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晉秦大戰(진진대전), 登臺要赦(등대요사) > 2부3 백리해

제30회. 晉秦大戰(진진대전), 登臺要赦(등대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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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3,804회 작성일 07-02-06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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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晉秦大戰 登臺要赦(진진대전 등대요사)

당진과 섬진은 용문산에서 크게 싸우고

목희(穆姬)는 대에 올라 이오의 목숨을 빌다.

1. 염사포숙(廉士鮑叔)

- 청렴과 의만을 추구했던 포숙이 제나라 재상이 되다. -

관중이 병상에서 환공에게 이아(易牙), 수조(竪刁), 개방(開方) 세 사람을 멀리 하라고 당부하고, 습붕을 자기의 후임으로 천거했다. 그때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사람 하나가 이아에게 그 말을 전했다. 이아가 다시 포숙아를 찾아가 말했다.

「중보가 제나라의 재상에 오를 수 있었음은 대감이 천거에 의해서입니다. 지금 병이 들어 누워있는 관중에게 주군께서 왕림하시어 그의 후임을 묻자 관중은 대감에게 정사를 맡기면 안 된다고 하면서 습붕을 천거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중보의 처사가 매우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포숙아가 웃으면서 답했다.

「그렇게 때문에 내가 관중을 주군에게 힘들여 천거했소. 관중은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고 친구라 할지라도 구애받지 않고 나라에 충성했소. 무릇 이 포숙아에게 사구(司寇) 벼슬을 시켜서 망녕된 자들을 쫓아내라 해서 다소 간에 숨 쉴 여유가 있었겠지만 만약에 나에게 국정을 맡겼더라면 그대 같은 사람들이 발붙일 땅이 한 뼘이라도 남아 있었겠소?」

이아가 얼굴을 크게 붉히고 물러갔다. 다음날 환공이 다시 왕림하였으나 관중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포숙아와 습붕이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그날 저녁 관중이 죽었다. 환공이 곡을 하며 애통해 했다.

「슬프도다. 중보여! 하늘이 나의 한쪽 팔을 잘라 갔도다!」

제환공은 상경 고호(高虎)로 하여금 관중의 장례를 감독하고 성대하게 치르게 했다. 관중에게 내린 채읍은 모두 그의 아들에게 주고 대대로 대부의 벼슬을 잇게 했다. 이아가 대부 백씨(伯氏)에게 말했다.

「옛날 주군께서 병읍(騈邑)①에 있던 그대의 식읍300호를 빼앗아 공로를 세운 관중에게 상으로 주었습니다. 지금 관중이 이미 죽었는데 어찌하여 주군에게 고해 그 식읍을 돌려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대부께서 말씀하신다면 제가 옆에 있다가 거들어 드리겠습니다.」

백씨가 관중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내가 나라에 세운 공이 없어 식읍을 잃었습니다. 중보가 비록 죽었다 하나 그가 세운 공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는데 내가 무슨 면목으로 식읍을 돌려 달라고 주군께 청하겠습니까?」

이아가 한탄하면서 말했다.

「관중은 죽었지만 식읍을 빼앗긴 백씨조차도 능히 마음속으로 복종하게 하고 있으니 우리 같은 사람은 진실로 소인배에 지나지 않구나!」

한편 환공은 관중이 죽을 때 한 유언을 생각하여 공손 습붕을 관중의 후임으로 재상에 임명하여 정사를 맡겼다. 그러나 습붕도 관중이 죽고 난 다음 한 달도 채 안 되어 병이 들어 죽었다. 환공이 말했다.

「과연 중보는 성인이로다. 어떻게 하여 습붕이 나와 오래 지내지 못한다고 알았단 말인가?」

제환공이 다시 포숙아를 불러 습붕의 뒤를 이어 제나라의 정사를 맡도록 했으나 포숙아가 고사했다. 환공이 말했다.

「지금 조당을 통틀어 이 나라의 정사를 맡아 할 사람은 경만한 사람이 없는데 경이 불가하다면 따로 추천할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신은 선만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여 호오(好惡)가 분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전하께서도 잘 아시고 계시는 일입니다. 주군께서 저를 꼭 쓰시겠다고 하신다면 이아, 수조와 개방을 멀리 내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신다면 제가 주군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중보가 당부한 말인데 어찌 내가 경의 말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제환공은 당일로 세 사람을 파직하여 쫓아낸 후 다시는 궁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포숙아가 결국 환공의 명을 받아 제나라 정사를 맡아보게 되었다. 그때 회이(淮夷)②의 침범을 받은 기(杞)③나라가 제나라에 사신을 보내 사태의 위급함을 고했다. 제환공이 송(宋), 노(魯), 진(陳), 위(衛), 정(鄭), 허(許), 조(曹) 등의7국의 군사들을 소집하여 친히 원정하여 기(杞)나라를 구하고 그 도성을 연릉(緣陵)④으로 옮겨주었다. 각국의 제후들이 변함없이 제후의 영을 받든 까닭은 포숙아를 임용하고 관중이 지난날에 만들어 놓은 정령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 범주지역(泛舟之役)

- 수로로 양식을 운반하여 적대국의 기근을 구한 진목공. -

한편 당진에서는 혜공이 즉위한 이래 해마다 보리와 벼가 여물지 않아 흉년이 계속되다가5년째 되는 해에는 정말로 큰 흉년이 들었다. 나라의 창고는 텅텅 비고 백성들의 집에는 양식이 떨어져 굶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혜공이 다른 나라에서 양식을 사오려고 했다. 그러나 이웃나라 중 단지 섬진만이 거리로 당진과 제일 가깝고 또한 혼인으로 맺어진 인척의 나라였기 때문에 도움을 청하기에 가장 좋은 나라였다. 하지만 그때까지 옛날 하외오성(河外五城)을 할양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어 차마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극예가 혜공에게 말했다.

「우리는 섬진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단지 주기로 한 날짜를 늦추었을 뿐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양식을 섬진에 요청했는데 그들이 주지 않고 먼저 우리와의 관계를 끊는다면 그것은 곧 우리가 약속을 깰 수 있는 명분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

「경의 말이 옳소!」

혜공은 즉시 대부 경정(慶鄭)을 사신으로 삼아 보물과 벽옥을 주어 섬진으로 보내 양식을 청하도록 했다. 경정으로부터 양식을 요청 받은 섬진의 목공(穆公)은 군신들을 불러 의논했다.

「당진이 나에게 하외오성을 주기로 해 놓고 아직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소. 그런데 지금 다시 그들이 기근을 이유로 우리에게 양식을 구하고 있소. 양식을 보내야 하오? 아니면 보내지 말아야 하오?」

건숙과 백리해가 목소리를 같이하여 말했다.

「천재는 천하의 모든 나라를 돌아다니며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느 나라인들 천재를 당하지 않는 나라가 있겠습니까? 이웃나라의 처지를 동정하여 천재를 구하는 일은 하늘의 이치입니다. 순리를 행하면 하늘은 우리에게 틀림없이 복을 내릴 것입니다. 」

「나는 이미 당진에게 많은 것들을 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하나도 없었소.」

공손지도 나서서 말했다.

「만약에 이번에 다시 더하여 보태주신다면 받아야 할 빚은 그만큼 더 많아 집니다. 어찌 우리 섬진에 손해라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 그들이 우리에게서 빌려 간 빚을 갚지 않는다면 허물은 그들에게 있게 됩니다. 백성들이 그들의 군주를 미워하는데 누가 우리와 싸움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주군께서는 반드시 양식을 보내주어야 합니다.」

비표가 곁에 있다가 그의 부친 비정보의 원수를 갚을 생각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와서 말했다.

「당진의 군주가 무도하여 하늘이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들이 기근이 든 틈을 타서 군사를 내어 정벌한다면 당진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아경 요여가 일어나 말했다.

「인자(仁者)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틈타 이익을 취하지 않고 지자(知者)는 요행을 바라고 일을 도모하지 않습니다⑤. 마땅히 양식을 보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빚이 있는 자는 당진의 군주이고 기아에 허덕이는 자는 그의 백성이라! 나는 군주로 인해 그 화가 백성들에게 미치는 모습을 보지 못하겠노라!」

목공은 즉시 곡식 수만 석을 물길을 이용하여 당진으로 보냈다. 섬진의 도성 옹성(雍城)에서 곡식을 실은 배는 위수(渭水)의 순류를 타고 하수(河水)로 나간 후에, 다시 하수를 거슬러 올라가 분수(汾水)로 들어가 또다시 회수(澮水)의 역류를 타고 당진의 도성 강도(絳都)로 들어갔다. 옹성과 강도 사이에는 수많은 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항해하여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배를 띄워 곡식을 운반하였다고 해서 그 일을 범주지역(泛舟之役)이라고 칭했다. 주양왕5년 기원전647년에 일어 난 일이었다. 이로써 기근을 면하게 된 당진의 백성들은 하나같이 섬진의 도움에 감격하고 기뻐했다. 사관이 시를 지어 목공의 선행에 찬사를 보냈다.

당진의 군주가 무도하여 천재를 불러들였다.

옹성과 강도 지간에 양곡선이 분주하구나!

누가 원수에게 은혜 베풀기를 좋아 하리요마는

목공의 큰 도량은 진실로 보기 힘든 일이었다.

晉君無道致天災(진군무도치천재)

雍絳紛紛送粟來(옹강분분송속래)

誰肯將恩施怨者(수긍장은시원자)

穆公德量果奇哉(목공덕량과기재)

3. 모피지부(毛皮之附)

- 큰 허물을 놔두고 작은 허물을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다음해 겨울 이번에는 섬진에 흉년이 들고 반대로 당진은 대풍이 들었다. 목공이 건숙에게 말했다.

「과인이 오늘 두 분이 예전에 풍년과 흉년은 떠돌아다닌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만약 과인이 지난겨울에 양식을 구하는 당진의 청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금년에 든 우리나라의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당진에 식량을 청하기는 어려웠을 것이오!」

비표가 말했다.

「진군이 탐욕스럽고 신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작년에 도와준 일을 들어 식량을 청한다 할지라도 진군은 틀림없이 거절할 것입니다.」

목공이 듣고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면서 즉시 냉지에게 역시 보물과 벽옥을 주어 사자로 보내 당진에 가서 곡식을 청하게 했다. 혜공이 하외오성의 땅에서 수확한 곡식을 징발하여 섬진의 요청에 응하려고 했다. 극예가 나와 말했다.

「주군께서 섬진에 곡식을 주시려고 하시는데 그렇다면 하외의 오성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과인은 단지 곡식만을 보낼 뿐이다. 어찌하여 땅까지 주겠소?」

「그렇다면 어찌하여 곡식은 보내시려고 합니까?」

「그것은 지난해에 행한 섬진의 범주지역에 보답을 하기 위해서요.」

「섬진이 범주지역으로 그 덕을 베푼 일은 즉 옛날에 주군을 도와 당진의 군주 자리에 앉힌 큰 공덕에 다시 한 번 더했을 뿐입니다. 주군께서 큰 공덕에는 보답을 안 하고 작은 공덕에 대한 은혜를 갚으려고 하시는 일은 마치 가죽도 없는데 털을 붙이려고 하시는 행위와 같습니다. 큰 잘못을 놔둔 채 작은 잘못을 뉘우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경정이 듣고 앞으로 나와 간했다.

「신이 작년에 주군의 명을 받고 섬진에 가서 양식을 청할 때 진백은 아무런 구실도 붙이지 않고 즉시 허락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창고 문을 닫고 양식을 보내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섬진으로부터 큰 원망을 살 것입니다.」

여이생이 나서서 극예를 두둔했다.

「섬진이 우리에게 양식을 보내 준 목적은 우리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하외오성을 할양받기 위해서입니다. 양식을 주지 않아도 원망을 받고 양식만 주고 땅을 주지 않는다 해도 역시 원망을 듣게 됩니다. 주어도 원망을 받고 주지 않아도 원망을 들을 텐데 구태여 주고 나서 원망을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정이 물러서지 않고 강변했다.

「남의 재난을 기뻐하는 행위를 불인(不仁)이라 하고 남의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를 불의(不義)라고 합니다. 불인불의로 어떻게 나라를 지키려고 하십니까?⑥

대부 한간(韓簡)도 대열에서 나와 말했다.

「경정의 말이 옳습니다. 작년에 우리가 양식을 섬진에 청했을 때 섬진의 군주가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주군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러자 괵석이 여이생에 동조하며 말했다.

「작년에 하늘이 기근을 내려 우리나라를 섬진에게 주려고 했습니다. 섬진이 하늘의 뜻을 모르고 우리에게 곡식을 주어 우리나라를 취하지 않았던 일은 심히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금년에는 하늘이 기근을 섬진에 내려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찌하여 하늘의 뜻을 거슬러 섬진을 취하지 않으려고 하십니까? 저의 어리석은 생각은 양백(梁伯)과 동맹을 맺어 이번 기회를 틈타 섬진을 정벌하여 그 땅을 같이 나누어 가지는 것이 상책입니다.」

괵석의 말을 합당하다고 생각한 혜공이 냉지를 조당에 들어오게 한 후에 양식을 줄 수 없다고 통고했다.

「우리 당진도 몇 년 간 계속 기근이 들어 백성들은 집을 떠나 유랑생활을 하고 있었소. 또 금년 겨울에 간신히 이삭이 피었으나 집을 떠난 유랑자들이 계속 자기 집으로 돌아오고 있어 간신히 자급할 수 있을 정도라 이웃 나라를 돕기에는 부족한 실정이오. 양식을 보낼 수 없음을 이해해 주기 바라오.」

혜공의 뻔뻔스러운 말에 냉지가 하소연했다.

「저희 군주께서는 혼인으로 맺어진 인척 나라의 정리를 생각하여 귀국이 약속한 땅을 주지 않았음에도 책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귀국에서 우리에게 곡식을 청하러 왔을 때도 금하지 않으시고 다만‘이웃이 재난을 당했는데 돕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군주께서 전하께 우리나라의 급하고 어려운 실정을 고하게 하셨는데 제가 아무 것도 구하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차마 우리 군주께 복명할 수가 없습니다. 부디 선처하여 주시기 바라옵니다.」

여이생과 극예가 일어나 큰소리로 냉지를 향해 소리쳤다.

「네가 옛날 비정보와 모의하여 많은 재물로 우리들을 유인하여 죽이려고 했던 일을 다행히 하늘이 도와 그 간계를 간파하였기 때문에 너의 계략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또 다시 와서 요설을 늘어놓고 있느냐? 빨리 돌아가 너희 군주에게 전하라! ‘우리의 양식을 먹고자 한다면 군사를 이끌고 오기 전에는 불가할 것이다.’라고!」

냉지가 분함을 참으며 조당에서 물러 나왔다. 경정이 조당을 나와 태사 곽언을 찾아 물었다.

「우리 주군이 은혜를 저버리고 이웃나라의 분노를 샀으니 화가 머지않아 미칠 것 같은데 태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금년 가을 사록산(沙鹿山)⑦이 무너지고 초목이 모두 쓰러졌소. 무릇 산천이란 나라의 기둥인데 이것이 무너지고 쓰러졌으니 장차 화가 닥쳐 당진이 장차 망하려는 징조가 아닌가 하오!」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은혜를 저버린 당진의 혜공을 비난 했다.

배를 띄워 먼 길을 보내

허기진 이웃나라의 백성들을 구휼하였는데

뜻밖에 섬진에 기근이 들었으나 사람들의 마음은 다 같지 않았다.

자고로 은혜를 저버린 사람이 적지 않으나

진목공의 은혜를 저버린 당진의 혜공과 같은 사람은 없었다.

泛舟遠道賑飢窮(범주원도진기궁)

偏遇秦飢意不同(편우진기의부동)

自古不恩人不小(자고불은인불소)

無如晉惠負秦公(무여진혜부진공)

4. 외강중간(外强中幹)

- 외국산 말은 보기에는 좋으나 전쟁터에서는 약하다. -

당진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온 냉지가 목공에게 복명 했다.

「당진의 군주가 우리에게 양식을 돌려주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기화로 양백과 같이 군사를 일으켜 우리 섬진을 정벌하려고 합니다.」

목공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이렇듯 무도하고 또한 그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이 방자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과인이 먼저 양나라를 파한 후 이어 당진을 정벌하여 그 죄를 물으리라!」

백리해가 듣고 의견을 말했다.

「양백이 땅을 다투는 일을 즐겨하여 그 영토를 넓혀 왔습니다. 또한 나라 안의 여러 곳에 성을 견고하게 쌓고 그 안에 집을 지었지만 백성들을 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에 양나라 백성들은 양백을 크게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양백은 자기의 백성들을 동원하여 당진을 도울 수 없습니다. 당진의 군주가 비록 무도하기는 하나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고 있는 여이생과 극예 두 사람의 지모로 강주(絳州)의 백성들을 동원하여 군사를 일으킨다면 필연적으로 당진의 서쪽 변경지방과 그 이웃나라들을 진동시키게 될 것입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상대보다 빨리 군사를 내어 제압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주군이 지혜로써 나라의 대부들에게 출전을 명하고 당진의 군주가 주군의 은혜를 저버렸음을 만천하에 큰소리로 외쳐 알린다면 마땅히 당진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당진을 제압한 후에 그 여세를 몰아 피폐한 양나라를 도모한다면 이것은 마치 나무 가지에 달린 마른 잎을 떨구는 일처럼 용이하게 공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백리해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 목공은 당진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크게 일으켰다. 건숙과 요여는 옹성에 머물며 태자 앵(罃)을 보좌하여 나라를 지키게 하고 맹명시는 순군(巡軍)을 이끌고 섬진의 서쪽 변경을 돌게 하여 오랑캐의 침입에 대비케 했다. 목공은 백리해와 같이 친히 중군 대장이 되고 서걸술과 백을병은 자기의 어가를 호위하도록 했다. 이어서 우군 대장에는 공손지(公孫枝)를, 좌군 대장에는 공자집을 임명하고 병거400승을 휘몰아 호호탕탕 당진의 국경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다.

당진의 서쪽 변경을 지키던 관리가 사태의 위급함을 혜공에게 고했다. 당진의 모든 신하들을 조당에 불러 모이게 한 혜공이 물었다.

「섬진이 아무 까닭 없이 군사를 일으켜 우리나라의 경계를 범하니 이를 어찌 막아야 하겠는가?」

경정이 입가에 냉소를 띄우고 말했다.

「섬진군이 쳐들어오는 이유는 은혜를 저버린 주상을 토벌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찌하여 까닭이 없다 하십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오로지 죄를 빌고 강화를 청한 후 하외오성을 할양하여 섬진에게 우리나라의 신의를 회복하여 병화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혜공이 크게 노해 말했다.

「우리나라는 당당한 천승의 대국인데 땅을 떼어주고 강화를 청한다면 군주로써 체면이 서겠는가?」

그리고는 큰소리로 영을 내렸다.

「먼저 경정을 참하고 나서 군사를 일으켜 섬진의 군사를 막겠다.」

괵석이 말했다.

「출병도 하기 전에 먼저 장수를 참하는 행위는 군사들의 사기에 이롭지 못합니다. 잠시 죄를 적어 놓고 보류해 두었다가 공을 세워 속죄토록 하시기 바랍니다.」

괵석의 말을 따라 경정을 참하라는 명을 거둔 혜공은 그 날로 전국에 동원령을 내려 거마를 대거 사열하고 그 중에서 가장 정예한600승의 전차와 군사들을 선발하여 출전을 준비했다. 극보양(郤步揚), 가복도(家僕徒), 경정(慶鄭), 아석(蛾晰)을 장군으로 임명하여 좌군과 우군을 각각 맡도록 하고 자기와 괵석은 중군에 거하면서 전군을 지휘하고 도안이는 선봉으로 삼았다. 도성을 떠난 당진군은 섬진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서쪽을 향해 행군을 시작했다.

그때 혜공의 어가를 끄는 네 마리의 말은 옛날 정나라가 선물로 바친 이름이 소위 소사(小駟)라고 했다. 말의 체구는 적었지만 영리하였고 모발은 윤기가 났고 그 걸음걸이는 빠르고도 조용 했다. 평소에 그 말들을 매우 사랑한 혜공이 자기의 어가를 소사에게 끌도록 했다. 경정이 보고 말했다.

「옛날 사람도 군사를 이끌고 전장 터에 나갈 때는 반드시 본국 출산의 말을 탔습니다. 그 말이 본토 산이어야 만이 능히 본국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음 놓고 받을 수 있으며 나라 안의 길도 자주 다녀 익숙하게 되어 전쟁을 할 때 부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뜻대로 움직여 주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군께서 큰 적을 막으러 가시면서 타국 산의 말을 타는 행위는 싸움에 이롭지 않았습니다.」

바른 말을 잘하는 경정에게 여전히 불쾌한 마음을 품고 있던 혜공이 화를 내며 꾸짖었다.

「이 말은 내가 습관이 되었으니 그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말라!」

5. 진진대전(晉秦大戰)

- 섬진과 당진이 용문산(龍門山)에서 크게 싸우다. -

한편 섬진의 군사들은 이미 하수를 도하하여 당진의 경계로 진입한 후 당진군과 세 번 싸워 모두 승리를 취하고 있었다. 변경을 지키는 당진의 장수들은 싸움에 지고 모두 도망쳐 버렸다. 섬진의 군사들은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한원(韓原)⑧에 당도하여 그곳에 진영을 세웠다. 섬진군이 이미 한원에 당도하여 진채를 세웠다는 소식을 들은 혜공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적군이 이미 나라 깊숙이 들어 왔으니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예의 경정이 입바른 소리를 했다.

「주군께서 스스로 적군을 불러 들여놓으시고 어찌하여 다른 사람에게 물으십니까?」

「네 놈은 어찌 그리 무례한가? 썩 물러가라!」

혜공이 당진의 군사들을 이끌고 행군하여 한원에서10리쯤 떨어진 곳에다 진채를 치고는 한간을 시켜 섬진군의 군세를 알아보게 했다. 한간이 다녀와서 혜공에게 보고했다.

「섬진근의 병력은 우리 보다 적으나 그 사기는 우리보다 열 배나 높습니다.」

「어찌하여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주군께서는 처음에 섬진국 군주의 호의를 믿고 그 나라와 가까운 양나라로 망명하셨습니다. 과연 생각하신 대로 섬진국의 도움을 얻어 우리 당진국의 군주자리에 오르실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섬진이 베푸는 양식을 받아 나라의 기근도 면했습니다. 우리 당진국은 섬진국의 은혜를 세 번이나 받았지만 한 번도 갚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섬진국의 군신들은 마음에 분노가 쌓여 한마음 한뜻으로 우리 당진을 정벌하러 왔습니다. 섬진군은 모두 은혜를 저버린 우리의 죄를 추궁하려고 하는 마음에 사무쳐 그 기세가 매우 성합니다. 어찌 열 배만 높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혜공이 화를 내며 말했다.

「그대의 말은 곧 경정이 이미 말한 바다. 내가 마땅히 섬진의 군사들과 죽기를 각오하고 한번 싸우리라!」

즉시 혜공이 한간에게 명하여 섬진의 군중으로 가서 전서를 전하고 싸움을 청하게 했다.

『과인은 무장한 병거600승을 이끌고 군주를 기다린 지 오래입니다. 군주께서 만약 군사를 물리쳐 돌아간다면 그것은 과인이 원하는 바이나 만약 군사를 물리치지 않는다면 내가 싸움을 피하고 싶어도 사기가 드높은 우리 당진군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목공이 전서를 받아 읽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나이도 어린놈이 어찌 이리 교만한가?」

목공은 즉시 공손지를 당진의 군중으로 보내 답서를 전하게 했다.

「그대가 나라를 원해서 나는 주었다. 그대가 또한 양식을 구하자 내가 보내 주었다. 지금 그대가 싸우고자 하니 어찌 내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한간이 혜공 앞에서 물러 나와 한탄 했다.

「섬진의 도리가 옳으니 내가 죽을 데가 어디인지 모르겠구나!」

혜공이 곽언에게 점을 치게 하여 차우장군(車右將軍)⑨을 누구로 임명해야 하는지를 알아보게 했다. 점을 친 결과 여러 장수들 모두 불길하다고 나왔으나 오로지 경정 한 사람만이 길하다고 나왔다. 혜공이 말했다.

「경정이란 놈은 섬진과 같은 무리에 속한 자인데 어찌 내가 그를 차우장군에 임명할 수 있겠는가?」

곽언의 점괘를 무시하고 경정 대신에 가복도를 차우장군으로, 극보양을 어자로 임명한 혜공은 군사를 이끌고 한원으로 나가 섬진군과 대치하며 임전태세를 갖추었다. 백리해가 망루에 올라 당진의 군사들 수가 매우 많음을 보고 목공에게 말했다.

「당진의 군주는 장차 우리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려는 기세입니다. 주군께서는 잠시 싸움을 중지하시고 사태를 관망하시기 바랍니다.」

목공이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당진의 군주가 나의 은혜를 저버리기를 그렇듯 심하게 했는데, 만일 하늘에 도리가 없다면 모를까, 하늘이 알고 있다면 내가 어찌 싸움에 이기지 못하소?」

목공이 진채를 다시 용문산(龍門山)⑩ 밑으로 옮기고 전열을 정비하여 당진의 군사들이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섬진군이 전열을 정비하여 전투태세를 갖추자 얼마 후에 당진군도 용문산 밑에 당도했다. 섬진과 당진의 양쪽 군사들이 서로 마주보고 원을 그리며 대치했다. 마침내 양 진영의 중군에서 북소리가 울리자 두 나라 군사들이 앞으로 전진했다. 당진군 진영에서 도안이가 뛰어나와 자기의 용력을 믿고 손에는 백 근이 넘는 혼철창(渾鐵槍)을 휘두르며 섬진의 진영으로 달려가 만나는 병사들을 모두 찔러 죽였다. 도안이의 용력에 놀란 섬진의 군사들은 바람에 쓰러지는 초목처럼 흩어져 달아나기 바빴다. 그때 섬진군의 진영 쪽에서 장수가 한 명 나와 도안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장수는 바로 건숙의 아들 백을병이었다. 두 사람이 맞붙어 싸워50여 합을 겨루었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가 분기탱천하여 각기 자기의 전차에서 뛰어 내려 뒤엉켜 싸웠다. 도안이가 말했다.

「너와 나는 죽을 때까지 싸워 승패를 결정하도록 하자. 만약 다른 사람의 구원을 받는다면 사내자식이 아니다.」

백을병 응대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바라는 바다. 내가 맨손으로 너를 잡아서 내가 진실로 영웅임을 보여주마!」

두 사람이 즉시 주위에 있는 군사들에게 명령 했다.

「너희들은 모두 우리가 싸우는데 끼워 들지 말라!」

두 사람이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던져 버리고 맨손으로 덤벼들어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서로 뒤엉켜 땅바닥에 뒹굴면서 양쪽 진영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당진의 혜공은 도안이가 혹시 적의 함정에 빠질까 걱정하여 급히 한간과 양요미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가서 섬진군의 좌측을 공격하게 하고 자신은 가복도와 함께 우측을 공격하여 섬진군의 중군을 양쪽에서 압박하려고 했다. 당진군이 군사를 나누어 양쪽에서 자기가 있는 중군을 향하여 공격해 오자 그 역시 섬진군을 양대로 나누어 대적하도록 했다.

한편 병거를 타고 앞으로 진격하던 당진의 혜공은 공손지의 반격을 받았다. 혜공이 즉시 차우장군 가복도로 하여금 공손지를 막도록 했다. 그러나 공손지는 원래 만부지당의 용력을 갖고 있던 장사였기 때문에 가복도는 도저히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혜공이 다시 말고삐를 잡고 병거를 몰고 있던 어자 극보양을 쳐다보며 명령을 했다.

「있는 힘을 다하여 병거를 몰아 앞으로 달려라! 내가 친히 가복도의 싸움을 도우리라!」

공손지가 극을 휘두르며 당진군을 향하여 큰소리로 외쳤다.

「모두 한꺼번에 나와서 덤벼라!」

공손지의 고함 소리는 마치 벼락과 같아 하늘을 진동시키는 듯 했다. 전차에 타고 있던 국구 괵석은 공손지가 지른 고함소리에 놀라 바닥에 엎드려 감히 숨도 쉬지 못했다. 그때까지 전쟁에 나가 본 경험이 없었던 혜공의 병거를 끌고 있던 정나라 출산의 소사는 공손지의 벼락과 같은 고함소리에 놀라 어자가 아무리 말고삐를 잡고 진정시키려고 해도 멈추지 않고 날뛰었다. 마침내 소사가 끄는 혜공의 융거(戎車)는 진흙 구덩이 속으로 빠져 버리고 말았다. 어자 극보양이 힘을 다하여 채찍으로 말들을 후려쳤으나 소사는 그다지 힘이 세지 못하여 진흙탕 속으로 빠진 수레를 끌어낼 수 없었다. 바야흐로 혜공의 처지가 위급하게 되었을 때 마침 경정이 병거를 타고 그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경정은 위기에 빠진 혜공을 보고도 구하려고 하지 않고 그 옆을 지나쳐 앞으로 달려갔다. 혜공이 다급하게 경정을 부르면서 말했다.

「경정은 속히 나를 구하라!」

경정이 듣고 대답했다.

「전하께서 그토록 믿고 있는 괵석은 어디다 두시고 소인을 부르십니까?」

혜공이 다시 다급한 목소리로 경정에게 말했다.

「경정은 속히 병거를 끌고 와서 나를 구하라!」

「제가 누누이 그 말을 타고 전장에 나오면 안 된다고 간했습니다만 주군께서는 고집을 세우시며 소사를 타면 마음이 편하다고 하시면서 기어코 타고 나오시더니 그 지경이 되셨습니다. 신은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위급함을 알려 주군을 구하라는 말이나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정은 말을 마치고 수레의 끌채를 잡아당겨 그 방향을 오른쪽으로 돌리더니 혜공을 남겨 놓고 가버렸다. 극보양이 병거에서 내려 옮겨 탈 만한 다른 수레를 찾으려고 했으나 섬진의 군사들이 달려와 주위를 에워싸는 바람에 수레 안에 갇혀서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없었다.

6, 삼백야인(三百野人)

- 진목공을 조롱(鳥籠)에서 구해 은혜를 갚은 삼백 명의 야인들-

한편 한간이 한 떼의 군마를 이끌고 앞으로 전진하다가 마침 섬진의 중군 중에 있던 목공의 병거를 보았다. 한간이 목공을 향하여 돌진하자 서걸술이 앞을 막아 두 사람이30여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뒤이어 당진군의 장수 아석이 이끈 한 떼의 군마가 들이닥쳐 한간을 도와 싸움에 끼어들었다. 서걸술이 두 사람의 공격을 당해 내지 못하고 한간이 휘두른 창에 찔려 수레 밑으로 떨어졌다. 양요미가 옆에 있다가 큰소리로 외쳤다.

「패장은 잡아 봐야 무용지물이다. 모두 힘을 합하여 섬진의 군주를 사로잡아라!」

한간이 병거 밑으로 떨어진 서걸술을 내버려두고 군사를 휘몰아 목공이 타고 있는 수레를 향하여 돌격했다. 수많은 당진의 병사들에게 포위를 당해 사로잡히게 될 순간에 처한 목공이 하늘을 쳐다보며 한탄 했다.

「내가 오늘 오히려 당진의 군사들에게 사로잡히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으니 천도가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목공이 탄식하며 절망하고 있는데 서쪽 방면의 한쪽 구석에서3백 명쯤으로 추산되는 한 떼의 용사들이 목공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 한사람이 큰 소리로 말 했다.

「우리의 은혜로운 군주를 해치려는 자가 누구냐?」

목공이 고개를 들어 자세히 살펴보니3백여 명쯤으로 보이는 용사들은 하나같이 머리는 산발하고 상의는 팔이 없는 적삼을 입고, 발에는 풀로 엮은 신을 신고서 자기가 타고 있는 어가를 향해 달려오는데 마치 그 걸음걸이가 나는 것처럼 민첩했다. 또한 손에는 모두가 대도를 잡고 허리에는 활과 화살을 메고 있어 그 형상은 마치 염라대왕이 보낸 저승사자와 같이 험상궂었다. 그들이 이르는 곳마다 당진의 군사들은 바람에 풀잎 쓰러지듯이 죽어 넘어졌다. 한간과 양요미가 황망 중에 근근히 대적하고 있는 중에 또 한 사람의 장수가 북쪽으로부터 병거를 비호같이 몰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장수는 바로 경정이었다. 한간과 양요미 두 사람을 향하여 경정이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싸움에 연연해 할 때가 아닙니다. 주공께서는 용문산 아래의 진흙탕 속에 빠지시는 바람에 섬진군의 포위망에 갇혔습니다. 빨리 가서 주군의 어가를 구하십시오.」

한간 등이 더 싸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정체를 알 수 없는 장사들을 버리고 혜공을 구하기 위해 용문산 쪽을 향하여 곧바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혜공은 공손지에 의해 사로잡힌 후였다. 가복도, 괵석, 극보양 등도 모두 공손지에게 사로 잡혀 포승줄에 묶인 후 혜공과 함께 진나라 군중으로 끌려갔다. 한간이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내가 계속 공격했더라면 섬진의 군주를 생포하여 주군과 교환할 수 있었는데 경정이 나의 일을 그르치게 만들었구나!」

양요미가 말했다.

「주군이 이미 적군에 사로잡혔는데 우리들만 어떻게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양요미는 즉시 한간과 같이 군사들에게 병장기들을 버리게 하고는 섬진군의 영채로 찾아가 항복하여 혜공과 같은 방에 갇쳤다.

7. 사주도마(賜酒盜馬)

- 말도둑들을 용서하고 술독을 하사한 진목공-

한편3백여 명의 저승사자 같은 험악한 형상의 장사들은 목공을 구한 후에 다시 한간의 극에 찔려 넘어져 있던 서걸술마저 구출했다. 섬진군이 승세를 타고 일제히 당진군의 진영을 공격했다. 당진군은 일시에 무너져 싸움에 크게 패했다. 용문산 앞자락의 평원 위에는 당진군의 시체로 산을 이루었다. 당진이 동원한6백 승의 전차와 군사 중 목숨을 건져 달아난 사람은 십에 이삼도 되지 않았다. 당진의 군주가 섬진군에 의해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경정은 섬진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여 도망치다가 중도에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아석을 발견하고 부축하여 자기의 병거에 싣고 당진으로 돌아갔다. 염옹이 한원과 용문산 일대에서 벌어진 당진과 섬진의 큰 싸움에 대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용문산 밑에 산처럼 쌓인 주검을 슬퍼하노라!

그것은 단지 혼군의 배은망덕한 짓 때문이었다.

두 나라의 옳고 그름이 이 싸움으로 밝혀졌으니

천도가 이렇듯 명백한데 어찌 모른다 하는가?

龍門山下嘆輿尸(용문산하탄여시)

只爲昏君不報施(지위혼군불보시)

善惡兩家分勝敗(선악양가분승패)

明明天道豈無知(명명천도개무지)

섬진의 목공이 자기의 군영으로 돌아와서 백리해를 보고 말했다.

「경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하마터면 당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뻔했습니다.」

목공을 위기에서 구한 장사3백여 명은 일제히 목공이 있는 군영 앞으로 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목공이 그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과인을 위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는가?」

장사들의 우두머리가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

「옛날에 군주님께서 즐겨 타시던 명마를 잃어버리신 일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우리들은 그때 군주님의 말을 훔쳐서 잡아먹은 사람들입니다.」

원래 목공은 일찌기 양산(梁山)⑪에 사냥을 나갔다가 한밤중에 자기가 타고 다니던 좋은 말 몇 필을 잃어 버렸다. 다음날 아침 목공은 관리들을 시켜 잃어버린 말을 찾아오도록 명했다. 말을 찾으러 길을 떠난 관리가 종적을 쫓아 기산(岐山)⑫밑에 이르러 말을 잡아먹고 있는3백여 명의 야인들을 발견했다. 관리가 나서면 야인들이 놀라 도망쳐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즉시 사람을 보내 목공에게 보고했다.

「말은 도적들이 잡아서 먹어 버렸습니다. 속히 군사를 보내시면 말을 훔쳐 잡아먹은 도적들은 모두 잡을 수 있습니다. 」

목공이 한탄하면서 말했다.

「말은 이미 죽었는데 또한 그 말을 잡아먹은 사람을 잡아다 죽인다면 백성들이 장차 나를 가축은 귀히 여기고 사람은 천하게 여긴다고 욕하지 않겠는가?」

목공이 즉시 군중에 있던 미주(美酒) 수십 통을 가져오게 하여 기산 밑에 모여서 말을 잡아서 먹고 있는 야인들에게 하사하도록 했다. 술을 가지고 간 관리가 섬진의 군주가 하사하는 술이라고 말하면서 목공의 말을 전했다.

「말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몸이 상한다고 해서 내가 그대들에게 이 술을 내리노라!」

머리를 조아리고 은혜에 감사한다는 말을 올린 야인들은 목공이 하사한 술을 나누어 마시면서 감격하여 일제히 말했다.

「말을 훔친 죄를 묻지 않은 것만 해도 황공한데 좋은 술까지 내려 주시니 주군에게서 입은 은혜가 너무 크구나. 우리가 어찌하면 이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는가?」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목공이 당진국을 정벌하러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된3백의 야인들이 모두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한원까지 몰래 따라와 싸움을 돕고자 했다. 그때 마침 목공이 당진의 군사들에게 포위를 당하게 되어 위험에 처하게 되자 야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당진군을 물리치고 목공을 구했던 것이다. 이 일을 두고 지은 시가 있다. .

콩 심는데 콩 나고

팥 심는데 팥 난다.

박하게 베풀면 박하게 받고

후하게 베풀면 후하게 받는다.

은혜를 입고도 갚지 않는다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種瓜得瓜(종과득과)

種豆得豆(종두득두)

施薄報薄(시박보박)

施厚報厚(시후보후)

有施无報(유시무보)

何異禽獸(하이금수)

야인의 말을 듣고 목공이 하늘을 쳐다보며 한탄했다.

「한낱 야인들도 이렇듯 은혜를 갚고자 하는 의기를 갖고 있는데 일국의 군주라는 자가 은혜를 저버리기를 금수와 같이 한단 말인가?」

이윽고 야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다.

「너희들 중 출사를 원하는 자가 있다면 내가 능히 작록을 내리겠노라!」

야인들이 일제히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들은 한낱 야인에 불과한 사람들입니다. 단지 주군께서 베풀어주신 한 때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할뿐이었습니다. 원컨대 들판에 나가 사냥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목공이 그들에게 각각 황금과 비단을 하사했으나 야인들이 받지 않고 들판으로 돌아가 버렸다. 목공이 탄식해 마지않았다. 후세의 사관이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한원의 산 밑에서 벌어진 진진(晉秦)의 싸움에서

당진의 군사들은 목공을 빽빽이 에워쌌다.

옛날에 만약 말도둑들을 잡아서 죽였다면

목공은 어찌 조롱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韓原山下兩交鋒(한원산하양교봉)

晉甲重重困穆公(진갑중중곤목공)

當日若誅牧馬士(당일약주목마사)

今朝焉得出樊籠(금조언득출번롱)

목공이 전투에 참가했던 장군과 군교들을 점검하였는데 모두가 무사했으나 단지 백을병 한 사람만이 보이지 않았다. 군사들이 흩어져 백을병을 찾아다니다가 한 토굴 안에서 신음소리가 나서 들어가 보니 백을병과 도안이가 기진하여 누워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붙들고 놓아주지 않고 버티다가 쓰러져 몇 번 땅위를 구르다가 굴속으로 떨어진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가 기진맥진하게 되어 기절하게 되었으나 두 팔만은 상대방을 놓지 않고 붙들고 있었다. 군사들이 두 사람을 떼어놓은 후에 두 대의 수레에 따로 싣고는 섬진군의 본영으로 데려왔다. 목공이 백을병에게 말을 걸었으나 기진하여 응대를 하지 못했다. 그때 백을병과 도안이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운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 있어 그 전말을 목공에게 상세하게 고했다. 목공이 탄식해 마지않았다.

「두 사람은 진실로 천하의 장사로다!」

목공이 좌우를 보고 물었다.

「백을병 장군과 싸운 당진의 장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공자집이 도안이를 실은 수레를 올라가 한번 살펴보더니 내려와 목공에게 고했다.

「이 장수는 곧 당진의 용사 도안이 장군입니다. 신이 옛날에 당진의 공자 중이와 이오에게 조문을 갔을 때 도안이도 역시 본국대신들의 명을 받아 중이를 모셔 가려고 와 있었습니다. 그때 저와 여사에서 서로 상면한 적이 있어 제가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 섬진에 머물게 하여 내가 쓰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공자집이 말했다.

「탁자와 순식을 시해하고 이어서 여이생과 극예의 사주를 받아 비정보에게 접근하여 중이를 추대하려는 당진의 아홉 대부의 계획을 밀고하여 그들을 모두 죽게 만든 자입니다. 하늘의 순리를 따른다면 마땅히 죽여야 합니다.」

목공이 즉시 명을 내려 도안이를 끌고 가서 참수하도록 했다. 그리고 자기의 비단 전포를 벗어 백을병을 덮어 주고 백리해에게 명하여 온거(溫車)⑬에 실어 옹성으로 보내 의원의 치료를 받게 했다. 옹성으로 돌아간 백을병은 의사가 준 약을 먹고 피를 여러 말 토하더니 반년 정도가 지나서야 가까스로 평상시의 체력을 회복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후일의 이야기이다.

8. 등대요사(登臺要赦)

- 대에 올라 진혜공의 목숨을 빈 목희-

목공이 한원과 용문산 사이에서 벌어진 당진과의 전투에서 대승하고는 진채를 걷어 회군하면서 사람을 당진의 혜공을 구금한 막사에 보내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그대가 나를 피하지 않았으니 과인도 역시 그대를 피할 수 없었소. 내가 그대를 우리나라에 데려간 후에 그 죄를 물으리라!」

혜공은 목공이 전한 말을 듣고 머리를 숙이고는 아무 말도 못했다. 목공이 공손지를 시켜 병거 백 승을 이끌고 혜공을 옹성으로 압송해 가도록 했다. 괵석, 한간, 양요미, 가복도, 극보양, 곽언, 극걸 등, 당진의 장군들은 모두 풀어헤쳐진 머리와 때 묻은 얼굴을 하고 혜공이 탄 함거 뒤를 도보로 따랐다. 그들은 풀 섶을 헤치며 이슬을 맞으면서 걷다가 한데서 잠을 잤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초상을 치르는 사람들의 행렬 같았다. 목공이 다시 사람을 시켜 여러 대부들을 불러와 그들의 노고를 위로했다.

「그대들 나라의 임금과 신하가 ‘당진의 곡식을 먹고 싶으면 군사를 끌고 오라’고 했는데 과인이 지금 그대들의 임금을 붙잡고 있는 목적은 당진국의 곡식을 구하고자 함이니 내가 너무 심하다고 말하지 말라! 어리석은 임금이 없다고 해서 그대들이 근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대들은 너무 슬퍼하지 말라!」

목공에게 절을 올린 한간 등이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군주께서 우리 주군의 어리석음을 관대하게 용서하셨는데 저희가 어찌 심하게 하신다고 하겠습니까? 우리 군주가 한 말을 하늘과 땅에 있는 신령이 모두 들었으니 신 등이 어찌 감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의 말을 올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섬진군의 행렬이 이윽고 옹성 밖에 당도하자 목공이 군신들을 불러모아 의견을 물었다.

「과인이 상제의 명을 받아 당진국의 란을 평정하고 이오를 그 나라의 군주 자리에 앉혔다. 오늘 당진의 군주가 내가 베푼 은혜를 배반한 행위는 즉 상제의 명을 어긴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당진의 군주를 죽여 그 피로써 상제에게 제사를 지내 하늘의 은혜에 답하고자 하는데 대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공자집이 말했다.

「주군의 말씀은 심히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공손지가 나와 간했다.

「불가합니다. 당진은 대국입니다. 우리가 그 나라의 명망있는 대부들을 잡아와 이미 그들의 원한을 샀습니다. 더욱이 그들의 군주를 죽인다면 당진의 분노는 더욱 깊어 질 것입니다. 다음에 당진국이 우리에게 보복할 때는 지금 우리가 당진에게 했던 것 보다 훨씬 도가 심하게 될 것입니다.」

공자집이 다시 말했다.

「신의 뜻은 진군을 까닭 없이 죽이자는 말이 아니라 장차 공자 중이로 하여금 그 뒤를 잇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무도혼군을 죽이고 유도한 현인을 군주로 세운다면 당진의 백성들은 우리가 베푼 은혜에 감사하여 몸 둘 바를 모를 것입니다. 어찌 우리를 원망하겠습니까?」

공손지도 물러서지 않고 주장을 세웠다.

「공자 중이는 어진 사람입니다. 부자와 형제사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옛날 중이가 부친상을 이용하여 이를 취하지 않았는데 동생의 죽음을 이용하여 이를 탐하겠습니까? 만약에 중이가 당진에 들어가 군위에 오르지 않고 다른 공자가 선다고 한다면 지금의 이오와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또한 중이가 입국하여 당진의 군주 자리에 오른다면 그는 틀림없이 동생을 위하여 우리 섬진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할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이오에게 베푼 은혜를 헛되이 하고 중이에게 새로운 원한을 사는 일을 하게 되는 일입니다. 신의 어리석고 좁은 소견으로는 이오를 죽이는 처사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오를 당진의 군주 자리에서 쫓아내야 되겠소? 아니면 감옥에 가두어 놓아야 하겠소? 그것도 아니라면 그를 당진의 군주자리에 다시 복직시켜 주어야 하겠소? 이 세 가지 방법 중에 어느 편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시오?」

공손지가 대답했다.

「일개 필부를 감옥에 가두어 두는 일이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습니까? 그를 군주의 자리에서 쫓아내면 그는 틀림없이 자기 나라로 돌아간 후에 다시 군위를 찾으려고 무리를 이루어 음모를 꾸밀 것입니다. 어차피 쫓아낸다 하더라도 그가 당진에 돌아가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우리가 직접 그를 다시 복위시키는 편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우리가 멀리까지 원정을 가서 고생 끝에 세운 공이 헛된 일이 되지 않겠소?」

「신의 뜻은 아무 것도 취하지 않고 당진의 군주를 복위시키자고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우선 반드시 하외의 오성을 받아 와야 합니다. 또한 그의 세자 어(圉)를 인질로 하여 이곳에 머물게 한 후에 당진의 군주를 풀어 주십시오. 그렇게만 한다면 당진의 군주는 평생토록 감히 우리의 뜻을 거스를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앞으로 그 부친이 죽고 그 아들이 군위를 물려받게 되면 우리는 또한 어에게도 은혜를 베풀게 되는 일이니 당진국으로 하여금 대를 이어 우리나라를 받들게 만드는 일입니다. 어찌 그 이로움이 크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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