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智辨兪兒(지변유아), 兵定孤竹(병정고죽) > 2부2 관포지교

제21회. 智辨兪兒(지변유아), 兵定孤竹(병정고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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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6,038회 작성일 04-05-11 10:25

본문

제21회智辨兪兒 兵定孤竹①(지변유아 병정고죽)

지혜로써 유아를 알아보는 관중과

북벌을 행하여 고죽국을 평정한 제환공

1. 북벌산융(北伐山戎)

- 연나라를 구하기 위해 산융을 원정하는 제환공 -

산융(山戎)은 곧 북융(北戎)의 일족인데 영지(令支)②라는 곳에 나라를 세우고 그 서쪽으로는 연(燕)나라와 접하고 동남쪽으로는 제나라에 접했다. 영지는 험한 지세와 강한 병사를 믿고 주천자에게 신하라 칭하지도 않고 조공도 바치지 않으면서 기회만 되면 중원을 침략하곤 했다. 그리고 30여 년 전 제희공(齊僖公) 재위 시 제나라 경계를 침범했다가 구원군을 이끌고 출동한 정나라 세자홀(世子忽)에게 패하고 물러간 적이 있었다. 그 동안 제나라의 군주 자리에 오른 제환공이 부국강병 책을 실시하여 백업(伯業)을 도모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융주(戎主)가 즉시 만여 기의 기병(騎兵)을 이끌고 연나라를 공격하여 제나라로 통하는 길을 끊고자 했다. 연장공(燕莊公)이 산융의 기병을 당해내지 못하고 사자를 제나라에 달려가게 하여 사태의 위급함을 알려 구원병을 청했다. 제환공이 대책을 묻자 관중이 대답했다.

「지금 천하의 걱정거리는 남쪽의 초(楚)와 북쪽의 융(戎) 및 서쪽의 적(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원의 모든 환난에 대한 책임은 맹주에게 있습니다. 융이 연나라를 침입하지 않았다 해도 오히려 일부러라도 군사를 이끌고 가서 마땅히 응징해야 하는데 하물며 연나라가 산융의 침입을 받아 구원을 요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하지 않는다면 맹주로써의 책임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제환공은 관중의 진언에 따라 즉시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출동했다. 제나라 군사들의 행렬이 제수(濟水) 부근에 당도했을 때 노장공이 제환공을 전송하기 위해 마중 나왔다. 환공은 노장공에게 산융을 정벌하여 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병한다고 설명했다. 노장공이 듣고 말했다.

「군후께서 시랑의 무리들을 물리쳐 중원의 북방을 안정시키고자 출병하는데 우리에게도 그 일을 나누어주어 같이 출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산융의 일이 어찌 유독 연나라 사람들만의 일이라 하겠습니까? 제가 비록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군후님을 따라 원정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제환공이 대답했다.

「북방의 융족이 사는 땅은 험하고 멀리 떨어져 있어, 과인이 어찌 감히 군후의 귀한 발걸음에 노고를 끼쳐 드릴 수 있겠습니까? 만약 순리대로 공을 세우게 된다면 마음 써 주신 노후의 덕분이겠으며, 그렇지 않고 싸움에서 지게 되면 군후께 군사를 내어 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그때 원정에 참여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군후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노장공과 작별한 제환공이 군사들과 함께 서북쪽의 연나라를 바라보며 행군을 시작했다.

한편 영지국은 작위가 자작국으로 당시 군주의 이름은 밀로(密盧)였다. 군사를 이끌고 연나라 경내로 쳐들어간 밀로는 연성(燕城)의 교외를 유린하기 시작하여 이미 두 달이 넘도록 노략질하여 잡아온 어린아이와 부녀자들는 수효가 많아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윽고 제나라의 대군이 구원하기 위해 연나라에 경계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밀로는 포위망을 풀고 자기나라로 철수해 돌아갔다. 연장공은 계문관(薊門關)에 당도한 제환공과 그 군사들을 관문 밖으로 나와 맞이했다. 연장공은 먼 길을 마다 않고 구원군을 이끌고 출병한 제환공의 노고에 대해 감사의 말을 올렸다. 관중이 말했다.

「산융의 영지국 군주가 그 뜻한 바를 이루고 퇴각하여 아직 그들의 군사들은 상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군사를 거두어 이대로 돌아간다면 산융의 군사들은 반드시 다시 쳐들어올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영지국을 정벌하여 중원의 우환거리 중 하나를 없애야 합니다.」

「과인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연장공이 연나라 본국의 병사를 끌고 전대를 맡아 영지국 정벌전에 종군하기를 청하자 환공이 말했다.

「방금 전까지 산융군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피로에 지쳐 있을 연나라 군사들에게 어찌 다시 선봉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연장공이 감사의 말을 올리고 영지국을 공격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나라가 있다고 고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80리쯤 가면 무종국(無終國)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비록 융족의 한 지류이지만 산융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을 불러 향도를 시키면 기꺼이 복종할 것입니다.」

제환공이 즉시 많은 황금과 비단을 내어 습붕에게 주어 무종국에 사자로 보내 원병을 청했다. 무종국의 군주는 호아반(虎兒斑)을 대장으로 삼아 기병 2천 기를 주어 흔쾌히 제나라 군사를 돕도록 했다. 제환공은 호아반에게 후한 상을 내리고 그를 선봉으로 삼았다. 제(齊), 연(燕), 무종(無終) 등의 세 나라 연합군이 영지국을 향하여 약 2백 리쯤 행군을 했을 때 길이 산으로 올라가며 점점 험해지기 시작했다. 환공이 연장공에게 그곳의 지명을 물었다. 연장공이 대답했다.

「이곳은 규자(葵玆)라는 곳인데 북융이 나오고 들어갈 때 거쳐야 하는 요지입니다.」

관중과 상의하여 치중과 식량을 반으로 나누어 절반은 그곳에다 보관하여 군사들을 주둔시켜 지키도록 한 제환공은 이어서 군사들에게 명을 내려 나무를 베고 흙을 쌓아 설치한 관문을 포숙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고 군량수송을 책임지게 했다. 그런 연후에 3일 동안 병사들을 휴식시키고, 피로에 지치고 병이 든 군사들은 규자에 남도록 한 제환공은 정예병들만을 이끌고 영지국을 향해 앞으로 계속 진격했다.

한편 제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영지국의 군주 밀로는 그의 장수 속매(速買)를 불러 대책을 상의했다. 속매가 계책을 말했다.

「제나라 군사들은 먼 길을 행군하여 왔기 때문에 지쳐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영채를 세우기 전의 틈을 타서 갑자기 들이치면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밀로는 속매에게 기병 3천 기를 주어 제나라 군사들을 기습하도록 했다. 속매가 기마병들을 이끌고 나와 산중의 여러 곳에 매복하게 하고 제나라 군사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제군의 선봉을 맡은 무종국의 장수 호아반과 그 군사들이 영지국의 군사들이 매복하고 있는 곳에 당도하자 기다리고 있던 속매가 단지 몇 백 기의 군사들만을 거느리고 나와서 호아반의 앞을 가로막았다. 호아반이 용기를 내어 자루가 긴 철과추(鐵瓜錘)를 높이 들어 속매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속매도 역시 자루가 긴 대도를 손에 들고 대항했다. 둘이서 몇 합을 겨루기도 전에 속매가 거짓으로 패하는 척하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호아반이 달아나는 속매의 뒤를 쫓아 숲속으로 들어오자 속매가 크게 소리쳐 산 속에 매복해 있던 영지국의 병사들에게 신호했다. 속매의 군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호아반과 그 군사들을 공격했다. 본대와 연락이 끊어져 고립된 호아반과 무종국의 군사들은 죽을힘을 다하여 싸웠다. 그러나 힘은 다하고 타고 있던 말마저 부상을 당한 호아반은 절망감으로 적군의 포로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순간 천우신조로 제환공이 대군을 이끌고 싸움터에 당도했다. 제환공의 진영에서 왕자성보가 앞으로 달려 나가더니 그의 출중한 무예를 발휘하여 속매의 군사를 쫓아 버리고 호아반을 구출했다. 속매와 그 군사들은 제나라 군사들과 싸워 크게 패하여 도망갔다. 자기가 끌고 온 본국의 군사들이 속매와의 싸움 중에 많이 꺾여 당한 패전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 호아반은 환공을 보고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띄웠다. 제환공이 위로하면서 말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의 상사라 한 번의 싸움에서 졌다고 해서 너무 상심할 일은 아니오.」

제환공은 명마를 하사하여 호아반을 위로했다. 호아반은 감사의 말을 올리면서 감격해 마지않았다. 환공의 대군이 동쪽으로 30리를 더 진군하여 복룡산(伏龍山)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제후와 연백은 산 위에, 왕자성보와 빈수무는 산 밑에 각각 영채를 따로 새우고 그 앞에는 큰 수레를 연결하여 마치 성처럼 쌓아 방어벽을 만들어 경계를 아주 엄하게 했다. 다음 날 영지의 군주 밀로가 속매를 대동하고 만여 기의 기병을 출병시켜 친히 도전해 왔다. 밀로가 계속해서 제군의 영채를 공격하게 했지만 산성처럼 쌓은 큰 수레에 가로 막혀 영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느덧 오후가 되자 산 정상에서 전세를 살펴보던 관중은 융병의 숫자가 점점 적어지고 남은 병사들은 모두 말에서 내려서 땅에 누워서는 입으로 욕설을 해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관중이 호아반을 격려하며 출전을 명하며 그의 등 뒤에다 대고 말했다.

「장군은 지난 번 패한 치욕을 이번 기회에 갚으시기 바랍니다.」

관중의 격려에 큰 소리로 대답한 호아반은 큰 수레를 몇 대 옆으로 치워 만든 입구를 통해 휘하의 기병을 이끌고 나는 듯이 영채 밖으로 달려 나갔다. 습붕이 관중을 보고 말했다.

「이것은 융병의 유인계가 아닌지 걱정됩니다.」

「나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관중은 즉시 왕자성보에게 명하여 일군을 거느리고 좌측에서 나가게 하고, 다시 빈수무에게는 또 다른 일군을 거느리고 우측에서 나가 좌우의 복병을 공격하게 했다. 원래 산융족들은 매복전에 능했다. 제나라 군사들이 큰 수레를 성벽 삼아 움직이지 않자 산융군은 계곡에 군사를 미리 숨겨놓고 일단의 군사를 시켜 말에서 내려 땅바닥에 누워 딩굴며 제나라 진영을 향하여 욕설을 퍼붓도록 했다. 제군을 영채 밖으로 유인하려는 계책이었다. 그때 호아반이 이끄는 기병이 당도하여 그들의 말머리가 향하는 곳마다 융병들은 모두가 말을 버리고 도망가기에 바빴다. 융병들의 뒤를 쫓으려고 하는 순간 본영에서 울리는 쟁이 소리를 들은 호아반은 즉시 말고삐를 뒤로 채어 되돌아 왔다. 호아반이 도망치는 융병의 뒤를 쫓지 않고 본채로 회군해버리자 밀노는 큰 소리로 외쳐 계곡에 매복해 있는 군사를 일으켜 있는 힘을 다해 제나라 진영을 향해 공격을 감행하도록 명했다. 그때 중도에 매복하고 있던 왕자성보와 빈수무의 양로 군사들이 배후를 들이치자 융병들은 십중 칠팔은 싸움 중에 죽고 나머지 군사들은 각기 흩어져 자기나라로 퇴각했다. 융병들이 버리고 간 셀 수 없이 많은 말들은 모두 제군의 소유가 되었다. 영지국으로 돌아간 속매가 미로에게 계책을 내놓았다.

「제나라 군사들이 이곳으로 진군하고자 한다면 반듯이 황대산(黃臺山) 입구를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가 군사를 시켜 나무와 돌로 입구를 막아 놓고 밖에다가는 참호를 깊이 파서 군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한다면 비록 백만 대군이 몰려온다 할지라도 날아다니는 새가 아닌 바에야 그곳을 지나올 수 없습니다. 또한 복룡산의 20여 리 사방에는 강물이나 샘물이 없어 반드시 유수(濡水)에서 물을 길러다가 마셔야합니다. 유수의 상류 쪽에 둑을 쌓아 물길을 막아 적군은 혼란에 빠뜨려야 합니다. 적군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들이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사자를 고죽국으로 보내 구원병을 청하여 우리의 싸움을 돕게 하여 만전을 기하도록 하십시오.」

밀로가 크게 기뻐하며 속매의 계책을 따랐다. 한편 융병이 물러간 후 계속해서 3일이 되도록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마음속으로 의심하는 마음이 일어난 관중은 첩자를 풀어 적정을 알아보게 했다. 첩자가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황대산 입구의 큰길은 이미 끊겼습니다. 」

관중이 호아반을 불러 물었다.

「영지국으로 가는데 황대산 입구를 통하는 길 말고 다른 지름길이 없습니까?」

「이 길로 곧바로 가면 황대산까지는 15리 밖에 안 됩니다. 일단 황대산만 통과하면 영지국까지는 지척지간입니다. 만약에 또 다른 길을 찾는다면 반드시 이곳에서 서남쪽을 크게 우회하여 지마령(芝麻嶺)을 지나 청산(靑山)의 입구로 나가게 됩니다. 또다시 동쪽으로 수 십 리를 지나면 바로 영지의 소굴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러나 산은 높고 길은 험하여 거마를 끌고 이동하기가 불가합니다.」

2. 蟻穴探水(의혈탐수)

개미굴을 찾아 식수를 구하다. -

관중과 호아반이 행군 방향에 대해 상의하고 있는데 아장 연지(連摯)가 들어와 보고하였다.

「영지국의 군사들이 우리가 마시고 있는 강의 물길을 막아 버렸습니다. 식수가 부족한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호아반이 말했다.

「지마령의 길은 모두 산 속으로 나 있어 통과하는데 며칠이 걸릴지 모릅니다. 식수를 충분히 휴대하고 가지 않는다면 역시 행군할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복룡산에 갇힌 제환공은 군사들에게 땅을 파 물을 찾도록 명을 내려 제일 먼저 샘물을 찾는 자에게는 큰상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습붕이 말했다.

「개미구멍이 있는 곳에 물이 있다고 했습니다. 개미와 개밋둑이 있는 곳을 골라서 샘을 파면 물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

습붕의 말대로 군사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 속을 돌아다니며 개미굴과 개미둑을 찾아 다녔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돌아다녀도 개미나 개미둑을 발견할 수 없었던 군사들이 할 수 없이 돌아와 환공게게 사실대로 고했다. 습붕이 다시 말했다.

「개미는 겨울에는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므로 산의 양지쪽에 살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을 좋아해 산의 음지쪽에 삽니다. 지금은 겨울임으로 필시 산의 양지쪽에 삽니다. 산의 양지쪽에 군사를 보내 개미굴과 개미둑을 찾도록 명하십시오.」

습붕의 말대로 양지쪽으로 몰려간 군사들은 쉽게 개미굴과 개미둑을 발견하고 그 곳의 땅을 팠다. 군사들은 과연 습붕의 말대로 샘물을 얻을 수 있었다. 물맛은 맑고 시원했다. 환공이 말했다.

「습붕은 가히 성인이라 할만하다.」

이 일로 해서 그 샘을 성천(聖泉)이라고 부르고 복룡산은 용천산(龍泉山)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군중에 식수를 얻게 되자 군사들이 서로 축하의 말을 건네며 환호했다.

한편 밀로는 제나라 군중에 아직도 물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속매에게 물었다.

「중원의 나라를 어찌하여 하늘이 돕고 있는가?」

「제나라 진영이 비록 물을 얻었다고는 하나 멀리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온 군사들이라 양식의 공급이 필히 원만하지 못합니다. 보루를 높이 세우고 해자를 깊이 판 후에 싸우지 않고 굳게만 지키면 적군은 식량이 바닥이 나서 자연히 물러나야만 합니다.」

3. 멸영지국(滅令支國)

- 영지국을 멸하다. -

밀로가 속매의 말을 쫓았다. 한편 비밀리에 빈수무에게 6일의 기한을 주어 한 떼의 군사를 이끌고 서남쪽으로 우회하여 지마령을 넘어 영지국의 배후를 공격하도록 지시한 관중은 다시 호아반에게 별도의 군사를 주어 지마령을 먼저 점령하여 빈수무와 그 군사들의 진격로를 확보해 주도록 명했다. 빈수무와 호아반의 군사는 겉으로는 부족한 양식을 구하기 위해 규자로 행군한다 하고 아장 연지(連摯)에게는 황대산의 영지국 진영 앞으로 나아가 매일 싸움을 걸게 하여 밀로에게 의심을 사지 않도록 했다. 연지가 6일 동안 계속 공격하였으나 융병들은 싸움에 응하지 않고 굳게 지키기만 했다. 이윽고 약조한 6일이 지나자 관중이 말했다.

「날짜를 헤아려 보니 서쪽의 길로 나아간 빈수무 장군의 군사가 적국의 배후에 당도할 때기 되었다. 적군이 비록 싸움에 응하여 오지 않는다고 하여 어찌 앉아서면 기다릴 수 있겠는가?」

관중은 즉시 모든 군사들에게 명하여 빈 수레 200대를 몰아 먼저 해자 속에 빠뜨린 후 휴대한 흙포대를 던져 그 위에 메우게 했다. 제나라의 대군은 영지가 세운 방어시설과 장애물을 돌파한 후에 황대산 입구까지 내달려와서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제나라 군사들은 앞을 가로막고 있던 나무와 돌을 치우면서 전방의 영지군 진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때 밀로는 황대산의 입구를 막아 걱정거리가 없어졌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매일 속매와 술을 마시면서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 제나라 군사들이 황대산의 장애물를 넘어 쇄도해 오자 황망 중에 말을 찾아 타고 영채 앞으로 나아가 제나라 군사들 앞을 막고 대적했다. 제군과 교전에 들어가 몇 합도 겨루기 전에 병졸 한 명이 달려오더니 보고했다.

「우리나라의 서쪽 경계에서도 제군이 나타나 물밀듯이 우리의 배후를 향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유사시의 도주로로 사용하는 좁은 길도 적군에게 점령당한 사실을 알고 전의를 상실한 속매는 밀로를 호위하여 동쪽으로 달아났다. 빈수무가 몇 리를 달려 추격하였으나 산길이 험하고 융인들이 말 타는 솜씨가 뛰어나서 잡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 영지국의 군사들이 버리고 간 말과 병장기 및 소와 양가죽으로 된 장막 등, 그 수효를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치중들이 모두가 제군의 소유가 되었다. 밀로에게 잡혀간 수많은 연나라의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을 찾아 연나라로 귀환시켰다. 그토록 싸움을 잘하는 군사들은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영지국 백성들은 많은 음식을 준비하여 제나라 군사들을 환영하고 기병들은 말머리를 뒤로 돌려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환공이 영지국 백성들을 한 사람씩 일일이 위무하고 항복한 융족들을 한 사람이라도 죽이면 안 된다고 분부했다. 융족들이 크게 기뻐했다.

4. 진공고죽(進攻孤竹)

- 고죽국으로 진군하는 제환공 -

환공이 항복한 융인 한 사람을 불러 물었다.

「너희들의 임금은 어디로 달아났는가?」

융인이 대답하였다.

「우리나라와 고죽국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웃 나라라 평소에 서로 화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근자에 저희 임금이 이미 사람을 보내 원군을 청하였는데 아직 고죽국의 원군이 당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고죽국으로 달아났을 것입니다.」

환공은 고죽국 군사들의 강약과 영지국과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융인이 대답했다.

「고죽국은 우리나라의 동남쪽에 있는 대국으로 상나라 때부터 성곽을 짓기 시작한 역사가 오래된 나라입니다. 이곳에서 동남쪽으로 백여 리 정도 가면 비이(卑耳)라는 강이 나오는데 그 강을 건너면 바로 고죽국의 땅입니다. 다만 길이 험하고 높아 행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환공이 말했다.

「고죽국은 산융과 무리 지어 이웃나라를 괴롭히면서 이미 이렇듯 친밀하게 지내고 있으니 내 마땅히 정벌하여 후환을 없애리라!」

그때 마침 포숙아가 아장 고흑(高黑)을 시켜 말린 양식을 50대의 수레에 실어 보내 왔다. 환공이 즉시 고흑을 군중에 머물도록 명하여 싸움을 돕도록 했다. 또한 항복한 융병 중에서 힘세고 날랜 사람 천 명을 골라 호아반의 부대에 편입시키고 예전의 전투에서 잃은 병력을 보충하게 했다. 군사를 3일 동안 쉬게 한 환공은 고죽국을 향해 군사들을 행군시켰다.

한편 고죽국으로 달아난 밀로 등의 일행은 그 임금 답리가(答里呵)를 보자 땅에 엎드려 통곡하면서 그 동안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제나라의 군주가 자기 군사들의 강함을 믿고 우리나라를 쳐들어왔습니다. 바라건대 군사를 청하여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내가 왕의 요청을 받고 바로 군사를 내어 돕고자 했는데 몸에 조그만 병이 생겨 이렇게 다소간 지체되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이렇게 싸움에 크게 패하고 이곳으로 달려 올 줄은 몰랐습니다. 이곳으로 오기 위해서는 건너야만 하는 비이강은 수심이 깊어 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건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비이강의 뗏목을 모두 거두어 끌고 와 깊숙한 곳에 숨겨 놓으면 제나라 군사들이 어깨에 날개가 달리지 않는 한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물러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리와 왕이 힘을 합쳐 군사를 이끌고 뒤를 쫓으면 왕의 옛 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찌 조급히 서두를 필요가 있겠습니까?」

고죽군(孤竹軍) 대장 황하(黃花)가 곁에서 듣고 있다가 말했다.

「제나라 군사들이 뗏목을 만들어 강을 건너올까 걱정됩니다. 마땅히 군사를 내어 강변을 지키도록 하고 주야로 순찰하게 하여 만전을 기하십시오.」

답리가가 황화의 말을 일축하며 말했다.

「적군이 만약 뗏목을 만든다면 우리가 어찌 모르고 있겠는가? 그대는 지나치게 마음을 쓰지 말라.」

한편 제환공의 제나라 대군은 행군을 시작하여 십리도 가기 전에 기암괴석으로 된 험하고 높은 산을 만났다.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서 길을 덮고, 대나무가 숲을 이루어 길을 막았다. 그때의 정황을 노래한 시가 있다.

높고 험한 산은 이리저리 굽어 푸른 하늘에 닿았고

괴석은 하늘 끝까지 솟아 길마저 찾지 못하겠네

이족의 동자가 이끄는 대로 말에서 내려 따라갔으나

석굴에 호랑이가 있을까 또한 걱정이 되는구나!

盤盤曲曲接靑云(반반곡곡접청운)

怪石嵯岈路不分(괴석차아로불분)

任是胡兒須下馬(임시호아수하마)

還愁石窟有山君(환수석굴유산군)

관중은 군사들에게 명하여 유황과 염초를 준비하여 산 속으로 가져가 곳곳에 뿌리도록 한 후에 불을 지르게 했다. 바람이 불길을 도와 화광이 하늘로 치솟아 온 산을 뒤덮고 그 타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온 산의 초목은 뿌리도 남지 않고 다 타 버리고 여우와 토끼는 그림자도 없이 멀리 달아났다. 치솟은 불길은 5일 밤낮으로 끊이지 않고 산을 불태웠다. 온 산의 초목을 모조리 태우고 불길이 잡히자 산길을 뚫어 길을 내게 하여 수레가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장수들이 관중에게 칭하해 마지않았다.

「산이 높고 장애물이 많았는데 중보의 덕분으로 노력을 아끼게 되었습니다.」

「융병은 말을 잘 부려 기마전에 강하기 때문에 전차가 아니면 이길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길을 냈을 뿐이오.」

말을 마친 관중은 즉시 『상산가(上山歌)』와 『하산가(下山歌)』라는 노래를 지어 행군 중의 군사들에게 부르게 했다. 『상산가(上山歌)』의 노래말은 다음과 같았다.

높고 높은 산이여, 돌고 도는 길이로다!

맑고 맑은 물이여, 돌난간처럼 생긴 돌이로다!

엷고 엷은 구름이여, 햇빛도 싸늘하구나!

수레를 휘몰아 올랐음이여, 가파른 산 위를 올라 왔구나!

풍백의 도움이여, 유아가 장대를 잡아 주는구나!

새처럼 날라 올랐음이여, 날개가 돋친 듯하구나!

저 산의 높은 꼭대기에 오름이여,

그렇게 어렵지 않겠구나!

山嵬嵬兮路盤盤(산외외혜로반반)

水濯濯兮頑石如欄(수탁탁혜완석여란)

云薄薄兮日生寒(운박박혜일생한)

我驅車兮上巉岏(아구거혜상참완)

風伯爲馭兮兪兒操竿(풍백위어혜유아조간)

如飛鳥兮生羽翰(여비조혜생우한)

跋彼山巓兮不爲難(발피산령혜불위난)

또 『하산가(下山歌)』의 노래말은 다음과 같았다.

어려운 오르막길이여, 내려가기는 쉽구나!

잘 구르는 수레바퀴여, 말발굽 소리는 경쾌하구나!

요란한 수레바퀴 소리여, 사람은 숨을 몰아 쉬는구나!

구비구비 돌아감이여, 어느 사이에 평지로다!

저 오랑캐의 마을을 불살름이여,

봉화에 불을 당길 일이 없도록 함이로다!

고죽을 점령하고 공을 세움이여

길이길이 전하도록 하세나!

上山難兮下山易(상산난혜하산이)

輪如環兮蹄如墜(윤여환혜제여추)

聲轔轔兮人吐氣(성린린혜인토기)

歷幾盤兮頃刻以平地(역기반혜경각이평지)

搗彼戎廬兮消烽燧(도피융녀혜소봉수)

勒勛孤竹兮亿万世(륵훈고죽혜억만세)

치중을 나르던 인부들이 먼저 노래를 시작하자 군사들이 답하여 불러 씩씩한 노래 소리에 수레는 마치 나는 듯이 굴러갔다. 마침내 제군의 행렬이 비이강 강변에 당도했다. 환공, 관중, 습붕 등은 강변의 높은 산 위에 올라 그곳 지세의 높고 낮음을 관찰했다. 환공이 감탄하며 관중을 보고 말했다.

「과인은 오늘 사람의 힘이 노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이 옛날에 함거에 실려 올 때 노나라 군사들이 뒤쫓아 오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역시 노래를 지어 군사와 인부들에게 가르쳐 부르게 했습니다. 행군의 피로함을 잊고 즐거운 마음이 된 군사들과 인부들은 이틀 걸리는 거리를 하루에 달릴 수 있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무릇 사람이란 몸을 무리하게 사용하면 정신이 피로하게 되나, 기쁜 마음으로 일을 행한다면 몸은 피로를 잊기 때문입니다.」

「중보가 사람의 마음에 통달하여 일시에 이곳까지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지변유아(智辨兪兒)

- 지혜로써 유아(兪兒)의 현신을 알아보는 관중 -

제환공은 인부들과 군사를 재촉하여 수레를 몰아 일제히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산봉우리 몇 개를 넘고 다시 봉우리 하나에 올랐는데 산길 전면에 바위로 된 옹벽 앞에서 크고 작은 수레들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군사들이 달려 와서 고했다.

「길 가운데 커다란 석벽이 있고 그 안으로 길이 나 있는데 단지 말을 탄 군사 한사람 씩 만이 통과 할 수 있고 수레나 병거는 길이 좁아서 통과 할 수 없습니다. 」

제환공이 얼굴에 걱정스러운 빛을 띄우며 관중을 향하여 말했다.

「만약 적군이 이곳에 복병을 숨겨 놓기라도 했다면 큰 낭패를 당할 뻔 했도다! 」

제환공은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을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산골짜기의 움푹 파인 곳에서 갑자기 뛰쳐나와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어렴풋한 모습의 물체를 보았다. 환공이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니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물체가 길이는 약 한 척 남짓 되는데 몸에는 붉은 옷을 두르고 머리에는 검은 관을 썼으며 두 발은 아무 것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이윽고 환공 앞에 와서 두 손을 높이 들고 재삼 인사를 올리는 모습이 마치 환공을 영접하는 듯 했다. 그런 다음 오른 손으로 옷자락을 들어 올리더니 어느 틈엔가 석벽 가운데로 나 있는 길을 향하여 달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환공이 크게 놀라 관중을 향하여 물었다.

「중보께서는 방금 일어난 일을 보셨습니까?」

「저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환공이 자기가 본 환영을 자세하게 관중에게 설명하자 관중이 대답했다.

「주공께서 보신 것은 바로 신이 지은 노래말 가운데의 ‘유아(兪兒)’입니다.」

「유아는 무엇입니까?」

「유아는 산을 오르는 일을 주관하는 북방의 신으로써 패업을 이루는 왕이 출현을 예언하기 위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주군께서 유아를 보셨으니 그것은 바로 주군께서 패업을 이루실 징조입니다. 두 손을 높이 들어 마중하는 행동은 주군께서 고죽국 정벌을 환영한다는 뜻이며, 오론 손으로 옷을 쳐들어 보인 행동은 앞에 강물이 있는데 그 오른 쪽이 깊으니 주공께서 강을 건널 때는 왼쪽을 택하라는 뜻입니다.」

염옹이 시를 지어 관중의 유아를 알아본 박식함에 대해 노래했다.

춘추때 발간된 전적(典籍)의 수효와 내용은 다 뻔한데

중보는 어떻게 ‘유아(兪兒)’라는 존재를 알았는가?

이런 기이한 일들을 이인에게서만 들었겠는가!

장화⑤가 지은 박물지의 내용도 믿지 못할뿐이다.

春秋典籍數而知(춘추전적수이지)

仲父何從識兪兒(중보아종식유아)

豈有異人傳異事(개유이인전이사)

張華博物總堪疑(장화박물총감의)

관중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미 앞에는 강물이 있고 또한 다행히 석벽이 있어 적군이 쳐들어오더라도 능히 지킬 수 있습니다. 잠시 군사들을 산 위에 주둔시키면서 사람을 시켜 강물의 형세를 살펴 본 다음에 군사들을 앞으로 진군시키시기 바랍니다.」

강물을 살펴보러 간 척후병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돌아와 보고했다.

「산 밑으로 5리도 채 못 가서 비이(卑耳)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수량이 많고 수심이 깊어 비록 겨울철이 되어도 물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원래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 다녔으나 요사이 고죽국의 군주가 뗏목을 모두 거두어 가 버렸다고 했습니다. 강을 따라 오른 쪽으로 가면 수심이 더욱 깊어져 한 장도 더됩니다. 그러나 왼쪽으로 3리 쯤 돌아가면 강폭은 비록 넓어지나 강물의 수심은 얕아져서 무릎을 적시지 않고도 건널 수 있습니다.」

환공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유아가 나타난 징조가 효험을 보는 구나! 」

연장공도 옆에 있다가 환공을 거들며 말했다.

「비이강에 얕은 곳이 있어 건널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하늘이 군후를 도와 패업을 이루게 하려는 뜻인 듯 합니다.」

「이곳에서 고죽국까지 얼마나 더 가야 됩니까? 」

「비이강을 건너면 우선 단자산(團子山)에 이르고 다음에 마편산(馬鞭山), 그리고 쌍자산(雙子山)에 이르게 되는 데 세 산이 연달아 붙어 있어 그 거리가 약 30리 정도 됩니다. 또한 이곳은 상나라 때의 고죽국 군주 세 사람의 묘가 있는 곳입니다. 세 산을 지나 다시 25리쯤 지나면 무체성(無棣城)에 이르는데 이곳이 즉 고죽국의 도성입니다.」

호아반이 본대에 앞에 먼저 강물을 건너겠다고 선봉을 자청하자 관중이 말했다.

「한 길로만 행군하다가 만일 적군을 만나게 된다면 진퇴양난에 빠져 위험한 처지에 놓일 우려가 있다. 반드시 두 길로 나누어 행군하도록 하라!」

이어서 관중은 군사와 인부들에게 산 속의 대나무를 베어 등나무로 엮어 뗏목을 만들도록 명했다. 삽시간에 만들어진 수백 개의 뗏목 위에 병거와 치중을 싣고 군사들로 하여금 앞뒤에서 끌고 밀어 좁은 산길을 힘겹게 내려온 제군은 마침내 비이강 강변에 당도했다. 환공은 본대를 좌우양대로 나누어 도강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우군은 고흑과 함께 왕자성보가 이끌고 강의 오른쪽으로 뗏목을 타고 건너게 하여 정병(正兵)으로 삼고, 개방과 수초와 함께 제환공은 별도로 무리를 이끌고 후미를 접응하도록 했다. 계속해서 좌군은 호아반과 함께 빈수무가 이끌고 강의 왼쪽으로 우회하여 수심이 얕은 곳을 찾아 걸어서 건너도록 하여 이를 기병(奇兵)으로 삼고 관중은 연지 및 연장공과 같이 무리를 지어 역시 후미를 접응하여 도강한 후에 모두 단자산 밑에서 재집결하기로 했다.

6. 陷入旱害(함입한해)

고죽의 유인계로 한해의 함정에 빠진 제군 -

한편 무체성의 고죽국왕 답리가는 병졸들을 비이강으로 보내 제나라 군사들의 동정을 정탐시켰다. 고죽국의 정탐병들이 뗏목을 준비하여 거마와 함께 바쁘게 강을 건너고 있는 제나라 군사들을 보고 황급히 도성으로 달려가 답리가에게 보고했다. 크게 놀란 답리가는 황화(黃花) 원수에게 즉시 기병 5천 기를 인솔하고 출전하여 적군의 도강을 막으라고 명했다. 밀로가 고죽왕에게 말했다.

「제가 이곳에 숨어 지내면서 아무런 공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원컨대 속매와 같이 선봉을 맡아 제나라 군사들과 싸우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황화 원수가 나서서 면박했다.

「싸움에 매번 패한 패장들에게 선봉을 맡길 수 없습니다.」

말을 마친 황하는 말에 박차를 가하여 휘하의 기병을 이끌고 비이강을 향해 달려갔다. 답리가가 밀로에게 말했다.

「이곳의 서북쪽으로 단자산이라고 있는데 그곳은 이곳으로 오는 서쪽의 중요한 길목입니다. 수고스럽겠지만 두 분의 군신께서 그곳을 지켜주시면 제가 즉시 접응하여 뒤따라가 돕도록 하겠습니다.」

밀로가 입으로는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자기를 가볍게 대한 황화 원수의 태도에 대해 마음속으로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

한편 황화 원수의 군사가 비이강 어구에 미처 당도하기도 전에 제나라 장군 고흑이 거느린 선봉대와 마주쳐 양쪽 군사들 사이에 혼전이 벌어졌다. 황화와 싸운 고흑이 이내 당해내지 못하고 달아나려고 하려는 순간, 왕자성보가 이끄는 후진의 군사들이 당도했다. 황화는 고흑을 버리고 성보에게 달려들었다. 황화와 성보가 겨루기를 50여 합에 이르렀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 후대에 있던 제환공이 좌우에 개방과 수초를 대동하고 대군을 인솔하여 두 사람이 싸우는 곳에 당도했다. 뜻밖의 상황에 크게 당황한 황화는 휘하의 장수들과 군사들을 뒤에 남겨두고 혼자 도망치고 말았다. 5천의 고죽국 기마병들은 모두가 제나라 병사들에 의해 태반이 죽고 나머지는 모두 항복했다. 단신으로 도망치던 황화가 단자산 어구에 당도하여 보니 군사들과 거마가 마치 무성한 수풀처럼 늘어서 있는데 모두가 제, 연 및 무종 등 3국의 깃발을 꽂고 있었다. 먼저 강을 건너 단자산을 점거한 빈수무의 좌군이었다. 감히 단자산을 통과하지 못한 황화는 말에서 내려 산 속의 약초 캐는 노인으로 변장한 후 소로를 이용하여 산으로 기어올라 제나라 진영을 벗어날 수 있었다. 황화의 군대와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제환공은 단자산까지 파죽지세로 행군하여 빈수무의 좌군과 합류했다. 환공은 한 곳에 영채를 세우도록 명하고 고죽국으로의 진격로에 대한 계획을 다시 의논하여 세우도록 했다.

한편 군사를 이끌고 단자산으로 향해 진군하던 밀로가 마편산에 당도했을 때 앞에 나가 있던 초병이 달려와 보고했다.

「단자산은 이미 제나라 군사들에 의해서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밀로는 하는 수 없이 마편산에 영채를 세웠다. 이때 마침 황화 원수가 목숨을 구해 도망쳐와 마편산에 이르렀다. 그는 마편산에 주둔하고 있는 군사들이 자기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영채 안으로 달려 들어가 대장을 찾았으나 뜻밖에 밀로가 거느린 군사들이었다.

단신으로 도망쳐온 황화를 보고 밀로가 비아냥거렸다.

「원수께서는 싸우면 이기는 장수인데 어찌하여 단신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까?」

황화가 수치심에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이어서 술과 음식을 청하였으나 얻지 못하고 단지 볶은 보리 한 되를 받았을 뿐이었다. 말 한 필을 얻으려고 했지만 밀로는 황화에게 늙고 병든 말을 주었다. 황화가 가슴속에 원한을 품고 무체성으로 돌아와서 답리가를 접견하고, 군사를 다시 청하며 원수를 갚겠다고 했다. 답리가가 말했다.

「내가 원수의 말을 듣지 않아 일이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소.」

「제후가 원한을 갖고 있는 곳은 영지국의 군주였던 밀로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의 계책은, 오로지 밀로와 속매의 목을 베어 제후에게 바쳐 강화를 맺는 방법뿐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제나라 군사들과는 더 이상 싸우지 않고도 물러가게 할 수 있습니다.」

「밀로가 어려움에 처해서 우리에게 몸을 의탁하여 왔소. 내가 어찌 그를 적군에게 넘길 수 있겠소?」

답리가의 재상 올율고(兀律古)가 계책을 말했다.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싸움에서 패하고도 능히 공을 세울 수 있는 길입니다.」

「어떤 계책인가?」

「우리나라의 북쪽에는 한해(旱海)라는 이름의 땅이 있습니다. 한해를 또한 미곡(迷谷)이라고도 합니다. 그곳은 바로 황폐한 사막이라 물은 물론이고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땅입니다. 옛날부터 백성들이 죽은 사람을 이곳에 버려 백골이 쌓여 있습니다. 이곳은 백주 대낮에도 귀신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시시때때로 삭풍이 붑니다. 바람이 부는 곳은 모두 사람이나 짐승이 살수 없습니다. 그 바람을 사람이 씌우게 되면 어떤 사람은 곧바로 죽기도 합니다. 또한 모래 바람이 한번 일어나 불기 시작하면 지척도 분간이 안 됩니다. 미곡 안으로 잘못하여 들어간 사람들은 꾸불꾸불한 길로 인하여 쉽게 밖으로 나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계곡 안에는 독사와 맹수들이 들끓어 물려서 죽거나 잡혀서 먹히고 맙니다. 사람을 한 명 구하여 제나라 군사들에게 거짓으로 항복하게 한 후에 그곳으로 유인하게 한다면, 싸우지 않고도 그들 중 십중팔구는 죽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군마를 정돈하여 멀리 피하여 단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 어찌 묘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나라 군사들이 그곳까지 따라 오겠소?」

「대왕께선 궁인들과 권속들을 데리고 양산(陽山)으로 가서 숨고, 성중 백성들에게는 명하여 모두 산 속의 골짜기로 피난하도록 하여 성안을 비우게 하십시오. 그런 다음 사람을 제후에게 보내 항복하도록 하고, 단지 ‘우리 군주는 사막 가운데에 있는 나라로 구원군을 청하러 갔다’라고만 말하게 하십시오. 그들은 반드시 우리 뒤를 추격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제나라 군사들은 우리의 계책에 떨어지게 됩니다.」

황화 원수가 흔연히 자기가 항복의 사자로 가기를 원하자 답리가가 기병 천 명을 주어 올율고의 계책에 따라 행동하도록 했다. 황화 원수가 제후에게 거짓으로 항복하기 위해 달려가다가 마음속으로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만약 밀로의 목을 참하여 가지고 가지 않는다면 제후가 어찌 나를 믿겠는가? 내가 밀로의 목을 벤다 하더라도 일이 성공하게 되면 주공께서는 나를 탓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생각한 황화는 즉시 마편산에 있는 밀로의 진영을 찾아갔다.

한편 밀로가 마침 제나라 병사들과 대치하면서 승패를 내지 못하고 있던 참에 황하가 구원병을 끌고 자기를 도우러 온 줄로 알고 크게 기뻐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마중했다. 그러나 황화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재빠른 동작으로 말 위에서 칼을 뽑아 휘둘러 밀로의 머리를 베었다. 속매가 대노하여 칼을 들고 말에 올라 황화에게 달려들어 칼싸움을 벌렸다. 양쪽의 군사들 사이에는 각기 자기의 장군들을 도와 싸움이 벌어져 상호간에 많은 군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싸움을 이길 수 없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한 속매는 단기로 달아나 호아반의 영채로 달려가 항복했다. 그러나 속매의 항복을 믿지 않은 호아반은 군사들에게 명하여 포박한 그를 끌고 나가 참수시켰다. 가련하게도 영지국의 임금과 신하는 모두 중원의 나라를 침략하여 괴롭히다가 하루아침에 비명에 갔으니, 어찌 슬프지 않은 일이겠는가?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산으로는 황태가 있고 강으로는 유수가 있는 곳에

사방이 백 리 되는 영지(令支)라는 나라가 있었다.

연나라를 침략하여 얻은 노획물은 지금은 어디있는가?

나라는 망하고 몸은 죽었으니 한탄스러운 일이로다!

山有黃台水有濡(산유황대산유유)

周圍百里令支居(주위백리영지거)

燕山擄獲今何在(연산로흭금하재)

國滅身亡可嘆吁(국멸신망가탄우)

황화 원수는 밀로가 거느렸던 군사들과 같이 제나라 군중에 달려가서 밀로의 수급을 바치고 계획한 대로 제후에게 말했다.

「저희 임금께서는 나라가 기울자 외국에 군사를 얻어 돌아와 원수를 갚겠다고 하면서 우리나라의 북쪽에 있는 사막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신이 항복하자고 권했지만 듣지 않아 오늘 제가 밀로의 머리를 참하고 군후의 장막 앞에 항복을 하오니 바라옵건대 소졸이라도 좋으니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원하옵건대 군주님의 본부 병마를 위한 향도가 되어 우리 임금의 뒤를 추격하여 미력하나마 군주님에게 보답하고자 하오니 청을 들어주시옵소서.」

7. 노마식도(老馬識道)

- 늙은 말을 이용하여 사막에서 길을 찾은 관중 -

환공이 밀로의 수급을 보자 믿지 않을 이유가 없어 즉시 황화 원수를 전대로 삼아 대군을 이끌고 행군하여 무체성에 입성했다. 제나라 군사들이 무체성에 당도하였으나 황화가 이야기 한대로 과연 성은 텅 비어 있었다. 환공은 더욱 황화의 말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 단지 멀리 달아난 답리가만을 염려하여 연장공과 한 떼의 군사들만을 무체성에 머물며 지키게 하고, 나머지 대군을 이끌고 도망간 고죽국 군주의 뒤를 밤낮으로 쫓았다. 황화가 길을 안내한다고 하며 앞서 가기를 청했다. 환공이 고흑을 딸려 같이 앞서 나가게 하고 자신은 대군을 이끌고 그 뒤를 따랐다.

대군이 이윽고 모래사막이 있는 곳에 당도하자 환공은 군사들을 독촉하여 행군 속도를 더 빨리 하도록 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랫동안 앞으로 행군하여도 황화의 전대를 발견할 수 없었다. 날이 어둑해 지자 단지 망망하게 펼쳐진 하얀 사막만이 보일 뿐이었다. 천겹 만겹의 어둡고 시꺼먼 처참한 안개가 끼더니 싸늘하고 처연한 귀신들이 구슬피 우는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쏴쏴하는 어지러운 바람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났다. 한기가 사람들을 엄습하여 모골이 송연하게 되고 광풍은 더욱더 기승을 부려 땅을 할퀴었다. 사람과 말이 모두 놀라 많은 군마들이 오한이 들어 땅에 넘어졌다. 환공과 말머리를 같이하고 행군하던 관중이 말했다.

「신이 오래 전에 들은 바에 의하면 북방에 한해(旱海)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극히 위험한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곳이 바로 그 한해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속 전진하면 안 되겠습니다.」

환공이 급히 전령을 내어 군사들의 행군을 멈추게 하고 회군하려고 했으나, 전대와 후대는 이미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군사들이 추위를 물리치기 위해 불을 피웠으나 불어오는 바람에 곧바로 꺼져 버렸다. 다시 입으로 바람을 불어 피우려고 했으나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관중이 환공을 보호하면서 말머리를 돌려 급히 달렸다. 수행하는 군사들이 각기 북과 쟁이를 두드려 크게 울리게 하여 한편으로는 음기를 없애고 또 한편으로는 각대에게 소리를 치게 하여 군사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했다. 그 사이에 해가 넘어 가서 천지가 완전히 캄캄하게 되어 동서남북이 어디인지 모르게 되었다. 제나라 군사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길을 달렸는지 알지 못했다. 이윽고 바람이 멈추고 안개가 걷히면서 하늘에는 반달이 새롭게 떴다. 여러 장수들이 쟁이와 북소리를 듣고 뒤따라 몰려들자 한곳에다 진을 치고 머무르게 했다. 하늘이 다시 밝아 오기를 기다려 여러 장수들로 하여금 군사들을 점고하게 한 바, 단지 습붕과 그가 거느린 군사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습붕이 거느린 군사들 중 십 중 칠팔은 행군 중에 행방불명이 되고 죽거나 상한 사람의 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다행히 독사들은 추위가 한창인 겨울철이라 겨울잠을 자느라 나오지 않았고 맹수들은 군사들이 지르는 함성 소리에 숨어 버렸기 때문에 그나마 피해가 그 정도에 그칠 수 있었다.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제나라 군사들의 태반은 죽거나 다쳤을 것이다. 관중이 들판으로 나가 살펴보니 산골짜기의 지세가 매우 험악하여 사람이 다닐 만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군사들에게 명하여 다른 길을 찾아 그 골짜기를 벗어나라고 했다. 그러나 동쪽이나 서쪽이나 산길은 모두 꼬불꼬불 휘감겨지고 그 끝은 막혀 있어 나가는 출로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환공의 마음은 이미 불안하고 초조해 졌다. 관중이 옆에 있는 환공에게 말했다.

「신은 늙은 말은 길을 잘 찾는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종국과 산융의 고죽국은 서로 경계가 접해 있어 북쪽의 사막을 여러 번 다녀본 말이 틀림없이 무종국 병사들이 타고온 말 들 중에 섞여 있을 것입니다. 호아반으로 하여금 늙은 말 몇 마리를 가려내게 하여 그 말들이 가는 곳을 보고 뒤따른다면 길을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

환공이 관중이 말한 대로 호아반에게서 늙은 말 몇 마리를 취하여 앞에 가게하고 그 뒤를 따랐다. 과연 그 늙은 말은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가더니 이윽고 출구를 찾아냈다. 제나라의 대군은 마침내 늙은 말의 뒤를 쫓아 한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일을 두고 염옹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개미는 물 있는 곳을 알고 말은 길을 잘 찾아서

세상의 이물들은 위험한 때에 능히 도울 수 있었다.

천부는 얕은꾀를 부려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어느 군주가 능히 고집을 버리고 충언을 들었던가?

蟻能知水馬知途(의능지수마지도)

異流能將危困扶(이류능장위곤부)

堪笑淺夫多自用(감소천부다자용)

誰能舍己聽忠謨(수능사기청충모)

8. 병정고죽(兵定孤竹)

- 고죽국을 평정하여 북방을 안정시키는 제환공 -

한편 황화 원수는 제나라 장수 고흑을 끌고 본대의 앞장을 서서 행군을 하다가, 답리가가 숨어 있는 양산을 향해 지름길을 취해 달려갔다. 고흑은 뒤따라오는 본대의 대군이 보이지 않게 되자, 황화에게 말하여 잠시 멈추어 본대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행군하자고 했다. 황하가 고흑의 말을 들은 채도 안하고 막무가내로 빨리 가기만을 고집했다. 고흑의 마음속에 의심이 일어 말고삐를 잡고 행군을 멈추자 황화가 고흑을 붙들어 말에서 끌어내려 결박을 지웠다. 잠시 후에 고죽국의 왕인 답리가가 군마를 끌고 두 사람이 있는 곳에 나타났다. 황화가 밀로를 죽인 사실을 숨기고 말했다.

「밀로는 마편산의 싸움에서 패하여 죽고 신은 사항계를 써서 이미 제후의 대군을 유인하여 한해 속에 가두었습니다. 또한 제나라 장수 고흑을 사로잡아 이곳으로 끌고 왔습니다. 주군께서 처분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답리가가 고흑을 보며 말했다.

「그대가 만약 나에게 항복한다면 내가 마땅히 중용하리라!」

고흑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답리가를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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