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抗王入國 出獵遇鬼(항왕입국 출엽우괴) > 2부2 관포지교

제14회. 抗王入國 出獵遇鬼(항왕입국 출엽우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양승국 조회 6,771회 작성일 04-05-11 10:13

본문

제14회 抗王入國 出獵遇鬼(항왕입국 출엽우괴)

천자에 항거하여 위후의 자리에 복귀하는 위혜공과

사냥터에서 귀신을 만나 죽은 제양공

1. 제양멸기(齊襄滅紀)

- 기(紀)나라를 멸하는 제양공 -

왕희(王姬)가 제나라에 당도하여 제양공과 성혼했다. 주장왕(周莊王)의 딸 왕희는 태어날 때부터 지조가 굳고 조용한 성격에 심지가 깊어 여유로운 말과 행동에 구차한 면이 없었다. 그러나 양공은 한낱 음락에 미쳐 있는 위인이라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았다. 왕희는 궁중에 살기를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양공이 그 누이를 범한 일을 소문을 듣고 알게 되었다. 왕희는 혼자서 한탄해 마지않았다.

「제후가 저지른 일은 윤리와 도덕을 망친 일이라서 금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내가 불행하여 이런 황음무도한 사람에게 시집을 잘못 왔으니 이는 나의 운명일 뿐이다.」

그녀는 양공에 대한 생각을 가슴에 품고 고민하다가 병이 나서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죽었다. 왕희가 죽어 이후로는 거리낄 것이 없게 된 양공은 문강에 대한 욕정이 사무쳐 사냥을 핑계로 수시로 작(禚)①땅에 가서 머무르면서, 문강이 살고 있던 축구(祝邱)②에 사람을 보내 그녀를 몰래 데려오게 하여 주야로 음락을 즐겼다. 노장공이 화를 낼까 두려워한 양공은 군사의 힘을 과시하여 위협을 주려고, 친히 많은 군사를 인솔하고 기(紀)③나라를 공격하여 병(郱)④, 자(鄑)⑤, 오(郚)⑥ 등의 세 고을을 빼앗아 제나라의 영토로 삼았다. 동시에 군사들을 임치성 동쪽의 휴성(酅城)⑦에 주둔시킨 후에, 기후에게 사자를 보내 통고하였다.

「빨리 항복하면 그대들의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만은 허용해 주겠다.」

기후가 한탄하면서 말했다.

「제나라와 우리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원수지간이다. 나는 원수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여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

기후가 곧바로 부인 백희(白姬)에게 편지를 쓰게 하여 사자를 시켜 노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게 하였다. 그러자 제양공이 영을 내려 천하에 공포했다.

「기나라를 구하려고 군사를 보내는 나라가 있다면 먼저 그 나라부터 토벌하겠다.」

노장공은 사자를 정나라에 보내 힘을 합쳐 기나라를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정나라 군주 자의(子儀)는 정려공이 역성(櫟城)에 머물면서 호시탐탐 정백의 자리에 복귀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던 관계로 감히 군사를 일으키지 못하고, 사람만을 보내 군사를 못 보내는 사정을 알렸다. 손바닥 한 개로는 소리를 낼 수 없는 처지가 된 노장공은 활(滑)⑧의 땅까지 왔으나, 제나라 군사들의 위세에 겁을 먹고 3일 동안 진을 치고 있다가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 버렸다. 노나라의 군사가 되돌아가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서는 기나라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한 기후는 성과 처자 등을 그의 동생 기계(紀季)에게 맡기고, 종묘에 가서 이별의 절을 올리면서 대성통곡을 한 번 한 후에, 밤이 되기를 기다려 성문을 열고 도망쳐 버렸다. 그 후로 기후는 어디로 가서 여생을 마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계가 기나라의 여러 대신들에게 말했다.

「싸워서 죽어 종사가 끊어지는 것과, 항복하여 사직을 보존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한가?」

여러 대부들이 모두 말했다.

「사직을 보존하는 것이 더 중합니다.」

「구차하기는 하지만 기나라의 사직을 보존하려 하는데 원수에게 무릎을 꿇는 일을 어찌 마다 하겠느냐?」

좌우에게 명해 항서를 쓰게 한 기계는 사자에게 주어 제양공에게 전하게 하면서 앞으로 기나라는 제나라의 외신이 되어 휴성에 살면서 종묘에 제사나 지낼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했다. 제후가 허락했다. 기계가 곧바로 기국의 토지와 호구 등을 모두 제나라에 바치며 머리를 조아리고 애걸했다. 기나라의 토지대장과 호적을 적은 문서를 받아들인 제양공은 기나라 종묘가 있는 땅 한쪽의 호구 30호를 떼어 주어 제사를 지내도록 허락하고 기계를 묘주(廟主)라 부르게 하였다. 기후의 부인 백희는 너무 놀라고 상심한 나머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양공이 명하여 제후의 부인으로서 예를 갖추어서 장례를 후하게 치르게 하여 노나라의 환심을 사려고 하였다. 백희의 동생에 숙희(叔姬)라고 있었는데 옛날 백희가 노나라에서 시집올 때 따라와 기후의 후비가 되었었다. 양공이 알고 그녀를 친정인 노나라로 돌려보내려고 하였으나 숙희가 사양하면서 말했다.

「부인의 도리는 한번 출가하면 그 지아비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기씨의 부인으로 살았으니 죽어서도 기씨의 귀신이 되겠습니다. 어찌 편안함을 위하여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제양공이 듣고 숙희를 휴성에 살게 하고는 절개를 지키게 하였다. 숙희는 몇 년을 더 살다가 휴성에서 죽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를 찬미하였다.

세상의 풍속은 갈수록 쇠미해져서

음탕한 풍속은 대를 잇게 되었다

제나라 임금은 자기 누이동생을 범하고

신대의 주인은 며느리를 차지했다.

世衰俗敝(세쇠속폐)

淫風相襲(음풍상습)

齊公亂妹(제공란매)

新台娶媳(신대취식)

행동과 마음이 금수와 같아

윤리는 없어지고 기강은 사라졌으나

동쪽의 조그만 나라의 몸종으로서

절개를 지켜 일부종사했다.

禽行獸心(금행수심)

倫亡紀佚(윤망기일)

小邦妾媵(소방접등)

矢節從一(시절종일)

오히려 시집의 종묘를 지키고

친정나라에 돌아가지 않았으니

훌륭하도다, 숙희여! 백주(柏舟)⑨를 부르던

옛날 위(衛)나라의 공강(共姜)과 같구나.

寧守故廟(영수고묘)

不歸宗國(불귀종국)

卓哉叔姬(탁재숙희)

柏舟同式(백주동식)

제양공이 기나라를 멸한 해는 주장왕7년 기원전 690년이었다.

그해에 초무왕 웅통(熊通)은 수후(隨侯)가 입조하지 않자 다시 군사를 일으켜 수나라를 정벌군을 일으켜 원정 중에 죽었다. 영윤 투기(鬪祁)와 막오(莫敖)⑩ 굴중(屈重)이 초왕의 상을 발하지 않고 비밀에 붙인 후에 샛길을 이용하여 수나라의 도성을 기습했다. 수후가 두려워하여 다시 강화를 청했다. 굴중이 왕명을 가장하여 수후로 하여금 초나라 진영으로 오게 하여 맹약을 행했다. 수나라에서 철수한 초나라 대군이 일제히 한수를 건넌 다음에서야 초왕이 죽은 사실을 공표하고 상을 발했다. 무왕의 아들 웅자(熊貲)가 즉위하였다. 이가 초문왕(楚文王)이다.

2. 노도유탕 제자유요(魯道有荡 齊子遊邀)

- 노나라 가는 길은 훤히 뚫려 있는데, 제나라 여인은 놀러 다니며 즐기네! -

한편 제양공이 기나라를 멸하고 개선하자 도중에 문강이 마중 나와 영접하여 축구로 데려가서 잔치를 크게 벌였다. 두 사람은 군주들이 만날 때 행하는 예를 취한 후에, 피차간에 술잔을 받거니 주거니 하면서 그 동안 나누지 못한 운우의 정을 마음껏 즐겼다. 다른 한편으로는 음식을 후하게 준비하여 제나라 군사들에게도 배불리 먹였다. 또한 임치성으로 돌아가는 양공을 작(禚) 땅까지 따라간 문강은 그곳에 계속 머물면서, 양공과 매일 같이 잠자리를 같이 하였다. 양공이 문강에게 편지를 쓰게 하여 노장공을 작 땅으로 불러내게 하였다. 모친의 명을 어길 수가 없었던 노장공은 곧바로 작 땅에 도착하여 문강을 문안했다. 문강은 장공에게 외숙부를 대하는 예절로서 양공에게 인사를 드리도록 명했다. 계속해서 문강은 장공에게 기후의 부인인 백희를 후하게 장사 지내준 양공의 은혜에 대해 감사의 말을 올리도록 시켰다. 장공이 모친의 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문강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는 별수가 없었다. 제양공이 크게 기뻐하며 자기 역시 노장공을 예절을 갖추어 환대하였다. 그때 양공에게는 갓 낳은 딸이 하나 있었다. 문강이 노장공의 내실이 아직 비어 있다고 하면서 그 갓난아이와 약혼을 하도록 분부하였다. 노장공이 말했다.

「그는 아직 강보에 쌓인 갓난아이인데 어찌 나의 배필이 될 수 있겠습니까?」

문강이 화를 내며 말했다.

「너는 네 어미의 집안을 멀리하고자 함이냐?」

제양공도 역시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너무 현격하여 사양하였다. 그러나 문강이 완강히 고집하여 말했다.

「20년만 기다렸다 혼사를 치른다 해도 늦지는 않으리라!」

제양공이 문강의 뜻을 꺾지 못하고, 노장공도 또한 모친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 두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약혼을 허락하였다. 제양공과 노장공은 외삼촌과 조카 사이인데, 또다시 노장공이 제양공의 사위가 되었으니 친족의 정이 더욱 친밀하게 되었다. 두 나라의 군주가 수레를 나란히 하여 작 땅의 들판에서 사냥을 나갔다. 장공이 쏜 화살은 빗나감이 없어 아홉 발을 쏴서 아홉 발을 다 맞추었다. 양공이 보고 칭찬해 마지않았다. 사냥터를 지나가던 야인이 몰래 장공을 손가락질하여 희롱하였다.

「우리의 저 임금은 그 아비의 원수도 갚지 못하니 어찌 진짜 아들이라고 하겠는가?」

대노한 장공이 좌우를 시켜 그 야인을 쫓아가 죽이도록 했다. 사관이 ‘장공은 모친은 있지만 부친이 없다’고 한 말은 아버지를 잊고 원수를 모신 일을 풍자한 말이라고 하면서 시를 지어 노장공의 행위를 비난했다.

아버지가 수레 안에서 한을 품고 죽은 지 이미 오래 되었다.

원수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같은 하늘 아래 즐기고 있으니

가짜 아들이라는 야인의 말이 어찌 이상하다고 하는가?

이미 원수를 가짜 아버지로 삼아 인연을 맺지 않았는가?

車中飮恨已多年(거중음한이다년)

甘與仇讐共戴天(감여구수공대천)

莫怪野人呼假子(막괴야인호가자)

已同假父作姻緣(이동가부작인연)

문강이 노(魯), 제(齊) 두 나라의 군주들과 같이 사냥을 즐긴 후로는 더욱 거리낄 것이 없이 수시로 양공과 같이 지내면서 잠자리를 같이 하곤 하였다. 방(防)⑪과 곡(谷)⑫ 땅을 오고갔으며, 또 어떤 때는 제나라의 도성까지 내달아 달려가서 공공연히 궁중에 머물면서, 마치 제양공의 부인처럼 행세하였다. 『시경(詩經)․국풍(國風)․제풍(齊風)』에 실려있는『재구(載軀)』라는 노래는 문강의 문란함을 풍자한 시가이다.

수레를 끄는 말들의 발굽소리는 가볍기만 하고

점불주곽(簟茀朱鞹)⑬으로 치장한 수레는 아름답기만 하구나!

노나라로 가는 길은 훤히 뚫려 있는데

제나라 여인은 밤중에 길을 떠나네.

載軀薄薄(재구박박)

簟茀朱鞹(점불주곽)

魯道有蕩(노도유탕)

齊子發夕(제자발석)

수레를 끄는 검정색 사마(駟馬)는 씩씩하기만 한데

늘어진 말고삐는 많기도 하구나!

노나라로 가는 길은 훤히 뚫려 있는데

제나라 여인은 참으로 기뻐하네!

四驪濟濟(사려제제)

垂轡濔濔(수비이이)

魯道有蕩(노도유탕)

齊子豈弟(제자개제)

문수는 세차게 흐르고

따르는 사람 많기도 하구나!

노나라로 가는 길은 훤히 뚫려 있는데

제나라 여인은 참으로 기뻐하네!

汶水漡漡(문수상상)

行人彭彭(행인팽팽)

魯道有蕩(노도유탕)

齊子高翔(제자고상)

문수는 도도히 흐르고

따르는 사람은 떼를 지었구나!

노나라로 가는 길은 훤히 뚫려 있는데

제나라의 여인은 놀러 다니며 즐기네!

汶水滔滔(문수도도)

行人儦儦(행인표표)

魯道有蕩(노도유탕)

齊子游邀(제자유요)

박박(薄薄)이란 수레를 모는 말이 빨리 달릴 때 내는 소리다. 그리고 점(簟)은 수레 안의 바닥에 까는 대자리이고, 불(茀)은 수레의 뒤에 달린 문짝이며 주곽(朱鞹)은 붉은 색으로 염색한 짐승가죽으로 모두가 수레를 장식한 호화스러운 물건들이다. 제자(齊子)는 문강으로, 호화스러운 수레를 타고 제나라로 들어가는 문강과 수많은 종복들의 성대한 행렬을 노래한 시가다. 표표(儦儦)란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모습으로 문강이 출입할 때 데리고 다닌 종복들이 많음을 말한다. 또한 『시경』의 같은 편에 『폐구(敝笱)』란 시가 있다. 이 시의 내용은 노장공을 풍자했다.

깨진 통발 수문 앞에 놓았으나

너무 큰 환어(鰥魚)⑭라서 잡을 수가 없었네!

문강이 제나라에 가는데

따르는 종자들은 구름같이 많구나!

敝笱在梁(폐구재량)

其魚魴鰥(기어방환)

齊子歸止(제자귀지)

其從如雲(기종여운)

깨진 통발 어살⑮앞에 놓았으나

너무 큰 연어라서 잡을 수가 없었네!

문강이 제나라에 가는데

따르는 종자들은 내리는 빗물처럼 많구나!

敝笱在梁(폐구재량)

其魚魴鱮(기어방서)

齊子歸止(제자귀지)

其從如雨(기종여우)

깨진 통발 어살 앞에 놓았으나

그 큰 물고기 너무도 유유하게 놀고 있네!

문강이 제나라로 가는데

따르는 종자들은 마치 쏟아지는 강물처럼 많구나!

蔽笱在梁(폐구재량)

其魚唯唯(폐구재량)

齊子歸止(제자귀지)

其從如水(기종여수)

폐(敝)는 깨진 모습이고 구(笱)는 고기를 잡는 그릇으로 통발이다. 즉 깨진 통발로는 큰고기를 잡지 못한다는 노래다. 노장공이 문강을 통제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모시는 종자들의 출입조차도 막지 못했음을 풍자했다.

3. 항왕입국(抗王入國)

- 천자에 항거하여 위후의 자리에 복귀하는 위혜공(衛惠公) -

한편 제양공이 작 땅에서 문강과 헤어져 돌아와 귀국하자, 위후(衛侯) 삭(朔)이 기나라를 멸한 공을 치하한 후에 위나라를 정벌해 줄 것을 다시 청했다. 양공이 말했다.

「오늘 왕희가 죽어서 위나라를 정벌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단지 다른 제후들과 연합하지 않고는, 거사의 명분을 찾을 수 없소. 잠시만 더 기다려 봅시다.」

위후가 감사의 말을 올리고 물러갔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제양공이 송(宋), 노(魯), 진(陳), 채(蔡) 사국에 사자를 보내, 군사를 이끌고 함께 출정하여 위나라를 정벌하여, 위후를 복위시키려고 하였다. 이윽고 제양공이 격문을 써서 사자에게 주어 위나라에 전하게 했다. 격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위나라는 하늘로부터 벌을 받아 역신 공자설(公子泄)과 공자직(公子職)이 제멋대로 위후를 폐하였다. 위나라 군주가 국경을 넘어와 우리나라에 망명한지가 오늘로 7년이 되었다. 내가 이를 항상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우리나라에 많은 일이 발생하여 아직껏 토벌하여 죄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날 다행히 얼마간의 여유가 생겨 우리나라의 온 힘을 기울려 여러 제후들과 같이 위후를 옆에 모시고, 부당하게 군주 자리를 찬탈한 자를 토벌하고자 한다.』

그때가 주장왕(周庄王) 8년 기원전 689년의 일이었다.

제양공이 전차5백 승을 동원하여 위후(衛侯) 삭(朔)과 같이 행군하여, 다른 제후들보다 먼저 위나라 경계에 당도하자 그 뒤를 이어 사국의 제후들이 각기 군사들을 이끌고 속속 도착하였다. 사국의 제후들이란 송나라 민공(閔公) 첩(捷), 노나라 장공(庄公) 동(同), 진(陳)나라 선공(宣公) 저구(杵臼), 채(蔡)나라 애후(哀侯) 헌무(獻舞)였다. 위후 검모(黔牟)는 오국의 군사들이 위나라 국경에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공자설과 공자직을 불러 대책을 상의하게 하고, 영궤(寧跪)를 주나라에 보내 위나라의 위태로움을 고하게 했다.

위나라의 구원 요청을 받은 주장왕이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물었다.

「누가 능히 나라를 위해 위나라를 구하겠는가?」

주공 기보(忌父)와 서괵공 백개(伯皆)가 함께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정나라를 정벌하다가 왕실의 위엄이 꺾인 이후로 왕명이 행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제후(齊侯) 강제아(姜諸兒)가 왕희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사국의 군사를 합쳐 쫓겨난 군주를 복위시킨다는 명분으로 위나라를 정벌하려고 합니다. 명분은 옳고 병사는 강하여 대적할 수 없습니다.」

여러 신하들이 서있는 반열의 왼쪽 제일 끝에 서 있던 신하 한사람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두 분의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다섯 나라의 군사는 단지 강할 뿐이지 어찌 명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여러 신하들이 보니 그 사람은 하사(下士)의 직에 있는 자돌(子突)이었다. 주공이 말했다.

「나라를 잃은 제후를 도와 복위시키는 일을 어찌 명분이 서지 않는다고 하는가?」

자돌이 지지 않고 말했다.

「검모가 위후의 자리에 오른 일은 이미 왕께 품하여 윤허를 받았습니다. 왕명을 내려 검모를 위후로 승인했음은 삭을 반드시 폐하라는 뜻입니다. 두 분께서 왕명을 받아 행한 일을 명분이 없다 하시고 오히려 왕명으로 폐한 제후를 다시 복위시키려는 일을 명분이 있다 하시니 소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괵공이 나와 주공을 거들었다.

「국가의 존망이 달린 대사라고 할 수 있는 병사에 관한 일은 그 역량이 크고 작음에 따라 행해집니다. 왕실의 사기가 떨어진 것은 하루 이틀만의 일이 아니라,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선왕께서 친히 군사를 이끌고 군중에 계실 때 축담(祝聃)이 쏜 화살에 맞으신 이래로 지금 두 세대가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아직껏 그 죄조차 묻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더욱이 다섯 나라 군사들의 힘은 정나라보다 열 배나 강합니다. 외로운 군사를 가지고 남의 나라를 구하러 가는 행위는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과 같아서 다만 헛되이 위엄을 손상시킬 뿐이라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자돌이 물러서지 않고 강변했다.

「천하의 일은 힘보다는 도리로 행하는 것을 원칙이라고 하고 도리보다는 힘으로 하는 것을 변칙이라고 합니다. 왕명이 있는 곳에 도리가 있을 뿐입니다. 천고의 승부는 도리에 의해 정해지는 법이지 일시적인 힘의 강약에 있지 않습니다. 만약에 도리를 업신여기면서 뜻을 얻는 자를 보고도 한 사람도 몸을 일으켜 그 잘못을 묻지 않는다면, 천고에 걸쳐도 옳지 않는 일을 바로 잡을 수 없게 되며, 이 일로 인하여 세상의 모든 일은 뒤집혀져서 천하에 다시는 왕명을 세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여러 공들도 무슨 면목으로 왕이 계시는 조정에서 경사(卿士)라고 불리게 될 수 있겠습니까?」

괵공이 미처 대답을 못하자 주공이 대신 말했다.

「만일 우리 주나라가 오늘 위나라를 구할 군사를 일으킨다면 그대는 능히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자돌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구벌지법(九伐之法)⑯은 사마(司馬)가 주관하고 있습니다. 돌의 벼슬은 미관말직이고 재주는 보잘것없어 진실로 그 임무를 맡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일을 맡아 위나라를 구원하러 가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면 돌이 죽음을 무릅쓰고 사마를 대신하여 감히 임무를 맡고자 합니다.」

주공이 되물었다.

「그대가 위나라를 구하러 가서 능히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겠는가?」

「제가 오늘 군사를 끌고 출동하면 이미 승리는 취한 바와 다름이 없습니다. 만약에 문왕과 무왕을 위시한 선왕들의 영령에 힘입어 의로써 제후들을 타일러, 다섯 나라의 제후들이 마음속으로 후회하게 되면, 그것은 또한 왕실의 홍복입니다. 이 돌은 단지 해야 할 일을 할뿐이지 저의 능력만으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대부 부신(富辰)이 말했다.

「돌의 말이 심히 장합니다. 자돌에게 군사를 주어 위나라를 구원하게 하여 주나라 왕실에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천하의 제후들이 깨닫게 하십시오.」

주왕이 그 말을 쫓아 자돌을 장수로 삼아 위나라에 구원군을 보내기로 하였다. 사신으로 온 영궤를 먼저 위나라로 달려가게 해서, 천자의 군사들이 곧바로 위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동할 것이라고 전하게 하였다.

한편 주공과 괵공 두 사람은 자돌이 성공하여 공을 세우게 되는 것을 시샘하여 단지 병거2백 승 만을 내주었다. 그러나 자돌은 결코 두 사람에게 원망의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주나라 태묘에 출정을 고한 자돌은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향해 출발했다. 그때는 이미 오국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위나라의 도성 바로 밑에까지 쳐들어 와서 포위하고, 격렬하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공자설과 공자직은 밤낮으로 성 주위를 순시하면서 천자의 군사들이 와서 포위를 풀어 주는 날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윽고 자돌이 천자의 군사들을 이끌고 성 밖에 당도했으나 군사의 수가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장수도 부족해서 다섯 나라의 호랑이 같은 장수들과 수많은 군사들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자돌이 진영을 세우기도 전에 다섯 나라의 군사들이 크게 한번 공격하니 200승의 병거들은 마치 화롯불에 눈 녹듯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자돌이 한탄하며 말했다.

「내가 왕명을 받들어 싸우다가 죽는 것은 충성스러운 마음을 잃지 않는 귀신이 되는 일이다.」

자돌은 곧이어 칼을 잡고 수십 명의 적병을 죽인 후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한탄하였다.

비록 한 떼의 병사만으로는 공을 이룰 수는 없었지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왕명을 대낮같이 환하게 밝히고

진실로 남아 대장부의 의로움과 용기를 보였으니

일의 성패로 영웅을 논하지 말지어다.

雖然只旅未成功(수연지려미성공)

王命昭昭耳目中(왕명소소이목중)

見義勇爲眞漢子(견의용위진한자)

莫將成敗論英雄(막장성패논영웅)

왕의 군대가 이미 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위나라의 군사들은 제후군들이 미처 공격도 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흩어져 도망쳐 버렸다. 이윽고 제나라 군사들이 먼저 성벽 위에 오르자, 사국의 군사들도 그 뒤를 따라 성문을 부수고 위후 삭을 앞에 세우고 입성하였다. 공자설과 공자직 및 영궤가 합심하여 잔병들을 수습하여 위후 검모를 모시고 같이 성밖으로 도망치다가 도중에 노나라 병사들과 만나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와중에 영궤는 퇴로를 뚫고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으나, 나머지 세 사람은 노나라 병사들의 포로가 되었다. 검모와 두 공자를 구하기에는 자기 힘이 역부족이라고 생각한 영궤는 탄식을 길게 한 번 다음에 서쪽의 섬진을 향하여 망명의 길을 떠났다. 노장공이 검모와 두 공자를 포로로 잡아 위후 삭에게 바쳤다. 그러나 위후가 감히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고 다시 제양공에게 바쳤다. 제양공은 도부수에게 명하여 공자설과 공자직을 참수하였으나 검모는 주왕의 사위이며 자기와는 동서지간이라 차마 죽이지 못하고 주나라로 송환했다. 위혜공은 성안에 큰 종을 울리고 북을 쳐서 위나라 백성들에게 알린 후에 위후의 자리에 다시 올랐다. 이어서 위혜공이 위나라의 부고에 소장되어 있던 금은보옥을 모두 꺼내어 양공에게 바쳤다. 양공이 말했다.

「검모와 두 공자를 사로잡은 노후의 공도 작지 않소.」

말을 마친 제양공은 이어서 위나라로부터 받은 재물 중, 반을 나누어 노장공에게 주고 다시 위혜공에게 말하여 별도로 기물(器物)과 재물(財物)을 부고에서 내어 오게 하여 송(宋), 진(陳), 채(蔡) 세 나라의 군주들에게도 나누어주도록 했다.

주장왕9년 기원전 688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4. 과숙지약(瓜熟之約)

- 참외가 익을 때 한 약속 -

자돌이 이끄는 왕군을 파하고 위후 검모를 사로잡아 주나라에 송환한 제양공은 후에 주왕이 다시 토벌군을 보내지나 않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대부 연칭(連称)을 대장으로 관지보(管至父)를 부장(副將)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규구(葵邱)⑰에 가서 주둔하며 지키도록 했다. 두 사람의 장군이 임지로 떠날 때 양공을 배알하면서 청했다.

「변방의 요충지를 지키는 노고는 신이 감히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언제까지 지켜야 합니까?」

그때 마침 양공이 참외를 먹고 있으면서 말했다.

「요즈음 참외가 익는 시절이다. 내년 이맘 때 참외가 다시 익으면 다른 사람을 보내 교대해 주겠다.」

두 사람의 장수가 규구에 가서 진을 치고 지켰는데 어느 사이에 일 년이 훌쩍 지나갔다. 어느 날 갑자기 군졸하나가 참외를 가져와서 맛을 보라고 연칭과 관지보 두 장군에게 바쳤다. 두 장수는 참외가 익을 때가 되면 교대해 주겠다는 양공의 약속이 생각났다.

「지금은 이미 교대해야 할 때가 지났는데 어찌하여 주공께서는 교대하는 사람을 보내주시지 않는가?」

연칭은 심복 중에 한 사람을 뽑아 도성으로 보내 소식을 알아보게 하였다. 심복이 돌아와서 제후는 곡성(谷城)에서 문강과 환락을 즐기면서 도성에 돌아오지 않은 지 한 달도 더 되었다는 정황을 보고하였다. 연칭이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왕희가 죽었으니 마땅히 나의 누이가 정실자리를 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도혼군이라 사람의 도리를 돌보지 않고 외지에 나가서 매일 음락만을 즐기고 있으면서 우리들을 이런 변방에다 방치하고 있음이라. 내 마땅히 죽이고 말리라!」

연칭이 관지보를 향하여 다시 말했다.

「장군은 나의 한 팔이 되어 도와주기 바라오!」

「참외가 익으면 교대해 준다고 주공께서 친히 약속하셨습니다. 혹시 황망 중에 잊어버리고 있는지 모르니 우선 교대해 달라고 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만약 교대해 주지 않는다면 군심이 동요될 것인즉, 그때 동요된 군심을 이용하십시오.」

「좋은 생각이오.」

두 사람이 사람을 시켜 참외를 양공에게 바치게 하고 변방을 지키는 임무를 교대해 주도록 청했다. 양공이 화를 내면서 말했다.

「교대해 주고 안 해 주고는 나의 마음인데 어찌하여 변방을 지키는 장수 주제에 스스로 청한단 말인가? 참외가 내년에 다시 익으면 교대해 주겠으니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전하라.」

임치성에 사자로 간 사람이 돌아와서 양공의 말을 보고했다. 연칭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관지보에게 말했다.

「대사를 행하려면 어떤 계책을 써야 하겠소?」

「모든 거사는 우선 새로운 군주로 모실 분을 정한 후에 행하여야만 성공하는 법입니다. 공손무지(公孫無知)는 곧 이중년(夷仲年)의 아들입니다. 선군 희공께서는 동모제인 이중년을 매우 사랑하였으나 일찍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 무지를 아들처럼 사랑하게 된 선군께서는 그를 어려서부터 궁중에 데려다가 키워서 의복이나 예의 절차까지 모두 세자와 똑같이 행하다가 돌아가실 때도 대우를 변함없이 행하라고 주공에에 유언했습니다. 지금의 혼군이 즉위한 후에도 무지는 계속 궁중에 같이 생활하다가 어느 날 혼군과 씨름을 하게 되었는데, 무지가 발을 걸어 주공을 땅에다 메다꽂아 엎어지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무지를 불쾌하게 생각하게 된 양공은 하루는 대부 옹름(雍廩)과 사람의 도리에 대해 언쟁을 하고 있던 무지의 불손함에 노하여 곧바로 무지를 궁중 밖으로 쫓아내고는 그의 벼슬과 품계를 크게 깎아 버렸습니다. 무지가 그 일로 인하여 가슴에 한을 품은 지 이미 오래되어, 매사에 난을 일으킬 생각을 품고 있었으나,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들이 무지와 아무도 몰래 통하여 내외에 힘을 합하면 반드시 일을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거사를 해야 하겠소?」

「주공은 용병을 좋아하고 또한 사냥을 즐기는 성격이니 이는 맹호를 굴에서 나오게 하고 나서 거사를 하여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단지 주공이 도성 밖으로 나가는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 기회를 이용하면 될 것입니다.」

「나의 누이가 궁중에 있는데 주공의 총애를 잃어 역시 원망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있소. 오늘 무지에게 몰래 부탁하여 내 누이의 도움을 요청하라고 하고, 주공이 성 밖으로 나갈 때를 기다렸다가, 밤을 도와 그 사실을 우리에게 전하게 하면 일이 그르치지는 않을 것이요.」

이어서 연칭이 다시 심복을 시켜 공손무지에게 편지를 전하게 했다. 『현명하신 공손께서 선군으로부터 마치 적자처럼 총애를 받으시다가 하루아침에 직위와 품계를 삭탈 당하신 일을, 길가는 사람이면 모두가 옳지 못하다가 불평하고 있습니다. 항차 군주가 황음하여 날이 갈수록 정신이 혼미해지고 정령은 수시로 바뀌고 있습니다. 과숙지약(瓜熟之約)을 믿고 규구를 오랫동안 지켜왔으나, 참외가 이미 익었음에도 교대를 해주지 않으니 삼군의 병사들이 원망한 나머지 란을 일으키려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공손께서 기회를 보아 대사를 도모하신다면 이 연칭 등은 견마지로를 다하여 공손을 제나라의 군주로 추대하고자 합니다. 이 칭의 누이는 궁실에 들어가 이미 오래되었으나 총애를 잃어 원한을 품고 있으니, 결국은 하늘이 도운 격이 되어 공손과 내응할 수 있는 준비가 이미 되었다고 봅니다. 이것은 하늘이 주신 기회니 결코 놓치지 마십시오.』

공손무지가 편지를 받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다시 답서를 썼다.

「하늘이 황음한 자를 벌주려고 장군으로 하여금 그 뜻을 펴게 하였다. 편지 속의 내용은 가슴에 새겨 두겠으며 머지않아 나를 추대한 보답을 받게 되리라!」

무지가 몰래 시녀를 연비에게 보내 연칭의 편지를 보여주며 말하게 했다.

「만약 일이 성사되면 마땅히 연비를 나의 부인으로 세우겠소.」

연비가 허락했다. 주장왕 11년 기원전 686년의 일이었다.

5. 출렵우귀(出獵遇鬼)

- 사냥터에서 팽생이 변한 귀신을 만나나는 제양공 -

제양공은 고분(姑棼)⑱의 들판에 솟아 있는 패구산(貝邱山)이 날짐승과 들짐승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 사냥을 하고 놀기에 좋은 명소라는 사실을 평소에 알고 있었다. 그해 10월이 되자, 곧바로 도인비(徒人費) 등을 시켜 거마를 손보게 하고, 다음 달 초에 패구산으로 사냥을 나가겠다는 명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게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연비가 궁인 편에 편지를 써서 무지에게 보냈다. 무지는 다시 밤을 도와 편지를 써서 규구에 있는 연칭과 관지보에게 편지를 보내 통지하고 양공이 사냥 나가는 11월 초순에 일제히 거사를 하기로 약정하였다. 연칭이 관지보를 보고 말했다.

「혼군이 사냥을 나가면 도성 안은 텅텅 비게 될 텐데, 그사이에 우리들이 군사를 끌고 도성으로 바로 쳐들어가 공손을 옹립하면 어떻겠소?」

「주상은 이웃나라 군주들과는 사이가 좋습니다. 만약에 군사를 빌려서 우리를 토벌하러 오면 어찌 하시렵니까? 사냥터가 있는 고분에 군사들을 매복시켜 놓았다가 먼저 혼군을 죽이고 연후에 공손을 추대하면 만전을 기하는 일니다.」

그때 규구를 지키는 군사들은 오랫동안 나라 밖에서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집 생각을 간절히 하고 있었다. 연칭이 비밀리에 명령을 내려 각자가 비상식량을 준비시키고, 패구산으로 이동한다는 명을 전하자 군사들은 모두가 기뻐하였다.

한편 제양공은11월 초하룻날 수레를 타고 패구산의 사냥터로 향했다. 오로지 장사 석지분여(石之紛如)와 총신 맹양(孟陽)과 도인비 등의 측근 세 사람만을 데리고, 사냥을 위해 길들인 매는 팔뚝에 앉히고, 사냥개들은 모두 끌고 나와 수레 뒤에 따르게 하고는, 그 밖의 대신들은 한 사람도 따라 오지 못하게 하였다. 고분에 도착한 양공은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이궁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고분의 백성들이 술과 고기를 준비하여 갖다 바치자, 양공이 밤이 깊어 질 때까지 즐겁게 마시고 먹고 하면서 유숙하였다. 다음날 수레를 움직여 패구산으로 향했다. 길옆의 숲에는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섰고 덩굴들은 서로 나무들을 휘감고 있어 실로 패구산의 삼림은 울창했다. 양공이 높은 언덕에 수레를 멈추고 불을 놓아 숲을 태우라고 명령하고, 이어서 군사들에게 산을 에워싸게 하였다. 산 속의 짐승들이 숲 속에서 뛰어 나오자 군사들에게 활쏘기를 서로 겨루게 하고는, 매와 사냥개를 풀어놓았다. 불길이 맹렬히 치솟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여우와 토끼 같은 짐승은 동쪽으로 달아나다가 다시 서쪽으로 뛰어다녔다. 그런데 갑자기 소같이 생겼지만 뿔이 없고, 호랑이 같이 생겼지만 몸체에 무늬가 없는 대단히 큰 돼지 한 마리가 불길 속에서 뛰어나와 양공이 있던 언덕 위로 올라오더니 수레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때는 양공 주위의 시종들은 모두 사냥감을 잡기 위해 멀리 떠나 있어 오로지 맹양만이 옆에 있었다. 양공이 맹양을 쳐다보며 말했다.

「빨리 저 돼지를 활로 쏴서 잡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맹양이 눈을 부릅뜨고 돼지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크게 놀라 소리쳤다.

「저것은 돼지가 아니라 공자 팽생(彭生)입니다!」

양공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죽은 팽생이 어찌 감히 나를 볼 수 있단 말이냐?」

맹양이 들고 있던 활을 빼앗은 양공이 직접 연달아 세 발을 쐈지만 한발도 맞지 않았다. 그러나 그 커다란 돼지가 갑자기 두발로 서더니 앞발을 높이 들어 마치 사람처럼 걸어 다니면서 소리 높여 통곡을 하는데, 너무나도 애처로워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양공이 놀라 모골이 송연하게 된 나머지, 수레 위에서 굴러 떨어져 넘어지면서 왼쪽 발을 다치고 사문구(絲文屨)⑲ 한 짝이 벗겨지자 그 큰 돼지가 달려와서는 입에 물고 가버려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노래했다.

노환공은 옛날에 수레 안에서 죽었는데

제양공은 오늘 수 레 안에서 귀신을 만났다.

억울하게 죽은 팽생이 원한에 맺혀 악귀가 되어 나타나자

제아는 조궁을 들어 화살을 쐈지만 맞추지 못했다.

魯桓昔日死車中(노환석일사거중)

今日車中遇鬼雄(금일거중우귀웅)

枉殺彭生應化厲(왕살팽생응화려)

諸兒空自引雕弓(제아공자인조궁)

6. 적원폐명(積怨毙命)

- 악행을 쌓은 업보로 비명에 죽다 -

도인비(徒人費)와 시종들이 양공을 부축하여 일으켜 수레 안에다 눕히고, 전령을 보내어 사냥을 파한다고 전하고 고분에 있는 이궁으로 돌아가 유숙하도록 했다. 양공은 미몽에게 깨어나긴 했으나 정신이 몽롱하고 마음은 안정이 안 되어, 조급한 생각만 품게 되었다. 그때 궁중에서 이미 이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양공은 수레에서 굴러 떨어질 때 다친 왼쪽 발에 통증이 와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거리며,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맹양을 향하여 말했다.

「내가 천천히 몇 발자국을 걸어 보겠으니 이리 와서 나를 부축해 보라!」

맹양이 양공에게 신기기 위해 신발을 찾았으나, 낮의 사냥터에서 수레 위에서 밑으로 굴러 떨어 질 때 너무도 황망하여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가 양공이 걸어 보겠다고 하자 그때서야 신발 한 짝이 없어진 줄 알게 되었다. 맹양이 도인비를 불러 신발 한 짝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도인비가 대답하였다.

「신발 한 짝은 큰 돼지가 물고서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도인비의 말이 마음에 거슬린 양공이 크게 화를 내며 꾸짖었다.

「너는 이미 나를 따라다닌 지 하루 이틀이 아니건만 어찌하여 나의 신발 한 짝이 없어진 사실도 모른단 말이냐? 만약에 네 말대로 돼지가 물고 가 버렸다면 그 당시 어찌하여 아뢰지 않았느냐?」

양공이 가죽채찍을 손수 잡고 도인비의 등을 후려쳤다. 비의 등에서 흐르는 피가 바닥을 흥건히 적실 때까지, 양공은 채찍질은 멈추지 않았다. 양공이 채찍질을 멈추자 도인비는 눈에 눈물을 머금으며 궁실에서 나와 이궁의 성문을 나서자 마침 몇 사람의 군사를 이끌고 양공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성문 쪽으로 접근하고 있던 연칭의 일행과 마주치게 되었다. 연칭은 도인비를 잡아 다짜고짜로 밧줄로 묶고 나서 물었다.

「무도혼군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침실에 있습니다. 」

「이미 잠자리에 들었는가?」

「아직 들지 않았습니다. 」

연칭이 칼을 들어 도인비를 죽이려고 하자 도인비가 말했다.

「저를 살려 주시면 제가 마땅히 장군을 주공이이 있는 곳까지 인도해 드리겠습니다.」

연칭이 믿지 않자 도인비가 말했다.

「제가 마침 그 도적놈에게 채찍을 맞아 부상을 당하여 저도 역시 그 놈을 죽이려고 하던 참입니다.」

도인비가 말을 마치고 즉시 웃옷을 벗어 채찍으로 맞아 상처가 난 등을 보여 주었다. 연칭은 혈육으로 뒤엉켜 흥건히 적셔 있는 도인비의 등짝을 실제로 보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도인비의 결박을 풀어주준 연칭은 그에게 성안으로 다시 들어가 내응하라고 하면서 즉시 관지보를 불러 많은 군사를 이끌고 도인비의 뒤를 쫓아 성안으로 돌입하게 했다. 한편 연칭을 속여 성문 안으로 다시 들어온 도인비는 마침 장사 석지분여와 마주치자 연칭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고했다. 두 사람이 곧바로 양공의 침실로 달려가서 연칭의 반란을 알렸다. 양공이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도인비가 말했다.

「일은 이미 매우 급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을 주공으로 분장시켜 침상에 눕게 하고, 주공께서는 지게문 뒤에 숨어 계시다가 다행히 발각되지 않는다면 혹시 기회를 봐서 이곳에서 탈출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곁에 있던 맹양이 말했다.

「신은 항상 분수에 넘는 은혜를 주공에게서 받아 왔습니다. 원컨대 제가 주공을 대신하겠습니다.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맹양이 말을 마치고 즉시 침상에 눕고는 다른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게 얼굴을 안쪽으로 향하자, 양공이 친히 비단 전포를 벗어 덮어 주었다. 이어서 양공은 몸을 지개문 뒤에 숨기면서 도인비에게 물었다.

「너는 장차 어찌하겠느냐?」

「신은 석지분여와 힘을 합하여 적도들을 막겠습니다. 」

「채찍으로 맞은 등 뒤의 상처가 아프지 않느냐?」

「신이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있는데 어찌 아픈 상처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도인비의 대답을 듣고 양공이 한탄하면서 말했다.

「진정 충신이로다 」

도인비는 석지분여로 하여금 여러 시종들을 거느리고 중문에서 적도들을 막게 하고, 자신은 단신으로 예리한 단도를 소매 속에 숨기고는, 연칭을 맞이하는 것처럼 하다가 기회를 봐서 찔러 죽이려고 하였다. 그때는 수많은 적도들이 이미 성문을 깨뜨리고 이궁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연칭은 장검을 치켜들고 여러 적도들 앞에 서서 길을 찾아 들어오고 있었고, 관지보는 궁문 앞에서 군사들을 열병시킨 후에 기다리게 해서 혹시 다른 변이 났을 때를 대비하였다. 흉맹한 기세로 다가오는 연칭의 모습을 본 도인비는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발을 한발자국 내딛으며 손에 들고 있는 칼로 연칭을 찔렀다. 그러나 도인비는 연칭이 몸 속에 두꺼운 갑옷을 껴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도인비의 칼은 연칭의 갑옷을 꿰뚫지 못했다. 연칭이 도인비를 향해 칼을 한번 휘두르자 단도를 잡고 있던 도인비의 손가락 두 개가 잘려 나갔다. 이어서 다시 한 번 더 휘두른 연칭의 칼에 도인비는 목이 잘려 나가 죽었다. 석지분여가 창을 들고 연칭을 막아서며 십여 합을 버텼으나, 연칭의 기세에 눌려 점점 뒤로 물러나다가 돌계단에 발이 걸려 넘어져 버렸다. 석지분여도 역시 연칭의 한 칼에 목숨을 잃었다. 연칭이 이궁의 침실로 뛰어 들어가자, 양공을 모시던 시종들이 놀라서 모두 흩어져 달아났다. 연칭이 보니 둥그렇게 꽃무늬로 수놓은 장막 안에서 한 사람이 누워 있는데 비단 전포를 위에 덮고 있었다. 연칭이 칼을 든 손을 들어 내리치자 그 머리가 침상 밑으로 떨어졌다. 촛불을 들어 떨어진 머리를 살펴보니 나이는 어리고 얼굴에는 수염이 하나도 없었다. 연칭이 보고 말했다.

「이 사람은 혼군이 아니다 」

연칭이 사람들에게 방안을 샅샅이 뒤지게 하였지만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다니며 찾고 있는데 갑자기 지게문 난간 아래에 사문구 한 짝이 보였다. 지게문 뒤에 사람 하나가 몸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연칭은 그 사람은 바로 양공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게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과연 혼군이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잔뜩 쭈그리고 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 사문구 한 짝은 양공이 신고 있었고, 연칭이 발견한 또 다른 한 짝은 낮에 사냥터에서 커다란 돼지가 입에 물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여 지게문 난간 아래에 떨어져 있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원귀의 소행이 분명한지라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연칭은 마치 병아리 새끼를 다루듯이 양공을 잡아서 지개문 밖으로 끌어내어 땅에다 메다꽂고는 크게 꾸짖었다.

「무도혼군아! 너는 해마다 쉴 새 없이 군사를 일으켜 무력을 남용하여 백성들에게 재앙을 안겨주었으니 이것은 불인(不仁)을 저지른 죄이며, 부친의 유명을 듣지 않고 공손무지를 멀리하였으니 이것은 불효이며, 오라비와 누이가 서로 간음하면서 이를 전혀 거리끼지 않았으니 이것은 무례(無禮)이고, 먼 지방의 황량한 땅에서 오랫동안 외적을 막고자 지키는 노고를 고려하지 않고 참외가 익은 계절이 되었는데도 교대하여 주지 않았으니 이것은 무신(無信)이다. 인(仁), 효(孝), 예(禮), 신(信) 네 가지의 덕을 모두 잃었으니 어떻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내가 오늘 노환공을 위하여 원수를 갚아 주리라.」

연칭이 말을 마치고 곧바로 양공을 향해 칼로 내리치자 양공의 몸은 두 동강이가 나서 죽었다. 연칭은 침상 위의 이불로 양공의 양단 된 시신을 맹양의 시체와 함께 말아서 지게문 바로 밑에다 매장했다. 모두 합하여 5년을 재위한 제양공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사관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양공은 대신들은 소원하게 대하면서 석지분여나 맹양, 도인비와 같은 소인들과는 가깝게 지냈다. 그 소인들이 평소에 사사로운 은혜를 입어 변란 중에 같이 죽음으로써 비록 양공에게 그 은혜를 갚았다고는 하나, 충신대절(忠臣大節)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연칭, 관지보와 그의 부하들이 오랫동안 변방을 지켰으나 때가 되어도 교대를 해주지 않아 곧바로 반란을 일으켜 그 군주를 죽였다고 하겠으나, 그것은 양공이 저지른 악행이 이미 가득 차게 되어 두 사람의 손을 빌려 하늘이 벌을 내렸음이다. 팽생이 처형 당하면서 ‘내가 죽어 귀신이 되어 너의 목숨을 가져가겠다.’라고 크게 소리쳤는데 후에 팽생이 커다란 멧돼지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으니 이는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닌 것이다.』

염옹이 시를 지어 석지분여와 도인비에 대하여 시를 지어 읊었다.

임금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행위를 충정(忠貞)이라 했는데

도인비와 석지분여는 충신으로써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만일 혼군을 따라 목숨을 버리는 일을 충절이라고 한다면

비렴⑳과 숭호㉑같은 악인도 정문을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捐生殉主是忠貞(연생순주시충정)

費石千秋无令名(비석천추무령명)

假使從昏称死節(가사종혼칭사절)

飛廉崇虎亦堪旌(비렴숭호역감정)

또 시를 지어 제양공을 풍자했다.

불을 질러 사냥을 하다가 임금이 죽었고

불길이 멎자 커다란 멧돼지가 뛰어나와 미친 듯 날뛰었다

악행이 차서 가득하니 어찌 죽지 않겠는가?

사람들이여, 선행을 하는데 이익을 따지지 말지어다!

方張惡焰君侯死(방장악염군후사)

將熄凶威大豕狂(장식흉위대시광)

惡貫滿盈无不斃(악관만영무불폐)

勸人作善莫商量(권인작선막상량)

양공을 시해한 연칭과 관지보가 군용을 재정비하여 제나라 도성으로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공손무지가 미리 사병을 무장시켜 기다리고 있다가 양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사병을 끌고 나아가 성문을 열고 연칭과 관지보 두 장군을 접응하여 성안으로 맞아 드렸다. 두 장군이 선언하였다.

「선군 희공의 유명을 따라 공손무지를 우리 제나라의 군주로 모신다.」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