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聞謠輕殺 化厲鳴寃(문요경살 화려명원) > 1부1 제후굴기

제1회 聞謠輕殺 化厲鳴寃(문요경살 화려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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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12,778회 작성일 04-07-07 09:58

본문

1장 천하대란(天下大亂)

- 포사의 웃음 속에 피어오르는 천하대란의 전운 -

 

 

1. 국인폭동(國人暴動)

-학정을 행하다가 국인폭동으로 쫓겨나는 주여왕(周厲王) -

북송의 문인 유안(幼安) 신기질(辛棄疾)이 노래했다.

 

삼황오제(三皇五帝)시대에는 도덕으로

하은주 삼대는 공명으로 천하를 다스렸으나,

영웅오패가 춘추를 어지럽게 하자

순식간에 흥망이 무상하게 되었다.

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은 얼마이며,

북망산의 이름 없는 무덤은 얼마나 많았던가?

앞서간 선인들의 땅을

후세 사람들이 차지하려고 싸우니

이를 용쟁호투라 하지 않았는가?

 

道德三皇五帝(도덕삼황오제)

功名夏后商周(공명하후상주)

英雄五覇鬧春秋(영웅오패뇨춘추)

傾刻興亡過手(경각흥망과수)

靑史幾行名姓(청사기행명성)

北邙無數荒丘(북망무수황구)

前人田地後人收(전인전지후인수)

說甚龍爭虎鬪(설심용쟁호투)

 

주무왕(周武王)은 은()나라의 폭군 주왕(紂王)을 정벌하고 천자의 자리에 올라 주나라를 세웠다. 그의 뒤를 이은 성왕(成王)과 강왕(康王)은 주나라의 기업(基業)을 지켰다. 주공(周公), 소공(召公), 필공(畢公), 사일(史佚) 등의 여러 현명한 신하들이 천자를 보필하면서 문화를 일으키고 전쟁을 억제하여 평화가 지속되었다. 세상의 재화는 넉넉해지고 백성들의 생활은 안정되었다. 그러다가 주무왕으로부터 9대째인 이왕(夷王) 때에 이르러 세력이 강대해진 제후들이 천자를 가벼이 대하기 시작했다. 이왕이 죽고 그 뒤를 이은 여왕(厲王)은 포학무도했다.

주여왕이 30년 동안 재위하면서 이()를 탐하여 영이공(榮夷公)을 가까이 하였다. 대부 예량부(芮良夫)가 여왕에게 간했다.

왕실이 장차 쇠약해지려고 합니다. 눈앞의 이만 탐하고 있는 영이공의 행위는 나라에 큰 재난을 몰고 올 화근이라는 사실을 어찌하여 모르십니까? 무릇 이()란 온갖 일에서 발생하며, 또한 천지만물의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을 홀로 독점하려고 하니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해악의 원인이 될 겁니다. 천지간의 만물은 모든 사람이 취하여 같이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유독 한 사람에게만 독점하게 하십니까? 장차 백성들이 이 일로 분노하여 들고 일어나면 그때는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재물과 이로써 대왕의 마음을 미혹하는 영이공 때문에 대왕께서는 그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없게 될 겁니다. 무릇 왕 된 자는 마땅히 각종 재물을 개발하여 나온 이익을 상하 군신들과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하며, ()과 인간 및 만물로 하여금 각기 그들의 몫을 얻게 하셔야 합니다. 또한 매일 백성들의 원망을 사지 않을까 조심하시고 두려워하셔야 합니다. 그래서()에 다음과 같은 노래가 있습니다.

 

문덕에 빛나는 후직은,

능히 저 하늘과 짝하셨고

백성들을 배불리 먹게 하셨으니

어찌 지극한 덕이 아니겠는가?

思文后稷(사문후직)

克配彼天(극배피천)

立我烝民(입아증민)

莫匪爾極(막비이극)

우리에게 주신 밀과 보리는

하느님께서 명하시어 잘 자라게 하셨네,

내 것 네 것 가릴 것 없이

온 천하에 상도를 펴시었네!

貽我來牟(이아래모)

帝命率育(제명솔육)

無此彊爾界(무차강이계)

陳常于時夏(진상우시하)

 

 

대아(大雅)에 노래했습니다.

 

힘쓰시고 힘쓰신 문왕이시어!

어진 소문이 끊이지 않고 들려옵니다.

큰 복을 주시어 주나라 천하가 되어.

문왕의 후손들이 누립니다.

亹亹文王(미미문왕)

令聞不已(영문불이)

陳錫載周(진석재주)

侯文王孫子(후문왕손자)

 

문왕의 자손들이 이어받아

본손과 지손들 백세토록 번성하리!

주나라를 따르는 모든 선비들

대대로 이어가며 빛나소서!

文王孫子(문왕손자)

本支百世(본지백세)

凡周志士(범주지사)

不顯亦世(불현역세)

 

이것은 이익을 두루 나누어주면서도 오히려 환난이 일어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조심했기 때문에 우리 주나라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천자께서는 이익을 독점하는 방법만을 배우려고 하십니다. 그것이 가당한 일이겠습니까? 필부가 이익을 독점하면 사람들은 그를 도적과 같은 사람이라고 욕합니다. 하물며 왕 된 사람이 이러한 일을 행하려고 하니 세상의 어떤 백성들이 왕을 기꺼이 따르겠습니까? 신은 심히 걱정됩니다. 이치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천자께서 한사코 영이공을 계속 쓰신다면 주나라의 멸망은 불문가지입니다.

그러나 여왕은 예량부의 말을 듣지 않고 영이공을 경사(卿士)에 임명하여 주나라의 국정을 맡겼다.

포학무도(暴虐無道)하고 방종교오(放縱驕傲)한 여왕을 국인들이 모두 비방하였다. 소공이 간하여 말했다.

백성들이 천자의 명을 감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왕이 노하여 위()나라에서 무당을 불러와 천자를 비방하는 국인들을 감시하게 했다. 위무(衛巫)에게 고변 당하는 국인들은 모두 잡아다가 죽였다. 그러자 왕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없어지고 제후들은 입조하여 조현을 행하지 않았다. 여왕이 백성들을 더욱 엄하게 다스리니 국인들이 길을 가다가 만나도 말을 하지 못하고 서로 눈길만을 주고받으며 지나쳤다. 여왕이 기뻐하며 소공에게 말했다.

내가 능히 국인들의 비방하는 말을 막았다. 이제는 아무도 함부로 나를 비방하지 못하고 있다.

소공이 간했다.

백성들의 입을 막는 왕의 행위를 ()”이라 합니다. 억지로 백성들의 입을 막아 말을 못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백성들의 입을 막는 행위는 마치 도도하게 흐르는 물길을 막는 일과 같습니다. 막힌 물이 일단 터지면 둑이 무너져 수많은 사람이 몸을 상하게 됩니다. 백성들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치수를 위해서는 물길을 열어 흐르게 해야 하듯이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그들이 말을 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그런 연유로 왕이 정사를 돌볼 때 공경부터 사()까지의 모든 관리들에게 정치의 득실을 논한 시()를 지어 올리게 했습니다. 또한 악사(樂師)들에게는 악곡을, 사관에게는 사서(史書), 악관(樂官)들의 우두머리인 태사(太師)에게는 잠언(箴言)을 짓게 해서 바치게 했습니다. 장님으로 태어난 사람에게는 공경과 사대부들이 지어서 바친 시를 외워서 읊게 했습니다. 실명한 장님에게는 태사가 지은 잠언을 낭독시켰습니다. 그리고 백관들에게는 왕에게 간하도록 하고, 서인들에게는 자기들의 뜻을 전하여 왕에게 알리도록 했으며, 좌우의 근신들에게는 백관들이 바르게 간하도록 살펴보게 했습니다. 왕의 종친들이나 친족들에게는 왕이 잘못한 점을 보완하게 했으며, 태사(太師)와 태사(太史)는 잠언(箴言)과 사서(史書)로써 왕을 교도했습니다. 백관들 중 나이가 많이 든 사()나 부()의 직에 있는 기애(耆艾)들은 항상 왕에게 훈계했습니다. 그런 연후에 왕은 이 모든 것들을 참작하여 일을 행했음으로 낭패를 당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입이란 대지(大地)의 산천(山川)과 같아 온갖 재화가 산출되는 근원이며, 광활한 평야나 비옥한 전답과 같아 사람이 필요로 하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산출하는 존재와 같습니다. 백성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하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모두 나타나게 되어 좋은 일은 행하고 나쁜 일에 대해서는 대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땅에서 얻어지는 재물들을 모두 백성들이 먹고 입는 데에 사용해야 하는 법입니다. 무릇 백성들이 마음속의 걱정을 입 밖으로 뱉어 내는 말들은 여러 번 생각한 후에 나온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입을 계속 틀어막기를 계속한다면 그것들을 얼마나 오래 붙잡아 둘 수 있겠습니까?

여왕은 소공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나라 안에서는 아무도 감히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되었다. 그런 상태로 3년이 되던 해에 학정을 못 견딘 국인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여왕은 나라에서 쫓겨나 체(: 현 산서성 곽현(霍縣) 경내로 분수(汾水) 강변의 고을이다.) 땅으로 도망가 살았다. 이 일이 600여 년간 계속된 변란의 시작이었다.

여왕의 태자 정()이 소공의 집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국인들이 몰려와 소공의 집을 에워싸고 태자를 잡아서 죽이려고 하였다. 소공이 국인들 앞으로 나가기 전에 좌우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여러 번 도망친 왕에게 간했지만 왕은 듣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난리가 일어났다. 오늘 내가 왕태자를 잡아서 국인들에게 넘겨 죽게 만든다면 나는 군왕의 원수가 되어 그의 원망을 사지 않겠는가? 무릇 군주를 모시는 자는 자기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자신의 군주를 원망하지 않는 법이고, 군주가 자기를 책망하더라도 노하면 안 되는 법인데 하물며 천자를 모셨던 신하로써 어찌 원수가 될 수 있겠는가?

소공은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속여 폭동을 일으킨 국인들에게 넘겨 대신 죽게 했다. 그는 주공과 함께 섭정이 되어 달아난 여왕 대신 주나라를 다스렸다. 이 기간 동안을 공화(共和)라고 한다. 공화 14년 즉 기원전 828년에 여왕이 체()에서 죽었다. 그 동안 태자 정은 소공의 집에서 숨어 살면서 헌헌장부로 성장해 있었다. 주공과 소공 두 재상이 뜻을 같이하여 태자 정을 추대하여 왕으로 세웠다. 정이 주선왕(周宣王)이다. 선왕이 즉위하자 두 재상이 보좌하여 주나라의 정치가 크게 쇄신되어 문무(文武)와 성강(成康) 때의 유풍을 본받게 되자 천하의 제후들은 다시 주나라를 섬기게 되었다.

2. 공화중흥(共和中興)

-공화를 끝내고 주나라를 중흥시킨 주선왕 -

 

영명유도한 선왕은 방숙(方叔), 소호(召虎), 윤길보(尹吉甫), 신백(申伯), 중산보(仲山甫) 등과 같은 현신들을 중용했다. 주선왕은 문무(文武)와 성강(成康)이 이룩했던 치세를 다시 일으켜 주왕조를 찬란하게 중흥시켰다. 이 일을 노래한 시가 있다.

 

이왕과 여왕은 옛 선왕들의 강령을 따르지 못했고

현신들을 등용하여 치세를 이룬 이는 선왕이었다.

공화 이후에 선왕과 같은 중흥주가 없었다면,

어찌 주나라의 역사가 팔백 년을 갔었겠는가?

夷厲相乃政不綱(이려상내정불강)

任賢圖治賴宣王(임현도치뢰선왕)

共和若沒中興主(공화약몰중흥주)

周歷安能八百長(주력안능팔백장)

 

그러나 주선왕이 비록 정사에 부지런했다고는 하나, 단서(丹書)를 계율로 삼아 행한 공덕이 집집마다 창문에 새겨지는 경지에 이른 주무왕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남만의 먼 나라가 여러 번 통역을 바꾸어가며 백치(白雉)를 공물로 바칠 정도로 크게 교화를 행했던 성강(成康)의 치세에도 또한 이르지 못했다.

주선왕 재위 39년째인 기원전 789, 강융(姜戎)이 쳐들어와 소란을 피우자 천자가 친히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주나라 군대는 천무(千畝 : 서주시대 당진(唐晉)의 영지로 지금의 산서성 개휴시(介休市) 남쪽 천무원(千畝原)이다.)의 싸움에서 대패하여 수많은 전차와 병졸을 잃었다. 천자의 위엄이 크게 깎였다고 생각한 주선왕은 정벌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군사를 모으기 위해 몸소 태원(太原 : 현 영하성 고원시(固原市) 평량현(平凉縣)으로 산서성의 성도 태원시(太原市)와는 다른 곳이다.)으로 행차하여 요민(料民)했다. 요민이란 현지 주민에 대한 호구조사와 군비점검을 말한다.

징발한 백성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한 주선왕은 일일이 호적과 대조하여 인원의 다소와, 거마(車馬), 양식, 말먹이 등의 많고 적음을 확인한 후에 그들에게 왕성으로 이동하라는 명을 내렸다. 태재(太宰) 중산보(仲山甫)가 왕명을 거두어야 한다고 힘써 간언했으나 주선왕은 듣지 않았다. 후세 사람이 시로 한탄했다.

 

개돼지를 잡는데 어찌 검망을 더럽히려 하는가?

보옥으로 참새를 잡으려 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로다.

천자의 위엄이 다해 원수를 갚을 수 없다고

망령되게 백성들을 징발하여 소란을 피우는가?

犬彘何須辱劍鋩(견체하수욕검망)

隋珠彈雀總堪傷(수주탄작총감상)

皇威褒盡無能報(황위포진무능보)

枉自將民料一場(왕자장민료일장)

 

 

3. 망국지조(亡國之兆)

- 망국의 징조 -

 

주선왕이 태원의 백성들을 징발하는 일을 끝내고 왕성으로 되돌아오던 중 날이 저물었으나 어가를 멈추게 하지 않고 계속 길을 재촉하여 밤중이 되어서야 성안에 들어서게 되었다. 거리에서 어린아이들 수십 명이 무리를 지어 박수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하나같았다. 주선왕이 어가를 세워 노래를 들으니 노랫말은 이러했다.

 

달이 뜨고

해가 진다.

뽕나무 활과 기초풀 전통은

주나라가 망할 징조로다.

 

月將升(월장승)

日將沒(일장몰)

檿弧箕箙(염호기복)

幾亡周國(기망주국)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말이 매우 불길하다고 생각한 주선왕은 연유를 알기 위해 시종을 시켜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잡아오도록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놀라서 흩어지고, 나이가 제법 든 아이와 어린 아이 두 명만이 붙잡혀와 선왕의 수레 앞에 꿇어앉았다. 선왕이 물었다.

누구에게서 그런 노래를 배워 부르게 되었느냐?

나이가 많은 아이가 대답했다.

저희들이 지은 노래가 아닙니다. 붉은 옷을 입은 동자가 사흘 전에 거리에 갑자기 나타나 가르쳐주었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한 곳에 멈추지 않고 이렇게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 홍의동자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노래를 가르쳐준 후에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왕은 오랫동안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다가 아이들에게 그 노래를 다시 부르면 안 된다고 꾸짖어 돌려보낸 후, 사시관(司市官 : 저자거리의 장사꾼을 감독하던 고대의 하급관리)을 불러들여 당장 거리를 돌아다니며 그 노래를 부르지 못하도록 감시하라는 명을 내렸다. 만약 어린아이가 그 노래를 다시 부를 경우, 부모에게 연좌시켜 죄를 묻겠다는 어명도 함께 전하게 했다. 주선왕은 그날 밤 궁궐로 돌아왔다.

 

다음날 조회에 나가 삼공육경(三公六卿)과 백관들의 배례를 받은 선왕은 어젯밤에 도성으로 돌아오다가 길거리에서 들은 어린 동자들의 노랫소리를 여러 신하들에게 들려준 후에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이 노래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대종백(大宗伯) 소호(召虎)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檿)은 뽕나무의 이름으로서 활을 만드는 재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염호(檿弧)라고 합니다. ()는 기초라는 풀이름입니다. 질긴 까닭에 화살통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화살통을 기복(箕箙)이라고 부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나라에 궁시지변(弓矢之變)이 있을까 우려됩니다.

태재 중산보도 뒤를 이어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궁시는 곧 나라의 무기입니다. 대왕께서 견융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태원의 백성들을 징발해서 편성한 군대를 해산하지 않는다면 장차 나라에 환란이 닥친다고 예언하는 노래입니다.

선왕은 말없이 고개를 흔들며 다시 물었다.

이 노래는 홍의동자로부터 전해졌다고 하는데 그 홍의동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태사(太史)백양보(伯陽父)가 대답했다.

시중의 근거 없는 말을 요언(謠言)이라 합니다. 왕께 경계를 주라는 상제의 명을 받은 형혹성(熒惑星 : 화성(火星)의 다른 이름으로 재난과 병화의 징조를 알려주는 별이다.)이 동자로 변해 어린아이들에게 이 요언을 가르쳐 부르게 했다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작게는 한 사람의 길흉을 말하며, 크게는 국가의 흥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형혹성은 붉은색의 별입니다. 대왕께서 들으신 망국의 노래는 곧 하늘이 왕께 내리는 경고입니다.

선왕이 백양보에게 다시 물었다.

짐이 오늘 강융의 죄를 용서하고, 태원의 병사들을 해산하겠다. 동시에 무기 창고의 활과 화살을 모두 불사르고 다시 나라 안에서 활과 화살을 만들어 팔지 못하도록 명하겠다. 그렇게 하면 화를 피할 수 있겠는가?

신이 하늘을 관측해 보니 그 조짐이 이미 나타나 왕궁 안에 있는 듯합니다. ()안팎에서 일어나는 전란이 아니라, 나라 안에서 요부가 나타나 나라를 어지럽혀 재앙을 일으킨다는 징조입니다. 더욱이 노랫말에 달이 뜨고 해가 진다고 했으니 해는 임금을 말하고, 달은 음()으로 여자를 의미합니다. 일몰장승(日沒月升)’은 음이 승하고 양이 쇠한다는 예언임으로 정치를 밝게 행하셔야 그 화를 피할 수 있습니다.

강후(姜后)가 육궁(六宮)을 잘 관리하고 있고, 더욱이 덕이 높은 강후가 나에게 선택해 바치는 궁녀들을 물리치지 않고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여자 때문에 난이 일어난다고 하는가?

요언에 장승(將升)’ ‘장몰(將沒)’이라 했으니 목전의 일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라는 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장래에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왕께서 덕을 쌓아 정사를 돌보시며 재난에 대비하신다면 자연적으로 화()가 길()로 변하게 되므로 구태여 활과 화살을 태워서 없앨 필요는 없다고 사료됩니다.

 

4. 용시정령(龍漦精靈)

- 용의 침으로 잉태되어 태어나는 포사(褒姒) -

 

백양보가 아뢰는 얘기를 반신반의하면서 조회를 파한 선왕은 내궁으로 들어가 강후를 찾았다. 강후가 그를 맞이하여 좌정하자 선왕은 길거리에서 들은 요언과 신료들이 조회에서 상주한 내용을 강후에게 상세히 전달했다. 강후가 고했다.

궁중에서도 이상한 일이 있어 바로 말씀드리려던 참입니다. 선왕(先王)때부터 살아 나이가 50여 세에 이른 늙은 궁인이 아이를 밴 이래 40여 년만인 바로 어제 저녁에 여자 아이를 낳았습니다.

선왕이 크게 놀라 물었다.

아기는 어디 있습니까?

강후가 대답했다.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시자에게 명하여 바구니에 담아 가마니에 싸서 20리 밖의 청수하(淸水河)에 버리라고 했습니다.

선왕이 늙은 궁인을 불러 아이를 잉태하게 된 연고를 물었다. 늙은 궁인은 납작 엎드린 채 대답했다.

하나라 걸왕(桀王) 말년에 포성(褒城)의 신인이 용 두 마리로 변해 입에서 침을 흘리면서 왕궁의 뜰 안에 내려앉더니 돌연히 사람으로 변하며 우리들은 곧 포성의 두 주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걸왕이 두려워하며 두 마리의 용을 죽이려고 태사에게 점을 치게 했으나 점괘가 불길하게 나왔습니다. 다시 용을 쫓아내면 어떤가 하고 점을 치게 한 바 역시 불길한 괘가 나왔습니다. 태사가 점괘를 보고 걸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신인의 하강은 대왕께 틀림없이 상서로운 일입니다. 대왕께서는 이 용의 침을 받아서 보관하십시오. 용의 침은 곧 용의 정기(精氣)입니다. 저장하여 간직하면 필히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걸왕이 태사에게 다시 점을 치게 하니 그때는 대길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용 앞에 비단 천으로 덮은 제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올린 후에 금으로 만든 쟁반으로 용의 침을 받아서 붉은 궤 안에 넣었습니다. 일이 다 끝나자 갑작스럽게 비바람이 크게 일더니, 두 마리 용은 함께 먼 하늘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걸왕은 용의 침을 받은 궤를 창고에 보관시켰습니다. 그 후 은왕조 64028왕을 거쳐, 우리 주나라 왕조 300년이 지난 그때까지 궤의 뚜껑을 열지 않고 왕실 창고에 깊숙이 보관해왔습니다. 그러다가 선왕이신 여왕 말년에 궤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자 창고를 지키던 관리가 이 일을 선왕에게 고했습니다. 선왕께서는 소식을 듣고는 궤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가?’라고 물으셨습니다. 관리는 선왕께 장부를 갖다 바치면서 용의 침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선왕께서 궤를 열어보라고 명하셨습니다. 명을 받든 관리가 붉은 궤를 깨뜨려 뚜껑을 열고 안에 들어있던 금쟁반을 꺼내 두 손으로 받들어 선왕께 바쳤습니다. 그런데 선왕께서 손을 들어 금쟁반을 받으시려는 순간 그만 실수로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금쟁반에 들어 있던 용의 침이 뜰로 쏟아지더니 여러 마리의 자라새끼로 변했습니다. 그중 한 마리가 궁전 뜰 안에서 돌아다녔습니다. 내시 한 명이 그 자라새끼를 뜰 안에서 쫓아내려고 하자 자라새끼는 왕궁의 뜰 안에서 도망 다니다가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때 저의 나이는 바로 열두 살이었는데, 자라의 흔적을 우연히 밟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가슴에 감각이 느껴지면서 점차로 배가 불러오더니 머잖아 완전히 애를 밴 모습이 되었습니다. 지아비 없이 애를 밴 저를 괴이하게 여기신 선왕께서 소인을 깊은 방 속에 가둔 이래로 지금까지 40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다 어제 밤중에 뜻밖에 배에 진통이 와서 여자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궁을 지키는 시자(侍者)들을 감히 속이기 어려워 부득이 왕후께 알리게 되었습니다. 왕후께서는 이 요물은 결코 용납할 수가 없구나!’라고 말씀하시고는 시자들에게 아기를 강물에 버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저와 같은 천한 계집이 범한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선왕이 이야기를 다 듣고 말하였다.

이 일은 선대 때의 일이니 너와는 무관하다.

늙은 궁인을 물러가게 한 선왕은 궁을 지키는 시자를 불러서 청수하로 지체 없이 달려가 여자 아기가 있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얼마 후에 시자가 돌아와 보고했다.

이미 흐르는 물에 떠내려갔는지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주선왕은 더 이상 의심치 않았다. 그는 다음날 아침 태사 백양보를 불러 용의 침[용시(龍漦]으로 일어난 이상한 일에 대해 점을 쳐보라고 분부하면서 말했다.

여자 아이가 강물에 빠져죽어 요기가 없어졌는지 경이 점을 한번 처 보라!

백양보가 점괘를 보고 글로 만들어 바쳤다.

 

곡하고 웃고, 웃고 또 곡하다.

양이 귀신에게 잡혀 먹히고

말이 개를 만나 쫓겨 다니는도다!

신중하고 신중할 지어다,

뽕나무 활에 기초풀 전통(箭筒)이로다.

哭又笑 笑又哭(곡우곡 소우곡)

羊被鬼呑 馬逢犬逐(양피귀탄 마봉견축)

愼之愼之 檿弧箕箙(신지신지 염호기복)

 

선왕이 점사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백양보가 자세히 아뢰었다.

십이지간(十二支干)으로 미루어 보건대 양()은 미()이고, ()는 오()입니다. 곡하면서 웃는 괘는 희비의 상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오미년(午未年)간에 있을 일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요기가 비록 궁 밖으로 나갔다고는 하나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백양보의 말을 듣고 무엇인가 미심쩍은 생각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워내지 못한 주선왕은 즉시 왕명을 내려 성 안이건 성 밖이건 집집마다 방문하여 여자 아이를 찾게 했다. 그는 생사에 관계없이 아이를 찾아서 갖다 바치는 자에게는 비단 300필을 상으로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를 몰래 거두어 기르는 자를 발견하고 이걸 고발한 자에게도 똑같은 상을 내리고, 죄를 저지른 당사자는 다른 가족까지도 전부 사형에 처하겠다고 공표했다. 선왕은 상대부 두백(杜伯)을 이 일을 담당할 책임자로 임명했다. 염호기복이라는 점괘에 대해서는 하대부 좌유(左儒)에게 명하여 사시관들과 함께 성안의 시정을 순행하면서 뽕나무로 만든 활과 기초풀로 엮어 만든 전통을 만들거나 팔지 못하게 단속하게 했다. 이를 위반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선왕의 지엄한 명을 받은 좌유는 감히 일을 태만히 할 수 없어 사시관뿐만 아니라 일반 노역들까지 동원하여 데리고 다니면서 잠시도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성안의 백성들은 좌유가 지시하는 바를 기꺼이 따랐다. 그러나 성 밖 향촌(鄕村)의 백성들은 선왕의 명령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후, 성안을 순시하던 좌유는 기초풀로 엮어 만든 전통 몇 개를 품에 안은 여자가 앞에 서고, 뽕나무로 만든 활 10여 개를 등에 맨 남자가 여자의 뒤를 따라 성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성 밖 멀리 떨어진 향촌에 거주하던 그 부부는 가지고 온 물건을 낮 동안에 시장에서 팔 목적으로 성 안으로 들어오려는 참이었다. 부부는 미처 성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성문 앞에서 사시관과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전통을 들쳐 맨 여인을 발견한 사시관은 휘하의 노역들에게 여자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앞서가던 여자는 잡혔으나, 남자는 사시관의 눈에 아직 띄지 않은 덕분에 등에 맨 활을 재빨리 길거리에 버리고는 나는 듯이 도망칠 수 있었다. 사시관은 여자에게 칼을 씌우고 뽕나무 활과 기초풀 전통을 수습하여 하대부 좌유가 있는 곳까지 압송해갔다. 좌유가 혼자 생각했다.

노래에 상응하는 두 가지 물증을 얻었고, 더욱이 태사의 점괘에 여인으로 인하여 화가 일어난다고 했다. 이제 여자를 잡았으니 마땅히 임금께 아뢰어야겠다.

좌유는 활을 버리고 도망친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숨긴 채 단지 여인 한 명이 금령을 어기고 활을 만들어 팔려고 했음을 왕에게 보고했다. 선왕은 여자는 참하고, 압수한 활과 전통은 저자거리에서 불태우라고 명했다. 활과 전통을 만들어 팔려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계를 삼도록 하려는 이유에서였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선정을 베풀어 하늘의 변란을 없애려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요언에 현혹되어 죄 없는 부인을 죽였다.

중흥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더딘데

이번에는 어찌하여 직간하는 신하조차도 없는가?

 

不將美政消天變(불장미정소천변)

却泥謠言害婦人(각니요언해부인)

漫道中興多補闕(만도중흥다보궐)

此番直諫是何臣(차번직간시하신)

 

한편 위기일발의 순간을 면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남자는 자기 부부가 핍박당한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관리들이 아내를 잡아갔는지 정녕 모르겠구나!

남자는 아내에 관한 일들을 알아보기 위해 성문 밖에서 10리쯤 떨어진 야산에서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아침, 지나가는 사람이 소식을 전해주었다.

어제 북문에서 한 여자가 뽕나무 활과 기초풀로 엮어 만든 전통을 만들어 팔지 말라는 왕의 영을 어긴 죄로 붙잡혀 즉시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아내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내는 인적이 드문 벌판으로 달려가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화를 모면한 자신의 처지를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한 사내가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발길 닫는 대로 10여 리를 걸어서 당도한 곳이 청수하 강변이었다. 그가 눈을 들어 강 한가운데를 바라보니 많은 새들이 울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간 사내는 풀로 엮은 바구니에 담겨 물위로 떠내려 오는 갓난아이를 발견했다. 기이하게도 여러 마리의 새들이 갓난아이가 들어있는 바구니를 부리로 물고서는 소리를 내 울면서 강변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사내가 마음속으로 외쳤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구나!

새들을 쫓아버리고 물속에서 건진 바구니를 풀밭이 있는 언덕으로 옮긴 남자는 아기를 꺼내어 찬찬히 살펴봤다. 여아였는데 사내의 손에 닿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사내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기를 누가 버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새들이 부리로 물어 물가로 끌고 나온 것을 보면 필시 고귀한 신분임에 틀림없다. 내가 데리고 가서 키우면 소득이 있겠다.

자신의 상의를 벗어 아기를 쌓아 가슴에 안아 든 사내는 어디로 갈 것인지 잠깐 고민한 끝에,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조금은 낫다고 판단하여 포성(褒城) 쪽으로 홀홀히 사라졌다. 염옹(髥翁)은 아이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음은 오로지 기이한 운명의 소산이라며 시를 지어 노래했다.

 

임신한 지 장장 사십 년이라!

물속에서의 삼일 간이 위험할 리가 있겠는가?

요물을 만들어 나라에 재앙을 내리려고 하는데,

왕법은 어떻게 하늘의 뜻을 헤아리겠는가?

懷孕遲遲四十年(회잉지지사십년)

水中三日尙安然(수중삼일상안연)

生成妖物殃家國(생성요물앙가국)

王法如何勝得天(왕법여하승득천)

 

 

5. 경살무고(輕殺無辜)

- 죄 없는 신하를 함부로 죽이다, -

 

한편 뽕나무 활과 기초풀로 엮어 만든 전통을 팔려고 했던 부인을 잡아서 처형한 주선왕은 동요에 나오는 경계의 내용에 부응하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여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그래서 태원의 백성들을 동원하여 강융을 정벌하는 일도 더 이상 말하지 않게 되어 그 후로 몇 년간은 별일 없이 무사히 지내게 되었다.

선왕 43년 즉 기원전 785, 선왕이 종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재궁(齋宮)으로 나가 묵게 되었다. 밤이 이경이 되어 사람의 인적이 끊어 졌을 때, 홀연히 아름다운 여인이 서쪽으로부터 한들한들 걸어와 바로 궁궐의 뜰로 들어왔다. 여인의 신분으로 재궁의 금도(禁道)를 범한 행위를 괴이하게 여긴 선왕은 노하여 큰소리로 좌우의 시자들에게 명하여 잡아오게 했으나 한 사람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여인도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주왕실의 위패를 모시는 태묘(太廟)에 들어가 크게 세 번 웃고 또 크게 세 번 울더니 당황하거나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주나라 칠묘(七廟)의 신주를 묶어서 들고 동쪽으로 걸어가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선왕이 몸을 일으켜 쫓아가려고 하는 순간에 정신이 드니 바로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선왕은 노곤한 심신을 끌고 태묘에 들어가서 예를 행했다. 구례(九禮)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재궁으로 돌아온 선왕은 태사 백양보를 아무도 몰래 조용히 불렀다. 선왕이 꿈에서 본 이야기를 하자 백양보가 아뢰었다.

3년 전의 동요를 왕께서는 어찌 잊으셨습니까? 신은 여자로부터 화가 생기고 요기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노랫말의 곡소(哭笑)라는 말은 왕께서 이번에 꾼 꿈의 내용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전에 처형한 여자만으로는 염호기복(檿孤箕箙)의 참()을 없애는데 부족하다는 말인가?

하늘의 뜻은 너무 높아 이제 그 효험이 바로 나타나려는 순간에 있습니다. 어찌 일개 아녀자로 천도의 길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백양보의 말을 들은 선왕은 신음을 토해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3년 전 상대부 두백에게 명하여 용시의 정기로 태어난 요녀를 찾아내도록 명했으나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했음을 생각해 냈다. 제사음식을 먹고 조당에 돌아온 선왕은 백관들에게 제사고기를 나누어준 후에 두백에게 물었다.

요기가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는데 경은 어찌하여 오랫동안 요녀의 일에 대해 보고하지 않았는가?

두백이 아뢰었다.

신이 그 여자아이를 찾았으나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요부를 잡아 죄를 주어 동요의 효험이 이미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쉬지 않고 수색작업을 하면 백성들이 놀랄까 걱정하여 중지했습니다.

선왕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일을 이렇게 명백하지 못하게 처리하니 이것은 임금의 명령에 태만하여 멋대로 행한 짓이 아닌가? 이런 불충한 신하를 어디다 쓰겠는가?

선왕이 무사들에게 소리쳐 명했다.

저 자를 조문으로 데리고 나가 참수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게 하라!

선왕의 갑작스런 명에 여러 백관들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때 문반 대열 중에서 한 사람의 관원이 뛰쳐나와 무사들에게 끌려 나가는 두백을 황급히 잡으면서 주선왕을 향해 외쳤다.

절대로 불가한 일입니다.

선왕이 보니 곧 하대부 좌유(左儒)였다. 좌유는 두백의 친구로서 두백의 천거에 의해 벼슬길에 나온 사람이었다. 좌유가 머리를 조아리며 간했다.

신이 듣기에, 요임금께서는 9년 홍수에도 황제로서 실덕한 일이 없었고 탕임금은 7년 가뭄에도 왕의 위엄은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내린 변괴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는데 그와 같은 요언의 내용을 어찌 다 믿을 수 있단 말입니까? 대왕께서 기어코 경솔하게 두백을 죽이신다면 요언은 틀림없이 더욱 창궐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요언이 오랑캐에게 까지 전해져 주나라가 그 동안 베푼 덕을 배반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원컨대 두백을 용서하십시오.

그대는 친구를 위하여 왕의 명을 거역하는가? 어찌 친구보다 왕을 더 가볍게 여길 수 있단 말인가?

왕이 옳고 친구가 그르면 마땅히 친구를 버려 왕을 따라야 하고, 친구가 옳고 왕이 그르다면 마땅히 왕을 버리고 친구를 따라야 합니다. 더욱이 두백이 지은 죄는 사형에 처할 만큼 중한 죄가 아닙니다. 왕께서 두백을 죽이신다면 천하가 대왕을 어질지 못하다고 할 것이며, 신이 만약 간하여 중지시키지 못한다면 천하가 신이 불충한 사람이라고 말할 겁니다. 왕께서 그래도 기어코 두백을 죽이시겠다면, 신도 두백과 같이 죽여주십시오.

선왕의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말했다.

짐이 두백을 죽이거든 처형장으로 나가 장광설을 늘어놓아라.

선왕이 무사에게 소리쳐 빨리 두백을 끌고 나가 참수하라고 했다. 무사가 두백을 궁궐 대문 밖으로 끌고 나가 목을 벴다. 집으로 간 좌유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좌유를 찬미했다.

 

슬기로운 좌유여!

직간하다가 용의 비늘을 건드렸구나.

옳은 일은 친구의 말일지라도 따르고

그른 일은 임금의 명이라도 따르지 않았다

벼슬아치들이 마땅히 지켜야할

문경지교(刎頸之交)의 도리를 밝혀

이름을 천고에 높였도다!

신하의 도리를 세웠도다!

賢哉左儒 直諫批鱗(직건비린 현재좌유)

是則順友 非則違君(시즉순우 비즉위군)

呑冠誼重 刎頸交眞(탄관의중 문경교진)

名高千古 用式彛倫(명고천고 용식이륜)

 

두백의 아들 습숙(隰叔)은 동쪽의 당진(唐晉)으로 달아나 형옥(刑獄)을 관장하는 사사(士師)라는 관리가 되었다. 그의 자손은 성을 사()씨로 하고 범(: 현 산동성 양산(梁山) 부근)을 식읍으로 받았다. 그런 연유로 또한 범()씨의 시조가 되었다. 사씨와 범씨는 당진(唐晉)의 유력한 세가(世家)가 되어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하고 국위를 빛냈다. 후세 사람들이 두백을 위해 사당을 짓고 그의 충성심을 애도했다. 두백의 사당을 두릉(杜陵 : 현 서안시 동남의 삼조촌(三兆村)에 조성한 한선제(漢宣帝)의 능묘다.)에 짓고 두백의 혼백을 두주(杜主)라고 불렀다. 또한 우장군(右將軍) 묘라고 부르기도 하며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 이것은 모두 후일의 이야기이다.

다음날 좌유도 친구를 위해 목을 찔러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선왕은 두백을 죽인 일을 후회하며 번민하는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 그날 밤부터 선왕은 잠자리에서 잠을 못 이루더니 이내 정신이 몽롱한 병을 얻게 되었다. 말의 두서가 없어지고 일을 하다가 많은 일을 잊어 먹게 되니 언제나 중도에서 정사를 중단하곤 했다. 강후도 선왕이 병이 났음으로 알고 다시 간하지 않았다.

 

6. 화려명원(化厲鸣寃)

- 무서운 원귀(寃鬼)가 되어 원수를 갚은 두백(杜伯)과 좌유(左儒).-

 

선왕 46년 기원전 7827, 임금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호경(鎬京) 밖으로 사냥을 나가게 되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심신이 즐거워 진 선왕은 사공(司空)과 사마(司馬)에게 어가를 정비하고 거마꾼을 점고하라는 명을 내렸다. 태사가 점을 쳐서 길일을 잡아 그 날이 되자 왕이 사냥터로 행차하기 위해 근위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어가에 올라탔다. 윤길보는 오른쪽에서 소호는 왼쪽에서 수행했다. 선왕의 일행은 병장기로 무장한 군사들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기치를 하늘 높이 날리면서 동쪽의 사냥터를 향해 일제히 출발했다. 왕의 사냥터는 호경 동쪽의 넓은 평원에 위치했다. 이윽고 사냥터에 당도한 선왕은 상쾌한 마음이 되어 행군을 중지시키고 영채를 세우라고 명했다. 선왕이 다음과 같은 포고문을 발했다.

첫째 논밭의 농작물을 밟으면 안 된다. 둘째 숲 속의 나무를 태우거나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셋째 민가에 들어가서 함부로 백성들을 괴롭히면 안 된다. 넷째 사냥한 짐승이 많건 적건 모두 한 곳에 갖다 바쳐야 한다. 다섯째 사냥을 끝내고 주는 상급은 포획 순서에 따라 시행한다. 여섯째 사사로이 은닉하여 후에 발각된 자는 중벌에 처한다.

이윽고 시간이 되자 사람마다 용기를 뽐내어 각각 서로 앞을 다투어 사냥감을 쫓았다. 수레를 모는 자는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후퇴하고, 맴돌고 하면서 온갖 기술을 발휘하고, 활을 가지고 있는 자는 종횡으로 활을 쏘아 자신의 실력을 뽐냈다. 여우와 토끼들은 매서운 매와 사냥개의 기세에 어지러이 달아났다. 활이 향하는 곳은 혈육이 낭자하고, 화살은 마치 새의 깃털처럼 날아다녔다. 선왕이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이 번의 사냥몰이는 지나치게 요란하지 않아서 좋구나!

이윽고 시간이 흘러 해가 서쪽으로 이미 넘어가자 선왕은 영을 내려 사냥터의 포위망을 풀게 했다. 여러 군사들이 각각 잡은 들짐승과 날짐승을 한꺼번에 묶어서 왕에게 갖다 바쳤다. 사냥을 끝낸 선왕은 어가를 타고 궁궐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다가 34리도 채 못 되는 곳에서 갑자기 한 대의 조그만 수레가 멀리서 나타났다. 그 수레는 마치 왕의 어가와 부딪치기라도 하려는 듯이 맹렬한 기세로 돌진해왔다. 붉은 색의 활을 어깨에 둘러메고, 역시 붉은 색의 화살을 손에 든 두 사람이 선왕을 향해 예를 취하며 말했다.

왕께서는 무양하신지요?

선왕이 눈을 크게 치켜뜨고 바라보니 바로 상대부 두백과 하대부 좌유였다. 크게 놀란 선왕이 다시 쳐다보니 순식간에 사람과 마차가 어디론가 사라져 모두 보이지 않았다. 좌우의 시자들에게 물어 봤으나, 모두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선왕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사이에 두백과 좌유가 조그만 수레를 몰고 왕의 어가 바로 앞에 다시 접근해 왔다. 선왕이 대노하여 소리쳤다.

죄를 지은 귀신들이 어찌 감히 어가를 범하려드느냐?

선왕은 허리에 차고 있던 보검 태아(太阿)를 뽑아 들고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두백과 좌유가 한 목소리로 꾸짖어 말했다.

무도혼군아! 스스로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여 올바른 정치를 펼치지 않고, 무고한 신하들을 망령되게 죽였다. 오늘 우리가 원한을 갚아 너의 수명을 끝내려고 우리가 왔으니 네 목숨을 내놔야 되겠다.

말을 마친 두 사람이 동시에 주궁(朱弓)에 적시(赤矢)를 꿰어 선왕의 명치를 향해 쐈다. 선왕이!’소리와 함께 어가 안에서 혼절했다. 당황한 윤길보는 다리를 주무르고, 소호는 눈언저리를 문지르고, 좌우의 시자들은 생강탕을 끓여 마시게 해 간신히 정신을 들게 했다. 정신을 차린 듯하던 선왕이 갑자기 가슴의 고통을 못 이기고 소리를 질렀다. 좌우의 신하들이 곧바로 선왕을 모시고 어가를 재촉하여 회궁했다. 결국 그날의 사냥대회는 군사들에게 상급도 나누어주지 못하고 흩어지게 되었다. 흥겨운 마음으로 출발해서 우울한 마음으로 돌아오게 된 사냥행사였다. 염옹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적시주궁을 지니고 마치 천신과 같이 모습으로

천군만마의 대오 속에서 수레를 몰아 내달려 왔다.

왕도 죄 없는 신하를 함부로 죽여 보복을 받았는데

하물며 구구한 일반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赤矢朱弓貌似神(적시주궁모사신)

千軍隊里騁飛輪(천군대리빙비륜)

君王枉殺環須報(군왕왈살환수보)

何況區區平等人(하황구구평등인)

 

 

1회 끝

 

1) 신기질(辛棄疾 :11401207): 남송의 무장이자 문인으로 자는 유안(幼安)이고 호는 가헌(稼軒), 산동성 역성(歷城) 출생이다. 당시 금나라의 지배 하의 산동성에서 자란 그는 항금전쟁에 참전했다가 남송정권에 귀의하여 송효종(宋孝宗)의 인정을 받았다. 그가 호남에서 편성한 비호군(飛虎軍)은 금군의 침입에 맞서 장강을 방어하는 주력군이 되었다. 천고강산(千古江山), 영웅무멱(英雄無覓) : 산하는 영원히 있으나, 영웅은 얻을 수 없다.등의 강개(慷慨)한 구절을 남긴 애국시인이다. 북송 말기의 여류시인 이안(易安) 이청조(李淸照)와 함께 송나라 사()를 대표하는 이안(二安)이라 불리고 있다.

2) 삼황은 역()을 제정한 태호(太昊) 복희씨(伏羲氏), 인류의 어머니라고 칭하는 여와(女媧) 수인씨(燧人氏), 백성들에게 농사를 가르쳤다는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 등을 말한다. 오제는 여러 설이 있으나 헌원씨(軒轅氏) 황제(黃帝), 고양씨(高陽氏) 전욱(顓頊), 고신씨(高辛氏) 제곡(.), 도당씨(陶唐氏) 당요(唐堯), 유우씨(有虞氏) 우순(虞舜)의 설이 유력하다.

3) 영웅오패(英雄五覇) : 춘추오패를 가리킨다. 즉 제환공(齊桓公), 송양공(宋襄公), 진문공(晉文公), 진목공(秦穆公), 초장왕(楚庄王)을 말한다. 일설에는 진목공과 송양공을 빼고 오왕 부차(夫差)와 월왕 구천(句踐)을 대신 넣기도 한다.

4) 북망산(北邙山) : 현 하남성 낙양시 북쪽의 황하 남안의 산이름으로 고대의 공동묘지로 유명하다.

5) () :시경(詩經주송(周頌)사문(思文)의 한 구절이다. 주족의 시조로 인류에게 농경을 가르쳤다는 후직을 찬양한 시가다.

6)시경(詩經대아(大雅문왕(文王)에 나오는 구절이다.

7) 경사(卿士) : 서주시대 때 왕족의 세력이 강대해지자 상대적으로 관료들의 수장이었던 무사(巫史)의 위치가 격하되었다. 당시 무사는 군사, 행정, 사법, 외교 등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으나 왕족들의 견제를 받아 권력이 분산되었다. 서주 초 왕명의 출납과 비서 역할의 관직이었던 태사요(太史寥)가 경사(卿士)를 겸직하여 무사와 같은 반열에 서게 되고 이로써 서주 왕조의 관제에 중요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후에 다시 무사가 갖고 있던 직무를 모두 장악하게 된 경사는 서주 말 관직의 최고 수장이 되어 군사, 행정, 사법, 외교 등의 모든 직무를 관장했다.

8) 기애(耆艾)() : 나이가 60이 넘은 노인을 기()라 하고 50이 넘은 사람을 애()라 고 함.

9) 600년간의 변란기 : 주나라에 국인폭동이 일어난 기원전 841년부터 진시황이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진제국을 창건한 기원전 221년까지의 서주말과 춘추전국시대를 합한 기간을 말한다.

10) 공화(共和) : 여왕이 체로 피신한 기원전 841년에서 그곳에서 죽은 기원전 828년 동안에 해당하는 14년간 소공과 주공이 주나라를 통치한 시기를 공화(共和)라 한다. 사마천의 사기 중 12제후 연표는 이해를 기점으로 시작되는데 기원전 841년 이전의 역사적 사실은 그 기록이 확실하지 않아 주나라 역대 왕의 정확한 재위연대조차도 확인이 안 되다가 기원전 841년 이후의 모든 기년은 분명해졌다. 일본에서 활약했던 중국인 역사학자 진순신(陳舜臣)은 이 해를 중국사의 원년으로 삼자고 주장했다. 청나라 때 프랑스 대사가 중국에 와서 자신들의 국체를 Republic이라고 소개하자 마땅한 중국말을 찾지 못하다가 왕 없이 통치한다는 뜻에서 사용했던 것이 공화국의 유래가 되었다.

11) 단서 : 주문왕 희창(姬昌)이 태어날 때 붉은 새가 붉은 서책을 입에 물고 산실의 창문으로 날아와 가져다준 책이다. 주문왕이 천명을 받아 은나라를 멸하고 주왕조를 창건했음을 뜻한다. 단서수계(丹書受戒)라고 한다.

12) 강융(姜戎) : 강씨지융(姜氏之戎)을 말하며 융족의 한 지파다. 원주지는 지금의 감숙성 돈황(敦煌) 서쪽의 과주(瓜州)였으나 후에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여 주나라와 국경을 접했다. 사마천의사기·주본기(周本紀)기사에 주선왕 39(기원전 789) ‘선왕(宣王)이 천무(千畝)에서 싸웠으나, 왕의 군사들은 강씨지융에게 다시 패했다.[戰于千畝, 王師敗積于姜氏之戎]'라고 했다. 춘추 때 섬진에게 축출된 융족의 수령 오리(吾離)가 종족을 인솔해 당진의 남쪽인 지금의 산서성 남서쪽으로 이주하여 당진(唐晉)에 복속되었다.

13) 수주탄작(隨珠彈雀) : 수나라의 귀중한 보물인 구슬을 던져 참새를 잡는다는 성어로 쓸모없는 일에 귀중한 재화를 낭비한다는 뜻이다. 수주(隋珠)는 수나라 군주가 상처를 입은 뱀을 구해주고 강을 건너다가 얻은 귀중한 구슬이다. 수나라는 춘추시대에 호북성 청발수(淸發水) 강변에 있는 제후국으로 춘추 초 초나라에 병탄되었다. 회남자(淮南子)에 의하면 수나라의 군주가 놀이를 나가다가 길 위에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던 한 마리의 커더란 뱀을 보았다. 이를 불쌍히 여긴 수후가 사람을 시켜 상처에 약을 바르고 천으로 싸매 치료해 준 후에 풀밭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상처가 아문 뱀이 한 개의 구슬을 입에 물고 강을 건너려고 하던 수후를 찾아와 말했다. “나는 곧 동해 용왕의 아들인데 군주께서 저의 생명을 구해 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이렇게 특별히 와서 보물을 바칩니다.” 그래서 수후지벽은 신령스러운 뱀이 물어다 분 구슬이라는 뜻의 영사지주(靈蛇之珠)라고도 한다.

14)삼공(三公) : 관료들의 수장인 태사(太師), 태자의 스승인 태부(太傅), 관료들을 규찰하는 태보(太保).

육경(六卿) : 천지춘하추동(天地春夏秋冬)에 따른 육부의 장관으로 관장하는 업무는 다음과 같다.

총재(.) : 천관(天官)에 해당하며 일반행정을 총괄하고 내외의 출납과 관청(官廳)의 사무를 관장한다. 후에 태재(太宰)라 했다.

사도(司徒) : 지관(地官)에 해당하며 백성의 교육, 농업, 공업, 상업 등을 담당하고 지방 행정을 관리했다.

종백(宗伯) : 춘관(春官)에 해당하며 제사와 외국에 보내는 사절 및 외국과의 회합 등을 관장하는데 대종백(大宗伯)이라고도 했다.

사마(司馬) : 하관(夏官)이며 군사 및 국토사무를 관장

사구(司寇) : 추관(秋官)이며 법령, 소송 및 국제사무를 관장

사공(司空) : 동관(冬官)이며 토목공사 및 그 지원업무를 관장.

15)태사(太史) : 서주와 춘추 때 문서를 기초하고, 제후나 경대부들의 책명을 작성하여 사서에 기록하는 일을 맡은 관리다. 사서를 편찬하고, 전적, 천문, 역법, 제사 등을 주관하는 대신들 가운데 한 명이다. 진한(秦漢) 때 설치한 태사령(太史令)은 직위가 매우 낮았다.

16) () : 주나라의 도성은 섬서성(陝西省)의 호경(鎬京)에 자리 잡아 외적의 침입을 막을 때 서쪽은 대산관(大散關), 동쪽은 동관(潼關), 남쪽은 무관(武關)에 의지했다. 따라서 () 이란 말은 주나라와 후에 섬진(陝秦)이 일어난 곳인 섬서성(陝西省)의 중앙을 관통하고 있는 위수(渭水) 강안의 중앙부를 지칭한다. 즉 관중(關中) 지방을 가리키는 용어다.

17) 육궁(六宮) : 황후(皇后)와 후궁이 사는 여섯 채의 집이 있는 궁궐. 황후가 사는 정침(正寢) 한 채와 후궁이 사는 연침(燕寢) 다섯 채를 통틀어 육궁이라 칭했다.

18)선왕(先王) : 주선왕의 부왕인 여왕을 말한다.

19) 포성(褒城) : 현 섬서성(陝西省) 한중시(漢中市)의 옛 지명이다. 삼국연의(三國演義) 후반부에서 촉의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위()나라를 치기 위해 북벌을 행할 때 전진기지로 삼은 곳이다.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 최초의 통일왕국의 뒤를 이은 한왕조의 국호는 창건자 한고조 유방의 봉호 한중왕(漢中王)에서 유래했다.

20) 오미년(午未年) : 주선왕의 아들 유왕(幽王)이 견융의 침입으로 도망치다 잡혀 죽고 서주왕조가 망한 해인 기원전 771년을 뜻한다. 주선왕은 기원전 781년에 주왕의 자리에 올라 46년 동안 재위하다가 기원전 782년에 죽었다. 아들 유왕이 그 뒤를 이은 후 10년 만에 망했다.

21) 칠묘(七廟) : 천자나 황제가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7명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주왕조 시대에는 문왕(文王), 무왕(武王)과 희씨(姬氏)의 시조 후직(后稷) (), 문왕의 고조부 아어(亞圉), 증조부 공숙조류(公叔祖類), 조부 태왕(太王) 고공단보(古公亶父), () 계력(季歷)등 일곱 명의 신위(神位)를 모셨다.주례의 종법제도에는 천자는 7, 제후는 5, 사대부는 3대를 지내게 되어있다.

22) 태아(太阿) : 명검의 이름으로 월절서(越絶書)에 오나라의 간장(干將)과 월나라의 구야자(歐冶子)가 만들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전국시대 당시에 저명한 대장장이였는데 초왕이 풍호자(風胡子)를 오월 두 나라에 가서 간장과 구야자를 불러오게 하여 용연(龍淵), 태아(太阿), 공포(工布)라는 이름의 명검 3자루를 만들게 했다. 후에 이 명검의 존재를 알게 된 진()나라와 정()나라가 구하려고 했지만 초왕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두 나라는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포위했다. 초왕이 태아를 허리에 차고 성루에 올라 군사들을 지휘하여 두 나라 군사들을 크게 물리쳤다. 후에 태아는 명검을 호칭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태아도지(太阿倒持)’라는 성어는 칼자루를 남에게 넘겨주어 그로 인해 오히려 자기가 해를 입는다는 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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