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宋襄之仁(송양지인), 乘醉遣夫(승취견부) > 2부3 백리해

제34회. 宋襄之仁(송양지인), 乘醉遣夫(승취견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조회 3,892회 작성일 07-02-06 23:09

본문

제34회

宋襄之仁 乘醉遣夫(송양지인 승취견부)

헛된 인의를 찾다가 홍수의 싸움에서 패전한 송양공과

부군에게 술을 먹여 세상으로 내보낸 제강

1. 宋襄被擒(송양피금)

- 헛된 꿈을 쫓다가 초나라에게 사로잡힌 송양공 -

초성왕이 수레를 타고 회맹에 참석할 때 데리고 온 많은 사람들은 사실은 모두가 초나라 군사들 중에서 선발한 정예한 병사들이었다. 겉 옷 안에 모두 갑옷을 껴입고 몰래 무기를 감추고 따라온 사람들은 성득신과 투발이 선발하여 금번 회맹에 대비하여 맹훈련을 시킨 병사들이라 용맹하기가 그지없었다. 또 위여신(蔿呂臣)과 투반(鬪班) 두 장군에게는 대군을 거느리고 그 뒤를 따르게 하여 후에 큰 싸움이 벌어질 경우를 대비했다. 그런 사실을 전연 알지 못한 송양공은 속수무책으로 초나라의 함정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무모한 사람이 꾀가 많은 사람을 만나 몸을 빼려고 해도 몸을 뺄 수가 없는 형국’이었다. 송양공을 붙잡은 초성왕는 군사들에게 명해 송나라의 공관에 비축되어 있던 물품들을 꺼내 잔치를 크게 벌려 마음껏 즐겼다. 회맹장의 창고 안에 가득 쌓여 있던 송나라의 양식과 물품들은 모두 노략질당해 모두가 초나라의 차지가 되었다. 진(陳), 채(蔡), 정(鄭), 허(許), 조(曹) 다섯 나라의 제후들은 송구스러운 마음에 벌벌 떨고 아무도 감히 앞에 나서서 양공을 위해서 한마디 거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송양공을 붙잡아 공관으로 장소를 옮긴 초성왕은 여러 제후들을 불렀다. 여러 제후들 앞에서 초왕은 송양공을 세워 놓고 그의 여섯 가지 죄목을 열거하며 꾸짖었다.

「너는 상 중인 제나라를 쳐들어가 네 멋대로 군주를 폐하고 또 새로 세웠으니 그 죄가 하나이고 등자(滕子)가 회맹의 장소에 시간을 조금 어겼다고 즉시 잡아다가 욕을 보였으니 그 죄가 둘이라, 사람을 죽여서 제물로 삼아 요사스러운 귀신에게 바치니 세 번째 죄이며, 조나라가 주인의 책무를 행하지 않은 행위는 매우 사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는 강한 세력만을 믿고 조나라를 포위하여 공격하였으니 네 번째 죄이며, 망국의 자손 주제에 입은 은혜를 망각한 나머지 스스로의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멋대로 행동하여 하늘이 계시를 내렸으나 여전히 방백(方伯)에만 뜻을 두고 있었으니 그 죄가 다섯이라, 또한 과인에게 제후들을 소집시키라고 부탁을 해 놓고 자존망대하여 전혀 겸양하는 예의를 갖추지 않았으니 그 죄가 여섯이다. 하늘이 너의 혼백을 빼앗아 너로 하여금 단기(單騎)로 회맹장에 오게 하여 나에게 사로잡히게 했다. 내가 금일 철갑으로 무장한 병거 천 승과 싸움터에서 뼈가 굵은 장군 천여 명을 이끌고 수양성으로 달려가 그 성을 뽑아 제(齊)와 증(鄫) 두 나라를 위해 원수를 갚아 주리라! 여러 제후 분들께서 잠시 어가에 머물러 계시는 동안 제가 수양성을 취한 후에 곧 돌아와서 제후분들과 같이 열흘 동안 밤낮으로 술을 마신 후에 헤어지기로 하겠습니다.」

다섯 나라의 제후들은 초성왕의 말에 그저‘예, 예’로 대답할 뿐이었다. 양공이 입이 있다 한들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양공의 모습은 마치 나무로 깎아 놓은 목상이나 흙으로 빚은 인형과 같았다. 단지 눈에는 두 줄기의 눈물만을 흘러내릴 뿐이었다. 얼마 후에 한 장소에 모인 초나라의 군세는 보니 부르기는 천 승이라고는 했지만 실은 오백 승이었다. 성왕이 군사들에게 논공행상을 한 후에 진채를 걷고 모두 일어나 송양공을 앞세우고 송나라의 도성인 수양성을 향하여 행군을 시작했다. 열국의 제후들은 초왕의 명령대로 모두 우(盂) 땅에 머물러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누구도 감히 자기 나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후세의 사관이 양공의 실책을 비난한 시를 지었다.

까닭 없이 초나라에 아첨하더니 재앙만 불러들였구나!

누가 수양성에 군사를 불러들여 전쟁터로 만들었는가!

옛날 제환공은 제후들을 아홉 번이나 모이게 하면서

한 번도 초나라를 중원에 발을 들여놓게 하지 않았다.

無端媚楚反遭殃(무단미초반주앙)

引得誰睢做戰場(인득수수주전장)

昔日齊桓曾九合(석일제환증구합)

何嘗容楚近封疆(하상용초근봉강)


2. 將欲取之 加先貶之(욕장취지 가선폄지)

- 물건을 취하고자 할 때는 먼저 흠을 잡아라! -

한편 공자 목이가 우(盂) 땅의 회맹 장소에서 간신히 도망쳐서 송나라로 돌아와서 사마 공손고에게 양공이 초나라에게 사로잡힌 일을 이야기하면서 말했다.

「초나라 군사가 조석지간에 쳐들어올 것이오. 조속히 병사들을 점검하여 성루에 올려 보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오!」

공손고가 듣고 말했다.

「나라에는 하루라도 군주가 없으면 안 됩니다. 공자께서 잠시 섭정의 자리에 오르시어 상벌을 분명히 행하신다면 백성들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목이가 공손고의 귀에 대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초왕은 우리 주군을 인질로 삼아 우리나라를 점령하려고 시도할 것이오. 우리가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여 초왕이 반드시 우리의 주군을 석방하여 돌려보내게 만들어야 합니다.」

「공자님의 말이 매우 합당합니다.」

사마 공손고가 즉시 송나라의 여러 신하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우리의 주군께서는 초왕에게 사로잡혀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소. 우리들은 마땅히 공자 목이님을 추대하여 나라의 사직을 잇고자 합니다.」

송나라의 신료들은 목이가 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공손고의 말을 흔쾌히 따랐다. 태묘에 고하고 송공의 자리에 오른 공자 목이는 삼군에게 명을 내려 군기를 엄중히 하고 수양성의 여러 성문을 철통과 같이 지키게 했다. 목이가 수양성을 지키기 위한 방어태세를 갖추자마자 초왕이 대군을 거느리고 수양성 밖에 당도하여 영채를 세웠다. 초왕이 장군 투발을 시켜 수양성 밑으로 달려가 성루를 향해 큰소리로 외쳐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그대들의 군주는 이미 우리의 포로가 되어 이곳에 있는데 죽이고 살리는 일은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 속히 항복하여 성을 바쳐 그대들 군주의 생명을 보전토록 하라!」

수양성 성루에서 군사들을 지휘하고 있던 공손고가 초나라 진영을 향해 외쳐 답했다.

「우리 송나라의 선조들 영령의 보살핌을 받아 우리는 이미 군주를 새로 모셨다. 구군을 죽이고 살리는 일은 너희들에게 달렸으나 우리들의 항복은 결코 받아 내지 못하리라!」

투발이 다시 외쳤다.

「너희들의 군주가 여기 이렇게 살아 있는데 어찌하여 다시 새로운 군주를 세웠단 말이냐?」

공손고가 대답했다.

「군주를 세우는 일은 사직을 보존하기 위해서인데 사직을 지키는 군주가 없는데 어찌 새로이 군주를 세울 수 없단 말이냐?」

「우리가 만약에 너희들의 군주를 돌려보내 주면 무엇으로 보답을 하겠는가?」

「구군은 적에게 사로잡히어 우리 송나라의 사직에 욕을 보였다. 비록 그가 우리나라에 다시 돌아오더라도 군주의 자리에는 앉을 수 없다. 돌려보내고 안 돌려보내고는 너희들 마음에 달렸으니 우리에게 물어 보지 말라! 그대들이 만약 우리와 한번 결전을 하고 싶다면 우리의 성중에는 아직 상하지 않은 갑사와 병거가 상존하니 정녕 죽기를 각오하고 한번 싸워 보리라!」

공손고의 결의가 매우 비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투발이 돌아와 초왕에게 실상을 그대로 보고했다. 초왕이 대노하여 즉시 성을 공격하라는 명을 내렸다. 성을 공격하는 초나라의 군사들 머리 위로 화살과 돌이 마치 구름처럼 쏟아져 내려왔다. 초나라 군사들은 3일 밤낮을 계속해서 수양성을 공격했지만 사상자만 적지 않게 내고 성을 함락시킬 수가 없었다. 초성왕이 화가 나서 말했다.

「송나라가 자기들의 군주를 염두에 두지 않고 저항하기를 이렇듯 완강하게 하니 송군을 죽여야 되지 않겠는가?」

성득신이 앞으로 나오며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대왕께서 증자를 죽인 죄를 물어 송군을 붙잡으셨습니다. 이제 다시 송군을 죽인다면 이제는 그 일이 우리의 허물이 됩니다. 송공을 죽이는 일은 일개 필부를 죽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송군을 죽이고도 송나라를 얻을 수 없다면 이것은 도리어 송나라 백성들로부터 원한만을 사게 되는 일입니다. 차라리 석방하여 돌려보내 주느니만 못 합니다.」

「송나라를 공격하여 아직 떨어뜨리지 못했는데 무슨 명목으로 송군을 풀어 준단 말인가?」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이번의 우 땅의 회맹에 참석하지 않는 나라는 제(齊)와 노(魯) 두 나라입니다. 제나라와는 우리가 두 번에 걸쳐 이미 통호를 했음으로 언급할 필요가 없으나 노나라는 예의지국이며 옛날에 제나라가 패권을 도모할 때 도운 적이 있으나 우리 초나라는 남쪽의 야만국으로 치부하여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송나라에서 탈취한 재물과 포로들을 노나라에 주겠다고 하면서 노후를 송나라의 땅인 박(亳)①땅으로 청해 서로 만나자고 하십시오. 연후에 송나라의 포로들을 노나라에 보내면 노후는 반드시 우리를 두려워하여 회견 장소에 나타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노와 송 두 나라는 규구(葵邱)에서 동맹을 맺은 우호의 나라일 뿐 아니라 노후는 매우 현명한 군주라서 반드시 송나라를 위해서 우리에게 인정을 베풀라고 청할 것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가 노후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이 되어 우리는 일거에 노와 송 두 나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초성왕이 손으로 박수를 치며 큰 소리로 웃으면서 말했다.

「진실로 자옥의 식견은 뛰어나도다!」

초나라 군사들을 송나라 도성 수양성에서 철수하여 박 땅으로 행군하여 진채를 세우게 한 초성왕은 투의신(鬪宜申)을 사자로 삼아 송나라에서 탈취한 수많은 재물과 포로들을 수 백 대의 수레에 싣도록 한 후에 노나라의 곡부로 가서 편지와 함께 노후에게 바치게 했다.

『송공이 오만무례하여 과인이 이미 박 땅의 깊은 곳에 유폐시켜 놓았습니다. 우리가 망령되게 공을 논할 수 없어 삼가 상국에 보고를 올리니 수고스럽겠지만 군후께서 친히 왕림하시어 송군의 죄를 판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희공은 초왕의 편지를 읽고 크게 놀랐다. 그것은 마치 ‘토끼가 죽으면 여우가 슬퍼한다’는 격으로 같은 처지의 나라로써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노희공은 초나라가 바친 서신의 내용은 매우 과장되어 노나라를 추켜세우고 있었으나 실은 노나라를 위협하는 내용임을 알았다. 노나라의 힘은 약하고 초나라는 강하니 만약 박 땅에 가지 않아서 초나라가 그들의 군사를 노나라로 향하게 하여 토벌하러 오게 된다면 그때 가서 후회한들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즉시 초나라의 사자 투의신을 후하게 대접한 노희공은 초왕의 명을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이윽고 노희공이 대부 중수(仲遂)를 수행원으로 삼아 어가를 몰아 초왕을 만나기 위해 박 땅으로 길을 떠났다. 노후의 일행이 박 땅에 당도하자 먼저 안면이 있었던 투의신의 소개로 성득신을 찾아가 인사를 하고 초왕을 만나는 일을 부탁했다. 노후는 단지 성득신의 처분만을 따르겠다고 했다. 성득신이 노희공을 초왕 앞으로 인도했다. 노후와 초왕은 서로가 그 동안 앙모하여 왔다는 치하의 말과 함께 서로간에 상견례를 행했다. 그때 우 땅의 회맹에 참석했던 진(陳), 채(蔡), 정(鄭), 허(許), 조(曹) 등의 다섯 나라의 군주들도 초왕을 따라 박 땅으로 와서 노회공과 상견하여 모두가 한곳에 모이게 되었다. 한 자리에 모이게 된 여섯 나라의 군주들은 현안문제를 서로 상의하게 되었다. 정문공이 먼저 입을 열어 초왕을 맹주로 추대하자고 하자 여러 제후들은 반대의 말을 하고 싶었으나 감히 말하지 못하고 우물거리고 눈치만 살폈다. 노희공이 일어나 분연히 말했다.

「맹주란 반드시 인과 의를 세상에 펼쳐야 사람들이 즐거이 따르게 됩니다. 오늘 초왕이 많은 수의 병사를 믿고 상공의 작위에 있는 송공을 붙잡아 위엄을 보였으나 덕을 베풀지 않아 사람들이 의심하여 두렵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들과 송나라는 모두 동맹을 맺은 우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앉아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하면서 구하지 않고 단지 초나라를 받들 줄만 안다면 천하의 호걸들에게 비웃음을 받을까 심히 걱정됩니다.」

여러 제후들이 듣고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노후의 말씀이 심히 지당하십니다!」

중수가 노후의 말을 성득신에게 비밀리에 고하자 성득신은 다시 초왕에게 전했다. 초왕이 말했다.

「제후들이 맹주가 갖추어야 할 의를 문제 삼아 나를 비난했다면 내가 어찌 고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성왕은 즉시 좌우에게 명하여 박 땅의 넓은 들판에 회맹단을 짓게 하고 날짜를12월 계축일(癸丑日)로 잡아 천지신명을 향하여 삽혈의 의식을 행하고 동시에 송군의 죄를 용서하기로 했다.

회맹을 행하기로 한 날 하루 전에 송공을 석방하여 여러 제후들과 상견하게 했다. 송양공은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한편으로 화가 나기도 하여 마음속에는 즐거울 것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겉으로는 오히려 여러 제후들에게 감사의 말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윽고 회맹일이 되자 정문공이 여러 제후들을 이끌고 나와서 초성왕에게 단에 올라 맹회를 주관하도록 간청했다. 초성왕이 희생으로 잡은 소머리의 귀를 잡자 송양공과 노희공의 뒤를 이어서 여러 제후들이 작위의 순서에 따라 차례로 소의 피를 입술에 발라 삽혈의 의식을 행했다. 송양공의 가슴에는 열화가 끓어 올라왔으나 감히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회맹을 끝낸 각국의 제후들은 모두 흩어져 자기들 나라로 돌아갔다.

마침내 초나라 군영에서 석방된 송양공은 공자 목이가 귀국하여 이미 군위에 올랐다는 소문을 듣고 위나라로 망명하여 잠시 몸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공자 목이가 보낸 사자가 이미 박 땅에 당도하여 그가 쓴 편지를 양공에게 전했다. 목이의 편지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신이 지금까지 섭정의 자리에 오른 목적은 주군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나라는 주군의 것인 데 어찌하여 돌아오지 않으시려고 하십니까?』

그리고 이어서 어가가 도착하더니 양공을 태우고는 수양성으로 돌아갔다. 수양성에 입성한 양공이 보위에 앉자 공자 목이는 신하의 대열로 다시 돌아가 양공을 배알했다. 호증(胡曾) 선생이 논하기를 양공이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공자 목이의 계책 덕분이었다고 했다. 겉으로는 전혀 구군을 위하는 마음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오해하게 만들어 양공이 풀려날 수 있었다고 했다. 만약에 송나라가 양공을 구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더라면 초나라는 양공을 귀한 사람으로 취급하여 그렇게 쉽게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일을 두고 공자 목이를 찬양하는 시를 지었다.

황금이 어찌하여 돌로 바뀌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는가?

신군이 능히 구군을 속박에서 풀어 나게 할 수 있었으니

구군이 돌아오자 신군은 옛날처럼 신하의 자리로 돌아갔다.

천고에 빛나는 어진 이름 목이를 노래하노라!

金注何如瓦注奇(금주하여와주기)

新君能解舊君圍(신군능해구군위)

爲君守位仍推位(위군수위냉추위)

千古賢名誦目夷(천구현명송목이)

호증 선생이 다시 시를 지어 여섯 나라의 제후가 초성왕을 맹주로 추대하여 초나라에 아부하고 온정을 구한 행위는 중원의 주도권을 초나라에 바친 격이 되어 이후로 초나라가 중원의 여러 제후국들을 깔보게 되었다고 한탄했다.

원래 토끼가 죽으면 여우가 슬퍼한다고 했다.

잡힌 사람은 누구이며 잡은 사람은 누구인가?

중원 나라가 오랑캐에 아첨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니

송군을 석방한 공로가 적지 않다고 자랑하는가!

從來免死自狐悲(종래토사자호비)

被劫何人劫是誰(피겁하인겁시수)

用夏媚夷全不恥(용하미이전부치)

還誇釋宋得便宜(환과석송득편의)


3. 송양지인(宋襄之仁)

- 헛된 인의로 수많은 군졸들을 잃고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다. -

백업에 뜻을 두었다가 초나라에게 사로잡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또한 큰 치욕을 당한 송양공은 초성왕을 원망하는 마음이 골수에 사무치게 되었으나 단지 힘이 닿지 못하여 원한을 갚을 길이 없었다. 또한 정백이 앞장서서 초왕을 맹주로 추대한 행위를 괘씸하게 생각한 양공은 언젠가는 한번 그 죄를 물으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주양왕 14년, 기원전 637년 봄 3월에 정문공이 초나라에 조현을 다녀온 일을 송양공이 듣고 대노했다. 즉시 송나라의 모든 군사를 이끌고 정나라를 친히 정벌하려고 하면서 공자 목이에게는 세자 왕신(王臣)을 도와 본국을 지키도록 당부했다. 목이가 듣고 간하며 말했다.

「초와 정은 서로 친하여 우리가 만약 정나라를 친다면 초나라는 반드시 군사를 보내 정나라를 구하려고 할 것입니다. 주군께서 이번에 출정하여 정과 초의 연합군과 싸우게 되면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차라리 국내에서 실력을 기르면서 때를 기다리다가 기회를 봐서 정나라를 정벌하면 어떻겠습니까?」

대사마 공손고도 목이에 동조하여 출정을 만류하자 양공이 화를 내며 말했다.

「사마가 같이 가기를 원하지 않으니 과인 혼자서라도 가서 정나라를 정벌하여야겠다!」

공손고가 감히 다시 간하지 못했다. 양공이 즉시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행군을 시작했다. 송양공은 스스로 대장이 되어 중군을 이끌고 공손고를 부장으로 하고 대부 락복이(樂僕伊), 화수노(華秀老), 공자탕(公子蕩), 상자수(向訾守) 등이 모두 그 뒤를 따랐다.

한편 송나라에 있던 정나라의 첩자가 달려와 송나라가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군사를 일으켰다고 정문공에게 고했다. 정문공은 사자를 초나라에 보내 구원을 청했다. 정나라의 구원 요청을 받은 초성왕이 말했다.

「정나라가 우리를 마치 어버이 대하듯이 받들고 있다. 마땅히 만사를 제쳐두고 구해야 하겠다.」

성득신이 곁에 있다가 초성왕에게 진언을 했다.

「정나라를 구하려고 한다면 직접 송나라를 공격해야 합니다.」

「어째서 그런가?」

「송공이 예전에 우리에게 사로 잡혀 송나라의 사대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다시 송공이 스스로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대병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은 송나라의 국내가 텅텅 비어 있음을 말합니다. 나라 안이 비어 있는 틈을 타서 쳐들어가면 송나라는 필시 정나라에 출병중인 군사를 물리쳐 자기 나라를 구하려고 달려와야만 합니다. 이는 싸우기도 전에 그 승패를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자기 나라를 구하기 위해 수백 리를 달려온 송군은 오랜 행군 끝에 피로에 지치게 됩니다. 이것은 편안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군사가 피로에 지친 군사를 맞이해서 싸우는 이치인데 어찌 이길 수 없겠습니까?」

초왕은 성득신을 대장으로 투발을 부장으로 삼아 군사를 일으켜 송나라를 정벌하도록 했다.

한편 정나라 도성밖에 진을 치고 서로 대치 중에 있으면서 전기를 엿보고 있던 송양공은 초나라의 군사들이 송나라 본국으로 진격해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황한 송양공은 군사를 거두어 밤낮으로 행군한 끝에 홍수(泓水)②의 남쪽 강변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그곳에서 초나라 군사를 막으려고 했다. 뒤이어 성득신이 이끄는 초군도 홍수의 북쪽 강변에 도착하여 진채를 세운 후에 송나라 진영에 사람을 보내 전서(戰書)를 띄웠다. 전서를 받아본 사마 공손고가 양공에게 말했다.

「초나라의 군사들이 여기까지 달려 온 이유는 정나라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정나라를 다시는 쳐들어가지 않겠다고 초나라에 사죄한다면 초나라 군사들은 틀림없이 물러갈 것입니다. 이쯤에서 그만두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옛날에 제환공은 군사를 이끌고서 먼 길을 행군한 끝에서야 초나라를 정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초나라가 일부러 군사를 이끌고 먼 길을 행군하여 이곳까지 와서 우리에게 싸움을 걸고 있다. 어찌 환공의 백업을 이을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겠는가?」

「신은 듣건대‘한번 망한 왕조는 두 번 일어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늘이 우리 선조들이 세운 상나라를 버린지 오랜데 주군께서는 다시 일으키시려고 하십니다. 어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더구나 우리의 방어 무기는 초군의 그것보다 견고하지 못하고 군사들 역시 초나라 병사들보다 정예하지 못합니다. 군사들의 체력도 초나라 군사들에게 떨어지며 또한 송나라 사람들은 초나라 군사를 보기를 마치 사갈(蛇蝎)을 보듯이 무서워하고 있는데 주군께서는 무엇을 믿고 초나라와 싸워 승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초군의 수효가 많다고는 하나 그들의 군대는 인의(仁義)가 없다. 송나라의 군사는 그 수효가 비록 적다고는 하나 인의의 정신으로 뭉쳐진 군사들이다. 옛날에 주무왕이목야(牧野)③의 싸움에서 호분(虎賁)④3천 명으로 은나라의 억만 군사와 싸워 이긴 일은 오로지 무왕의 군사들이 인의의 군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무도한 신하를 피하여 도망치는 유덕한 군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과인으로써는 비록 죽을지언정 그렇게는 할 수 없도다!」

양공이 즉시 전서의 말미에 서명을 하여11월 삭일에 홍수 북쪽의 땅에서 회전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군사들에게 명하여 큰 기를 만들어 인의라는 두 글자를 쓴 후에 로거에 매달게 했다. 공손고가 속으로 비통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조용히 락복이를 불러 불만을 토로했다.

「전쟁이란 서로 죽이고 죽는 살벌한 싸움인데 가당찮은 인의만을 부르짖고 있으니 나는 주군이 말하는 인의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겠소! 하늘이 우리 주군의 혼백을 빼앗아 가버려 우리는 정말로 위급한 상황에 빠진 것 같소! 우리들은 필히 경계하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전투에 임하여 나라를 잃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하오.」

이윽고 회전을 하기로 한 날이 되자 공손고가 아직 닭이 울기도 전에 기상을 하여 양공을 배알하고 진용을 엄하게 단속한 후에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한편 성득신이 이끄는 초나라 군사들은 홍수의 북쪽 강변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부장 투발이 와서 의견을 말했다.

「송나라 군사들이 포진을 끝내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전에 강을 건너려고 한다면 아침 새벽 오고(五鼓)⑤ 때 해야 합니다.」

성득신이 웃으면서 말했다.

「송공은 세상물정에 어둡고 병사의 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위인입니다. 내가 강을 이른 아침에 건넌다면 싸움은 일찍 벌어지고 천천히 건넌다면 싸움은 늦게 벌어질 것입니다.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드디어 날이 밝아 오자 초나라의 병거와 갑병들이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강은 건너기 시작하는 초나라의 군사들의 모습을 본 공손고가 양공에게 청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우리가 보는 앞에서 유유히 강을 건너고 있는 이유는 초나라 군사들이 우리 송나라를 깔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나라 군사들이 강을 절반쯤 건넌 지금이야말로 공격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송나라 전군으로서 초나라의 군사들의 절반을 꺾을 수 있습니다. 만약 초군이 강을 다 건넌다면 초나라 군사들의 수가 우리의 두 배가 넘어 대적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송양공이 손가락으로 인의가 써진 큰 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대는 저 기에 쓰인 인의라는 두 글자가 보이지 않는가? 과인은 진을 펼쳐 당당하게 싸워서 이기려고 하는데 어찌 강을 다 건너오지도 못한 적군을 공격할 수 있단 말인가?」

공손고가 양공의 답답한 말을 듣고 괴로운 마음에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초나라 병사들은 모두 무사히 강을 건너게 되었다. 초군 대장 성득신이 긴 채찍을 손에 들고 군사들을 지휘하여 포진시키고 있는 모습이 마치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그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는 듯이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옥으로 치장한 모자를 머리에 쓰고 역시 옥으로 장식한 투구 끈을 맨 성득신은 화려한 수가 놓여진 비단 전포 위에 부드러운 천으로 겹겹이 누벼 만든 갑옷을 껴입고 허리에는 조각을 하여 아름답게 장식한 조궁(雕弓)을 차고 있었다.공손고가 다시 양공에게 달려와 말했다.

「초나라 병사들이 금방 포진을 시작한 관계로 아직 대오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급히 북을 울려 우리의 군사들을 앞으로 돌진시키면 초나라 진영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

양공이 공손고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욕을 했다.

「정말로 답답한 놈이로다! 너는 일시적인 승리만을 탐하여 만세에 빛날 인의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놈이로구나! 과인의 정정당당한 군사들로 하여금 어찌 대오도 갖추지 못한 적군을 향하여 북소리를 울려 공격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이냐?」

공손고가 가슴속에서 울어 나는 분노를 삼키며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에 초나라의 군사들은 전투 대오를 갖추게 되었다. 초나라 진영은 군사들은 물론이고 병거를 끄는 말들도 모두 씩씩하기 짝이 없었다. 초나라의 보졸들과 병거들이 넓은 들판을 가득 메우자 송나라 병사들은 얼굴에 두려운 기색을 띄웠다. 양공이 북소리를 울려 진격하라고 명령을 내리자 초나라 진영에서도 역시 북소리가 났다. 송양공이 스스로 긴 창을 손에 들고 공자탕과 상자수(向訾守)의 호위를 받으며 궁궐의 문을 지키던 위병만으로 구성된 군사들을 이끌고 병거를 휘몰아 초나라 진영을 향하여 돌진했다. 성득신은 송나라의 군사들의 흉맹한 기세를 보고 조용히 전령을 보내 명령을 하달하여 초나라 진채의 문을 열어 양공이 거느린 일대의 병거와 보졸들만을 안으로 유인하게 했다. 공손고가 뒤를 바짝 쫓아 와서 양공을 보호하려고 하였으나 양공은 이미 초나라의 진영 안으로 쇄도해 들어가고 난 후였다. 초나라 영문 앞에 한 사람의 대장이 버티고 서 있다가 공손고를 보자 소리쳤다.

「자! 빨리 이쪽으로 와서 본격적으로 한번 싸워 보자!」

그 장수를 자세히 보니 초나라의 부장 투발이었다. 공손고가 듣고 분기탱천하여 극을 손에 들고 투발을 찌르려고 달려들었다. 투발이 칼을 허리에서 빼 들고 대적했다. 두 사람이 서로 어우러져 칼과 창을 주고받는데 미처 20여 합도 겨루기 전에 송나라 장수 락복이가 한 떼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싸움을 거들었다. 투발은 얼굴에 황망한 기색을 띄웠다. 마침 초나라 진중에서 한 사람의 장군이 달려나와 싸움에 밀리고 있던 투발을 도왔다. 그 장수는 초나라의 상장 위여신(蔿呂臣)이었다. 위여신은 락복이에게 달려들어 어우러져 싸웠다. 공손고가 양쪽 진영이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주위를 한 번 살펴보고 나서 극을 땅에 버리더니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 들고는 초나라 영채를 향하여 돌입했다. 투발이 보고 그 역시 손에 칼을 빼들고 공손고의 뒤를 쫓았다. 이에 송나라의 장수 화수노가 달려와서는 투발의 앞을 가로막았다. 두 사람이 양쪽 진영 사이에서 어우러져 혼전을 벌렸다. 공손고가 초나라 진영 안으로 들어가서는 좌충우돌하던 끝에 동쪽 모퉁이에서 철갑으로 무장한 갑사들이 마치 숲을 이룬 듯이 무엇인가를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공손고는 타고 있던 병거를 황급히 몰아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때 마침 송나라 장군 상자수가 유혈이 낭자한 얼굴로 급히 공손고를 불렀다.

「사마는 속히 와서 주군을 구하시오!」

공손고는 상자수를 쫓아 겹겹이 둘러쳐진 포위망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위병들로 구성된 많은 송나라 군사들은 하나 같이 몸에 중상을 입고 있었으나 여전히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뒤로 물러나지 않고 있었다. 양공은 평소에 밑에 사람들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에 위병들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초나라 군사들은 영용한 공손고의 기세에 눌려 서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공손고가 앞으로 나가 쳐다보니 공자탕도 중상을 입고 인의라고 쓴 큰 기를 매단 병거 아래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는 이미 인의대기는 초나라 군사들이 병거에서 떼어내 탈취해 간 후였다. 양공도 몸의 여러 곳을 창에 찔리고 더욱이 오른쪽 넓적다리에 화살을 맞아 무릎의 힘줄이 끊어져 일어 설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공자탕은 공손고가 자기 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사마는 빨리 와서 주군을 부축하여 데려가시오. 나는 이곳에서 목숨이 다한 것 같소!」

공자탕은 말을 마치고 숨을 거뒀다. 공손고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공손고가 양공을 부축하여 자신의 병거에 옮겨 싣고는 자기 몸으로 양공을 가려 보호하며 용기백배하여 포위망을 뚫으려고 시도했다. 상자수가 후위를 맡고 위병들은 병거의 양쪽을 호위하면서 한편으로는 싸우고 또 한편으로는 도망쳤다. 공손고의 일행이 초나라 진영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는 뒤를 따르던 위병들은 한 명도 같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송나라의 병거와 보졸들은 십중팔구가 꺾였다. 호랑이 굴에서 탈출해 나오는 송양공을 본 락복이와 화수는 지금까지 싸웠던 초나라 장수들을 버리고 각자 등을 돌려 송군 진영으로 물러갔다. 성득신은 승세를 타고 송군의 뒤를 쫓자 송군은 크게 무너져 달아났다. 송나라 군사들이 버리고 간 치중과 무기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자신의 병거에 양공을 태운 공손고는 죽을힘을 다하여 밤낮으로 전차를 몰아 도망쳐 수양성에 간신히 당도했다.

홍수의 싸움에서 대부분이 싸움 중에 죽은 송나라 군사들의 부모 처자가 모두 조문밖에 모여서 양공이 사마의 말을 듣지 않아서 싸움에 지게되었다고 원망하는 말을 외쳤다. 양공이 백성들의 말을 전해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군자는 부상당한 사람을 다시 공격하지 않으며, 반백의 나이 먹은 사람은 포로로 하지 않는다.’⑥라고 했는데 과인이 인의로써 군사를 일으켰는데 어떻게 하여 남의 위태로움을 이용하여 적을 괴롭힐 수 있었겠느냐?」

그 소리를 전해들은 송나라의 온 백성들은 조소하고 비웃었다. 송양공이 헛된 인의를 행하려다 싸움에 져서 많은 군사를 죽게 만들었다는 뜻의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말의 전고(典故)는 홍수의 싸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송양공의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등증 두 나라는 엄하게 대하고 초에게는 오히려 관대하게 굴더니,

결국은 허벅지에 부상을 당한 끝에 헛된 이름을 얻었다.

송양공이 행한 일이 진실로 인의일 것 같으면

도척과 문왕이 어떻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不恤滕鄫恤楚兵(불휼등중휼초병)

寧甘傷股博虛名(녕감상고박허명)

宋襄若可称仁義(송양약가칭인의)

盜拓文王兩不明(도척문왕양불명)


4. 무례불몰(無禮不沒)

- 인륜의 예를 저버린 자는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게 되는 법이다. -

송군을 크게 무찌른 성득신의 초나라의 대군은 다시 홍수를 건너 개선가를 부르며 회군했다. 초군의 행렬이 송나라 경계를 벗어나자 척후의 임무를 띠고 앞서 나간 정탐병 돌아와 성득신에게 보고했다.

「대왕께서 친히 대군을 거느리시고 우리를 돕기 위해 이곳으로 오다가 가택(柯澤)이란 땅에 주둔하고 계십니다.」

성득신이 즉시 가택으로 달려가 초왕을 배알하고 승리의 첩보를 고했다. 초성왕이 성득신에게 말했다.

「내일 정백이 그의 부인을 대동하고 이곳에 방문하여 우리 군사들의 노고를 위문할 예정이다. 마땅히 우리가 붙잡은 포로와 적의 수급을 크게 진열하여 우리의 세력을 과시하라!」

원래 정문공의 부인 미(羋) 씨는 초성왕의 누이 동생이었다. 그래서 미씨 부인을 문미(文羋)라고 했다. 문미는 오라버니를 만나기 위해 사방에 휘장을 두른 부인이 타는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정문공의 뒤를 따라 가택의 땅에 당도하여 초왕을 만났다. 초왕이 포로와 전리품을 대대적으로 전시하여 초나라의 힘을 과시하자 정문공 부부가 칭하해 마지않았다. 정문공이 정나라에 싣고 온 황금과 비단을 크게 내어 초나라 군사들을 위문했다. 정문공이 초왕에게 다음날 연회에 참석해 주기를 간절히 청한 후에 정나라 도성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정문공이 친히 성곽 밖으로 초왕을 마중하여 정나라 도성 안으로 안내했다. 태묘 안에 연회장을 마련하고 초왕에게 구헌례(九獻禮)⑦를 올려 마치 천자 대하듯이 했다. 수백 가지 음식에 변두(籩豆)⑧및 육기(六器)⑨까지 내와 준비한 잔치가 지극히 사치하여 중원의 어떤 나라도 이렇게 크게 잔치를 벌여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문미는 두 딸을 소생으로 두었는데 큰딸을 백미(伯羋)라 했고 작은딸을 숙미(叔羋)라 했다. 두 딸 모두가 아직 출가하지 않아 궁중에 있었다. 문미가 두 딸을 데리고 나와서 외숙부인 초왕에게 인사를 드리게 하자 초왕이 크게 기뻐했다. 정문공이 자기부인과 딸들에게 술을 번갈아 가며 따르게 하여 초왕에게 바치게 하자 초왕은 오시(午時)에 시작하여 술시(戌時)가 되도록 술을 받아 마시게 되어 크게 취하게 되었다. 초왕이 문미에게 말했다.

「내가 동생의 지극한 정성을 생각하여 술을 따라 주는 대로 받아 마셔 이렇게 크게 취하게 되었다. 동생과 두 조카는 나를 내 숙소까지 바래다주면 어떠한가?」

「명대로 하겠습니다.」

정문공이 성밖으로 나가 초왕을 먼저 전송한 후 도성 안으로 들어갔으나 문미와 그 두 딸은 성왕의 어가에 같이 타고 초왕의 숙소가 있는 군영까지 따라 들어갔다. 원래 초왕은 처음 두 조카딸을 보고 그 미모에 혹해 있었다. 그날 밤에 자기의 침실로 끌고 와서 두 조카딸과 잠자리를 같이했다. 문미가 장막 안에서 안절부절하며 방황한 끝에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초왕의 위세에 겁을 먹고 감히 불만을 말하지 못했다. - 것은 외삼촌이 조카딸을 범하는 패륜으로 진실로 금수같은 짓이었다.- 다음날 초왕이 송나라와의 싸움에서 획득한 포로와 전리품의 반을 문미에게 하사하고 두 조카를 어가에 싣고 초나라에 돌아가서 후궁으로 삼았다. 정나라 대부 숙첨이 한탄했다.

「초왕은 아마 그 생을 곱게 마치지 못하리라! 우리 정나라가 그를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대했건만 그는 오히려 친조카를 범했으니 어찌 그 끝이 좋겠는가?」

제후들은 초왕의 무도함을 보고 그는 결코 패업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4. 승취견부(乘醉遣夫)

- 부군에게 술을 먹여 세상으로 내보낸 제강 -

한편 당진의 공자 중이는 주양왕8년 기원전 643년에 제나라로 가서 제환공의 보살핌을 받아 자리를 잡고 산지가 어언 7년이 되어 주양왕 14년 기원전 637년이 되었다. 환공이 비명에 죽고 여러 공자들이 서로 후계자 다툼을 한 결과 제나라는 대란이 일어난 우여곡절 끝에 효공이 환공의 뒤를 잇게 되었다. 효공은 그 선군인 환공이 이룩한 업적에 반하여 초나라에 붙어 송나라와 원수를 맺었다. 그 일로 인하여 제나라 사대부들 사이에 여론이 분분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원의 제후들과도 불목하게 되었다. 중이를 따르던 여러 사람들이 조용히 모여 자신들의 앞날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다가 조쇠가 말했다.

「우리들이 공자님을 모시고 제나라에 온 목적은 패주인 제후(齊侯)의 힘을 빌려 복국을 도모하고자 함이었소. 그런데 지금 그 뒤를 이은 제후는 패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렸고 또한 천하의 제후들도 모두 제나라에 등을 돌려버렸으니 이것은 공자님이 복국하는데 제나라는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하오. 차라리 다른 나라로 가서 별도의 좋은 계책을 강구하는 편이 어떻겠소?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합니까?」

이어서 여러 사람들이 중이를 만나서 그 일에 대해 상의하려고 했다. 그때 공자 중이는 제환공이 맺어준 제강에게 깊이 빠져 있어 밤낮으로 연회와 환락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여러 호걸들이 중이를 보기 위해 집밖에서 10여 일을 기다렸지만 도저히 만나 볼 수 없었다. 위주가 참다못해 화가 나서 소리쳤다.

「우리가 공자를 위하여 온갖 고난도 마다하고 그의 말고삐를 잡고 천하를 유랑한 끝에 제나라에 오게 되었는데 공자는 오히려 안락을 탐하고 그 뜻을 접은 결과 오늘로서 이미7년의 세월이 흘러갔소. 세월은 유수와 같은데 우리가 열흘을 기다려도 공자님의 코빼기도 볼 수가 없으니 어찌 우리가 대사를 이루려는 뜻을 펼 수가 있겠소?」

호언이 나서서 말했다.

「이곳은 우리가 모여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소가 못 되니 조용한 장소로 옮겨 상론하기로 합시다.」

호걸들은 모두가 임치성 동문으로 나가 몇 리를 걸어 땅이름이 상음(桑陰)이라는 곳에 당도했다. 한번 고개를 들어 멀리 쳐다보니 모두가 심은 지 오래된 뽕나무뿐이었는데 잎이 무성하게 달려 있어 녹음이 울창했다. 조쇠 등의 아홉 명의 호걸들이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땅 바닥에 앉았다. 먼저 조쇠가 입을 열어 말했다.

「자범은 무슨 좋은 생각이 없습니까?」

자범이 생각을 말했다.

「공자님이 이 나라를 떠나고 안 떠나고는 우리하기에 달렸습니다. 우리들이 서로 협조하여 모든 준비를 마쳐 행장을 꾸리고 공자가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뵙게 되면 단지 성밖으로 사냥을 나가자고 제나라 도성 밖으로 유인 한 후에 우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강제로 수레에 태우고 길을 떠나면 그뿐입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로 가야만 우리가 힘을 빌릴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

조쇠가 말했다.

「송군이 지금 백업을 도모한다고 하고 또한 명분을 좋아한다고 하니 일단 송나라로 한번 가 봅시다. 만약에 송나라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다시 섬진이나 초나라로 갑시다. 그 세 나라 중에서 우리가 뜻한 바를 반드시 얻을 수 있는 나라가 있을 것입니다. 」

호언이 말했다.

「나와 송나라의 사마 직에 있는 공손고와는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입니다. 송나라로 가서 한번 만나보기로 합시다.」

여러 사람들이 오랫동안 상의를 한 후에 뿔뿔이 흩어져 성안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비록 깊은 외딴 곳이라고 해서 엿듣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세상일이란 그렇지 않는 법이다. ‘듣고 싶지 않거든 말하지 말고 알고 싶지 않거든 행하지 말라’⑩는 옛말은 이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홉 명의 호걸들이 공자의 일을 상론하기 위하여 뽕나무 밑으로 몰려 갈 때 마침 제강의 비첩들 십여 명이 나무에 올라가 누에를 먹이기 위해 뽕잎을 따고 있는 중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나무 밑에 둥글게 둘러앉아 상론을 벌이자 뽕잎을 따던 손을 멈추고 엿듣게 되었다. 그녀들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상론하던 내용을 모두 듣고 성안으로 돌아와 제강에게 모두 고했다. 제강은 듣고 비첩들을 꾸짖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더냐? 네 년들이 큰일을 내겠구나!」

제강이 즉시 좌우에게 명하여 누에를 치던 십여 명의 비첩들을 모두 깊숙한 골방에 가둔 후에 밤이 되자 사람을 시켜 모두 죽여 그 입을 막았다.

깊은 밤이 되자 중이를 깨운 제강이 말했다.

「공자님을 따라 다니던 호걸들이 장차 공자님을 모시고 다른 나라로 떠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누에를 치던 비첩들이 뽕잎을 따다가 호걸들이 뽕나무 밑에서 상론하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에게 고했습니다. 첩은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발설을 하여 호걸들이 뜻한바가 방해를 받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오늘 모두 죽여 그 입을 막았습니다. 공자께서는 마땅히 내일 아침 일찍이 길을 떠날 채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지내기가 이렇게 안락한데 어찌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겠소? 내가 이미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되었는데 맹세하건대 결코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겠소.」

「공자님께서 도망쳐 유랑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당진국은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었습니다. 이오가 무도하여 섬진과의 싸움에서 져서 몸은 그 나라의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당진의 사대부들이 모두 이오에 대히 불쾌하게 생각하고 또한 이웃나라와는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공자님으로 하여금 세상에 나오라고 하는 명령입니다. 공자께서 이번에 행차하시게 되시면 반드시 당진의 군주 자리에 오르시게 될 터이니 절대로 이번 행차를 의심하여 지체하지 마십시오.」

중이가 제강에게 미련이 있어 그녀의 말에 수긍하지 못하고 주저했다. 다음날 아침 조쇠, 호언, 서신, 위주 등 네 사람은 중이가 사는 집으로 가서 자기들의 말을 중이에게 전하게 했다.

「공자님을 청하여 교외에 나가서 사냥이나 할까 하고 찾아왔습니다.」

중이가 잠자리에 누워 있다가 아직 기침 전이라 일어나지 않고서는 심부름하던 사람을 보내 다시 말을 전하게 했다.

「공자께서 몸이 조금 불편하시어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계십니다. 세수와 머리에 빗질을 할 시간이 없어 오늘은 교외로 사냥을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

하인이 호걸들에게 전하는 중이의 말을 전해 들은 제강이 급히 사람을 보내 호언 한 사람을 내실로 부르더니 좌우에 있던 사람을 물리치고 그가 찾아온 뜻을 물었다. 호언이 제강의 질문에 답했다.

「공자님이 옛날 적나라에 있을 때는 말을 끌어 수레를 몰아 여우와 토끼를 잡으러 사냥을 나가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나라에 와서는 오랫동안 사냥도 나가시지 않으셔서 공자님의 사지가 나태해지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이렇게 와서 사냥을 같이 나가자고 청했을 뿐이었습니다. 별다른 뜻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닙니다.」

제강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번에 하시는 사냥은 송(宋), 초(楚), 섬진(陝秦) 세 나라 중 어느 나라로 가서 행하시려고 하십니까?」

호언이 크게 놀라 말했다.

「사냥 한 번 나가는데 그렇게 멀리 갈 이유가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공자님을 납치하여 도망치려고 하는 계획을 제가 이미 다 알고 있으나 감히 막을 수 없습니다. 내가 어제 밤 내내 공자님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고언을 드려 권고를 했으나 공자님이 여전히 내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내가 연회를 열어 공자님을 대취하게 만들어 놓을 테니 여러분들은 수레를 끌고 와서 공자를 태운 후 성문을 빠져나가면 일은 잘 해결될 것입니다.」

호언이 머리를 숙이고 말했다.

「부인께서 규방의 정을 끊고서 공자께서 뜻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행위는 천고에 드문 훌륭한 일입니다.」

호언이 감사의 말을 마치고 중이의 집을 나와 제강과 있었던 일을 조쇠 등에게 말했다. 그들은 수레, 말, 인부, 말채찍, 칼 및 말린 고기와 주먹 밥 등을 모두 준비하고 하나하나 수습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조쇠, 호모 등은 먼저 성밖으로 나와서 기다리고 단지 호언과 위주, 전힐 세 사람만이 작은 수레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중이의 거처에 당도하여 강씨 부인에게 알린 후 문밖에서 잠복하면서 집안에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것은 마치 천하의 호걸들이 건곤일척 만리 길을 떠나려고 하는 형세였다. 드디어 저녁때가 되자 강씨가 집안에 간직하고 있던 술을 내오더니 잔에 술을 따라 중이에게 권했다. 중이가 술잔을 받아들고 강씨에게 말했다.

「무슨 연고로 술상을 차렸소?」

「공자께서는 천하에 뜻을 두고 계시온데 특별히 술상을 준비하여 전별주를 올리기 위해서 입니다.」

「인생은 한 순간에 지나가나니 이제 내가 이곳에서 간신히 뜻을 조금 얻었는데 하필이면 다른 곳에서 따로 구할 필요가 있겠소?」

「탐욕을 쫓고 안락한 생활에 뜻을 두는 것은 장부가 할 일이 못 됩니다. 공자님을 따라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충성스러운 모사들입니다. 공자님은 그들의 말을 따라야만 합니다.」

중이가 변색하여 불끈 화를 내며 잔을 물리치더니 마시지 않았다. 강씨가 계속해서 중이에게 말했다.

「공자님은 정말로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으십니까? 아니면 첩의 마음을 한번 떠보기 위해서 그러십니까?」

「내가 가고 싶지 않다는데 누가 그대를 속인단 말이요?」

제강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곳을 떠남은 공자님의 뜻이고 이곳에 남음은 공자님의 정입니다. 이 술은 공자님을 위해 마련한 전별주였으나 이제는 공자님을 붙잡아 두기 위한 술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원컨대 공자님과 마음껏 마시며 즐기고 싶은데 어떠십니까?」

중이가 크게 기뻐하여 부부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한편으로는 시녀들을 불러와서 춤을 추며 술을 따라 바치게 했다. 중이가 이미 술에 취해 더 이상 마시지 못하겠다고 하자 강씨가 다시 중이에게 강권하여 어느덧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술에 크게 취해서 자리에서 엎어지더니 잠이 들어 버렸다. 강씨가 사람을 시켜 호언을 들어오게 했다. 호언은 공자가 이미 술에 취했음을 알고 급히 위주와 전힐 두 사람을 불러 중이를 이불에 둘둘 말아 어깨에 둘러매고 집밖으로 같이 나왔다. 다시 두꺼운 요를 수레 안에 깔고 중이를 그 위에 눕혔다. 호언이 작별을 고하고 길을 출발하자 강씨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강씨의 어진 덕을 노래한 시가 있다.

공자가 안락한 생활을 탐하여 가지 않으려 하는데

오히려 가인이 먼 길을 떠나보내려 하는구나.

대장부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봉황과 란새와 같은 부부의 깊은 정도 끊어야 했다.

公子貪歡樂(공자탐환락)

佳人慕遠行(가인모원행)

要成鴻鵠志(요성홍곡지)

生割鳳鸞情(생할봉란정)

호언 일행이 작은 수레 두 대를 급히 몰아 황혼 무렵에 제나라 성문을 나가 조쇠 일행이 기다리는 곳에 당도하여 서로 만나게 되었다. 한 무리가 된 일행은 밤새껏 수레를 몰아 제나라 도성에서 5-60리쯤 벗어나게 되었는데 사방에서 닭 우는소리가 들리더니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 오기 시작했다. 중이가 술에 깨어 수레 안에서 몸을 뒤척이더니 목이 마르자 집안의 시종들의 이름을 불러 물을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그때 말의 고삐를 잡고 수레를 끌던 호언이 중이를 향하여 말했다.

「잠시만 참으시면 날이 밝아 오니 그때 물을 찾아 올리겠습니다.」

중이가 흔들리는 수레로 인해 불안한 잠자리를 깨닫고 비몽사몽 간에 호언을 향해 말했다.

「나를 부축하여 침상에서 내려가게 해주시오!」

「누워 계시는 곳은 침상이 아니라 수레 안입니다.」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