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蜂蜜之計(봉밀지계), 託孤荀息(탁고순식) > 2부3 백리해

제27회. 蜂蜜之計(봉밀지계), 託孤荀息(탁고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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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3,906회 작성일 07-02-06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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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蜂蜜之計 託孤荀息(봉밀지계 탁고순식)

꿀과 벌로 신생을 죽이는 여희와

어린 세자의 후사를 순식에게 맡기는 진헌공.

1. 완고지가(枯之歌)

- 완고의 노래를 듣고 태자를 버리는 리극

한편 헌공이 이미 우와 괵 두 나라를 정벌하고 당진에 땅에 병합시키고 개선하자 군신들이 모두 경하의 말을 올렸다. 그러나 여희만은 마음속으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녀의 본마음은 원래 세자 신생이 괵나라를을 정벌하다가 싸움 중에 전사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신생 대신 출전한 태자의 소부 리극이 또다시 공로를 세움으로써 자신의 계획이 일순간에 틀어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별도의 대책을 세우기 위해 우시를 불러 말했다.

「리극은 곧 신생의 소부인데 이번에 높은 공을 이루어 자리가 공고해 졌으니 내가 상대할 수 없게 되었다. 」

「순식이 비록 부장으로 출전했지만 수극지벽과 굴산지마를 이용하여 우와 괵 두 나라를 멸했음으로, 공을 세운 지혜는 리극 위에 있습니다. 만약 순식을 해제와 탁자의 스승으로 모신다면 리극과 그 일당에 대항할 수 있습니다.」

여희가 헌공에게 청하여 순식을 해제와 탁자의 스승으로 정했다. 며칠 후 여희가 다시 우시를 불러 물었다.

「순식은 이미 우리 쪽에 가담했으나 리극은 여전히 조당에서 우리의 계획을 방해할 것 같다. 어떤 계책을 써야 리극을 제거할 수 있겠는가? 리극을 제거해야만 신생은 도모할 수 있지 않겠는가?」

「리극이란 위인은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소심한 사람입니다. 마음을 열고 이해득실로 설득한다면 그는 마음을 움직여 반드시 중립을 지킬 것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기는 쉬운 일입니다. 리극은 평소에 술을 좋아하니 부인께서 번거로우시겠지만 저를 위해 좋은 양 한 마리를 잡아 요리로 만들어 리극에게 보내면 제가 가져가 같이 술을 들다가 슬쩍 운을 띄워 리극의 마음을 떠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우리 당에 들어오면 부인의 복이고 들어오지 않더라도 우리들 배우들이 역시 한 번 장난삼아 해본 일이라고 둘러대면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좋은 생각이오. 그렇게 하기로 합시다.」

여희가 즉시 술자리에 필요한 요리와 기구들을 챙기게 하고 우시는 먼저 리극을 찾아가 청했다.

「대부께서는 병사를 이끌고 우와 괵 두 나라 사이를 달리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소인이 대부를 위해 술자리 준비하여 그 노고를 위로하고 싶습니다.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리극이 허락하자 우시가 즉시 여희가 마련한 술과 고기를 가지고 리극의 집에 당도했다. 리극과 그의 부인 맹씨(孟氏)가 모두 서쪽에 앉아 우시를 손님으로 대하는 예를 취했다. 우시가 재배하고 술잔에 술을 따라 바쳤다. 그는 리극이 술잔을 비우는 동안 감히 앉지 못하고 시립하는 자세를 취하여 존경을 표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매우 흡족한 미소를 띠며 리극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술이 얼근해 졌을 때 우시가 자리에서 일어나 장수를 비는 춤을 추면서 맹씨를 향해 말했다.

「저에게 술을 한 잔 따라 주시어 마시게 해 해주신다면 제가 최근에 새로 배운 노래를 불러 드리겠습니다.」

부인 맹씨가 외뿔소의 뿔로 만든 큰 술잔에 술을 채워 양의 내장으로 요리한 음식과 함께 내주며 물었다.

「새로운 노래의 곡명은 무엇이라 하는가?」

「곡명은 한가롭다는 뜻의 가예(暇豫)라 합니다. 대부께서 이 노래말의 뜻을 아시게 되어 주군을 섬기신다면 장차 부귀와 영화를 보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시가 말을 마치고 머리를 한번 조아리더니 목청을 돋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유가 있다고 남과 친하려고 하지 않으니

날아다니는 짐승보다 생각이 못 미치는구나

사람들은 모두가 잎이 무성한 나무 밑에 모였는데

그대만 유독 고목나무 밑에 앉아 있도다!

무성한 나무는 영화와 번영을 불러오고

말라비틀어진 고목나무는 도끼로 찍어 낸다.

어찌 그대가 성할 수 있겠는가?

도끼를 불러올 따름인 것을!

暇豫之吾吾兮(가예지오오혜)

不如鳥烏(불여조오)

衆皆集于菀兮(중개집우완혜)

爾獨于枯(이독우고)

菀何榮且茂兮(완하영차무혜)

枯招斧柯(고초부가)

斧柯行及兮(부가행급혜)

奈爾枯何(나이고하)

「완(菀)과 고(枯)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람에게 비유하자면 그 모친이 군주의 부인이 되면 아들은 장차 군주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뿌리가 깊고 잎이 무성하면 날아다니는 많은 새들이 나무에 앉습니다. 그래서 무성하다는 뜻의 완(菀)이라 했습니다. 또한 그 모친이 이미 죽었다면 그 자식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모함을 받아 화가 머지않아 몸에 미치게 됩니다. 뿌리가 흔들리고 잎이 떨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짐승도 날아와 둥지를 틀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메마르다는 뜻의 고(枯)라 한 것입니다.」

우시가 말을 마치고 곧바로 리극의 집에서 물러갔다. 마음이 편치 않게 된 리극은 술자리를 파하고 곧바로 후원으로 나가 혼자 산책하며 오랫동안 정원을 여러 번 돌았다. 밤이 깊었으나 식사도 하지 않고 등불을 켜고 자리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이기만 했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리극은 잠자리에 누워서 곰곰이 생각했다.

「우시는 주군과 부인 모두에게 총애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궁정의 아무 곳이나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다. 오늘 저녁에 우시가 부른 노래는 필시 그가 스스로 지어서 부른 것이 아니다. 우시가 하고 싶은 말을 마치지 못한 것 같으니 날이 밝기를 기다려 그를 다시 불러서 그 일에 대해 물어 봐야겠다.」

시간은 이미 한밤중이 되었지만 리극의 마음은 아침까지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조급해졌다. 이윽고 리극이 참지 못하고 잠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 좌우의 종자들에게 분부하였다.

「아무도 몰래 우시를 데려오너라. 내가 물어 볼 말이 있다.」

리극의 부름을 받은 우시는 마음속으로 그 연유를 짐작하고 황망 중에 의관을 정제하고 심부름하러 온 종자의 뒤를 따라 리극의 집에 당도하였다. 리극이 우시를 침소 안으로 불러 들여 침상 앞에 앉힌 후에 손으로 우시의 무릎을 잡으면서 은근히 물었다.

「조금 전에 말한 완고(菀枯)에 대해서 내가 이미 대충은 짐작은 하고 있지만 그 말은 곡옥에 계시는 세자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그대는 그 노래말을 배울 때 어떤 소문을 들었지 않았는가? 나에게 숨김이 없이 상세히 말해 줄 수 없겠는가?」

「오래 전부터 말씀드리려고 했으나 대부께서는 곡옥에 계시는 세자마마의 소부라 제가 말씀을 드리면 괴이하게 생각하시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아직까지 감히 고하지 못했습니다.」

「나로 하여금 화를 면하게 해주는 말인데 어찌 내가 괴이하다고 여기겠는가?」

우시가 머리를 숙이고 침상 곁으로 다가앉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은근하게 말했다.

「지금 주군께서는 태자를 죽이고 해제를 세자로 새로 세우기로 여희 부인에게 이미 허락하셨습니다. 조만간에 주군께서 행동에 옮기실 예정이십니다.」

「그렇다면 그 일은 간하여 못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군부인이 주군에게 총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대부께서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 또한 양오와 동관오 두 대부도 역시 주군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 일입니다. 군부인은 안에서, 두 대부는 밖에서 서로 호응하여 일을 도모하는데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군주의 뜻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태자를 죽이는 일은 나는 차마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태자를 도와 주군에게 항명하는 행위도 또한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아무 쪽에도 속하지 않고 중립에 선다면 내가 화를 면할 수 있겠는가?」

「중립을 취하신다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시가 물러가자 리극은 앉아서 뜬눈으로 밤을 새워 이윽고 새벽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리극이 종자들에게 명해 옛날에 태복(太卜) 곽언(郭偃)과 태사(太史) 소(蘇)가 한 말을 적어 놓은 죽간을 꺼내 오라고 해서 읽어보았다. 손가락을 굽어보며 햇수를 계산해 보더니 과연 그 날로부터 정확히 십 년째 되는 해였다. 리극이 한탄하면서 말했다.

「점괘의 이치가 어찌 이다지도 신통하단 말인가?」

이윽고 날이 밝아 오자 즉시 대부 비정보(丕鄭父)의 집을 찾아가 좌우를 물리치고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 태사 소와 태복 곽언의 점괘가 이제 실현되려고 합니다.」

「무슨 소리를 들으셨습니까?」

「어제 밤에 우시란 자가 나를 찾아와 말하기를 ‘주군께서 장차 태자를 죽이고 해재를 세울 예정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부께서는 무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중립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대부의 말은 불난 집에 섶을 던지는 행위와 같습니다. 제가 대부께 한 가지 일러드리겠습니다. 대부께서 여희 일당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어야 여희 일파도 대부를 의심하게 되어, 대부를 두려워하는 그들도 틀림없이 태자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늦출 것입니다. 그 사이에 대부께서는 즉시 태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끌어 모아 당을 만들어 태자의 지위를 공고히 한 다음 기회를 보아 주군에게 간하여 태자를 폐하고자 하는 뜻을 바꾸도록 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일의 성패는 아직 결정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데 하물며 대부께서 이 시점에서 중립을 지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대부의 말은 태자를 고립시켜 장차 나라에 변란이 일어나 그 화가 대부에게도 닥칠 것입니다.」

리극이 발을 구르며 한탄하였다.

「내가 어찌하여 좀 더 일찍 대부와 이 일을 상의하지 않았는지 후회막급입니다.」

리극이 수레를 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서 일부러 수레 위에서 굴러 떨어져 몸을 다쳤다. 리극은 다음날 다리가 부러졌기 때문에 조당에 참석할 수 없다고 하면서 집안에 틀어 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를 두고 사관이 시를 지었다.

좋은 양고기와 술잔에 우인이 추는 춤을 즐겼다.

노래 한 곡에 태자의 생명만 헛되이 죽었다.

원려가 없는 대신은 웃음거리가 되었고

대신의 중립은 오히려 화를 재촉 했다네!

特羊具亨優人舞(특양구형우인무)

斷送儲君一曲歌(단송저군일곡가)

堪笑大臣无遠識(감소대신무원식)

却將中立佐操戈(각장중립좌조과)

2. 蜜蜂之計(밀봉지계)

- 꿀과 벌로 신생(申生)을 함정에 빠뜨리는 여희-

우시가 돌아와 리극이 중립을 지키겠다는 말을 전하자 여희가 크게 기뻐하였다. 여희는 밤이 되어 헌공과 같이 잠자리에 들면서 말했다.

「태자가 곡옥에 거한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군께서는 첩이 멀리 떠나 있는 태자를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하여 한번 부르시기 바랍니다. 첩은 단지 세자에게 덕을 베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풀어보고 싶습니다.」

여희의 말을 기특하게 여긴 헌공이 곡옥에서 태자를 불렀다. 신생이 헌공의 소환에 응하여 도성인 강성(絳城)에 당도하여 먼저 헌공을 배알하고 문안인사를 올렸다. 다시 헌공에게 물러 나와 여희가 사는 궁궐에 들어가 인사를 여쭈었다. 여희가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한 음식을 내와 신생을 대접하였는데 그 대하는 태도가 매우 다정했다. 다음날 신생이 다시 입궁하여 여희를 배알하며 전날 베풀어 준 연회에 대해 감사의 말을 올렸다. 여희가 다시 신생을 머물게 하고는 음식을 내어 대접했다. 그날 밤 여희가 헌공을 보자 또다시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첩이 태자의 마음을 돌려 가까이 지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곡옥에서 불러 예를 다하고 있습니다. 뜻밖에 태자가 무례하게 나를 대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헌공이 듣고 물었다.

「낮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오늘 낮에 태자가 인사차 왔기에 궁궐에 머물게 하고 점심을 차려 접대했습니다. 그런데 태자가 술을 구하여 마시더니 거나하게 취하여 첩을 희롱하면서‘부왕께서 연로하신 데 부인께서는 지낼 만하십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첩이 듣고 화가 나서 대답을 하지 않았더니 태자가 다시 말했습니다.‘옛날에 우리 조부이신 무공께서 나이가 많아 꽃다운 나이의 제강을 부왕에게 주었습니다. 지금은 부왕이 연로 하시니 부인을 자식인 저에게 물려주시지 않으신다면 누구에게 물려주시겠습니까?’말을 마치고 저의 손목을 잡으려고 하는 태자의 손을 첩이 완강히 뿌리쳐 욕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군께서 첩의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첩이 시험 삼아 세자를 청하여 후원을 같이 거닐어 보겠으니 군께서는 높은 누각에 오르시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태자의 무도함을 목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헌공이 좋다고 대답했다. 다음날이 되자 여희는 태자를 불러서 궁궐의 후원을 같이 걸었다. 미리 벌꿀을 머리에 바르고 나온 여희의 머리 주위에 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희가 신생을 향해 말했다.

「태자는 어찌하여 나에게 덤벼드는 벌들을 쫓아주지 않는가?」

신생이 여희의 말을 듣고 소매를 앞뒤로 흔들어 벌들을 쫓았다. 헌공이 누각 위에서 멀리서 바라보니 과연 신생이 여희를 희롱하고 있었다. 헌공이 대노하여 즉시 신생을 잡아오게 하여 죽이려고 하였으나 여희가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태자가 첩이 불러서 왔는데 죽인다면 이것은 첩이 태자를 죽였다는 죄명을 얻게 됩니다. 또한 이 일은 궁중에서 일어나는 애매지사(曖昧之事)라 세상사람들에게 실상을 제대로 알릴 수도 없습니다. 잠시 고정하시기 바랍니다.」

3. 조중방독(胙中放毒)

- 제사고기에 독을 풀어 신생을 모함하다. -

헌공이 신생을 죽이지 않고 즉시 곡옥으로 돌려보내고 한편으로는 몰래 사람을 보내 신생의 죄를 찾게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후에 헌공이 적환(翟桓) 땅으로 사냥을 나갔다. 여희가 우시를 불러 계교를 다시 꾸민 다음 사람을 신생에게 보내 말을 전하게 했다.

「꿈에 태자의 모친이 주군의 꿈에 나타나‘먹을 것이 없어 배고픔을 참을 수 없습니다. 속히 제사를 지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했소. 태자는 지체하지 말고 모친의 사당으로 나가 제사를 지내시오.」

제강의 사당은 곡옥에 있었다. 여희의 전갈을 받은 신생은 그 즉시 제강에게 제사를 올리고 제사고기를 사람을 시켜 헌공에게 바쳤다. 그때 헌공은 아직 사냥터에 있었기 때문에 신생이 보낸 제사 고기는 궁중에 보관하도록 했다. 그리고 엿새 후 헌공이 사냥터에서 돌아왔다. 여희가 짐독을 술에 넣어 독주를 만들고 제사고기에는 독약을 발라서 헌공에게 바치면서 말했다.

「제강이 첩의 꿈에 나타나서 음식이 없어 배가 고파 고통을 참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으나 마침 군께서 사냥 중이시라 제가 직접 태자에게 전하여 제사를 지내도록 했습니다. 태자가 제사고기와 술을 보내 온지 오래되었습니다.」

헌공이 잔을 들어 술을 마시려고 하는데 여희가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외부에서 보내 온 술과 음식은 시식을 해보지 않고 드시면 안됩니다.」

헌공이 듣고 말했다.

「옳은 말이오.」

여희가 즉시 잔 속의 술을 땅위에 쏟자 땅 바닥의 흙이 부풀어 올라왔다. 다시 개를 끌고 오게 하여 저민 고기 한 덩어리를 던져 주었다. 그 개가 고기를 삼키더니 즉시 피를 토하면서 죽었다. 여희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내시를 불러 술과 음식을 먹으라고 했다. 내시는 먹으면 죽을 줄 알고 먹지 않으려고 했다. 여희가 옆의 시종들에게 강제로 붙들게 하고 술과 고기를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내시는 그 즉시 일곱 구멍에서 피를 흘리면서 죽었다. 여희가 크게 놀란척하면서 쏜살같이 헌공이 앉아 있는 곳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통곡했다.

「하늘이시어, 하늘이시어! 이 나라는 장차 태자의 소유인데 주군이 연로하였다고 어찌하여 그 사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이렇게 시해려는 것입니까?」

말을 마친 여희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비 오듯이 흘렸다. 다시 헌공 앞으로 다가서더니 근심의 빛을 얼굴에 띄우며 말했다.

「태자가 이렇듯 흉계를 꾸미고 있는 이유는 단지 첩의 모자 때문이오니 원컨대 주군께서는 이 술과 고기를 첩이 먹게 하여 첩으로 하여금 대신 죽게 해 주십시오.」

여희가 말을 마치고 헌공에게서 술잔을 빼앗아 마시려고 하였다. 여희에게 술잔을 빼앗아 땅에 쏟아 버린 헌공은 화가 치밀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희가 슬피 곡을 하다가 땅에 쓰러지면서 한탄했다.

「태자야말로 진실로 잔인한 사람입니다. 그 부친 되는 사람을 죽이려고 했으니 다른 사람이야 말해 무얼 하겠습니까? 원래 주군께서 태자를 폐하려고 한 것을 첩이 반대했고 후원에서 나를 희롱하여 주군이 죽이려고 한 것을 제가 힘써 권하여 죽음을 면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주군을 시해하려고 하니 첩이 군을 크게 그르치게 하였습니다.」

마음속의 분을 삭이면서 손으로 여희를 부축하여 일으킨 헌공이 간신히 입을 떼어 말했다.

「내가 마땅히 군신들을 불러 이 사실을 알려 역자를 죽이리라!」

때가 되어 조당에 나가 여러 대부들을 소집하여 태자의 일을 상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호돌과 리극 및 비정보만은 소집에 응하지 않고 세자를 죄 주자는 조정공론에서 빠졌다. 호돌은 옛날부터 두문불출하고 있었고, 리극은 수레에 일부러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상태였으며, 비정보는 출타중이라는 핑계를 댔다. 이윽고 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대신들 모두가 조당에 모이자 헌공은 신생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헌공이 옛날부터 신생을 폐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여러 신하들은 군신 간에 서로 얼굴만 쳐다볼뿐 감히 헌공의 말에 토를 달지 못했다. 동관오가 먼저 반열에서 나와서 말했다.

「태자가 무도하니 원컨대 신으로 하여금 주군을 위해 태자를 토벌하게 해주십시오.」

헌공이 즉시 동관오를 대장으로 양오를 부장으로 임명하여 병거200승을 주어 곡옥에 있던 태자를 잡아오도록 했다. 헌공이 출정하려는 두 대장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태자를 따르는 군사가 많을 뿐 아니라 또한 병법에도 일가견이 있으니 그대들은 군사를 움직일 때 부디 신중해야 할 것이다.」

4. 신생자살(申生自殺)

- 여희의 모함에 빠져 죽음을 택하는 신생-

비록 두문불출하여 세상 밖으로 나오는 않았지만 때때로 사람을 시켜 탐문하여 조당의 돌아가고 있는 일은 알고 있었던 호들이 급히 밀서를 신생에게 보냈다. 신생이 태부 두원관과 상의했다. 두원관이 말했다.

「제사고기는 이미6일 전에 궁중에 보내졌습니다. 그 사이에 고기 속에 독을 넣었을 것입니다. 세자께서 이 일의 진상을 밝히신다면 군신들 중에 어찌 이 일을 밝히고 싶은 사람이 없겠습니까? 부디 손 놓고 앉아서 죽음을 맞이하지 마십시오.」

「부군께서는 여희 부인 없이는 잠자리를 불안해하시며 식사도 하시지 않으시는데 내가 사리를 따진다 한들 일의 진상을 밝히지 못할 뿐 아니라 나의 죄만 더해질 뿐입니다. 다행히 일의 시말이 밝혀진다 해도 부왕은 여희부인을 감싸고돌아 죄를 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 또한 부왕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입니다. 내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방법 외는 다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다른 나라로 도망갔다가 때를 기다려 후일을 도모하십시오.」

「부군께서는 내가 죄가 없음을 모르시고 군사를 보내 토벌하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부군께서 내린 죽음을 피해 다른 나라로 도주한다면 나는 장차 불효자라는 흉악한 이름을 얻게 되고 또한 만약 외국으로 도주해서 후에 그 죄가 부군에게 돌아간다면 그 일로 인해 부군이 해를 입게 됩니다. 결국은 부군의 나쁜 점을 세상에 알리게 되어 세상 제후들의 비웃음을 사게 될 뿐입니다. 안으로는 부모를 괴롭히고 밖으로는 제후들의 의심을 사니 타국으로 도망치는 행위는 안팎으로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부군을 버리고 외국으로 망명길에 오르는 일은 죽음을 피하여 도망치는 행위 외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들으니 ‘인자(仁者)는 군주를 원망하지 않으며 지자(知者)는 두 번 위태로움에 빠지지 않으며 용자(勇者)는 도망치다가 죽지 않는다’①라고 했습니다.

신생이 말을 마치고 편지를 써서 호돌이 보낸 사람에게 다시 주어 전하게 하고 자기는 북쪽을 향하여 절을 두 번 올리고 난 다음 스스로 목을 메달아 죽었다. 호돌이 신생의 편지를 받아서 봉함을 뜯고 읽었다.

「신생이 죄가 있어 감히 죽음을 피하지 못하겠습니다. 비록 나는 죽게 되었으나 부왕은 연로하시고 그 아들은 어리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될 뿐입니다. 백씨께서는 온 힘을 다하여 부왕을 보좌하시어 국가를 이끌어 주시기 바라오며 신생이 죽게 되었지만 백씨에게 받은 은혜는 실로 막중하다 하겠습니다.」

신생이 죽은 다음 날 이오(二五)가 군사를 끌고 곡옥에 당도했으나, 그때는 신생이 이미 자결한 후였다. 양관오가 신생의 태부 두원관을 잡아 함거에 싣고 와서 헌공에게 고했다.

「세자가 스스로 자기의 죄를 알아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저희가 당도했을 때는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헌공이 두원관의 자백을 받아 세자의 죄를 증명하려고 했다. 두원관이 큰소리로 외치면서 말했다.

「천하 어디에 이렇게 억울한 일이 있겠습니까? 이 원관이 스스로 죽지 않고 사로잡혀 온 이유는 태자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세자가 보낸 제사고기를 궁중에 보관한지6일이 넘었는데, 독이 들어 있었다면 어찌 그렇게 오랫동안 음식이 상하지 않았겠습니까?」

여희가 듣고 병풍 뒤에서 뛰어나오며 황급히 소리쳤다.

「두원관이라는 놈은 세자를 잘못 보좌한 죄가 커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데 어찌 속히 죽이지 않고 무엇하십니까?」

헌공이 력사에게 명하여 동추로 뒤에서 명치를 치셔 죽이도록 했다. 두원관은 뇌가 깨져 그 자리에서 죽었다. 여러 군신들은 모두가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원통해했다.

5. 중이분적(重耳奔翟)

- 적(翟) 땅으로 망명하는 공자 중이-

두원관이 죽자 양오와 동관오가 우시(優施)를 찾아가 말했다.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는 태자와 한패인데 태자는 비록 죽었다고 하지만 아직 두 공자가 살아 있으니 우리의 우환이 없어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두 공자를 없앨 방법을 군부인과 상의해 보기 바랍니다.」

우시가 여희에게 말하여 두 공자를 유인하게 하였다. 밤이 되자 여희가 다시 눈물을 흘리면서 헌공에게 호소했다.

「첩이 들으니 중이와 이오가 신생의 음모에 가담했다고 합니다. 신생이 죽은 모든 죄를 저에게 돌려 매일 군사를 훈련시켜 이곳 강성(絳城)을 습격하여 첩을 죽인 후에 대사를 도모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주군께서는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헌공이 듣고 미심쩍어하며 믿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옆에서 모시고 있던 신하 한 명이 보고했다.

「포성과 굴성에 있던 두 공자께서 주군을 배알하기 위하여 성밖의 관문에 당도하셨으나 태자가 죽음을 당한 사실을 알고 즉시 수레를 돌려 자기들 성으로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헌공이 듣고 말했다.

「나를 배알하러 왔다가 도중에 돌아간 행위는 필시 신생과 공모했기 때문이다.」

헌공이 즉시 시인(寺人)② 발제(勃鞮)와 대부 가화(賈華)에게 각각 명하여 군사를 이끌고 포성과 굴성으로 달려가 중이와 이오를 사로잡아 오라고 했다. 호돌이 그의 둘째 아들 호언(狐偃)을 불러 면전에 앉혀 놓고 말했다.

「공자 중이는 갈비뼈가 통짜로 생겨 힘이 장사일 뿐만 아니라 눈동자가 두 개라 그 외모와 풍채가 비범하고 또한 태어날 때부터 재(才)와 지(智) 및 덕(德)을 두루 갖춘 분이시다. 훗날 반드시 패업을 이루실 분이다. 이제 태자께서 돌아가셨으니 마땅히 중이 공자께서 당진의 군주 자리를 이어야 한다. 너는 속히 포성으로 달려가 공자께서 외국으로 탈출하도록 도와라. 지금 공자와 같이 포성에 머물고 있는 너의 형 모(毛)와 합심 전력하여 공자를 보좌하여 후일을 도모하도록 하라.」

호돌의 명을 받고 행장을 꾸린 호언은 강성을 빠져나와5백리 길을 밤낮으로 달려 단숨에 포성에 당도했다. 호언을 맞이한 중이가 크게 놀라 호모를 불러 세 사람이 함께 외국으로 도망칠 방법에 대해 의논을 하고 있는데 발제가 이미 군사들을 이끌고 포성 밑에 당도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포성 사람들이 성문을 닫고 항거하려고 하자 중이가 말리며 말했다.

「부군의 명이라 저항할 수 없다.」

군사들을 이끌고 성안으로 진입한 발제는 중이의 집을 포위했다. 중이와 호씨 형제가 후원으로 달아나자 발제가 칼을 빼 들고 그들의 뒤를 추격했다. 호모 호언 형제가 먼저 담장에 올라가 뒤따라오는 중이를 위로 끌어올리려고 했다. 발제가 중이의 소매를 붙잡고 칼을 뽑아 내리쳤으나 소매 자락 만을 베었을 뿐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발제를 뿌리친 중이는 담장을 넘어 성밖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세 사람은 이족의 나라 적(翟)③으로 도망쳤다.

전날 밤 꿈속에서 성 위에 엎드려 있는 푸른 반룡(斑龍)을 본 적주(翟主)가 오늘 망명해 온 당진의 공자를 보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다. 중이가 적국의 성안으로 들어가 적주와 인사를 나눈 뒤 행장을 풀고 있는데 성 밑에 조그만 수레 몇 대가 당도하기 시작하더니 계속해서 행렬이 뒤를 따라 무리를 이루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성문을 열라고 성루를 향해 소리쳤다. 추격병으로 의심한 중이가 군사들에게 명하여 성루 위에서 화살을 쏘아 물리치라고 지시했다. 군사들이 화살을 쏘려고 하는 순간 성 밑의 무리 중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추격하는 군사들이 아니라 당진의 신하들로 중이 공자님을 모시기 위해 뒤따라 온 사람들입니다.」

성루에 올라 성 밑을 살펴보던 중이는 맨 앞에 서서 성루를 향해 외치고 있는 사람이 조쇠(趙衰)임을 알았다. 조쇠는 자가 자여(子餘)이고 형 조위(趙威)와 함께 당진의 조정에서 대부 벼슬을 하고 있은 사람이었다. 조쇠가 자기의 뒤를 따라 왔다는사실을 알게 된 중이는 기뻐하며 말했다.

「자여가 왔으니 걱정이 없게 되었구나!」

중이는 즉시 성문을 열고 성문 밖에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들어오게 하였다. 조쇠 외에 따라온 사람들은 서신(胥臣), 위주(魏犨), 호석고(狐射古), 전힐(顚頡), 개자추(介子推), 선진(先軫) 등 모두가 당진의 저명한 재사(才士)들이었다. 호석고는 호언의 아들이기도 했다. 그 외에 말채찍을 잡고 등짐을 지고 심부름이나 하면서 정성껏 모시겠다는 사람들도 호숙(壺叔)을 포함하여 수십 인이나 되었다. 중이가 크게 놀라 말했다.

「여러분들은 모두가 나라의 조정에서 정사를 돌봐야 하는 사람들인데 어찌하여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까?」

조쇠 등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상이 실덕하여 요사스러운 계집의 말에 빠져 어진 세자를 죽였으니 당진은 조석지간에 큰 난리가 일어날 것입니다. 평소에 넓은 아량과 인자한 마음으로 선비들을 대하셨던 공자를 저희가 따르고자 나라밖으로 탈출하여 왔습니다.」

적주가 나와 중이를 따라온 당진국의 선비들은 만났다. 중이가 여러 사람들에게 읍을 하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마음을 합하여 서로 돕겠다고 하니 우리는 이제 한 몸과 같은 사람들이오. 내가 비록 죽더라도 여러분들의 큰 은혜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

위주(魏犨)가 앞으로 나와 팔을 걷어 부치며 말했다.

「공자께서 포성에 수년간 계시면서 덕을 베푸시어 포성의 백성들은 모두가 공자를 위하는 일이라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적주로부터 얼마간의 군사를 얻어 포성의 백성들과 힘을 합쳐 강성으로 쇄도해 들어간다면 조정에 대한 원한이 이미 골수에 뻗쳐 있는 백성들 중 필시 내응하는 자가 나와 대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주군 측근에 있는 흉악한 간신들을 제거하여 사직을 보전하고 백성들을 무마한다면 여기저기 천하를 떠돌아다니는 도망자 신세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그대의 말은 장하나 그렇게 되면 부군을 놀라게 하여 불효를 저지르게 되니 도망 다니고 있는 자식의 도리로서 감히 할 수 없는 짓이오.」

한낱 용감한 무인 신분의 위주는 자기의 말을 따르지 않는 중이의 모습을 보고 발을 땅에 동동 구르고 이빨을 갈면서 소리쳤다.

「공자께서는 여희의 일당을 마치 무서운 맹호나 사갈처럼 여기시는데 그렇게 행하시다가 어찌 후일에 능히 대사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곁에서 듣고 있던 호언이 위주에게 말했다.

「지금 공자께서는 여희 일당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명분과 의를 먼저 생각하시기 때문이오.」

위주가 듣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고풍스러운 시 한편을 지어 중이를 따라 망명생활을 택한 수많은 재사들에 대해 노래했다.


포성의 공자가 참소를 받아 변을 당하여

수레를 타고 서쪽으로 번개같이 도망쳤다.

등짐에 장검을 차고 찾아온 재사들이 많기도 했다.

영웅들은 모두가 태항산 서쪽의 영웅들이었다.

다투어 따르려고 하던 산서의 수많은 영재들은

구름을 삼키고 비를 토하며 별을 잡는 포부를 지녔었다.

뜻이 높은 문신들은 천하의 기둥을 떠받들고자 했고

무장들은 무지개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용기를 뽐냈다.

蒲城公子遭讒変(포성공자우참변)

輪蹄西指奔如電(윤제서지분여전)

担囊仗劍何紛紛(담낭장검하분분)

英雄盡是山西彦(영웅진시산서언)

山西諸彦爭相從(산서제언쟁상종)

呑云吐雨星羅胸(찬운토우성나흉)

文臣高等擎天柱(문신고등경천주)

武將雄誇駕海虹(무장웅과가해홍)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조성자④가

자기 체온으로 사람의 뼛속까지 따뜻하게 덥힌 일을

또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사공계⑤가

육도삼략으로 부국강병을 일으킨 일을!

이호(二狐)는 폐부 깊숙이 부친의 당부를 지키면서

기계를 내어 닥쳐오는 변란을 막기를

마치 돌아가는 수레바퀴처럼 자유자재로 하였다.

위주⑥는 씩씩한 사람 중의 호랑이고

가타는 천근을 가볍게 들어 올리는 장사였다.

전힐은 가슴에 감춘 뜻을 홀로 행하는 사람이었고

올곧은 선진은 막히는 것이 없었던 재사였다.

누구도 견줄 수 없는 개자추의 절개는

백 번이나 단금질한 금과 같이 아름답게 빛났다.

君不見趙成子(군불견조성자)

冬日之溫徹人隨(종일지온철인수)

又不見司空季(우불견사공계)

六韜三略鐃經濟(육도삼략요경제)

二狐肺腑兼尊親(이호폐부겸존친)

出奇制変圓如輪(출기제변원여륜)

魏犨矯矯人中虎(위주교교인중호)

賈佗强力輕千鈞(가타강력경천균)

顚頡昻藏獨行意(전힐앙장독행의)

直哉先軫胸无滯(직재선진흉무체)

子推介節誰與儔(자추개절수여주)

百鍊堅金任磨礰(백련견금임마력)


훌륭한 인사들 서로 다투어 중이의 손발이 되어

모두 진(秦), 제(齊), 초(楚) 등의 나라를 유랑하면서

같이 걷고 머물고, 자고 먹으면서 결코 헤어지지 않았고

온갖 환난의 와중에서도 군신의 직분을 잃지 않았다.

예부터 진정한 군주는 백령이 돕는다고 했는데

풍호운룡(風虎雲龍)이 어찌하여 외롭겠는가?

오동나무는 봉황과 란새를 불러모으는 데

조당에서는 완고에 대해 물어 부귀영화를 논했는가?

頡頏上下如掌股(힐항상하여장괵)

周流遍歷秦齊楚(주류편력진제초)

行居寢食無相離(행거침식무상리)

患難之中定臣主(환난지중정신주)

古來眞主百靈扶(고래진주백령부)

風虎雲龍自不孤(풍호운룡자불고)

梧桐種就鸞鳳集(오동종취란봉집)

何問朝中菀共枯(하문조중완공고)

중이는 어려서부터 선비들에게 겸손하고 공경하는 태도로 지내다가 그의 나이17세가 되자 호언을 부친처럼 모셨고 조쇠에게서 사사했다. 장성하자 호석고 등을 포함하여 당진의 이름난 명사들과는 가리지 않고 모두 교분을 맺었다. 그런 이유로 중이가 비록 망명하는 신세가 되어 환난 중임에도 불구하고 따르는 호걸들이 그렇게 많았다. 그러나 대부 극예(郤芮)와 여이생(呂飴甥)은 서로 마음속으로 맺은 밀약이 있고 또한 괵석(虢射)은 이오의 외삼촌이 되기 때문에 세 사람은 다른 사람과는 달리 굴성으로 도망가서 이오를 따랐다. 세 사람은 이오에게 인사를 올리고 말했다.

「가화의 군사들이 조석지간에 당도할 예정입니다.」

이오가 즉시 령을 내려 군사를 수습하여 성을 지킬 계책을 세웠다. 원래 가화는 이오를 반드시 잡고야말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군사들을 끌고 굴성에 당도한 가화는 곧바로 쳐들어가지 않고 고의로 포위망을 느슨하게 치고 사람을 시켜 몰래 이오에게 고하게 했다.

「공자께서는 속히 달아나시기 바랍니다. 머뭇거리다가 주군께서 보낸 병사들이 계속해서 들이닥치면 그때는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이오가 극예에게 말했다.

「중이가 적에 있는데 그곳으로 가면 어떻겠습니까?」

「부군께서 두 공자님이 반역을 모의하였다는 참소를 믿으시고 이렇게 토벌군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두 공자께서 도망쳐 적에 있게 되면 여희가 이것을 기화로 삼아 다시 부군께 참소 할 것입니다. 여희의 말이라면 철석 같이 믿고 계시는 부군께서는 군사를 일으켜 적 땅을 토벌할 것은 불문가지이니 차라리 양(梁)나라로 가십시오. 양은 섬진과 가깝고 또한 섬진은 바야흐로 강성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는 혼인으로 맺어진 우호국입니다. 공자께서 훗날 귀국을 도모할 때 섬진의 힘을 빌릴 수도 있습니다.」

이오는 즉시 세 사람과 함께 양나라로 도망쳤다.

한편 가화는 거짓으로 추격하는 척하다가 잡지 못하고 돌아와서 헌공에게 이오가 미리 도망쳐서 붙잡지 못했다고 복명했다. 헌공이 듣고 대노하여 말했다.

「두 놈 중에 한 놈도 잡아오지 못하니 이것을 어찌 용병이라고 하겠는가?」

헌공이 좌우에게 소리쳐 가화를 묶어 밖으로 데려나가 참수형에 처하라는 명을 내렸다. 비정보가 주청했다.

「주군께서 옛날에 사람을 시켜 포와 굴 두 성을 쌓아 병사를 두어 방비하도록 하셨기 때문에 이오를 잡아오지 못한 것입니다. 가화만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양오도 나와서 가화를 위해 진언하였다.

「이오는 용렬한 사람이오니 그렇게 심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중이는 현자로 이름이 나 있어 우리나라의 많은 재사들이 그를 따르기 위해 나라를 떠나 지금 조당이 텅텅 비게 되었습니다. 또한 적국은 우리와는 대를 이어 내려온 원수의 나라라 토벌하여 중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후일에 반드시 화근이 될 것입니다.」

가화를 용서한 헌공은 그 즉시 발제를 불렀다. 이오를 잡아오지 못한 가화가 죄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을 발제는 자기도 치죄를 당할 것으로 생각하고 중이를 잡기 위해 적국을 정벌하겠다고 자청했다. 헌공의 허락을 받은 발제가 군사를 끌고 적국을 정벌하기 위하여 출동했다. 발제가 이끄는 군사들이 적국에 도성에 당도하자 적국의 군주도 역시 군사를 이끌고 출동하여 채상(采桑)⑦의 땅에서 두 달 여를 대치하였다. 비정보가 다시 헌공에게 간했다.

「부자지간의 인연은 절대로 끊을 수 없는 천륜입니다. 두 공자의 죄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국외로 도망쳐 버렸음에도 끝까지 쫓아가서 살해한다면 이는 너무 정도가 지나친 처사입니다. 한편 적국과 싸워 이긴다는 보장도 없어 우리 군사들을 헛고생만 시키게 된다면 이웃나라들의 웃음거리만 될 것입니다. 즉시 발제를 불러 군사를 철수시키심이 옳을 줄 압니다.」

6. 託孤荀息(순식탁고)

- 어린 세자의 후사를 순식에게 맡기는 진헌공. -

비중보의 말대로 하는 방법 외는 다른 수가 없다고 생각한 헌공이 발제에게 사람을 보내 회군을 명했다.

다른 한편 당진의 국내에 남아있던 공자들도 대부분 중이와 이오의 당이라고 의심한 헌공은 후일에 틀림없이 그들은 해제에게 장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헌공은 즉시 공자들을 모두 나라 안에서 쫓아내라는 명을 내렸다. 여러 공자들은 아무도 감히 헌공의 명에 항거하지 않고 나라를 떠났다. 내부의 장애물을 모두 제거했다고 생각한 헌공은 결국 해제를 세자로 세웠다. 순식과 이오(二五)를 제외한 다른 신료들은 울분에 차서 주먹을 불끈 쥐고 몸 둘 바를 몰랐다. 당진국의 대부분 신료들은 헌공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아프거나 늙었다는 핑계를 대고 조정에 나오지 않았다. 그때가 주양왕 원년 기원전651년의 일로써 헌공이 군주의 자리에 오른 지26년만의 일이었다. 그해9월에 헌공은 제환공이 소집한 규구(葵邱)의 회맹에 참석하러 길을 떠났으나, 그가 회맹장에 미처 당도하기 전에 회맹은 이미 끝난 뒤였다. 결국 회맹에 참석하지 못한 헌공은 중도에 돌아오는 길에 병을 얻었다. 여희가 병으로 침상에 누워 있는 헌공에게 다가와 읍을 하며 말했다.

「주군께서 골육에게 배반당하여 공족들을 모두 나라 밖으로 쫓아내고 첩의 자식으로 후계를 세우셨습니다. 당장은 모두가 복종하고 있는 듯하나 첩은 연약한 아녀자이고 해제는 아직 나이가 어립니다. 만약 군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여러 공자들이 외국의 도움을 얻어 군위를 빼앗기 위해 쳐들어온다면 첩의 모자는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할지 난감할 뿐입니다.」

「부인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태부 순식은 충신이오. 충신은 두 마음을 갖지 않는 법이오. 내가 그에게 어린 해제를 특별히 부탁하리라!」

헌공이 순식을 불러 침상 앞으로 다가오게 한 다음 물었다.

「과인이 듣기에 선비의 몸가짐은 충성(忠誠)과 신의(信義)을 그 근본으로 한다고 하였소. 충과 신은 도대체 무엇이라 생각하오?」

「마음을 다하여 주군을 모시는 일을 충이라 하고 죽음에 임해서도 한 번 뱉은 말을 바꾸지 않는 일을 신이라 합니다.」

「과인이 나이가 어린 세자를 대부에게 맡겨 내가 죽은 뒤를 부탁하고자 하니 대부는 나의 부탁을 저버리지 마시오.」

순식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어찌 감히 죽을힘을 다해여 명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헌공이 부지중에 눈물을 흘리자 여희의 곡하는 소리가 장막 뒤에서 들렸다.

그리고 며칠 후에 헌공이 죽었다. 여희가 어린 해제를 안고 와서 순식에게 인도했다. 그때 해제의 나이는11살이었다. 순식이 헌공의 유명을 받들어 해제를 상주로 정하자 백관들이 모두 나와 곡했다. 여희도 역시 유명이라고 하면서 순식을 상경으로 하고 양오와 동관오의 관직을 올려 좌우 사마(司馬)로 삼아 군사의 일을 맡겼다. 이오에게는 특별히 당부하여 군사들을 이끌고 나라 안을 순시하면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변란에 대비하게 했다. 나라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은 모두 순식의 허가를 받은 후 시행하게 되었다. 헌공이 죽어서 그 다음해를 신군의 원년으로 한다는 내용을 주변의 제후들에게 통고했다. 주양왕(周襄王) 2년 기원전651년의 일이었다.

< 제28회로 계속>

주석

①仁不惡君, 智不重困, 勇不逃死

②시인(寺人)/ 임금의 곁에서 후궁의 사무를 맡은 벼슬. 내시(內侍)나 환관(宦官)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③적(翟)/ 현 섬서성(陝西省) 연안(延安) 동쪽 지방에 살던 이민족. 적(狄)이라고도 하며 한나라 때 흉노(匈奴)로 이름이 바뀌었다.

④조성자(趙成子)/ 조쇠(趙衰)의 시호(諡號). 조쇠의 후손들은 후에 당진을 삼분하여 조나라를 세워 전국칠웅의 하나가 되었다.

⑤사공계(司空季)/ 서신(胥臣)의 별호로 진문공(晉文公)이19년 동안 유랑할 때 따라 다녔던 오현인 중의 한 사람이다. 오현인이란 호모(狐毛), 호언(狐偃), 조쇠(趙衰), 선진(先溱), 서신(胥臣)을 말한다. 자는 계자(季子)로써 사공(司空)이라는 벼슬을 지냈음으로 사공계자(司空季子)라고도 부른다. 진문공이 패자를 칭한 후 성복대전에서 세운 공로로 구읍(臼邑)에 봉해져 성을 구(臼)로 바꿔 구계(臼季)로 불렀다. 유랑 생활 중 진문공에게 목공의 딸 회영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성복대전에서 군사들에게 호랑이 가죽을 씌워 초군의 말들을 놀라게 하여 승리의 전기를 마련했다. 후에 다시 반역죄로 처형되었던 극예(郤芮)의 아들 극결(郤缺)을 발굴하여 진문공을 설득하여 임용하도록 했다.

⑥위주(魏犨)/ 시호는 위무자(魏武子)이다. 후에 그의 후손은 전국 때 당진을 삼분하여 위(魏)나라를 세웠다.

⑦채상(采桑)/현 산서성 길현(吉縣) 동쪽 부근이며 이오가 망명하기 전 지키고 있었던 굴성(屈城) 부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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