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貧窮田舍漢(빈궁전사한) - 王梵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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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654회 작성일 12-06-1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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貧窮田舍漢(빈궁전사한)

- 가난한 시골 사람 -


王梵志(?—約670年)

승려 출신으로 당대로써는 보기드믄 시인이다. 위주(衛州) 여양(黎陽) 출신이다. 여양은 지금의 하남성 준현(浚縣)이다. 원래의 이름은 범천(梵天)이고 그의 생애나 가족 관계 등 모두가 불상이다. 시가의 주제는 모두 설법이나 교화를 대상으로 대부분이 불교의 가르침을 이용하여 세상사람들에게 선행을 행하고 악행을 멈추라는 설법이 주를 이루었다. 당시 세태에 대해 풍자와 야유를 행해 그의 작품 대부분은 소극적이고 격조가 낮으며 언어가 매우 통속적이었다. 항상 그의 생활태도는 세상의 풍조에 대한 조롱과 해학으로 점철되어 있었으며 예술성은 비교적 높지 않았다. 그러나 초당 시기의 백화체 형식으로 지은 그의 시는 중국 시가 발전에 일정부분 참고할 가치를 갖고 있다. 초당 시기 성행했던 전아한 병려체 형식의 시풍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원래 그의 시집이 있었으나 유실되고 지금은 후인이 정리한 《왕범지시교집(王梵志詩校輯)》에 그의 시 348수가 실려있다.



貧窮田舍漢(빈궁전사한)

가난한 시골뜨기 초가집이



庵子極孤恓(암자극고서)

너무나도 외롭고 쓸쓸하다.



兩共前生種(양공전생종)

두 사람이 모두 전생의 업으로 인해



今世作夫妻(금세작부처)

현세에 와서 부부가 되었다.



婦即客舂搗(부즉객용도)

이내는 품을 팔아 얻은 나락을 찧고


夫即客扶犁(부즉객부리)

남편은 품팔아 쟁기를 밭간다.



黃昏到家裏(황혼도가리)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無米複無柴(무미복무시)

쌀도 땔감도 모두 없다.



男女空餓肚(남녀공아두)

두 부부가 공연히 굶주린 배를 쓸어안고



狀似一食齋(상사일식제)

그 형상이 마치 하루 한끼의 재계 같다.



里正追庸調(이정추용조)

이장은 용세와 조세를 재촉하고



村頭共相催(촌두공상최)

촌장은 이장을 부추겨 다그친다.



襆頭巾子露(박두건자로)

머리에 쓴 두건은 헤어지고



衫破肚皮開(삼파두피개)

홑적삼도 헤어져 뱃가죽이 드러난다.



體上無褌褲(체상무곤고)

몸에는 잠방이도 못 걸치고



足下複無鞋(족하복무혜)

발에는 짚신조차 신지 못했다.



醜婦來惡罵(추부래악매)

못생긴 아내 와서 욕설을 해대고



啾唧搦頭灰(추즉익두회)

시끄럽게 떠들며 머리에 쓴 수건 잡아채니



里正被腳蹴(이정피각축)

이장에게 발길질 당하고



村頭被拳搓(촌두피권차)

촌장에게 주먹으로 얻어맞는다.




驅將見明府(구장견명부)

현청에 달려가 알현을 청하면



打脊趁回來(타척진회래)

등짝을 때리고 돌려보낸다.



租調無處出(조조무처출)

세금을 낼 방도가 도저히 없으니



還須裏正倍(환수리정배)

당연히 이장이 배상하겠네




門前見債主(문전견채주)

빚쟁이가 대문 앞에 다가와



入戶見貧妻(입호견빈처)

집안에는 가난에 찌든 처가 보이고



漏舍兒啼哭(루사아제곡)

비가 새는 초가 밑에서는 아이가 울고 있으니



重重逢災苦(중중봉재고)

재앙과 고생은 줄줄이 이어져 끝이 없다.



如此硬窮漢(여차경궁한)

이와 같이 가난한 농부는



村村一兩枚(촌촌일양매)

온 나라 촌락마다 두 집은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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