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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제본기(五帝本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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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12,198회 작성일 04-05-28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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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1. 오제(五帝)

 

황제(黃帝)는 소전(少典)1)의 아들이고 성은 공손(公孫)2)이고 이름은 헌원(軒轅)이다. 신령(神靈)3)으로 태어난 황제는 유약(幼弱)4)할 때에도 능히 말을 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는 총명하고 기민했으며, 성장하면서 돈후하고 근면발분하여 성년이 되었을 때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박문했다. 헌원이 살던 시대는 신농씨(神農氏)5)의 후손들은 이미 쇠미해 있었다. 제후들은 서로 침략을 일삼으며 백성들을 포학하게 대했으나 신농씨는 능히 그들을 정벌할 수 없었다. 그래서 헌원은 군사들을 조련시켜 무기의 사용법에 익숙하게 한 후에 그들을 이끌고 조공을 바치지 않는 제후들을 토벌했다. 그러자 마침내 제후들은 모두 래조하여 복종했다. 그러나 가장 포학한 치우(蚩尤)6)는 능히 토벌할 수 없었다. 염제(炎帝)가 제후들을 범하여 욕을 보이려고 하자 제후들은 이를 두려워하여 모두 헌원에게 귀의했다. 헌원은 덕을 쌓고 군사를 정돈했으며, 사계절의 변화와 오기(五氣)7)를 연구하여 사람들에게 오곡(五穀)을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그들을 위무하는 한편 사방의 토지를 측량하고 웅비(熊羆)8)와 비휴추호(貔貅貙虎)9) 등의 사나운 짐승들을 훈련시켜 판천(阪泉)10)의 들판에서 염제(炎帝)와 싸웠다. 세 번의 싸움 끝에 황제는 마침내 그 뜻을 이루었다. 치우가 란을 일으켜 제()의 명을 따르지 않자 황제는 제후들의 군사를 징집하여 탁록(涿鹿)에서 싸워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 제후들은 모두 훤원()을 천자로 추대하여 신농씨(神農氏)를 대신하게 했다. 이가 황제(黃帝). 천하에 명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황제가 쫓아가 정벌하여 평정시킨 후에 곧바로 그곳을 떠나 산을 개간하여 길을 뚫었음으로 천하는 하루라도 편안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동쪽으로 나가 바다에 이르자 환산(丸山)11)과 대종(岱宗)12)을 올랐다. 서쪽으로는 공동산(空桐山)13)의 계두(雞頭) 봉에 올랐다. 남쯕으로는 강수(江水)에 이르렀다가 웅산(熊山)14)과 상산(湘山)15)에 올랐다. 북쪽으로는 훈육(葷粥)16)을 쫓아내고 부산(釜山)17)에서 제후들을 소집한 후에 부절을 확인하고18) 탁록산(涿鹿山) 밑의 들판에 도읍을 건설했다. 그러나 황제는 도성만 축성했을 뿐 일정한 거처를 만들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주둔하는 곳마다 병영을 지어 방어했다. 관직 이름은 모두 운()자를 붙여서 지었고 군대도 운사(雲師)라고 했으며 좌우 대감(大監)을 두어 세상을 감독하도록 했다. 이윽고 세상이 화합하게 되자 귀신과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봉선(封禪)의 의식을 행해 하는 일은 더 많아졌다. 황제는 하늘로부터 보정(寶鼎)과 신책(神策)19)을 받아 역법을 제정했다. 풍후(風後)역목(力牧)상선(常先)대홍(大鴻) 등을 등용하여 백성들을 다스리게 했다. 그는 천지의 사시가 움직이는 법칙에 순응하여 음양의 변화를 점쳤고, 생과 사의 도리를 강술했으며, 흥하고 망하는 원인을 구명했다. 계절에 맞추어 백곡을 파종하고 초목을 심었으며 날짐승, 들짐승과 누에를 기르기 시작하고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운행을 측정하여 역법을 제정했으며 토석이나 금옥(金玉)을 채취하는 방법을 터득하여 백성들에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또한 그는 열심히 연구하고 실천했으며 물과 불 그리고 나무 등의 재물들을 사용하는 방법을 아껴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렸다. 그래서 토덕을 상징하는 징조가 세상에 일어났음으로 그는 황제(黃帝)라고 부르게 되었다.

황제는 25명의 아들이 있었고 그 중에 14명이 성씨를 얻어 부족을 이루었다. 그는 헌원(軒轅)이라는 언덕에 살면서 서릉씨(西陵氏)의 딸 누조(嫘祖)을 부인으로 취했다. 황제의 정비가 된 누조는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의 후손은 모두 천하를 얻었다. 첫째 아들은 현효(玄囂)라고 불렸던 청양(青陽)인데 제후에 피봉되어 강수(江水)에 살았고 둘째 아들 창의(昌意) 역시 제후에 피봉되어 약수(若水)에 살았다. 창의는 촉산씨(蜀山氏)의 딸 창복(昌仆)를 부인으로 삼아 아들 고양(高陽)을 낳았다. 고양이 장성하면서 성인(聖人)의 품덕이 있었다. 황제가 죽자 그를 교산(橋山)에 장사지냈다. 그의 손자이며 창의의 아들 고양이 황제의 뒤를 이어 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전욱제(顓頊帝).

 전욱제 고양씨는 황제의 손자이며 창의의 아들이다. 침착한 성격에 지모가 있었고 사리에 통달했다. 지력을 충분히 이용하여 각종 작물을 길렀으며 자연에 순응하여 하늘의 변화를 살피고 귀신에 의지하여 예의를 제정했다. 사시(四時)와 오행(五行)의 기를 다스려 백성들을 교화했으며 몸을 정결히 닦아 정성을 다하여 제사에 힘썼다. 북쪽으로는 유릉(幽陵)20), 남쪽으로는 교지(交阯)21)서쪽으로는 유사(流沙)22)동쪽으로는 반목(蟠木)23)에 이르렀다. 세상의 온갖 짐승과 초목, 크고 작은 모든 귀신들 그리고 해와 달이 비추는 곳이라면 평정하여 귀속시키지 않는 곳이 없었다.

전욱은 아들은 궁선(窮蟬)이었으나 전욱이 죽자 현호(玄囂)의 손자 고신씨(高辛氏)가 뒤를 이어 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제곡(帝嚳)이다.

제곡 고신은 황제의 증손이고 부는 교극(蟜極)이고 교극의 부는 현호(玄囂)이고 현호의 부는 황제(黃帝). 현호와 교극은 모두 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다가 고신에 이르러 제가 되었다. 고신은 전욱의 당질이다.

고신은 신령을 받아 태어나자마자 자기 이름을 스스로 말했다. 세상에 널리 은혜를 베풀어 이익을 나누어 주었고 자신을 위해지는 않았다. 귀가 밝아 먼 곳의 일도 들어 알 수 있었으며 눈이 밝아 아무리 미세한 일이라도 볼 수 있었다. 그는 하늘의 뜻에 순종했고 백성들이 긴박하게 필요한 것을 알았다. 자애로우나 위엄이 있었고 은혜로웠으나 믿음이 있었다. 또한 자신의 몸을 수양했음으로 천하가 그에게 복종했다. 그는 땅에서 나오는 재화를 취하였으나 아껴서 사용했으며, 백성들을 위무하고 가르쳐 이익으로 이끌었다. 해와 달의 운행을 헤아려 달력을 만들어 절기를 정하고 해와 달의 출입을 경건한 마음으로 섬겼으며 귀신의 일을 밝혀 제사를 올려 받들었다. 그의 몸가짐은 온화했고 품덕은 우뚝 솟은 태산처럼 높았다. 천시에 따라 행동했고 입고 다니는 의복은 역시 보통사람과 같았다. 제곡은 대지를 적셔주는 비처럼 치우침 없이 천하에 두루 은혜가 미치게 했다. 그래서 해와 달이 비추는 곳이나 바람이나 비가 이르는 곳이라면 그 누구도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제곡은 진봉씨(鋒氏女)의 딸을 취하여 아들 방훈(放勳)을 낳았고 추자씨(娵訾氏)의 딸을 취하여 아들 지()를 낳았다.24) 제곡이 죽자 지가 뒤를 이어 섰다. 제의 자리에 오른 지가 정사를 올바르게 행하지 못했음으로 그의 동생 방훈이 대신 섰다. 이가 제요(帝堯).

제요(帝堯)가 바로 방훈(放勳)으로 하늘처럼 인자하고 신처럼 지혜로웠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마치 태양처럼 백성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었으며, 그를 멀리서 쳐다볼 때는 마치 채색구름이 대지를 윤택하게 적셔 주듯이 은혜를 베풀었다. 부유했으나 교만하지 않고 고귀하기로는 천자의 몸이었으나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 그는 노란 색의 모자에 흰 옷을 입고 백마가 끄는 붉은 색을 칠한 수레를 탔다. 능히 큰 덕을 밝히고 구족(九族)을 친하게 만들었다. 구족이 이미 화목하게 지낼 수 있게 되자 백관들을 위한 전장(典章)을 만들었다. 백관들이 혁혁한 업적을 이룩하자 세상 만민들은 모두 화합하여 세상에 평화가 깃들었다.

 제요는 희()와 화()에게 명하여 하늘을 공경하여 따르고 일월성신의 운행법칙을 예측하여 백성들에게 파종과 수확의 적기를 가르쳤다. 다시 희중(羲仲)에게 명하여 양곡(暘谷)25)이라고 불리우는 욱이(郁夷)에 머물면서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경건하게 맞이하여 때를 노치지 말고 봄 농사를 짓도록 했다. 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황혼 무렵에 조성(鳥星)26)이 정남쪽 하늘에 나타나는 시각을 잡아서 춘분(春分)의 기점을 정했다. 이때가 되면 백성들은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짐승들은 교미하여 새끼를 낳았다. 또 희숙(犧叔)에게 명을 내려 남교(南交)에 머무르면서 여름 농사를 때맞추어 짓도록 백성들을 조심해서 가르치도록 했다. 낮이 가장 긴 날의 황혼 무렵에 화성(火星)27)이 정남쪽 하늘에 자리 잡는 시간을 기준으로 하지(夏至)를 정확하게 정했다. 그때도 백성들은 여전히 농사일에 바빴고 짐승들은 털갈이는 하느라 가죽에 털이 적었다. 다시 화중(和仲)에게 명하여 매곡(昧谷)28)이라고 불리는 서토(西土)에 머물면서 지는 해를 공손히 맞이하고 가을철 농사의 일정을 때에 맞춰 잘 짓도록 백성들에게 가르치게 했다. 밤과 낮의 시간이 같은 날 황혼 무렵에 허성(虛星)29)이 정남방에 출현할 때를 기준으로 추분(秋分)을 정했다. 백성들은 평안하게 살게 되었으며 짐승들은 새로운 털이 돋아나기 시기였다. 화숙(和叔)에게 명하여 유도(幽都)30)라고 불리우는 북방의 땅에 머물면서 겨울에 곡식과 일용품을 저장하는 일을 가르치도록 했다.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 황혼 무렵에 묘성(昴星)31)이 정남방에 출현할 때를 기준으로 삼아 동지(冬至)를 정하게 했다. 이로써 백성들은 추위를 막을 수 있어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고 짐승들은 따뜻한 솜털이 났다. 한 해는 366일로 하고 3년에 한 번씩 윤달을 정해 차이가 나는 사계절을 바로 잡았다. 제요는 백관들을 엄격하게 다스렸음으로 모두를 공적을 이루어 나라가 흥성해졌다. 제요가 말했다.

누가 내 일을 대신 맡아 행할 수 있는가?

방제(放齊曰)가 대답했다.

아들 단주(丹硃)가 사리에 밝으니 뒤를 잇게 하십시오.

제요가 말했다.

! 단주는 난폭하고 흉악하기 때문에 대신 세울 수 없다!

요가 다시 물었다.

단주 말고 다른 사람이 누가 있는가?

환두(讙兜)가 말했다.

공공(共工)32)이 백성들을 모은 공이 있으니 후계로 삼으십시오.

요가 말했다.

공공은 말은 잘하지만 그를 후계로 삼으면 간사한 마음이 드러나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 하지만 하늘마저 깔보게 됨으로 그를 대신 세울 수 없소.

요가 계속해서 후계가 없음을 한탄하며 말했다.

, 사악(四嶽)33)이여! 탕탕(湯湯)한 홍수가 하늘에까지 넘쳐서 호호한 물줄기가 산을 감싸고 언덕을 덮치지 백성들의 크게 근심하고 있소. 누가 능히 홍수를 다스릴 수 있겠소?

모두들 곤()이면 그 일을 해 낼 수 있다고 대답하자 제요가 다시 말했다.

곤은 명을 어기고 종족들간의 화목을 훼손시켰음으로 맡길 수 없소.

사악이 말했다.

그의 재주는 매우 뛰어납니다. 한번 맡겨 보시고 잘못하면 그때 쓰지 않으면 됩니다.

그래서 제요가 사악의 말을 듣고 곤()에게 홍수를 다스리라고 명했으나 9년이 지나도록 일을 이루어 공을 세우지 못했다.

그러자 요가 말했다.

, 사악이여짐이 재위에 있은지 이미 70년이오. 그대들도 능히 명을 내릴 수 있으니 나의 자리를 대신 맡아 주시오.

사악이 대답했다.

우리들은 덕이 미천하여 제왕의 자리를 더럽힐 뿐입니다.

제요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귀척(貴戚)이나 관계가 소원하여 멀리 나가 은거하고 있는 사람이거나를 불문하고 현인이라면 모두 천거해 주시오.

여러 대신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간에 홀아비로 살고 있는 우순(虞舜)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도 그에 대해 들은 바가 있소. 그는 어떤 사람이오?

사악이 대답했다.

그는 장님의 아들입니다. 그의 부는 매우 완고하고 모는 남을 헐뜯고 동생은 교만하지만 순은 능히 화합하여 효도를 행함으로써 그들을 착하게 교화하여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내가 그를 불러 시험해 보겠소!

그래서 제요는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내 그가 두 딸을 대하는 덕행을 살펴보았다. 순은 요의 두 딸을 고귀한 신분에서 평민으로 낮추게 하고 규예(嬀汭)34)로 데리고 가서 부인의 예절을 지키도록 했다. 제요는 순의 그런 행동을 훌륭하다고 생각해서 순으로 하여금 성의를 다하여 오전(五典)35)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도록 했다. 그러자 오전이 능히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에 다시 제요는 조정으로 불러들여 백관들의 일을 총괄하게 하자 백관들은 일을 순서에 입각해서 시의에 맞게 잘 처리했다. 계속해서 우순에게 명당(明堂)의 사문(四門)36)에서 손님들을 접대하는 일을 시키자 사문은 화목한 기운이 흘러넘치고 제후들과 먼 곳에서 손님들은 모두 순을 공경했다. 제요가 깊은 산림과 강, 그리고 연못을 관리하는 일을 맡기자 폭풍이 몰아치조 번개가 치며 폭우가 쏟아져도 순은 결코 일을 그르치지 않았다. 제요는 순이 성인임을 알고 불러 말했다.

그대는 3년 동안 일을 행함에 주도면밀하고 말을 하면 그대로 행했소. 그대는 제의 자리에 오르시오!

우순은 자신의 덕행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제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고 사양했다. 그러나 마침내 정월 초하루 날 순은 문조(文祖)에서 요가 선양하는 제위를 받아 제의 자리에 올랐다. 문조는 요의 태조를 모시던 묘당이다.

이때 재요는 이미 늙었음으로 순에게 천자의 직무를 섭정하게 하여 천명(天命)에 부합하는지를 살폈다. 순은 천기옥형(璿璣玉衡)37)으로 천문을 열심히 관측하여 칠정(七政)38)의 위치를 바로잡았다. 이어서 상제(上帝)에게 유사(類祀)39)를 올렸고육종(六宗)40)에게는 인제(禋祭)41), 산천(山川)에는 망제(望祭)42)를 지내는 등 세상의 여러 신들에게 제사를 올렸다. 그는 또 오서(五瑞)43)를 거두어 두었다가 길일과 길월을 택해 사악와 제후들 및 지방장관들을 접견하고 작위에 따라 그것들을 다시 나누어주었다. 그해 2월에 동쪽으로 순수(巡狩)를 나가 대종(岱宗)에 이르러 장작을 태워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명산대천에는 순서에 따라 망제를 올렸다. 이때 순은 동쪽의 군장들을 접견했고 사계절의 절기와, 월의 대소 및 하루의 길이에 해당하는 표준을 교정했으며 도량형의 표준을 조정했다. 오례(五禮)44)를 제정하여 제후들이 천자를 접견할 때 오옥(五玉)45), 삼백(三帛)46), 이생(二生)47), 일사(一死)48) 등을 예물로 바치도록 했으며 오기(五器)49)는 접견이 끝나면 돌려주었다. 5월에는 남쪽으로, 8월에는 서쪽으로, 11월에는 북쪽으로 순수를 나갔는데 모두 2월에 동쪽으로 나가서 행한대로 했다. 그리고 경사로 돌아와서는 요임금의 조묘(祖廟)와 부묘(父廟)에 황소를 바쳐 제사를 지냈다. 5년에 한 번씩 순수를 나갔고 4년 동안은 제후들이 래방하여 조현을 올리도록 했다. 순은 천하의 제후들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확실하게 고했고 그들의 공적을 분명하게 밝혀 수레와 의복을 실적에 따라 하사했다. 천하를 처음으로 12주로 나누고50) 하천은 물길이 잘 통하도록 정비했다.

그는 전장(典章)과 형법을 기물에 새기고 법을 집행하기 위해 정상적인 형벌을 규정했으나 자자(刺字), 할비(割鼻), 단족(斷足), 궁형(宮刑), 참수(斬首) 등의 오형의 형벌을 관대하게 적용하여 유배형으로 대신하도록 했다. 관가에서는 채찍질로 형을 시행했으며 학부에서는 매로 징벌을 행해 백성들을 교화했다. 또한 고의로 지은 죄가 아니면 황금을 내어 대신 속죄하도록 했다. 재난이나 과실로 인해 죄를 범한 사람은 사면하고 악의를 갖고 범죄를 행하고 자기 죄를 뉘우치지 않는 자들게는 중형을 내렸다. 순은 관리들에게 항상 말했다.

조심하고 조심하라! 형벌을 내리는 일은 조심해야만 한다!

환도(驩兜)가 여러 번 공공(共工)을 천거했으나 제요가 언제나 듣지 않았다. 그러나 환도가 계속해서 공공을 한 번 임용해보라고 천거했음으로 요는 그를 토목공사와 건설을 담당하는 공사(工师)로 등용했다. 공공은 요가 걱정한 대로 과연 방종하고 사악하게 굴었다. 사악도 여러 번 곤()을 천거하여 홍수를 다스리게 하라고 권했으나 역시 요가 듣지 않았다. 그러자 사악이 계속해서 곤을 시험삼아 임용해보라고 권했음으로 곤을 임용했으나 곤 역시 아무런 업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백관들은 모두 곤이 치수의 적임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삼묘(三苗)51)가 강회(江淮)와 형주(荊州) 일대에서 여러번 반란을 일으켰음으로 순이 순행을 나가 살펴본 후에 돌아와 요에게 보고하며 공공(共工)은 유릉(幽陵)으로 추방하여 북적(北狄)의 풍속을 교화시키도록 하고 환도(驩兜)는 숭산(崇山)으로 추방하여 남만(南蛮)의 풍속을 개변시켜야 한다고 청했다. 이에 요가 삼묘를 삼위산(三危山)으로 옮겨 살게 하여 서융(西戎)의 풍속을 개변시키도록 하고 곤을 우산(羽山)으로 보내 동이의 풍속을 개변토록 했다. 4명의 죄인들에게 벌을 내리자 천하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여 복종했다. 요가 제의 자리에 오른 지 70년 만에 순임금을 얻고, 다시 20년 만에 나이를 이유로 제위에서 물러나기를 천하에 고한 후에 순으로 하여금 천자의 정무를 대행토록 하고 자신은 은퇴하면서 순을 하늘에 천자로 천거했다. 요는 순에게 천자의 자리를 양위한지 28년 후에 서거했다. 요의 죽음에 백성들은 크게 애통해하며 마치 자기를 낳아준 부모가 죽은 것처럼 여겼다. 요임금이 죽고 3년 동안 천하의 백성들은 음악을 삼가하여 요임금의 죽음을 애도했다. 자신의 아들 단주에게 천하를 전해주기에는 그의 재능이 충분히 현능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요는 천하를 그에게 전하지 않고 순을 잠시 시험해본 다음에야 천자의 자시를 선양했다. 순에게 천자의 자리를 전해주는 행위는 천하 사람들에게는 이익이고 단주에게는 손해되는 일이지만 , 단주에게 천자의 자리를 전해주면 단주에게는 이익이지만 천하 사람들에게는 손해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요가 말했다.

나는 할 수 없이 천하 사람들에게는 해를 입히고 오로지 한 사람의 아들에게만이 이득을 보게 할 수 없었음이라!

그래서 마침내 천하는 순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요가 죽은 후 3년 상을 치른 순은 그의 천자 자리를 단주에게 돌려주고 자신은 남하(南河)의 남쪽 강변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제후들은 단주에게 조근(朝覲)을 행하지 않고 순에게 올렸으며 관리들 역시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을 찾아와 정사를 물었으며 공덕을 노래도 할 때도 순을 위해서 했지 단주를 위해서 하지 않았다. 그러자 순이 말했다.

이는 하늘의 뜻이로다!

그리고는 경사로 돌아와 마침내 천자의 자리에 정식으로 올랐다. 이가 제순(帝舜)이다.

순의 성은 우()고 이름은 중화(重华). 중화의 부는 고수(瞽叟), 고수의 부는 교우(桥牛)이며교유의 부는 구망(句望)이다. 구망의 부는 경강(敬康)이고 경강의 부는 궁선(穷蝉)이며 궁선의 부는 전욱제(颛顼帝)고 전욱의 부는 창의(昌意). 창의에서 순까지는 7대다. ()를 지낸 궁선 이후의 후손들부터 순임금까지 몇 대에 걸쳐 지위가 한미해져 모두 평민으로 살았다.

순의 부친 고수는 장님이었다. 순을 낳은 모친이 죽은 후에 다시 부인을 얻어 아들 상()을 낳았다. 상은 오만했고 불손했다. 후처의 아들인 상을 편한 고수는 항상 순을 죽이려고 했음으로 순은 도망쳐 다녔다. 어쩌다가 작은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하면 언제나 중벌을 받았다. 그러나 순은 부친과 계모는 공손하게 모시고 이복동생은 자애롭게 대하며 순종했다. 날마다 성실근면하고 신중하게 살아 결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순은 기주(冀州) 사람이다. 순은 역산(历山)에서 농사를 짓고 뇌택(雷泽)에서 고기를 잡았으며 황하의 강변에서 도기(陶器))를 구었다. 수구(寿丘)에서 각종 기물을 만들었으며 부하(负夏)까지 뛰어 다니며 장사했다. 순의 부친 고수는 우매하고 계모는 완고했으며 동생 상은 오만하고 불순했다. 그들 세 사람은 항상 순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순은 모든 공손하게 행했으며 자식 된 도리를 저버리지 않고 동생과 우애했으며 부모에게 효도했다. 그래서 그들이 순을 죽이려고 했을 때는 순을 찾지 못했으나,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찾게 될 때는 그는 또한 항상 그들 곁에 있다가 몸을 드러냈다.

순이 20살 때 이미 효자로 이름이 높았고 30살 때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사악 모두가 순을 천거하여 순이라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요임금은 자신의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내 집안에서 행하는 덕행을 관찰하고 아들 9명을 보내 순의 집 밖에서 행하는 품행을 살폈다. 순은 규예(嬀汭)의 강변의 집에 살면서 행동거지를 더욱 신중하게 했다. 요의 두 딸도 자신의 신분이 고귀하다고 해서 감히 순의 가족에게 오만하게 대하지 않음으로써 부녀자이 도리를 지켰다. 요의 아홉 아들도 모두 순에 의해서 독실하고 충후하게 교화되었다. 순이 역산에서 농사를 짓자 역산의 사람들은 모두 서로 논밭의 경계를 서로 양보했다. 다시 순이 장소를 옮겨 뇌택(雷澤)에서 고기를 잡자 뇌택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어장을 서로 양보했다. 다시 황하의 강변에서 도기를 굽자 그곳에서 생산되는 그릇은 모두 불량품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가 머문 곳에서 일 년을 일하면 그곳에 촌락이 생겼으며, 2년이 지나면 하나의 작은 성읍이 세워지고, 3년이 되면 대도시가 생겼다. 순의 행동을 지켜본 요는 순에게 갈포로 만든 옷과 거문고 한 조를 하사했다. 그리고 순을 위해 창고를 짓고 소와 양을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순을 죽이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고수가 순에게 곡식창고을 수리하라고 하면서 높은 곳에 올라가게 한 후에 밑에서 불을 질러 태워 죽이려고 했다. 순은 두 개의 삿갓으로 자신을 보호하며 지붕에서 내려와 도망쳐 가까스로 죽음을 면했다. 그리고 다시 얼마 후에 고수가 다시 순에게 우물을 파라고 시켰다. 순은 우물을 팔 때 옆으로 밖으로 통하는 한 가닥의 비밀통로를 함께 팠다. 이윽고 순이 우물을 깊이 파 들어갔을 때 고수와 상이 함께 흙으로 우물을 메워버렸다. 그러자 순은 미리 파둔 비밀 통로를 통해 도망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지상의 고수와 상은 마침내 순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이 되었다. 상이 말했다.

이 일은 제가 먼저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순의 재산을 부모와 나누어 가지려고 생각한 상이 말했다.

순이 부인으로 삼은 요의 두 딸과 요가 순에게 하사한 거문고를 제가 갖고 소와 양 및 곡식창고는 모두 부모님께 드리겠습니다.

상이 곧바로 순의 방으로 들어가 거문고를 연주했다. 그때 손이 돌아와 상을 보자 상이 크게 놀라더니 다시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 형의 일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었어!

순이 대답했다.

그랬구나, 네가 정말로 이 형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순은 옛날과 변함보다 더욱 공손하고 열심히 부모를 받들었고 상과 우애했다. 이에 요가 순에게 오전(五典)을 시험삼아 시행하도록 하고 백관들을 통솔하도록 맡겼더니 순은 모든 일을 잘 처리했다.

옛날 고양씨(高阳氏) 전욱제(顓頊帝)의 후손 중에 특히 재주와 덕행이 뛰어난 8명이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선행을 기려 팔개(八恺)라고 불렀다. 팔개라는 말은 세상을 화평하게 한 여덟 명의 선인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고신씨(高辛氏) 제곡(帝嚳)에게도 8명의 재주와 덕행이 뛰어난 자손이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8(八元)이라고 불렀다. 팔원은 8명의 선량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16명의 후손들은 대대손손 그들 선인들이 이룩한 미덕과 명성을 보존하고 훼손시키지 않았다. 이윽고 요의 시대에 이르자 그들은 등용되지 못했다. 이에 순이 팔개의 후손들을 발탁하여 토지의 일을 관장하는 관직을 주어 각종 사무의 처리를 맡기자 그들은 모두 조리있게 일을 수행했다. 순은 다시 팔원의 후손들을 발탁하여 그들로 하여금 천하에 오교(五敎)를 공포하여 가르치게 하자 부친은 도의가 있게 되고, 모친은 자애롭게 되었으며 형은 우애하고 동생은 공손하게 되었으며 아들은 효도를 하게 되어 가정은 화복하고 이웃마을들은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옛날 제홍씨(帝鸿氏) 황제(黃帝)에게 나쁜 후손이 있었다. 그들은 인의를 누르고 도적들을 비호했으며 흉악한 일을 즐겨했음으로 천하 사람들은 그들을 혼돈(渾沌)이라고 불렀다. 혼돈이라는 말은 야만적이고 미개하다는 뜻이다. 소호씨(少皞氏)52)에게도 역시 불량한 후손이 있었는데 신의를 훼손하고 충성스럽고 직언을 올리는 사람들을 싫어했으며 사악한 말을 꾸며 남을 모함하는 일을 즐겨했다. 그래서 천하 사람들은 그를 궁기((穷奇)라고 불렀다. 궁기라는 말은 괴이하기 짝이 없다는 뜻이다. 전욱씨(颛顼氏)에게도 나쁜 후손이 있었는데 그들을 아무리 가르쳐도 듣지 않았고 아무리 좋은 말로 타 일러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천하 사람들은 그를 도올(梼杌)이라고 불렀다. 도올이라는 말은 흉악하고 완고하기 짝이 없다는 뜻이다. 그 세 종족들을 세상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했다. 이윽고 요임금 시대에 이르렀으나 요임금은 그들을 제거하지 못했다. 진운씨(缙云氏)에게도 또한 나쁜 후손이 있었는데 그들은 음식과 재물을 탐했다. 그래서 천하 사람들은 그들을 도철(饕餮)이라고 불렀다. 도철이라는 말은 탐욕스럽기가 끝간 데가 없다는 뜻이다. 천하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원한을 품었음으로 앞서 말한 삼흉(三凶)과 더불어 사흉(四凶)이라고 불렀다. 순이 사대문 앞에서 사방에서 찾아오는 빈객들을 접대할 때 그 흉악한 네 종족들을 모두 머나먼 원방 지역으로 추방하여 사람을 해치는 요귀를 제어하게 했다. 이로써 순이 사문을 활짝 열어 재치니 사람들은 악인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순이 산림을 다스리는 직책을 맡아 깊은 산속에 들어갔을 때 폭풍과 뇌우를 만났음에도 길을 잃지 않고 일을 그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요는 비로소 순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천하를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가 나이가 들자 순으로 하여금 천하의 정사를 대신 시켰음으로 순은 항상 천하를 순시했다. 순이 요에 의해 등용되어 정사를 관장한지 20년 만에 요는 순에게 천자를 대신해서 정무를 맡아서 행하라고 했다. 순이 천자의 대행이 된지 8년 만에 요가 세상을 떴다. 순은 요의 복상을 3년 동안 행하고 천자의 자리를 요의 아들 단주에게 양보했다. 그러자 천하 사람들은 모두 순에게 와서 복종했다. ()고요(皋陶)53), ()후직(后稷)백이(伯夷)()()()()팽조(彭祖) 등은 요임금 때부터 등용되었으나 곧바로 직책을 부여받지 못했다. 그래서 순은 문조(文祖)의 사당에 가서 사악(四岳)과 상의하여 사문(四门)을 개방하고 천하가 돌아가는 정황을 파악하고 12주의 지방장관들로 하여금 천자가 갖추어야할 공덕에 대해 의논토록 했다. 그들은 모두 천자가 마땅히 큰 덕을 베풀고 아첨하는 소인배를 멀리한다면 먼 지방의 이족(異族)까지도 복종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순이 사악에게 말했다.

발분 노력하여 공업을 쌓아 제요의 사업을 빛낼 수 있는 사람이 없소 내가 그에게 관직을 주어 나를 보좌하게 하겠소.

사악이 대답했다.

백우(伯禹)를 사공(司空)으로 삼으신다면 능히 제요의 사업을 능히 빛낼 수 있을 것입니다.

순이 우를 불러 접견하고 말했다.

, 훌륭하도다, ()! 그대는 물과 땅을 다스려 주시오. 필히 힘써 노력하여 좋은 결과가 있도록 하시오!」

우가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려 사양하고 직()과 설() 및 고요(皋陶) 등에게 그 일을 양보했다. 그러자 순이 말했다.

알았으니 빨리 임지로 가보도록 하시오!」

그리고 순이 다시 말했다.

(), 지금 백성들이 바야흐로 기근으로 기아에 허덕이고 있으니 농사를 책임지는 후직(后稷)의 일을 맡아서 백성들에게 온갖 곡식을 심고 기르는 법을 가르치도록 하시오.

순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여! 백관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고 불목하고 오륜이 불순하니 그대가 사도(司徒)의 직을 맡아 조심하고 신중한 자세로 그들에게 오륜을 교육시켜 백성들에게 관대하게 대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고요(皋陶)!, 남만과 동이 등 사방 오랑캐가 중국을 침략하여 겁탈하고 살인하며 란을 일으켰다. 너는 형벌과 감옥을 관장하는 수장이 되어 다섯 가지 형벌을 죄의 경중에 적용시켜 죄인들을 승복시켜야 하고, 승복시킨 죄인들은 모두 삼취(三就)54)로 보내 형을 집행하시오. 다섯 가지 유배형은 각기 그에 맞는 처소가 있으니 다섯 가지 처소는 나누어 각기 멀고 가까운 곳으로 구별하여 대죄인은 가장 먼 사예(四裔)의 땅 밖으로, 그 다음 죄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자들은 구주(九州)의 경계 밖으로, 동족에게 죄를 지은 자들은 중원 밖의 땅으로 유배 보내시오. 오로지 법의 집행을 공정하고 신중하게 적용하여 모두들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하시오.

순이 물었다.

누가 능히 나를 대신해서 각종 공인들을 잘 다스릴 수 있겠소?

모두들 수()가 잘할 수 있다고 천거했다. 그래서 순은 수를 공공(共工)55)으로 삼아 각종 공인들을 다스리도록 했다. 순이 다시 물었다.

누가 능히 나를 위해 산택의 초목과 동물들을 관리할 수 있겠소?

모두들 익()이면 가하다고 천거했다. 그래서 순은 익을 우()라는 관직에 임명하여 산택을 관리하도록 했다. 익이 고개를 숙여 절을 올리고 그 일을 주호(朱虎)와 웅비(熊罴)가 더 잘할 것이라고 양보했다. 그러자 순이 말했다.

그대는 바로 가서 맡은 바 일을 행하시오!

그리고는 주호와 웅비에게 명하여 익을 보좌하도록 했다. 순이 말했다.

, 사악이여! 누가 능히 나를 대신해서 하늘과 땅과 사람을 받드는 일인 제사를 능히 주재할 수 있겠소?

모두들 백이(伯夷)가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순이 말했다.

, 백이여! 내가 그대를 질종(秩宗)의 직에 임하지 제사의 일을 주관하도록 하다록 하시오!

백이가 사양하며 그 일을 기()와 용()에게 양보했다. 그러자 순이 기를 불러 말했다.

()! 그대를 전락(典乐)에 임명하니 음악을 관장하시오. 귀족의 자제들을 교육시켜 정직하나 온화하고, 관대하나 엄격하며, 강건하나 포악하면 안 되고, 간소하나 오만하지 않게 하시오. ()로 마음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게 하고, 음절을 길게 늘려 시를 노래하게 하고, 음악 소리의 고저로 노래의 내용과 서로 배합시키게 하며, 또한 음률의 표준을 정해 음악의 소리와 조화시켜 여덟 종류의 악기가 내는 소리를 한 소리로 어울려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하시오. 이와 같이 한다면 능히 인간과 신이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오.

기가 말했다.

아아! 제가 석경을 절도있게 두드리자 온갖 짐승들이 모두 내게 달려와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순이 다시 용을 불러 말했다.

용이여! 나는 특히 남을 모함하거나 험담을 일삼고 도의를 끊는 행위를 하는 자들이 나의 신민들을 어지럽히는 것을 싫어하오. 내가 그대를 납언(納言)56) 임명하니 백성들이 사는 정황을 나에게 보고하되 정성을 다하시오.

순이 계속해서 말했다.

아 그대들 2257)은 근신하는 자세로 직무에 임하고 항상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치국의 대사를 이룰 수 있도록 나를 도우시오.

이후로 매 3년마다 관리들의 공적을 심사하여 세 번의 심사 결과 그들의 업적에 근거하여 승진시키거나 폐출시켰다. 그래서 가깝거나 멀거나를 막론하고 온 나라는 흥성하기 시작했다. 또한 귀순의 여부를 따져 삼묘(三苗) 부족을 셋으로 나누어 각가 다른 곳에 살게 했다. 22명의 사람들이 이룩한 공적은 다음과 같았다.

고요(皐陶)는 형법을 관장하는 대리(大理)에 임명되자 안건을 공정하게 판결했음으로 사람들을 모두 승복하게 되었고 세상의 있는 사실을 그대로 알 수 있게 만들었다.

백이(伯夷)는 예의를 관장하는 질종(秩宗)의 직에 임명되자 세상의 위아래가 모두 예의를 갖추어 겸양해졌다.

()가 공인들을 관장하는 공사(工师)에 임명되자 공인들은 모두 자신이 맡은 일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산택(山澤)을 관장하는 우()라는 직책에 임명되자 산림과 연못과 늪지가 모두 개발되었다.

()가 농업을 주관하는 직()이라는 직책에 임명되자 계절에 따라 백곡이 무성하게 자랄 수 있게 되었고 설()이 사도(司徒)의 직에 임명되어 교육을 담당하자 백관들은 모두 서로 친하고 화목하게 지내게 되었다. ()으로 하여금 빈객을 접대하게 하자 멀리 있는 제후들이 모두 달려와 조공을 바쳤다. 순은 지방에 12주를 설치하여 목사들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자 우()가 다시 정한 9주 내의 백성들은 누구 한 사람도 명령을 위반하여 항거하지 않았다. 그 중 우의 공적이 가장 컸는데 그는 9개의 큰 산을 통하게 하고 9개의 호택을 개통시켰으며 9개의 강을 뚫고 준설하여 전국 9주의 경계를 확정시켰다. 각 지방은 자기 지방의 특산물을 조공품으로 바쳤는데 모두 그 지역의 실정에 맞았다. 영토는 사방 5천리에 이르렀으며 모두 경사에서 가장 먼 변경지대의 황복(荒服)58)까지도 교화시킬 수 있었다. 남쪽으로는 교지(交阯), 석지(析枝)거수(渠廋)()()에 이르렀고, 북쪽으로는 산융(山戎)()식신(息慎), 그리고 동쪽으로는 장()과 조이(鸟夷)까지 회유하여 사해 안의 모든 종족들은 순의 공덕을 칭송했다. 또 우()구초(九招)라는 음악을 만들어 순의 공덕을 노래하자 봉황과 같은 상서로운 짐승들이 날아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천하에 덕을 밝히는 정치는 모두 우순(虞舜)부터 시작되었다.

순은 20세에 효성으로 천하에 이름이 나기 시작했고 30세에 요에게 등용되었으며 50세에 천자를 대신해서 정무를 보았다. 58세에 요가 서거하고 61세에 요를 대신해서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제위에 오른지 39년 만에 남방으로 순시 나갔다가 창오(苍梧)의 교외에서 서거했다. 장강 남쪽 강변의 구억산(九嶷山)에 장사지내고 영릉(零陵)이라고 했다. 제위에 오른 순이 천자의 깃발을 단 수레에 타고 부친 고수에게 문안 인사를 올렸는데 받드는 태도가 매우 공손하여 효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또한 동생 상을 유비(有鼻)에 봉하여 제후로 삼았다. 순은 자신의 아들 상균(商均)은 불초했음으로 우를 상제에게 천거한 후에 7년 만에 서거했다. 순의 3년 상을 마친 우가 천자의 자리를 순의 아들 상균에게 양보했다. 그러자 옛날 순이 요의 아들에게 천자의 자리를 양보했을 때와 같이 제후들은 모두 우에게 복종했음으로 결국 우가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요의 아들 단주와 순의 아들 상균은 당()과 우()의 땅을 봉지로 주어 선조들에게 제사를 올리도록 했다. 우는 그들에게 천자의 복식을 입게 하고 천자의 의식을 행하게 했다. 그들이 천자를 접견할 때는 손님의 신분으로 했으며 천자는 그들을 신하처럼 대하지 않음으로써 감히 천자의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을 것임을 표명했다.

황제로부터 순(), ()까지 모두 동성이나 나라 이름이 각기 다른 것은 각자의 공덕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황제(黃帝)는 유웅(有熊), 제전욱(帝颛顼)은 고양(高阳)제곡(帝喾)은 고신(高辛)제요(帝堯)는 도당(陶唐), 제순(帝舜)은 유우(有虞), 제우(帝禹)는 하후(夏后)라고 칭해 각자의 씨로 했으며 그들의 성은 다 사(). 후에 상나라의 시조가 된 설()은 자() 성이고 주()나라의 시조가 된 기()는 희() 성이다.

 

태사공이 말한다.

많은 학자들은 오제(五帝)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오제의 연대는 이미 너무 오래 된 일이다. 상서(尚书)에는 요() 이래의 일만 기술되어 있고 백가들은 황제(黃帝)의 일을 기술했지만 그해 사대부들은 그 문장이 조악하여 전범이 되지 못하여 사대부들도 그것들을 확실하게 밝히는 것을 어렵게 생각했다. 공자가 쓴 재여문오제덕(宰予问五帝德)제계성(帝系姓)과 같은 책은 유생들이 전수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서쪽으로는 공동(空桐)북쪽으로는 탁록(涿鹿)동쪽으로는 대해(大海)남쪽으로는 강수와 회수를 건너 여러 지방을 다녀봤다. 황제와 요순이 거처했던 곳이 장로들이 들었던 그들의 사적과 풍속 및 교화의 내용은 다른 지방 사람들의 말과는 특이하게 달랐다 .총체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그들의 말이나 고문(古文)의 경적(經籍)의 기사가 비교적 사실과 부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춘추(春秋)국어(国语)를 통해 오제덕(五帝德)제계성(帝系姓)의 내용을 확실하게 파악했으며 다만 사람들이 깊이 연구하여 구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것들은 모두 허황된 말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상서(尚书)의 기록가운데 이미 오랫동안 망실되거나 누락된 부분이 다른 책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만일 즐겨 배우고 깊이 연구하여 진정으로 마음속으로 그것들의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한다면 이러한 것들을 학문이 얕고 견문이 좁은 사람과는 토론하기란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나는 그와 같은 자료들을 수집하여 순서를 정해 편집한 후에 그 중 특별히 언사가 정아한 기록들만을 선택하여 오제본기를 지어 이 책의 맨 앞에 두었다.

 

주석

1) 소전(少典) : 사마정(司馬貞)의 색은(索隱)에 소전은 인명이 아니라 제후국의 이름이라고 했다. 실제로는 고대의 부족이름이다. ()는 후손을 의미한다.

2) 공손(公孫) : 색은의 황보밀(皇甫謐)의 주에 의하면 황제는 수구(壽丘)에서 태어나 희수(姬水)에서 자랐음으로 희를 성으로 삼았다.’고 했다. 따라서 황제의 성은 희()이고 공손(公孫)은 공후의 자손이라는 일반 명칭으로 황제의 성은 아니다.

3) 전설에 의하면 소전국 군주의 황후인 부보(附寶)가 야외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나고 북두칠성의 첫째 별인 추()에 휘감겨 임신하게 되어 24개월 만에 수구(壽丘)에서 아들을 낳았다. 아이는 용모가 출중하고 이마는 태양처럼 생겼으며 눈썹의 윗부분은 용골처럼 생겼다고 했다.

4) 유약(幼弱) : ()은 생후 7() 70일 이내의 간난아이를 말한다.

5) 신농(神農) : 그 이름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농업의 신이다. 염제(炎帝) 즉 태양의 신이기도 한 그는 인간들에게 괭이를 만들어서 땅을 일구는 방법을 가르쳤다. 태양의 광열에 의해서 오곡을 풍요롭게 결실 시켜서 인간의 식생활에 지대한 공헌을 했을 뿐 아니라 태양이 중천에 오르는 한낮을 눈금으로 해서 사람들을 시장에 모이게 하여 교역을 하는 길을 가르쳤다. 이 점에서의 그는 상업의 신이기도 하지만 게다가 또 의약의 신으로서도 받들어졌다.

6) 치우(蚩尤) :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의 신으로 짐승의 몸과 구리로 된 머리, 쇠의 이마를 가졌다거나, 눈이 네 개, 손이 여섯 개이며 인간의 몸과 소의 발굽을 가졌다고도 했다.. 모래나 돌, 쇠를 먹는 괴물로 똑같은 모습의 형제가 80명이 있었다고 했다. 전쟁 때는 이들 형제 외에 수없이 많은 이매망량(魑魅魍魎) 즉 산천(山川)이나 목석(木石)의 정령(精靈)에서 생겨난다는 온갖 도깨비들을 아군으로 삼아 바람, , 연기, 안개 등을 일으켜서 황제의 군대를 괴롭혔다. 치우는 전쟁에 필요한 도끼, 방패, 화살 등의 뛰어난 무기를 발명하기도 한 전쟁을 주관한 신으로 받들여지고 있다.

7) 오기(五氣) : 오행(五行)의 기를 의미한다는 설과 청(), (). (). (). () 등의 다섯 가지의 기상 상태를 의미한다는 설이 있다.

8) 웅비(熊羆) : 웅은 곰이고 비는 큰곰 혹은 말곰이다.

9) 비휴추호(貔貅貙虎) :비휴는 호랑이 비슷하게 생긴 맹수로써 수컷은 비(), 암컷은 휴()라 하고 추()는 삵괭이 비슷하나 크기가 매우 큰 맹수다. 호랑이를 포함하여 모두 사나운 맹수를 말하는데 여러 가지로 해석한다. 첫째는 황제가 이런 맹수들을 훈련시켜 전쟁에직접 동원했다는 설이고, 둘째는 짐승이름을 딴 용맹한 부대를 지칭한다는 설, 셋째는 이런 맹수를 토템으로 삼은 부족 이름이라는 설 등이 있다.

10) 판천(阪泉) : 지금의 하북성 탁록현(涿鹿縣)이다.

11) 환산(丸山) : 범산(凡山)이라고도 하며 지금의 산동성 유방시(濰坊市) 관할의 창락현(昌樂縣)과 임구현(臨胊縣) 사이에 있는 산이다.

12) 대종(岱宗) : 태산(泰山)을 말한다.

13) 공동(空桐) : 공동산(崆桐山)으로 라고도 하며 중국 감숙성 평량현(平凉縣)에 위치한 산으로 육반산맥(六盘山山脉)에 속하며 주봉 취병봉(翠屏峰)은 해발 2,123m이다. 산 밑으로는 경수(涇水)와 아래에는 연지하(胭脂河)가 흐르고 있다. 이 산은 도교 제일의 명산으로 호랑이가 웅크리고 용이 감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산해경(山海经), 수경주(水经注), 한서(汉书)에 이 산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으며, 특히 봉신연의(封神演义)에는 이 산과 주변의 11개 산봉우리가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다. (), (), (), () 각 시대에 걸쳐 무수한 도교 선원이 이곳에 세워졌다. 그 중 명대(明代)에 축조된 것이 8(), 9(), 12(), 42()의 건축군을 형성하고 있어 그 규모가 가장 크다. 장자·재유(莊子·在宥)의 기록에 따르면 황제(黄帝)가 일찍이 공동산에 올라 이곳에 은거하던 도교의 신선인 광성자(广成子)에게 도()에 대해서 물으며 치국치도(治国之道)와 양생지술(养生之术)에 대해 가르침을 청했다고 했다. 후에 진시황과 한무제(汉武帝)도 황제(黄帝)의 행적을 모방하여 이곳에 올랐다고 했다. 공동무술은 소림, 무당, 아미, 곤륜 등과 함께 유명한 무술 유파에 속한다.

14) 웅산(熊山) : 지금의 하남성 노지현(盧氏縣)에 있는 산 이름이다.

15) 상산(湘山) : 지금의 호남성 악양시(岳陽市) 경내의 동정호(洞庭湖) 안 섬에 솟아 있는 여러 섬의 군칭이다.

16) 훈육(葷粥) : 흉노의 요임금 때 명칭이며 주나라 때는 험윤(獫狁), 진한(秦漢) 때는 흉노라 불렀다.

17) 부산(釜山) : 지금의 하북성 회래현(懷來縣) 북쪽이다. 그 밖에 하북성 서수현(徐水縣), 하남성 영보현(靈寶縣), 하남성 언사시(偃師市) 등 여러 설이 있다.

18) 원문은 합부(合符). ()는 고대 왕조의 조정에서 지방정부에 명령을 전달할 때나 군대를 징집할 때 발행하는 신표로 보통 대나무, 나무, 금속이나 옥 등으로 만든 후에 두 개로 나누어 갖고 있다가 후에 일이 있을 때 서로 맞추어 그 진위를 확인 한 후에 명령을 시행했다. 그래서 부()를 서로 맞추어 보는 행위를 합부(合符)라고 했다.

19) 보정(寶鼎)은 천자(天子)를 상징하는 보배로운 솥이고 신책(神策)은 점을 칠 때 사용하는 산가지를 뜻한다. 하늘로부터 보정과 신책을 얻어 천자의 자리에 오른 황제는 대요(大撓)를 시켜 60갑자를 만들게 하고 용성(容成)에게 신책을 사용하여 역법(曆法)울 먼둘오 연(), (), ()과 절기(節期)를 추산하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20) 유릉(幽陵) : 지금의 하북성과 요녕성 남부를 지칭한다.

21) 교지(交阯) : 지금의 광동성 일대와 월남 북부 지역을 말한다.

22) 유사(流沙) : 고대 중국의 서북사막을 일컫는 말로써 통상적으로 감숙성과 신강성의 경계지역을 말한다.

23) 반목(蟠木) : 동해 바다 가운데의 도색산(度索山)에 나는 복숭아나무를 말한다. 해외경(海外經)에 나온 것을 사기집해(史記集解)에서 배인(裴駰)이 인용한 구절에 따르면 동해바다 섬 한 가운데에 도색산이 있고 그 산에는 반목(蟠木)이라는 복숭아나무가 삼천여 리 뻗혀 있다. 동해가 항상 파란 것은 그 복숭아나무의 영향 탓이라고 했다.

24) 송나라 때 문헌인 제왕세기(帝王世紀)에 의하면 제곡은 4명의 왕비를 두었는데 원비(元妃)는 유태씨(有邰氏)의 딸 강원(姜嫄)으로 주()나라의 시조인 후직(后稷)을 낳았고, 차비(次妃)는 유웅씨(有熊氏)의 딸 간적(簡狄)으로 상나라의 시조인 설()을 낳았으며, 후비 진봉씨의 딸은 경도(慶都)로 방훈을 낳았고, 추자씨의 딸 상의(尙儀)는 지()를 낳았다고 했다.

25) 양곡(暘谷) : 신화상의 태양이 떠오르는 곳이다. 탕곡(湯谷)이라고도 한다.

26) 조성(鳥星) : 28수 중 남방주작(南方朱雀)에 해당하는 정()()()()()()(등의 7수 중 4번 째 별인 성성(星星)이다. 병란(兵亂)이라 도적의 일을 주관하는 별이다. 고대인들은 계절을 관측하여 정할 때 이 별을 기준으로 삼았다.

27) 화성(火星) : 28수 중 동방창룡(東方蒼龍)에 해당하는 각(), (), (), (), (), (), () 7 수 중 5번 째 별인 심성(心星)으로 대화(大火: 일명 상성(商星))라고도 한다. 상벌(賞罰)을 주관하는 별이다.

28) 매곡(昧谷) : 양곡(暘谷)에서 뜬 해가 져서 머문다는 서쪽의 계곡으로 신화상의 골짜기다.

29) 성허(星虛) : 북방현무(北方玄武)에 해당하는 두(), (), (), (), (), (), () 등의 7수 중 4번 째 별인 허성(虛星)으로 묘당과 제사 등 죽음에 관한 일을 주관한다.

30) 유도(幽都) : 세상의 북쪽 끝에 있다는 전설상의 땅

31) 묘성(昴星) : 28수 중 서방백호(西方白虎)에 해당하는 규(), (), (), (), (), (), () 등의 7수 중 네 번째 별로 하늘의 눈과 귀 역할을 하고 상사(喪事)를 주관한다고 했다.

32) 공공(共工) : 치수와 토목공사를 담당했던 관리의 우두머리다.

33) 사악(四嶽) : 사방의 지방의 제후들을 나누어 관장하는 지방장관에 해당하는 관직명이라는 설과 위에 나오는 4계절과 농사와 사냥을 관장했던 화중(和仲), 화숙(和叔), 희중(羲仲), 희숙(羲叔) 등의 네 명을 가르킨다는 설이 있다.

34) 규예(嬀汭)) : 규수(嬀水)와 예수(汭水). 영제현(永濟縣)남쪽의 역산(歷山)2개의 샘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강이름으로 북쪽의 것을 규(), 남쪽의 것을 예()라 했다. 두 강은 산 밑에서 합류하여 서쪽으로 흐르다가 속수(涑水)와 합류하여 포주(蒲州)에서 황하로 흘러들어갔다. 역산에서 농사를 짓던 순임금이 요임금의 두 딸을 얻어 규예에 살았음으로 순임금의 후예들은 규()를 성으로 삼았다. 주무왕이 주나라를 세울 때 순임금의 후예인 규만(嬀滿)을 찾아 진()에 봉했다.

35) 오전(五典) : 다섯 가지의 윤리와 도덕으로 즉 아비는 의로워야 하는 부의(父義), 어미는 자애로워야 하는 모자(母慈). 형은 우애로워야 하는 형우(兄友), 동생은 공경해야 하는 제공(弟恭), 자식은 효도해야 하는 자효(子孝).

36) 사문(四門) : 천자가 신하들과 함께 조회를 보는 명당의 사방으로 난 대문

37) 선기옥형(璿璣玉衡) : 선기(璿璣)는 옥으로 장식한 천문을 관찰하는 기구이고, 옥형(玉衡)은 그 기구의 손잡이로 역시 옥으로 만들었다.

38) 칠정(七政) : (), (), (), (), () 등의 오성과 해와 달을 말한다.

39) 유사(類祀) : 지상의 여러 가지 일을 하늘에 보고하는 의식의 제사

40) 육종(六宗) : 여섯 가지 신으로 천(), (), (), (), (), ()이러는 설과 성(), (), 사중(司中), 사명(司命), 풍사(風師), 우사(雨司)이라는 설이 있다. 사중은 인간의 삶을, 사명은 인간의 죽음을 주관하는 신이다.

41) 인제(禋祭) : 제물(祭物)을 불 위에 올려놓고 태워 하늘에 지내는 제사. 제물을 태워 그 냄새가 하늘에 닿도록 했음으로 인제라 했다.

42) 망제(望祭) : 명산대천에 지내는 제사

43) 오서(五瑞) : 제후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옥패로 공(), (), (), (), ()의 작위에 따라 각각 달랐다.

44) 오례(五禮) : 제사를 지내는 길례(吉禮), 상사(喪事)에 관한 흉례(凶禮), 손님을 맞이하는 빈례(賓禮), 군례(軍禮), 혼인에 대한 가례(嘉禮) 등 다섯 가지 예절이다.

45) 오옥(五玉) : 오서(五瑞)을 말한다. 앞서의 주석 43번 참조

46) 삼백(三帛) : 제후가 천자에게 조현을 행하면서 바치는 옥을 밑에 까는 비단으로 세 가지 색깔이 있었다. 고양(高陽) 씨의 후손들은 붉은 색을, 고신(高辛) 씨의 후손들은 흑색을 기타 제후들은 백색 혹은 황색을 사용했다.

47) 이생(二生) : 경대부들이 조현을 올릴 때 바치는 예물로 어린 양과 기러기다.

48) 일사(一死) : ()가 조현을 올릴 때 바치는 예물로 꿩을 말한다.

49) 오기(五器) : 오서(五瑞), 오옥(五玉) 등과 같은 말이다.

50) 12: (), (), (), (), (), (), (), (), (), (), (), () 등이다.

51) 삼묘(三苗) : 지금의 상(), (), (), () 등의 일대에 흩어져 살았던 남방계의 이민족 이름이다.

52) 소호씨(少皞氏) : 성은 기() 혹은 영()고 이름은 지(). 곡부(曲阜)에 살았으며 궁상제(穷桑帝)라고 불리웠다. 황제의 후손으로 중국과 이적의 땅을 번갈아가며 살았다. 소호씨는 동방으로 진출한 황제의 한 지족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족과 잡거하여 태호족(皞族的)의 문화를 접수했음으로 소호라고 칭해져 이족문화의 계승자가 되었다. 춘추 때 담국(郯国)은 소호의 후손이라고 자처했다.

53)고요(皋陶) :순임금 때 동이족의 수령으로 형법을 관장하는 벼슬을 지냈다. 백성들은 모두가 그의 공평한 법 집행에 복종했다. 후에 우()임금이 황하의 치수 공사를 할 때 도와 공을 세워 그에게 하나라의 임금자리를 물려주려고 했으나 우임금보다 먼저 죽어 전할 수 없었다. 우임금은 그의 후손들을 영(: 지금의 호북성 영산(英山) 동북), (), (: 지금의 하남성 허창시 부근) 등에 봉했다.

54) 삼취(三就) : 중죄인은 교외에서, 그 다음에 해당하는 죄인은 시정이나 조당에서, 동족들에게 죄를 지은 자들은 전사씨(甸師氏)씨에게 보내 형을 집행하는 규정을 말한다.

55) 공공(共工)

신화 상의 인물로 염제의 후손이다. 인면사신(人面蛇身)에 붉은 털의 몸으로 두 마리의 용을 타고 다녔다. 전욱(顓頊)과 임금의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화가 나서 부주산(不周山)을 들이받자 하늘을 바치고 있는 기둥을 부러뜨리고 땅을 감싸고 있던 그물을 끊어 싸움에서 승리를 취했다.

요순(堯舜) 때 대신으로 이름은 궁기(窮奇)이다. 공공은 치수를 담당하는 관직의 이름이기도 하다. 요임금이 그 신하들과 자기의 후계자로 누구를 세울 것인가에 대해 의논하자 대신 중에 환도(讙兜)라는 사람이 그를 추천했다. 그러나 요임금이 공공은 입으로는 선을 말하나 속으로는 사악한 마음을 품고 있고, 겉으로는 공경하는 자세를 취하나 안으로는 커다란 증오심을 품고 있다고 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순임금이 요임금의 뒤를 잇자 환도가 다시 그 후계자로 공공을 천거했으나 순임금 역시 요임금의 유시를 따라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았다. 후에 공사(工師)의 직을 맡은 공공은 그의 사악한 행동이 들어나 환도, 삼묘(三苗), () 등의 3인과 소위 사흉(四凶)이라는 죄명을 받아 유주(幽州)로 추방되었다.

56) 납언(納言) : 신하와 백성들의 말을 왕에게 진언하고 왕의 명령을 밑으로 전담하는 관직이름이다.

57) 22: 앞서의 순이 직접 관직에 임명한 아홉 사람과, 12주목(州牧), 사악을 포한함 숫자라는 설이 있다.

58) 황복(荒服) : 수도를 중심으로 거리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눈 구역 중의 하나다. 수도가 위치한 지역을 중심으로 500리 내의 지역을 왕기(王畿)로부터 시작해서 매 500리를 단위로 전복(甸服), 후복(侯服), 수복(綏服), 요복(要服), 그리고 가장 먼 곳을 황복(荒服)이라고 했다.

< 오제본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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