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非命餓死(비명아사) 骨肉相殘(골육상잔) > 2부3 백리해

제32회. 非命餓死(비명아사) 骨肉相殘(골육상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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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4,413회 작성일 07-02-0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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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非命餓死骨肉相殘(비명아사 골육상잔)

삼흉의 화로 비명에 굶어죽은 제환공과

군위를 차지하기 위해 골육상잔하는 제환공의 아들들

1. 신의편작(神醫扁鵲)

제환공이 관중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다시 수조, 옹무와 개방 세 사람을 다시 불러 측근에다 두었다. 포숙아가 와서 간했지만 환공이 말을 듣지 않자 화병으로 죽었다. 마침내 거리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 삼흉은 환공이 이미 나이가80이 넘어 무능해지자 모든 일을 제멋대로 하기 시작했다. 삼흉에게 복종하는 자는 모두 귀하거나 부자가 되고 그들을 거슬리면 죽거나 쫓겨났다.

이때 정나라 사람으로써 유명한 의원 한 사람이 있었다. 성은 진(秦)이고 이름은 완(緩)에 자는 월인(越人)이라 했다. 제나라의 노촌(盧村)이라는 곳에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노의(盧醫)라고 불렀다. 그는 어렸을 때 여사를 열어 먹고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상군(長桑君)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그 여사에 묵었다. 진완은 그가 이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의 괴팍한 성격에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으며 극진히 대접했다. 장상군이 감격하여 신약을 한 봉지 꺼낸 후에 연못의 물을 떠오게 하여 풀어서 진완에게 마시게 했다. 신약을 먹은 진완의 눈은 마치 거울처럼 밝아 졌다. 어두운 곳에서도 능히 귀신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사람이 비록 담장 뒤에 숨어 있어도 역시 진완의 눈은 피할 수 없었다. 진완이 병자를 볼 때는 사람의 몸속에 있는 오장육부까지 훤히 밝아져 볼 수 없는 것이 없었다. 또한 진완은 특히 진맥을 잘 보아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옛날 황제(黃帝) 헌원(軒轅)과 같은 시대에 의약에 정통한 편작(扁鹊)이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했다. 노의가 병을 고치는 수단이 매우 고강 하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노의를 편작에 견주다가 후에는 편작이라고 불렀다.

2. 기사회생(起死回生)

- 편작이 죽은 사람을 살려내다. -

그 후에 편작이 괵국(虢國)①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태자가 죽었다. 편작이 괵국의 성문 밑에 당도하여 방중술을 좋아하던 괵국(虢國)의 중서자(中庶子)②를 만나 물었다.

「태자는 무슨 병으로 죽었습니까? 온 나라 안이 잡귀를 물리쳐 태자의 병을 고치려고 올리는 제사로 크게 소란스럽습니다. 」

중서자가 대답했다.

「태자의 병은 혈액 순환과 호흡이 일정치 않아 서로 뒤엉키어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폭발한 결과 내상을 입어 생긴 병입니다. 정신으로 제어하지 못한 사기(邪氣)가 몸 안에서 계속 쌓여 밖으로 발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양(陽)은 느리고 음(陰)은 급하게 되어 갑자기 쓰러져 죽게 되었습니다.」

「태자가 죽은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오늘 아침 새벽 첫 닭이 울었을 때였습니다.」

「시신은 염을 했습니까?」

「아직 안 했습니다. 태자가 죽은 지 아직 반나절도 안 되었습니다.」

「나는 발해(渤海)에서 온 이름은 진완(秦緩)이고 자는 월인(越人)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발해의 정(鄭) 땅에 있는 집에 살면서 태자의 위광(威光)을 존경해 왔으나 아직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태자께서 불행히도 돌아가셨다고 하나 제가 능히 살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은 허망된 말을 하시지 마십시오. 어떻게 이미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제가 알고 있는 바는 옛날 상고 시대 때 유부(踰跗)③라는 의원이 병을 치료하는데 탕액(湯液)이나, 예쇄(醴灑), 참석(鑱石), 교인(撟引), 안올(案扤), 독위(毒熨)④ 같은 것도 없이 잠시 옷을 풀어 헤쳐 병세를 살폈으며, 오장의 수혈에 따라 피부를 잘라 살을 열어 막힌 맥을 소통시키고 끊어진 힘줄을 이을 수 있었고, 뇌수를 안마하여 황막(荒幕)⑤을 씻어 통하게 하고 장과 위와 함께 오장도 깨끗이 씻어 정신을 다스리어 신체를 조정했다고 했습니다. 선생의 의술이 그와 같은 경지에 도달해 있다면 혹시 죽은 태자를 살릴 수도 있겠으나, 할 수도 없으면서 태자를 살려낼 수 있다고 말한다면 어린아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

편작이 중서자의 말을 듣고 한참동안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이윽고 하늘을 쳐다보며 한탄의 말을 했다.

「대부께서 말한 의술이란 대나무 구멍을 통하여 하늘을 쳐다보는 격이며 깨진 틈 사이로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행위⑥와 같습니다. 이 월인(越人)의 의술은 맥을 짚어보거나, 얼굴빛을 살펴본다거나, 소리 같은 것을 듣지 않고도 그 병이 어디 있는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병이 양(陽)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음(陰)을 미루어 알 수 있고, 음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양에 대해 논할 수 있습니다. 병의 징후는 그 표면에 드러남으로 천리 밖에 나가보지 않아도 무슨 병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지극히 많은데, 구태여 한쪽 각도에서만 쳐다 볼 필요는 없습니다. 대부께서 나의 말을 진실되지 않다고 생각하시거든 한 번 시험 삼아 저로 하여금 진맥을 보게 하십시오. 마땅히 그의 귀에는 소리가 울리고, 코는 벌렁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두 다리를 어루만지면서 음부에 이르게 되면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중서자가 편작의 말을 듣더니 눈에는 현기증을 일으킨 듯 눈까풀을 껌벅거리지도 못하고, 혀는 입천장에 붙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깜작 놀란 표정을 지었다. 중서자가 궁궐 안으로 들어가 편작의 말을 괵나라 군주에게 고했다. 괵군이 매우 놀라 궁궐 문 앞으로 달려나와 편작을 보고 말했다.

「평소에 선생의 명성을 들은 지 오래나 아직까지 존안을 뵐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선생께서 우리 괵과 같은 작은 나라를 방문해주시어 태자의 병에 대해 말씀해 주시니 변방에 치우친 나라의 군주와 신하들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제 선생이 오셨으니 죽은 태자가 살아나겠지만, 만약 선생이 오시지 않았더라면 버려져 계곡을 메워 영원히 살아나지 못할 뻔했습니다.」

괵군이 말을 미처 마치지도 못하고 한탄을 하는데, 가슴이 막히고, 혼백과 정신이 흩어지 듯, 자꾸만 흐르는 눈물은 눈썹을 적시고,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여 얼굴 모습은 일그러져 비통한 마음을 멈추지 못했다. 편작이 보고 말했다.

「태자가 걸린 병은 소위 시궐(尸厥)이라는 이름의 병입니다. 그것은 양기가 음기 속에 들어가 위를 움직이고, 중경(中經)과 유락(維絡)⑦을 얽혀 막히게 하고, 한편 삼초(三焦)⑧의 방광 부분까지 내려앉았습니다. 그 때문에 양맥(陽脈)은 아래로 떨어지고 음맥(陰脈)은 위에서 다투며 회기(會氣)⑨는 닫혀 통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음맥은 위로 올라가고, 양맥은 몸 속을 순행하여 아래로 내려와 고동은 하지만 일어나지 못하고, 음기는 바깥으로 올라가 끊어져서 음기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 윗 부분에는 양기와 단절된 락맥(絡脈)이 있고 아래에는 음기가 끊어진 적맥(赤脈)이 있습니다. 음기가 부셔지고, 양기와 끊어진 맥이 어지러워졌기 때문에 몸은 움직이지 않고 죽은 것처럼 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닙니다. 대체로 양이 음의 지란장(支蘭藏)⑩에 들어가면 사람은 죽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일들은 다 오장이 몸속에서 역상(逆上)할 때에 갑자기 일어납니다. 훌륭한 의원은 증세를 잡아내지만 평범한 의원들은 의심하고 위태롭다고 생각합니다.」

편작은 제자 자양(子陽)을 시켜 침(鍼)을 숫돌에 갈게 하고, 그것으로 몸의 외부에 있는 삼양(三陽)과 오회(五會)⑪를 찔렀다.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태자가 소생했다. 편작이 다시 또 다른 제자 자표(子豹)를 시켜 오분(五分)의 고약을 바르고 팔감(八減)의 방법으로 약제를 처방하여 번갈아 가며 두 겨드랑이 밑에 바르게 하였다. 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게 되었다. 다시 태자의 양기와 음기를 조절하고, 탕약을20여 일간 먹이니 본래의 건강을 찾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이 편작은 능히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편작은 자기가 태자를 살린 일데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월인이라고 해서 어찌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스스로 당연히 살 수 있는 사람을 월인이 일어나게 했을 뿐이다.」

3. 병입고황(病入膏肓)

- 의원의 치병을 무시하여 병이 고황에 이른 제환공-

그후 세상을 돌아다니던 편작이 제나라의 임치성(臨淄城)에 오게 되었다. 제환공의 부름을 받은 편작은 그의 신색을 보더니 말했다.

「군주의 병은 이미 살 속에 들어 있습니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깊어지게 될 것입니다.」

「과인은 아직 몸에 병이 나지 않았소!」

편작이 듣고 밖으로 나갔다. 닷새 후에 다시 와서 환공을 보더니 말했다.

「군주의 병은 이미 혈맥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속히 치료하지 않으면 치료할 수 없게 됩니다. 」

환공이 다시 병이 나지 않았다고 치료에 응하지 않았다. 다시 편작이5일 후에 와서 환공을 보고 말했다.

「군주님의 병은 이미 오장육부에 들어갔습니다. 속히 치료하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환공이 역시 치료에 응하지 않자 편작이 물러갔다. 환공이 편작을 탄하며 말했다.

「의원이란 자가 공을 세우기만을 즐겨 하여, 없는 병을 있다고 우겨대니 너무 심하지 않는가?」

그리고5일 후에 편작이 다시 들려 환공의 안색을 살피더니 그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러갔다. 환공이 사람을 시켜 그 까닭을 물어 보게 하자 편작이 말했다.

「군주의 병은 이미 골수에 미쳤소. 무릇 병이 살결 속에 있을 때는 다만 탕약을 쓰고 고약을 붙여 병을 물리칠 수가 있으며 병이 혈맥 속에 있을 때는 침으로써 다스릴 수 있습니다. 또한 병이 창자와 위에 있을 때는 의술로써 다스릴 수 있었으나 지금은 이미 골수에 들어갔으니 비록 내가 기사회생의 의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게 되었소.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왔소.」

그리고 다시5일이 지났다. 환공이 과연 병이 나서 눕게 되자 사람을 시켜 여관에 묵고 있는 편작을 불러오게 하였다. 환공이 보낸 사람이 여관에 당도하여 편작을 찾았으나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이 대답했다.

「진완 선생은5일 전에 이미 행장을 꾸려 이곳을 떠나면서 ‘성인(聖人)으로 하여금 질병의 증상을 미리 알게 하여 좋은 의사를 찾아 일찍 치료하게 한다면 병은 나을 수가 있고 몸도 살 수가 있다. 사람들이 근심하는 바는 병이 많은 것이고, 의원이 근심하는 것은 병을 치료할 방법이 적은 것이다. 그런 까닭에 병에는 여섯 가지의 불치병(不治病)이 있다. 첫째, 교만방자(驕慢放恣)하여 사리를 논하지 않은 것이다. 둘째, 몸을 가볍게 하고 재물을 소중히 하는 것이다. 셋째, 의식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넷째, 양(陽)과 음(陰)을 문란하게 하여 오장의 기운을 안정치 못하게 하는 것이다. 다섯째, 약을 복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가 허약한 것이다. 여섯째, 무당의 말을 믿고 의원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 중 한 가지만 지니게 되어도 병이 중하게 되어 치료하기 힘든 불치병이 되는 것이다.⑫’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환공은 후회막급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4. 비명아사(非命餓死)

- 삼흉을 총애하여 비명에 굶어죽은 제환공-

환공에게는 세 사람의 부인이 있었는데 주나라의 왕녀인 왕희(王姬), 서(徐)나라에서 온 서희(徐姬), 그리고 채후의 딸 채희(蔡姬)였다. 그러나 그녀들에게는 모두 소생이 없었다. 왕희와 서희가 연이어 일찍 죽고 채희는 물놀이 하다가 환공의 노여움을 사서 채나라로 쫓겨나 정부인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 세 명의 정부인 밑에 다시 준부인에 해당하는 여섯의 부인을 두었다. 그들 모두가 환공의 총애를 받아 대우가 정부인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르기를 준부인이라 했다. 여섯의 준부인들은 각각 모두 아들을 한 명씩 낳았다. 일위 부인 장위희(長衛姬)는 공자 무휴(無虧)를, 이위 부인 소위희(小衛姬)는 공자원(公子元)을, 삼위 부인 정희(鄭姬)는 공자소(公子昭)를, 사위 부인 갈영(葛嬴)은 공자반(公子潘)을, 오위 부인 밀희(密姬)는 공자 상인(商人)을, 육위 부인 송화자(宋華子)는 공자옹(公子雍)을 두었다.

그 밖의 첩과 몸종들에게 난 자식들이 많이 있었으나 여섯 명의 준부인 소생들 외는 그 후계자로서 의중에 두지 않았다.⑬ 준부인들 중 장위희가 환공을 모신지 가장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녀 소생인 무휴 역시 여섯 공자 중 나이가 가장 많았다. 또한 장위희와 서로 사이가 좋았던 옹무와 수조 두 사람이 장위희의 소생인 무휴를 환공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천거했다. 환공이 결국 무휴를 자기의 후계로 삼겠다고 세 사람에게 허락했다. 후에 다시 공자소(公子昭)가 현명하다는 사실을 알고 사랑하게 된 제환공은 규구(葵邱)의 회맹 때 관중과 상의하여 송양공(宋襄公)에게 공자소의 후견을 부탁하고 세자로 삼았다. 한편 위나라 공자 출신 개방은 공자반과 친하여 역시 반을 제후로 세우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또한 남에게 무엇인가를 베풀기를 좋아하는 성격의 공자 상인(商人)도 얼마간의 민심을 얻게 되고 더불어 여러 준부인에 비해 환공의 총애를 많이 받고 있었던 생모의 존재에 고무되어 마음속 한구석에 은연중 세자의 자리를 엿보고 있었다. 여섯 공자 중 단지 공자옹(公子雍)만이 그 모친의 출신이 미천하여 자기 분수를 지켜 욕심을 내지 않았다. 공자옹을 제외한 다섯 명의 공자들은 각기 사당을 결성하고 상호간에 서로 시기하여 마치 다섯 마리의 큰 독충이 각기 이빨과 발톱을 감추고는 사람이 다가오면 달려들어 할퀴고 물어뜯을 기세였다. 환공이 비록 당대의 영주였으나 그가 수십 년 간 모든 제후들을 거느리면서 패자의 지위에 있어 항상 자기 스스로 만족해 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칼도 오래 쓰면 날이 무디어 지고 나이가 들면 총기가 흐려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 그는 또한 주색에 지나치게 탐닉하여 마음을 맑게 하지 못하고 욕심을 자제하지 못하였다. 오늘에 이르러 그의 나이가 이미80이 넘어 몸은 더욱 쇠약해지고 마음은 자연히 혼미해져 게으르게 되었다. 더욱이 관중이 죽을 때 가까이 하지 말라고 경고한 세 사람을 불러 다시 측근에 두어 환공의 이목을 가려 단지 즐거운 일만 찾고 근심스러운 일은 알지 못하여 충성스러운 말에는 귀를 안 기울이고 참언만을 쫓았다. 다섯 명의 공자들이 각기 자기의 모친을 동원하여 환공에게 세자의 자리를 구하게 하였으나 환공은 단지 애매한 대답을 할 뿐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은 먼 앞날에 대한 대비가 없으면 그 근심거리는 반듯이 가까운 곳에서 맞게 된다⑭’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에 환공이 갑자기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편작이 제환공의 병세를 진찰하지도 않고 다른 나라로 떠나버리자 환공의 병은 결코 완쾌할 수 없다고 옹무는 짐작했다. 그는 즉시 수조와 상의하여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두 사람은 환공의 명령처럼 꾸며 현판에 글을 써서 궁문 앞에 걸었다.

「과인이 가슴이 울렁거리고 불안해 지는 정충(怔忡)이라는 병에 걸려서 사람들의 소리를 듣게 되면 병이 악화된다고 하니 군신이나 공자 및 부인 등 누구를 막론하고 나를 보러 궁 안으로 들어오는 행위를 일체 불허한다. 시인 수초(竪貂)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궁문을 엄중히 지키고 옹무는 갑병을 이끌고 궁궐 주위의 순라를 돌라. 모든 국정은 과인의 병이 낫기를 기다려 한꺼번에 올리도록 하라.」

옹무와 수조 두 사람이 환공의 명을 가장하여 현판을 궁문에 걸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지켰다. 유독 공자 무휴만은 장위희가 살고 있는 궁실에 머물게 하고 다른 공자들은 아무도 들어와서 환공에게 문안을 올리지 못 하도록 막았다. 3일이 지나도 환공이 죽지 않자 옹무와 수조가 환공의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사람들을 남녀불문하고 모두 쫓아내고 궁문을 모두 폐쇄시켜 버렸다. 또한 침실 주변은 담장을3장 높이로 싸서 외부로부터 격리시켜 바람 한 점도 통하지 못하게 했다. 단지 담장 밑에 마치 개구멍처럼 한 개의 통로를 만들어 놓고 아침저녁으로 나이 어린 조그만 내시로 하여금 기어 들어가게 해서 환공이 죽었는지를 알아보게 하였다. 한편으로는 궁궐의 병사들을 정돈하여 여러 공자들이 일으킬지 모르는 내란에 방비했다.

한편 제환공이 몸도 일으키지 못하고 침상에 누워서 심부름하는 시종들을 불렀으나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그런 상태로 며칠이 지나자 환공의 두 눈에서는 빛이 사라지고 허공만을 멍하니 바라 볼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마치 위에서 무엇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창문을 밀고 사람이 한 명 들어왔다. 환공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들어온 사람은 곧 비천한 궁녀 신분의 안아아(晏蛾兒)였다. 환공이 안아아 임을 알아보고 말했다.

「내가 배가 매우 고프다. 미음을 한 그릇 먹을 수 없겠느냐?」

「아무 데에서도 미음을 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뜨거운 물이라도 한잔 마셔 갈증을 풀고 싶구나!」

「뜨거운 물 역시 구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구할 수 없다고 하느냐?」

「이아와 수조가 란을 일으켜 궁문을 지키고 폐하가 누워 계신 곳은3장 높이의 담을 쌓아 바깥세상과 격리를 시키고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음식인들 어떻게 들여 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는 너는 어떻게 들어 올 수 있었느냐?」

「천첩은 옛날에 한번 주공의 은총을 입은 바 있어 목숨을 걸고 담을 넘어 와서 주공의 명복을 빌러 왔습니다.」

「세자소는 어디 있느냐?」

「이아와 수조가 막아 입궁을 못하고 있습니다. 」

환공이 한탄하며 말했다.

「중보야말로 성인이로구나! 성인의 말씀하신 것이 이렇듯 불원간에 이루어지는 구나! 내가 이 지경에 처한 원인은 나의 불명함 때문이니 어찌 남을 원망할 수 있으랴!」

이어서 분기탱천하여 큰소리로 외쳤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소백이 어찌하여 이렇듯 비참하게 죽어야 합니까?」

환공은 계속해서 몇 번 더 부르짖더니 입에서 피를 한 웅큼 토해 내고 나서 안아아(晏我兒)에게 말했다.

「나에게는 사랑스러운 부인이 여섯에 자식은 십여 명에 달한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는 한 사람도 내 앞에 없구나! 다만 아아 너 한 사람만이 나의 임종을 지켜 주는구나! 평소에 너를 후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이 심히 후회되는구나!」

「주공께서는 부디 몸을 보중하옵소서! 만일 주공께서 돌아가신다면 제가 죽음으로써 황천에 가시는 길에 동행하여 드리겠습니다.」

「내가 만약 죽어서 아무 것도 모른다면 그것으로 되겠지만 만약 이 세상에 있던 일을 기억하게 된다면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서 관중을 볼 수 있겠는가?」

환공이 옷소매로 자기의 얼굴을 가리고는 연속해서 한탄만을 하더니만 마침내 숨이 끊어 졌다. 제환공은 주장왕12년 기원전685년 여름5월에 즉위하여 주양왕9년 즉 기원전643년 겨울10월에 죽었으니 모두 합하여43년간을 재위에 있었다. 제환공이 행한 훌륭한 일만을 읊은 잠연(潛淵) 선생의 시가 있다.

其一

주나라가 동천하여 천하의 기강이 허물어지자

열국의 제후들을 이끌어 주왕실을 섬겼다.

왕호를 칭하는 초라를 남정하여 포모를 바치게 하고

흉악한 북융을 제압하여 강토를 사막까지 넓혔다.

姬轍東遷綱紀亡(회철동천강기망)

首倡列國共尊王(수창열국공존왕)

南征僭楚包茅貢(남정참초포모공)

北啓頑戎朔漠疆(북계완융삭막강)

其二

위는 다시 세우고 형은 지켜 인덕으로 세상을 밝혔다.

금도⑮를 밝혀 안정시킨 세자로⑯천하에 의를 높였다.

춘추 때 기강을 보존하여 정의를 세웠으니

제환공은 오패 중 가장 큰 공업을 남겼도다!

立衛存邢仁德著(입위존형인덕저)

定儲明禁義聲揚(정저명금의성양)

正而不譎春秋許(정이불휼춘추허)

五伯之中業最强(오잭지중업최강)

염선(髥仙)이 또 한 수의 시를 지어 환공이 일세를 풍미한 영웅으로 살다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을 한탄하였다.

사십여 년 동안 방백으로 불리면서

남초를 정벌하고 서융을 무찔러 당대에 대항할 자가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병석에 누우니 이아와 수조가 미쳐 날뛰었다.

중보가 안 죽었으면 환공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겠는가?

四十餘年号方伯(사십여년호방백)

南摧西抑雄无敵(남최서억훙무적)

一朝疾臥牙刁狂(일조질와아조광)

仲父原來死不得(중보원래사부득)

숨이 끊어진 환공의 모습을 본 안아아는 한바탕 곡을 올리고 밖에 있던 사람들을 부르려고 했으나 밖에 둘러친 담장이 너무 높아 아무리 큰 소리로 불러도 밖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다시 담장을 뛰어 넘어 밖으로 나가려고 해도 방안에 딛고 올라설 발판 하나 구할 수가 없어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한탄하면서 혼자 말을 하였다.

「내가 이미 죽음으로써 주공을 보내드리겠다고 말을 했는데 시체를 염하는 일이야 나 같은 여인네가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그렇게 생각한 안아아는 즉시 옷을 벗어 환공의 시체를 덮고 다시 창가에 있던 부채 두 개를 어깨에 메고 끌어다 시체를 가렸는데 그것은 잠시나마나 환공의 시신을 가려주고 싶어서였다. 안아아가 환공의 침상 밑에 머리를 조아리고 혼자 말했다.

「주군의 혼백이 아직 멀리 가지 않으셨다면 제가 갈 때까지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곧이어 안아아는 머리를 기둥에 부딪쳐 뇌가 깨져 죽었다. 오호라 현숙한 여인이여!

5. 자소분송(子昭奔宋)

- 삼흉의 란으로 송나라로 달아나는 세자소

그날 밤 나이 어린 내시가 작은 구멍을 통해 환공의 침실로 기어 들어와 침실 가운데 있던 기둥 밑에 피가 흥건히 흘린 후 죽어있던 시신을 보았다. 깜짝 놀라 구멍을 다시 기어 나와 옹무와 수조 두 사람에게 고했다.

「주공께서 이미 기둥에 머리를 부딪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그 말을 믿지 못한 옹무와 수조는 내시들을 시켜 침실 바깥에 높이 쳐진 담장을 헐게 하고 직접 들어가 확인했다. 여인의 시체를 발견한 두 사람이 크게 놀라자 내시들 중 시체를 알아보는 자가 있어 말했다.

「이 여인은 궁녀 안아아입니다.」

다시 시선을 돌려 살펴보니 상아로 장식한 침상 위에 창가에 있던 부채 두 개가 무엇인가를 가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부채 밑에 가려진 것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입 밖으로 말은 안했지만 그것이 환공의 시신임을 모두가 마음속으로 알았다. 오호 애재라! 환공의 숨이 언제 넘어 갔는지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 수조가 한편으로 상을 발하려고 말하자 옹무가 말했다.

「절대로 서두르면 안 됩니다. 먼저 장공자인 무휴의 군위를 정한 후에 발상하여 여러 공자들이 군위를 놓고 다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아의 말이 옳다고 수조가 찬동했다. 즉시 두 사람이 장위희가 사는 궁궐로 들어가서 조용히 말을 올렸다.

「주공께서 이미 돌아 가셨습니다. 장유의 순서를 따지면 당연히 장공자이신 부인의 소생 무휴님께서 군위를 이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주공이 살아 계실 때 공자소를 후계로 지명하고 그 뒤를 송공에게 부탁한 후에 정식으로 세자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군신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만약 주공께서 이미 돌아가신 사실을 알게 된다면 군신들은 세자소를 즉위시키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신들은 오늘 밤 번개와 같은 빠른 행동으로 궁중의 병사들을 이끌고 나가 세자를 죽이고 무휴님을 받들어 군위에 즉위시켜 대사를 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단지 아녀자이니 경들의 생각만을 따를 뿐이오!」

이아와 수조가 각각 궁중의 군사 수백 명씩을 이끌고 세자소를 잡아 살해하기 위해 동궁으로 달려갔다.

한편 세자소는 동궁에 있으면서 궁궐로 들어가 환공에게 문후를 올릴 수 없게 된 일을 매일 걱정하고 있었다. 세자가 그 날 저녁 등불을 밝히고 혼자 앉아 있는데 정신이 갑자기 가물가물해 지고 비몽사몽간에 부인 한사람이 다가오며 말했다.

「세자는 빨리 도망가시오. 화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첩은 안아아라고 하는데 선공의 명을 받자와 이렇듯 특별히 찾아와 알려드립니다.」

세자소가 소리쳐 무엇인가를 소리치려고 하는데 그 부인이 손을 잡고 앞으로 밀치는데 마치 만장 깊이의 깊은 물속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인은 아무 데고 보이지 않았다. 꿈이 하도 생생하여 안 믿을 수도 그렇다고 믿을 수도 없었다. 황망 중에 시자를 큰 소리로 불러 등불을 준비시켜 대문을 열라고 명하고는 그 뒤를 따라 동궁 밖으로 나와 상경으로 있는 원로대신 고호(高虎)의 집으로 향해 걸었다. 세자가 당도하여 다급히 대문을 두드리자 고호가 직접 나와 집안으로 맞이했다. 늦은 밤에 어인 일로 행차했냐는 고호의 물음에 세자소가 조금 전에 꾼 꿈 이야기를 했다. 사태를 짐작하고 있던 고호가 말했다.

「주공이 병이 들어 자리에 누운 지 반달이 되었습니다. 간신들에 의해 외부와 연락이 두절되어 성음을 들을 수가 없던 차에 세자께서 꾸신 꿈은 흉한 일은 많고 길한 일은 적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꿈속에서 선공(先公)이라 말했으니 주공께서는 필시 이미 운명하셨음을 말합니다. 꿈 이야기가 맞는다면 유익한 일이 있을 것이고, 설사 맞지 않는다고 해도 별다른 해를 입지 않게 되니 세자께서는 잠시 나라밖으로 나가 계시어 뜻밖에 일어날지 모르는 환란에 방비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나라로 가야 몸을 안전하게 의탁할 수 있겠습니까?」

「주공께서 살아 계실 때에 이미 세자 전하를 송공에게 당부하여 두었습니다. 당연히 송나라로 가신다면 송공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곧 나라를 지켜야만 하는 신하된 자이오니 감히 세자전하를 모시고 가지 못하겠습니다. 저희 집안의 문객으로써 하사(下士) 직에 있는 이름이 최요(崔夭)라는 사람이 동문의 출입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사람을 보내 부탁하면 성문을 열어 줄 것입니다. 세자께서는 야음을 이용하여 성문 밖으로 나가 송나라로 몸을 피하십시오.」

고호의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심부름하던 사람이 와서 고했다.

「궁궐을 지키던 병사들이 동궁을 에워쌌다고 합니다.」

세자소가 깜짝 놀라 얼굴색이 흙빛이 되었다. 고호가 세자소를 평민의 옷으로 바꿔 입혀 마치 고호의 집에서 일하는 종복처럼 꾸며 심복의 뒤를 따르게 했다. 이윽고 세자의 일행이 동문에 이르자 그 심복이 고호가 전하는 말을 최요에게 전했다. 최요가 군사들에게 명하여 성문을 열고 세자를 밖으로 내보내면서 말했다.

「주공이 돌아 가셨는지 아직 알고 있지 못하는데 제가 사사로이 세자 전하를 밖으로 내보내 그 죄 역시 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마침 세자 전하를 모시는 시종이 하나도 없으니 만일 저를 내치시지 않으신다면 송나라까지 모시고 싶습니다.」

세자소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그대가 나와 동행한다고 하니 그것은 오히려 내가 바라는 바다!」

최요가 성문을 나가서 곧바로 민간인이 타고 다니는 수레를 한 대 구하여 세자를 태운 다음 말의 고삐를 잡고 송나라를 향하여 바람같이 달려갔다.

6. 골육상잔(骨肉相殘)

- 환공의 시신을 앞에 놓고 골육상잔하는 제나라의 공자들-

한편 옹무와 수조 두 사람이 궁궐을 지키는 병사들을 이끌고 동궁을 포위를 한 후에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세자소의 종적을 아무 데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윽고 시간은 어느 듯 흘러 사경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렸다. 옹무가 말했다.

「우리가 궁중의 병사를 동원하여 임의로 동궁을 포위한 일은 출기불의(出其不意)하여 속전속결로 처리하고자 함이었는데 만약 해가 밝아지도록 이곳에서 지체한다면 다른 공자들이 알아차리고 조당을 먼저 점거하면 대사를 그르치게 되오. 잠시 궁궐로 돌아가 장공자 무휴를 옹립하고 여러 공자들의 동향을 살펴가면서 다시 방법을 찾아봄이 좋지 않겠소?」

「나도 같은 생각이오.」

두 사람이 병사들을 이끌고 궁궐에 미처 당도하기도 전에 조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크게 열려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백관들이 아침 일찍 조당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조당에 모인 신료들은 고(高), 국(國), 관(管), 포(鮑), 진(陳), 습(隰). 남곽(南郭), 북곽(北郭), 여구(閭邱) 등의 종족들로서 벼슬을 살고 있던 사람이거나, 살고 있지 않는 사람이고 간에 모두 모여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옹무와 수조가 많은 군사를 이끌고 궁궐을 빠져나갔다는 소문을 들은 관원들은 모두 조당 안에 모여들어 이는 틀림없이 궁중에 변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여 보다 자세한 소식을 알아보려고 했다. 제환공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었던 궁안의 사람들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관원들은 더욱이 동궁이 포위당했다는 소식도 함께 듣고는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환공이 죽은 틈을 타서 간신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여러 관리들이 모여서 의논하였다.

「세자는 선공이 살아 계실 때에 이미 정해졌는데 만약 세자가 죽었다면 우리들은 무슨 면목으로 제나라의 신하라고 말할 수 있겠소?」

제나라의 군신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여기저기 모여 앉아서 세자를 구하러 가야 한다고 의논을 하고 있던 중에 옹무와 수조 두 사람이 군사를 이끌고 조당 안으로 몰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여러 관원들이 두 사람을 에워싸고 중구난방으로 물었다.

「세자 전하는 어디에 계시는가?」

옹무가 두 손을 높이 들고 대답했다.

「세자는 무휴 공자이신데 지금 궁중에 계시지 않습니까?」

여러 관원들이 말했다.

「무휴는 아직 선군으로부터 세자로 책봉된 일이 없으니 우리의 주군이라고 말할 수 없소! 우리의 세자인 소를 빨리 불러오시오.」

수조가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 선공의 임종시에 받은 유언을 받들어 장자 무휴를 군주로 세운다. 만일 따르지 않는 자가 있다면 이 칼에 죽으리라!」

여러 백관들은 수조가 한 말을 듣자 마음에 몹시 노엽고 분한 마음이 북받쳐서 두 사람을 향해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것은 모두가 너희 같은 간신들의 무리가 죽은 선공을 속이고 살아 있는 우리들을 능멸할 뿐만 아니라 제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세자를 폐하려고 하는 짓이다. 우리들은 맹세코 무휴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

백관들 무리에서 대부 관평(管平)이 몸을 꼿꼿이 일으켜 앞으로 나오더니 말했다.

「오늘 저 두 놈의 간신들을 먼저 죽여서 화근을 없앤 후에 다시 상의하도록 합시다.」

관평은 손에 들고 있던 상아로 된 홀(笏)을 수조의 이마를 향하여 내리쳤다. 수조가 칼을 들어 날아오는 홀을 쳐서 땅에 떨어뜨렸다. 이를 보고 여러 백관들이 관평을 돕기 위해 앞으로 뛰어나오자 옆에 있던 옹무가 큰 소리로 궁궐을 지키던 무사들에게 소리쳤다.

「무사들은 어찌하여 손을 쓰지 않느냐? 평소에 내가 양성한 너희들은 이때를 위해서가 아닌가?」

옹무의 명령을 받은 수백 명의 무장한 궁궐을 지키던 군사들이 무기를 손에 들고 일제히 백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백관들의 손에는 병장기가 들려있지 않았고 또한 수에 있어서도 훨씬 적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대적하지 못하는 법인데 무슨 도리로 버틸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마치 백옥으로 만든 계단 앞에서 벌어진 전쟁이며 금으로 만든 옥좌에 앉아 있는 염라대왕을 만난 격이 되어 버렸다. 란군 중에 죽은 관리들을 무려 십중 삼에 달했다. 그밖에 부상을 당하여 목숨이 위중한 자도 부지기수였다. 힘에 몰린 백관들은 모두 조문으로 쫓겨 달아났다.

옹무와 수조가 백관들을 죽이고 나머지 사람들을 흩어지게 했을 때에는 날은 이미 훤히 밝아져 있었다. 두 사람은 즉시 궁중에 머물고 있던 무휴를 조당으로 모시고 와서 제후의 자리에 앉혔다. 내시들이 종을 두드리고 북을 울렸고 갑사들은 조당의 뜰 양쪽으로 진열했다. 계단 밑에서 무휴의 즉위를 축하하는 절을 올리는 자는 단지 옹무와 수조 두 사람뿐이었다. 무휴가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했다. 옹무가 무휴를 향해 말했다.

「상을 아직 발하지 않아 대신들이 아직 장례 날짜를 모르고 있는데 어찌 새로운 군주에 대한 소식을 알고 있겠습니까? 이 일에는 반드시 국(國), 고(高) 두 사람의 상경을 입조시켜 그들로 하여금 백관들을 부르게 한다면 그들을 승복시킬 수 있습니다. 」

무휴가 허락하여 즉시 내시를 나누어 우경(右卿) 국의중(國懿仲)⑰과좌경(左卿) 고호(高虎)의 집으로 각각 보내어 그들을 조당으로 불렀다. 그 두 사람의 상경은 주나라 천자의 명에 따라 제나라를 감국하는 임무를 띠고 있어 두 집안은 대대로 제나라의 상경의 직위를 세습해 왔기 때문에 제나라 신료들은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또한 진정으로 복종하고 있었다. 내시들이 달려와 조당에 들라는 군명을 받은 고호와 국의중은 제후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두 사람은 조복 대신에 삼배로 만든 상복으로 바꾸어 입고 조당으로 나아가 문상을 하기 위해 궁궐로 달려갔다. 옹무와 수조 두 사람이 황망 중에 반가와 하며 조문 밖에 까지 나와 영접하면서 말했다.

「오늘 신군께서 새로 즉위하시어 어전에 계시니 두 노대부께서는 우선 신군을 배알하시기 바랍니다.」

국의중과 고호 두 대신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돌아가신 선군의 시신을 아직 염하기도 전에 신군에게 먼저 절을 올리는 행위는 예에 벗어난 일입니다. 우리는 여러 공자들 중 누가 되든지 간에 선군의 상을 치르는 공자님을 받들겠습니다. 」

옹무와 수조가 말을 잇지 못했다. 고국 두 대신이 조문 밖에서 하늘을 향하여 절을 두 번 올리고 크게 곡한 후에 물러갔다. 무휴가 듣고 말했다.

「선군의 시신을 아직 거두지 못하여 군신들이 복종하지 않으니 이를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수조가 말했다.

「오늘의 일은 마치 호랑이를 잡는 일과 같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만이 군위를 이을 수 있습니다. 주상께서는 정전에 앉아만 계십시오. 신등은 양쪽 낭하에 군사를 삼엄하게 도열시키고 공자들이 조당으로 들어오면 즉시 병사들로 하여금 겁을 주게 하여 불복한 자들은 죽이도록 하겠습니다.」

장위희가 궁궐을 지키는 병사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나가게 하여 모두 내시들의 지휘를 받아 군장을 갖추게 하고 계속해서 궁녀 중에서도 키가 크고 힘이 센 여인들도 갑사들의 대오에 집어넣어 옹무와 수조의 명령을 따르게 하였다. 궁궐을 지키는 병사들을 모두 모아 어전의 양쪽 낭하에 나누어 도열시킨 옹무와 수조의 기세가 사뭇 살기등등 했다.

한편 위나라 공자 출신 개방은 옹무와 수조가 무휴를 옹립했다는 소식을 듣고 공자반에게 말했다.

「세자소는 어디로 도망갔는지 알 수가 없는데 만약 무휴가 즉위할 수 있다면 공자께서도 즉위하시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개방은 공자반과 함께 즉시 가병과 자객들을 모두 모아서 끌고 궁궐로 가서 어전의 오른쪽에 도열하게 하였다. 밀희의 아들 공자 상인도 소위희의 아들 공자원은 찾아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선공의 다 같은 골육인데 우리에게만 나누어 가질 땅이 없습니다. 자반 형님은 이미 가병을 동원하여 궁궐의 오른쪽 전당을 점령하였으니 우리도 가병을 이끌고 나가 궁궐의 왼쪽 전당을 점령해 합니다. 세자소가 나타난다면 물러나면 되고 만일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리 네 공자가 제나라를 공평하게 나누어가지면 됩니다.」

공자원은 상인의 말에 혹했다. 그들 역시 각기 그들의 가병과 또한 평소에 그 집에서 양성하던 문객들로 대오를 만들어 궁궐로 들어가 공자원은 조당의 왼쪽 전당에 군사들을 도열시키고 공자 상인은 조문을 점거하여 진을 쳐 서로 간에 기각지세를 이루었다. 옹무와 수조는 세 공자의 가병들의 수가 많음에 겁을 먹고 어전의 양쪽 낭하에만 있으면서 감히 조문 밖으로 나가 공격하지 못했다. 세 공자들도 역시 옹무와 수조가 거느린 정예한 궁병들의 기세에 겁을 먹고 각기 자기들의 군영만을 지키고자 했다. 이것은 마치 한 조당에서 여러 적대국들이 전쟁을 하는 것과 같아 성안의 길거리에는 오고가는 행인들의 발길이 끊기게 되었다. 이 일을 두고 지은 시가 있다.

용봉이 서린 누각에서 호랑이와 표범이 울어 데는데

갑사들은 궁궐 안의 단지(丹墀)⑱를어지럽게 하는구나!

사호가 서로 잡아먹으려고 싸우는 모습 분명한데

누군인들 마음을 열어 머리를 조아리려고 하겠는가?

鳳閣龍樓虎豹嘶(봉각용루호표시)

紛紛戈甲滿丹墀(분분과갑만단지)

分明四虎爭殘肉(분명사호쟁잔육)

那个降心肯伏低(나개항심긍복저)

한편 별다른 세력을 갖고 있지 못하던 공자옹은 공자들이 서로 다투는 모습에 겁을 먹고 도망쳐 섬진으로 들어갔다. 섬진의 목공은 공자옹을 받아들여 대부로 임명했다.

7. 무휴위군(無虧爲君)

- 환공의 장례를 주관하고 제후의 자리에 오른 무휴-

한편 세자가 나라 밖으로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러 관리들은 조종(朝宗)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여 모두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원로대신 국의중과 고호는 가슴에 칼로 찔리는 듯한 마음의 고통을 느끼면서 여러 가지로 해결 방법을 생각해 봤으나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 이렇듯 서로 대치하면서 지내기를 어느 덧 두 달이 넘게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고호가 국의중을 찾아가 말했다.

「여러 공자들이 단지 군위에만 마음이 있고 선군의 시신을 거두어 상을 치르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땅히 사생결판을 내야 되겠습니다.」

「대감이 먼저 말을 꺼내면 내가 뒤를 이어 우리들의 한 목숨을 같이 바쳐 여러 대를 거쳐 받은 은혜에 보답하기로 합시다.」

「우리들 두 사람만이라도 입을 연다면 무슨 일인들 못 이루어 내겠습니까? 그러나 제나라의 록을 먹는 자는 우리 두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조문 밖에서 소리쳐서 여러 대신들을 불러내어 모이라고 해서 같이 조당에 들어가서 잠시 장자 무휴를 모시고 선공의 상을 치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형제들 중 제일 맏인 무휴를 세운다고 해서 명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소!」

두 사람이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 이리저리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군신들을 불러내어 같이 조문으로 가서 곡을 올렸다. 일반의 여러 관리들도 원로대신이 주관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놓여서 각기 상복들을 찾아서 입고 두 대신들의 뒤를 따라 조당으로 들어갔다. 수초가 여러 군신들의 앞길을 막으면서 물었다.

「노대부들께서 이곳에 오신 까닭은 무엇 때문입니까?」

관료들의 앞장에 서 있던 고호가 대답했다.

「여러 공자들이 서로 대치만 하고 있어 언제 이 분쟁이 끝날지 알 수 없어, 우리들이 무휴 공자님을 모시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왔소. 결코 다른 뜻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요.」

수초가 고호에게 읍을 하고 조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고호가 여러 백관들을 향하여 모두 같이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자 국의중 이하 모든 군신들이 뒤를 따라 들어가 조당 안에 있던 무휴를 향해 말했다.

「신등은 ‘부모에게서 받은 은혜는 마치 하늘과 바다같이 크고 넓다’라고 배웠습니다. 고로 사람의 자식된 도리는 살아서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공경해야 하고, 죽어서는 지극한 마음으로 장례를 치러야 합니다. 부모가 죽었는데 시신을 거두지 않고 서로 지위와 재물만을 다투었다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저희들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무릇 군주란 신하들의 표본과 같습니다. 그 군주가 이미 불효를 하고 있는데 신료들을 보고 어찌 충성을 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선군께서 돌아가신 지가 이미60여 일이 지나갔는데 아직 입관도 못하고 있습니다. 공자께서 비록 정전(正殿)을 지키신다 한들 어찌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고호가 말을 마치자 모든 군신들이 땅에 엎드려 통곡했다. 무휴도 역시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내가 저지른 불효의 죄는 하늘을 뚫고 있습니다. 내가 상을 치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가 아니라 공자원을 위시한 다른 공자들이 나를 핍박하여 어쩔 수 없이 이리 되었습니다.」

국의중이 나서서 거들었다.

「세자는 이미 외국으로 달아나 버렸기 때문에 오로지 공자가 가장 나이가 많습니다. 공자께서 만약에 선군의 장례를 주관하시어 그 시신을 거두신다면 군위는 자연 공자에게로 돌아 갈 것입니다. 공자원 등이 비록 대전의 정문을 점거하고 있다 하지만 노신 등이 나가서 마땅히 이를 꾸짖겠습니다. 누가 감히 공자와 군위를 다투고자 하겠습니까?」

무휴가 눈물을 흘리면서 정전에서 내려와 고호에게 절을 올리면서 말했다.

「대감의 말은 바로 내가 원하고 있는 바입니다.」

고호와 국의중이 옹무에게 명하여 정전의 양쪽 낭하를 옛날처럼 지키게 하여 공자들과 그 무리가 상복을 입고 장례에 참여하려는 자들만 들여보내게 하고 병장기를 들고 들어오려는 자는 즉시 잡아서 치죄하도록 했다. 수조는 먼저 환공의 침실에 들게 하여 시신을 거두는 일을 먼저 안배하였다.

한편 환공의 시신은 두 달이 넘도록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 비록 계절이 겨울이기는 했지만 혈육이 낭자하고 시체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였다. 시체에서 생겨 우글거리고 있던 수많은 벌레 떼들을 금방 담장 밖으로 몰아낼 수 없었다. 여러 관리들은 그 벌레들이 그렇게 많이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침실에 들어가서 창문을 열자 벌레들이 시체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환공의 시신은 그 모습이 처참하여 도저히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볼 수 없었다. 무휴가 목을 놓아 통곡하자 군신들도 모두 따라서 울었다. 오동나무로 만든 관을 취하여 시신을 수습하여 렴을 하려고 했으나 시체의 살이 이미 썩어 문드러진 후라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자루를 만들어 시신을 그 안에 넣어 간신히 염을 마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안아아의 시신만은 그 얼굴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생생하고 그 시체는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 안아아가 충성스러운 마음에 그렇게 죽었다는 것을 알고 탄식해 마지않던 고호 등은 그녀의 시신도 같이 거두어 염을 하도록 했다. 고호 등은 군신들을 이끌고 무휴를 상주의 자리에 앉게 한 후 여러 관리들이 순서에 따라 곡을 올리도록 하였다. 그날 밤은 모두가 장례식장에서 잠을 잤다.

한편 조당 밖에서 진을 치고 가병들을 배열하게 하고 있던 공자원, 공자반, 공자상인 등의 공자들은 고혜와 국의중 두 중신이 상복을 입은 여러 관리들을 이끌고 조당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으나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윽고 그들은 두 중신이 환공의 시신을 거두어 염을 이미 마치고 모두 공자무휴를 군주의 자리에 옹립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 공자가 자기들의 말을 조당 안의 군신들에게 전하게 했다.

「고국(高國) 두 원로대신이 주관하여 무휴를 추대한다고 하니 우리들은 감히 군위를 다툴 수 없겠습니다.」

여러 공자들은 각기 자기들의 가병들을 즉시 해산시키고는 자신들도 모두 상복을 입고 장례식장으로 나와서 형제들간에 서로 상면을 한 후에 크게 곡을 올렸다. 당시 만일 고혜와 국의중이 나서서 무휴를 설득하지 않았다면 이 일이 어떻게 끝났을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호증(胡曾) 선생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두고 한탄을 하였다.

충신의 유언을 버리고 망령된 신하를 총애하여

형제들간에 골육상잔의 분쟁만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고국 두 대신이 나서서 나라를 수습하지 못했다면

침상에 쌓인 환공의 백골은 장례도 못 치렀음이라!

違背忠臣寵佞臣(위배충신총영신)

致令骨肉肆紛爭(치령골육사분쟁)

若非高國行和國(약비고구행화국)

白骨堆床葬不成(백골퇴상장불성)

8. 송양벌제(宋襄伐齊)

- 제나라 세자소를 위해 제나라를 정벌하는 송양공-

한편 임치성에서 탈출하여 송나라로 도망쳐 송양공을 접견한 제나라 세자소는 통곡하면서 옹무와 수조가 란을 일으켰다고 하소연했다. 송양공은 즉시 군신들을 불러서 모이게 하고는 말했다.

「옛날에 제후가 세자를 세우면서 나에게 그 뒤를 부탁한 날로부터 지금까지 헤아려 보니10년이 되었다. 과인이 여태껏 그 부탁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잊지 않고 있었다. 오늘 옹무와 수조가 안에서 란을 일으켜 세자가 이렇듯 쫓겨났으니 과인이 제후들을 불러 회맹을 한 후에 그들을 이끌고 제나라의 죄를 묻고, 세자소를 제나라에 들여보내 제후의 자리에 앉히려 한다. 이번의 거사를 이루게 된다면 이름이 높아진 우리 송나라는 제후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게 됨으로써 회맹을 주재하여 제환공의 뒤를 이어 백업(伯業)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말해 보시오.」

그러자 군신들의 반열에서 한 사람의 대신이 황급히 앞으로 나오더니 양공에게 아뢰었다.

「우리 송나라는 제나라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세 가지가 있는데 무엇으로 패업을 이루시겠다고 하십니까?」

송양공이 보니 그 사람은 자신의 서형 공자 목이(目夷)였다. 그는 송환공 어설(御泄)의 서장자였다. 그래서 옛날 송양공이 송공의 자리를 목이에게 양보했으나 사양하고 지금은 대부로서 양공의 신하가 되어 있었다. 목이의 자는 자어(子魚)다. 양공이 듣고 목이에게 물었다.

「자어 형님의 말이 우리나라가 제나라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세 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무엇입니까?」

「제나라는 태산(泰山)과 발해(渤海)의 험한 지세를 의지하고 낭야(琅琊)와 즉묵(卽墨) 평원의 풍부한 물산이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협소하고 땅은 척박합니다. 또한 병사의 수는 적고 식량은 얻기가 힘듭니다. 이것이 제나라에 못 미치는 첫 번째입니다. 제나라는 고씨와 국씨 같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명문거족들이 나라가 위급할 때는 중심이 되어 지키고, 또한 관중, 영척, 습붕, 포숙아와 같은 재사들이 일을 도모했던 반면에 우리 송나라는 문신이나 무신도 같이 구비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자를 찾아 등용시키지도 못하고 있으니 이것이 제나라에 못 미치는 두 번째입니다. 환공이 북쪽의 산융(山戎)을 정벌하러 갈 때 유아(兪兒)라는 귀신이 길을 열어 주었고 성밖의 야택지에서 사냥할 때는 그곳에 사는 귀신인 위사(委蛇)가 나타나 환공이 패업을 이루게끔 도와주었습니다. 우리 송나라는 금년 봄 정월에 다섯 개의 운석이 땅에 떨어져서 모두가 돌로 변하여 버렸고 이월에는 다시 큰바람이 부는 이변이 일어나 여섯 마리의 익조(鷁鳥)⑲가 날아서 가버렸습니다. 이것은 우리 송나라의 국세가 위로 올라가기보다는 내려온다는 징조를 말하며 또한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나 실은 뒤로 후퇴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제나라보다 못한 점이 세 가지가 있어 스스로 지키기도 여가가 없는데 어찌 다른 나라까지 돌보려고 하십니까?」

「과인은 인의(仁義)를 근본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이오. 나에게 맡긴 세자소가 외롭게 되었음에도 내가 구하지 않는다면 인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고 허락한 약속을 저버린다면 의가 아니오.」

공자 목이의 간함을 물리친 송양공은 제나라를 정벌해달라는 세자소의 요청을 받아들여 즉시 천하의 제후들에게 격문을 써서 돌려 내년 봄 정월에 제나라 도성 밖에 모이자고 했다.

송나라의 사신이 격문을 휴대하고 위나라에 당도하여 전하자 대부 영속(寧速)이 위문공에게 말했다.

「군주를 세우는 일은 적자를 우선하되 적자가 없을 때에는 나이가 많음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예의 기본입니다. 무휴는 나이가 제일 많을 뿐 아니라 그는 옛날 우리나라가 북적(北狄) 수만(瞍瞞)의 침공을 받아 망했을 때 제환공의 명을 받들어 지금 이곳 초구(楚丘)에 도성을 쌓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우리는 무휴에게 큰 은혜를 입었으니 주군께서는 제나라의 일에 관여하시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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