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怒殺無辜(노살무고), 割股啖君(할고담군) > 2부3 백리해

제31회. 怒殺無辜(노살무고), 割股啖君(할고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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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4,127회 작성일 07-02-0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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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怒殺無辜 割股啖君(노살무고 할고담군)

애꿎은 경정을 죽여 화풀이하는 당진의 혜공과

허벅지 살을 잘라 국을 끓여 굶주린 주군을 먹인 개자추

1. 이립진군(二立晉君)

- 당진의 군주를 두 번째로 세우는 섬진의 목공-

영대산(靈臺山)의 이궁에 갇혀 있던 당진의 혜공은 목희가 내시들에게 상복을 입히고 자신은 숭대(崇臺) 위에 짓게 한 초막에 머물며 그의 목숨을 구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목희가 자기의 잘못을 질책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 혜공이 한간을 보고 말했다.

「옛날에 선군이 목희를 진나라에 시집보낼 때 사소(史蕭)를 시켜 점을 치게 해서‘서쪽의 이웃나라와 다툼이 있을 괘이니 혼인은 이롭지 않다’라는 점괘를 얻었었소. 만약 사소의 점괘를 따랐다면 오늘과 같은 불행한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오.」

「그것은 선군이 덕을 잃어서이지 어째서 섬진과의 혼인 때문이겠습니까? 더욱이 섬진과 혼인을 맺지 않았다면 어떻게 주군께서 우리 당진국의 군주 자리에 오르실 수 있었겠습니까? 섬진의 군주가 주군을 우리나라에 들여보내 군위에 앉히고 다시 쳐들어 온 이유는, 주군께서 호의를 저버리고 원수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섬진의 입장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행했을 뿐입니다. 주군께서는 스스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혜공이 한간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공손지가 영대산의 이궁에 당도하여 혜공의 문안을 묻고 당진으로 돌려보겠다는 목공의 명을 전하며 말했다.

「우리나라의 여러 신하들 중 군주께 호의를 갖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 군주님의 귀국을 모두 반대했습니다. 오로지 군부인 한 사람만이 후원의 높은 대에 올라 목숨을 걸고 군주의 죄를 빌어, 감히 혼인으로 맺어진 우호관계를 깰 수 없다고 해서 이렇듯 군주께서 귀국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우리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하외오성을 속히 이행하시고 태자 어(圉)를 불러 인질로 하신다면 본국으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

혜공은 공손지의 말을 듣고서야 목희가 남매간의 정리를 생각해서목공에게 혜공의 용서를 빌어 자기가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혜공은 부끄러운 생각으로 몸 둘 곳을 몰라 했다. 그는 즉시 대부 극걸을 본국으로 보내 여성(呂省)에게 하외오성을 섬진에 할양하고 태자를 인질로 들여보내라는 명을 내렸다. 여성이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하수 서안의 왕성(王城)으로 와서 목공을 알현하고 하외오성의 지도와 함께 그 땅의 생산되는 양곡의 량과 호구의 수를 적은 장부를 바쳤다. 이어서 그는 혜공이 당진에 귀국한 후에 태자어를 인질로 보내겠다고 말했다. 목공이 듣고 물었다.

「무슨 이유로 태자를 먼저 데려오지 않고 나중에 보낸다고 하는가?」

여성이 대답했다.

「나라 안의 국인들이 서로 화목하지 못해 태자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변란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근심하여 저희 주군께서 당도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군주께서 귀국하시게 되면 태자는 그 즉시 이곳으로 출발할 것입니다.」

「어찌하여 너희 나라의 국인들이 서로 불화한다고 하는가?」

「우리나라의 국인들은 스스로의 죄를 알고 섬진이 베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인배들은 스스로의 죄를 알지 못하고 오로지 섬진에게 원수를 갚을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국인들이 서로 불화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대 나라의 국인들은 그대들의 군주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는가?」

「우리 당진국의 국인들은 모두가 우리의 군주가 반드시 귀국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태자를 보내 섬진과 화목하게 지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소인배들은 우리의 군주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태자로 하여금 군위를 잇게 하고 섬진에게 원수를 갚으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인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군주님께서는 우리의 주군을 생포하시어 위엄을 이미 세우셨고 또한 우리의 군주를 놓아주시면 그것 또한 덕을 베푸시는 일입니다. 덕과 위엄을 같이 행하시어 이것으로써 방백이 되어 천하의 제후들을 호령하여 패업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군을 잡아 두고 돌려보내지 않으신다면 우리나라 군자들의 마음은 상하게 하고 소인배들은 격노할 것인데 섬진에는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앞서 세운 공을 버림으로써 백업(伯業)이 무너질 것입니다. 신이 헤아려 보건대 이것은 현명하신 군주께서 절대 행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목공이 흡족하여 웃으면서 말했다.

「과인의 생각은 그대의 뜻과 같도다!」

목공은 즉시 맹명시에게 하외오성을 접수하여 관청을 짓고 관리를 보내 지키도록 명했다. 다시 혜공을 옹성의 교외에 있는 공관으로 옮기게 하고 빈객의 예로써 대하게 했다. 목공이 칠뢰(七牢)로 음식을 준비하게 하여 혜공의 일행을 크게 대접한 후에 공손지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여성과 함께 혜공의 귀국을 호송하도록 했다. 당시 손님을 접대할 때 보통 소, 양과 돼지 각 한 마리씩을 잡는 것을 일뢰(一牢)라고 하는데 각각 일곱 마리씩을 잡아 하는 접대를 칠뢰라고 했다. 즉 칠뢰로 음식을 준비했다 함은 매우 성대하게 대접했음을 말한다. 이것은 곧 섬진의 목공이 당진의 혜공과 다시 우호관계를 유지하려는 생각에서였다.

2. 노살무고(怒殺無辜)

- 애꿎은 경정을 죽여 전쟁에서 진 분풀이하다. -

혜공이9월에 싸움에서 패하고 섬진의 포로가 된 후 두 달만인11월에서야 풀려나 자기나라로 귀국할 수 있었다. 당진의 여러 신하들도 갖은 고생을 한 끝에 혜공과 같이 귀국할 수 있었으나 단지 괵석만은 섬진에서 병을 얻어 죽는 바람에 돌아 올 수 없었다. 아석은 혜공이 귀국 길에 올라 조만 간에 도성에 당도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경정을 찾아가 말했다.

「그대가 주군을 구하라는 통보에 한간이 사로잡을 수 있었던 섬진의 군주를 놓쳐버리게 만들고 또 진흙탕 속에 빠져 있는 주군의 수레를 보고도 구하지 않아 주군은 섬진의 포로가 되고 말았소. 지금 주군이 풀려나 돌아오면 그 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오. 어찌하여 다른 나라로 몸을 피해 목숨을 구하려고 하지 않소?」

「군법에 장수가 싸움에 지거나 적군에게 포로가 되면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했소. 하물며 내가 주군을 그르치게 하여 큰 욕을 당하게 했으니 이것은 대단히 큰 죄에 해당하는 일이오. 만일 주군께서 귀국하지 못하게 되었다면 내가 가솔들을 데리고 섬진으로 들어가 주군과 함께 죽으려고 생각하고 있었소. 하물며 이제 주군이 돌아오니 내가 어찌 죄를 피해 다른 나라로 도망갈 수 있겠소? 내가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장차 주군께서 나에게 법을 집행하시어 사무친 마음을 풀 수 있게 되오. 또한 신하된 자로써 죄를 짓고 다른 나라로 도망치면 안 된다는 도리를 후세 사람들에게 교훈으로 남기고자 함이오.」

아석이 듣고 탄식하며 물러갔다. 혜공의 일행이 이윽고 강도 가까이 이르자 태자어가 호돌, 극예, 경정, 아석, 사마열(司馬說), 시인 발제 등을 이끌고 도성밖에 나와 영접하기 위해 기다렸다. 혜공이 수레 안에서 경정이 나와 있음을 보자 마음속에서 분기가 일어 가복도를 시켜 그를 앞으로 불러오게 하고는 물었다.

「너는 무슨 면목으로 감히 과인을 보러 왔느냐?」

경정이 태연한 태도로 대답했다.

「주군께서 처음에 제가 올린 말을 들으시어 섬진에게서 받은 은혜를 갚으셨다면 그들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섬진의 군주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왔을 때 용서를 빌고 강화를 해야 한다는 저의 말을 들으셨다면 싸우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 주군께서 전장에 나갈 때 정나라 산의 소사가 끄는 전차를 타지 말라는 저의 말을 들으셨다면 주군께서 붙잡히지 않아 싸움에 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신은 충심으로 주군을 대했는데 어찌하여 뵈러 나오지 못한단 말입니까?」

「너는 무슨 면목으로 아직도 할 말이 그리 많은가?」

「신에게는 죽을죄가 셋이 있습니다. 충언을 했으나 주군로 하여금 알아듣게 하지 못했음이 그 하나요, 태복(太卜) 곽언이 점을 쳐 그 점괘에 제가 차우장군이 된다면 길하다는 했으나 주군으로 하여금 그 점괘에 따라 저를 임용하도록 못한 일이 그 두 번째 죄이며, 주군이 타고 계신 병거가 진흙탕 속에 쳐 박혀 위급하게 되었을 때 주군을 구하고자 다른 장수들을 부르러 간 사이에 주군으로 하여금 적군에게 사로잡히게 만든 것이 그 셋입니다. 신이 죄를 받기를 청하오니 법을 집행하시어 신이 지은 죄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혜공이 경정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옆에 있던 양요미를 시켜 경정의 죄를 들어 밝히도록 했다.

양요미가 나와 경정의 죄를 지적했다.

「경정 네가 한 말은 모두가 죽음에 해당하지 않은 죄다. 그러나 너에게는 죽음에 해당하는 다른 죄가 셋이 있다. 네 스스로 알고 있지 않은가? 주군이 진흙 구덩이에 빠져서 그대를 급히 불렀는데 너는 쳐다보지도 않고 가 버렸다. 이것이 마땅히 죽어야 할 첫 번째 죄이고, 우리가 섬진의 군주를 바야흐로 사로잡을 수 있었던 순간에 네가 주군을 구하라고 외쳐 우리를 그르치게 하였으니 두 번째이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포승에 묶여 적국에 끌려가 갖은 고난을 겪었는데 너는 힘써 싸우지 않고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도망치듯이 하였으니 이것이 그 세 번째로 지은 죽을죄이다.」

「삼군의 장수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으니 내가 하는 말을 들어보시오! 도망가지 않고 앉아서 죄를 청하고 있는 사람이 힘써 싸워 몸에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비난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경정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아석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경정이 죽음을 무릅쓰고 죄를 받기를 피하지 않았으니 가히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군께서 용서하시어 우리가 한원에서 받은 치욕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양요미가 소리쳤다.

「싸움은 이미 졌는데 어찌 죄인을 써서 그 원수를 갚겠다고 하는가? 천하가 당진에는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웃지 않겠는가?」

가복도가 앞으로 나와 경정을 변호했다.

「경정은 세 번이나 주군께 충언을 올렸으니 죽음만은 면하게 하소서! 그를 죽이는 일은 군주가 오로지 법에만 의지하는 각박한 사람임을 말하며, 그를 죽이지 않고 사하여 준다면 군주가 어진사람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

양요미가 집요하게 경정의 처형을 주장했다.

「나라가 강대해지는 이유는 단지 법을 엄정히 집행함으로써만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형(刑)을 잃어버리고 법을 문란하게 한다면 누가 군주의 명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이후로 다시는 군사를 부리지 못하게 됩니다.」

혜공이 양요미의 말에 따라 사마열을 쳐다보며 속히 형을 집행하라고 명했다. 경정이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형장에서 목을 길에 늘어뜨리고 참수형을 받았다. 염선이 시를 지어 도량이 좁아 경정을 용납하지 않은 혜공을 한탄했다.

양식창고의 문을 닫아 범주지역으로 베푼 은혜를 누가 저버렸는가?

오히려 간사하고 요망한 사람을 시켜 충성스러운 모사를 죽였으니

혜공의 좁아터진 소갈머리는 진실로 임금된 자로서 자격이 없구나!

단지 영대산에 갇혀 평생 죄수 노릇이나 해야 합당했을 것을!

閉糴誰敎負泛舟(패적수교부범주)

反容奸佞殺忠謀(반용간녕살충모)

惠公褊急無君德(혜공편급무군덕)

只合靈臺永作囚(지합영대영작수)

양요미가 고집하여 경정을 기어코 죽인 이유는 당시 자기가 섬진의 목공을 포위하여 틀림없이 포로로 잡을 수 있었는데 경정이 달려와 혜공이 위기에 처했다고 말하는 바람에 목공을 놓쳤다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경정에게 가슴깊이 한을 품고 있던 양요미가 결국은 경정을 죽음으로 몬 것이었다. 경정에 대한 형을 집행할 때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땅은 황당해 지면서 태양의 빛이 사라졌다. 여러 대부들 대부분이 눈물을 흘려 슬퍼했다. 아석이 경정의 시신을 거둘 수 있도록 혜공에 청해 묻어 주면서 말했다.

「그대가 부상당한 나를 수레에 태워서 구해 준 그 은혜를 이렇게 갚게 되었구려!」

3. 타피추살 중이유망(躱避追殺 重耳流亡)

- 자신을 살해하려는 발제(勃)를를 피해 열국 사이를 유랑하는 중이-

경정을 죽이고 강도(絳都)에 입성한 혜공은 즉시 태자어에게 명해 공손지를 따라 섬진으로 들어가 인질이 되라고 했다. 또한 섬진에게 도안이의 시신을 보내달라고 청해 상대부의 예를 갖춰 장례를 지내 주고 아들 도안고(屠岸賈)를 중대부에 제수하여 그의 직을 잇게 했다. 혜공이 하루는 극예를 보고 말했다.

「과인이 섬진에 세 달 동안 있으면서 중이가 나 없는 틈을 타서 군위에 앉지나 않나 하는 생각 때문에 잠을 못 이루었소. 이제야 내가 마음을 놓겠소!」

「외국에 머물며 살아 있는 중이는 우리의 심복지환입니다. 반드시 제거하여 후환을 미리 방지해야 합니다.」

「과인을 위해 누가 능히 중이를 죽일 수 있겠소? 과인이 재물을 아까워하지 않고 후한 상을 내리리라!」

「시인 발제가 옛날 중이를 토벌하러 포성에 갔을 때 간발의 차이로 잡지 못하고 중이의 옷소매만을 잘라 가지고 온 적이 있습니다. 그후로 발제는 중이가 귀국하여 군위에 올라 자기를 치죄 하지나 않을까 항상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발제를 쓰시면 주공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혜공이 은밀히 발제를 불러 중이를 살해할 계획에 대해 물었다. 발제가 말했다.

「중이가 적국(翟國)에 거한지가 이미12년이 되었습니다. 적주(翟主)가 외국(隗國)①의 구여씨(咎如氏)②를 정벌하다가 그 군주의 두 딸을 얻었습니다. 큰딸을 숙외(叔隗)라하고 작은딸을 계외(季隗)라 했는데 모두가 천하절색이었습니다. 적주가 계외는 중이에게, 숙외는 조쇠에게 주어 각기 처로 삼게 했습니다. 두 여인이 모두 아들을 낳아 군신 모두가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즐거운 생활에자기들을 죽이려고 하는 우리에 대해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이 공공연히 군사를 이끌고 적국으로 쳐들어간다면 적인들도 군사를 동원하여 중이를 도와 우리에게 대항할 것입니다. 그리 된다면 이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원컨대 장사 몇 명을 딸려 주시면 아무도 몰래 적국에 잠입하여 그가 교외로 놀러 나오기를 기다려 습격하여 죽이겠습니다. 」

「그대의 계획은 참으로 훌륭하다!」

혜공이 즉시 발제에게 황금 백 일(鎰)을 하사하여 그 돈으로 장사를 모집하여 스스로 알아서 행하게 했다. 혜공이 발제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너는3일을 기한으로 하여 준비를 마친 후에 적 땅으로 가서 일을 성시키고 오기 바란다. 네가 이 일을 완수한다면 내가 마땅히 너를 중용 하리라!」

옛말에 ‘알고 싶지 않거든 묻지 말고 듣고 싶지 않거든 말하지 말라’③고 했다. 혜공은 단지 발제 한 사람에게 은밀히 한 이야기였지만 두 사람의 모의 내용을 알게 된 내시들이 적지 않았다. 발제가 황금을 물 쓰듯이 써 가며 장사들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호돌은 마음속으로 의심을 품고 몰래 사방으로 사람을 풀어 수소문했다. 또한 호돌은 원래 당진의 군주와는 인척관계에 있는 원로대신이라 궁중에 있던 내시 몇 사람과 선이 닿아 있었다. 곧이어 혜공과 발제가 모의한 계획이 호돌의 귀에 들어오게 되었다. 호돌이 크게 놀라 즉시 밀서 한 장을 써서 심복에게 주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 적 땅의 중이에게 저간의 사정을 알리게 했다.

한편 중이와 그 일행은 적주와 함께 위수(渭水) 가로 사냥나가 소일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한 사람이 사냥터를 에워싼 포위망을 통과하여 들어오더니 호씨 형제를 보러 왔다고 했다.

「호씨 형제에게 전하는 노국구의 편지가 있습니다.」

호언과 호모가 전해 듣고 말했다.

「부친께서 평소에 편지 한 장 없으시다가 오늘 갑자기 편지를 보내시니 이것은 틀림없이 나라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음이라!」

두 사람이 즉시 심부름 온 사람을 불러오게 했다. 호씨 형제에게 편지를 바친 호돌의 심복이 땅에 엎드려 절을 올린 후에 아무 말도 없이 몸을 돌려 곧바로 가 버렸다. 의아하게 생각한 호씨 형제가 편지의 겉봉을 뜯고 읽었다.

「주공이 중이 공자를 살해하려고 이미 시인 발제에게3일 간의 말미를 주어 출발하게 했다. 너희들 형제는 이 일을 중이 공자에게 알려 속이 다른 나라로 피해 화를 면하도록 하라. 출발을 지체하여 화를 당하지 말라!」

호씨 형제가 크게 놀라 편지를 들고 중이에게 가서 고했다. 중이가 말했다.

「나의 처자가 모두 있는 이곳이야말로 나의 집인데 내가 어디로 간단 말이오?」

호언이 나서서 말했다.

「우리가 고국을 떠나 이곳에 머물고 있는 목적은 집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차 나라를 도모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냥하시느라 피곤한 몸으로 먼 길을 가실 수 없다면 오늘은 이미 해가 저물었으니 잠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신 다음 내일 출발하기로 하겠습니다. 발제가 이곳으로 오는 것은 바로 하늘이 공자님보고 이곳을 떠나도록 시키는 일과 같습니다.」

「지금 당장 떠난다면 어느 나라로 간단 말이오?」

「제후(齊侯)의 나이가 이미80이 넘었지만 백업의 위엄이 아직 남아 있어 넓은 아량으로 제후들을 받아들이고, 어질고 훌륭한 선비들을 찾아 임용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제나라는 관중과 습붕이 이미 죽고 나라에는 환공을 보좌할 만한 현신이 없습니다. 공자님께서 만약 제나라에 가신다면 제후는 반드시 공자님을 예를 갖춰 환대할 것입니다. 또한 당진의 국내에서 변란이 일어나게 된다면 제나라의 힘을 빌려 귀국하여 군위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

중이가 호언의 말이 옳다고 여겨 즉시 사냥을 중지하고 그의 처 계외에게 달려가 말했다.

「당진의 군주가 나를 죽이기 위해 자객을 보냈다 하오. 내가 흉악한 자객의 손길을 잠시 피하기 위해 멀리 있는 대국으로 몸을 피한 후 섬진이나 초나라의 도움을 얻어 당진으로 들어가 군주의 자리에 앉으려는 계획이니 그대는 마음을 다하여 두 아들을 잘 키워주기 바라오. 내가 지금으로부터25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거든 그때는 다름 사람에게 개가를 해도 무방하겠소.」

계외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남자의 뜻이 천하에 있는데 첩이 어찌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내 나이가 지금25세인데25년이 다시 지나면 첩은 늙어 죽을 터인데 어찌 개가를 할 수 있겠습니까? 첩은 오로지 부군을 기다릴 뿐이니 아무 근심하지 말고 길을 떠나기 바랍니다.」

조쇠도 역시 숙외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고 길을 떠날 채비를 했다. 다음 날 아침 중이가 거마를 담당하고 있던 호숙(壺叔)에게 타고 갈 수레를 정돈하도록 명하고, 회계를 맡긴 두수(頭須)에게는 가져갈 금과 비단 등 재물을 챙기게 했다. 이것저것 분부하고 있던 중에 호모와 호언이 황망 중에 달려와서 말했다.

「주공으로부터3일을 기한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다음날 즉시 길을 떠나는 발제와 그 일행을 보신 부친께서 공자께서 그 화를 피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편지를 쓸 틈도 없이 다시 길을 잘 걷은 사람에게 밤과 낮을 계속 달리게 하여 한시가 급하게 몸을 빼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큰 낭패를 당할 것 같습니다.」

중이가 호언의 말을 전해 듣고 크게 놀라 말했다.

「발제가 어찌 이다지도 빨리 오더란 말이냐?」

중이는 행장을 꾸릴 시간도 없이 호씨 형제와 걸어서 적국의 도성 밖으로 나갔다. 그때 호숙은 공자가 이미 성문을 나가 길을 출발했음을 알고 송아지가 끄는 조그만 수레 한 대만을 가지고 중이를 태우기 위해 뒤를 쫓았다. 조쇠, 호언 등이 계속해서 중이의 뒤를 쫓았다. 준비해 온 수레가 한 대 뿐이라 다른 사람들은 모두 걸어서 중이의 뒤를 따랐다. 중이가 좌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두수는 어찌하여 뒤 따라 오지 않는가?」

일행 중 한 사람이 대답했다.

「두수는 재물들을 모두 싸 가지고 어디론지 도망쳐 버렸습니다.」

중이는 지금껏 안락하게 살던 보금자리도 잃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또한 노자 한 푼도 없는 형편이 되어 난감한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사정이 이러했지만 그렇다고 가던 길을 멈출 수도 없었다. 황망 중에 도망쳐야 했던 모습이 마치 상가집의 개처럼 처량하게 되었지만 길을 재촉하여 발제의 그물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공자가 성을 빠져나간 지 반나절쯤 되어서야 적주가 알고 노자를 준비하여 전하게 하려고 했지만 그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중이의 절박한 심정을 노래한 시가 있다.

오랑캐 나라로 떠돌아다닌 지12년인데

웅크린 용이 때를 못 만나 미처 승천을 못했구나!

콩과 콩깍지의 형제가 어찌하여 서로 삶아 죽이려하는가?

또 다시 아득한 길 정처 없이 떠나야 하는구나!

流落異邦十二年(유락이상십이년)

困龍伏蟄未升天(곤룡복칩미승천)

豆簊何事相煎急(두기하사상전급)

道路于今又播遷(도로우금우파천)

한편 당진의 혜공은 원래 발제에게3일 간의 말미를 주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길을 떠나 적국에 있는 공자 중이를 습격하여 죽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발제는3일이 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갑자기 그 다음 날 곧바로 출발했다. 발제라는 위인은 일개 시인(寺人) 출신이라 힘껏 맡은 일을 열심히 하여 주인의 총애를 얻는 일에 능했다. 옛날 헌공이 발제를 시켜 포성에 있던 중이를 잡아오게 한 일이 있었으나 간발의 차이로 잡지 못하고 단지 중이의 소매 자락만을 베어 가지고 돌아온 일이 있었다. 그는 그 일로 해서 중이가 반드시 자기에게 원한을 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다시 혜공의 명을 받아 중이를 없앤다면 혜공에게 공을 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근심거리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장사 몇 명을 규합한지 하루 만에 즉시 길을 떠나 질풍처럼 달려가 아무 것도 모르는 중이가 방비를 소홀히 한 틈을 타서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원로대신 호돌이 발제가 중이를 죽이러 간다는 소식을 두 번이나 먼저 전한 줄은 몰랐다. 발제가 적국에 당도하여 공자 중이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공자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적주도 역시 공자를 찾기 위해 관문과 나루터를 군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을 삼엄하게 심문하고 있었다. 발제가 당진국에 있을 때는 군주를 곁에서 모시는 일개 환관의 무리였지만 오늘은 공자 중이를 죽이러 온 간특한 자객의 신분이라 만일 검문에 걸려 심문이라도 받게 되면 대응하기가 막막한 처지임을 생각하고 적국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중이를 죽이지 못하고 앙앙불락하여 되돌아 왔다. 발제의 복명을 받은 혜공은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어 일단은 잠시 덮어두기로 했다.

4. 할고담군(割股啖君)

- 허벅지의 살로 국을 끓여 주군의 허기를 채운 개자추-

한편 공자 중이는 제나라로 가던 중 중도에 위(衛)나라를 지나가게 되었다. 속담에 ‘무릇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하고 먼 길을 갈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법이다’④라고 했다. 중이 일행이 적국을 떠나 도중에 당한 곤궁한 처지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적국을 출발한지 수 일 만에 중이 일행은 위나라 경계에 당도했다. 국경을 지키던 관리들이 중이 일행을 불러 세워 위나라에 온 내력을 물었다. 조쇠가 나서서 대답했다.

「우리의 주인은 당진의 공자 중이라 합니다. 외국에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가 제나라로 가던 중 상국의 땅을 통과하려고 합니다.」

관리들이 중이 일행을 성밖에 기다리게 한 후 위후에게 비보를 띄워 알렸다. 위나라의 상경 영속(寧速)이 중이의 일행을 성안으로 맞이하여 접대하려는 생각으로 위문공(衛文公)에게 보고했다. 위문공이 듣고 말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는 적인(狄人)들의 침입을 받아 도성이 파괴되어 과인이 초구(楚丘)로새로 옮겨 나라를 다시 세웠으나 당진의 도움은 하나도 받지 않았다. 우리 위나라와 당진 두 나라는 비록 동성의 제후국이지만 아직 서로간에 통호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중이는 도망쳐 다니는 사람이라 우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만약에 우리가 손님으로 맞이한다면 잔치를 열고 예물을 주어야 할 텐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차라리 쫓아 버리는 편이 좋겠다.」

위문공은 즉시 성문을 지키는 관리에게 분부하여 당진의 공자를 성안으로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중이 일행이 성문 앞에 있다가 쫓겨난 후 위나라 외곽으로 난 길을 돌아 제나라를 향했다. 위주와 전힐이 가다가 불만을 말했다.

「위나라 놈들이 무례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공자께서는 성문에 임하시어 그들의 잘못을 따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쇠가 나서서 위주의 말을 막았다.

「교룡(蛟龍)이 때를 만나지 못하면 한낱 지렁이와 다름없는 대접을 받습니다. 무뢰한 사람에게 예를 책해 봐야 아무 이득이 없으니 공자께서 잠시 참으십시오.」

위주와 전힐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이미 주인으로써 예를 취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촌락에 들어가 음식을 빼앗아 굶주림을 면한다 해도 그들 역시 우리를 비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중이가 조쇠의 말을 거들었다.

「남의 것을 강제로 약탈하는 행위를 도적이라 한다. 우리가 배고픔을 참아야하지 어찌 도적의 행위를 할 수 있겠는가?」

그날도 중이와 그 일행은 모두가 조반도 들지 못하고 배고픔을 참으면서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해가 어느덧 중천에 떠서 정오가 되었는데 땅 이름이 오록(五鹿)⑤이라는 곳에 당도하게 되었다. 마침 한 무리의 농부들이 밭고랑 사이에 모여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중이가 호언에게 말하여 음식을 얻어오게 했다. 그 중 한 농부가 호언을 향하여 물었다.

「손님들은 어디에서 온 사람이오?」

호언이 일행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우리는 당진에서 온 사람입니다. 수레에 타고 계신 분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먼 길을 오느라 양식이 떨어졌으니 원컨대 음식을 조금 나누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농부가 웃으면서 말했다.

「당당한 사내들이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고서 나 같은 사람에게 음식을 구걸하는가? 나는 한낱 촌에 사는 농부라 배불리 먹어야만 저 밭에 호미질을 할 수 있는데 어찌 남에게 줄 남은 음식이 있을 리 있겠소!」

호언이 사정했다.

「우리는 괜찮으니 바라건대 밥 한 그릇만 주어 우리 주인의 허기를 면하게 해주십시오.」

농부가 흙덩어리 한 개를 주며 희롱했다.

「이 흙이나 가져다 먹이시오!」

위주가 참다못해 큰 소리로 외쳤다.

「되지 못한 촌부들이 어찌 우리를 이렇듯 욕되게 하느냐?」

위주가 농부들이 먹고 있던 밥그릇을 빼앗아 땅에 던져 부셔버렸다. 중이도 역시 노하여 농부들을 붙잡아 채찍으로 때리려고 했다. 호언이 황급히 중이를 제지시키며 말했다.

「밥을 얻는 일은 쉽지만 흙, 즉 땅을 얻는 일은 어렵습니다. 땅은 곧 나라의 기본이라 하늘이 촌부의 손을 빌려 땅을 공자에게 내림이니 이것은 곧 나라를 얻을 조짐이라 하겠습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노여워하십니까? 수레에서 내리셔서 절을 하고 두 손으로 받으십시오.」

중이가 과연 호언의 말을 쫓아 수레에서 내려 절을 한 후에 흙덩이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농부들이 그 뜻을 몰라 어리둥절하다가 곧이어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로 미친놈들이로다!」

후세 사람들이 이 일을 두고 지은 시가 있다.

나라의 근본은 마땅히 흙과 땅인데

하늘이 농부의 손을 빌려 중이의 간난과 위태로움을 위로했다.

고명한 자범(子犯)은 하늘이 내린 징조를 엿볼 수 있었지만

들판의 어리석은 백성은 오히려 미치광이라고 비웃었다.

土地應爲國本基(토지응위국본기)

皇天假手慰艱危(황천가수위간위)

高明子犯窺先兆(고명자법규선조)

田野愚民反笑痴(전야우민반소치)

다시 중이의 일행이 길을 걸어 십여 리를 갔으나 더 이상 배가 고파 길을 걸을 수 없어 큰 나무 밑에서 앉아서 쉬게 되었다. 중이가 허기가 져서 호모의 무릎을 베고 누었다. 호모가 중이를 보고 말했다.

「자여(子余)가 아직 호찬(壺餐)⑥을 가지고 뒤따라오고 있으니 조금만 참으시기 바랍니다.」

위주가 곁에서 듣고 말했다.

「자여 혼자 먹기도 부족한데 남은 호찬을 얻어먹을 수 있겠습니까?」

중이의 일행들은 모두 산 속으로 들어가 고사리와 고비를 꺾어와 물에 삶은 후에 먹어 허기를 채웠다. 중이도 삶아 온 산나물을 먹으려 했으나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개자추가 고기국 한 그릇을 들고 중이 앞으로 와서 바쳤다. 중이가 아주 맛있게 먹은 후에 개자추에게 물었다.

「어디서 이런 고기를 얻었는가?」

「신의 허벅지살 입니다. 신은 ‘효자는 그 몸을 바쳐 부친을 모시고 충신은 그 몸을 바쳐 그 주군을 받든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공자께서 음식이 없어 매우 배고파해 하시는 모습을 보고 허벅지에서 살을 떼어 끓인 국입니다.」

중이가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유랑하는 처지에 그대의 신세가 너무 크구나! 장차 그대에게 어찌 보답을 할 수 있겠는가?」

「단지 공자께서 일찍 진나라에 귀국하시어 우리들이 바라는 바 고굉(股肱)의 뜻을 이루어 주기 바랍니다. 어찌 그 보답을 바라겠습니까?」

염선이 시를 지어 개자추의 충성심을 노래했다.

효자는 몸을 보전해야 하고 몸을

상하는 행위는 부모를 욕보임이다.

허벅지 살을 베어 주군의 배를 채운 개자추여!

몸을 바쳐 충성을 행하는 일을 고굉(股肱)이라 하는데

가슴속의 충정은 주군과 화복을 같이하려는 생각일뿐

어찌 부친이 물려준 신체를 괘념치 않았겠는가?

충효는 같이 이루기 힘든 일인데

세상에 사사로운 몸만을 생각하는 그대들이여!

어찌 군주의 록을 받아먹기가 부끄럽지도 않는가?

孝子重歸全(효자중귀전)

虧體謂親辱(휴체위친욕)

嗟嗟介子推(차차개자추)

割股充君腹(할고충군복)

委質称股肱(위질칭고굉)

腹心同禍福(복심동화복)

豈不念親遺(개불년친유)

忠孝難兼國(충효난겸국)

彼哉私身家(피재사신가)

何以食君祿(하이식군록)

개자추가 끓여서 바친 국을 받아먹고 얼마 후에 조쇠가 뒤따라 당도하여 일행과 합류했다. 여러 사람들은 조쇠가 그들의 행렬에 뒤 처지게 된 이유를 물었다. 조쇠가 대답했다.

「발바닥에 가시가 찔려서 걸음을 빨리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쇠가 즉시 등에 짊어지고 있던 대나무로 만든 상자를 내려 놓더니 그 안에 들어 있던 호찬을 꺼내어 중이에게 바쳤다.

그런 조쇠를 보고 중이가 말했다.

「자여는 배가 고프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먹지 않았습니까?」

「신이 비록 배가 고프지만 어찌 감히 배고픈 주군을 놔두고 혼자 먹을 수 있었겠습니까?」

호모가 위주를 책했다.

「이것을 그대가 들고 왔더라면 모두가 뱃속으로 들어가 이미 소화가 된지 오래되었을 것이오!」

위주가 얼굴에 무참한 기색을 띄우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중이가 먹다 남은 호찬을 조쇠에게 건네주자 조쇠는 그것을 물에 불려 일행들 전부에게 조금씩 나누어 들게 했다. 중이는 남을 생각하는 조쇠의 어진 마음에 탄복했다.

5. 중이망제(重耳亡齊)

- 제나라로 들어가 망명생활하는 중이 일행-

중이와 그 일행들은 걸식을 하면서 하루는 거르고 하루는 얻어먹으며 마침내 제나라에 당도했다.

평소에 중이의 어진 이름을 들어 알고 있던 제환공은 그의 일행이 제나라 관문에 당도했다는 소식을 듣자 즉시 사람을 보내어 맞이해 서 공관에 들게 하고 잔치를 베풀어 환대했다. 술잔이 몇 순 배 돌자 환공이 중이에게 물었다.

「공자는 내자들을 같이 데리고 오지 않았소?」

「외국을 유랑하는 처지에 자기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 처지입니다. 어찌 내자들까지 끌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나는 하룻밤만 혼자 자도 마치 그 시간이 일 년처럼 길게 느껴집니다. 공자께서는 부군으로부터 쫓겨난 이래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시느라 곁에 시중드는 비첩하나 거느리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공자를 위하여 마음을 써보리라!」

환공이 곧이어 종중에서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을 택하여 중이에게 주어 시중을 들게 했다. 또한 말20승을 주어 이때부터 중이 일행은 모두 거마를 타고 다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창고지기와 요리사를 보내 매일 곡식과 고기를 가져다주어 먹게 했다. 중이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옛날부터 제후가 현인과 선비를 공경한다고 들어 왔는데 지금 보니 과연 헛말이 아니었음을 알겠구나! 그가 이렇듯 패업을 이룬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때가 주양왕8년 즉 제환공42년으로써 기원전643년의 일이었다.

6. 삼흉득령(三凶得逞)

- 제환공의 부름을 다시 받아 뜻을 이루는 삼흉-

한편 얼마 전에 포숙아에게 정사를 위임한 제환공은 관중의 유언을 따라 수조, 옹무, 개방 등의 세 사람을 궁중에서 쫓아냈지만 먹는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고 밤중에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하여 입에서는 즐거운 말이 나오지 않고 얼굴에는 웃음이 깃들지 않았다. 장위희가 보다 못하여 환공에게 말했다.

「주군께서 수조 등을 내치신 후에는 국정도 돌보시지 않으시고 용안은 날이 갈수록 수척해 지시고 있습니다. 좌우에 모시고 있는 시자들이 주군의 뜻을 잘 살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그들을 불러 시중을 들라 하시지 않으십니까?」

「과인 역시 그 세 사람을 데려오고 싶은 마음 간절하오. 그러나 이미 쫓아낸 그들을 다시 부른다면 포숙아의 뜻을 거스르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이오.」

「포숙아인들 좌우에 시자를 어찌 데리고 있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주군께서는 이미 연로하셨는데 어찌하여 스스로 이렇듯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까? 주군께서는 단지 입맛을 돋우는 요리가 먹고 싶다고 하시면서 먼저 이아를 불러들이십시오. 그리 되면 나머지 두 사람은 자연히 이아를 따라 왕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공연히 개방과 수조도 함께 불러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아는 옹무의 자다. 환공이 장위희의 말을 쫓아 이아를 불러 요리를 바치게 했다. 포숙아가 곧바로 들어와 간했다.

「주군께서는 벌써 중부의 유언을 잊으셨으니까? 어찌하여 옹무를 불러 들이셨습니까?」

「그 세 사람은 나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나라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중부의 유언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제환공은 끝내 포숙아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개방과 수조마저도 같이 불러 곁에 두었다. 3인이 동시에 환공의 부름을 받고 옛날의 직위를 다시 찾아 환공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포숙아는 환공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않고 세 사람을 다시 궁중에 불러 들여 곁에 두자 화를 참지 못하고 병이 나서 이내 죽고 말았다. 제나라는 이때부터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32회로 계속>

주석

1. 외국(隗國)/춘추 때 산서성 북부 지방에 산재 해 살고 있던 적족(狄族)의 일족이 세운 나라. 후에 당진에 편입되었다.

2. 구여씨(咎如氏)/ 장구여(墻咎如)로 북적(北狄)의 일파다. 춘추 때 지금의 산서성 동남부의 태항산백 서록에 무리를 이루고 살다가 후에 당진국에 병탄되었다.

3. 若要不知, 除非莫爲. 若要不聞, 除非莫言

4. 登高必自卑, 行遠必自邇

5. 오록(五鹿)/ 춘추 때 위나라 땅으로 그 위치는 확실치 않으나 지금의 하남성 청풍현(淸風縣) 서북이라는 설과 하북성 대명현(大名縣) 동쪽이라는 설이 있다.

6. 호찬(壺餐)/ 밥을 말려 항아리에 담아서 짊어지고 다니던 비상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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