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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假途滅虢(가도멸괵), 飼牛拜相(사우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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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5,170회 작성일 07-02-06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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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假道滅飼牛拜相(가도멸괵 사우배상)

우(虞)나라의 길을 빌려 괵()나라를 멸하는 지혜로운 순식과

소를 치는 목부를 재상으로 등용하는 진목공(秦穆公)

1. 驪姬夜哭(여희야곡)

- 잠자리에서의 눈물로 부자지간을 이간시키는 여희-

한편 진헌공은 안에서는 여희에게, 밖으로는 이오(二五)에게 미혹 당하여 태자 신생과는 자연히 멀어지고 해제(奚齊)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태자 신생은 단지 마음속으로 더욱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헌공에게 순종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여러 번에 걸쳐 군사들을 이끌고 나아가 오랑캐를 정벌하여 공을 세웠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는 결정적인 틈이 생기지는 않았다. 여희가 곧 배우 우시(優施)를 불러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을 말했다.

「조만간에 태자를 폐하고 해제를 대신 세워야 되겠는데 무슨 좋은 생각이 없는가?」

「세 공자는 모두 변방의 먼데 나가 있는데 누가 감히 부인이 하려고 하는 일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세 공자의 나이가 모두 장년이 이르러 세상사에 대한 이해가 깊고 또한 조정의 많은 대신들이 좌우에서 돕고 있으니 내가 아직 손을 쓸 수가 없어서이다.」

「그렇다면 순서를 정하여 차례로 제거하면 됩니다.」

「세 공자들을 제거하는데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먼저 태자 신생부터 죽여야 합니다. 신생이란 위인은 어질고 정결(淨潔)한 자입니다. 성격이 정결한 자는 자신이 더렵혀지는 일을 치욕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성격이 인자한 자는 자기를 해치려는 자에 대해서도 반격을 하려는 생각 대신에 거리를 두고 피하려고만 합니다. 스스로 더렵혀짐을 치욕으로 생각하여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면 참지 못하게 되고, 자기를 해치는 사람을 꺼리게 되면 스스로를 해치게 되는 법입니다. 그러한즉 세자가 비록 멀리 떨어져 있다 하나 주군께서는 평소에 세자의 사람 됨됨이를 익히 알고 계시는지라 다른 뜻으로 세자를 비방하게 되면 필시 주군께서는 믿지 않습니다. 부인께서는 반드시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주군께 호소하되 마치 세자의 좋은 점을 칭찬하는 척하다가 점차적으로 모함한다면 주공도 마침내는 믿지 않고는 달리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여희가 과연 깊은 밤이 되어 흐느껴 우는 척하자 헌공이 놀라 그 연유를 여러 차례에 걸쳐 물었으나 그녀는 한사코 대답하지 않았다. 헌공이 계속해서 추궁하자 여희가 마지못한 척하면서 대답했다.

「첩이 비록 말씀을 드린다 해도 주군께서는 필시 믿지 않으실 것 같아 차마 말씀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첩이 이렇듯 울고만 있는 이유는 머지않아 주군을 모시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해서 입니다.」

「어찌하여 그런 불길한 소리를 하는가?」

여희가 눈물을 거두고 헌공을 쳐다보고 말했다.

「신생이라는 위인은 겉으로는 인자하고 안으로는 인내하며 곡옥(曲沃)에 살고 있으면서 지나칠 정도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곡옥의 백성들은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깊히 따르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분명 신생이 뜻하는 바가 따로 있음이 분명합니다. 또한 신생은 만나는 사람마다 주군께서는 첩에게 미혹되어 장차 나라에 환란을 불러들일 것이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신생의 이런 행위에 대해 조정대신들 중 모르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유독 주군께서만 모르시고 계십니다. 그러다가 주군께서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해 신생을 어떻게 처리하려고 시도하신다면 그때는 이미 그 화가 주군께 미친 후일 것입니다. 부디 첩을 죽여 신생에게 사죄하고 그 음모를 막으시기 바랍니다. 첩 한사람의 목숨으로 백성들의 반란을 막을 수만 있다면 어찌 원망만 하겠습니까?」

「신생이 백성들에게도 인자하게 구는데 어찌 그 아비인 나에게만 인자하게 굴지 않겠는가?」

「첩도 역시 그것이 궁금하던 차에 바깥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개 필부의 인자함과 윗사람의 인자함은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필부는 부모 형제나 자식을 사랑함으로써 인(仁)으로 삼지만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나라를 이롭게 함으로써 인을 삼는다고 했습니다. 나라를 위하는 일에 부모형제나 자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백함을 좋아하는 신생이 스스로 이름을 더럽히는 행동을 원하겠소?」

「옛날 주유왕이 아들 의구(宜臼)를 죽이지 않고 자기 외가인 신(申)나라로 놓아 보냈다가, 결국 신후가 견융을 불러 들여 유왕을 여산에서 죽이고 의구를 왕으로 세웠는데 그가 주평왕입니다. 평왕은 동주의 시조가 되었고 지금에 이르러 유왕의 악명은 더욱 높아간 반면에 아무도 평왕의 깨끗하지 못한 이름에 대해 다시 논의한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헌공은 모골이 송연하게 되어 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앉더니 여희를 향하여 말했다.

「부인의 말이 맞는 것 같소. 어찌하면 될지 말해보시오.」

「주군께서 만약 나이를 핑계로 나라를 세자에게 물려준다면 세자는 그 뜻하는 바를 이루어 주군을 용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옛날에 주공의 선친인 곡옥백(曲沃伯) 무공(武公)께서 익성(翼城)의 애후(哀侯)를 죽이고 그 땅을 합쳤습니다만, 그러나 무공과 애후 사이는 골육이 아니고 무엇이었습니까? 무공께서는 단지 골육을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익 땅을 애후로부터 빼앗아 당진(唐晉)을 보전하게 되었습니다. 신생의 뜻도 역시 이와 같으니 주군께서는 부디 이 나라를 세자에게 양보하십시오.」

「그것은 불가한 일이오. 힘과 위엄을 갖추어 제후들에게 임하고 있는 내가 지금 당장 나라를 물려준다면 힘을 잃게 되고 또한 자식이 있다 한들 복종하지 않게 되니 위엄을 말할 수 없게 되오. 또한 힘과 위엄을 잃게 되면 사람들이 나에게 복종하지 않을 터인데, 이것은 비록 몸은 살아 있다 한들 죽은 목숨일 뿐이오. 부인은 너무 근심하지 마시오. 내가 알아서 장차 이 문제를 해결하리다.」

「지금 동산고락씨(東山皐落氏)①가 누차에 걸쳐 우리 당진국 변경을 침략해 괴롭히고 있습니다. 주군께서는 세자를 시켜 군사를 이끌고 동산고락씨를 정벌하게 하여 군사를 부리는 그의 능력을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가 전쟁에서 승리를 하지 못한다면 죄를 줄 명분을 얻게 되고, 싸움에서 이긴다면 백성들로부터 신망을 얻게 되어 그 공을 믿고 반드시 다른 뜻을 품을 것입니다. 그때 주군께서 잡아 죄를 주게 되면 나라 안의 사대부들은 비로소 마음속으로 승복할 것입니다. 무릇 적국으로부터 승리를 얻고자 한다면 나라의 변경을 우선 안정시켜야 합니다. 세자로 하여금 적국을 정벌하도록 명하여 그의 능력을 시험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헌공은 즉시 사자를 곡옥성으로 보내 신생으로 하여금 곡옥의 군사를 이끌고 동산고락씨를 정벌하라는 명을 전하게 했다. 세자의 소부 리극(里克)이 조정에 있으면서 헌공에게 간했다.

「태자는 군주의 다음가는 사람입니다. 군주가 나라 밖으로 행차할 때는 태자가 감국(監國)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법입니다. 또한 조석지간에 부왕의 식사를 보살피는 일도 태자의 중요한 직책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곡옥성을 다스리는 일로 세자의 직책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군사를 끌고 멀리 원정 나간다고 하니 실로 도리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태자 신생은 이미 여러 번 군사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가 싸움을 한 경험이 있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오.」

「옛날 출정하여 전투에 참가한 일은 주군을 따라 종군했을 뿐이지만 지금은 세자가 모든 책임을 지고 군사들을 지휘해야 합니다. 그런 연유로 불가하다고 한 것입니다.」

헌공이 하늘을 쳐다보고 한탄하며 말했다.

「과인에게는 아들이 아홉 명이나 있는데 아직 누구를 후계자로 삼을 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소. 경은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리극이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조정에서 물러나서 호돌(狐突)에게 사실을 알렸다. 호돌이 듣고 한탄했다.

「세자가 위험에 처했구나.」

호돌이 즉시 편지를 한 장 써서 신생에게 보내 전쟁터에 나가라는 주군의 명을 받들지 말라고 권하고 이어서 비록 싸움에서 승리를 하더라도 시기를 받게 되어 목숨이 위태롭게 되니 차라리 외국으로 도망치라고 권했다. 신생이 편지를 읽고 한탄했다.

「군주가 나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싸움에 임하라고 명을 내린 것은 나를 싫어하기 때문이며 또한 나의 본심을 떠보려고 함이라. 그렇다고 군주의 명을 받들지 않는 행위는 더 큰 죄를 짓는 일이다. 차라리 내가 전장에 나가 다행이 죽을 수 있다면 내 이름이나마 후세에 남길 수 있으리라!」

신생이 즉시 곡옥의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동산고락씨를 공격했다. 몸을 돌보지 않고 용감히 싸운 신생은 직(稷)②과 상(桑)③의 땅에서 동산고락씨의 군사와 싸워 크게 이겼다. 신생이 싸움에서 크게 이겼다는 소식을 들은 여희가 헌공을 보고 말했다.

「세자가 과연 싸움에 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 하시렵니까?」

「세자의 죄가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니 잠시 기다리기로 합시다.」

당진에 장차 변란이 일어 날 것을 짐작한 호돌은 몸에 병이 났다는 핑계를 대고 집안에 틀어 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2. 가도멸괵(假道滅)

- 우(虞)나라의 길을 빌려 괵나라를 멸하다.

이때 당진의 남쪽에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우(虞)④와 괵(虢)⑤ 두 나라가 있었다. 두 나라는 모두 주왕실과 같은 희성의 제후국으로 입술과 이와의 관계처럼 상호의존하며 국가를 유지해 왔다. 당시 괵국의 군주 추(醜)는 병사의 일을 좋아하고 스스로 교만한 위인이라 수차에 걸쳐 당진국의 변경을 침범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진의 변경을 지키는 관리가 달려와 괵나라가 다시 변경을 침략해 왔다고 위급함을 알려 왔다. 헌공이 괵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 여희가 말했다.

「이번에도 다시 한 번 신생을 시켜 괵국을 정벌하시지 그러십니까? 지난 번 동산고락씨를 정벌할 때 그의 군사적 재능이 이미 증명되었으니 그에게 군사를 주어 괵나라를 정벌하게 하면 틀림없이 싸움에서 이겨 큰공을 세울 것입니다.」

이미 여희의 말에 깊이 빠져든 헌공은 신생에게 군사를 주어 괵나라를 정벌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했다. 만일 신생이 괵나라을 토벌하는데 성공이라도 한다면 이름이 더욱 높아진 신생을 제압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헌공이 대부 순식(荀息)을 불러 물었다.

「괵국을 정벌할 수 있는 계책이 있는가?」

「우와 괵 두 나라는 서로 화목하여 우리가 괵나라를 공격하면 우나라가 군사를 내어 괵을 돕습니다. 이는 한 나라가 두 나라를 상대하는 경우라 신의 생각에 싸운다고 해도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인이 괵나라의 침략행위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단 말인가?」

「신이 듣기에 괵공은 여색을 지나치게 좋아한다 합니다. 우선 나라 안의 미녀들을 많이 구해 노래와 춤을 가르친 다음 화려한 마차에 태워 괵공에게 바치십시오. 그런 다음 주공께서 몸을 낮추어 공손한 태도로 화의를 신청하면 괵공은 틀림없이 기뻐하며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오만한 마음이 되어 미녀들에게 빠진 괵공은 자연히 정사에 소홀하게 되어 충성스러운 신하들과는 사이가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사이에 많은 재물로 견융을 유인하여 괵나라의 국경지방을 어지럽히고 그 틈을 타서 일시에 괵나라를 정벌한다면 큰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순식의 계책을 받아인 헌공은 나라 안에서 많은 미녀들을 뽑아 가무를 가르친 후에 괵나라에 보내며 수호를 청했다. 괵공이 기뻐하며 받아들이려고 하자 괵국의 대부 주지교(舟之橋)가 간했다.

「이것은 당진이 우리 괵나라를 유인하기 위한 낚시밥입니다.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그 미끼를 삼키시려고 하십니까?」

괵공은 주지교가 간하는 말을 듣지 않고 즉시 당진과 화의를 맺었다. 이후로 괵공은 매일 낮에는 미녀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에 탐닉하고 밤에는 미색을 접하게 되어 자연히 정사를 소홀히 대했다. 주지교가 다시 간하자 괵공이 노하여 그를 하양성(下陽城)을 지키는 하양관(下陽關)이라는 곳으로 좌천시켜 국경을 지키도록 했다. 얼마 후에 당진은 순식의 계획대로 견융에게 뇌물을 보내 괵나라를 공격하도록 시켰다. 당진의 뇌물을 받은 견융의 군사들이 괵나라의 국경을 침입하여 소란을 피우면서 위예(渭汭)⑥의 땅까지 쳐들어 왔으나 군사들을 이끌고 출전한 괵공에게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견융주가 자기나라로 돌아가 남은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다시 괵나라를 침략했다. 위예의 싸움에서 승전한 전과에 자신감에 차있었던 괵공은 견융의 군사를 물리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상전(桑田)⑦의 땅에서 견융군과 대치했다. 당진의 헌공이 다시 순식에게 물었다.

「이번에 괵이 상전에서 견융과 대치하고 있는 틈을 타서 괵을 정벌하려고 하는데 경의 생각은 어떠한가?」

「우와 괵 두 나라의 사이가 아직 멀어지지 않아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습니다. 신에게 계책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먼저 괵을 취하고 다시 우를 멸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계책인가?」

「주군께서 우나라에 재물을 후하게 주어 그들의 믿음을 얻은 후에 그들로부터 길을 빌려 괵나라를 멸하고 다시 우나라까지 차지하는 계책입니다.」

「우리는 새로이 괵과 화친하여 정벌할 명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우나라의 믿음을 얻어 길까지 빌릴 수 있겠는가?」

「주군께서 몰래 남쪽의 변방을 지키는 관리에게 괵나라에 시비를 걸게 명하시면 괵나라의 변방을 지키는 관리는 틀림없이 우리나라를 비방하고 나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핑계로 우나라에게 수호를 청하여 괵나라를 정벌할 명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순식의 계책을 받아 들인 헌공은 그 즉시 변방을 지키는 장수에게 괵나라의 변경을 침입하여 소란을 떨도록 명했다. 과연 괵나라의 변방을 지키는 관리가 비난하면서 당진의 변경을 공격했다. 마침내 당진과 괵 두 나라 사이에 마침내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당시 괵공은 견융의 군사들과 대치 중에 있었기 때문에 당진과 사이에 일어난 분쟁의 내용을 자세히 파악할 수 없었다. 헌공이 다시 순식에게 물었다.

「드디어 우리가 괵을 정벌하는데 명분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과연 어떤 재화를 뇌물로 받쳐야 우나라가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우공은 그 성격이 본래 탐욕스러운 사람이라 천하의 보물이 아니면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나라가 소유하고 있는 두 가지 보물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단지 주군께서 허락하지 않을까 걱정될 뿐입니다.」

「무슨 보물인지 경은 말해 보라.」

「우공은 원래 벽(璧)과 양마(良馬)를 가장 좋아합니다. 주군께서는 수극지벽(垂棘之璧)⑧과 네 필의 굴산지마(屈産之馬)⑨가 끄는 융거가 있지 않습니까? 청컨대 이 두 가지 물건이면 우나라로부터 길을 빌릴 수 있습니다. 탐욕스러운 성격의 우공은 옥과 명마에 욕심을 내고 우리의 청을 허락하여 계략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 두 물건은 다시없는 나의 보물인데 어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단 말인가?」

「신은 주군께서 두 가지 보물을 내놓지 않으리라고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나라로부터 길을 빌려 괵을 정벌한다면 우나라의 구원을 받지 못한 괵을 반드시 망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괵이 망하면 우나라는 혼자 존립하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나라도 우리의 영토가 될 테인데 그때 벽과 명마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단지 벽과 명마는 밖에 있는 부고와 외양간에 잠시 맡겨 두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대부 리극이 곁에 있다가 말했다.

「우나라에는 궁지기(宮之寄)와 백리해(百里奚)라고 하는 두 사람의 현신이 있는데 모두 세상 이치에 밝아, 두 사람이 간하여 우리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우공은 탐욕스럽고 어리석어 비록 두 사람이 간하더라도 절대 그들의 말을 따를만한 위인이 못 됩니다.」

헌공이 즉시 벽과 명마를 순식에게 내주어 우공에게 바치도록 했다.

당진의 사신이 와서 괵을 정벌하기 위하여 길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은 우공은 처음에는 매우 노하였으나 당진의 사신이 가져온 수극지벽과 굴산지마를 보자 화를 가라앉히며 얼굴에는 금방 기쁜 기색을 띠었다. 우공이 손으로는 벽옥을 만지면서 명마를 쳐다보더니 순식에게 물었다.

「이것들은 귀국의 갖고 있던 천하의 보물인데 무엇 때문에 나에게 주는가?」

「평소에 군주님의 어진 마음을 흠모하시고 또한 우나라의 강성함을 두려워하신 우리 주군께서 감히 이렇게 귀한 보물들을 사사로이 갖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신 나머지 대국에 바쳐 환심을 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에게 바라는 바가 있지 않겠는가?」

「괵나라로부터 여러 번 우리나라의 남쪽 변경을 침략을 받은 과군께서는 사직이 위태롭다고 생각하시고 대국인 우나라와 수호를 맺어 나라를 보존하시고자 함입니다. 금일 우리와 괵국이 맺은 조약서의 글씨가 아직 마르기 전임에도, 괵나라는 우리 당진국의 변경을 침략하여 어지럽히면서 오히려 우리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군주께서는 귀국의 길을 빌려 괵국의 죄를 묻고자 토벌하기 위해서입니다. 다행히 괵국을 쳐서 승리한다면 노획하게 되는 모든 전리품은 군주께 바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군께서는 군주님과 우호관계를 맺고 영원토록 사이좋게 지내려고 하십니다.」

우공이 듣고 크게 기뻐했다. 대부 궁지기가 듣고 간했다.

「주군께서는 허락하지 마십시오. 옛말에 입술이 없어지면 이빨이 시리게 된다고 했습니다.⑩ 당진이 자기들과 동성의 제후국을 멸하여 삼킨 일이 어디 한 두 나라뿐입니까? 유독 우와 괵 두 나라를 아직까지 삼키지 못한 이유는 두 나라가 이웃에 연하여 있으면서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서로 도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괵국이 망하면 내일은 틀림없이 그 화는 우리나라에 닥치게 됩니다.

「당진의 군주가 세상에 둘도 없는 귀중한 보물을 아까워하지 않고 과인에게 주어 이렇듯 나를 기쁘게 하는데 내가 어찌 몇 리에 불과한 길을 빌려주는 일을 아까워하면 되겠는가? 하물며 당진은 괵국보다 열 배나 강한 나라다. 괵나라를 버리고 대신 당진을 새로 얻는다면 어찌 그것이 이득이 되지 않겠는가? 나의 일을 더 이상 망치지 말고 그만 물러가라!」

궁지기가 다시 간하려고 하자 곁에 있던 백리해가 궁지기의 옷자락을 잡아끌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궁지기가 우공의 면전에서 물러 나와 같이 물러나온 백리해에게 말했다.

「그대는 주군에게 간하는 나를 거들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나를 막은 이유는 무엇 때문이오?」

「저는 듣기에 어리석은 자에게 올리는 충언은 마치 길거리에 버리는 아름다운 구슬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라의 걸왕(桀王)이 충신 관룡봉(關龍逢)⑪을, 은나라의 주왕(紂王)이 현신 비간(比干)⑫을 죽인 일은 모두가 간함의 도를 높게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우공의 안색을 살펴보니 대부가 위태롭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나라는 반드시 망할 터인데 그대와 나는 다른 나라로 떠나야하지 않겠소?」

「대부께서 먼저 떠나시기 바랍니다. 만일 나 혼자만이라도 남아 있게 된다면 도망친 대부의 죄를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남아 있다가 기회를 봐서 천천히 떠나겠습니다.」

궁지기가 그날 밤 가솔들을 전부 데리고 우나라를 떠났다. 그러나 그가 어느 나라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한편 순식은 우나라에서 돌아와 헌공에게 고했다.

「우공이 이미 우리의 벽옥과 명마를 선물로 받아들이고 길을 빌려주기로 허락했습니다.」

헌공이 듣고 친히 군사를 이끌고 괵국을 정벌하러 나서려고 하자 리극이 들어와 말했다.

「괵국을 정벌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주군께서 번거롭게 직접 나설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정벌할 어떤 계책이라도 갖고 있는가?」

「괵은 도성을 상양성(上陽城)에 두고 있습니다. 상양성으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그 하수 맞은편에 있는 하양성(下陽城)을 먼저 점령해야 합니다. 하양성을 함락시키기만 한다면 괵국을 멸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신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미력한 힘이나마 진력을 다하여 공을 세워 기필코 괵나라를 점령하고야 말겠습니다. 만일 공을 세우지 못하고 돌아온다면 그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헌공이 리극을 대장으로 순식을 부장으로 삼아 병거400승을 내어 주고 괵을 정벌하라고 명했다. 순식은 즉시 사자의 임무를 띠고 우나라에 가서 당진의 군사들이 도착할 시기를 알렸다. 우공이 순식을 보고 말했다.

「과인이 귀국의 귀중한 보물을 받고서도 아무런 보답도 못하고 있어 기다리고 있던 중이오! 차제에 과인도 군사를 이끌고 그대 군사들 뒤를 따르겠소.」

「군주께서 군사를 내어 우리를 돕는다면 하양성은 이미 깨뜨린 것이나 같다고 하겠습니다.」

「괵국의 하양성은 평소에도 수비가 견고한 곳이오. 내가 어찌 싸우지도 않고 쉽게 얻을 수 있겠소?」

「신이 듣기에 괵군과 견융군이 상전의 땅에서 크게 싸웠으나 승패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군주께서 싸움을 돕기 위해 병거를 끌고 왔다고 하면서 몰래 우리 당진군을 이끌고 하양성에 들어가신다면 하양의 관문은 쉽게 취할 수 있습니다. 신에게 철엽거(鐵葉車)⑬가100승이 있으니 군주께서 끌고 가시기 바랍니다.」

우공이 순식의 계책을 쫓아 당진군을 이끌고 하양성을 향하여 진군했다. 그때 하양성을 지키고 있던 대부 주지교가 우공이 구원군을 끌고 왔다는 말을 믿고 관문을 열고 맞아 들였다. 우공이 이끌고 온 철엽거 안에 숨어 있던 당진군이 뛰쳐나와 관 안으로 진입하여 일제히 괵군을 향해 공격했다. 주지교가 황망 중에 관문을 닫으려고 했으나 당진군이 이미 관 안으로 쇄도하여 진입한 후라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리극이 우공의 뒤를 이어 당진군의 본대를 이끌고 하양성 안으로 진격해 들어 왔다. 주지교는 하양성을 잃었다고 괵공에게 당할 문책이 두려워 휘하의 군졸들을 거느리고 당진군에 항복했다. 리극이 주지교와 하양성의 수비군을 향도로 삼아 하수를 건너 상양성으로 군사들을 진격시켰다.

한편 상전에서 견융군과 대치하고 있던 괵공은 당진군의 공격을 받고 하양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괵공이 본국을 구하기 위해 황급히 군사를 거두어 퇴각하려는 순간 견융군의 기습을 받아 괵군은 전멸하고 괵공의 뒤를 따르는 병거는 단지 십여 대에 불과했다. 간신히 도망쳐 상양성에 당도한 괵공은 이미 견융군과의 싸움에서 대부분의 군사를 잃어버려 대책 없이 망연한 처지가 되었다. 이윽고 하수를 건넌 당진군이 상양성 앞에 당도하여 그 주위를 물샐틈없이 포위했다. 그해8월에 포위당하여12월이 되자 성중에는 땔나무와 먹을 것이 모두 떨어졌다. 할 수 없이 성밖의 당진군을 향해 싸움을 걸어봤으나 막강한 당진의 군사들을 결코 이길 수 없었다. 이윽고 사졸들은 지치고 백성들이 내는 울음소리는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리극이 주지교에게 편지를 써서 화살에 메달아 성안으로 쏘아 괵공으로 하여금 항복을 권하게 했다. 편지를 읽고 난 괵공이 말했다.

「우리의 선조들은 대를 이어서 주나라 왕실에서 공작(公爵)의 신분으로 경사의 직을 맡아 왔는데 어찌 내가 아래 직급의 제후에게 항복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괵공은 밤이 되자 가솔들을 이끌고 성문을 열어 주나라 도성을 향해 도망쳤다. 리극은 괵공이 달아날 수 있도록 뒤를 쫓지 않았다. 괵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서 향기로운 꽃과 등불을 손에 들고 성안으로 들어오는 리극 등을 환영했다. 리극은 백성들을 안전한 곳에 모이게 한 후에 휘하의 군사들에게 실오라기 한 개라도 범하지 못하도록 추상같은 명을 내렸다. 이어서 휘하의 군사들 중 일부를 수비병으로 남겨 괵성을 지키도록 조치한 리극은 괵나라의 부고에 있던 금은보화를 모두 꺼내어 수레에 싣게 하고 그 중10분의3과 괵공에게 주었던 미녀들을 거두어 모두 우공에게 주었다. 수많은 보물과 미녀들을 받고 우공은 크게 기뻐했다.

3. 순망치한(脣亡齒寒)

-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 -

리극이 헌공에게 사자를 보내 괵나라를 정벌한 공을 고하게 하고 휘하의 군사들을 모두 우나라 도성 밖에 진영을 세워 주둔시켜 쉬도록 했다. 이어서 이극 자신이 몸에 병이 났다고 핑계를 대고 병이 낫게 되면 군사를 이끌고 회군할 계획이라고 우공에게 전하게 했다. 우공이 수시로 음식과 약을 가지고 와서 리극의 병문안을 했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나던 중에 갑자기 보고가 들어왔다.

「당진의 군주가 군사를 이끌고 도성 밖에 당도하였습니다.」

우공이 사자를 보내 당진의 군주가 군사를 이끌고 온 연유를 물어 보게 했다. 사자가 돌아와 우공에게 보고하면서 말했다.

「괵나라를 정벌하러 나간 당진의 군사들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까 걱정하여 그들을 돕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우공이 듣고 말했다.

「과인이 마침 당진의 군주를 만나 수호를 맺고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그가 스스로 찾아오니 과인이 바라고 있던 바였다.」

우공이 황급히 음식을 준비하여 도성 밖으로 나가 헌공을 맞이했다. 괵공을 만나 피차간에 인사를 나눈 헌공이 우공에게 기산(箕山)으로 사냥을 나가자고 청했다. 우공이 당진 사람들에게 자기의 사냥실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서 성안의 모든 무장병들과 병거를 끄는 군마를 하나도 남김없이 사냥터로 끌고 나와 헌공과의 사냥시합에 임하려고 했다.

이윽고 약속한 날짜가 되어 두 나라 군주들은 사냥터에서 만났다. 진시(辰時)⑭14)에 시작한 사냥이 신시(申時)⑮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성안에서 급보가 왔다.

「성안에 불이 났습니다.」

헌공이 옆에서 듣고 말했다.

「그것은 민간이 잘못해서 일어난 불일 것이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진화될 터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사냥이나 계속 합시다.」

성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우공을 붙잡은 헌공은 다시 한 번 더 사냥터를 에워싼 후 내기를 하자고 청했다. 대부 백리해가 은밀히 우공에게 다가와 말했다.

「성안에 란이 일어났다고 하니 주군께서는 이곳에 더 이상 머무르시면 안 됩니다.」

우공이 헌공의 청을 사양하고 작별인사와 함께 먼저 사냥터를 떠났다. 우공의 일행이 회군하여 반쯤 갔을 때 수많은 백성들이 란을 피해 자기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백성들이 우공 일행을 보자 말했다.

「성은 허를 찔려 당진의 군사들이 이미 점령해 버렸습니다.」

우공이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속히 성을 향해 수레를 몰아라.」

우공 일행이 이윽고 우나라 도성 밖에 당도하였으나 성문 위에는 한 사람의 대장 복장을 한 장군이 서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투구와 갑옷을 선명하게 차려 입은 당진군의 대장 리극이었다. 난간에 의지한 리극이 위풍당당하게 우공을 향해 외쳤다.

「예전에 군주가 길을 빌려준 은혜를 입어 괵나라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시 군주께서 나라까지 빌려주시니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공이 대노하여 성문을 향해 돌진하도록 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그러자 성 위에서 갑자기 딱따기 소리가 커다랗게 울리고 동시에 화살이 마치 비 오듯이 쏟아져 내렸다. 즉시 수레를 뒤로 물리라고 명한 우공은 전령을 시켜 뒤따라오는 후군에게 행군을 빨리 하여 달려오도록 전달하게 했다. 전령이 돌아와 우공에게 보고했다.

「뒤에 따라 오던 군사들은 당진군에 의해 길이 끊겨 일부는 항복하고 나머지는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 군사들의 병장기와 거마들은 모두 당진의 군사들이 가져가 버렸습니다. 당진의 군주가 대군을 이끌고 우리 뒤를 따라 진군해 오고 있는 중입니다.」

우공은 진퇴양난이 되어 한탄하며 말했다.

「궁지기의 간언을 듣지 않는 것이 후회되는 구나!」

다시 곁에 있던 백리해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대는 그때 어찌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가?」

백리해가 대답했다.

「주군께서 궁지기의 간언도 듣지 않았는데 어찌 제가 간하는 말을 들었겠습니까? 신은 간언은 드리지 않았지만 정작 몸은 빼지 않고 지금까지 주군을 따르고 있습니다.」

위급한 사항에 빠져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 우공을 향해 수레 한 대가 그를 향해 달려왔다. 수레에는 옛날 괵공을 모시다가 당진에 항복한 주지교가 타고 있었다. 우공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띄웠다. 주지교가 우공을 보고 말했다.

「군주께서 감언이설에 속아 당진국의 말을 듣고 괵을 버리신 결과 나라와 백성들을 모두 잃으셨습니다. 지금 군주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란 이곳을 탈출하여 다른 나라로 도망치는 일뿐입니다. 번거롭게 다른 나라로 망명하여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느니 차라리 당진에 항복하시기 바랍니다. 당진의 군주는 덕이 많고 도량이 크신 분이라 틀림없이 아무 해도 가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군주의 처지를 동정하여 후하게 대하실 것입니다. 군주께서는 의심하시지 마시고 부디 항복하시어 여생을 편안히 보내십시오.」

우공이 주저하며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헌공이 당진군을 이끌고 우공이 있는 곳에 당도하여 사람을 보내 만나기를 청했다. 우공은 헌공의 부름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윽고 우공이 당도하자 헌공이 웃으며 말했다.

「과인이 이곳에 온 목적은 벽옥와 굴산지마를 찾고자 함이오!」

헌공은 즉시 좌우에게 명하여 우공을 수레에 태워 당진의 군중으로 보내 머물게 했다. 백리해가 우공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따라 다니며 모셨다. 곁에 있던 사람이 어째서 망한 우공 곁을 떠나지 않느냐고 묻자 백리해가 말했다.

「내가 우공의 녹을 오랫동안 받았음으로 이렇게 모심으로써 그에 대한 보답을 하기 위해서이다.」

헌공이 성안으로 들어와 백성들을 위무하여 안심시켰다. 순식이 왼손에는 벽옥을 들고 오른손에는 굴산지마의 고삐를 끌고 헌공 앞으로 대령하고 말했다.

「신이 세운 계책이 이미 행해져 금일 벽옥과 굴산지마를 다시 찾아왔으니 부고와 마구간에 넣어 두기를 청합니다.」

헌공이 크게 기뻐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우공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벽옥과 굴산지마가 비록 천하의 보물이었다지만

어찌 한 나라의 사직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순식의 묘책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하더라도

진실로 우공의 어리석음이 가소롭구나!

璧馬區區雖至寶(벽마구구수지보)

請將社稷較何如(청장사직교하여)

不夸荀息多奇計(불과순식다기계)

還笑虞公眞是愚(환소우공진시우)

본국으로 돌아온 헌공이 데리고 온 우공을 죽이려고 하자 순식이 듣고 말했다.

「그자는 한낱 보잘 것 없는 미물에 불과한데 살려 둔다 한들 무슨 걱정이 되겠습니까?」

순식은 헌공의 허락을 받아 우공을 망명객에 대한 예로써 대하고 별도로 벽옥과 말을 주면서 말했다.

「군주께서 저에게 길을 빌려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입니다.」

주지교는 진나라에 와서 헌공으로부터 대부의 벼슬을 받았다. 주지교가 백리해의 현명함을 알고 헌공에게 추천했다. 헌공이 백리해를 쓰기 위해 주지교를 보내어 그 뜻을 전하게 했다. 백리해가 듣고 말했다.

「옛날에 모시던 군주가 아직 살아 있는데 어찌 다른 임금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주지교가 듣고 부끄러워하며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갔다. 백리해가 한탄하면서 말했다.

「무릇 군자라면 원수의 나라에 몸을 담고 있으면 안 되는 법인데 어찌 벼슬까지 바란단 말인가? 내가 장차 벼슬길을 구한다 할지라도 원수의 나라인 이곳 당진은 아니다.」

주지교는 백리해가 한 말을 전해 듣고 자기의 잘못을 꼬집는다고 생각하여 마음속으로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

4. 진진혼인(晉秦婚姻)

- 혼인으로 수호를 맺은 당진(唐晉)과 섬진(陝秦)

그때 섬진의 목공(穆公) 임호(任好)는 즉위한지6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부인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목공이 대부 공자집(公子縶)을 당진에 보내어 헌공의 장녀 백희(伯姬)⑯를부인으로 삼고자 혼사를 청했다. 헌공이 태사소(太史蘇)를 시켜 산가지 점을 치게 하여 《뇌택귀매(雷澤歸妹)》⑰라는괘를 얻었다. 그 육효(六爻)의 점사는 다음과 같았다.

남편이 양을 잡았는데

피가 흐르지 않고

아내는 광주리를 이어 받았는데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이 비었구나!

서쪽의 이웃나라가 꾸짖으나

갚을 길이 없도다!

士刲羊(사규양)

亦无衁也(역무황야)

女承筐(여승광)

亦无貺也(역무황야)

西鄰責言(서린책언)

不可償也(불가상야)

태사소가 그 괘를 풀이했다.

「서쪽에 있는 섬진이 앞으로 당진을 꾸짖는다는 괘는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귀매(歸妹)란 젊은 여자가 시집을 간다는 말입니다. 진(震)이 변하여 이(離)⑱가되면 그 괘(卦)는 규(睽)⑲가되는데, 규(睽)나 이(離)는 모두 길한 괘가 아닙니다. 결코 혼인을 허락하면 안 됩니다.」

헌공이 다시 태복(太卜) 곽언(郭偃)을 시켜 거북점을 치게 했다. 곽언은 그 징조가 대길이라고 하면서 헌공에게 그 점괘를 바쳤다.

송백을 이웃으로 하고

대대로 장인과 사위로 인척관계를 맺어

세 번이나 우리나라의 군주를 정하는데

혼인을 맺으면 이로움이 있을 것이지

결코 해로운 일은 아니니라!

松柏爲鄰(송백위린)

世作舅甥(세작구생)

三定我君(삼정아군)

利于婚媾(이우혼구)

不利寇(불리구)

태사소가 산가지 점괘를 들어 그렇지 않다고 따지려고 하자 헌공이 말했다.

「옛말에 거북점이 산가지 점에 우선한다고 했다. 거북점에 대길이라고 하니 어찌 의심하겠는가? 내가 들으니 섬진은 천제의 명을 받은 후부터 나라가 강대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섬진의 청을 거절하면 안 될 것이다.」

헌공은 목공의 청혼을 허락했다. 공자집이 헌공으로부터 혼인에 대한 허락을 받고 귀국하는 도중에 노상에서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대추 빛처럼 붉고 턱에는 곱슬 수염을 무성하게 기르고 있었다. 양손에는 각각 거대한 호미 한 개씩을 들고 밭을 갈고 있었다. 그가 밭을 갈면서 파 놓은 흙무더기의 높이가 몇 자나 되었다. 공자집이 호미를 살펴보기 위해 시종들에게 명하여 가져오라고 명했다. 호미를 가져오던 시종들이 달려들어 가져오는데 한 사람의 힘으로는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공자집이 그 사람에게 이름과 성을 묻자 그가 대답했다.

「이 사람의 성은 공손씨(公孫氏)에 이름은 지(枝)입니다. 당진의 군주와는 먼 친척이 됩니다.」

「그대는 재주가 있는 사람인데 어찌하여 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까?」

「천거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따라 우리 섬진국에 가지 않겠습니까?」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저를 천거하여 섬진의 군주를 뵙게 해준다면 제가 바라던 바입니다.」

섬진으로 돌아온 공자집이 목공을 배알하고 당진에 간 일을 복명한 후에 자기의 수레에 태워 데리고 온 공손지를 천거했다. 목공이 공손지를 대부에 봉했다. 당진의 군주가 혼인을 허락했다는 보고를 받은 목공은 다시 공자집에게 명하여 당진으로 가서 폐백을 바치고 백희를 모셔오도록 했다. 헌공이 섬진에 시집가는 백희에게 딸려 보낼 몸종으로 누구를 보내야 하는지를 군신들에게 물었다. 괵공을 모시다가 당진의 대부 벼슬을 살고 있던 주지교가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옛날 우공의 신하였던 백리해는 우리 당진의 벼슬을 받지 않고 있으니 그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먼 나라로 보내는 편이 좋겠습니다.」

헌공이 주지교의 말을 쫓아 백리해를 백희의 몸종으로 삼아 섬진에 보냈다.

5. 윤락위잉(淪落爲媵)

- 가족과 헤어져 떠도는 거지가 되었다가 다시 몸종으로 전락한 백리해(百里奚) -

한편 백리해는 우(虞)나라 사람으로서 자는 정백(井伯)이라 했다. 나이가 삼십이 넘어서 두(杜)씨에게 장가를 들어 아들 하나를 얻었다. 백리해의 집안은 원래 가난하여 집을 떠나 벼슬자리를 구하려고 했지만 그 처자를 맡길만한 데가 없어 차마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백리해의 처 두씨가 말했다.

「첩이 듣기에 남자는 그 뜻을 천하에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군께서 장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세상에 나가 벼슬을 구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곧 처자식을 못 잊어서입니다. 첩은 능히 혼자서 살아 갈 수 있으니 저희를 괘념치 마시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 뜻을 펼치기 바랍니다.」

두씨가 백리해와 이별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집에서 유일하게 기르고 있던 암탉을 잡았으나 부엌에는 땔감이 없어 문빗장을 뜯어서 불을 피워 취사를 했다. 다시 아직 덜 익은 조 이삭을 배어다가 절구에 찌어 밥을 지었다. 백리해가 한 끼의 식사를 배불리 먹고 가족과 이별할 때 그 처가 아들을 품에 안고 백리해의 소매를 붙잡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부디 부귀하게 되면 우리를 잊지 마십시오.」

백리해가 가족과 이별하고 제나라를 향해 길을 떠났다. 제나라에 당도한 백리해는 당시의 제나라 군주였던 제양공(齊襄公)⑳에게출사하려고 했으나 천거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노자가 떨어져 구걸을 하다가 송나라의 질(銍)㉑이라는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사이에 세월은 어느덧10년이 흘러 백리해의 나이는 마흔이 되었다. 그때 마침 그곳에 살고 있던 건숙(蹇叔)이라는 사람이 걸인 생활을 하고 있던 백리해를 보고 그의 생김새가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어 말했다.

「내가 보니 그대는 빌어먹는 걸인이 아닌 것 같다.」

건숙이 백리해의 성과 이름을 묻고 자기 집에 데려가 밥을 먹인 후에 시사에 대해 몇 가지 물어 보았다. 백리해가 응대하여 대답하는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치 물 흐르는 듯이 유창하고 조리가 분명히 서있어 자기의 생각을 그림을 그려서 설명하듯 했다. 건숙이 감탄하며 말했다.

「그대가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음에도 이와 같이 끼니도 해결 못하는 곤궁한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은 어찌 운명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건숙은 백리해를 집에 묵게 하고 이어서 결의형제를 맺었다. 건숙이 백리해보다 한살이 연상이라 백리해가 건숙을 형이라고 불렀다. 건숙의 집도 역시 넉넉하지 못하여 백리해가 마을에서 소를 길러 양식을 보태게 되었다. 그때 제나라에서는 공손무지(公孫無知)가 제양공을 시해하고 스스로 제후의 자리에 올라 민심을 일신시키기 위해 중원 각지에 방을 돌려 현사를 초빙하고 있었다.㉒백리해가 방을 보고 공손무지의 초빙에 응해 제나라에 가서 출사하려고 했다. 건숙이 말리면서 말했다.

「죽은 양공의 아들들이 나라 밖에 모두 살아 있는데 어찌 무지가 군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는가? 무지는 결코 아무 공도 이루지 못하고 결국은 몸에는 화가 미쳐 비명에 목숨을 잃게 될 운명일 걸세!」

백리해가 건숙의 말을 듣고 제나라에 출사하려는 생각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백리해는 주나라의 왕자 퇴(頹)가 소를 좋아하여 자기 밑에서 소를 잘 기르는 자에게는 봉록을 후하게 준다는 소문을 들었다. 백리해가 건숙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주나라로 들어가려고 했다. 건숙이 듣고 말했다.

「모름지기 큰 뜻을 가지고 있는 장부는 경솔하게 처신하여 몸을 망치면 안 되는 법이네. 한번 출사해 놓고 형세가 여의치 못하다 해서 그 모시던 사람을 버리는 행위를 불충이라 하고 또한 그 모시던 사람을 버리지 못하고 환난을 같이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행위라고 하네.㉓이 번에 주나라에 가서 왕자퇴를 모시는 일은 부디 신중하게 생각하고 처신하기 바라네. 나도 처리해야 할 집안 일이 있어 동행은 같이하지 못하겠지만 곧 뒤따라가서 한 번 살펴보겠네.」

백리해가 먼저 주나라에 당도하여 왕자퇴를 알현하고 소를 기르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 왕자퇴가 매우 기뻐했다. 곧바로 백리해의 뒤를 따라와 주나라의 왕성에 당도한 건숙이 그와 같이 왕자퇴를 만나 보았다. 왕자퇴와의 접견을 끝내고 물러나온 건숙이 백리해에게 말했다.

「왕자퇴는 품은 뜻은 비록 크지만 재주가 미치지 못하여 그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첨배들 뿐이네. 후에 반드시 분에 넘치는 일을 도모하게 되어 맞이하게 될 낭패스러운 일이 불을 보듯 훤하니 차라리 돌아가세나! 」

백리해가 그의 처자와 헤어진지가 오래되어 우나라에 돌아가 가족들의 소식을 알아보고 싶다고 건숙에게 말했다. 건숙이 백리해에게 말했다.

「우나라에는 이름이 궁지기라는 어진 신하가 한 명 있는데 나와는 오래된 친구라. 서로 헤어진지가 오래되어 나 역시 한 번 찾아가 보고 싶네. 동생이 우나라에 돌아가고 싶다면 나도 같이 동행하겠네.」

두 사람은 즉시 주나라를 떠나200여리 길을 며칠 만에 걸어 우나라에 당도했다. 그러나 백리해의 처자는 옛날 그가 떠난 후로 우나라에 기근이 들어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찾지 못한 나머지 다른 나라로 유랑생활을 떠나고 없었다. 백리해의 고향 사람들도 그들이 어느 곳으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백리해가 알고 마음속으로 슬퍼해 마지않았다. 건숙이 궁지기와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눈 후 백리해의 재주에 대해 이야기했다. 궁지기가 백리해를 우공에게 천거하자 우공은 그를 중대부에 임명했다. 건숙이 백리해를 보고 말했다.

「내가 우공의 사람됨을 살펴보니 품고 있는 뜻이 적고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는 사람이라 주인으로 모실 수 있는 위인이 못 되는 같네.」

「동생은 오랫동안 빈곤하게만 살아와서 마치 물을 떠난 물고기의 신세라 급히 한 모금의 물로 목을 적셔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처지와 같습니다. 」

「동생이 가난을 이유로 출사를 하겠다고 하니 내가 차마 말릴 수가 없네. 후일에 만약 나를 만날 일이 있으면 송나라 땅의 명록촌(鳴綠村)이라는 곳에서 살고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오게나. 명록촌은 매우 그윽하고 아담한 곳이라서 내가 돌아가면 거처를 그곳으로 옮기려고 하네.」

건숙이 작별인사를 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백리해는 우나라에 머물며 우공을 모시게 되었다. 곧이어 우공이 진나라의 대부 순식의 가도멸괵(假道滅虢) 계략에 걸려 나라를 진나라에 빼앗기고 포로가 되었다. 백리해가 우나라에 출사한 지10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우공의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한 백리해가 말했다.

「우공을 섬긴 나의 행위는 지혜롭지 못했다고 하겠지만 그렇다고 우공을 떠나 불충한 사람까지는 될 수 없다.」

그리고 얼마 후에 당진국은 백리해를 섬진의 목공에게 시집가는 백희의 몸종으로 딸려 보냈다. 백리해가 자기의 신세를 한탄했다.

「나는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재주를 가슴에 품고 있지만 밝은 주인을 아직 만나지 못하여 그 뜻을 펼쳐 보기도 전에 몸이 이미 늙어 종복과 비첩과 같은 몸종의 신세가 되어 버려 그 욕됨을 참고 견디기 어렵구나!」

백리해가 행렬을 따라가다가 중도에서 달아나 송나라의 명록촌에 있는 건숙을 찾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도중에 길이 막혀 할 수 없이 남쪽의 초나라 땅으로 우회하여 송나라로 들어가려고 했다. 초나라 완성(宛城)㉔땅에 당도한 백리해는 마침 사냥 나온 야인에게 세작으로 의심을 받아 붙잡혀서 포승줄에 묶이고 말았다. 백리해가 야인에게 자기의 사정을 호소했다.

「나는 우나라 대부 백리해라는 사람인데 나라가 망해 난을 피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소.」

야인이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잘 할 수 있소?」

「소를 잘 기를 수 있소.」

야인이 백리해의 포승을 풀어 주고 소를 기르게 했다. 백리해가 기르는 소가 날이 갈수록 살이 쪄 가자 야인이 크게 기뻐했다. 그때 초나라 왕이 소문을 듣고 백리해를 불러 물었다.

「소를 잘 기르는데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는가?」

「여물을 줄 때와 힘을 쓸 때를 알아야 하며 소를 기르는 사람의 마음을 소의 마음과 일치시키면 소를 잘 기를 수 있습니다.」

「그대의 말에 일리가 있도다! 그대의 방법이 어찌 소를 기르는 일에만 소용이 닿겠느냐? 말을 기르는데도 소용이 있음이라!」

초왕이 즉시 백리해를 어인(圉人)으로 임명하여 남해(南海)㉕로보내 말을 기르게 했다.

5. 사우배상(飼牛拜相)

- 소몰이 대열에서 빠져나와 재상이 되다. -

한편 섬진의 목공이 당진에서 백희에게 딸려 보낸 몸종 중에 백리해라는 이름을 보았으나 사람이 없어져 괴이하게 생각하고 어찌된 일인지 몰라 공자집에게 물었다. 공자집이 말했다.

「백리해라는 사람은 옛날 우공의 신하였는데 우리나라에 오던 중에 달아나 버렸습니다.」

목공이 당진 출신인 공손지를 불러 백리해에 관해 물었다.

「자상(子桑)은 당진에 있을 때 백리해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 알고 있는 바가 있습니까? 백리해는 어떤 사람입니까?」

「백리해는 현인입니다. 우공이 어리석은 사람이라 간해도 소용이 없음을 알고 간하지 않은 일은 그가 지혜로운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우공이 당진에 항복하였음에도 당진의 군주를 섬기지 않은 행위는 그가 의로운 사람임을 말합니다. 또한 우공을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곁에서 모셨던 일은 그가 충성스러운 사람임을 말합니다. 세상을 경영할 지략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대현(大賢)이나 아직까지 이름을 떨치지 못한 이유는 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과인이 어떻게 하면 백리해를 얻을 수 있겠소?」

「제가 듣기에 백리해의 처자가 유랑생활 끝에 초나라에 갔다고 했는데 아마도 백리해는 처자를 찾아 초나라로 도망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사람을 초나라에 보내 탐문해 보십시오.」

목공이 즉시 사람을 초나라에 보내 백리해의 소식을 알아보게 했다. 얼마 후에 초나라에 간 사람이 돌아와서 목공에게 보고했다.

「백리해는 남해의 바닷가에서 어인이라는 하급의 관직을 받아 초왕을 위해 말을 기르고 있습니다.」

목공이 공손지를 다시 불러 물었다.

「내가 많은 포목을 초나라에 주어 백리해를 데려오려고 하는데 초왕이 과연 백리해를 보내 주겠습니까?」

「그렇게 하시면 백리해는 오지 못할 것입니다.」

「어째서 입니까?」

「초나라가 백리해에게 어인이라는 하급의 관직을 주어 말을 기르게 한 처사는 백리해가 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군께서 많은 포목을 보내 백리해를 구하면 초나라는 백리해가 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초나라는 틀림없이 백리해를 우리나라에 보내지 않고 중용할 것입니다. 만약 주군께서 몸종의 신분으로 도망친 죄를 묻겠다고 하면서 몸종의 몸값에 해당하는 속전(贖錢)을 주고 데려오십시오. 그것은 옛날 제나라의 포숙아가 관이오를 노나라에서 탈출시킬 때 사용한 방법입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목공은 즉시 사자를 뽑아 숫양 가죽 다섯 장을 주어 초나라로 보내 초왕에게 고하게 했다.

「우리나라의 천한 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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