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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歌五羊皮(가오양피), 陳寶証夢(진보증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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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4,066회 작성일 07-02-06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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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歌五羊皮 陳寶証夢(가오양피 진보증몽)

오양피 노래를 부르는 백리해의 처 두씨와

현몽으로 진보(陳寶)를 얻어 서융의 패자가 된 섬진의 목공

1. 건숙출사(蹇叔出仕)

- 백리해의 천거로 섬진에 출사하는 건숙-

백리해의 출중한 재주를 알게 된 섬진의 목공은 그를 상경의 직에 제수하려고 하였다. 백리해가 사양하면서 말했다.

「신의 재주는 의형인 건숙에 비해 그 십분의 일도 못 미칩니다. 군주께서 만약 나라를 다스려 부강하게 만드시려고 하신다면 건숙을 청해 상경에 임명하시고 저로 하여금 그를 돕도록 하십시오.」

목공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선생의 재주는 내가 보았으니 알겠으나 건숙의 현명함에 대해서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건숙의 현명함은 어찌 유독 군주께서만 모르신다고 하겠습니까? 비록 그가 살았었던 제나라나 지금 살고 있는 송나라조차도 역시 그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지혜로운 선비라는 사실은 저 혼자만이 알고 있는 일입니다. 신이 옛날 제나라로 벼슬을 구하러 갔을 때 제나라의 무지(無知)에게 출사하려고 했으나 건숙이 신에게 불가하다고 말렸습니다. 그래서 건숙의 말을 따른 신은 후에 무지가 당한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곧이어 주나라로 가서 왕자퇴를 모시려고 했으나 역시 건숙이 제지하여 다시 주나라에서 출사하지 않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역시 얼마 후에 왕자퇴는 반란을 일으켰으나 혜왕에게 토벌 당해 도주하다가 살해당했습니다. 신이 건숙의 말을 듣고 주나라에서 출사하지 않고 떠났기 때문에 왕자퇴가 당한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주나라를 떠난 신이 우(虞)나라에 가서 우공에게 출사하려고 하자 건숙이 또다시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때 신이 너무 빈한한 처지에 있어 건숙의 말을 듣지 않고 작록을 탐하여 우공에게 출사했습니다. 결국 우나라가 당진국에 망하게 되어 신은 적국의 포로가 되어 노예의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신이 건숙의 말을 두 번 들어 화를 면하게 되었고 한번 그의 말을 듣지 않아 몸을 망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지혜가 중인들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지금 건숙은 송나라의 명록촌(鳴綠村)에 숨어 지내고 있습니다. 속히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기 바랍니다. 」

백리해의 말을 들은 목공은 그 즉시 상인으로 분장시킨 공자집에게 많은 폐백을 주어 송나라로 보내어 건숙을 모셔 오도록 했다. 백리해가 별도로 자기 뜻을 편지에 써서 공자집에게 주었다.

공자집이 행장을 수습하여 송아지가 끄는 수레 두 대를 몰고 송나라의 명록촌을 향해 출발했다. 명록촌은 옹성에서2천리나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두 달여의 긴 여행 끝에 송나라 경계를 통과한 공자집이 이윽고 명록촌과 가까운 곳에 이르자 여러 사람들이 밭고랑 사이에서 밭을 갈다가 쉬면서 노래를 번갈아 가며 부르고 있었다.

산은 높은데 도와줄 사람은 없고

길은 험한데 불빛 한 점 없다.

서로 함께 밭고랑 사이에 앉아 있음이여!

샘물은 달고 땅은 기름지다.

사지를 부지런히 움직였으니

나에게 오곡이 생겼구나!

하루 세끼를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으니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영화도 없지만 욕됨도 없구나!

山之高兮无攆(산지고혜무련)

途之濘兮无燭(도지영혜무촉)

相將隴上兮(상장총상혜)

泉甘而土沃(감천이토옥)

勤吾四體兮(근오사체혜)

分吾五谷(분오오곡)

三時不害兮(삼시불해혜)

餐飧足(찬손족)

樂此天命兮(락차천명혜)

無榮辱(무영욕)

수레 안에서 노래 소리를 들은 공자집은 그 속에는 세속의 먼지가 묻지 않았음을 느끼고 수레를 모는 종자를 향해 말했다.

「옛날 말에 조그만 고을에도 군자가 있어 세상의 비속한 풍습을 바르게 한다고 했는데 오늘 건숙이 사는 동네에 이르니 밭을 가는 농부조차도 모두가 덕이 높은 처사의 풍도가 있구나! 과연 그가 어질고 고고한 처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겠다. 」

공자집이 즉시 수레에서 내려 밭가는 농부들에게 길을 물었다.

「건숙 선생이 사는 집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농부 중에 한 사람이 일손을 멈추고 응대했다.

「무슨 일로 찾으십니까?」

「건숙선생의 옛날 친구 백리해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 농부가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앞으로 계속 길을 따라 가시면 대나무가 빽빽이 우거진 숲이 나오면 왼쪽에는 우물이 있고 오른쪽에는 큰 바위가 있을 것입니다. 그 중간에 초가집이 한 채 있는데 그곳이 건숙 선생이 사시는 곳입니다.」

공자집이 두 손을 높이 올려 인사를 올린 후에 다시 수레에 올라타고 길을 반리쯤 가니 농부가 말한 곳에 당도하게 되었다. 공자집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풍경이 과연 깊숙하고 아늑했다. 은거하는 처사의 생활을 노래한 농서(隴西) 거사의 시가 있다.

짓푸른 대나무 밭의 풍경은 깊은데

인생의 이런 즐거움을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는가?

사방에 쌓인 돌무더기 위에서 구름이 일고

길가의 맑은 샘물은 흘러 실개천에 들어간다.

원숭이를 구하여 같이 노닐자 했더니

때를 놓쳐 사슴과 같이 놀게 되었다.

번거로운 세상일을 벗어나 한가롭게 지내니

근심걱정 잊은 고와선생은 백살까지 살았다.

翠竹林中景最幽(취죽림중경최유)

人生此樂更何求(인생차락경하구)

數方白石堆云起(수방백석퇴운기)

一道淸泉接澗流(일도청천접간류)

得趣猿猴堪共樂(득취원후감굥락)

忘機麋鹿可同游(망기미록가동유)

紅塵一任漫天去(홍진일임만천거)

高臥先生百不懮(고와선생백불우)

공자집이 초가집 담장 밖에 수레를 멈추게 하고 종자에게 사립문 앞에서 주인을 부르게 하였다. 조그만 동자 아이 하나가 집안에서 나오더니 물었다.

「어디서 오신 손님이십니까?」

「섬진국에서 왔는데 건숙선생을 만나러 왔네.」

「선생님께서는 지금 집에 계시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이웃 노인 분들과 함께 석량(石梁)에 있는 샘물에 놀러 나가셨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돌아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공자집이 집안으로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건숙을 기다리기 위해 문 앞의 바위 위에 앉자 동자가 사립문을 반쯤 열어 놓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눈썹은 짙고 눈은 고리 모양처럼 동그랗게 생기고, 얼굴은 네모나며 키가 큰 대한이 등 뒤에 사슴 넓적다리 두개를 지고 밭이랑 서쪽으로 난 길로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대한의 용모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한 공자집이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했다. 그 대한도 즉시 사슴 다리를 땅에 내려놓고 예를 올리자 공자집이 성과 이름을 물었다. 그 대한이 대답했다.

「성은 건(蹇)이고 이름은 병(丙)입니다. 자는 백을(白乙)이라 합니다.」

「건숙이라는 분과 귀하는 어떤 사이인가요?」

「저의 부친이 되십니다.」

공자집이 건병에게 다시 한 번 예를 올리면서 말했다.

「오랫동안 뵙기를 앙모하여 왔습니다.」

「귀하는 어떤 분이시기에 친히 이곳까지 왕림하셨습니까?」

「백리해라는 분이 지금 저희 섬진에서 벼슬을 살고 있는데 저에게 편지를 써서 주며 부친에게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오게 되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집안으로 들어가셔서 잠시 쉬시고 계시면 저희 부친께서는 조만 간에 돌아오실 것입니다. 」

말을 마친 건병이 사립문을 밀쳐 열고 공자집을 방안으로 청한 후 땅에 내려 논 사슴다리를 다시 등에 지고 집안으로 옮겼다. 동자가 나와서 건병에게서 사슴다리를 받아 들고 부엌으로 날랐다. 건병이 방안으로 들어와 다시 공자집에게 예를 올리고 손님과 주인의 격식을 따져 자리에 앉았다. 공자집과 건병이 농사와 누에치는 일로 이야기를 시작하여 담론이 무예로 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건병의 강론은 순서가 심히 정연하여 공자집이 마음속으로 칭찬하면서 생각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니 정백이 추천한 이유가 있었구나!」

동자가 차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오자 건병은 부친이 오는지 문 앞에 나가서 기다리도록 말했다. 얼마 있지 않아 동자가 달려와 방문을 열면서 말했다.

「선생님께서 돌아오십니다.」

이웃에 사는 노인 두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집 앞에 이른 건숙이 수레 두 대가 서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말했다.

「우리 마을 같은 벽촌에 무슨 연고로 이와 같은 수레가 와있는가?」

건병이 집밖으로 나와서 그 연고를 먼저 이야기했다. 건숙과 이웃의 노인 두 명이 같이 방으로 들어가 공자집과 상면하게 되었다. 건숙이 공자집과 예를 마치고 자리에 좌정하고 말했다.

「제 자식을 통해서 귀하께서 저의 아우 정백의 편지를 전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져오신 편지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공자집이 백리해의 서신을 꺼내어 건숙에게 전했다. 건숙이 편지의 봉함을 뜯고 읽었다.

『이 해가 형의 충고를 듣지 않아 우나라에서 재난을 당했으나 다행히 섬진의 군주가 현사를 사랑하여 소를 치는 노예의 신분에 있던 저를 속죄 시켜 나라의 정사를 맡겼습니다. 해가 스스로 헤아려 본 바 재주와 지혜가 형에게 미치지 못함을 알고 형을 천거하여 섬진의 군주를 같이 모시려고 했습니다. 섬진의 군주가 형을 경모하기를 마치 목마른 자가 물을 찾는 것 같이 하시어 대부 공자집에게 폐백을 내려 형을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바라건대 빨리 출산하시어 평생에 펴 보지 못한 뜻을 세상사람들을 위해 베풀기 바랍니다. 만약 형이 산림에 연연하여 세상으로 나오지 않으신다면 이 해도 섬진의 군주로부터 받은 작록을 버리고 그곳 명록촌으로 들어서 형과 함께 살겠습니다.』

건숙이 편지를 다 읽고 말했다.

「정백이 어떻게 해서 섬진의 군주를 만나게 되었습니까?」

공자집은 백희의 몸종 신분으로 섬진으로 가던 중 초나라로 도망쳤다가 말을 치는 말단 관리로 있던 백리해를 섬진의 목공이 양가죽 다섯 장을 초나라에 주고 속죄시켜 섬진으로 데려온 일의 전후사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공자집이 계속해서 말했다.

「저희 군주께서 백리해에게 상경의 벼슬을 내렸으나 정백이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는 의형 건숙에게 못 미친다고 말하면서 반드시 건숙 선생을 섬진으로 모셔와야만 비로소 정사를 맡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군주께서는 얼마간의 예물을 내려 주시면서 저에게 건선생을 모셔 오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공자집이 좌우에 있던 종자들에게 명하여 수레의 짐칸에 있던 예물들을 꺼내어 품명을 적은 장부와 맞추게 한 후에 건숙의 초가집 마당에 늘어놓게 하였다. 이웃에 사는 노인들은 모두 산야에 사는 농부들이라 이와 같은 성대한 예물을 본적이 없어 서로 얼굴만을 쳐다보고 놀라워하다가 이윽고 공자집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귀인께서 여기에 온 일과는 상관이 없는 듯하니 이만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두 분 노인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 군주께서 건숙선생을 모시고 싶은 마음은 마치 말라비틀어진 묘목이 비를 기다리고 있는 처지와 같으십니다. 번거롭겠지만 두 분 노인께서는 한 말씀을 올려 저를 도와주신다면 그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겠습니다.」

두 노인이 건숙을 향해 말했다.

「수 천리 밖에 멀리 떨어져 있는 섬진의 군주가 현사를 이렇게 중히 여겨 귀인을 보내 여기까지 힘들여 찾아오게 했습니다. 선생은 귀인으로 하여금 헛걸음치게 하지 마십시오.」

건숙이 대답했다.

「옛날 우공은 정백을 곁에 두고도 쓰지 않아 결국 나라를 잃었습니다. 만약에 섬진의 군주가 진정으로 마음을 비우고 현사를 대한다면 정백 한 사람만으로도 족합니다. 노부가 세상에 미련을 끊은 지가 오래라 부득이 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귀국의 군주께서 하사하신 예물은, 원컨대 거두어 주시기 바라오며, 공자께서도 제가 사양하는 뜻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건숙 선생께서 가시지 않으신다면 정백도 역시 혼자서는 섬진을 섬기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건숙이 얼마동안 숨을 죽이고 나더니 탄식하면서 말했다.

「정백이 가슴에 품고 있던 뜻을 아직까지 펴보지 못하고 일생을 유랑하다가 이재야 다행히 명군을 만났는데 나로 인하여 그 뜻을 못 이룬다면 내가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정백을 위하여 한번 가보지 않을 수 없으나 머지않아 다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살리라.」

동자가 들어와 말했다.

「사슴다리가 이미 익었습니다.」

건숙이 동자에게 침상 머리맡에 간수하고 있는 새로 빚은 술통을 가져오게 하고, 공자집을 서쪽의 상석에 모셔 이웃의 두 노인과 서로 마주보게 앉혀 손님으로 접대했다. 흙으로 빚어 만든 술잔으로 서로 권하고 잘 익힌 사슴다리 고기를 안주 삼아 나무젓가락으로 즐기는 가운데 모두가 흔연히 취하게 되었다. 해는 어느덧 기울어 바깥이 어두워지자 공자집은 초가집에 머물러 유숙했다. 다음날 아침 두 노인이 건숙의 노자에 보태 쓰라고 조그만 술병 안에다 얼마간의 돈을 넣어 가지고 와서 어제 앉았던 자리에 순서대로 앉았다. 시간이 다시 얼마간 지나자 공자집이 들어오더니 건병의 재주를 칭찬하면서 역시 건병도 같이 동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건숙이 허락했다. 건숙은 섬진의 군주가 하사한 예물들을 두 노인에게 나누어주고 자기가 없을 때라도 자기의 집을 살펴봐 달라고 당부했다.

「이번의 행차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예정이니 조만 간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건숙이 다시 집안사람들을 불러 당부하였다.

「농사에 힘써 결코 논밭을 황폐하게 만들지 말라!」

2. 패자지도(覇者之道)

- 패자의 길-

두 노인이 건숙에게 몸을 잘 보중하라는 말과 함께 이별을 고했다. 이윽고 건숙이 수레에 타고 건병이 앞에서 몰았다. 공자집은 남은 한 대의 수레에 타고 그 뒤를 따랐다. 날이 어두워지면 자고 날이 밝으면 수레를 몰아 섬진의 경계를 통과하여 마침내 옹성 교외에 당도했다. 공자집이 먼저 섬진의 조정에 입조하여 목공을 알현하고 말했다.

「건선생이 이미 우리 섬진의 도성 밖에 당도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건병이라는 사람도 재주가 비범하여 얼마간의 시간을 주어 준비하게 하면 마땅히 일을 맡길 만하다고 생각하여 신이 같이 데리고 왔습니다.」

크게 기뻐한 목공은 즉시 백리해에게 성문 밖으로 나가 맞이해 오도록 명했다. 이윽고 조당에 당도한 건숙을 계단을 내려와 예를 갖추어 맞이한 목공이 좌정을 시키고 물었다.

「정백이 여러 번 선생의 현명함을 말했습니다. 선생은 어떤 말로 저를 깨우쳐 주시겠습니까?」

「섬진은 서쪽의 변방에 위치하여 융(戎)과 적(狄)에 이웃하고 있고 지세는 험하고 병사는 강합니다. 중원으로 나아가 능히 싸울 수 있고 관내로 후퇴하여 능히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원의 제후들의 반열에 같이 서지 못함은 섬진의 위엄과 덕이 그곳에 미치지 못한 연유에서입니다. 위엄이 없으면 심복(心腹) 시킬 수 없으며 덕이 없으면 품을 수 없습니다. 심복하게 할 수도 없고 가슴에 안을 수도 없는데 어찌 패업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위엄과 덕 중 어느 것부터 먼저 행해야 합니까?」

「기본은 덕이고 위엄은 덕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덕이 있으되 위엄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외부로부터 침입을 당하게 되고, 위엄은 있으나 덕이 없으면 그 나라는 안으로부터 무너지게 됩니다.」

「과인은 덕을 쌓고 위엄을 세우고 싶습니다. 어떤 가르침이 있으십니까?」

「섬진은 융적의 오랑캐 풍속에 젖어 있어 예(禮)와 교(敎)에 낯설어 하여 위엄을 세우려 해도 구분하지 못하며 귀천도 분간하지도 못합니다. 신이 청하옵건대 먼저 백성들을 교화시킨 후에 형벌을 분명히 행해야합니다. 교화를 시행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그 상전들을 존경하도록 만든 연후에 은혜를 베풀어 스스로 그 덕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형벌을 이용하여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백성들 사이에 높고 낮음은 마치 사람 몸에 있어서 손과 다리 및 머리와 눈과 같은 자연스런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사조직을 창제하여 천하를 호령하고 있는 관이오의 부국강병책은 이와 같은 이치에 근거했습니다.」

「정녕 선생의 말씀대로 시행하면 천하를 제패할 수 있습니까?」

「아직 충분치 않습니다. 무릇 천하를 제패하고자 하는 자는 세 가지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탐하지 말고, 화내지 말며, 조급해 하지 말라. 탐하면 잃는 것이 많고, 화는 내게 되면 곁에 있는 친한 사람들이 떠나게 되며, 조급하게 일을 하게 되면 빠뜨리는 것이 많게 됩니다. 주도면밀(周到綿密)하게 일을 처리하여 문제가 없게 하기 위해서는 탐하지 말고, 이익과 손해를 따져서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화를 겉으로 드러내지 말고, 완급을 참작하여 순서를 정하여 일을 하기 위해서는 조급하지 말아야합니다.① 군주께서 이 세 가지 계율을 능히 지키신다면 패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훌륭하신 말씀이십니다. 청컨대 과인이 현재 먼저 해야 할 일과 후에 할 일을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섬진은 서융의 땅에 나라를 세웠는데 이는 나라를 운영하기에 따라 화가 되기도 하고 복이 되기도 합니다. 현재 패자를 칭하고 있는 제후(齊侯)는 그 나이가 이미80이 넘어섰기 때문에 그가 이룩한 패업도 머지않아 허물어질 것입니다. 군주께서 진실된 마음으로 옹(雍)과 위(渭) 땅의 백성들을 선무하신 후에, 여러 융족들의 추장들을 불러들여 위엄으로써 복종시키십시오. 명을 따르지 않는 융족들은 군사를 동원하여 정벌하여 그들의 병사들을 모아놓고 중원의 제후국들에게 변란이 일어나면 수습할 군사를 보냄과 동시에 진나라의 덕과 의를 펼치십시오. 그때에 이르면 비록 군주께서 패업에 뜻이 없다 하더라도 결코 사양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목공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과인이 새로이 얻은 이노(二老)는 과연 뭇 백성들의 어른이로다.」

목공이 즉시 건숙을 우서장(右庶長)으로 백리해를 좌서장(左庶長)으로 삼아 위계를 상경으로 하고 이상(二相)이라고 불렀다. 건숙의 아들 백을병도 불러서 대부의 벼슬을 내렸다. 두 사람의 재상이 섬진의 정사를 맡아 법을 세우고 백성들은 교화하고 이로움은 구하며 해로운 것은 제거하자 섬진은 크게 다스려졌다.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두 사람을 노래했다.

공자집은 백리해를, 백리해는 다시 건숙을 천거하여

모두 진나라 궁궐로 데려와 재상으로 삼았다.

군주들이 단지 선비 구하기를 진목공처럼만 했다면

인걸들이 어찌 땅의 신령들에게 묻고 다녔겠는가?

子縶荐奚奚荐叔(자지천해해천숙)

轉相汲引布秦庭(전상급인포진정)

但能好士如秦穆(단능호사여진목)

人杰何須問地靈(일걸하수문지령)

섬진 밖에도 현자와 인재가 많이 있다고 생각한 목공은 더욱 사람을 많이 밖으로 내보내 인재들을 구해오게 했다. 공자집이 섬진 출신의 서걸술(西乞術)을 현사라고 하면서 목공에게 천거했다. 목공이 역시 불러 대부의 벼슬을 내렸다. 옛날 당진에 있을 때 요여(繇余)라는 사람이 경세지략을 지니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백리해가 몰래 공손지를 불러 상의했다. 공손지가 대답했다.

「요여라는 사람은 당진에 있을 때 불우하여 지금은 서융으로 도망쳐서 지금은 융주를 모시고 있습니다.」

백리해가 한탄하면서 애석해 마지않았다.

3. 歌五羊皮(가오양피)

- 오양피의 노래를 듣고40년 만에 부인과 상봉하는 백리해.

한편, 백리해의 처 두(杜)씨는 그의 지아비가40년 전 길을 떠난 후 매일 천을 짜서 연명했다. 그러나 몇 년 후에 우나라에 큰 기근이 들어 그나마 양식마저 구할 수 없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아들을 데리고 우나라를 떠난 두씨는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몇 년 전에 섬진으로 들어와 남의 옷을 빨아 받은 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들 이름은 시(視)라하고 자는 맹명(孟明)이라 했는데 매일 시골사람들과 사냥을 나가 무예를 다투고 들판에서 일상처럼 자곤 했다. 두씨가 여러 번 그러지 말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이윽고 백리해가 진나라의 재상 자리에 오르자 그 소문이 두씨의 귀에도 전해졌다. 그래서 두씨는 수레를 타고 지나가는 백리해를 보고 확인하고 싶었으나 감히 알아볼 수 없었다. 그때 마침 백리해가 정사를 보고 있는 재상부에서 옷을 빠는 아녀자를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씨가 자원하여 부중으로 들어갔다. 두씨가 몸을 돌보지 않고 옷을 열심히 빨았다. 부중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다. 부중에서 백리해의 얼굴을 보고자 벼르고 있던 두씨는 하루는 백리해가 당상에 앉아서 행랑에서 연주하고 있던 악공의 음악소리에 귀를 기우려 감상하고 있던 백리해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고 부중의 관리에게 말했다.

「이 늙은이가 음률을 좀 알고 있습니다. 원컨대 저를 행랑에 들게 하여 음악소리를 한 번 듣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부중의 관리가 두씨를 행랑으로 들게 하여 악공의 음악소리를 듣게 했다. 자신이 부르던 음악에 대해 아는 척하는 두씨에게 악공이 어디서 음률을 배웠냐고 물었다. 두씨가 대답했다.

「거문고를 탈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래도 능히 부를 수 있습니다.」

두씨는 즉시 거문고를 건네받았다. 두씨가 거문고를 타고 북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매우 처연했다. 악공이 귀를 기울려 듣더니 자기도 못 미치겠다고 스스로 말했다. 부중의 관리가 다시 한 번 노래를 부르게 하자 두씨가 말했다.

「노첩은 여기저기 유랑하면서 이곳까지 흘러오게 되었는데 아직 노래를 불러 볼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원컨대 상국에게 말씀을 드려 제가 당에 올라가 노래를 한 번 부르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악공이 품함을 받은 백리해는 두씨에게 당의 왼쪽에 서서 노래를 부르도록 명했다. 두씨가 눈썹을 깔고 소매를 걷어올리더니 목청을 높이 올려 노래를 불렀다.

백리해, 오양피

이별할 때 기억나는가? 암탉을 잡고

서숙을 절구에 찧고, 빗장을 떼어내어 불을 지폈다.

오늘은 부귀하게 되어 나를 잊었는가?

百里奚, 五羊皮(백리해,오양피)

憶別時, 烹伏雌(억별시, 팽복자)

舂黃齏, 炊扊扅(용황제, 취염이)

今日富貴忘我爲(금일부귀망아위)

백리해, 오양피

지아비는 진수성찬인데 아들은 배가 고파 우는구나!

지아비는 비단옷에 호강하는데 처는 옷을 빠는도다!

오호라! 부귀가 나를 잊게 만들었는가?

百里奚, 五羊皮(백리해,오양피)

夫粱肉, 子啼飢(부양육, 자제기)

夫文綉 , 妻浣衣(부문수, 처완의)

嗟乎! 富貴忘我爲(차호, 부귀망아위)

백리해, 오양피

옛날 당신이 길을 떠날 때 나는 흐느껴 울었다.

오늘 그대는 앉아 있고 나는 떠나려 하네

오호라! 부귀가 나를 잊게 만들었는가?

百里奚, 五羊皮(백리해,오양피)

昔之日, 君行而我啼(석지일, 군행이아제)

今之日, 君坐而我離(금지일, 군좌이아리)

嗟乎! 富貴忘我爲?(차호! 부귀망아위)

백리해가 노래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불러서 물어 보니 정히 그의 아내였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고 크게 울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자 백리해가 물었다.

「아들은 지금 어디있소?」

두씨가 대답했다.

「시골에서 사냥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리해가 곧 사람을 시켜 불러오게 했다. 마침내40년이 지난 이 날이 되어서야 부부와 아들이 다시 만나서 모여 살게 되었다. 목공이 백리해의 처자가 모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 천 가마와 비단 한 수레를 보냈다. 다음날 백리해가 그 아들 맹명시(孟明視)를 데리고 왕을 뵙고 고마움을 표했다. 목공이 맹명시를 대부로 임명했다. 서걸술, 백을병과 함께 맹명시를 장군으로 삼아 진나라의 ‘삼수(三帥)’라고 했다. 목공은 삼수로 하여금 섬진의 병사 일을 주관하게 하였다.

4. 인국현신 아국지우(隣國賢臣 我國之憂)

- 이웃나라의 현신은 우리나라의 근심거리다. -

이때 강융(姜戎)의 군주 오리(吾離)가 군사를 이끌고 섬진의 변경을 침략해 오자 삼수가 출격하여 싸워 물리쳤다. 싸움에서 패한 오리는 당진으로 도망갔다. 그 결과 강융의땅이었던 과주(瓜州)②는 모두 섬진의 소유가 되었다. 뒤이어 서융(西戎)의 군주 적반(赤斑)이 섬진이 강성해지고 있음을 알고 그의 신하인 요여(繇余)를 보내 목공의 위인됨과 나라의 허실을 알아오게 하였다. 목공이 요여와 같이 동물원이 딸린 후원으로 데리고 가서 삼휴대(三休臺)에 올라 궁궐과 동물원이 달린 후원의 아름다움을 자랑하였다. 목공의 의도를 짐작한 요여가 말했다.

「이 모든 것을 짓는데 귀신을 부리셨습니까? 아니면 사람을 억압하여 만드셨습니까? 귀신을 부리셨다면 귀신들에게 수고를 끼치셨고, 사람을 시키셨다면 백성들을 괴롭혔겠습니다. 」

목공은 오랑캐의 나라에서 온 요여가 뜻밖의 말을 한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대의 나라 융이(戎夷)는 예악과 법도가 없는데 무엇으로 나라를 다스리는가?」

요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말씀하시는 예악과 법도는 중원의 나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옛날의 성군들도 법을 글로 만들어 백성들과 약속을 하여 근근히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날이 지나감에 따라 군주들이 교만해지고 황음에 빠지게 되면서 예악의 이름을 빌려 그 몸에 장식을 두르고 거짓된 법도의 위엄을 이용하여 밑의 사람들을 닦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사게 되고 동시에 군주의 자리를 남에게 찬탈 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융이의 습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윗사람은 순박한 덕으로 아래 사람들을 대하고 아랫사람들은 충성과 신의로써 윗사람들을 섬깁니다. 상하가 한결 같아 서로 속이지 않습니다. 형적(刑籍)이 없어도 서로 속이지 않고 법을 글로 써 놓지 않아도 서로 근심하는 법이 없으니 이와 같은 다스림은 전에 본적이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다스림의 극치가 아니겠습니까?」

목공이 아무 대답도 못하고 요여와 헤어진 후에 백리해에게 그가 한 말을 전했다.

「그 사람은 당진 출신의 대현입니다. 신은 이미 그의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목공이 얼굴에 언짢은 기색을 띄고 말했다.

「과인은 ‘이웃나라의 현인은 우리나라의 우환이다’라는 말을 들었소. 오늘 요여가 그 지혜를 융나라를 위해 쓰고 있으니 장차 우리의 화근이 되지 않겠습니까?」

「내사(內史)의 직에 있는 요(廖)가 지혜가 있으니 주군께서 부르셔서 그 계책을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목공이 즉시 내사요를 불러 요여에 대한 생각을 말하자 그가 대답했다.

「융의 군주는 멀리 떨어진 황야에 살고 있어 중원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를 아직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군께서 여자 악공을 시험 삼아 보내시어 견융주의 뜻을 빼앗고 동시에 요여를 억류시켜 머물게 하고 귀국하는 날짜를 어기게 하여 오랫동안 돌려보내지 마십시오. 결국 정사에 태만해진 융주로 인해 상하가 서로 의심하게 되어 그 나라도 취할 수 있게 됩니다. 하물며 한 사람의 신하정도야 문제가 되겠습니까?」

「훌륭한 계책이로다!」

그 뒤로는 목공은 요여와 자리를 같이하며 식사를 할 때는 같은 그릇에 먹고 항상 건숙, 백리해. 공손지 등의 중신들을 불러 한자리에 모여 어울리게 했다. 세 사람의 중신들은 순번을 정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요여를 접대하면서 융 땅의 지형을 탐문하고 군사력의 강약과 허실을 알아보았다. 한편으로는 용모가 아름다운 미녀와 노래를 잘 부르는 악녀6명을 선발하여 옷을 성대하게 차려 입힌 다음 답례사절로 보내는 내사요에게 딸려 보내 융주에게 바치게 했다. 융주 적반이 크게 기뻐하여 매일 낮에는 노래 소리를 듣고 밤에는 잠자리를 같이 하기에 바빠 자연히 융국의 정사를 소홀하게 대했다. 그러는 사이에 섬진에서 일 년을 머물렀던 요여가 융국에 귀국했다. 융주는 그렇게 늦게 돌아온 요여를 괴이하게 생각했다. 요여는 자기가 늦게 귀국한 이유를 융주에게 설명했다.

「신이 밤낮으로 귀국을 졸랐지만 섬진의 군주가 고집을 피워 보내 주지 않아 이렇게 늦게 되었습니다.」

요여를 의심한 융주는 그를 멀리하게 되었고 다시 미녀와 악녀들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융주는 있는 힘을 다하여 간하는 요여의 말을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얼마 후에 목공이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요여를 데려왔다. 요여가 융주를 버리고 섬진으로 들어오자 목공은 즉시 요여를 아경(亞卿)에 임명하여 건숙과 백리해와 함께 국정을 돌보게 하였다. 요여가 곧 융국을 정벌하기 위한 계책을 목공에게 말했다. 요여의 계책에 따라 삼수가 군사를 이끌고 융국을 정벌하기 위해 출전했다. 요여가 출전하는 삼수에게 융국의 지리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주었기 때문에 삼수는 마치 융국의 땅을 익숙한 길을 가듯이 공략할 수 있었다. 융주 적반이 감히 대항하지 못하고 진나라에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후세 사람이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었다.

백리해의 말을 듣지 않던 우공은 결국 포로가 되었고

융주 역시 요여를 잃더니 나라를 섬진에게 빼앗겼다.

필경은 훌륭한 사람만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니

패자가 된 제환공과 강성해진 섬진을 보기 바란다.

虞違百里終成虜(우위백리종성로)

戎失繇余亦喪邦(융실요여역상방)

畢竟賢才能幹國(필경현재능간국)

請看齊覇與秦强(청간제패여진강)

5. 陳寶證夢(진보증몽)

- 현몽으로 진보(陳寶)를 얻어 서융의 패자가 된 섬진의 목공-

서융주 적반은 여려 융족들의 우두머리로 옛날부터 여러 융족들이 복종하고 있었다. 적반이 섬진에게 항복하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여러 융족들은 모두가 섬진의 위세를 두려워했다. 서융주에게 복종해 왔던 융족들은 모두가 그들의 영토를 바쳐 섬진의 신하가 되고자 끊이지 않고 줄을 이어 계속 섬진으로 들어왔다. 목공이 기뻐하여 논공행상을 한 후에 군신들을 위해 큰 잔치를 열었다. 군신들이 번갈아 가면서 목공의 장수를 빌며 술을 권하자 부지중에 크게 취했다. 술자리를 파하고 궁으로 돌아온 목공은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으나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궁인들이 놀라 궁 밖의 사람들에게 알렸다. 군신들이 모두가 몰려와 궁문을 두드리며 목공의 안부를 물었다. 세자 앵(罃)이 태의를 궁 안으로 불러 진맥을 보도록 했다. 목공의 맥에는 이상이 없었고 단지 눈을 뜨지 못하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뿐이었다. 태의가 세자앵을 향하여 말했다.

「전하에게는 지금 귀신이 붙어 있습니다.」

세자앵이 내사요를 불러 하늘에 기도를 올려 귀신을 쫓으라고 하자 내사요가 말했다.

「이것은 시궐(尸厥)이라고 가사상태와 같은 것입니다. 지금 주군께서는 틀림없이 꿈을 꾸고 계십니다. 반드시 스스로 깨어나기를 기다려야지 절대로 놀래게 하면 안 됩니다. 제가 기도를 올려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세자앵이 침상 곁에서 침식을 같이하며 감히 떠나지 못했다. 계속해서 기다리던 중5일 째가 되어서야 꿈에서 깨어난 목공은 이마에서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연이어 외쳤다.

「괴이한 일이로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로다!」

세자앵이 무릎을 꿇고 물었다.

「아바마마께서는 몸이 괜찮으신 지요. 어떻게 하여 그렇게 오랫동안 주무시게 되었습니까?」

「잠시 잠을 잔 것 같다.」

「아바마마께서는 잠이 드신 지 이미 닷새째가 되었습니다. 주무시는 중에 어떤 꿈을 꾸시지 않으셨는지요?」

목공이 놀라워하면서 물었다.

「너는 내가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

「내사요가 일러주어 알게 되었습니다.」

목공이 즉시 내사요를 침전으로 불러들여 자기가 꾼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과인이 꿈속에서 비빈과 같은 몸치장에 단아한 용모의 백설과 같은 피부를 갖고 있는 아름다운 귀부인 한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손에 천부(天符)를 들고 상제의 명을 받들라고 말하며 가까이 오더니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그 부인이 이끄는 대로 따라 나섰다. 그 부인의 인도를 받아 어디론가 가던 끝에 갑자기 풍경이 끝이 없이 넓어지더니 궁궐이 있는 곳에 당도하게 되었다. 그 부인은 나를 단청이 반짝반짝 빛나는 궁궐로 나를 인도했다. 계속해서 아홉 자 높이의 옥으로 된 계단 위의 붉은 발이 드리워져 있는 곳 밑으로 이끌고 가서 계단 위를 향해 절을 올리도록 했다.잠시 후에 계단 위의 발이 걷히면서 황금으로 된 기둥과 궁실의 벽이 보이고 그 벽에는 화려하게 수가 놓인 비단옷이 걸려 있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부셨다. 이윽고 머리에는 면류관을 쓰고 몸에는 화려한 곤룡포를 입은 왕이 옥으로 만든 궤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고 그 좌우에는 시종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곳 사람들의 위엄과 의식은 대단히 성대했다. 왕이 나를 보더니 곁에 있던 사람에게 명해 나에게 술을 한 잔 하사하라고 했다. 시종이 있어 벽옥으로 만든 술잔에 술을 따라 나에게 주었는데 그 향기가 감미롭기가 그지없었다. 앉아 있던 왕이 한 개의 죽간을 옆에 시립해 있던 사람에게 주고 당상에서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임호(任好)야, 내 말을 듣거라! 너는 당진의 란을 평정해야 한다.’

그러더니 다시 똑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부인이 나에게 감사의 절을 올리라고 지시하더니 다시 나를 이끌고 궁궐에서 나왔다. 내가 그녀에게 이름을 묻자 부인이 대답했다.

‘첩은 곧 보부인(寶夫人)인데 태백산의 서쪽 산록에서 살고 있습니다. 군주님의 땅에 살고 있는데 군주께서는 아직 제 이름을 들어보시지 못하셨습니까? 또 첩의 부군은 엽군(葉君)이라고 하는데1-2년에 한 번씩 가끔 첩을 만나러 태백산에 옵니다. 군주께서는 첩을 위해서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 주시면 앞으로 천하를 얻게 되고 군주의 이름을 만세에 전해질 것입니다.’

과인이 그 부인에게 꿈속에서 본 왕의 말에 대해 물었다.

‘당진에 무슨 변란이 일어나기에 과인보고 평정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보부인이 대답했다.

‘이것은 천기(天機)라 내가 미리 누설할 수 없습니다.’

곧이어 닭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그 소리가 커져 마치 벼락치는 소리가 되어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내사요가 해몽했다.

「당진의 군주가 여희를 총애하고 세자를 멀리하니 어찌 변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하겠습니까? 천명이 곧 주군에게 이르렀으니 이것은 주군의 크나큰 복이 되겠습니다. 」

「보부인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신이 듣기에 선군이신 문공께서 살아 계실 때 진창(陳倉) 인 한 사람이 땅속에서 이상한 동물을 한 마리 잡았었습니다. 그 형체가 마치 안이 가득 찬 주머니 같았고 그 색깔은 황색과 흰색의 중간색에, 여러 개의 다리와 짧은 꼬리에 주둥이는 길고 날카로웠습니다. 진창인이 그 동물을 선군에게 바치기 위해 끌고 가는데 중도에서 우연히 동자 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동자가 끌려가는 동물을 보더니 박소를 하며 깔깔 웃다가 그 동물을 향하여 말했다고 했습니다.

‘너는 죽은 사람을 욕보이더니 이제 산 사람의 손에 잡히게 되어 끌려가고 있구나’

진창인이 듣고 그 내력을 묻자 두 동자가 말했었습니다.

‘이것은 위(猬)라는 고슴도치인데 땅속에서 죽은 사람의 뇌를 먹고삽니다. 정기를 얻게 되면 능히 사람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놓치지 마시고 잘 끌고 가시기 바랍니다.’

끌려가던 고슴도치가 동자의 말을 듣더니 역시 주둥이를 길게 내밀며 갑자기 사람으로 변하여 말을 했습니다.

‘저 두 동자는 한 쌍의 꿩입니다. 이름을 진보(陳寶)라 하는데 들꿩의 정령이 변한 것입니다. 수컷을 얻는 자는 천자가 될 수 있으며 암컷을 얻는 자는 패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진창인이 고슴도치를 버리고 두 동자를 잡으려고 하자 두 동자는 홀연히 꿩으로 변하더니 날아가 버렸습니다. 진창인이 이 일을 선군에게 고하자 선군께서는 명을 내려 그 일을 죽간에 써서 기록을 하게 한 다음에 궁중의 창고에 보관하게 한 것을 지금은 신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진창이라는 곳은 태백산 서쪽의 진창산 밑에 있는 고을인데 주군께서는 시험 삼아 두 산 사이에서 사냥을 하시면서 그 종적을 찾아보시면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③

목공은 문공이 써서 보관해 놓은 죽간을 가져오게 하여 읽어보니 과연 내사요의 말과 같았다. 다시 내사요에게 자기의 꿈을 상세하게 기술하게 하여 궁중의 창고에 같이 보관하도록 명했다.④

다음날 목공이 건강한 모습으로 조회를 열자 군신들이 일제히 축하의 말을 올렸다. 목공이 즉시 명을 발하여 수레를 타고 태백산으로 사냥을 떠나 진창산에 이르렀다. 그때 사냥하는 사람들의 그물에 한 마리의 꿩이 잡혔다. 그 꿩은 전신이 옥 같은 흰 색에 흠이 하나도 없이 광채가 발해 사람들을 비추었다. 그러나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 꿩은 돌로 변했으나 색과 광택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사냥꾼들이 돌로 변한 꿩을 목공에게 가져와 바쳤다. 내사요가 축하의 말을 올리고 말했다.

「이것은 바로 보부인이 변한 꿩입니다. 암컷을 얻은 자는 천하의 패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주군께서 이곳 진창에 사당을 짓는다면 반드시 패자가 되는 복을 얻을 것입니다.」

목공이 크게 기뻐하며 돌로 변한 꿩을 난초에 달인 물로 목욕을 시키고 비단 이불에 싸서 옥으로 만든 궤에 넣었다. 다시 인부를 모집하고 벌목을 하여 사당을 산꼭대기에 짓고 사당의 이름을 보부인사(寶夫人祠)라고 했다. 진창산을 보계산(寶鷄山)으로 이름을 바꾸고 봄과 가을에 두 번씩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관을 두었다. 그 후로 제사 지내는 날이 되면 새벽에 산꼭대기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려 왔는데 그 소리가3리 밖에까지 들렸다. 그리고 일 년이나 이 년에 한 번씩 산 위에서 붉은 빛이 높이가10여 장까지 솟구치는 것이 보이고 뇌성벽력이 은은히 일어나곤 했다. 이것은 곧 엽군이 보부인을 만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엽군은 곧 숫꿩의 신이라 소위 남양(南陽)에 별거하는 보부인 남편이다. 이후로600여 년 후에 한나라 광무제(廣武帝)가 남양에서 태어나서 숫꿩의 화신인 엽군을 얻은 후에 군사를 일으켜 왕망(王莽)을 죽이고 다시 한나라를 부흥하여 후한의 황제가 되었다. 이것은 곧 숫꿩을 얻은 자가 천자가 된다는 말이 실현되었다고 하겠다.

<제27 회로 계속>

주석

①夫覇天下者有三戒, 毋貪, 毋忿, 毋急. 貪則多失, 忿則多離, 急則多蹶.夫審大小而圖之, 烏用貪, 衡彼己而施之, 烏用忿, 酌緩急而布之, 烏用急.

②과주(瓜州)/ 명나라 때의 지명으로 지금의 감숙성 안서시(安西市) 부근이다. 유명한 돈황석굴에서 동쪽으로100키로 되는 곳에 있다.

③본서4회에 나오는 이야기다.

④사기연표(史記年表)에 따르면 섬진의 문공(文公)이 진창산(陳倉山)에 진보사(陳寶祠)를 세운 해는 그의 재위19년 째인 기원전747년의 일이고 목공(穆公)이 다시 진창산으로 사냥을 나가 암꿩을 잡고 그 곳에 보계사를 지은 해는 그로부터96년 후로 그의 재위9년 째인 기원전651년의 일이다. 참고로 문공과 목공의 재위 연도는 각각 기원전765-716과 기원전659-62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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