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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兩弑孤主(양시고주), 一平晉亂(일평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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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3,943회 작성일 07-02-0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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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兩弑孤主 一平晉亂(양시고주 일평진란)

어린 두 임금을 시해한 리극(里克)과

당진(唐晉)의 변란을 일차 평정한 진목공

1. 양시고주(兩弑孤主)

- 당진의 어린 두 군주를 시해하는 리극-

순식이 공자 해제를 옹립하여 헌공의 후사로 세우자 모든 백관들은 헌공의 빈소에 나와서 곡했지만 유독 호돌만은 병을 핑계하고 나오지 않았다. 리극이 은밀히 비정보를 찾아가 상의했다.

「어린아이가 군위에 오르게 되면 망명한 공자들은 어찌 되겠습니까?」

「이 일은 모두 순식에게 달렸으니 잠시 순식의 의중을 살펴봅시다.」

두 사람은 마차를 타고 순식이 집무하는 공관으로 갔다. 두 사람을 집무실로 맞이한 순식에게 리극이 입을 열어 말했다.

「주상은 세상을 떠나시고 중이와 이오 두 공자는 모두 국외에 있습니다. 순대부께서 국정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대신의 자리에 있는데 어찌하여 국외에 계시는 공자를 즉시 불러 들여 군위를 잇도록 하지 않고 총첩의 소생을 세우려고 하십니까? 당진의 신료 중 그 누구가 대감의 결정에 승복하겠습니까? 또한 세 공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해제 모자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맺혀 있는데 이제 주상께서 세상을 뜨셨으니 누가 그 뒤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주상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그들은 반드시 군주의 자리를 노릴 것입니다. 섬진과 적국(翟國)이 각각 두 공자를 돕고 나라 안의 사대부들이 내응한다면 대부께서는 이를 대처할 계책을 갖고 있으십니까?」

「나는 선군의 유명을 받아 해제의 후견인이 되었으니 해제가 즉 나의 군주라! 해제 외에 나의 군주가 될 다른 사람이 있는지는 나는 알지 못하오. 만일 따르다가 힘이 부족하면 단지 죽음만이 있을 뿐이오!」

비정보가 나서서 리극을 거들었다.

「죽음은 헛된 일일뿐입니다. 어찌 생각을 고치지 않으십니까?」

「나는 이미 충성와 신의를 선군에게 맹세했소. 비록 나의 죽음이 무익하다 하더라도 어찌 식언을 할 수 있겠소?」

두 사람이 재삼 권유했으나 순식의 마음은 마치 철석과 같아 끝내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 순식의 집무실에서 물러 나왔다. 리극이 정보에게 말했다.

「나는 순식과 옛날에 같이 싸움에 나갔던 동료의 정의로써 이로움과 해로움을 일러 깨우쳐 주려고 했건만 그가 이렇듯 내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는 해제를 위하고 우리는 중이를 위하니 각기 그 뜻을 이루도록 전력을 다하는 것 외는 다른 방법은 없겠습니다. 세상에 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두 사람이 비밀리에 모의하여 심복 중에서 장사 한 사람을 골라 해제의 호위군사들과 같은 옷으로 바꿔 입혀 그들 대열에 섞이게 했다. 이윽고 해제가 자기의 처소에서 나와 빈소에 절을 올리기 위해 빈청으로 들어가 짚으로 엮은 방석 위에서 절을 올리려고 했다. 그 순간 비호같이 달려든 자객이 품속에서 비수를 꺼내 해제를 찔러 살해했다.그때 해제 곁을 지키고 있던 우시가 창졸간에 허리에 찼던 칼을 빼 들고 자객의 앞을 막아섰으나 그 역시 함께 살해되고 말았다. 순식간에 궁중에 큰 난리가 일어났다. 그때 순식은 빈청에서 곡을 끝내고 궁궐 밖으로 퇴궐하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궁궐 안에서 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순식은 크게 놀라 다시 빈청으로 뛰어 들어가 해제의 시체를 어루만지며 대성통곡했다.

「내가 선군으로부터 탁고지명(託孤之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키지 못했으니 이것은 모두 나의 커다란 죄다.」

순식이 울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죽으려고 했다. 여희가 보낸 사람이 급히 달려와 순식을 말리면서 그녀의 말을 전했다.

「선군의 시신이 아직 관속에 들어 있는데 대부는 어찌 혼자만을 생각하십니까? 비록 해제는 죽었다 하나 탁자(卓子)가 아직 있으니 선군의 뒤를 이을 수 있소.」

정신을 가다듬은 순식이 즉시 빈청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군주의 호위를 잘못한 죄를 들어 수십 명을 죽이고, 이어서 그날 바로 백관회의를 열어 다시 탁자를 군위에 앉혔다. 그때 탁자의 나이는9살이었다. 리극과 비정보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가장하고 조정회의에 나오지 않았다. 양오가 순식에게 말했다.

「어린 해제의 죽음은 실은 옛날 억울하게 죽은 세자 신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리극과 비정보 두 사람이 저지른 행위 때문에 일어난 입니다. 오늘 그들이 조정에 나오지 않은 행위야 말로 그들이 해제를 살해한 확실한 증거라 하겠습니다. 군사를 보내 토벌해야 합니다.」

「두 사람의 대부는 당진의 노신들이라 그 뿌리는 깊고 무리는 단단하게 뭉쳐져 있을 뿐만 아니라, 옛날 태자 신생과 생사고락을 함께 한 칠여대부(七輿大夫)①들입니다. 그럼에도 증거가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를 공격하여 실패라도 한다면 대사를 그르치게 됩니다. 그러니 잠시 참았다가 그들을 안심시켜 마음을 놓게 한 후에 일을 도모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선군의 장례를 끝내고 개원해서 탁자의 군위를 확고하게 안정시키야 합니다. 또한 이웃 나라들과 우호를 맺어 신군의 지위를 인정받고 리극 등의 무리들이 흩어지도록 만든 연후에 그들을 도모하여만 만전을 기하는 일이 됩니다.」

양오가 물러 나와 동관오에게 순식의 말을 전하면서 불만을 이야기하였다.

「순식은 충직하긴 하나 생각이 모자란 사람입니다. 일을 꾸밈에 있어 먼 길로만 돌아가려고 하니 믿을 바가 못 됩니다. 리극과 비정보는 비록 같은 뜻을 갖고 있는 사이이기는 하나 리극은 죽은 태자 신생의 스승으로써 그 원한이 가슴에 맺혀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리극만 죽여버린다면 비정보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오의 말에 동관오가 물었다.

「리극을 죽일 어떤 계획이라도 가지고 있습니까?」

「내일 모래 선군의 발상 날 동문에 갑사들을 매복시켰다가 그가 장례 행렬을 전송하기 위해 나오기를 기다려 갑자기 뛰어나와 공격하여 죽인다면 한 사람의 장사 힘만으로도 가능할 일입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나에게 도안이(屠岸夷)라는 식객이 있습니다. 그는 능히3천 근을 등에 짊어질 수 있고 달릴 때는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빠른 민첩한 장사입니다. 만약 그를 높은 벼슬과 후한 봉록으로 설득한다면 틀림없이 일을 성사시킬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즉시 도안이를 불러 리극을 죽인다면 높은 벼슬과 많은 봉록을 주겠다고 말했다. 평소에 대부 추천(騅遄)과 서로 깊이 사귀는 사이였던 도안이는 몰래 추천을 찾아가 두 사람이 시킨 일을 고하면서 물었다.

「제가 이번 일을 행하려고 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태자가 원통하게 죽어 온 나라에 애통해 하지 않는 사람이 없소. 이것은 모두가 여희 모자로 인하여 생긴 일이오. 오늘 여희의 무리들을 제거하고 공자 중이를 모셔와 당진의 군주로 세우려고 하는 리극과 비정보 두 대부의 계획은 의로운 일이오. 그대가 만약 망령된 자를 돕고 충성스러운 사람을 해친다면 불의를 행하는 일이오, 우리들은 그대와 같은 사람은 용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후세가 만대에 이르기까지 그대는 욕을 먹게 되오.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오!」

「나는 소인배라 아무 것도 모르고 하려고 했던 일이니 돌아가 못하겠다고 하겠습니다.」

「그만 둔다고 하면 그들은 틀림없이 다른 사람을 찾아 대신 시킬 것이오. 그대가 거짓으로 허락하는 체하고 창을 거꾸로 겨누어 역적들을 주살한 후에 공자를 모셔와 당진의 군주로 세운다면 그대는 그 공을 여러 대부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 앞으로 부귀를 누리며 이름을 후세에 떨칠 수 있소. 그들과 한패가 되어 불의를 행하여 몸을 망치는 일 중 어느 편을 택하겠소?」

「대부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마음이 변하지 않겠소?」

「대부가 미심쩍게 생각하신다면 제가 맹세를 하겠습니다.」

도안이가 닭을 잡아 그 피를 얼굴에 발라 맹세의 의식을 행하고 돌아갔다. 추천으로부터 일의 전말들 전해들은 비정보는 그 즉시 리극에게 달려가 고했다. 리극은 문중의 무장한 가병을 정돈하여 장례식 날 일제히 거사를 하기로 했다. 이윽고 헌공의 장례식 날이 되었으나 리극은 병을 핑계 대고 장례식에 나오지 않았다. 도안이가 동관오에게 말했다.

「여러 대부들이 모두 장례식장에 있는데 단지 리극만이 홀로 자기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리극의 생명을 빼앗을 절호의 기회인 듯 합니다. 청컨대 무장한 병사3백 명만 주시면 그의 집을 포위하여 리극의 일당들을 몰살시키겠습니다.」

동관오가 크게 기뻐하여3백의 군사를 도안이에게 주어 리극의 집을 포위하게 했다. 리극이 고의로 사람을 헌공의 장례식장에 보내 변이 났음을 고했다. 순식이 놀라서 곁에 있던 동관오에게 묻자 동관오가 대답했다.

「리극이 장차 일으킬 변란을 걱정하여, 우리들 몇 사람이 상의하여 자객들을 시켜 리극의 집을 포위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조치해 놓고 있는 중입니다. 일이 성공하면 대부의 공이고, 성공하지 못해도 우리가 독단으로 행했다고 하여 대부에게는 결코 누가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마음이 초조해진 순식은 건성으로 대강대강 장례식을 끝내고 즉시 이오(二五)를 시켜 병사를 끌고 가서 리극의 집을 공격하게 하고 자신은 탁자를 모시고 조당에 앉아서 좋은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동관오가 병사들을 이끌고 리극의 집에 당도했다. 도안이가 마중나와 동관오에게 따로 보고 할 일이 있다고 하면서 한쪽으로 데려가더니 갑자기 무쇠 같은 주먹으로 동관오의 목을 쳤다. 동관오의 목이 부러져 땅에 떨어졌다. 동관오를 따라온 군사들은 크게 동요했다. 도안이가 크게 외쳤다.

「공자 중이가 섬진과 적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성밖에 당도했다.그래서 리극 장군은 나에게 명을 내려 간사스럽고 망령된 무리들을 죽여 태자 신생의 원한을 갚고 중이 공자를 맞이하여 이 나라의 군주 자리에 모시려 하고 한다. 그대들 중 내 말을 따르고자 하는 자는 남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가도 좋다.」

중이가 당진의 군주로 추대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군사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남아 도안이의 뒤를 따랐다. 동관오가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이 혼미해진 양오는 순식과 의논하여 탁자를 모시고 당진을 탈출하여 다른 나라로 도망치려는 생각으로 허겁지겁 조당의 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곧이어 뒤를 추격한 도안이에게 추격당해 더 이상 달아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리극, 비정보, 추천 등이 각기 무장한 가병들을 이끌고 한꺼번에 달려와 양오의 앞길을 막아섰다. 양오가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음을 알고 칼을 빼어들고 자기 목을 찔러 자결하려고 했으나 칼이 깊숙이 들어가지 않아 미처 죽지 않자, 도안이가 팔을 뻗어 양오를 잡고 있는 사이에 리극이 휘두른 칼에 양오는 몸이 두 동강이가 나서 죽었다. 그때 좌행(左行) 대부 공화(共華) 역시 가병들을 이끌고 리극 등을 돕기 위해 달려와서 일제히 조당의 문을 향하여 쳐들어갔다. 뒤이어 당도한 리극이 칼을 뽑아 들고 앞장서자 여러 사람들이 뒤따라서 조당에 들어섰다. 조당에 있던 사람들은 살기등등해서 들어오는 리극의 일행을 보고 모두 놀라 흩어져 도망쳤다. 혼자 남은 순식이 침착한 자세로 왼손으로 탁자를 껴안고 오른손으로는 소매를 들어 리극의 무리들을 향해 손을 휘저어 무언의 항거를 표시했다. 탁자가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순식이 리극을 향해 말했다.

「어린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나를 대신 죽이고 선군의 일점혈육을 살려주기 바라오.」

「그렇다면 신생은 어디에 있는가? 신생은 선군의 일점혈육이 아니던가?」

리극이 도안이를 향해 소리쳤다.

「어찌하여 손을 쓰지 않는가?」

도안이가 순식의 품안에서 탁자를 빼앗아 계단 아래로 던져 버렸다. 단지 철썩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탁자의 몸은 고기 덩어리로 변하고 말았다. 순식이 대노하여 칼을 빼 들고 리극을 향하여 달려들었으나 역시 도안이에게 잡혀 목이 잘리고 말았다. 탁자와 순식을 죽인 리극 등의 일행은 즉시 궁중으로 몰려 들어갔다. 조당에 변이 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 여희는 리극 등의 일행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궁중에서 빠져나와 가군(賈君)의 처소로 들어가 피난하려고 했다. 가군이 문을 닫아걸고 맞아들이지 않았다. 여희가 가군의 집에서 물러 나와 다시 후원으로 도망치다가 호수 위에 놓인 다리에 이르자 살아 날수 없음을 알고 몸을 던져 깊은 물에 빠져 죽었다. 리극이 명하여 시체를 건져오게 한 다음에 여러 토막으로 참했다. 여희의 동생은 비록 탁자를 낳았으나 헌공에게 총애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권세도 부린 적이 없어 죽음만은 면하게 해주고 별실에 가두었다. 이오(二五)와 우시의 일족을 하나도 빠짐없이 잡혀 죽임을 당했다.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여희의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무엇을 위하여 신생을 모함하여 죽였는가?

어린 아들에게 나라를 물려주려고 한 짓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모자가 화를 당하여 비명에 죽었으니

옛날 가여가(暇豫歌)②의 노래말이 가소롭구나.

譖殺申生意若何(참살신행의약하)

要將稚子掌山河(요장치자장산하)

一朝母子遭餠肉(일조모자조병육)

笑殺當年暇豫歌(소살당년가예가)

염선이 또 시를 지어 순식이 군주의 란명(亂命)을 받들어 적자를 폐하고 서얼을 세자로 세워 비록 충성을 다하여 죽었지만 순식의 생각이 부족했다고 평했다.

혼군의 란명을 어쩌자고 받들어

죽음으로 바친 충성이 소견 좁은 일이 되었다.

가도멸괵을 행한 지모는 어디로 갔기에

군신이 속수무책으로 만사가 부질없게 되었는가?

昏君亂命豈宜從(혼군란명개의종)

猶說硜硜效死忠(유솔갱갱효사충)

璧馬之謀何處去(벽마지모하처거)

君臣束手一場空(군신속수일장공)

2. 이오쟁위(夷吾爭位)

- 섬진의 도움을 얻어 당진의 군주자리를 차지하는 진혜공 이오-

리극이 조당에 백관을 불러 모아놓고 말했다.

「지금 해제와 탁자를 제거했으니 공자들 중 가장 연장이고 현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중이 공자뿐이라 마땅히 불러 당진의 군주로 세워야 합니다. 여러 대부들 중 제 말에 동의하는 분들은 이 죽간에 서명하시기 바랍니다.」

비정보가 나서서 말했다.

「이것은 호돌 노대부가 아니면 불가합니다.」

리극이 즉시 사람을 시켜 수레를 보내 모셔오게 하였으나 호돌이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들 둘이 국외로 망명하여 중이 공자를 모시고 있는데 만약에 내가 앞장서서 데려 온다면, 나라 안에 아직 여희의 잔당들이 남아 있고, 그리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일들이 온전하게 잠복해 있어 나라가 아직 안정되지 않고 있으니 결국 두 세력 사이에 내전에 일어나 그들을 모두 죽이게 되는 결과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을 정리한 호돌이 자기를 모시러 온 사람을 향하여 큰 소리로 말했다.

「이 호들은 단지 하나의 쓸데없는 노인으로 오로지 여러 대부들이 정하는 대로 따를 뿐이라고 전해 주시오.」

호돌의 말을 전해들은 리극이 즉시 붓을 잡고 맨 먼저 목간에 서명하자 뒤이어 비정보가 그 다음에는 공화, 가화, 추천 등의 대부들이 차례로 서명했는데 모두30여 명에 달했다. 후에 당도한 대부들은 목간의 공간이 너무 좁아 서명을 할 수 없었다. 이윽고 여러 대부들이 서명한 서간을 여희 일당을 소탕하여 상사의 직에 오른 도안이에게 주어 표문과 함께 가지고 적(翟)나라에 가서 공자 중이를 모셔 오라고 했다. 이윽고 적나라에 당도한 도안이로부터 당진국 대부들이 보낸 서간을 전해 받은 중이는 표문의 서명자 중에 호돌의 이름이 없음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곁에 있던 위주가 보고 큰 소리로 말했다.

「모시려 왔는데 가지 않는다는 것은 계속 나그네로 지내시겠다는 뜻입니까?」

「그대는 모르겠지만 살아 있는 공자들이 그렇게 많은데 하필이면 왜 나에게 표문을 보내 군위에 앉으라고 했겠소? 차제에 어린 군주 둘이 방금 살해되어 그 잔당이 아직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는데 당진에 들어간 후에 만일 다시 빠져 나와야 될 경우가 생기면 그때는 오도 가도 못하고 목숨만 잃게 될 뿐이오. 하늘이 만약 나를 돕는다면 어찌 환난만 나에게 주고 나라를 내려주시지 않겠소?」

호언도 역시 상중에 일어난 변란을 이용하여 군주의 자리에 앉는 행위는 좋은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중이에게 당진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권했다. 중이는 호언의 의견을 듣고 즉시 사자로 온 도안이를 불러 여러 대부들이 자기를 군주로 추대하여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자기의 뜻을 전하게 했다.

「이 중이는 부왕에게 죄를 지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사방으로 도망 다녔습니다. 살아 있을 때는 조석으로 문안을 못 드렸을 뿐만 아니라 식사를 하실 때는 옆에 서서 모시는 정성을 다하지 못했고 돌아가셔서는 또한 곡을 하여 신위에 예를 올리는 정성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어찌 감히 변란을 틈타 나라를 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 대부들은 나보다 더 훌륭한 다른 공자를 세워 당진의 사직을 잇도록 하십시오. 중이는 감히 여러 대부들의 뜻을 받아들여 또다시 잘못을 저지를 수 없습니다.」

도안이가 돌아와서 중이의 말을 여러 대부들에게 고하자 리극이 다시 사자를 보내려고 했다. 대부 양요미(梁繇靡)가 말했다.

「공자라면 누구라도 당진의 군주 자리에 오를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이오를 모셔 오지 않고 하기 싫다는 중이를 굳이 모셔오려고 하십니까?」

평소에 이오를 미심쩍게 생각했던 리극이 말했다.

「이오는 욕심과 함께 인내심이 많습니다. 탐(貪)한다는 것은 곧 신의가 없음을 의미하고 인(忍)은 즉 부모도 모르는 잔인한 성격을 말합니다. 마땅히 중이를 추대해야 합니다.」

양요미가 물러서지 않고 이오를 고집했다.

「중이가 고사하니 그래도 여러 다른 공자들보다는 이오가 낫지 않습니까?」

주위의 다른 대부들이 양요미의 말이 옳다고 찬성하여 리극이 어쩔 수 없이 다시 도안이로 하여금 양요미를 도와 이오를 양나라로부터 모셔 오도록 했다.

한편 공자 이오가 양나라에 있을 때 양백(梁伯)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여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어(圉)라 했다. 이오는 양나라에 살면서 그의 신변이 안전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자 밤낮으로 당진에서 변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면서, 당진의 변란이 일어나면 그 틈을 이용하여 귀국하여 군주자리를 차지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오는 드디어 헌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즉시 여이생(呂飴甥)을 시켜 굴성을 공격하여 점령한 후에 별도의 계책이 설 때까지 그곳을 지키면서 머물도록 했다. 당시 당진의 국정을 책임지고 있던 순식은 다른 일로 바빠 굴성의 일을 처리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해제와 탁자가 리극에게 살해되고 여러 대부들이 공론하여 중이를 모셔오게 했다는 소식이 여이생에게 전해졌다. 이생은 즉시 편지를 써서 이오에게 당진의 변란을 고했다. 이오는 괵석(虢射)과 극예(郤芮) 두 사람과 상의하여 당진에 들어가 중이와 군주의 자리를 놓고 싸울 계획을 세웠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양요미 등이 이오를 모셔 가기 위해 양나라로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오는 손으로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늘이 나라를 중이로부터 빼앗아 나에게 주는구나!」

이오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극예가 이오에게 진언했다.

「중이는 단지 나라를 모양 사납게 얻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그가 당진에 들어가 군주의 자리에 앉지 않는 이유는 필시 의심나는 점이 있어서입니다. 주군께서는 양요미 등의 말을 가볍게 믿으시면 안 됩니다. 무릇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밖에서 그 임금을 찾을 때는 모두가 큰 욕심이 있어서 입니다. 얼마 전에 일어났던 당진의 변란 주모자들 중 리극과 비정보가 그 우두머리입니다. 주군께서는 그들에게 뇌물을 후하게 주어 회유하십시오.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 위험은 남아 있습니다. 무릇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자는 반드시 날카로운 무기를 지녀야 하듯이 주군께서 당진에 들어가시려고 한다면 강한 이웃 나라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당진의 이웃나라 중 오로지 섬진만이 제일 힘이 센 나라입니다. 공자께서는 반드시 사자를 섬진에 보내어 겸손한 말로 군사를 빌려 달라고 하십시오. 만일 섬진이 우리에게 군사를 빌려주어 도운다면 당진의 군주자리는 주군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이오가 여이생의 말대로 리극에게는 분양(汾陽)③땅100만 전(田)을 비정보에게는 부규(負葵)④의 땅70만전을 주겠다고 약조하면서 이를 죽간에 써서 봉한 후에 도안이에게 주어 당진국으로 돌아가게 했다.

3. 일평진란(一平晉亂)

- 이오를 군주로 세워 당진국의 내란을 한 번 평정하는 진목공-

한편 양요미는에게는 당진국 대부들이 서명한 서간을 지참하고 섬진으로 들어가 당진의 모든 대부들은 이오를 그들의 군주로 모시려고 한다는 뜻을 전하고 원군을 청하게 했다. 양요미의 지원 요청을 받은 섬진의 목공은 건숙에게 의견을 물었다.

「변란이 일어난 당진이 나의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전에 꿈속에서 나에게 당진의 변란을 평정하라는 상제의 계시를 실현하라는 하늘의 뜻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인이 듣기에 중이와 이오는 모두 현명한 당진의 공자라 했습니다. 과인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당진의 군주로 삼아야 되겠는데 누구를 세우면 좋겠습니까?」

「중이는 적(翟)에 있고 이오는 양(梁)에 있어 그곳은 모두가 우리 섬진에서 멀지 않습니다. 주군께서는 사자를 보내 조문하면서 두 공자의 사람 됨됨이를 살피신 후에 선택하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목공이 즉시 공자집을 시켜 먼저 중이를, 다음에 이오를 방문하여 조문을 하면서 두 공자의 인품을 살펴보도록 명했다. 공자집이 적에 당도하여 중이를 만나서 자기 군주의 명으로 조문을 왔다고 했다. 두 사람이 상견례를 마치고 자리에 좌정하고 대좌했으나 별다른 말도 나누기 전에 중이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공자집이 심부름하는 사람을 시켜 말을 전하게 했다.

「공자께서는 마땅히 이번 기회에 당진에 입국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군께서는 공자께서 귀국하시겠다면 군사를 내어 앞장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중이가 듣고 조쇠에게 그 의견을 물었다. 조쇠가 말했다.

「나라 안에서는 대부들이 연명하여 주군을 모시려 하고 있음에도, 나라 밖에서 이웃나라의 힘을 빌려 귀국하게 된다면 비록 군주자리는 차지하기는 하겠지만 그다지 현명한 처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

중이가 곧 공자집이 있는 곳으로 다시 나와서 말했다.

「귀국의 군주께서 망명공자인 저에게 조문을 해 주신 은혜를 입어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망명객이라 갖고 있는 재물도 없고 단지 사귀고 있는 어진 사람들을 소중한 보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더욱이 지금은 부왕이 돌아가신 상황이라 더욱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다른 뜻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중이가 말을 마치고 즉시 땅에 엎드려 크게 곡을 한 후에 이마를 조아리며 물러갔는데 사사로운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공자집은 자기의 말을 쫓지 않은 중이의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가 현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공자집은 곧바로 적국을 떠나 양나라에 있는 이오에게 갔다. 공자집을 맞이하여 서로 상견례를 끝낸 이오가 공자집에게 말했다.

「대부께서 군명을 받들어 망명중인 저를 조문하러 오셨는데 어떤 말씀으로 이 망명공자를 가르치시겠습니까?」

공자집이 이오에게도 역시 중이에게 권했던 것처럼 이번 기회를 틈타 당진으로 들어가 군주 자리에 오르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다. 이오가 즉시 이마를 조아리며 감사의 말을 했다. 공자집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이오가 극예에게 말했다.

「섬진의 군주가 나의 입국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섬진의 군주가 별도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없었습니까? 틀림없이 바라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땅을 크게 떼어 뇌물로 바치십시오.」

「영토를 크게 떼어 섬진국에게 넘겨주는 행위는 우리 당진에게 큰 손해가 아니겠습니까?」

「당진에 환국하여 군위에 오르지 못하신다면, 공자께서는 조그만 양나라의 일개 필부에 머무르게 되어 결코 당진의 한 치 땅도 소유할 수 없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갖게 될 것들을 주는 일인데 공자께서는 어찌 그렇게 애석해 하십니까?」

이오가 다시 공자집이 머물고 있는 역관을 방문하여 그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본국의 리극과 비정보 등은 모두 제가 귀국하여 군위를 이어야한다고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지 도망쳐 다니는 망인의 처지라 모두에게 후하게 땅을 주어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잠시 귀국 군주의 은총을 입어 당진으로 들어간 후에 사직을 보전하게 된다면, 귀국의 군주가 동쪽의 중원으로 내왕하시는데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동쪽으로는 괵(虢)⑤의 땅까지 서쪽으로는 화산(華山)⑥에 이르고 하내로는 해량성(解梁城)⑦을 경계로 하는 하외오성(河外五城)⑧의 땅을 군주께 바쳐 이것으로써 군주가 베푼 은혜의 만 분의 일이나마 갚고자 합니다.」

이오가 말을 마친 후 소매 안에서 하외오성을 넘기겠다는 약조를 쓴 죽간을 꺼내어 공자집에게 주고는 얼굴에는 덕색이 농후했다. 공자집이 겸양하여 받지 않으려고 하자 이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 별도로 황금40 일(鎰)과⑨ 백옥으로 만든 구슬 여섯 쌍을 준비하였으니 원컨대 공자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쓰시고, 바라옵건대 상국의 군주님께 잘 말씀하여 주시면 공자님으로부터 입은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공자집이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이오가 주는 황금과 구슬을 받았다. 사관이 이를 두고 시를 지었다.

중이는 걱정하는 마음으로 부친의 상을 치루고

이오는 나라를 탐하여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네

문상객을 대했던 두 사람의 태도만 보아도

앞으로의 두 사람의 성패를 분명히 알겠다.

重耳懮親爲喪親(중이우친위상친)

夷吾利國喜津津(이오리국희진진)

但看受弔相懸處(단간수조상현처)

成敗分明定兩人(성패분명정양인)

공자집이 중이와 이오 두 사람을 방문하고 돌아와 목공에게 고하면서 두 사람을 상면한 실상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목공이 듣고 말했다.

「중이가 이오보다는 훨씬 어질다 하면 필히 중이를 당진에 귀국시켜 군주로 세워야 되지 않겠는가?」

「주군께서 당진의 군주를 세우시려고 하는 이유가 당진을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주군의 이름을 천하에 떨치고자 하심입니까?」

「당진의 일이 어찌 우리나라의 일보다 우선하겠는가? 나의 이름을 천하에 떨치고자 함이다.」

「주군께서 진정으로 당진을 걱정해서라면 현인을 택하여 그들의 군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전하의 이름을 천하에 높이시려고 하신다면 현자를 택하시면 안 됩니다. 다른 나라의 군주를 세웠다는 이름을 떨치시기 위해 현자를 택하신다면 그 이름이 전하의 이름 위에 있게 되고 어리석은 사람을 택하신다면 그 이름이 전하의 이름 밑에 있게 됩니다. 과연 누구를 당진의 군주로 세워야 우리에게 이롭겠습니까?」

「그대의 말이 나의 폐부를 뚫게 만들었다.」

목공은 즉시 공손지에게 병거300승을 내어주며 이오가 당진에 들어가 군위에 앉을 수 있도록 돕게 했다.

목공의 부인 목희(穆姬)는 죽은 세자 신생의 동복 누이동생이다. 목희가 어렸을 때 생모 제강이 일찍 죽었음으로 당시 헌공의 두 번째 부인 가군이 맡아 길렀다. 가군은 사람됨이 심히 어질고 덕이 있었다. 공손지가 군사를 이끌고 가서 이오를 도와 당진의 군주 자리에 앉힌다는 소식을 접한 목희는 손수 편지를 써서 이오에게 전하여 가군의 일을 부탁했다.

「공자께서 당진에 들어가 군위에 오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군주가 되시거든 가군을 특별히 보살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옛날 선군께서 모두 나라 밖으로 쫓아낸 집안의 공자들은 사실은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은 공자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잎이 무성해야만 나무가 번성한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국외의 공자들을 모두 불러들여 당진의 공실이 번성하게 되면 변방의 나라에 와 있는 이 몸의 처지도 편안해질 것입니다.」

이오가 목희의 환심을 사기 위해 분부한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시행하겠다는 내용의 답장을 써서 보냈다.

그때 당진의 내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제환공도 제후들을 고량(高梁)⑩으로 소집했다. 당진의 내란을 진압하여 패자로써의 위엄을 떨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약속한 날이 되어 제환공과 제후들이 모두 고량에 모였으나 그때는 섬진의 군사들이 이미 당진의 내란을 평정하기 위해 진군 중이었고, 주양왕(周襄王) 또한 역시 대부 왕자당(王子黨)에게 군사를 주어 당진으로 파견한 후였다. 이에 제환공은 습붕에게 명하여 얼마간의 군사를 이끌고 당진으로 들어가 주나라와 섬진의 군사들과 힘을 합쳐 이오가 당진의 군위에 앉을 수 있도록 돕게 했다. 한편 굴성에 주둔하고 있던 여이생 역시 성안의 군사들을 모두 이끌고 이오를 맞이하기 위해 출동했다. 고량의 제환공과 제후들은 얼마간 그곳에 머물다가 당진의 정세가 안정되는 모습을 보고 각기 군사들을 데리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한편 내란의 주모자 리극과 비정보는 국구 호돌에게 이오의 군위 등극을 위한 의식을 주관해 주도록 청했다. 두 사람의 청을 허락한 호돌은 어가를 준비하여 여러 신료들을 이끌고 당진의 경계로 나가 이오를 맞이했다. 이오가 마침내 강성(絳城)에 입성하여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당진의 혜공(惠公)이다. 당진의 군주 자리에 오른 혜공은 그 즉시 개원했다. 혜공 원년은 주양왕2년으로, 기원전650년이다. 당진의 사대부들은 평소에 재주와 지혜 및 덕을 두루 갖추어 현자라고 소문난 중이를 흠모하여 그를 군위에 앉히려고 했으나, 중이는 오지 않고 이오가 와서 군위를 차지하게 되어 모두가 크게 실망했다.

4. 忘恩負義(망은부의)

- 은혜를 잊고 신의를 버린 진혜공-

마침내 당진의 군위에 오른 혜공은 그 즉시 양나라에서 난 그의 아들 어(圉)를 불러와 세자에 세웠다. 호돌과 괵석을 상대부로 하고, 여이생과 극예는 중대부로, 도안이는 하대부로 새로 임명하고 그 밖의 신료들은 옛날의 직급을 그대로 따르게 했다. 혜공은 양요미를 사자로 삼아 왕자당을 따라 주나라에 가서 자기의 즉위를 고하도록 명하고 동시에 한간(韓簡)은 습붕을따라 제나라에 보내 각기 혜공이 당진의 군주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 준 처사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게 했다. 그때 섬진군을 이끌고 혜공을 호송한 공손지는 할양해 주기로 약속한 하외오성(河外五城)을 받아 가기 위해 당진에 머물고 있었다. 혜공이 하외의 땅을 떼어 주기 위해 즉시 여러 신하들을 모이게 하여 그 의견을 물었다. 괵석이 눈짓을 하자, 여이생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주군께서 섬진의 군주에게 하외의 땅을 떼어 주기로 약속하지 않았다면 본국에 들어와 군주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이미 들어와 군주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 나라는 곧 주군의 나라입니다. 비록 섬진이 힘이 있다 하나 우리가 약속한 땅을 할양하지 않는 다고 해서 이제 와서 그들이 어찌하겠습니까?」

리극이 간했다.

「주군께서 나라를 얻은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처음부터 힘이 강한 이웃나라에 신의를 잃으시려고 하십니까? 이미 약속하셨으면 이행하셔야 합니다.」

극예가 반박했다.

「하외오성은 우리 당진의 영토 절반에 해당하는 광대한 지역입니다. 결코 섬진에 할양할 수 없습니다. 섬진이 비록 병사의 수가 많다 하지만 힘으로 다섯 개의 성을 빼앗아 갈 만큼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하외오성은 선군께서 무수한 싸움 끝에 얻어 일군 땅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리극이 지지 않고 다시 간했다.

「그렇다면 선군이 힘들여 경영한 땅을 어찌하여 떼어 준다고 약조했습니까? 주기로 약속하고 주지 않는다면 섬진을 노하게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옛날 선군들께서 곡옥(曲沃)에 나라를 세우실 때 우리 당진국의 땅은 한 뼘도 되지 않은 아주 작은 나라였습니다. 오로지 스스로 바른 정치에 힘쓰시어 작은 나라들을 차례로 합쳐 이렇듯 큰 나라가 되었습니다. 주군께서 능히 정치를 쇄신하시어 이웃 나라들과 우호관계를 맺으신다면 어찌 그까짓 성 다섯이 없어지는 일이 걱정되겠습니까?」

극예가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외치며 리극을 비난하였다.

「리극이 이웃나라인 섬진을 위해서 약속을 지키라고 말하는 이유는 주군께로부터 받기로 한 분양의 땅 백만 전을 받지 못할까 걱정해서입니다.」

비정보가 리극의 어깨를 밀며 만류하자 리극이 하려는 말을 멈추었다. 혜공이 말했다.

「주지 않는다면 신의를 잃게 되고 또한 떼어준다면 스스로 약함을 보이는 일이오. 다섯 개의 성 중에서 한두 개 정도 할양하면 어떻겠소?」

이번에는 여이생이 대열에서 나와 말했다.

「비록 한두 개의 성을 바친다 해도 우리가 신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섬진으로 하여금 전쟁을 도발하게 만들뿐입니다. 아예 주지 못하겠다고 하십시오.」

여극(呂郤) 두 사람의 주장에 동조한 혜공은 결국 여이생에게 명하여 하외의 땅을 주지 못하겠다는 편지를 쓰게 하여 섬진의 군주에게 보내게 했다. 여이생이 써서 혜공에게 바친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처음에 이 이오가 하외오성을 군주께 떼어주기로 약속을 드리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다행히 사직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이오가 군주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갚기 위해 하외오성을 바치려고 했으나 이곳의 원로대신들 모두가 반대하면서 말하고 있습니다.‘무릇 나라의 영토란 선군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인데 주군께서 국외에 망명공자의 처지에서 어찌 나라의 땅을 함부로 타인에게 떼어 준다고 하셨습니까?라고 해서 제가 대신들과 논쟁을 하였으나 그들의 뜻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부디 군주께서 저에게 얼마간의 말미를 주신다면 그 은혜 감히 잊지 못하겠습니다.』

혜공이 여러 대신들을 향하여 물었다.

「누가 능히 과인을 위해 섬진에 사신으로 다녀오겠는가?」

비정보가 앞으로 나서며 자기가 가겠다고 자원하자 혜공이 허락했다. 원래 혜공이 섬진에서 환국할 때 비정보에게도 역시 부규의 땅70만 전을 주기로 이미 약조하였으나 혜공이 이미 섬진에 주기로 한 다섯 성을 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자 비정보는 리극과 자기에게 하사하기로 한 땅도 바랄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비정보가 입으로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 이번의 사신으로써의 임무를 자임하고 나선 의도는 섬진에 가서 이 일을 호소하고자 함이었다. 비정보가 공손지를 따라나서 섬진에 당도한 후 목공을 배알하고 국서를 바쳤다. 목공이 편지를 다 읽더니 책상을 밀치며 대노하여 말했다.

「과인은 원래 이오라는 위인은 군주의 자질이 없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 과연 보니 이 도적에게 이렇게 기만을 당할 줄은 몰랐도다!」

목공이 비정보를 잡아서 참수를 하려하자 공손지가 나와 말했다.

「이것은 정보의 잘못이 아닙니다. 원컨대 주군께서는 노여움을 푸소서!」

여전히 화를 풀지 못한 목공이 비정보에게 물었다.

「섬진의 어떤 놈들이 이오로 하여금 과인에게 다섯 성을 주지 말라고 말했는가? 내가 잡아다 목을 치리라!」

「제가 군주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으니 좌우를 물리쳐 주시기 바랍니다.」

화기를 가라앉힌 목공이 부드러운 얼굴색을 띄우며 좌우를 물리치자 목공 앞으로 나와 읍을 올리며 고했다.

「당진의 모든 대부들은 전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여이생과 극예 두 사람이 반대하여 일이 이렇게 어지럽게 되었습니다. 군주께서 만약 많은 예물을 들려서 당진으로 사신을 보내 좋은 말로 이 두 사람을 청한 연후에 그들이 섬진에 당도하면 잡아서 죽이고 공자 중이를 당진의 군주로 다시 보내신다면 신과 리극은 이오를 몰아내고 전하를 위해 안에서 호응하겠습니다. 저희들의 계획이 성사된다면 저희는 대대로 전하를 받들어 모시고자 하온데 전하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대단히 좋은 계획이오. 그것은 원래 과인이 바라던 바요!」

목공이 즉시 대부 냉지(冷至)를 답례 사절로 하여 비정보를 따라 당진에 사신으로 가서 여이생과 극예를 섬진으로 유인해와 살해하려고 했다.

<제29회로 계속>

주석

①칠여대부(七輿大夫)/ 신생(申生)이 헌공(獻公)과 당진(唐晉)의 군사들을 양분하여 거느리고 있을 때 그 하군(下軍) 휘하에 속했던 일곱 대부를 말한다.

②가예가(暇豫歌)/ 헌공 때 여희(驪姬)가 우시(優施)를 시켜 태자 신생의 소부(少傅)였던 리극(里克)을 회유하기 위해 부른 노래로 잎이 다 떨어진 고목 나무 밑에 서지 말고 무성한 나무 밑에 서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라는 뜻의 노래로 여기서 고목 나무란 뜻의 고(枯)는 헌공의 총애를 잃어버린 태자 신생(申生)을 말하고 무성한 나무 완(菀)은 여희의 소생인 해제(奚齊)를 가리킨다. 연의27회3쪽에 나오는 시가의 제목이다.

③분양(汾陽)/현 산서성(山西省) 성도인 태원(太原) 북쪽 약50키로 지역 일대. 산서성(山西省)을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가로지르는 분수(汾水)의 발원지 부근임.

④부규(負葵)/ 분수(汾水)가 황하(黃河)와 합류하는 곳인 한성(韓城)에서 신전(新田)까지 이르는 분수 강안의 땅을 부규(負葵)라 한다.

⑤괵(虢)/ 지금의 하남성 삼문협시. 가도멸괵(假道滅虢)에 따라 멸망한 괵 땅 중 황하 남쪽의 상양성(上陽城)을 말함.

⑥화산(華山)/ 섬서성 화현(華縣) 부근에 있는 산 이름.

⑦해량성(解梁城)/ 지금의 산서성 하곡부(河曲部)의 임의현(臨猗縣) 남

⑧하외(河外)/ 원래는 산서와 하남을 가르는 황하(黃河) 이남의 땅을 하외(河外)라 칭했으나 본문에서는 당진의 입장에서 볼 때 황하 밖의 지금의 섬서성과 하남성 일부를 가리킨다.

⑨일(鎰)/ 고대 중국의 중량의 단위로서20량 혹은24량에 해당 함. 춘추전국 시대 때의 한 량은16 그람 임. 즉 한 일은 약300그람에서400그람이며, 황금40일은1.2키로에서1.6키로 에 해당 함

⑩고량(高梁)/지금의 산서성 임분현(臨汾縣) 동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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