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大誅群臣(대주군신), 病榻戒兇(병탑계흉) > 2부3 백리해

제29회. 大誅群臣(대주군신), 病榻戒兇(병탑계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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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3,823회 작성일 07-02-0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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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大誅群臣 病榻誡兇(대주군신 병탑계흉)

군신들을 대거 주살하는 당진의 혜공과

삼흉에 대한 경계를 유언으로 남긴 관중

1. 욕가지죄 하환무사(欲加之罪 何患無辭)

- 죄를 주려고 하는데 구실이 없겠는가? -

원래 리극이 당진의 군주자리에 옹립하려고 했던 사람은 공자 중이였다. 그러나 중이가 한사코 고사했을 뿐 아니라 이오가 많은 뇌물을 이용하여 당진의 여러 대부들을 회유했기 때문에 당진국의 군주자리는 이오의 차지가 되었다. 그러나 일단 군주의 자리에 앉게 된 혜공은 리극과 비정보에게 각각 하사하기로 각각 약속한 분양(汾陽)의100만 전과 부규(負葵)의70만 전 중 한 치의 땅도 주지 않았다. 더욱이 혜공은 괵석(虢射), 여이생(呂飴甥), 극예(郤芮) 등을 위시해서 망명생활 중의 그를 따라다녔던 측근 인사들만을 요직에 임용했다. 혜공은 당진의 중신들과 구신들을 모두 소원하게 대하고 그 앞 열에 그들을 세웠다. 리극도 결국 마음속으로 혜공에 대한 불만을 품게 되었다. 또한 혜공에게 하외오성을 섬진에게 떼어 주어 신의를 지키라는 리극의 간언은 분명 나라를 위한 옳은 소리였음에도 오히려 자기의 사심 때문이라고 혜공과 여러 대부들 면전에서 비난을 한 극예란 자를 생각하자 분노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리극은 분노를 삭히기 위해 애을 썼으나 생각할수록 분노가 더욱 세차게 끓어올랐다. 그러나 감히 입 밖으로는 발설할 수는 없어 마음속의 분노를 누르고 조당 밖으로 나왔다. 얼굴이 다시 벌겋게 달아오른 리극은 혜공과 그 일당을 원망하는 마음에 참을 수가 없었다.

한편 극예를 포함한 혜공의 심복들은 자청하여 섬진에 사신으로 간 비정보가 사전에 리극과 음모를 꾸미지나 않았을까 의심했다. 그래서 그들은 밀정을 리극을 몰래 감시하게 했다. 비정보 역시 극예 등이 사람을 시켜 자기를 감시할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여 사신으로 출발할 때 따로 리극을 찾지 않았다. 그래서 리극이 사람을 시켜 비정보를 찾았을 때는 그는 이미 성문을 빠져나간 후였다. 리극이 성문을 나가 비정보의 뒤를 쫓았으나 만나지 못했다.리극을 감시하던 사람이 극예에게 그 사실을 고했다. 극예가 헌공에게 배알을 청하고 독대하여 말했다.

「리극은 주군께서 그의 권한을 뺏고 또한 분양의 땅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마음속으로 심히 원망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들으니 비정보가 사신을 자원하여 출발하는데 리극이 직접 수레를 몰아 비정보의 뒤를 따랐다 합니다. 이것은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음모가 있음을 말합니다. 평소에 중이를 추종했던 리극이 주군을 세운 것은 그의 본뜻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리극이 중이와 모의하여 안에서 호응이라도 한다면 어떻게 대처하려고 하십니까? 리극을 죽여 후환을 방비하십시오.」

「리극이 나를 위해 세운 공이 적지 않은데 무슨 구실로 그를 죽일 수 있겠소?」

「리극은 해제를 시해하고 또한 탁자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고명대신인 순식까지 죽여 그 죄가 큽니다. 주군께서 환국하여 군위에 오르게 한 공은 있다 하나 그것은 사사로운 일이고 시역의 죄를 묻는 것은 천하에 대의를 밝히는 일입니다. 주군께서는 사사로운 정에 매달려 천하의 대의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신이 청하옵건대 전하를 위해 리극을 토벌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대부가 알아서 처리하시오.」

극예가 즉시 무장한 병사들을 끌고 가서 리극의 집을 포위했다. 리극이 방안에서 나오자 극예가 그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서 외쳤다.

「주군께서 명을 내려 나로 하여금 너를 잡아오게 하셨다. 주군의 명을 전한다. ‘ 리극 그대가 아니었으면 내가 군위에 오르지 못했다. 따라서 과인이 감히 그대의 공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대는 두 명의 군주를 시해하고 한 사람의 대부를 죽였으니 그대가 있음으로 해서 내가 군주 노릇을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과인이 선군의 유명을 받들어 감히 사사로운 은혜로 인하여 대의를 저버릴 수 없으니 오로지 그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음이라!’」

리극이 듣고 말했다.

「내가 해제와 탁자를 제거하지 않았다면 주군은 어떻게 그 자리에 앉았겠는가? 죄를 주어 죽이고자 하는데 무슨 핑계인들 대지 못하겠는가? 이 극은 주군의 명을 알아들었소!」

극예가 다시 리극을 재촉하자 리극이 허리에 찬 검을 땅에 세우고 난 후 큰 소리로 소리쳤다

「하늘이여 원통합니다. 충성을 바친 결과 죄를 얻게 되었습니다. 내가 죽어 지하에 가서 순식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구나!」

리극이 말을 마치자 즉시 스스로 칼을 들어 자기 목을 찔러 죽었다. 극예가 돌아와 혜공에게 리극이 죽었음을 알렸다. 혜공이 크게 기뻐했다. 염선이 시를 지어 리극의 생각이 부족함을 비난했다.

가까스로 군위에 앉힌 이오에게 오히려 죽음을 당했구나!

처음부터 어찌하여 신생을 따라 죽지 못하고

죽음에 임해 중립이 무책이란 사실을 알았는가?

란명으로 헛되이 죽은 순식보다도 더 어리석었도다!

才入夷吾身受兵(재입이오신수병)

當初何不死申生(당초하불사신생)

方知中立非完策(방지중립비완책)

不及荀家有令命(불급순가유영명)

혜공이 리극을 살해하자 많은 군신들이 불만을 품게 되었다. 기거(祁擧), 공화(共華), 가화(賈華), 추천(騅遄) 등이 하나같이 혜공을 원망하는 말을 하고 다녔다. 혜공이 그들을 모두 잡아 죽이려고 하자 극예가 불가하다고 하면서 말했다.

「비정보가 나라 밖에 있는데 그 당에 속한 사람을 많이 죽인다면 의심하는 마음을 들게 하여 반심을 품게 됩니다. 잠시 참으시고 기회를 기다리십시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옛날 목희의 부탁이 생각난 듯이 말었다.

「내가 예전에 진백(秦伯)의 부인 목희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나에게 가군을 잘 돌봐 주고 선군으로부터 쫓겨난 공자들은 모두 귀국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아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허락했소. 어떻게 생각하오?」

극예가 대답했다.

「여러 공자들 중 주군과 군위를 놓고 다투지 않을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결코 그들의 귀국을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가군을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은 들어줘도 무방합니다.」

혜공은 그 즉시 가군을 불러 만났다. 가군은 그때까지도 미색이 여전히 쇠하지 않아 아름다운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갑자기 음심이 동한 혜공이 가군에게 말했다.

「목희 부인이 과인에게 부탁하기를 그대와 같이 여생을 즐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대는 거절하지 마시오!」

혜공이 곧바로 가군을 안고서 궁중의 침실로 데리고 갔다. 궁인들이 모두 얼굴에 미소를 띄우면서 자리를 피했다. 가군이 혜공의 위세에 눌려 어쩔 수 없이 명을 따랐다. 혜공과의 정사가 끝낸 가군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첩이 선군과 함께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다가 이제 다시 몸을 더럽혔습니다. 이왕 버린 몸은 아깝지 않으나 단지 주군께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죽은 태자 신생의 억울한 원한을 밝혀 주시면 몸을 더럽힌 죄나마 속죄하고자 합니다.」

「두 어린아이들을 이미 죽여 그것으로써 죽은 태자의 원한은 이미 풀리지 않았소?」

「소문에 들으니 죽은 세자는 아직 신성(新城)의 풀밭에 묻혀 있다고 합니다. 주군께서는 무덤을 옮긴 후 시호를 내려 일반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 주신다면 나라의 사대부들도 역시 주군의 처사에 기뻐할 것입니다.」

2. 仇視惠公 幻見申生(구시혜공 환견신생)

- 혜공을 원수로 여기던 호돌이 신생의 환영을 보다. -

혜공이 허락하고 즉시 극예의 사촌 동생 극걸(郤乞)에게 명하여 곡옥에 가서 새로 묘지를 잡아 신생의 무덤을 옮기라고 했다. 또한 태사에게 신생의 시호를 묻자 효성스럽고 공경스러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공태자(共太子)’가 적합하다고 했다. 다시 호돌에게 명하여 곡옥으로 가서 제사 올리는 의식과 태묘에 고하는 일을 주재하도록 했다. 먼저 곡옥에 당도한 극걸이 별도로 옷과 이불을 만들고 관과 관을 넣는 궤 및 무덤에 같이 묻을 여러 가지의 부장품과 나무로 깎아 만든 사람모양의 인형 등을 모두 준비하게 했다. 신생의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어 살펴본 극결은 그 얼굴색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생생한 모습이었지만 그 악취가 심하여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인부들이 코를 막고 일을 했으나 구토가 자꾸 나와 도저히 힘을 써서 일할 수 없었다. 극걸이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며 신생의 시체 앞에서 고했다.

「세자께서는 살아 계실 때는 몸을 청결하게 보전하셨는데 죽어서는 이렇듯 불결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어인 일이십니까? 세자는 불결한 분이 아니시라 이것은 분명 세자의 시신이 아닌 듯합니다. 원컨대 대중을 놀라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극걸이 말을 마치자 악취가 없어지고 그 냄새는 오히려 기이한 향기로 변했다. 곧이어 시체를 다시 거두어 관속에 넣고 고원(高原)의 땅에 묻었다. 곡옥의 사람은 모두가 성안을 비우고 눈물을 따르면서 장례 행렬을 따랐다. 장례가 끝난 지3일 만에 호돌이 제사에 쓸 물건들을 가지고 당도했다. 혜공의 명에 따라 위패를 세우고 존영에 절을 한 다음 《진공태자의묘(晉共太子之墓)》라고 쓴 비석을 세웠다.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 끝낸 호돌이 곧바로 강성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순간에 갑자기 수많은 깃발이 휘날리더니 창과 방패를 들고 첩첩이 도열한 군사들 사이에서 활을 등에 맨 일대의 거마가 호돌이 있는 곳을 향하여 돌진해 왔다. 호돌이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여 창망 중에 몸을 피하려고 하는데 그 일대의 거마 중에서 수레 한 대가 뛰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수레에서 백발이 성성하고 전포에 홀(忽)을 단정하게 찬 사람 한 명이 아무 말도 없이 내려 호돌의 면전에 서서 읍하며 고했다.

「태자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 하여 저보고 모셔 오라고 했습니다. 청컨대 국구께서 저를 따라 오시기 바랍니다.」

호돌이 자세히 그 사람을 살펴보니 신생의 일로 헌공에게 살해된 태부 두원관이었다. 정신이 황홀하게 된 호돌이 두원관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물었다.

「태자는 어디에 계시는가?」

두원관이 뒤에 있는 큰 수레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수레에 타고 계십니다.」

호돌이 두원관의 뒤를 따라 큰 수레 앞으로 갔다. 태자 신생이 머리에는 관을 쓰고 허리에는 칼을 차고 앉아 있는데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생생했다. 신생이 수레를 모는 어자에게 명하여 호돌을 수레에 오를 수 있도록 인도하게 했다. 수레에 오른 호돌을 보고 신생이 말했다.

「외조부께서는 아직도 이 몸 신생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호돌이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태자의 원통함은 지나가는 행인들도 다 알아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호돌이 누구이건대 감히 잊을 리 있겠습니까?」

「상제께서 나의 어진 마음과 효를 가상히 여기시어 나에게 교산(喬山)의 주인으로 명하셨소. 이오가 가군에게 무례를 범하여 그 불결함을 싫어한 내가 나의 시신을 개장하는 것을 물리치려고 악취를 풍겼으나, 여러 중인들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이내 중지시켰소. 지금 섬진의 군주는 지혜와 재능과 덕을 두루 갖춘 현인이라 내가 이 당진의 땅을 섬진의 군주에게 주어 그로 하여금 나의 제사를 받들도록 하고자 하는데 국구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태자께서 비록 이오를 싫어하시나 그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또한 우리들의 선조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태자께서는 동성을 버리시고 이성으로부터 음식을 얻어 드시려고 하시니 태자님이 생각하시는 어진 마음과 효에 벗어나는 일이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국구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미 상제에게 고하였음으로 오늘 마땅히 다시 상주하여 국구의 말을 따르도록 하리다. 국구께서는 잠시 이곳에7일 간만 머무르시다가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신성의 서쪽 외딴 곳에 무당이 한 사람 살고 있는데 내가 그 사람에게 전하여 두겠으니 국구께서는 그때 무당을 찾아가 물어 보십시오.」

두원관이 수레 밑에서 호돌을 부르면서 외쳤다.

「국구께서는 이제 돌아가셔야 되겠습니다.」

두원관이 호들을 잡아끌어 수레에서 내리려고 하다가, 호돌이 실족하여 땅에 넘어졌다. 그 사이에 태자 신생이 탄 거마가 홀연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호돌이 잠에서 깨어 보니 자기는 신성의 성문 밖 여관에 누워있었다. 마음속으로 크게 놀라 좌우에게 물었다.

「내가 어찌하여 이곳에 누워 있게 되었느냐?」

좌우의 시종들이 대답했다.

「국구께서 제사를 다 지내고 축문을 불사른 후에 마지막 절을 올리다가 갑자기 자리에 쓰러지셨습니다. 저희가 흔들어 깨웠지만 정신을 차리시지 못해 우리가 부축하여 수레에 태우고 이곳으로 모시어 쉬게 했습니다. 오늘 무사히 깨어나니 다행한 일입니다.」

호돌이 자기가 꾼 꿈을 생각해 내면서 마음속으로 기이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꿈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고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그 여관에 계속 머물렀다. 꿈에서 이야기한7일 째 되는 날 미시(未時)에서 신시(申時)①로 넘어가려는 시간에 즈음하여 문을 시키는 사람이 와서 보고했다.

「성의 서문 쪽에 사는 무당이 하나 찾아와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호돌이 즉시 그 무당을 부르고는 좌우에 있던 사람을 모두 물러나게 했다. 방으로 인도된 무당이 호돌에게 인사를 올리고 말했다.

「평소에도 저는 귀신과 말을 통하는 사람인데 오늘 교산(喬山)의 주인이라는 귀신이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자기는 당진의 태자였다가 죽은 신생의 귀신인데, 자기의 말을 국구에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미 다시 상제에게 주청하여 허락을 받았으나, 그가 가군의 몸을 욕되게 한 죄만은 용서할 수 없다. 내가 그의 후세들을 참하여 그 죄에 대한 벌을 주어 교훈이 되게 하고, 당진국에는 해가 되는 일은 없도록 했다.’라고 전하라 했습니다.」

호돌이 무당의 말을 전해 듣고 짐짓 아무 것도 모르는 체하고 물었다.

「벌을 받을 사람은 누구라고 하던가?」

「태자가 단지 이 말만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나 역시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호돌이 좌우에게 명하여 금은과 패백을 가져오게 하여 무당에게 주고 이 이야기를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말도록 당부했다.

무당이 감사의 말을 올리고 물러갔다. 호돌이 강성으로 돌아와 신성에서 있었던 일을 은밀히 비정보의 집을 찾아가 그의 아들 비표(丕豹)에게 말했다. 비표가 듣고 말했다.

「주군은 하는 일마다 도리에 벗어나니 반드시 명대로 살지 못할 것입니다. 당진의 군위는 중이 공자에게 돌아 갈 듯싶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사이에 심부름하는 하인 한 명이 들어와 고했다.

「지금 비대부(丕大夫)께서 섬진의 사신으로 갔다가 이미 귀국하셨습니다. 조당으로 직접 가셔서 복명하고 계십니다.」

호돌은 비표와 작별을 고하고 자기집으로 돌아갔다.

3. 여극간모(呂奸謀)

- 여이생과 극예의 간사한 음모로 함정에 빠지는 당진의 대부들-

한편 비정보는 섬진의 사신 냉지와 함께 예물과 패백을 가득 실은 수레를 여러 대를 이끌고 당진의 경계에 당도하여 다시 강성을 향해 출발하려고 하는 순간 리극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비정보는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수레를 돌려 다시 섬진으로 도망치려고 하다가 다시 생각해본 결과 강성에 있는 아들 비표가 생각났다.

「내가 만일 섬진으로 도망친다면 그 화가 아들 표에게 닥치리라!」

이렇게 생각한 비정보가 진퇴양난에 빠져 주저하고 있을 때 마침 대부 공화가 근처에 나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즉시 불러 상견했다. . 비정보가 리극이 살해된 사연을 묻자 공화가 일의 전말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비정보가 말했다.

「내가 지금 강도로 돌아가도 아무런 해가 없겠습니까?」

「리극과 같이 일을 도모한 사람이 아직 많은데 그중 한 사람인 이 사람도 역시 다른 나라로 도망치지 않았는데 아직까지 무사합니다. 지금 리극 한 사람만이 살해되었을 뿐이며 그 나머지 사람에게는 아무런 화가 미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대부께서는 사신으로 섬진에 가 있었기 때문에 만약 이 일을 모르고 있는 척만 하면 아무런 일도 없을 것입니다. 대부께서 두려워하여 들어가지 않으신다면 스스로 죄가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꼴아 됩니다.」

공화의 말을 쫓아 수레를 몰아 강성에 입성한 비정부가 조당으로 들어가 먼저 섬진에 사신으로 다녀온 일을 복명하고 뒤이어 냉지를 인도하여 혜공을 배알하게 했다. 냉지가 국서와 예물이 적힌 장부를 혜공에게 바쳤다. 혜공이 국서의 봉함을 열고 읽었다.

「당진과 섬진 두 나라는 혼인으로 맺어진 집안입니다. 땅이 당진의 속하던 혹은 섬진에 속하던 한 집안의 땅인 것이며 또한 여러 대부들도 각기 자기나라를 위하여 그 충성을 다 하는 일이 직분인바 과인이 어찌 감히 그 땅을 반드시 달라고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과인은 진실로 여러 대부들의 나라를 생각하는 충정을 상하게 할 수 없음입니다. 단지 우리나라의 변경지방에 소란한 일이 있어 이 일을 여이생과 극예 두 대부의지혜를 듣고 싶으니 다행히 급히 한 번 보내 주시어 과인의 이 간절한 뜻을 위로해 주시면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또한 국서의 끝에 다시 글이 몇 줄 더 있었다.

「군주께서 저에게 써 주신 하외오성에 대한 지권을 다시 원주인에게 돌려 드립니다.」

원래 위인이 소인배라 예물과 폐백이 많고 또한 지권도 돌려주고 해서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한 혜공은 섬진의 군주에게 보답하기 위해 여이생과 극예 두 사람을 진나라에 보내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극예가 여이생을 찾아가 은밀히 말했다.

「섬진이 보낸 보빙(報聘) 사절은 결코 좋은 뜻에서가 아닙니다. 가져온 폐백이 너무 많고 또한 언사도 매우 달콤하니 이것은 아마도 우리를 유인하려고 하는 술책입니다. 우리가 만약 섬진에 사신으로 간다면 섬진의 군주는 틀림없이 우리를 협박하여 하외오성을 취하려고 할 것입니다.」

여이생이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나 역시 섬진이 우리나라의 환심을 사서 우리를 유인하려는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그 말이 맞는다면 마땅히 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일은 틀림없어 비정보가 리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화를 벗어나지 못할까 걱정하여 섬진과 공모하여 그들을 시켜 우리들을 살해한 후에 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음모가 분명합니다.」

「비정보와 리극은 같이 일을 도모하여 공을 세워 한 몸과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이제 리극이 살해되었는데 비정보가 어찌 두려운 마음을 품지 않겠습니까? 자금(子金)의 생각이 맞습니다. 지금 군신들 중 태반은 리극과 비정보의 무리라고 할 수 있는데 만약에 비정보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면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도 연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섬진의 사신을 돌려보낸 후 서서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자금은 여이생의 자다. 여이생이 극예의 말에 동의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두 사람이 즉시 혜공에게 주청하여 냉지를 섬진으로 돌려보내면서 섬진의 군주에게 자기들의 말을 전하게 했다.

「지금 우리 당진의 정세가 아직 안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말씀하신 여이생과 극예 두 신하는 시급한 일을 먼저 처리한 후에 짬이 나기를 기다렸다가 전하의 명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냉지가 어쩌지 못하고 섬진으로 돌아갔다. 여이생과 극예 두 사람은 심복을 풀어 매일 비정보의 집 문밖에 잠복시켜 동정을 살피게 했다. 여이생과 극예가 전혀 자기를 의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비정보는 하루는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기거(祁擧), 공화(共華), 가화(賈華), 추천(騅遄) 등의 동지들을 집으로 청하여 거사를 논하다가 새벽을 알리는 다섯 번의 북소리가 날 때에 이르러 모임을 끝내고 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비정보를 감시하던 극예의 심복이 돌아와 자기들이 본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고했다. 극예가 듣고 말했다.

「여러 사람이 야밤에 모여서 어떤 어려운 일을 결행하려고 그렇게 오랫동안 같이 지냈겠는가? 틀림없이 역모를 꾸미고 있음이라!」

즉시 여이생을 찾아가 상의한 극예가 도안이를 불러서 말했다.

「그대의 몸에 화가 당도하였는데 이를 어찌하겠는가?」

도안이가 크게 놀라 물었다.

「저에게 무슨 화가 닥친단 말입니까?」

「그대가 옛날 리극을 도와 어린 군주를 시해하지 않았는가? 주군께서 얼마 전에 리극을 법에 따라 죽일 때 그대에게도 죄를 같이 물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대는 주군을 영접한 공도 있고 하니 그대를 죽이면 안 된다고 우리가 말씀드렸기 때문에 아직 목숨이 붙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도안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는 단지 힘이 조금 센 필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남의 말을 듣고 시키는 대로했을 뿐이며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지도 못하니 바라옵건대 대부들께는 저의 불쌍한 목숨을 구해 주시면 그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주군의 분노가 커서 내가 말씀을 드린다 해도 들러주실지 잘 모르겠다. 단지 한 가지 계획이 있는데 그대로만 한다면 화를 면할 수 있다.」

도안이가 무릎을 꿇으면서 그 계획을 물었다. 극예가 황망한 몸짓으로 도안이에게 다가와 그의 몸을 일으키며 귀를 가까이 대고 은밀히 말했다.

「지금 비정보는 리극의 무리에 속해 있어 이 나라의 권문세가의 대부들과 작당하여 지금의 주군을 쫓아내고 중이를 데려와 군위에 앉히려는 반역을 꾀하고 있는 중이다. 그대가 진실로 죽음을 면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비정보에게 면담을 청한 후 리극의 일당으로 간주되어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한다고 하면서 그 당에 끼어 달라고 하라. 그들의 당원으로 들어가 음모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가 거사 직전에 그대가 먼저 나에게 알려주면 주공이 비정보에게 주기로 약속한 부규(負葵)의 땅 중30만 전을 떼어 그대가 세운 공로의 대가로 주도록 하겠다. 더불어 그대는 중용 되어 옛날의 저지른 조그만 죄는 걱정할 필요가 없음이라!」

도안이가 기뻐하며 말했다.

「제가 죽을 곳에서 삶을 얻을 수 있게 됨은 모두가 대부의 은혜입니다. 어찌 감히 온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한낱 무부(武夫)에 지나지 않아 말주변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이생이 나서서 말했다.

「내가 마땅히 그대에게 일러주겠다.」

여이생이 즉시 도안이가 비정보(丕鄭父)를 만나 묻고 대답할 말을 생각해 내어 그에게 일러 숙지하게 했다. 그날 밤 도안이가 비정보의 집을 찾아가 대문을 두드리면서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만나보기를 청했다. 정보가 가노를 시켜 자기는 이미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만날 수 없다는 말을 전하게 하여 거절했다. 주인이 잠자리에 들었다는 전갈을 받고도 개의치 않고 대문 안으로 들어선 도안이는 무작정 기다렸다. 다시 시간이 많이 흘러 한밤중이 되었으나 도안이가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전갈을 전해들은 비정보가 결국은 사람을 시켜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만났다. 도안이가 비정보를 보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대부께서는 저의 목숨을 구해 주십시오!」

비정보가 놀라 그 연유를 묻자 도안이가 대답했다.

「지금 주군께서 내가 리극을 도와 어린 탁자를 시해했다고 하면서 장차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여이생과 극예 두 사람이 정사를 맡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들을 찾아가 사정을 해보지 않으시오?」

「원래 저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은 여극(呂郤) 두 사람의 생각입니다. 저는 두 사람을 죽여 그 고기를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은데 그들에게서 무엇을 구한단 말입니까?」

비정보가 역시 깊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대를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 합니까?」

「공자 중이는 어진 마음을 갖고 있고 효성이 지극할 뿐만 아니라 선비들의 인망을 한 몸에 받고 있어 나라 안의 사대부들은 모두 그를 우리 당진국의 군주로 모시고자 합니다. 또한 섬진의 군주도 주군이 약속한 땅을 주지 않고 신의를 배반했기 때문에 원한을 갖고 있어 역시 이오를 쫓아내고 중이를 군주의 자리에 앉히려고 합니다. 만약 대부께서 친필로 편지를 한 통 써 주시면 제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중이 공자에게 가서 편지를 전하고 섬진과 적(翟) 두 나라의 군사를 빌려서 밖에서 호응하고, 대부께서는 안에서 옛날의 태자를 따르는 무리들을 규합하여 거사를 하여 먼저 여극(呂郤) 두 사람의 목을 벤 후에 이오를 몰아내고 중이를 모셔 온다면 일이 성사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정보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물었다.

「그대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고 누가 알겠는가?」

도안이가 즉시 손가락 하나를 깨물어 피를 내어 맹세했다.

「만약에 이 도안이가 두 마음을 갖게 된다면 마땅히 이 사람의 모든 종족들은 죽어 씨가 마를 것이다.」

비로소 도안이를 믿게 된 비정보는 다음날 삼경에 다시 만나 의논을 하자고 약조했다. 다음날이 되자 전날 약속한 대로 도안이가 다시 비정보의 집에 와서 보니 기거, 공화, 가화, 추천 등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숙견(叔堅), 누호(累虎), 특궁(特宮), 산기(山祇)등 네 사람도 같이 있었는데 모두가 죽은 태자 신생의 문하였다. 비정보와 도안이를 합하여 모두 열 사람이 모이게 되자 다시 피를 입술에 바르고 하늘을 향하여 맹세한 후에 다 같이 힘을 합하여 공자 중이를 모셔와 군주로 삼자고 했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노래했다.

목숨을 구걸하는 도안이만을 의심했는데

누가 알았겠는가? 여극(呂郤)의 간교한 음모인 줄을!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었으니

한사람의 거짓으로 아홉 명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구나!

只疑屠岸來求救(지의도안래구구)

誰料奸謀呂郤爲(수료간모여극위)

强中更有强中手(강중경유강중수)

一人行詐九人危(일인행사구인위)

4. 一網打盡(일망타진)

- 반대파를 일망타진하는 혜공-

비정보가 모인 사람을 맛있는 음식으로 접대하여 모두 즐겁게 마시고 취하자 흩어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도안이가 돌아와서 아무도 몰래 극예에게 보고했다. 극예는 도안이가 한 말을 듣더니 말했다.

「그대의 말은 알아듣겠으나 아무런 증거가 없다. 반드시 비정보가 쓴 글을 받아 와야만 그의 죄를 물을 수 있다.」

도안이가 다음날 밤에 다시 비정보의 집에 들려 중이 공자를 청하는 친서를 자기에게 주면 가서 모시고 오겠다고 했다. 비정보는 이미 중이를 모시고자 하는 표장을 수중에 갖고 있었다. 표장 뒤에는 모두 열 명의 이름과 함께 도안이 한 명을 제외한 아홉 명의 화압(花押)②이 되어 있었다. 비정보가 꺼낸 표장에 도안이도 붓필로 화압했다. 도안이로부터 표장을 정성스럽게 받아 봉투에 넣어 봉한 비정보가 도안이에게 다시 건네주면서 당부의 말을 했다.

「항상 조심하여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시오.」

도안이가 밀서를 받아 들고 마치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처럼 간직하고는 곧바로 극예의 집으로 달려가서는 열 명의 서명이 든 밀서를 바쳤다. 도안이를 자기 집에 숨어 있게 한 극예가 밀서를 소매 속에 넣고 여이생과 함께 국구 괵석(虢射)의 집으로 가서 비정보 일당을 토벌할 계책을 의논하며 말했다.

「이들을 빨리 제거하지 않는다면 변란은 조만간에 발생할 것입니다.」

괵석이 한 밤중에 궁궐의 문을 두드려 혜공의 알현을 청했다. 그는 혜공에게 비정보의 음모를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말했다.

「내일 아침 일찍 조회에서 그들을 잡아 죄를 물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그들이 쓰고 서명한 밀서입니다.」

다음날 혜공이 아침 일찍 조회에 나가 여이생과 극예 두 사람에게 명하여 무장한 병사들을 벽 뒤에 미리 매복시키고 별도의 명령을 기다리게 했다.

여러 관리들이 혜공을 향하여 예를 올리는 의식을 끝내자 혜공이 비정보를 불러 물었다.

「그대가 과인을 쫓아내고 중이를 세우려고 하는 음모를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과인이 이제 그대의 죄를 묻고자 하노라!」

비정보가 변명을 하려고 하는데 극예가 검을 뽑아 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너는 도안이에게 밀서를 주어 보내 중이를 데려와 이 나라의 군주로 세우려고 하지 않았느냐? 다행히 우리 주군께서 복이 있어 성을 나가려는 도안이를 우리 정탐병이 잡아 몸을 수색하여 그 밀서가 얻었다. 같이 공모한 사람이 열 사람이고 도안이는 이미 우리에게 잡혀 자백했으니 너희들은 구태여 변명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혜공이 밀서를 당하로 던지자 여이생이 다시 주어서 밀서에 적힌 사람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자 그 순서에 따라 무사들이 나와서 포박을 지웠다. 마침 휴가를 고하고 집에 있다가 조회에 참석하지 않은 공화는 별도로 무사를 보내 잡아들이게 했다. 포박을 받은 여덟 사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기만 할뿐 진실로 입은 있어도 할 말이 없었고 땅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혜공이 소리쳐 명령을 내렸다.

「조문 앞으로 끌고 나가 모두 참수하라!」

가화가 끌려나가면서 큰 소리를 쳐서 말했다.

「신이 옛날에 선군의 명을 받들어 굴성에 계셨던 주군을 정벌하러 갔을 때 제가 미리 사람을 시켜 주군이 화를 면할 수 있도록 한 일을 잊으셨습니까? 그때의 공을 생각하셔서 죽음만은 면하게 해주옵소서!」

여이생이 앞으로 나와 가화를 꾸짖었다.

「너는 선군의 명을 받고는 사사로운 감정으로 주군을 놓아주었다. 지금은 주군을 모시고 있으면서 또다시 사사로이 중이와 내통하니 이것은 반복무상한 소인배가 하는 짓이다. 무사들은 끌고 가서 빨리 목을 베지 않고 무엇을 하는가?」

가화는 말문이 막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덟 사람은 하릴없이 끌려가서 참수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공화가 집에 있는데 거사 계획이 누설되어 비정보 등이 잡혀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황망 중에 문중의 조상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던 사당에 절을 올려 작별을 고하고 조당에 나가 죄를 받고자 했다. 그 동생 공사(共賜)가 공화를 보고 말했다.

「가시면 즉 죽음을 당할 텐데 어찌하여 도망가지 않소?」

「섬진으로 망명하겠다는 비대부를 나라 안으로 들어오게 한 것은 실은 내가 권유해서였다. 사람을 함정에 빠트려 죽음에 이르게 하고는 자기만 살겠다고 하는 행위는 장부가 할 짓이 아니다. 나라고 해서 목숨이 왜 아깝지 않겠느냐마는 감히 비대부에게 빚을 지고는 살수 없다.」

공화가 말을 마치고 자기를 잡으러 보낸 무사들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바로 조당에 달려가 죽음을 청했다. 혜공이 역시 참수하도록 했다. 비정보의 아들 비표는 자기의 부친이 잡혀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쳐 섬진으로 망명했다. 혜공은 리극과 비정보의 종족들을 모두 죽이려고 하였으나 극예가이 말리면서 말했다.

「죄는 그 가족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법은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입니다. 반란을 꾀한 자를 주살하는 것만으로 세상의 백성들에게 충분히 본보기를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태여 많은 사람을 죽여 백성들의 마음을 떨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혜공이 즉시 이번에 죽은 대부들의 종족들을 죽이지 않고 용서한다고 공포했다. 이어서 그는 도안이의 공을 인정하여 봉작을 하대부에서 중대부로 올리고 비정보에게 주기로 한 부규의 땅70만 전 중30만전을 떼어 주었다.

한편 비표가 섬진에 당도하여 목공을 배알하고 땅에 엎드려 크게 목소리를 높여 곡하며 울었다. 목공이 그 이유를 묻자 비표가 그의 부친이 거사를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참수형에 처해진 이야기를 상세히 이야기 한 후에 한 가지 계책을 목공에게 말했다.

「당진의 군주가 밖으로는 섬진의 큰 은혜를 버려 이웃나라와 우호관계를 상하게 하고 안으로는 나라를 다스린다고 하면서 백성들로부터 많은 원한을 사고 있습니다. 또한 백관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으며 백성들은 마음속으로 복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때를 이용하여 한 떼의 군마를 동원하여 정벌한다면 당진의 군사들은 일시에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당진의 군주를 폐하고 세우는 일은 군주의 마음먹은 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목공이 비표의 말을 듣고 여러 군신들에게 그 의견을 물었다. 건숙이 말했다.

「비표의 말을 듣고 당진을 정벌하는 행위는 신하를 도와 그 군주를 치는 일이라 옳은 일이 아닙니다.」

백리해도 불가함을 간했다.

「지금 당진의 백성들이 불복하고 있다면 조만간에 안에서 변란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잠시 그때를 기다리셨다가 도모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과인도 또한 비표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닙니다. 당진의 군주가 하루아침에 그 나라의 권문세가 대부 아홉 명을 죽였는데 백성들이 따르지 않았다면 어찌 그냥 보고만 있었겠습니까? 하물며 우리가 군사를 동원하여 쳐들어가더라도 안에서 내응이 없다면 결코 공을 세울 수 없을 것입니다.」

목공이 비표에게 대부의 벼슬을 내리고 자기나라에 머물게 했다. 그때가 당진의 혜공이 즉위한 지2년 째 되는 해로 주양왕3년 즉 기원전648년의 일이었다.

그해에 주나라 왕자대(王子帶)③가 뇌물로 이(伊)④와 락(雒) 땅의 오랑캐인 융인(戎人)들과 결맹을 맺고 그들로 하여금 주나라 호경을 공격하도록 하고 자신은 성안에서 내응하기로 했다. 오랑캐의 군사들이 호경으로 쳐들어와서 왕성을 포위하자 주공공(周公孔)과 소백요(召伯寥)가 있는 힘을 다하여 성을 지켰다. 왕자대가 감히 나가서 오랑캐의 군사들과 호응하지 못했다. 양왕이 제후들에게 사자를 보내 사태의 위급함을 알리자 섬진의 목공과 당진의 혜공이 모두 주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어 두기 위해 각기 군사를 이끌고 오랑캐를 물리쳐 주나라를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 오랑캐의 군사들은 제후들의 구원병들이 출동했다는 사실을 알고 호경의 동문 쪽을 노략한 후에 물러갔다. 섬진의 목공과 당진의 혜공이 이윽고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게 되었다. 목공의 얼굴을 대면하게 된 혜공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혜공은 또한 목희가 보낸 편지를 전해 받았다. 편지의 내용은 혜공이 가군을 욕보였을 뿐만 아니라 타국에 망명중인 공자들을 불러들이지 않는 행위 등 혜공이 저지른 수없이 많은 잘못을 질책했다. 편지 말미에 과거의 잘못을 속히 뉘우쳐 섬진과의 우호관계를 깨지 말라고 당부했다. 편지를 읽은 혜공은 혹시 섬진의 군주가 자기를 공격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든 나머지 갑자기 군사를 거두어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비표가 목공을 찾아와 당진의 군사를 야습하면 이길 수 있다고 권했다. 목공이 듣고 비표에게 말했다.

「같이 힘을 합하여 왕을 지키기 위해 출병하였는데 비록 내가 사사로운 원한이 있다 하지만 밤중에 야습을 할 수는 없느니라!」

목공도 군사를 거두어 자기나라로 돌아갔다.

5. 병탑계흉(病榻戒兇)

- 병상에서 삼흉의 화를 경계한 관중-

그때 제환공도 역시 관중에게 군사를 주어 주나라에 가서 오랑캐 군사들을 물리치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오랑캐의 군사들이 이미 물러갔다는 소리를 듣고 즉시 사자를 융국(戎國)에 보내어 융주를 질책했다. 융주가 제나라의 군사가 강함을 겁내어 사람을 보내어 사죄하면서 말을 전하게 했다.

「우리 융이 어찌 감히 주나라 천자의 군사를 범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은 그대들의 왕자 숙대가 감언으로 우리를 유인하여 그 요청에 따라 출병했을 뿐이다.」

오랑캐의 침범은 왕자 숙대가 꾸민 음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주양왕은 숙대를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 주나라에서 쫓겨난 숙대는 제나라로 망명해 왔다. 융주가 사자를 호경에 보내 죄를 청하고 화의를 청하자 양왕이 허락했다. 주양왕은 평소에 옛날 관중의 계책으로 인하여 세자의 자리가 공고해 지고, 이어서 주나라의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게 해준 일에 대해 평소에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얼마 전에도 주나라를 침범한 오랑캐로 하여금 화의를 맺도록 해준 관중이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큰 잔치를 벌렸다. 주양왕은 관중을 극진히 대접하고 상경의 예로써 접대하려고 했다. 관중이 겸양하며 말했다.

「우리 제나라에는 아직 국씨(國氏)와 고씨(高氏)가 상경으로 있는데 어찌 다시 제가 상경의 대우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관중이 재삼 사양하여 결국은 하경으로써의 대우를 받아들이고 며칠 후에 제나라로 돌아갔다.

그해 겨울 병이 나서 자리에 누운 관중을 제환공이 친히 문안하기 이해 방문했다. 관중의 신색이 파리하게 여위었음을 본 환공은 관중의 손을 자기의 두 손으로 붙잡으며 말했다.

「중보의 병이 매우 중한 것 같습니다. 불행히 일어나지 못한다면 과인은 장차 누구에게 정사를 맡겨 나라를 다스려야 되겠습니까?」

그때는 이미 영척과 빈수무가 세상을 뜬 후였다. 관중이 한탄하면서 말했다.

「영척이 먼저 죽어 진실로 애석한 일입니다.」

「죽은 영척 말고 다른 사람은 어떻습니까? 내가 포숙아를 중보의 후임으로 하고자 하는데 어떻습니까?」

「포숙아라는 사람은 군자라. 정사를 맡기면 안 됩니다. 그의 사람됨은 좋고 나쁜 점이 분명하여 무릇 좋은 것은 한없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또한 무조건 배척합니다. 그런 사람이 어찌 정사를 감당하겠습니까? 포숙아는 사람의 나쁜 면을 일단 한번 보면 평생토록 잊지 못하여 그것이 그 사람의 가장 나쁜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습붕은 어떻습니까?」

「습붕이라면 가합니다. 습붕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행위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더욱이 그는 집에 있을 때에도 공사(公事)를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관중이 말을 마치고 한탄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하늘이 습붕을 낳게 하여 이오를 위하여 그 혀 노릇을 하였습니다. 신이 죽는데 어찌 혓바닥만이 홀로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주군께서 습붕을 오래도록 쓰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아(易牙)는 어떻습니까?」

「주군께서 하문하지 않았더라도 제가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이아, 수초, 개방 이 세 사람은 절대로 가까이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아는 그의 자식을 삶아 요리를 하여 나의 입맛을 돋웠습니다. 그는 나를 그의 자식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그를 의심하십니까?」

「사람의 정 중에는 자식 사랑만큼 중한 것이 없습니다. 그 자식에게 그처럼 잔인하게 했는데 하물며 주군에게 인들 어찌 잔인하게 대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수초는 궁궐 안으로 드나들기 번거롭다고 자기 스스로를 거세하여 나의 곁에서 있으면서 지성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를 자기 몸보다도 더 사랑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직도 그를 의심하고 있습니까?」

「사람의 정 중에 자기 몸에 대한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가 그 자신의 몸에 대해 그렇게도 잔인하게 대했는데 어찌하여 주군에겐들 잔인하게 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개방은 위(衛)나라의 공자입니다. 그는 천승국의 태자였는데 그 자리를 마다하고 신하가 되어 나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는 과인에게서 받는 총애를 무한한 행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부모가 죽었음에도 나를 섬기는 일로 조상을 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과인을 자기 부모보다도 더 사랑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의심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정 중에 자기의 부모만큼 친한 것은 없습니다. 그 부모에게조차 잔인한 사람이니 어찌 주군에게 인들 잔인하게 대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천승국의 군주 자리는 사람이 가장 크게 바라는 것입니다. 천승국의 군주자리를 버리고 주군을 따랐으니 그의 바라는 바는 천승국보다 훨씬 큰 나라입니다. 주군께서는 그를 가까이 두면 나라에 큰 변란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은 나를 받든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 중보께서는 어찌하여 지금까지 평소에 한 말씀도 하시지 않으시다가 지금에서야 멀리하라고 하십니까?」

「신이 평소에 말씀을 드리지 않은 이유는 주군이 그 세 사람을 총애하신 주군의 기쁨을 멈추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이것을 물에 비유한다면 신은 주군을 위한 제방 역할을 하여 물이 마르거나 넘치게 하지 않게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제방이 무너지려고 하니 장차 옆구리로 새어 흐르는 물이 환난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옵서는 부디 그 세 사람을 멀리하시어 앞으로의 일에 낭패를 당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제환공은 관중의 말에 명쾌하게 대답을 하지 않고 물러 나와 궁으로 돌아갔다.

<제30회로 계속>

주석

①화압(花押)/ 문서에 자기 이름 밑에 도장을 찍는 대신에 자필로 하는 서명.

②미시(未時)는 오후1-3시이고 신시(申時)는 오후3-5시까지이다. 즉 미시에서 신시로 바뀌려는 시간은 오후3시이다.

③왕자대(王子帶)/ 기원전672년에 나서635년에 죽은 주혜왕의 어린 아들이다. 일명 태숙(太叔) 혹은 태숙대(太叔帶)라고도 한다. 혜왕의 총애하여 세자 정(鄭)을 폐하고 그 후계로 삼으려고 했으나 제환공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혜왕이 죽었으나 숙대가 주왕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던 숙대를 두려워한 주양왕(周襄王)은 곧바로 상을 발하지 못하고 주왕의 자리에 즉위하지 못했다. 제환공이 다시 제후들을 소집하여 주왕실의 일에 간여함으로 해서 주양왕은 주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주양왕3년 기원전649년 숙대는 이(伊)와 락(雒)에 살던 융족의 지원 하에 군사를 일으켜 왕위를 찬탈했으나 양왕을 복위시키기 위해 출동한 섬진과 당진의 군사들과의 싸움에 패하여 제나라로 망명했다. 주양왕14년 기원전638년 다시 여러 제후들의 주선으로 주양왕과 화해를 하고 주나라에 다시 들어와 살다가 왕비 외후(隗后)와 간통했다. 주양왕16년 다시 적인(狄人)들을 끌어들여 양왕을 공격하여 쫓아내고 주왕의 자리에 앉았다. 다음 해인 주양왕17년 토벌군을 일으킨 진문공이 이끌던 당진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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