따다 먹인 것이다. 祁祁(기기)는 衆多(중다)함이다. 혹자는 느림이라 하였다. 公子(공자)는 豳公(빈공)의 자제이다.

7월에는 화성이 서쪽으로 옮겨가고, 9월에는 추워지므로, 가족들의 겨울옷을 장만해야 한다. 봄이 오면 햇살은 따뜻해지고 아름다운 꾀꼬리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여 슬슬 누에를 칠 시기가 돌아온다. 여자들은 깊은 대바구니를 들고 좁은 길을 걸어가서 누에를 먹이기 위해 뽕나무 밭에 들어가 어린 뽕잎을 따기에 바쁘다. 그런데 봄날은 마치 해가지는 것을 잊은 듯 길어서 들로 몰려가 산흰쑥을 뜯는 여자들도 많다. 산흰쑥의 즙으로 누에의 種紙(종지)를 씻기 위해서이다. 이렇듯 고생스럽게 누에를 쳐서 훗날 시집갈 의상을 마련하고 있지만 과연 언제쯤이나 시집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때때로 여자들의 마음은 서글퍼지기도 한다. 빈공(豳公)의 공녀(公女)는 때가 되면 시집을 가게 되는데, 제발 우리들도 공녀처럼 때맞추어 시집을 가고 싶구나!


三.

七月流火(칠월류화)

칠월이면 대화성이 기울어 흐르고


八月萑葦(팔월추위)

팔월엔 갈대를 벤다.


蠶月條桑(잠월조상)

누에치는 달 뽕나무가지를


取彼斧斨(취피부장)

저 도끼를 가지고


以伐遠揚(이벌원양)

길게 뻗은 가리를 친다.


猗彼女桑(의피여상)

저 어린가지 흝는다.


七月鳴鵙(칠월명격)

칠월엔 왜가리 울고


八月載績(팔월재적)

팔월에는 길쌈을 하노라


載玄載黃(재현재황)

검정색 노랑색 물들여


我朱孔陽(아주공양)

내 붉은 색 가장 고와


爲公子裳(위공자상)

공자님 바지 만들어드린다.


부이다. 萑葦(추위)는 바로 蒹葭(겸가)로 갈대다. 蠶月(잠월)은 누에치기를 시작하는 달이다. 條桑(조상)은 가지가 떨어져서 그 잎을 따는 것이다. 斧(부)는 자루를 끼는 구멍이 둥근 도끼이고 斨(장)은 구멍이 네모 난 도끼를 말한다. 遠揚(원양)은 가지가 머리위로 멀리 뻗어있는 것을 뜻한다. 가지의 잎을 취하는 것을 猗(의)라 하고 女桑(여상)은 작은 뽕나무이며, 小桑(소상)은 잎을 취할 수 있으나 가지는 그냥 두고서 猗然(의연)한 것이다. 鵙(격)은 伯勞(백로) 즉 떼가치다. 績(적)은 길쌈이고 玄(현)은 검으면서 붉은빛이 있는 것이요, 朱(주)는 붉은빛이다. 陽(양)은 붉은빛이다.

7월에 화성이 서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면 차츰 추워지게 되므로 8월에는 갈대를 베어내야만 한다. 이것들은 누에 발을 만들 재료로 모아 둔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해의 蠶月(잠월), 즉 3월이 되면 뽕을 따게 되는데 손이 닿지 않는 먼 가지나 높은 가지는 도끼를 들고 쳐내야만 한다. 또 작은 뽕나무의 긴 가지는 잡아당겨 굽혀서 잎을 따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누에치는 일이 끝나면 7월에는 때까치가 우는 시기가 된다. 누에치는 일이 끝나면 이번에는 삼베를 길쌈할 차례이다. 8월에는 삼베 실을 짜서 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누에를 쳐서 얻은 명주와 삼베천에 검은 색이나 노란색으로 물을 들여야 한다. 그 중에서도 빨간색이 가장 선명하다. 이것을 가지고 빈공의 공자를 위해 옷을 만들어 바치고 싶다.


四.

四月秀葽(사월수요)

사월에 이삭 패고


五月鳴蜩(오월명조)

오월에 매미 운다.


八月其穫(팔월기확)

팔월에 곡식을 수확하고


十月隕蘀(십월운탁)

시월엔 초목이 낙엽진다.


一之日于貉(일지일우맥)

동짓달엔 담비를 사냥한다.


取彼狐貍(취피호리)

저 여우와 삵을 잡아서


爲公子裘(위공자구)

공자님 갓옷 만들어드린다.


二之日其同(이지일기동)

섣달에는 모두가 모인다.


載纘武功(재찬무공)

무기를 들고 무공을 익혀


言私其豵(언사기종)

작은 짐승은 우리가 갖고


獻豜于公(헌견우공)

큰 짐승은 군주께 바친다.

부이다. 꽃이 피지 않고서 열매를 맺는 것을 秀(수)라 하고. 葽(요)는 애기풀이다. 蜩(조)는 매미이다. 穫(확)은 벼의 이른 것으로 수확할 수 있는 것이다. 隕(운)은 떨어짐이요, 蘀(탁)은 떨쳐냄이니, 草木(초목)의 잎이 떨어짐을 이른 것이다. 貉(학)은 담비다. 于貉(우학)은 于耜(우사)라는 말과 같으니, 사냥을 나가 담비를 잡는 행위를 말한다. 同(동)은 모두 일어나서 같이 사냥함이다. 纘武功(찬무공)은 계속해서 무공을 익히는 것이고 豵(종)은 1년 된 돼지요, 豜(견)은 3년 된 돼지이다.

4월에는 약초인 애기풀의 열매가 열려 그것을 딴다. 5월이 되면 매미가 이 산 저 산에서 요란한 울음소리를 낸다. 8월로 접어들면 일찍 여문 곡식을 거둬들이기 시작해야 한다. 10월이 되면 나무 잎이 떨어지는 계절이라서 추워진다. 그럼으로 또 이듬해에 해야 할 일이 준비한다. 그리고 11월에는 오소리 사냥에 나선다. 그 가죽은 하동품이라 갓옷을 만들어 자신이 입는다. 또 여우나 삵을 잡으면 갖옷으로 만들어 공자에게 바친다. 12월에는 나라 사람들이 일제히 나서서 군사훈련을 겸하여 겨울 사냥을 한다. 계속 무공을 익혀서 솜씨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사냥에서 잡은 작은 짐승은 우리가 갖고 큰 짐승은 빈공(豳公)에게 바친다.


五.

五月斯螽動股(오월사종동고)

오월은 여치가 울고


六月莎雞振羽(육월사계진우)

유월에는 뻬짱이 울어댄다.


七月在野(칠월재야)

칠월에 귀뚜라미는 들에 있고


八月在宇(팔월재우)

팔월에는 처마 아래에로 들다가


九月在戶(구월재호)

구월에는 문간에 있다.


十月蟋蟀(십월실솔)

시월에 귀뚜라미는


入我牀下(입아상하)

내 침상 아래로 든다.


穹窒熏鼠(궁질훈서)

벽구멍 막아 연기로 쥐를 쫓고


塞向墐戶(새향근호)

북향 창 막고 진흙으로 문틈 바른다.


嗟我婦子(차아부자)

아, 내 아내와 자식들아


曰爲改歲(왈위개세)

날은 한 해가 바뀌니


入此室處(입차실처)

이 방에 들어와 편히 쉬어라


부(賦)이다. 斯螽(사종)은 메뚜기고 莎雞(사계), 蟋蟀(실솔)은 배짱이나 계절에 따라 변화하여 그 이름을 달리한 것이다. 動股(동고)는 도약을 시작하면서 소리를 만드는 것이고 振羽(진우) 날개로 소리를 내어 우는 것이다. 宇(우)는 처마 아래이니, 더울 때에 들에 있다가 추워지면 들어와 처마에 의지한다. 穹(궁)은 즉 空隙(공극)으로 구멍이 난 것이고 窒(질)은 막힘이다. 向(향)은 창문이 북쪽으로 뜻이고 墐(근)은 바름이다.

○ 5월에는 메뚜기가 다리를 비벼 소리내어 울기 시작하고, 6월에는 베짱이가 날개짓을 하며 울어댄다. 귀뚜라미는 7월에는 들판에 있다가 8월 경에는 집 처마 밑으로 다가오고, 9월에는 문간에 있다. 그리고 10월에는 침상 밑으로 들어온다. 이렇게 작은 벌레가 사람이 사는 집안으로 돌어 오는 것은 날씨가 추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안에 구멍이 난 곳을 막고 연기를 피워 쥐를 쫓으며, 북쪽으로 난 창문을 막고 또 대문에 진흙도 바른다. 아아, 내 아내여! 그리고 내 아들이며! 해는 또다시 바뀌려 하고 있다. 대한(大寒)의 계절이 되었으니 그 동안 살던 들판의 움막에서 이 집으로 옮겨 추위를 피해야겠다.


六.

六月食鬱及薁(육월식울급욱)

유월에 아가위랑 머루랑 따먹고


七月亨葵及菽(칠월형규급숙)

칠월에는 아욱국에 콩 쪄 먹는다.


八月剝棗(팔월박조)

팔월에는 대추 따고


十月穫稻(십월확도)

시월에는 벼를 벤다.


爲此春酒(위차춘주)

이렇게 하여 춘주를 담궈서


以介眉壽(이개미수)

노인의 장수를 빈다.


七月食瓜(칠월식과)

칠월은 오이를 따고


八月斷壺(팔월단호)

팔월에는 박을 탄다.


九月叔苴(구월숙저)

구월에는 삼씨를 주우며


采荼薪樗(채도신저)

씀바귀 캐고 가죽나무 땔감 베어


食我農夫(식아농부)

우리 농부들 살아가네!


부(賦)이다. 鬱(울)은 아가위의 등속이요, 薁(먹)은 머루이며 葵(규)는 채소의 이름이다. 菽(숙)은 콩이고 剝棗(박조)는 대추나무를 막대기로 때려 열매를 따는 행위다. 介(개)는 助(조) 즉 도움이고, 眉壽(미수)는 눈썹이 길게 자랄 때까지 오래 산다는 뜻이니 장수를 빈다는 말이다. 壺(호)는 瓠(호)이니 斷壺(단호)는 박을 타는 것이다. 食瓜(식과)하고 斷壺(단호)하는 것은 菜田(채전)에 임시로 타작마당을 만들기 전의 차례이다. 叔(숙)은 습(拾)으로 줍는 것이요 苴(저)는 胡麻子(호마자)로 삼씨다. 荼(도)는 씀바귀다. 薪(신)은 땔나무이고 저(樗)는 가죽나무로 오로지 땔감 외는 다른 용도로 쓰이지 않음으로 악목(惡木)이다. 食我農夫(식아농부)는 우리 농부들 부양하기에 충분하다는 뜻이다.

6월이 되면 아가위랑 머루 따위를 막는다. 7월에는 아욱과 콩을 삶아 먹는다. 8월이 되면 대추 따기가 한창이고, 10월에는 여문 나락을 벤다. 수확한 쌀로 겨울 동안 술을 빚어 두었다가 노인의 장수를 위해 사용한다. 7월에는 참외를 먹을 수가 있고, 8월에는 박을 따서 켠다. 9월에는 삼씨를 줍기에 바쁘다. 또 씀바귀를 캐고 땔나무를 베어다가 장작을 지펴서 우리 농부들을 부양한다. 그것들은 우리 농부가 사는데 필요한 물품이다.


七.

九月築場圃(구월축장포)

구월은 채마밭에 타작마당 닦고


十月納禾稼(십월납화가)

시월에는 곡식을 거두어들인다.


黍稷重穋(서직중륙)

차기장, 매기장과 늦곡식, 올곡식


禾麻菽麥(화마숙맥)

벼, 삼씨, 콩, 보리를


嗟我農夫(차아농부)

아 우리 농군들은


我稼旣同(아가기동)

우리 추수를 이제 마쳤으니


上入執宮功(상입집궁공)

궁궐에 올라 집일을 한다.


晝爾于茅(주이우모)

낮은 띠풀을 손질하고


宵爾索綯(소이색도)

밤에는 새끼를 꼰다.


亟其乘屋(극기승옥)

지붕 잇는 일을 서둘러야


始播百穀(기시파백곡)

비로소 백곡을 파종한다.


부(賦)이다. 場圃(장포)는 같은 땅이나 봄, 여름의 채소밭을 포(圃)라하고 가을, 겨울의 타작마당을 장(場)이라 한다. 納禾稼(납화가)는 거두어 들인 곡식을 마당에 있는 곳간에 쌓는 행위를 말이다. 禾(화)는 짚이 달린 벼를 총칭하고 稼(가)는 벼가 패어 영글어 들에 있는 것이다. 먼저 심었는데 나중에 익는 것을 重(중)이라 하고, 나중에 심었는데 먼저 익는 것을 穋(륙)이라 한다. 同(동)은 모은 것이니 旣同(기동)이라 함은 곡식을 이미 창고 안에 쌓아두었다는 뜻이다. 나가는 것을 上(상)이라 하고 들어오는 것을 下(하)라 하는데 봄이 되면 농부들은 모두 들판으로 나가 농사를 지으면서 그곳에 지어 놓은 草廬(초려)에 기거하다가 농사일이 끝나고 겨울이 오면 읍내의 집으로 들어온다. 옛날에 백성들이 5畝(무)의 땅을 받아 절반의 땅은 농토 중에 廬幕(여막)을 지어서 봄과 여름에 거주하고, 나머지 성읍에 있는 절반의 땅에는 집을 짓고 가을과 겨울에 거주했다. 功(공)은 일이고 宮(궁)은 읍내의 집이다. 執宮功(집궁공)은 읍내에 있는 집의 지붕을 이는 일이다. 혹자는 公室(공실)과 官府(관부)의 徭役(요역)이라 하였는데, 옛적에 民力(민력)을 쓰되 1년에 3일을 넘기지 않는다고 했다. 索(색)은 꼬는 것이고 綯(도)는 새끼줄이다. 乘(승) 오르는 것이고 屋(옥)은 밭에 지어놓은 초려를 말한다. 그래서 宵爾索綯(소이삭도)는 밤 중에 새끼줄을 꼬는 것이고 亟其乘屋(극기승옥)은 들판의 초려 지붕에 올라가 손질을 한다는 뜻이다.

9월에는 밭의 흙을 다져서 수확을 하는 마당질 터를 만들고, 10월에는 곡식들을 모두 곳간으로 거두어들인다. 늦고 이른 기장과 비와 삼은 물론이요 콩과 부리 등을 모두 한곳에 쌓게 된다. 그런 다음 농부들이 서로 말하기를 아아, 수고들 많으셨고. 우리들의 수확물을 이미 곳간 안에 모두 쌓아 두었소. 이제 들판 일은 끝난 것이다. 지금부터는 읍으로 돌아가서 집안일을 시작하세, 자네들은 낮에는 띠풀 베는 일을 하게, 그리고 밤에는 새끼를 꼬게, 그 띠와 새끼줄을 가지고 어서 어서 초려의 지붕을 수리하지 않으면 안 되네. 해가 바뀌면 또다시 온갖 곡식의 씨를 뿌리고 농사일을 시작해야만 한다네.


八.

二之日鑿冰沖沖(이지일착빙충충)

섣달은 얼음을 탕탕 깨고


三之日納于凌陰(삼지일납우릉음)

정월에는 얼음 창고에 들여놓는다.


四之日其蚤(사지일기조)

이월 달 아침에


獻羔祭韭(헌고제구)

염소와 부추 차려 제사 지낸다.


九月肅霜(구월숙상)

구월은 된서리 내리고


十月滌場(십월척장)

시월에는 타작마당 치운다.


朋酒斯饗(붕주사향)

술 준비하여 잔치 열어


曰殺羔羊(왈살고양)

염소랑 양이랑 잡아서


躋彼公堂(제피공당)

저기 임금 계신 곳에 올라가


稱彼兕觥(칭피시굉)

저 소뿔 잔을 들어 빈다.


萬壽無疆(만수무강)

빈공(豳公)의 만수무강을!


부(賦)이다. 鑿冰(착빙)은 산에서 얼음을 취함을 이른 것이다. 冲冲(충충)은 얼음을 캔다는 뜻이다. 주례(周禮)의 “ 정세(正歲) 12월에 얼음을 베어오게 한다.”고 했는 데 바로 이것이다. 납(納)은 보관함이니, 장빙(藏冰)은 더위에 대비하는 것이다. 릉음(凌陰)은 얼음을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 즉 빙실(氷室)이다. 빈(豳) 땅은 추위가 심해서 바람이 불어도 해동(解凍)하지 못함으로 얼음을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조(蚤)는 이른 아침이다. 비(韭)는 채소이름으로 부추를 말한다. 염소를 잡아 희생으로 삼고 부추로 제사한 후에 빙고(氷庫)를 연다.

12월에는 산에 올라가 얼어붙은 얼음을 꺼낸다. 그때마다 산에 얼어있는 얼음이 혼들흔들한다. 1월에는 그 얼음을 빙고에 넣어둔다. 2월이 되면 빙고의 문을 열어 다시 얼음을 꺼낸다. 얼음을 빙고에 넣었다 꺼냈다 할 때마다 염소 암수 한 쌍을 차려놓고 사한신(四寒神)에게 제사 지낸다. 9월에는 정신이 번쩍 날만큼 차가운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 10월이 되면 들판의 마당질 자리를 소제한다. 이로써 1년 동안의 농사일이 끝나는 것이다. 그러면 춥든 덥든 땀 흘려 일하느라 고생한 농부들이 모두 모여 술을 마시며 위로한다. 그 자리에서 어린양을 잡아서 술안주로 한다. 그런 다음 마을의 공당에 올라가 외뿔소로 만든 술잔을 들고 빈공(豳公)의 만수무강을 축원한다.

예기(禮記)의 월령(月令)에 “ 중춘(仲春)에 염소를 올리고 빙고(氷庫)를 열어 먼저 침묘(寢廟)에 올린다.”고 했는데 이것을 말함이다. 소동파(蘇東坡)가 말했다. “옛날에 얼음을 보관하고 얼음을 여는 것은 양기(陽氣)의 성함을 조절하기 위해서였다. 대저 양기가 천지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불이 물건이 붙어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럼으로 항상 풀어줌이 있는 것이다. 12월에는 양기가 닫혀서 발하지 못하여 그 성함이 땅 밑에 있다. 이에 얼음을 땅 속에 넣어두었다가 2월에 이르러 사양(四陽)이 일어나고 숨었던 벌레들이 일어나서 양기가 작동하면 비로소 얼음을 꺼내어 침묘에 올린다. 4월에 이르러 양기가 모두 달하고 음기가 장차 끊어지려고 할 때가 되면, 얼음을 크게 꺼낸다. 고기를 먹는 대부집안의 노인들이나 병약한 자, 초상을 치르거나 시신을 목욕시킬 때 얼음이 미치지 않음이 없었다. 이 때문에 겨울에는 지나친 양(陽)이 없고 여름에는 숨어있는 음(陰)이 없고 봄에는 서늘한鴟鴞바람이 없고 가을에는 지나친 비가 없었으며 우뢰가 나와도 벼락을 치지 아니하고 서리와 우박의 재앙이 없으며, 염병이 내리지 않아서 백성들이 요절하지 않는 것이다.”


수조(隋朝)의 문인 정원(程元)이 文中子(문중자) 왕통(王通)에게 물었다.

“ 감히 묻겠습니다. 빈풍(豳風)은 어떤 풍(風)입니까.”

문중자가 대답했다.

“ 變風(변풍)이다.”

정원이 다시 물었다.

“ 주공 때에도 변풍이 있었습니까?”

“군신간에 서로 꾸짖었으니, 정(正)이라 할 수 있겠는가. 성왕이 끝내 주공을 의심했다면 풍(風)이 마침내 변했을 것이다. 주공의 지성(至誠)이 아니었다면 누가 능히 바로잡을 수 있었겠는가?”

“ 변풍의 맨 끝에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 夷王(이왕) 이후로 변풍(變風)이 다시 바르게 되지 않았으니, 부자께서 이를 슬퍼하셨다. 그럼으로 빈풍(豳風)으로 끝을 맺어, 변(變)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주공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正)을 붙이게 되었으니, 변하되 능히 바르고 위태롭되 능히 붙들어서 시종 그 근본을 잃지 않은 분은 오직 주공이셨으니, 豳風(빈풍)에 붙인 뜻이 원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 󰡔주례(周禮)․약장(籥章(약장)󰡕에 “빈시(豳詩)를 관악기로 불어서 더위와 추위를 맞이한다.” 했으니, 이 내용은 이미 「七月」편에 보인다. 또 이르기를 “ 전조(田祖)에게 풍년을 기원할 때에는 빈아(豳雅)를 관악기로 불어서 전준(田畯)을 기쁘게 하고 납향제사에는 빈송(豳頌)을 관악기로 불어서 늙은 물건을 쉬게 한다.”고 했는데, 시를 상고해보면 빈풍과 빈아(豳雅)의 편장(篇章)에 대한 소재를 볼 수 없다. 그럼으로 정씨(鄭氏)는 「칠월(七月)」의 시를 3등분하여 정사(情思)를 말한 것을 風이라 하고, 예절을 바르게 한 것을 雅라 하고, 성공을 즐거워한 것을 頌이라 하였다. 그러나, 한 편의 시는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응하는 것인데, 마침내 그 一節을 잘라 하나만을 사용함은 이러할 리가 없을 듯하다. 그럼으로 王氏는 그의 말을 취하지 않고, 다만 이르기를 “본래 이런 시가 있었는데 없어졌다.”하였으니, 그 말이 옳을 듯하다. 혹자는 또 의심하기를 “다만 「七月」의 全篇을 일에 따라 그 음절을 변화시켜 혹은 風이라 하고 혹은 雅라 하고 혹은 頌이라 했을 것이다.”하였으니, 이렇게 하면 이치에 통하고 일이 또한 행해질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또 그렇지 않다면 雅·頌 가운데에 모든 농사를 위하여 지은 것은 豳이라는 칭호를 앞에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해설이 「大田」과 「양사(良耜)」의 여러 편에 자세히 보이니, 독자가 선택하는 편이 可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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