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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懷沙) - 돌을 가슴에 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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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962회 작성일 11-03-2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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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懷沙)

- 돌을 가슴에 품고 -

굴원(屈原)

굴원은 장강(揚子江) 중부 유역의 큰 나라였던 초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났다. 그는 초회왕(楚懷王)의 신임을 받아 20대의 약관에 좌도(左徒)라는 중책을 맡았다. 좌도는 국가의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여 의견을 개진하고 외국의 사신을 접대하는 일을 맡은 초나라의 관직이다. 회왕이 굴원(屈原)에게 나라의 율령을 제정하라고 명하자 상관대부였던 근상(靳尙)은 질투심에 한을 품고 굴원이 작성한 율령의 초안을 빼앗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근상은 굴원이 자기의 공을 지나치게 과시하여 교만해 한다고 참소했다. 이로써 굴원은 회왕의 눈 밖에 나게 되었다. 한편 굴원은 제(齊)와 동맹해 강국인 진(秦)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진(秦)나라의 재상 장의(張儀)와 내통하고 있던 회왕의 막내 아들 자란(子蘭) 및 근상과 왕의 애첩 정수(鄭袖)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회왕은 장의의 위지사초(僞地詐楚)의 계략에 빠져 제나라와 단교했으나 결국 진나라에게 기만당하고 외교상의 고립으로 야기된 위기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진나라의 소양왕을 만나기 위해 진나라에 들어갔으나 오히려 억류당해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고 말았다. 초회왕이 돌아오지 못하자 본국의 큰아들이 왕위에 올랐다. 이가 경양왕(頃襄王)이고 막내인 자란(子蘭)이 영윤(令尹:재상)이 되었다. 굴원은 회왕을 객사하게 한 자란을 백성들과 함께 비난하다가 또다시 모함을 받아 장강 이남의 소택지(沼澤地)로 추방되었다. 『어부사(漁父辭)』는 그때 쓴 작품이다. 그는 유배지에서 무속적 민속의식을 관찰하고 그의 작품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전설들을 수집했다. 처음 회왕에게 내쫓기어 유배되었을 때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장편 서정시 『이소(離騷)』를 써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離)'는 '만나다'의 뜻이고 '소(騷)'는 '근심'이라는 뜻이니 ‘이소’란 곧 '근심을 만나다'라는 뜻이다. 『이소경(離騷經)』은 후세 사람들이 이 시를 높여 부른 이름이다.

「이 시가 말하고 자는 뜻은 위로는 당우(唐虞)와 삼후(三後) 등 성왕들의 법을 들어 왕화를 말하고, 아래로는 걸(桀)·주(紂)·예(羿)·요(澆)의 패망함을 들어 말함으로써 군왕이 깨닫고 정도(正道)로 되돌아가 다시금 자기를 불러주기를 바램이다.」

당우(唐虞)의 당(唐)은 당요(唐堯) 즉 요임금이고 우는 우순(虞舜) 즉 순임금이며, 삼후는 하우(夏禹), 상탕(商湯), 주무(周武)의 삼왕을 말한다. 위의 글은 왕일(王逸)과 주자(朱子)의 『이소경』서문의 한 구절이다. 굴원은 그토록 애타게 자기의 충정을 노래하다가 한 번 용서받은 바 있었으나, 다시금 참소를 받아 경양왕에 의해 멀리 장강 남쪽 강남지방으로 내쫓기는 몸이 되었다. 애국시인은 유배에 대한 절망감으로 강가를 하염없이 거닐며 시를 읊조리다가 마지막으로 『회사(懷沙)』의 부(賦)를 짓고 고결한 성품을 그대로 간직한 채 돌을 안고 멱라강(汨羅江:지금의 汨水)에 몸을 던졌다. 중국에서 음력 5월 5일에 벌어지는 유명한 용선(龍船) 축제는 이 애국시인의 유체를 찾던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굴원의 작품들은 고대 중국의 명시선집인 『초사(楚辭)』에 실려 있다. 이 시집은 후세 시인들이 굴원의 전설적인 삶에 대해 쓴 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초사라는 문학 장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시경의 4언체와 한대 악부의 5언체를 잇는 가교에 해당한다고 평가되고 있다.


陶陶孟夏兮(도도맹하혜)

햇볕이 따가운 초여름이



草木奔奔 (초목망망)

초목이 무성도 하구나



傷懷永哀兮(상회영애혜)

쓰라린 마음에 영원한 슬픔 안고



徂南土(율조남토)

유유히 흘러서 남쪽 땅으로 가련다.



瞬兮杳杳(순혜묘묘)

쳐다만 보아도 아득하고 멀어서



孔靜幽(공정유목)

소리조차 없이 조용하기만 하구나.



鬱結紆軫兮(울결우진혜)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



離愍而長鞠(이민이장국)

시름에 겨우니 못내 괴롭다.



撫情效志兮(무정효지혜)

(情)을 억누르고 뜻을 헤아려



寃屈而自抑(원굴이자억)

원통함을 삼키고 스스로 참는다.



刓方以爲圜兮(완방이위환혜)

모난 것을 깎아서 동그라미 만들어도



常度未替(상도미체)

일정한 규범은 바꾸지 않는데



初本兮(이초본적혜)

근본(根本)과 초지(初志)를 고치는 일은



君子小鄙(군자소비)

군자(君子)에게 얕보이는 법이다.



章畫志墨兮(장화지묵혜)

먹으로 분명히 그려 놓은



前圖未改(전도미개)

옛날의 설계는 고치지 않으며



內厚質正兮(내후질정혜)

후덕한 충정과 올바른 성품은



大人所盛(대인소성)

대인(大人)이 기리는 바다.



巧倕不斲兮(교수불착혜)

교수(巧倕)①라도 잘라보지 않았는데



孰察其揆正(수찰기규정)

그 치수가 올바른지 누가 알겠는가?



玄文處幽兮(현문처유혜)

검은 무니가 어두운데 놓이면



矇瞍謂之不章(몽수위지부장)②

청맹과니는 불분명타 하고



離婁微睇兮(이루미제혜)

이루(離婁)③가 실눈을 뜨더라도



瞽以爲無明(고이위무명)④고

소경은 못 보는 줄로 여기지!



變白以爲黑兮(변백이위흑혜)

흰색을 바꾸어 검다고 하고



倒上以爲下(도상이위하)

위를 거꾸로 아래라 한다.



鳳凰在笯兮(봉황재노혜)

봉황(鳳凰)은 새장 속에 갇혀 있는데



雞鶩翔舞(계목상무)

닭과 집오리는 나다니며 춤을 추는도다!



同糅玉石兮(동류옥석혜)

옥(玉)과 돌을 한 곳에 섞어 놓고



槪面相量(일개면상량)

하나의 평미래로 재려고 하니



夫惟黨人之鄙固兮(부유당인지비고혜)

저 도당들의 비천하고 고루함이여!



羌不知余之所藏(강부지여지소장)

나의 진가를 모른다.



任重載盛兮(임중재성혜)

무거운 짐을 많이도 실어



陷滯而不濟(함체이부제)

바퀴가 빠져서 움직이질 않는다.



懷瑾握瑜兮(회근악유혜)

아름다운 보석을 품고 있지만



窮不知所示(궁부지소시)

길이 막혔으니 보일 데를 모르겠다.



邑犬之群吠兮(읍견지군폐혜)

마을 개들이 떼 지어 짖는 이유는



吠所怪也(폐소괴야)

낯설은 사람 때문이고



非俊疑傑兮(비준의걸혜)⑤

영웅과 호걸을 비방하는 건



固庸態也(고용태야)

본래가 용렬해서 그렇다.



文質疏內兮(문질소내혜)

무늬와 바탕은 안으로 갖췄으니



衆不知余之異采(중부지여지이채)

중인(衆人)들은 이채로운 줄 모르고



材朴委積兮(재박위적혜)

재목과 원목이 산처럼 쌓여 있어도



莫知余之所有(막지여지소유)

내 것인 것을 모르는도다!



重仁襲義兮(중인습의혜)

어짐(仁)이 겹치고 정의가 이어지고



謹厚以爲豊(근후이위풍)

근신과 온후함이 풍성하여도



重華不可迕兮(중화불가오혜)

순임금님은 만날 수 없으니



孰知余之從容(숙지여지종용)

누가 나의 거동을 알아나 줄까?



古固有不竝兮(고고유불병혜)

원래 성군과 현신은 같이 하지 않는다했지만



豈知其何故(기지기하고)

그 까닭을 어찌 알겠는가?



湯禹久遠兮(탕우구원혜)

탕(湯)과 우(禹)는 먼 옛날이야기



邈而不可慕(막이불가모)

아득하여 생각할 수도 없다.



懲違改忿兮(징위개분혜)

잘못을 뉘우치고 원한을 삭이고



抑心而自强(억심이자강)

마음을 억눌러서 스스로 참아



離愍而不遷兮(이민이불천혜)

시름이 겨워도 변하지 않으리니



願志之有像(원지지유상)

이 뜻을 본보기로 하리라.



進路北次兮(진로북차혜)

길을 나아가 북쪽에 이르니



日昧昧其將暮(일매매기장모)

해는 뉘엿뉘엿 어두워진다.



舒憂娛哀兮(서우오애혜)

시름을 풀고 서글픔을 달래며



限之以大故(한지이대고)

지나간 큰일들을 마감하리라.





亂曰(난왈)

노래 끝에 이르기를



浩浩沅湘(호호원상)

넘실거리는 원수(沅水)와 상수(湘水)



分流汩兮(분류율혜)

두 갈래로 굽이쳐 흐르고



脩路幽蔽(수로유폐)

깊숙이 숨은 긴 길은



道遠忽兮(도원홀혜)

저쪽 편 멀리 사라져 버린다.


懷質抱情(회질포정)

가슴에 품은 도타운 정은



獨無匹兮(독무필혜)

비할 데 없이 우뚝하지만



伯樂旣沒(백락기몰)

백락(伯樂)⑥이 이미 죽었으니



驥焉程兮(기언정혜)

천리마를 어찌 알아보려나?



萬民之生(만민지생)

한 세상에 태어난 만민(萬民)은



各有所錯兮(각유소착혜)

각기 제자리가 있거늘



定心廣志(정심광지)

마음을 정하고 뜻을 넓히면



余何畏懼兮(여하외구혜)

내 무엇을 두려워하랴?



增傷爰哀(증상원애)

상심이 더하여 서럽게 울며



永歎喟兮(영탄위혜)

기다랗게 한숨을 쉰다.



世溷濁莫吾知(세혼탁막오지)

세상이 혼탁하여 알아주는 이 없으니



人心不可謂兮(인심불가위혜)

사람의 마음을 일깨울 수 없도다!



知死不可讓(지사불가양)

죽음은 물릴 수 없다고 해도



爰勿愛兮(원물애혜)

애석하다 여기지 말아라!



明告君子(명고군자)

분명히 군자에게 고하노니



吾將而爲類兮(오장이위류혜)

내 이제 충신의 본보기가 되리라!



《끝》


주석

①교수(巧) : 중국 고대 신화상의 인물로 요임금 밑에서 공공(共工-技術官)을 지낸 장인의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수(垂)이나 재주가 비상하다고 해서 교(巧)를 붙여 교수라 칭했다. 해중(奚仲)은 수레를 교수는 배를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②矇瞍(몽수) : 몽(矇)은 눈동자가 있는 소경이고 수(瞍)는 눈동자가 없는 소경이다.

③이루(離婁) : 눈이 밝아 100보 밖의 가는 털로 볼 수 있었다는 중국 고대 신화상의 황제(黃帝) 때 인물이다.

④고(瞽) : 눈동자가 없어서 눈꺼풀이 위아래로 달라붙은 장님.

⑤영(英)은 만인을, 준(俊)은 천인을, 호(豪)는 백인을, 걸(桀)은 십인을 능가하는 인물을 지칭한다.

⑥)백락(伯樂) : 춘추 때 진나라 목공 때 사람으로 말을 잘 감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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