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好鶴亡國(호학망국), 南征荊蠻(남정형만) > 2부2 관포지교

제23회. 好鶴亡國(호학망국), 南征荊蠻(남정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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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6,164회 작성일 04-05-1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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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好鶴亡國 南征荊蠻(호학망국 남정형만)

학에 탐닉하여 나라를 잃은 위의공과

제후군을 규합하여 초나라 정벌군을 일으키는 제환공

1. 호학망국(好鶴亡國)

- 학에 탐닉하다가 나라를 망해먹은 위의공(衛懿公) -

주혜왕9년 기원전 668년, 위혜공의 삭의 뒤를 이어 위나라 군주의 자리에 오른 위의공은 재위 9년 동안 자기가 좋아하는 짓만 골라하고 천성이 게으르고 오만하여 나라의 일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저 한 일이라고는 날아다니는 짐승들을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 학을 제일 좋아했다. 부구백(浮丘伯)①은 자기가 지은 『상학경(相鶴經)』이라는 책에서 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학이란 짐승은 양조(陽鳥)이면서 음지에서 놀기를 좋아한다. 쇠의 기로 인하여 불의 정령을 받아 스스로 양생(陽生)한다. 금수(金數)는 아홉이고 화수(火數)는 일곱이다. 고로 학은 7년에 한번 적게 자라고 16년에 크게 자라 160년이 되면 성장이 멈추고 1600년이 되면 그 모습을 다 갖추게 된다. 그 몸은 항상 청결하기 때문에 학의 몸 색깔은 흰색이다. 울음소리는 하늘에 닿아 그 머리는 빨갛고 물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부리는 길다. 땅에 살기 때문에 그 발은 길고, 하늘높이 구름사이를 날기 때문에 털은 많지만 살은 찌지 않는다. 목구멍이 커서 토할 수 있고 목을 늘리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임으로 그 수명을 헤아릴 수 없이 길다. 날아다니는 곳은 반듯이 강변의 모래사장이나 모래톱이 있는 곳이며 숲이나 나무 있는 곳에 모이지 않으니 이야말로 날아다니는 짐승 중에 제일이라 신선들이 즐겨 타고 다닌다. 좋은 학의 조건은 코가 높고 부리가 짧아야 잠이 적고, 다리는 길고 마디는 짧아야 힘이 세며, 눈이 튀어나오고 눈알이 붉어야 먼 곳을 능히 볼 수 있다. 또한 날개는 봉황과 같고 털은 참새와 같아야 멀리 날아다닐 수 있으며, 등은 거북이고 배는 자라 같으면 능히 새끼를 잘 낳을 수 있다. 앞이 가볍고 뒤가 무거워야 춤을 잘 출 수 있으며, 발 뼈가 넓고 발뒤꿈치가 가늘어야만 잘 걸을 수 있다.」

위의공은 깨끗한 몸 색깔과 청초한 울음소리 및 그 춤추는 학의 모습에 매료되어 오로지 학만을 좋아하게 되었다. 속언에 ‘윗사람이 좋아하지 않게 되면 밑에 사람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②라는 말이 있다. 의공이 학을 지나치게 좋아했음으로 학을 가져다 바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상을 많이 내렸다. 그래서 후한 상을 노린 사냥꾼들은 백방으로 돌아다니며 잡은 학을 가지고 와서 의공에게 바쳤다. 궁궐의 곳곳에다 우리를 만들어 학을 기르게 하였는데 그 수가 수 백 마리가 넘었다. 후에 남북조(南北朝) 시대 때 남제(南齊)를 세운 고제(高帝) 소도성(蕭道成)③이 학을 노래한 시가 있다.

팔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맞춰 훨훨 춤을 추면서

구천의 들에서 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하늘 높이 구름 사이를 날고 싶은 뜻을 꺾더니

임금님을 위해서 궁중 뜰에 묶였네.

八風舞遙翮(팔풍무요핵)

九野弄淸音(구야농청음)

一摧云間志(일최운간지)

爲君苑中禽(위군원중금)

위의공은 자기가 기르는 모든 학들에게 품계와 봉록을 정하고 가장 좋은 품계의 학은 대부가 받는 봉록을 주고 그 다음의 품계의 학에게는 사(士)의 봉록을 주었다. 의공이 성 밖으로 놀이를 나갈 때는 학들도 또한 동반하여 큰 수레의 앞에 나누어 태우고 학장군이라고 부르게 하고 학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봉록을 내렸다. 백성들로부터는 세금을 무겁게 걷어 들여 학들을 키우는데 낭비하여 굶거나 얼어서 죽는 백성들이 속출하여도 전혀 거들떠보지 않았다. 대부 석기자(石祁子)는 곧 석작(石碏)의 후손으로 석태중(石駘中)의 아들이었다. 그 사람됨이 충직하기로 이름이 있었다. 석기자는 대부 영장(寧庄)의 아들 영속(寧速)과 같이 위나라의 국정을 맡아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다 어진 신하였다. 두 어진 신하가 여러 번 간했으나 의공은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의공은 혜공 삭(朔)의 아들이다. 혜공에 의해 살해된 세자 급자에게는 동모제가 둘이 있었다. 첫째 동생은 주왕실의 부마가 되어 주나라에 살다가 혜공이 위후의 자리에서 쫓겨나자 추대된 검모(黔牟)이고 둘째 동생은 소백(昭伯)으로 봉해졌으나 혜공에게 살해될까 두려워 제나라에 망명했던 공자석(公子碩)이다. 옛날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혼자 살게 된 선강을 불쌍하게 생각한 제양공은 공자석을 귀국시켜 선강과 강제로 살게 하였었다. 두 사람 사이에 소생이 다섯이 생겼는데 장남은 이름을 제(齊)라 지었으나 어려서 일찍 죽었고 둘째는 공자신(公子申)으로서 후에 의공의 뒤를 이어 위후의 자리에 올랐으나 어려서부터 앓았던 지병으로 재위에 오른 지 몇 며칠 만에 죽은 대공(戴公)이다. 그 뒤를 셋째인 공자훼(公子毁)가 이었는데 이가 위문공(衛文公)이다. 그리고 2녀 중 장녀는 송환공(宋桓公)의 부인이 되었고 차녀는 허목공(許穆公)의 부인이 되었다.④ 이것은 모두 후일의 이야기이다. 공자훼는 위나라가 학으로 인해 망할 것임을 알고 제나라로 도망가서 제환공에게 몸을 의탁했다. 제환공은 자규(子糾)의 딸을 공자훼에게 주어 제나라에 살게 했다.

위나라의 백성들은 세자 급자가 혜공에 의해 살해 된 일을 원통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혜공이 위후의 자리에 복위한 이래 밤낮으로 혜공을 저주하면서 공공연히 말하였다.

「하늘에 도리가 있다면 반드시 위나라의 군주 자리는 혜공의 후손들에게 전해지지는 않으리라!」

혜공 삭에게 살해당한 급자와 공자수는 모두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급자의 뒤를 이을 만한 사람은 단지 어질고 덕을 갖춘 공자석의 소생인 공자훼 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위나라 백성들의 마음은 자연히 그에게 쏠리게 되었다. 의공이 학에 너무 탐닉한 나머지 실정을 하게 되자 공자훼는 위나라로부터 도망쳐서 제나라에 몸을 의탁하게 되고 그런 의공에게 대한 백성들의 원망은 하늘로 치솟았다.

한편 북적(北狄)은 주나라 태왕(太王)⑤ 때는 훈육(獯鬻)⑥이라고 칭해 왔는데 세력이 커진 그들로 인해 주나라의 태왕이 위협을 느껴 기(岐) 땅으로 도읍을 옮기게 만든 바가 있었던 종족이었다. 주무왕이 천하를 통일하자 그의 동생 주공단(周公旦)이 남쪽으로는 형만(荊蠻)을 정벌하고 북쪽으로는 융적(戎狄)을 제압하여 중국의 천하는 오랫동안 안정되었다. 후에 주평왕이 주나라 도읍을 동쪽의 낙읍으로 옮긴 이후 형만과 북적의 이족(夷族)들이 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당시 북적의 왕 수만(瞍瞞)은 궁기병(弓騎兵) 수 만 명을 양성하여 항상 중원을 정복하고자 하는 뜻을 품고 있었다. 옛날 제환공이 북쪽의 산융을 정벌하기 위하여 원정길에 나섰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수만이 화를 내며 말했었다.

「제나라 군사들이 수 천리 멀리 떨어져 있는 산융을 정벌하기 위해 원정을 감행하는 행위는 우리를 가볍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마땅히 우리가 먼저 군사를 내어 기선을 제압하여야 하겠다.」

수만은 그 즉시 궁기병2만여 기를 이끌고 형국(邢國)을 침략하여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제환공이 형국을 구원하기 위하여 군사를 보내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은 수만은 즉시 군사를 움직여 위나라로 향하게 했다. 그때 위의공은 학을 수레에 태우고 성밖으로 놀이를 나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국경을 지키던 관리가 위의공에게 달려와 보고했다.

「적족의 군사들이 쳐들어 왔습니다.」

의공이 크게 놀라 즉시 백성들을 끌어 모은 후에 무장을 시켜서 적족의 군사들과 싸워 나라를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위나라의 백성들은 의공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모두가 시골로 도망쳐 숨어 버리고는 적족과의 싸움에 임하려고 하지 않았다. 의공이 사도를 시켜서 도망간 백성들을 잡아오게 했다. 잠깐 사이에 사도가 백여 명의 백성들을 잡아서 데리고 오자 의공은 어찌하여 나라를 지키지 않고 도망을 쳤냐고 그 이유를 물었다. 잡혀온 백성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군주께서는 한 가지 것만 쓰시면 능히 적족 오랑캐의 군사들을 물리칠 수 있는데 어찌하여 저희 같은 하찮은 백성들을 찾으십니까?」

의공이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 백성이 대답했다.

「그것은 학입니다.」

의공이 다시 물었다.

「학이 어떻게 오랑캐의 군사들을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그 백성이 다시 대답했다.

「학이 오랑캐의 군사들을 막아 낼 수 없는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군주께서는 유용한 것을 버리고 무용한 것만을 취하셨기 때문에 저희들은 명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과인의 죄가 크도다!. 그렇다면 학을 놓아 보낸다면 너희들이 나를 따라나서 오랑캐를 막기 위한 싸움에 임할 수 있겠는가?」

옆에 있던 석기자가 말했다.

「주군께서는 속히 말씀한 바를 행하기 바랍니다. 더 이상 지체하시다가는 일을 그르칠까 두렵습니다.」

위의공이 과연 사람을 시켜 학을 우리에서 꺼내 날려 보내도록 했다. 학들은 원래 곡식을 배불리 먹고 자라 살이 너무 비대하게 쪄서, 자기들이 자라던 곳을 맴돌기만 하다가 종래에는 날을 수가 없었다. 석기자와 영속 두 대부가 시정으로 나아가, 위후가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고 있다고 말하고 군사들을 모으자 백성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적족의 군사들이 쇄도하여 이미 형택(滎澤)⑦에 당도하자 경각을 다투는 급보가 세 번이나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올라왔다.

석기자가 의공을 보고 청했다.

「적족의 군사들이 매우 용맹하여 대적할 수 없으니 신이 제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청해 오겠습니다.」

「제나라가 지난번에 천자의 명을 받들어 정벌하러 와서 우리의 죄를 물으려 하다가 부군의 죽음을 알고 바로 되돌아갔으나 우리는 아직도 사절을 보내 감사의 말도 전하지 않아 수호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소. 그런데 어찌 제나라가 군사를 내어 우리를 구원하겠소? 차라리 나라의 존망을 걸고 일전을 하느니만 못할 것이오.」

영속이 나와 말했다.

「신이 군사를 끌고 나가 적군(狄軍)을 막아 보겠습니다. 주군께서는 이곳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내가 친히 싸움터에 나아가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힘을 다하여 싸우겠소?」

의공이 즉시 석기자에게 허리에 찬 옥결(玉玦)⑧을 풀어주며 국정을 대리하라고 하면서 당부의 말을 했다.

「경은 이 옥결을 징표로 삼아 국사를 알아서 처리하시오!」

의공이 다시 영속에게 군주를 표시하는 화살을 주면서 힘을 다하여 도성을 지키라고 당부하면서 말했다.

「나라 안의 모든 일은 두 분에게 맡아서 처리하기 바라오. 적군(狄軍)을 물리치지 못하면 돌아올 수 없을 것이오.」

석기자와 영속 두 대부가 눈물을 흘리며 명을 받들었다. 두 대부에게 작별을 고한 의공은 즉시 병거와 군사를 크게 모은 후 대부 거공(渠孔)을 대장으로 우백(于伯)을 부장(副將)으로 삼고 다시 황이(黃夷)를 선봉으로 공영제(孔嬰齊)를 후군의 장수로 삼아 적군을 막기 위해 위나라 도성을 빠져나갔다. 행군하는 중에 군사들은 의공을 원망하는 기색이 얼굴에 역력했다. 어느덧 날이 어두워지자 의공은 행군을 멈추고 영채를 세우게 했다. 이윽고 깊은 밤이 되어 의공이 몰래 밖으로 나가 영채를 살피려고 돌아다니던 중에 군중에서 노래 소리를 들었다.

백성들이 힘들여 밭을 가니 학이 녹으로 받아먹었고

고관의 수레를 탄 학을 위래 백성들은 군사가 되었다.

우리들은 적군의 군사들이 무서워 감히 맞서지 못하니

싸움터에 나가고는 있으나 살아오기 힘들겠네

지금 학들은 모두 어디로 다 가 버리고

우리만 남아서 두려움에 떨며 이 길을 가고 있는가?

鶴食祿民力耕(할식록민력경)

鶴乘軒民操兵(할승현민조병)

狄鋒厲兮不可攖(적봉려혜불가영)

欲戰兮九死而一生(역전혜구사이일생)

鶴今何在兮(학금하재혜)

而我瞿瞿爲此行(이아구구위차행)

의공이 노래 소리를 듣고 매우 괴로워했다. 이에 대부 거공이 군법을 매우 엄하게 행하자 군사들의 마음은 더욱 멀어졌다. 의공이 거느린 위나라의 군사들이 우여곡절 끝에 형택의 땅에 가까이 이르자 천여 명의 적병이 위군의 전면에 나타났다. 위나라 군사들을 발견한 적병은 좌우로 나뉘어 도망가기에만 바빠, 전혀 앞뒤가 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거공이 보고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적족의 군사들은 용맹하다고 했는데 사실은 헛소문에 불과하구나!」

거공이 즉시 명하여 북을 쳐서 군사들에게 진격명령을 내려 도망치는 적병의 뒤를 쫓게 했다. 거짓으로 패한 척 하면서 도망치던 적병들은 위나라 군사들을 자기편 군사들이 매복하고 있던 곳으로 유인했다. 위군이 마침내 자기들이 파놓은 함정으로 들어오자 적병들이 마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우렁찬 함성을 지르고 일제히 길 양쪽에서 일어나 협공했다. 위나라 군사들의 대열은 세 동강이 나서 서로 간에 돌아 볼 여지가 없게 되었다. 원래부터 전의가 없었던 위군은 대부분이 적군의 사나운 기세를 보고 수레와 무기를 버리고 도망가고 말았다. 남은 의공은 몇몇 군사들과 함께 적병들에게 여러 겹으로 포위되어 공격을 받았다. 옆에서 의공을 지키던 거공이 말했다.

「일이 매우 위급하게 되었습니다. 주공의 대패기(大旆旗)⑨를 접고 사졸의 옷으로 갈아입어 변장한 후에 수레를 버리고 군사들 틈에 섞여 포위망을 벗어나기 바랍니다.」

「만일 몇 명의 군사들이라도 나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다면 이 대패기는 나를 찾는 표식이 된다. 어차피 벗어나지 못할 바에야 이 깃발을 버린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이 싸움에서 죽어 백성들에게 사죄할 뿐이다.」

삽시간에 위나라의 전대와 후대의 군사들이 모두 패하여 황이는 전사하고 공영제는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적군의 포위망은 더욱 두터워져 우백은 활을 맞고 수레에서 떨어지고 결국은 의공과 거공은 앞뒤에서 적병의 직접적인 공격을 맹렬히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위나라의 군신 두 사람은 적병들에게 난도질당하여 피와 살이 뭉그러지고 흩어져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두 사람을 포함한 위나라의 전군은 모두 전멸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를 한탄했다.

옛말에 날짐승에 탐닉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있었지만

한 마리 학으로 나라가 망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당시 형택의 벌판에는 위군의 혼불로 가득했는데

모두 학을 타고 선계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曾聞古訓戒禽荒(증문고훈계금황)

一鶴誰知便喪邦(일학수지편상방)

滎澤當時遍磷火(형택당시편린화)

可能其鶴返仙鄕(가능기학반선향)

한편 의공을 따라 출전했던 위나라 태사(太史) 화룡활(華龍滑)과 예공(禮孔)은 싸움 중에 적군(狄軍)에게 사로 잡혔다. 적군이 두 사람을 죽이려고 하자 오랑캐의 풍속을 잘 알고 있던 그들은 거짓으로 속여 말했다.

「우리는 위나라의 태사로써 나라의 제사를 관장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먼저 위나라에 돌아가 너희들을 위하여 귀신에게 고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귀신이 너희들을 돕지 않아 위나라 땅을 얻지 못할 것이다.」

적주(狄主) 수만이 그 말을 곧이듣고 즉시 두 사람의 포박을 풀게 하고 수레에 태워 위나라 도성으로 돌려보냈다. 그때 갑옷과 전포를 입고 성루를 돌며 순찰하던 영속이 멀리서 성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수레 한 대를 발견했다. 이윽고 성문 앞에 당도한 수레를 보니 두 사람의 태사였다. 영속이 크게 놀라 물었다.

「주공은 어디에 계시는가?」

두 사람이 대답했다.

「형택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주공을 포함한 위나라 군사들은 모두가 전사했습니다. 적족의 군사들은 매우 용감하고 그 군세가 매우 강합니다. 앉아서 적병들을 기다리다가는 나라는 망하고야 말 것입니다. 마땅히 그 예봉을 피해 성을 빠져나가야 사직이나마 지킬 수 있습니다.」

영속이 성문을 열고 두 사람을 성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러나 예공은 성안으로 들어가기를 거절하며 말했다.

「주군과 함께 나갔다가 혼자 돌아 왔으니 신하된 자로써 취할 도리가 아닙니다. 저는 지하로 따라가서 주군을 모셔야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예공이 그 즉시 허리의 검을 빼어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옆에 있던 화룡활이 말했다.

「나는 태사의 직을 이어 위나라의 제사를 받들어야 되겠다.」

화룡활은 성안으로 들어왔다. 영속이 석기자와 상의하여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위후의 가족들과 공자신을 조그만 수레에 태우고 성문을 빠져 나와 동쪽을 향해 도망쳤다. 화룡활은 위나라의 전적(典籍)을 가슴에 안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대부들이 이미 성문을 나섰다는 소문을 들은 성안의 위나라 백성들은 각기 남부여대하여 목숨을 구해 도망쳤다. 성문을 빠져나가는 위나라 백성들의 통곡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이윽고 적병들은 싸움에 승리한 기세를 타고 아무 것도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하여 위나라 도성에 곧바로 돌입했다.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백성들은 모두가 적병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적병들은 다시 군사를 나누어 도망간 석기자 일행의 뒤를 추격했다. 석기자는 위후의 가족들을 보호하여 앞서 나가고 영속이 뒤를 바치면서 한편으로 싸우고 한편으로는 달아나곤 했다. 두 사람의 뒤를 따르던 백성들은 반수 이상이 적병의 칼 아래 죽임을 당했다. 마침내 석기자 일행이 하수 강안에 당도하자 송환공이 보낸 군사가 다행히 배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깊은 밤중임에도 불구하고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석기자 일행과 백성들이 배를 타고 황하를 건너가 버리자 뒤따라오던 적병들은 군사를 거두어 물러갔다. 적병들은 위나라의 부고에 있던 재물들과 민간이 갖고 있던 곡식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약탈하여 수레에 가득 싣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리자 위나라 도성 안은 텅텅 비고 폐허만 남았다.

2. 홍연납간(弘演納肝)

- 자신의 몸을 관으로 만들어 그 위후의 간을 보전한 홍연(弘演) -

한편 위나라 대부 홍연(弘演)은 일찍이 위후의 명을 받들어 진(陳)나라에 사절로 갔다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이었으나 그때는 이미 위나라는 적병의 공격을 받아 망해버린 후였다. 적병에 의해 폐허가 된 위성에 당도한 홍연은 위후가 형택의 싸움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시신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다. 이윽고 싸움터 부근에 당도한 홍연은 죽은 군사들의 시체가 길옆에 수없이 많이 쌓여 있고 혈육이 낭자한 모습을 보고 비통한 마음 달랠 길 없었다. 이윽고 어딘지 모를 한 곳에 이르자 시체가 너부러진 소택지 한쪽 켠에 넘어져 있는 위후의 대패기가 보였다. 홍연이 혼자 말로 하였다.

「대패기가 여기에 쓰려져 있으니 군주의 시신은 아마도 이 근처에 있겠다!」

홍연이 발을 떼어 몇 발자국 앞으로 가자 사람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그가 가서 살펴보니 팔이 잘린 어린 내시가 땅에 누워 있었다. 홍연이 그에게 물었다.

「너는 주공이 죽은 곳을 알고 있느냐?」

어린 내시가 손가락으로 피에 엉겨서 뭉그러진 시체 무더기 한 개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것이 주공의 시신입니다. 제가 적병에 의해 살해되는 주공의 모습을 직접 옆에서 목격했습니다. 적병에게 팔이 잘린 상처로 인해 통증이 심해 걷지 못하고 이곳에 누워서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려 주공의 시신을 알려주려고 하던 참입니다.」

홍연이 그 시신을 향해 걸어가서 살펴보았다. 시신은 온전한 데가 한 군데도 없었고 오로지 간 하나만이 본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홍연이 시신의 간을 향해 절을 올리고 크게 통곡한 다음, 진나라에 다녀온 일에 대해 복명했다. 마치 살아 있는 의공에게 대하는 것처럼 예를 행한 홍연이 말했다.

「주공의 시신을 걷어 장례를 지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내가 이 몸으로 주공을 위한 관이 되리라!」

홍연은 뒤따라 온 종자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죽거든 나를 숲 속에다 묻고 기다렸다가 이 나라에 새로운 임금이 서거든 이 일을 고해라!」

그는 허리에 찬 칼을 뽑아 자기의 배를 가르고 의공의 간을 손으로 잡아 자기의 배속으로 집어넣은 후에 숨을 거두었다. 홍연의 당부한대로 그 시신을 숲 속에 몰래 매장한 종자는 어린 내시를 수레에 태우고 하수를 건너가 위나라에 새로운 임금이 섰다는 소식을 기다렸다.

한편 석기자가 공자신을 부축하여 배에 태워 먼저 길을 재촉하고 영속은 유민을 수습하여 석기자의 뒤를 따라 조읍(漕邑)이라는 곳에 당도했다. 뒤 따라 온 백성들을 헤아려 보니 겨우 7백여 명에 불과 했다. 수많은 백성들이 적족에게 살해되어 비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두 대부가 상의하며 말했다.

「나라에는 하루라도 임금의 자리가 비어 있으면 안 된다고 하나 그 백성의 수가 너무 적어 임금이라 하기에는 모양세가 서지 않습니다.」

그들은 즉시 위나라 땅인 공읍(共邑)⑩과 등읍(滕邑)⑪ 두 고을의 백성 중 십에서 셋을 차출한 4천여 명과 조가성(朝歌城)에서 따라온 7백여 명을 합하여 5천여 명을 백성으로 만든 후에 조읍(漕邑)⑫으로 데려와 갈대로 숙소를 지어 궁궐로 삼아 공자신을 위후로 세웠다. 이가 위대공(衛戴公)이다. 송환공 어설(御說)과 허목공 신신(新臣)이 각기 사람을 보내어 죽은 의공을 조문했다. 송환공과 허목공은 위대공의 누이들이다. 대공은 어려서부터 있던 질병으로 인하여 위나라의 군주로 선지 며칠 만에 죽었다. 이에 영속은 위나라의 후사를 잇게 하기 위해 제나라로 들어가 공자훼(公子毁)를 모셔오려고 했다. 제환공이 공자훼를 위나라로 보내면서 말했다.

「무도한 군주 밑에 어찌 이와 같은 충신이 있었단 말인가? 위나라의 사직이 아직 끝날 때가 아니구나!」

관중이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현재 우리가 군사를 주둔시켜 위나라 백성들을 돌보고 있으나, 차라리 이번 기회에 다른 장소를 물색하여 그곳에 성을 쌓으면 한 번의 수고로 위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3. 익수원수(溺水援手)

- 공을 높이기 위해 형국이 망할 때까지 기다린 제환공 -

제환공은 관중의 말을 쫓아 여러 제후들을 규합하여 별도의 장소를 물색하여 위나라에 도성을 세워주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형국(邢國)에서 사자가 와서 자기 나라의 위급한 처지를 고했다.

「적족의 군사들이 다시 쳐들어 왔으나 그 세력을 당해 낼 수 없습니다. 부디 원군을 보내주시어 우리나라를 오랑캐의 침략으로부터 구원해 주기 바랍니다.」

제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형국을 구원해야 않겠습니까?」

「제후들이 우리 제나라를 받드는 이유는 그들의 나라가 환란을 당했을 때 우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지난 번 위나라도 구하지 못한 터에 또다시 형국을 구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패업은 물거품이 됩니다.」

「그렇다면 위나라에 성을 세워주는 일과 군사를 내어 형국을 구원하는 일 중 어느 편이 먼저입니까?」

「형나라부터 먼저 구한 후에 위나라를 위해 도성을 세워 주면 백세에 빛나는 공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제환공이 즉시 격문을 써서 사자에게 주어 송(宋), 노(魯), 조(曹), 주(邾) 네 나라에 보내 형국을 적병의 침략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나와 섭북(聶北)⑬에서 회동하자고 했다. 송과 조의 두 나라 군주들이 군사들을 이끌고 먼저 당도하자 관중이 제환공에게 말했다.

「적족 군사들의 기세가 등등하기는 하지만 형국이 아직 이를 막아 낼 수 있는 힘이 어느 정도 남아 있습니다. 기세등등한 오랑캐를 정면으로 맞이해서 싸우다가는 우리 군사들이 많은 피해를 입게 됩니다. 또한 아직 버틸 힘이 남아 있는 형국을 도와서 설사 적병을 물리치더라도 그 공은 크지 않습니다. 잠시 기다리면 적병들을 당하지 못한 형국은 반드시 무너지고, 형국을 이긴 적병의 세는 매우 둔해질 것입니다. 피로한 적병을 몰아내고 궤멸한 형국을 구원하게 되니 소위 ‘힘은 적게 들이고 공은 크게 이루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환공이 관중의 계책을 따라서 노와 주(邾) 두 나라 군사를 기다린다는 핑계를 대고 섭북의 땅에 영채를 세워 주둔하고, 첩자를 내어 형국과 적족간의 싸움의 정황을 정탐했다.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관중이 형(邢)과 위(衛) 두 나라를 일찍 구하지 않는 행위를 비난하고 이는 패자의 입장에서 혼란을 키워 공을 세우려는 간교한 계책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병화을 구하는 일은 촌각을 다투는데

군대를 끌고서도 어찌하여 시간만 끌었는가?

원래 패업이란 왕명을 받드는 겸손한 자세임에도

공명에 눈이 어두워 도의를 잊었도다!

救患如同解倒懸(구환여동해도현)

提兵那可復遷然(제병나가복천연)

從來覇事遜王事(종래패사손왕사)

功利遍居道義先(공리편거도의선)

세 나라의 군사들이 섭북의 땅에 주둔한지가 두 달이 되었다. 그 사이에 적병들은 형국을 밤낮으로 쉴 새 없이 공격했다. 마침내 힘이 다한 형국의 군사들과 백성들은 도성을 버리고 적병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쳐 나왔다. 척후병들이 돌아와 형국의 정세를 환공에게 보고했다. 뒤이어 형국의 군사들과 백성들이 모두 제나라 진영으로 물밀 듯이 몰려와 구해줄 것을 하소연하던 중에 대열 중에 한 사람이 제환공 앞으로 달려나와 땅에 엎드려 통곡했다. 그 사람은 바로 형후(邢侯) 숙안(叔顔)이었다. 환공이 앞으로 나와 형후를 부축하여 일으킨 후 위로하며 말했다.

「과인이 구원을 빨리 하지 않아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과인의 죄입니다. 마땅히 송공과 조백 두 나라의 군주들과 같이 상의하여 적인을 몰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제환공은 그날로 진채를 걷고 모든 군사들에게 출동을 명했다. 적주 수만이 수없이 많은 노략품에 만족하여 더 이상 싸울 마음이 없던 차에, 삼국의 병사들이 공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형성에 불을 지르고는 북쪽의 자기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각국의 병사들이 형성에 당도하였으나 보이는 건 오로지 화광뿐이었고 적병들은 모두 달아나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제환공이 명을 내려 불을 끄게 하고 형후에게 말했다.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이 성에서 계속 살 수 있겠습니까?」

「난리를 만난 백성들은 대부분이 이의(夷義)⑭라는 고을에 피난가 있습니다. 원컨대, 이의 땅으로 도성을 옮겨 백성들의 뒤를 따르고 싶습니다.」

제환공이 즉시3국의 병사들에게 명하여 각기 판축(版築)⑮과 재목들을 준비하여 이의로 가서 형후를 위해 성을 쌓아 주게 했다. 다시 이의에 형국의 종묘를 모시는 사당과 함께 갈대로 숙소를 짓게 하고 소와 말, 그리고 양식 및 의복과 같은 것들을 모두 제나라에서 가져오게 하여 이의성 안의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형국의 군주와 신하들은 모두 자기들이 살던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기뻐하며 환성을 질렀다. 그 환성소리는 하늘에 닿는 듯 높았다.

4. 投我木瓜 報以琼琚(투아모과 보이경거)

- 나에게 모과를 던져 주시니 귀중한 패옥으로 보답하리다. -

형국의 정세가 안정이 되자 돌아가고자 하는 송과 조 두 나라의 군주들을 향하여 환공이 말했다.

「위나라의 정세가 아직 안정이 안 되어 있고, 더욱이 형국에만 성을 세워주고 위나라에게는 쌓아주지 않고 우리가 그냥 철군한다면 위나라가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두 나라의 군주들이 대답했다.

「오로지 군후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제환공이 영을 전하여 모든 군사들에게 삼태기와 가래를 휴대하게 한 후에 위나라를 향해 행군하게 했다. 위문공 훼가 멀리 까지 나와 제환공의 일행을 마중했다. 위문공은 그때까지 아직 삼베로 만든 군주의 의복과 비단으로 만든 관을 바꾸지 않고 상복으로 계속 입고 있었다. 측은한 마음을 금하지 못한 제환공이 위문공을 보고 말했다.

「과인이 여러 제후들의 힘을 빌려 군을 위하여 도성을 정해주려고 하는데 아직 어느 땅에다 세워야 할지 모르겠소.」

「제가 이미 점을 쳐 초구(楚丘)가 길지(吉地)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단지 나라가 망해 성을 세우는데 드는 비용을 감당할 길이 없어 바라만 보만 있는 중입니다.」

「성을 세우는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환공은 그 날로3국의 병사들에게 초구로 이동하여 위나라를 위하여 성을 쌓으라고 명했다. 다시 재목을 제나라에서 가져오게 하여 종묘를 모시는 사당을 짓게 하고 그 사당의 문에 위나라를 초구에 봉한다는 뜻의 ‘위봉(衛封)’ 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위문공이 제환공에게 위나라의 도성과 종묘를 모시는 사당을 세워준 은혜에 감격하여 『모과(木瓜)』라는 시를 읊어 노래했다.

나에게 모과를 주시니

귀중한 패옥으로 보답하리다.

나에게 복숭아를 주시니

아름다운 구슬로 보답하리라

나에게 오얏을 주시니

찬란한 옥으로 보답하리라

投我以木瓜兮(투아이모과혜)

報之以琼琚(보지이경거)

投我以木桃兮(투아이모도혜)

報之以琼瑤(보지이경요)

投我以木李兮(투아이모이혜)

報之以琼玖(보니이경구)

당시 제환공은 멸망한 나라를 일으켜 후사를 잇게 한 공업을 세 번 행했다고 했다. 첫 번째는 노나라에서 경보가 일으킨 란을 평정하여 노희공을 세웠고 두 번째는 이의(夷義)에 성을 세워 형국의 종사를 이을 수 있도록 했으며, 세 번째는 초구에 성을 쌓아 위나라를 존속시켰다. 이 세 번의 큰 공로로 인해 제환공은 오패(五覇) 중 첫째로 받들여지게 되었다. 잠연(潛淵) 선생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노래했다.

주나라가 동천하니 천하의 기강이 해이해지기 시작하자

제후들을 규합한 제환공이 무너지는 주나라를 붙들었다.

망해가는 제후국을 붙들어 세 번이나 존속시켰으니

당당한 대의를 펼쳐 춘추오패 중 으뜸이 되었다.

周室東遷綱紀摧(주실동천강기최)

桓公糾合振傾頹(환공규합진경퇴)

興滅繼絶存三國(여펼계절존삼국)

大義堂堂五覇魁(대의당당오패괴)

5. 楚王圖覇(초왕도패)

- 패권의 야욕을 드러내 중원 진출을 시도하는 초나라 -

이때 초성왕 웅운(熊惲)은 자문(子文)을 영윤으로 기용하여 내치를 크게 이루었다. 그 결과 국정이 밝아져 나라의 재정이 충실하게 되자 그 힘으로 중원을 제패하려는 뜻을 키우고 있었다. 제환공이 형국을 구하고 위나라를 도와 사직을 보존케 하여 그 칭송하는 소리가 형양(荊襄)⑰ 땅에까지 울려 퍼지자, 불쾌한 마음을 금하지 못한 초성왕이 자문에게 말했다.

「제후가 덕을 펼친 결과 그 이름이 천하에 빛나 백성들의 마음이 모두 그에게 돌아서고 있습니다. 과인은 우리 초나라가 강한(江漢)⑱ 사이의 땅에 자리 잡은 이래로 덕을 크게 펼치지 못해 백성들을 마음속으로 복종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위엄도 떨치지 못하여 주위의 여러 제후국들을 제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천하의 인심은 모두 제나라에로만 향하고 있고, 초나라의 존재는 간 데가 없으니, 과인은 이것을 심히 부끄러워 할 따름입니다.」

「제후가 백업(伯業)을 경영한 이래 현재 30년이 경과했습니다. 제후(齊侯)는 주왕실을 받드는 일을 명분으로 삼아 주위의 제후(諸侯)들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제후들도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결코 가볍게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나라는 우리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중원의 남쪽을 병풍처럼 둘러서 우리가 중원으로 진출하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만약 중원의 패권을 도모하실 생각을 갖고 계시다면 정나라를 먼저 얻어야만 합니다.」

성왕이 그 즉시 군신들을 향해 말했다.

「누가 과인을 위하여 정나라를 정벌할 임무를 맡아 주겠는가?」

대부 투장(鬪章)이 출전을 자원하자 초성왕이 전차 200승을 주어 정나라를 정벌하라고 명했다. 그때 정나라는 외성(外城)으로 통하는 순문(純門)에서의 싸움⑲이후로 밤낮으로 성곽을 높게 쌓아 초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고 있었다. 다시 초나라의 대군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정문공이 크게 놀라 즉시 대부 담백(聃伯)에게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가 순문을 지키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자를 밤낮으로 제나라로 달려가게 하여 사태의 급함을 고하게 했다. 제환공이 격문을 여러 제후들에게 띄워 경(桱)⑳땅에 군사들을 모아 정나라 구원군을 일으키려고 했다. 정나라가 사전에 철저하게 초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제나라의 구원병도 머지않아 당도하게 되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투장은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정나라 경계 밖으로 철수하고 말았다. 초성왕이 크게 노하여 허리에 찬 칼을 풀어 투렴(鬪廉)에게 주면서 투장의 목을 베어 가져오라고 명했다. 투렴은 곧 투장의 형이다. 투장의 군중에 당도한 투렴은 동생에게 초왕이 내린 명령을 전하고 은밀히 그 대책을 상의했다.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을 세워 속죄하는 방법뿐이다.」

무릎을 꿇고 방법을 알려 달라고 간청하는 투장에게 투렴이 말했다.

「정나라는 네가 이미 철군했음으로 안심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때 질풍같이 진격하여 급습하면 전공을 세울 수 있지 않겠느냐?」

투장이 군대를 두 대로 나누어 전대는 자기가 이끌고 앞서 행군하고 후대는 투렴이 맡아 뒤에서 호응하도록 했다. 투장은 군사들이 행군 중에 말을 하지 못하도록 입에 함매(銜枚)를 물리고 북은 눕혀 아무도 몰래 정나라 경계로 다시 쳐들어갔다. 그때 마침 담백은 순문 안에서 전차와 말을 점고하고 있었다. 갑자기 외국의 군사들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담백은 그것이 어느 나라 군사인 줄 미처 알지 못했다. 당황한 담백이 황급히 전차와 말의 점고를 서둘러 끝내고 군사를 이끌고 적군을 맞이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출동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투렴이 이끄는 초나라의 후대가 정나라 진영의 뒤를 돌아 후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졸지에 앞뒤에서 적의 공격을 받게 된 정나라 군사들은 당황하여 혼란에 빠졌다. 전후 양쪽에서 초군의 협공을 받아 전전긍긍하고 있던 담백이 투장이 던진 철간에 맞고 전차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투장이 보고 달려가 담백을 포박하여 사로잡았다. 투렴이 승세를 타고 맹공을 퍼붓자 대장을 잃은 정나라 군사들은 당해내지 못하고 싸움 중에 절반 이상이 죽었다. 투장이 사로잡은 담백을 함거에 가두고, 한편으로는 정나라 도성을 향하여 계속 진격하려고 하자 투렴이 막으면서 말했다.

「이 번 싸움에서 우리가 승리를 취한 이유는 불의에 정나라를 습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나라가 이미 방비를 굳게 하고 있어 계속해서 공격한다 해도 싸움에서 이기기 힘들 것이다. 이번 싸움으로 다행히 죽음은 면하게 되었으니 군사를 물리쳐 회군해야지 어찌 또다시 요행을 바랄 수 있겠느냐?」

투장은 투렴의 말을 쫓아 즉시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로 물러갔다. 투장이 돌아와 성왕을 배알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죄를 청했다.

「신이 처음에 후퇴한 이유는 적군을 유인하려는 작전 때문이었지 싸움이 무서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장군이 이미 적장을 사로 잡아온 공을 세웠으니 죄를 면하게 하겠지만 단지 정나라가 아직 항복을 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회군했소?」

「이끌고 있던 병사의 수가 적어 정나라와의 싸움에서 만일 패하기라도 한다면 초나라의 국위가 손상되지나 않을까 걱정해서입니다.」

성왕이 듣고 노하여 말했다.

「그대는 군사의 수가 적다고 핑계대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적이 두려워서 철수하지 않았는가? 다시 200승의 군사를 더하여 주겠으니 재 출병하여 정나라의 항복을 받아 오시오. 만약 공을 이루지 못한다면 과인의 얼굴을 다시는 볼 생각을 마시오!」

투렴이 곁에 있다가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형제가 같이 출전하고 싶사오니 신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정나라의 항복을 받아오던가 아니면 정백을 포박하여 대왕 앞으로 데려다 놓겠습니다.」

초성왕이 투렴의 말을 장하게 여겨 출전을 허락하고 투렴을 대장으로 투장을 부장을 삼아 군사400승을 주어 또다시 정나라를 정벌하도록 명했다. 이 일을 두고 사관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형양의 왕이라고 자칭한 초나라가 불처럼 일어나더니

주변의 많은 나라를 삼키는 것만로는 만족하지 않고

무고한 진유(溱洧)㉑의 정나라를 세 번씩이나 공격하여

정나라로 하여금 패주만 쳐다보게 만들었는가?

荊襄自帝勢炎炎(형양자제세염염)

蛋食多邦志未厭(담식다방지미염)

溱洧何辜三受伐(진유하고삼수벌)

解懸只把覇君瞻(해현지파패군첨)

한편 정문공은 순문을 지키는 담백이 초군의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갔다는 보고를 받고 재차 사자를 제나라에 급파하여 구원군을 재촉했다. 정나라의 사자가 구원병을 청하는 정백의 국서를 전하자 관중이 앞으로 나와 제환공에게 말했다.

「주군께서 여려 해 동안에 걸쳐, 오랑캐의 침략으로부터 연나라를 구하셨으며, 노나라는 군주를 세워주어 안정시켰습니다. 또한 형국(邢國)에는 성을 지어주셨으며 위나라는 새로운 땅에 봉하셨습니다. 천하의 백성들에게는 은혜와 덕을 더욱 크게 베푸셨으며 제후들에게는 대의를 펼쳐 왔기 때문에, 만약에 주군께서 제후들의 병사들을 동원하실 뜻이 갖고 계시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나라를 구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제후들을 크게 규합하여 초나라를 본국을 토벌하셔야 합니다.」

「제후들을 크게 규합한다면 초나라가 알고 반드시 대비하고 있을 터인데 우리가 그들과 싸워서 이길 승산이 있겠습니까?」

「옛날 채부인(蔡夫人)이 주공에게 죄를 지어 친정인 채나라에 돌려보냈으나 채후가 그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않고 오히려 주공을 원망하며 채부인을 초나라 왕에게 재가시켰습니다. 그래서 주공께서는 그때부터 채후의 죄를 물으시려는 생각을 갖고 계셨습니다. 초와 채 두 나라는 그 영토가 서로 접하고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채나라를 토벌한다고 하시면서 군사를 움직이신다면 병법에서 말하는 소위 출기불의(出其不意)㉒라는 전략에 해당합니다.」

- 채부인이 환공에게 죄를 지은 사연은 다음과 같다.

옛날 채목공(蔡穆公)이 절색으로 이름난 누이동생을 환공에 출가시켰다. 채녀는 환공의 세 번째 부인이 되었다. 하루는 환공과 채희가 작은 배를 같이 타고 연못에서 연꽃을 감상하며 물놀이를 즐겼다. 와중에 채희가 물을 손바닥으로 쳐서 환공의 옷을 적시게 했다. 원래 물을 싫어한 환공이 그만 두라고 채희를 말렸다. 환공이 물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채희는 일부러 배를 흔들며 물을 뿌려 환공의 옷을 흠뻑 적시게 만들었다. 환공이 크게 노하여 ‘천한 계집이 어찌 임금 모시기를 이렇듯 무지하게 하느냐?’고 채부인을 책했다. 환공은 즉시 수초를 시켜 채부인을 채나라로 돌려보냈다. 채목공은 채희를 쫓아낸 제환공에 대해 화를 내며 말했다.‘이미 출가한 여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는 처사는 우리와 인연을 끊겠다는 뜻이다.’ 채목공은 그 즉시 채부인을 즉시 초성왕의 부인으로 재혼시켰다. 이 일로 해서 환공이 채목공을 괘씸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관중은 그 때 일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환공이 관중을 불러 의견을 물었다.

「초나라의 포학함을 견디지 못한 강(江)㉓과 황(黃) 두 나라의 군주가 제나라와 들어와 통호를 청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과 회맹을 맺고 초나라를 정벌할 날짜를 정하여 내응 하도록 약속하면 어떻겠습니까?」

「강과 황 두 나라는 우리나라와는 멀리 떨어져 있고 초나라와는 가까이 있는 나라입니다. 또한 초나라에 오래 전에 복종해서 근근히 나라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두 나라가 지금에 이르러 제나라를 따르려고 한다는 사실을 초나라가 알게 되면, 초나라는 틀림없이 노하여 두 나라를 토벌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군사를 보내 두 나라를 지켜주어야 하나 비록 두 나라를 구원하고 싶어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구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원하지 않으면 두 나라와 맺을 회맹이 손상을 입게 됩니다. 또한 초나라의 정벌은 중원의 여러 나라가 모여 구성한 군사들만으로도 일을 성사시킬 수 있습니다. 구태여 멀리 떨어진 조그만 나라의 도움을 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말로 달래어 보내 편이 좋겠습니다.」

「멀리서 대의를 구하여 찾아온 나라의 청을 물리친다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잃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주군께서는 단지 제가 올린 말씀이 주군의 뜻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시겠지만 후일에 강과 황이 위급함을 고할 때 외면하지 마십시오.」

환공이 관중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과 황 두 나라의 군주들과 회맹을 맺었다. 환공은 서로 힘을 합하여 돌아오는 이듬해 봄철, 정월에 초나라를 정벌하기로 약속했다. 두 나라 군주가 환공에게 말했다.

「서(舒)㉔나라가 초나라를 도와 흉악한 짓을 자행하여 사람들은 두 나라를 형서(荊舒)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해서는 서(舒)나라부터 토벌하셔야 합니다.」

「과인이 먼저 서나라를 취하여 초나라의 날개를 잘라 내리라!.」

환공은 그 즉시 밀서 한 통을 써서 서(徐)㉕나라의 군주에게 보냈다. 서(徐)나라는 서(舒)나라와 가까이 있는 나라다. 옛날 서(徐)나라 군주가 그의 딸 서영(徐贏)을 환공에게 시집보냈다. 서영(徐嬴)은 제환공의 두 번째 부인이 되었다. 제(齊)와 서(徐) 두 나라는 서로 혼인을 맺어 우호관계를 굳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환공은 서(舒)나라의 일을 서(徐)나라 군주에게 부탁한 것이다. 서(徐)나라가 과연 군사를 끌고 서(舒)나라를 기습하여 점령하고 제환공에게 첩보를 띄었다. 환공이 즉시 서(徐)나라 군주에게 명하여 서(舒)나라에 주둔하도록 하고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초나라의 반격에 대해 대비하게 했다. 강과 황 두 나라 군주는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가 본국을 지키면서 제환공의 사자를 기다렸다.

6, 벌초구정(伐楚救鄭)

- 초나라를 정벌하여 정나라를 구원하다. -

한편 노희공은 계우를 사자로 보내 그 동안 제나라의 일에 협조하지 않았던 죄를 사죄하며 말했다.

「틈이 벌어진 주(邾)와 거(莒) 두 나라 사이를 조정하느라 형(邢)과 위나라를 돕는 일에 일조를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제가 듣기에 강․황(江黃) 두 나라가 스스로 찾아와 회맹을 맺어 그들과 함께 힘을 합쳐 초나라를 정벌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원컨대 우리 노나라로 하여금 군후께서 타고 가시는 말의 고삐나마 잡게 하여 종군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환공이 크게 기뻐하며 초나라를 같이 정벌하자고 약정하는 편지를 써서 노희공에게 보냈다.

한편 초나라의 대군을 이끈 투렴과 투장 형제가 정나라 경계에 들어서자, 정문공은 전쟁을 피해 초군과 강화를 맺으려고 했다. 대부 공숙(孔叔)이 정문공에게 간했다.

「초나라에게 항복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 정나라를 구하기 위해 제나라가 바야흐로 제후들의 군사를 규합하여 조만간에 당도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보루를 높여 굳게 지켜 제나라의 원군이 당도 할 때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제후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데 우리가 그것을 저버린다면 도리가 아닙니다.」

공숙의 말을 쫓아 정문공은 다시 사자를 보내 사태의 급함을 고하고 구원군을 재촉했다. 제환공은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한 제나라의 구원군이 곧바로 당도할 예정이라는 소문을 퍼뜨려 일단 초군의 공세를 완화시킨 다음 이윽고 서로 약속한 기일에 군주가 되었건 신하가 되었건 각기 일군(一軍) 씩의 군사를 이끌고 정나라의 호뢰관(虎牢關)㉖을 빠져 나와 채나라 경계에서 일제히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서로 군사를 합하여 초나라로 진격하려는 계책을 세웠다. 그래서 제환공은 송(宋), 노(魯), 진(陳), 위(衛), 조(曹), 허(許) 등의군주들에게 빠짐없이 격문을 보내 약속한 기일에 군사를 일으켜 채나라를 토벌하기로 하였지만 사실은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해서였다.

7. 남정형만(南征荊蠻)

- 제후군을 규합하여 초나라 정벌군을 일으키는 제환공 -

다음 해 주혜왕13년 기원전 664년 새해 원단 아침, 제나라의 모든 관리들로부터 신년하례를 받은 자리에서 채나라 정벌을 결정한 제환공은 관중을 대장으로 삼고, 습붕, 빈수무, 포숙아, 개방, 수초 등을 장군으로 삼아 병거 300승, 무장한 보졸 만 명을 동원하여 각기 부대를 나누어 대오를 정하여 채나라를 향해 진군하라는 명을 내렸다. 출병하는데 길일을 택하기 위해 점을 친 태사가 환공에게 아뢰었다.

「정월 초이레 날이 출병하는데 가장 길합니다.」

수초가 선봉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는 일군을 거느리고 비밀리에 행군을 행하여 채나라를 기습, 점령하여 각국의 병마가 안전하게 모일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제환공이 허락하자 수초가 선봉을 맡아 일군을 거느리고 앞서 나갔다. 그때 채나라는 초나라를 믿고 제후국들의 침공에 전혀 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제환공이 이끄는 중원 제후국들의 연합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황급히 나라 안의 군사들을 끌어 모아 수비에 임하게 했다. 채나라 도성 밑에 당도한 수초는 제나라 군사들의 무력을 시위하여 위협을 가한 후에 성을 향해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수초가 이끄는 제군이 채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날이 저물어 어둑해지자 제군은 공격을 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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