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宋立齊侯(송립제후), 伏兵劫盟(복병겁맹) > 2부3 백리해

제33회 宋立齊侯(송립제후), 伏兵劫盟(복병겁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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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3,676회 작성일 07-02-06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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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

宋立齊侯 伏兵劫盟(송립제후 복병겁맹)

제나라 군주를 세우는 송양공(宋襄公)과

병사를 숨겨 맹주를 사로잡은 초성왕(楚成王).



1. 송립제후(宋立齊侯)

- 공자소(公子昭)를 제후로 세우는 송양공(宋襄公) -

옹무(雍巫)가 군사를 이끌고 성밖으로 나간 틈을 탄 고호(高虎)가 장사들을 성루의 한쪽에 매복시킨 후에 의논할 일이 있다고 사람을 시켜 수조(竪刁)를 불러오게 했다. 의심하지 않고 우쭐거리면서 부름에 응한 수조를 고호가 성루 위에 술자리를 준비해 놓고 맞이했다. 수조가 술잔을 들어 연거푸 삼배를 마시게 한 후에 고호가 입을 열어 말했다.

「오늘날 송공이 제후들의 군사를 규합하여 대군을 일으켜 세자를 이곳까지 호송해 왔소. 어떻게 대처할 생각이오?」

「이미 옹무가 군사를 이끌고 성밖으로 나가서 적군을 막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

「우리 군사의 수가 많지 않으니 걱정되오. 노부가 그대에게서 한 가지 귀중한 물건을 빌려 우리 제나라의 어려움을 구하려고 하는데 빌려주겠소?」

「제가 대감께서 부탁하신 물건도 내 주지 않는다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만일 노대부께서 사람을 보내시면 명하시는 물건을 내드리겠습니다.」

「그대의 목을 빌려 송군에게 사죄하고자 함이니라!」

수조가 듣고 깜짝 놀라 황급히 자리에 일어나려고 하자 고호가 좌우를 향해 소리쳤다.

「장사들은 빨리 손을 쓰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고호가 명이 떨어지자 벽 뒤에 숨어 있던 장사들이 뛰쳐나와 수조를 붙잡아 포박을 지은 후에 목을 쳤다. 고호가 사람들을 시켜 성문을 활짝 열게 하고 외치게 했다.

「세자가 이미 성밖에 와 계십니다. 세자를 마중 나가고 싶은 사람들은 나를 따라오시오!」

평소에 옹무와 수조 두 사람을 싫어했던 도성 안의 사대부들은 무휴에게 나아가 벼슬을 하지 않고 두문불출하고 있다가 고호가 세자를 모시러 성밖으로 나가자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모두 집밖으로 나와 팔을 걷어 부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어느덧 고호를 따르는 사람들의 수효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천 명도 넘게 되었다.

한편 국의중은 조당에 나가 궁궐의 문을 두드려 무휴에게 알현을 청해 말했다.

「사람들이 세자소를 추대하려는 생각으로 서로 모여서 성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노신이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공께서는 속히 란을 피할 계책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옹무와 수조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옹무는 송나라 군사와의 싸움에서 승패가 아직 알 수가 없고 수조는 이미 백성들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무휴가 듣고 대노하여 말했다.

「수조가 백성들에게 목숨을 잃은 사실을 어째서 네 놈은 이제야 고한단 말이냐?」

무휴가 좌우를 돌아보며 국의중을 잡으려고 명하자 의중이 도망쳐 조문 밖으로 나왔다. 무휴가 내시 10여명을 불러서 조그만 수레 한 대를 가져오게 했다. 그는 수레에 올라타 분연히 검을 치켜들고 궁 밖으로 나갔다. 무휴가 내시들에게 명령을 내려 장정들을 모으도록 했다. 무휴는 장정들을 무장시킨 후에 자기가 친히 인솔하여 제후 연합군을 막으려고 생각했다. 내시들이 무휴의 명을 받아 사방으로 나가서 장정들을 불렀으나 성중에는 부름에 응하여 나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오히려 원한을 갖고 있던 많은 사람들만 불러 낸 꼴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마치 다음의 시가 말하려는 것과 같았다.

은혜와 덕을 베풀면 종내는 반드시 보답을 받고

원한을 사면 그 보복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옛날에 저지른 지나친 처사는

한꺼번에 죄 값을 치르게 되리라!.

恩德終須報(은덕종수보)

寃仇撒不開(원구살불개)

從前作過事(종전작과사)

沒興一齊來(몰흥일제래)

원한에 맺힌 종족이라 함은 고(高), 국(國), 관(管), 포(鮑), 영(寧), 진(陳), 안(晏), 동곽(東郭), 남곽(南郭), 북곽(北郭), 공손(公孫), 여구(閭邱) 등 제나라의 명문거족들이었다. 무휴에게 항거하다가 옹무와 수조 두 사람에게 많은 종족들이 살해당했던 그들은 모두가 원한을 가슴에 품고 집안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그런데 금일 세자소를 즉위시키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온 송공을 막기 위해 옹무가 성안의 군사들을 모두 이끌고 성밖으로 나갔다는 소문을 접한 사대부들은 마음속으로 옹무가 싸움에 지기를 바라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마음 한 구석에는 송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 다시 한 번 자기들을 해치는 살육전을 벌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상경 고호가 수조를 죽이고 세자를 맞이하러 성밖으로 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기뻐하며 말했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하늘이 눈을 떴구나!」

그들 종족들은 모두가 몸에 갑옷을 걸치고 병장기로 무장을 갖추고 동문 쪽으로 일제히 달려가 세자에 대한 소식을 탐문하고 있던 참에 조그만 수레를 타고 자신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던 무휴와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격이 되어 여러 군중들의 눈에는 살기를 띠며 양쪽으로 나뉘어 무휴를 노려보다가 한 사람이 앞장서 무휴 앞으로 다가서자 여러 군중들은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어 그를 겹겹이 포위했다. 무휴를 따르던 내시들이 군중들을 향하여 소리쳤다.

「주군이 여기에 계시는데 어찌 이리도 무례하게 구느냐?」

군중들이 소리쳐 말했다.

「우리들의 주군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군중들이 들고 있던 무기를 휘두르며 내시들에게 달려들어 모조리 죽였다. 군중들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황급히 수레에서 내려 도망치던 무휴도 얼마가지 못하고 사로잡혀 군중들에게 살해되었다. 그 일로 동문이 소란스럽게 되었으나 국의중이 어디에선가 갑자기 나타나서 그들을 위무하자 군중들은 바로 흩어져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국의중은 무휴의 시신을 별관으로 옮겨 관을 준비하여 납관하고 사람을 시켜 그 소식을 고호에게 달려가 알리게 했다.

한편 성밖 동쪽 관문에 주둔하면서 송나라 군사들과 대치하고 있던 옹무는 어느 날 밤 갑자기 군중이 소란스럽게 되자 심복을 시켜 그 연유를 알아보게 했다. 심복이 돌아와 군사들의 말을 전했다.

「무휴와 수조는 모두 죽고 고호 상국이 사대부들을 이끌고 성문을 나가 세자소를 영접하여 군위에 앉히려고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나라에 거역하는 일을 돕지 못하겠소!」

군심이 이미 변했음을 감지한 옹무의 마음은 마치 예리한 칼에 오려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는 급히 심복 몇 사람을 불러 밤을 도와 진영을 탈출하여 노나라를 향하여 도망쳤다. 이윽고 날이 밝아오자 옹무의 군영에 당도한 고호가 군사들을 안무하고 그들을 이끌고 곧바로 송나라 진영으로 가서 그곳에 머물고 있던 세자소를 영접하고 송(宋), 위(衛), 주(邾), 조(曹) 네 나라와의 싸움을 멈추고 수호를 맺었다. 사국의 군사들은 곧 바로 자기나라로 돌아갔다. 세자소를 모시고 임치성 밖에 당도한 고호는 세자를 공관으로 모셔 행장을 풀고 잠시 머물도록 했다. 사람을 성안의 국의중에게 보내 세자가 당도했음을 알리고 군주가 타는 어가를 준비하여 백관들과 같이 나와 세자소를 모시라고 전했다. 한편 공자원과 공자반도 그 사실을 알고 공자 상인과 의논하여 다 같이 성곽 밖으로 나가 신군을 맞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공자상인만은 세자소의 즉위에 불만을 품고 반대했다.

「우리들은 나라 안에 있으면서 상을 치르기 위해 죽을 고생을 했는데 그때 소(昭)는 한 번도 곡이나 절도 하지 않았으면서 이제는 오히려 송나라 군사의 힘을 빌려 그 힘을 과시하고 또한 나이가 적은 사람이 나이가 많은 사람을 능멸하여 제나라를 강탈하려고 하니 순리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제후들의 군사들이 이미 물러 갔다고 하니 우리들이 각기 가병들을 동원하여 무휴의 원수를 갚는다고 소리치면서 소를 죽인 후 우리들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대신들의 추대를 받아 군위에 올라야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송나라의 속박으로부터 벗어 날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공께서 이룩하신 맹주로서의 지위도 잃지 않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바꾼 공자원이 먼저 동조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중궁의 영을 받들어 행하여야 만이 서출로서 군위에 오르는 명분을 세울 수 있다.」

세 사람은 공자원의 말을 따라 즉시 궁중으로 들어가 장위희에게 자기들의 뜻을 알렸다. 장위희가 눈물을 흘리며 세 공자에게 말했다.

「그대 공자들이 무휴의 원수만 갚아 준다면 내가 죽어도 한이 없겠다!」

장위희가 즉시 명하여 옛날에 무휴가 거느리던 사람들을 모이게하여 세 공자의 무리에 들어가 세자소에게 대항하도록 했다. 그때까지 성안에 남아있던 수조의 많은 심복들도 역시 그 주인의 원수를 갚겠다고 하며 세 공자 일당에 가담했다. 세 공자는 수많은 무리들을 서로 나누어 임치성 각 성문을 지키게 했다. 국의중이 네 공자의 가병들의 수가 많음을 두려워하여 상부(相府)의 문을 굳게 닫아걸고 감히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고호가 알고 세자소에게 말했다.

「무휴와 수조가 비록 죽었으나 그 잔당이 아직도 많이 살아 있고, 더욱이 세 공자까지 준동하여 성문을 단단히 닫고 열어 주지 않으니 만약에 우리가 성문을 통하여 들어가고자 한다면 이것은 필히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만약에 싸워서 지기라도 한다면 앞서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니 차라리 송나라로 다시 돌아가 구원병을 데려오는 편이 상책이라 하겠습니다.」

「나는 단지 고상국의 말만을 따르리라!」

고호가 즉시 세자소를 모시고 다시 송나라를 향해 달려갔다. 그때 제나라에서 군사를 물리쳐 돌아오던 송양공은 이윽고 송나라 경계에 도착할 즈음에 수레를 몰아 자신을 뒤따라오는 세자소를 보고 크게 놀라 그 연유를 물었다. 고호가 앞서 달려와 일의 전후좌우를 일일이 명백하게 고했다.

송양공이 듣고 말했다.

「이것은 과인이 군사를 너무 빨리 물리친 때문이라! 세자는 마음을 놓으시기 바랍니다. 과인이 여기 있으니 어찌 임치성에 입성하지 못하겠습니까?」

송양공은 그 즉시 대장 공손고(公孫固)에게 명하여 본국에 남아 있던 대부분의 병사와 거마를 동원하여 자신을 따르도록 했다. 지난번에는 위, 조, 주(邾) 삼국이 송나라와 같이 군사를 일으켰기 때문에 송나라는 200승만의 병거만을 동원했지만, 이번에는 송나라 단독으로 하는 출병이기 때문에 400승을 채우려고 했다. 공자탕(公子蕩)은 선봉을, 화어사(華御事)는 후군을 맡게 한 양공은 대장 공손고와 함께 중군을 친히 지휘했다. 송양공은 세자소를 제나라로 호송하기 위하여 다시 송나라 경계를 벗어나 호호탕탕 진군하여 제나라의 임치성 밖의 교외에 당도했다. 그때 고호가 앞으로 달려 나가 관문 앞에 이르자 관을 지키는 제나라의 장수와 관리들은 송나라 군사들을 인도하여 앞장서 오는 사람이 고호임을 알아보고 곧바로 관문을 열고 고호와 송군을 맞아 들였다. 송나라 군사들은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임치성 밑에까지 당도하여 진채를 세웠다. 양공은 삼군에 명하여 성문이 굳게 닫혀 있는 임치성을 공격할 채비를 하게 했다. 성내에 있던 공자상인이 공자원과 공자반에게 말했다.

「송군이 공격을 시작하면 틀림없이 백성들이 동요하여 내부에서 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전에 우리들이 네 집안의 가병들을 이끌고 성밖으로 나가 송나라 군사들이 아직 숨을 돌리기 전에 힘을 합쳐 공격한다면 다행히 싸움에서 이기게 되면 좋은 일이고 혹시 싸움에서 패하게 된다면 각기 당분간 몸을 피해 있다가 그때의 형편에 따라 다시 일을 도모하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지금처럼 죽음을 각오하고 성을 지키다가 만일 다른 제후들의 군사들이 이곳으로 계속 들이 닥치고 안에서 변란이라도 일어난다면 그때는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공자원과 공자반이 공자상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날 밤에 즉시 성문을 열고 각기 군사들을 이끌고 송나라 진채를 습격했다. 그러나 송군의 진채에 대한 허실을 알지 못한 공자의 가병들은 단지 선봉을 맡고 있던 공자탕의 진영을 먼저 공격하게 되었다. 갑자기 기습 공격을 받게 된 공자탕은 당황하여 맞이해 싸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진채를 버리고 달아났다. 선봉대의 진채가 공격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중군대장 공손고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급히 대군을 이끌고 진채 밖으로 출동했다. 국로인 고호와 같이 있던 후군대장 화어사도 소식을 듣고 역시 부하들을 이끌고 선봉대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나갔다. 송과 제 양쪽의 군사들이 서로 섞여서 혼전을 하고 있던 중 어느덧 시간이 지나 날이 밝아 왔다. 네 공자의 가병들 수는 비록 많았으나 각기 주인이 달라 일사불란하게 지휘를 받지 못해 송나라 군사들을 도저히 당해 내지 못했다. 그날 밤 벌어진 야간 전투에서 그들 가병들은 송나라 병사들에게 십중 칠팔이 꺾여 버렸다. 세자소가 입성하게 되면 그 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공자원은 혼란을 틈타 심복 몇 명과 함께 위나라를 향하여 도망쳤다. 공자반과 공자상인은 패잔병을 수습하여 성안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그 뒤를 바싹 추격한 송군 때문에 미처 성문을 닫지 못한 틈을 타서 최요(崔夭)가 세자를 어가에 태우고 한 달음에 성안으로 들어갔다. 성안에 몸을 피해 숨어 있던 상경 국의중은, 네 공자의 가병들이 흩어지고 세자가 이미 성안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백관들을 모이게 하여 고호와 같이 세자소를 옹립하여 제후의 자리에 앉혔다. 세자소는 그 해를 즉위 원년으로 개원했다. 이가 제효공(齊孝公)이다. 효공은 제후의 자리에 오르는데 공을 세운 사람들을 논공행상하고 최요를 대부에 봉했다. 다시 황금과 비단을 크게 내어 송나라 군사를 위문하고 잔치를 벌려 배불리 먹였다. 양공이 제나라 성밖에서 5일을 더 머물다가 다시 송나라로 돌아갔다. 그때 노희공도 대군을 일으켜 무휴를 구하기 위하여 출병하여 제나라로 향하던 중 무휴가 죽고 효공이 이미 섰다는 사실을 알고 중도에서 군사를 되돌려 돌아갔다. 이때부터 제와 노 두 나라는 틈이 생기게 되었다.

한편 공자반과 공자상인은 서로 의논하여 가병을 이끌고 효공에게 대항한 것은 모두 위나라로 도망친 공자원의 짓이라고 미루었다. 고국(高國) 두 대신들은 네 명의 공자들이 공모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동기간에 원한을 잊고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효공의 뜻을 받아들여, 변란을 일으킨 죄는 단지 옹무와 수조 두 사람에게만 묻기로 했다. 이윽고 옹무와 수조의 일당들을 모두 잡아다 죽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용서했다.

그해 즉 기원전642년 제효공 원년 8월에 분묘를 대대적으로 조성한 우수(牛首)①의 땅 언덕 위에 분묘를 대대적으로 조성한 후에 환공의 시신을 옮겨 개장했다. 또한 후세 사람들의 도굴에 대비하기 위하여 같은 규모의 의총(疑冢) 3개를 연달아 그 옆에 만들었다. 안아아는 별도로 조그만 분묘를 만들어 환공 곁에 묻었다. 또한 무휴와 공자원으로 인하여 변란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여 그들의 모친인 장위희와 소위희를 모시던 내시와 궁녀들을 모두 잡아다 환공의 분묘 안에 산채로 순장시켰는데 그 수효가 수백 명에 달했다. 그로부터 약 천년이 경과된 서진(西晉)의 영가(永嘉)② 말년에 천하대란③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시골의 한 농부가 환공의 무덤을 우연히 발견했다. 동네 사람들과 같이 무덤 안으로 들어간 농부는 그 안에서 수은으로 채워진 연못을 발견했다. 농부와 그 일행은 연못에서 나오는 한기가 엄습하여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밖으로 다시 나와 몇 날을 기다리자 그 한기가 점점 사라져서 사람들이 맹견을 끌고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안에는 누에 모양으로 만든 황금이 수십 말이나 있었고 진주가 달린 팔이 짧은 저고리와 옥으로 만든 상자와 오색비단 그리고 각종 병장기들이 발굴되었는데 그 수가 하도 많아 셀 수가 없었다. 그 안에 무수하게 널러져 있던 해골은 모두가 환공의 시신과 같이 순장된 장위회와 소위희 수하의 내궁과 내시들 것이었다. 염선이 ‘효공이 그 당시 부친 제환공의 장례를 충분히 성대하게 지냈었다고 한들 후에 무슨 쓸모가 있었겠는가?’라는 뜻으로 시를 지어 노래했다.

가짜 무덤 세 개가 마치 산처럼 높았음에 불구하고

무덤 안의 금잠과 옥갑은 도굴범들 소유가 되었다.

무덤 안의 수많은 금은보화는 도굴을 당하기 마련이라,

간소한 장례는 어찌 물건만을 아끼기 위해서였겠는가?

疑冢三堆峻似山(의총삼퇴준사산)

金蠶玉匣出人間(금잠옥갑출인간)

從來厚蓄多遭發(종래후축다조발)

薄葬須知不是慳(박장수지부시간)


2. 用人祭鬼(용인제귀)

- 사람을 희생으로 삼아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송양공 -

한편 제나라의 네 공자가 이끌던 군사들을 물리치고 공자소를 제후의 자리에 앉힌 송양공은 스스로 불세출의 공을 세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세를 몰아 다시 한 번 제후들을 소집하여 회맹을 주재하고 제환공의 뒤를 이은 패자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큰나라는 자기의 부름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송양공은 우선 등(滕)④, 조(曹)⑤, 주(邾)⑥, 증(鄫)⑦ 등의 소국을 조나라의 남쪽의 땅으로 불러 회맹을 행하려고 했다. 조와 주 두 나라의 군주가 당도하고 얼마 후에 등자(滕子) 영제(嬰齊)가 도착했으나 약속 시간에 늦게 당도했다는 이유를 들어 회맹장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 죄를 물어 잡아다 방에 가두었다. 송나라의 위세에 겁을 먹은 증자(鄫子)가 뒤늦게 회맹에 참여하려고 길을 떠났으나 그 역시 약속한 날짜보다 이틀이나 늦고 말았다. 송양공이 군신들에게 증자에 대한 처분을 물으며 말했다.

「과인이 이제 바야흐로 회맹을 행해 패업을 일으키려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증나라 같은 소국이 어찌 감히 이렇듯 태만하여 약속 기일을 이틀이나 어기는가? 죄를 엄하게 묻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다른 나라의 제후들에게 위엄을 밝힐 수 있겠는가?」

대부 공자탕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옛날에 제환공이 남쪽의 초나라와 북쪽의 산융을 정벌할 때도 유독 동쪽의 오랑캐인 이족(夷族)만은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주군께서 위엄을 중원 제후국들 사이에 세우시려면 먼저 동이를 복종시켜야만 합니다. 또한 동이를 복종시키기 위해서는 증나라 군주를 이용하셔야 합니다.」

「증자를 어떻게 이용한단 말인가?」

「수수(睢水)의 강물 속에는 천지조화를 일으킬 수 있는 수신(水神)이 있는데 동이족의 국가들은 모두 강가에 사당을 지어 계절을 거르지 않고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주군께서 마음을 다하여 증자를 희생으로 삼아 수수의 수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면, 장차 수수의 신은 패업을 이루시려는 주군께 복을 내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이 일이 동이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모든 오랑캐 종족들의 군주들은 주군께서 제후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누가 감히 겁을 먹지 않고 달려와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우선 동이들을 복종시킨 후에 그들의 힘을 빌려 중원의 제후들을 정벌한다면 패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상경으로 있는 공자 목이가 곁에서 듣고 있다가 간했다.

「절대로 불가한 일입니다. 옛말에 적은 일에 큰 재물을 쓰지 않는다고 한 것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지내는 제사는 도리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무릇 제사란 사람을 위하여 복을 비는 의례인데 사람을 죽여서 복을 빈다면 신은 단연코 제사음식은 앞으로 받아먹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는 항상 종손이 그 제사의 일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군께서는 오랑캐의 습속에 따라 직접 제사를 지내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수의 수신은 단지 요괴에 불과한 잡신일 뿐입니다. 주군께서는 오랑캐의 잡신에게 오랑캐의 풍속으로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오랑캐보다 어찌 낫다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천하의 제후들 중 누가 우리에게 복종하겠습니까? 제나라 환공이 회맹을 주재하기를 장장 40여 년 동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망한 나라는 다시 세워 주고 후사가 끊어진 나라는 계속 그 뒤를 잇게 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 덕을 천하에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군께서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첫 회맹을 주재하시면서 제후를 죽여 요괴에 눈웃음을 치시고자 하십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그것을 두려워하는 제후들은 우리에게 저항하면서 결코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자탕이 반박했다.

「자어의 말은 이치에 닿지 않습니다. 주군께서 도모하시는 백업(伯業)은 제나라와의 경우와는 입장이 다릅니다. 제환공은 20여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려 이룬 부국강병을 토대로 회맹을 주재했습니다. 그러나 주군께서는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무릇 덕을 베풀어서 일을 이루고자 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며 급하게 공업을 이루고자 한다면 반드시 위엄을 내세워야 합니다. 급하게 해야 할 일과 천천히 할 일을 우선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자신들의 습속을 따르지 않는다면 동이는 장차 우리를 의심하여 따르지 않게 되고 제후들 또한 주군을 두려워하지 않아 명이 서지 않을 것입니다. 중원의 제후들은 우리를 우습게보고 밖의 오랑캐들은 우리를 의심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백업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 주무왕이 은나라 주왕(紂王)의 목을 참수하여 태백기(太白旗)에 걸음으로써 천하를 얻었습니다. 제후의 신분으로써 천자를 죽이고 천하를 얻었는데 어찌 소국의 군주하나를 제사에 쓰지 못하겠습니까? 주군께서 백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증자의 목숨을 반드시 써야만 합니다.」

원래 제후들의 마음을 얻는데 급했던 송양공은 목이의 간하는 말을 듣지 않고 결국은 증자를 끌고와 끓는 물에 삶아 죽였다. 양공은 이어서 사자를 수수와 사수(泗水) 사이의 동이족 군장들에게 보내 모두 수수의 수신에게 지내는 제사에 참석하라고 명했다. 그러나 원래 동이의 군장들은 송양공이 명을 무시하고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증군이 가마솥에 삶겨 죽임을 당하는 광경을 보게 된 등자 영제는 크게 놀라 사람을 보내 본국의 신하들에게 많은 재물을 양공에게 바쳐 자기의 죄에 대한 용서를 빌도록 명했다. 송양공은 영제를 용서하고 석방했다. 조나라 대부 희부기(僖負羈)가 그 군주 공공(共公) 양(襄)에게 말했다.

「송공이 조급하여 죄 없는 사람을 함부로 죽였으니 앞으로 무슨 일인들 이루어지겠습니까? 차라리 귀국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조공공은 회맹이 열리는 땅의 주인 입장에서 제단에 올리기 위한 제물을 충분히 준비해 오지 않아 본국으로 돌아가 다시 오겠다고 사람을 보내 송공에게 전하게 했다. 양공이 듣고 대노하여 사람을 보내 조공공을 책망했다.

「옛날에는 군주들이 서로 상견을 할 때는 말린 고기와 소, 양, 돼지, 각각 한 마리씩을 한 조로 하는 뢰(牢)를 많이 가지고 와서 잔치를 벌려 주인과 손님사이의 우호를 돈독히 했습니다. 우리 송공께서 귀국의 경내에 머무르고 계신지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삼군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주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군주께서는 잘 헤아려 주인의 도리를 행하시기 바랍니다.」

희부기가 곁에 있다가 말했다.

「무릇 공관을 제공하고 희생을 준비하는 일은 국가 간에 군주들을 서로 초빙을 했을 때 행하는 예입니다. 오늘 송군께서 천하의 일을 위해 우리나라의 남쪽 변경지방으로 오셨는데 우리 주군께서는 급히 가서 명을 받느라 시간이 없어 다른 물품들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지금 송공께서 우리가 주인의 예를 갖추지 못했다고 책망하시니 우리 주군께서는 스스로 심히 부끄러워하고 계십니다. 바라옵건대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송공이 보낸 사자가 돌아가자 조공공은 즉시 일행을 데리고 자기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양공이 대노하여 군사들을 움직여 조나라를 정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공자 목이가 다시 송공에게 간했다.

「옛날에 제환공이 회맹을 주재 하던 방법을 살펴보면 열국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자기는 비록 많은 재물과 희생을 가져갔지만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은 제후들을 책망하지 않고 또한 기일을 좀 어겼다고 죽이지도 않았음은 바로 넓은 아량과 남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나라가 비록 무례하지만 주공께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군사를 동원하여 토벌하려고 하십니까?」

양공이 목이의 말을 듣지 않고 공자탕에게 병거300승을 주어 조나라를 토벌하라고 했다. 공자탕이 군사를 이끌고 가서 조나라 도성을 포위했다. 그러나 송나라가 토벌군을 보낼 것이라고 예상한 희부기가 미리 방어할 준비를 철저히 해두었기 때문에 공자탕은 3개 월 동안을 포위하여 공격했지만 조나라의 도성을 도저히 함락시킬 수 없었다. 그때 정문공은 초나라에 들어가 조공을 올리고 장차 노(魯), 제(齊), 진(陳), 채(蔡) 4국의 군주들과 제나라의 경계에 모여 초성왕을 모시고 회맹을 주선하겠다고 청했다. 송양공이 전해 듣고 크게 놀랐다. 하나는 제와 노 두 나라 중에서 한 나라라도 혹시 방백으로 추대되기라도 한다면 송나라로서는 도저히 그들과 맹주자리를 놓고 다툴 수 없게 된다는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공자탕이 혹시 조나라를 공격하다가 싸움에서 패하기라도 한다면 그 예기가 꺾여 제후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여 즉시 명을 발하여 공자탕의 군사를 거두어 들였다. 조공공 역시 송나라가 다시 공격해오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사자를 보내 자기가 지은 죄의 용서를 빌었다. 이후로는 송과 조 두 나라는 서로 싸우지 않고 예전처럼 화목하게 지내게 되었다.

3. 호가호위(狐假虎威)

- 초나라의 위세를 빌려 맹주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송양공 -

한편 송양공의 마음은 오로지 패업을 이루는 데에만 쏠려 있었다. 그러나 작은나라의 제후들은 송양공의 말을 노골적으로 무시했으며 큰나라의 제후들은 오히려 멀리 있는 초나라와 회맹을 맺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속으로 화도 나고 또한 조바심도 들고 해서 공자탕을 불러 대책을 물었다. 공자탕이 말했다.

「지금의 형세에 있어서 나라가 크기로는 제와 초 같은 나라는 없습니다. 제나라의 경우는 환공이 죽고 여러 공자들이 내분을 일으켜 경황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내란이 진정된 지가 얼마 안 되어 국세가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나라는 왕호를 참칭한 이래 중원과 통한 지 얼마 안 되어 제후들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주군께서 성의를 다하여 스스로를 낮추신 후에 폐백을 아까워하시지 마시고 후하게 초나라에 보내어 중원의 제후들을 규합하는데 도와 달라고 하면 초나라는 틀림없이 허락할 것입니다. 초나라의 힘을 빌려 제후들을 모이게 한 후에 다시 제후들과 힘을 합쳐 초나라를 제압한다면 이것은 임시변통의 계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자 목이가 듣고 다시 간했다.

「초나라가 무슨 이유로 우리를 위해서 제후들을 불러 모이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초나라의 힘을 빌려 제후들을 모이게 한다지만 초나라가 무슨 까닭으로 우리를 위해 힘써 주겠습니까? 이 일이 초나라와의 전쟁을 불러들이지나 않을까 매우 우려됩니다.」

송양공이 목이가 간하는 말을 듣지 않고 즉시 공자탕에게 많은 재물을 주어 초나라에 가서 초성왕을 알현하고 자기의 뜻을 전하게 했다. 초성왕은 공자탕이 온 뜻을 묻더니 다음해 봄에 녹상(鹿上)⑧의 땅으로 나아가 회맹을 하기로 허락했다. 공자탕이 돌아와 보고하자 양공이 듣고 말했다.

「녹상(鹿上)은 제나라의 땅이라⑨ 제후(齊侯)에게 먼저 알려야 할 것이다.」

양공은 다시 공자탕을 제나라에 수호사절로 보내 초왕과의 약속한 회맹의 일을 설명하여 참석을 권유했다. 제효공은 옛날 입은 은혜도 있고 해서 흔쾌히 참석을 허락했다. 그때가 주양왕 11년인 기원전 640년의 일로서 송양공이 군위에 오른 지 11년 째 되는 해였다.

다음 해 봄 정월에 송양공이 먼저 녹상의 땅에 당도하여 회맹을 하기 위해 제단을 쌓고 제와 초 두 나라의 군주들을 기다렸다. 다음 달 2월 초순에 제효공이 회맹장에 도착했다. 송양공은 효공을 도와 제후의 자리에 앉힌 공이 있음을 자부하여 상견례를 올릴 때 얼굴에 거만한 기색을 띄웠다. 효공도 역시 송양공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여 녹상의 땅 주인으로써의 예를 다하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했다. 다시 20여 일이 지나자 초성왕이 당도했다. 초왕이 송과 제 두 나라의 군주와 함께 자리를 같이 하게 되자 서로의 서열을 작위에 따라 정했다. 초나라가 비록 왕호를 참칭하고 있지만 실은 그들의 작위는 자작이었기 때문에 공작의 작위를 갖고 있던 송공이 맨 앞에 서고 다음에 후작국인 제후가, 마지막으로는 초왕이 서게 되었다. 그것은 송양공이 주장하여 정해진 순서였다. 회맹을 하기로 한 날짜가 되자 다 같이 제단에 올라가서 양공이 당당히 나서서 회맹을 주재하고 자기가 먼저 소머리의 귀를 잡으면서 전혀 겸양의 뜻을 보이지 않았다. 초성왕이 마음속으로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여 내키지 않았으나 어쩔수 없이 희생의 피를 얼굴에 바르는 삽혈의 의식을 행했다. 양공이 두 손을 맞잡고 높이 올리면서 인사를 하며 말했다.

「황공하게도 주왕실로부터 손님으로써의 예우(禮遇)를 받아 그 결과 과분하게 높은 작위에 봉하여진 선대의 후예이나⑩ 베푼 덕은 적고 나라의 힘은 미약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하를 위하여 맹회를 크게 한번 열고자 하는 마음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말로만으로는 천하 제후들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까 우려하여 두 군주의 태산같은 위세를 빌려 제후들을 금년 가을 8월을 기한으로 하여 우리 송나라 땅인 우(盂)⑪땅으로 불러 회맹을 모임을 갖을까 합니다. 만약에 군주들께서 앞장서서 제후들을 이끌고 와서 회맹에 참여시켜만 주신다면 과인은 원컨대 자자손손이 형제와 같은 돈독한 우호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선조가 세운 은조(殷朝)가 망한 이후로, 주무왕으로부터 제후에 봉해지는 은혜를 입은 것은 어찌 과인에게만 해당되는 일이겠습니까?」

이어서 송양공이 형제의 의를 맺자고 두 군주들에게 제안하자 제효공은 두 손을 높이 들어 읍을 하며 초성왕에게 미루며 사양했다. 초성왕도 또한 두 손을 높이 들어 읍을 하며 제효공에게 다시 사양했다. 두 군주가 서로 밀며 사양하는 바람에 시간이 오래도록 결말이 나지 않았다. 양공이 기다리다 못해 말했다.

「두분 군주들께서 만약 저의 뜻을 저버리지 않으신다면 청컨대 이곳에다 서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양공이 목간을 가져오게 하였으나 작위의 순위가 높은 제효공을 뒤로 하고 초성왕에게 먼저 청하여 회맹의 증거로 서명하게 했다. 제효공은 송양공의 처사에 불쾌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초성왕이 눈을 들어 양공이 건내 준 목간을 살펴보니 목간에는 지금 참석한 세 사람의 군주들이 여러 제후들을 규합하여 회맹을 하기로 하고 그 방법은 제환공이 군사를 동원하지 않고 문관들만 데리고 행한 의상지회(衣裳之會)를 본받는다고 써 있었다. 초성왕이 마음속으로 비웃으며 양공에게 말했다.

「군주께서 직접 제후들을 불러 참석시키면 될 일인데 하필이면 과인보고 서명을 하라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송양공이 대답했다.

「정과 허 두 나라는 군주 전하의 휘하에 있게 된지 이미 오래고 진과 채 두 나라는 근자에 이르러 다시 제나라와 동맹을 맺었으니 두 분 군주 전하의 보살핌을 받지 않고는 천하의 제후들이 회맹의 자리에 임하지 않을까 걱정하여 이렇게 상국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제후께서 먼저 서명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과인도 서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효공이 한사코 서명하기를 사양했다.

「과인도 송나라 휘하에 있어 어차피 다른 제후들과 그 처지가 다르지 않습니다. 회맹에 참석하는 일을 달갑게 생각하는 제후들은 상공 작위의 송나라의 위엄만으로도 영을 세울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태어 과인의 서명까지 필요하겠습니까?」

초성왕이 웃으면서 붓을 건네받아 먼저 서명하고 그 붓을 효공에게 건네려 하자 효공이 한사코 사양하며 말했다.

「초나라가 서명을 했으니 제나라는 서명을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과인은 수많은 풍파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사직을 끊어지게 하지 않고 지킬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인이 삽혈을 고사하는 이유는 이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어찌 지금 와서 우리 제나라의 이름이 무겁게 되었다고 만족하여 감히 상국의 군주님들과 같이 과인의 이름을 올려 이 목간을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제효공은 끝내 서명하지 않았다. 효공의 심사를 말하자면 송양공이 자기를 제치고 작위의 서열이 자기보다 아래인 초성왕에게 먼저 목간을 내밀어 서명을 청한 행위는, 양공이 초나라는 중하게 여기고 제나라는 가볍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송양공의 그런 소행을 불쾌하게 생각한 제효공은 결국은 목간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가 제나라에 은혜를 베풀었다고 스스로 자만한 송양공은 효공이 가슴에 불쾌한 마음을 가지고 한 말을, 오히려 뱃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된 마음이라고 오해하여 초성왕만이 서명한 목간을 거두어 보관했다. 세 나라의 군주가 녹상(鹿上)의 땅에서 다시 수일을 더 지낸 후에 후일에 다시 만나기로 다짐하고 헤어졌다. 염선(髥仙)이 이일을 두고 시를 지어 한탄했다.

제후들은 원래 중화에 속한 나라이거늘

어찌하여 달려가 초나라에 머리를 숙였는가?

오해한 초나라가 같은 뿌리의 중화라고 생각하게 되어

후에 편을 나누어 싸우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諸侯原自屬中華(제후원자속중화)

何用紛紛乞楚家(하용분분걸초가)

錯認同根成一樹(착인동근성일수)

誰知各者有丫叉(수지각자유아차)


4. 伏兵劫盟(복병겁맹)

- 군사를 숨겨와 회맹장을 덮치고 송양공을 사로잡은 초성왕 -

초성왕이 귀국하여 녹상 땅에서 있었던 일을 영윤 자문(子文)에게 상세하게 설명했다. 자문이 듣고 말했다.

「송군이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회맹 증서에 서명을 해 주셨습니까?」

초왕이 웃으면서 말했다.

「과인은 중원에 뜻을 품어 온지 오래이나 아직 그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 매우 한탄하고 있던 중입니다. 오늘 송공이 의상지회(依裳之會)를 열려고 하니, 과인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제후들을 규합할 수 있으니 이것 또한 바라던 바가 아니겠습니까?」

대부 벼슬을 하고 있던 성득신(成得臣)이 나와서 말했다.

「송공이란 사람은 허명만을 쫓고 실익을 구하지 못하는 위인이라 사람을 너무 가볍게 믿고 지혜가 부족합니다. 만약에 군사를 몰래 끌고 가 매복시켰다가 덮치면 쉽게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대의 말은 과인의 뜻과 같도다!」

자문이 이의를 달았다.

「회맹을 하기로 허락해 놓고 다시 군사를 매복시켜 사로잡으면 다른 제후들이 초나라가 신의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어찌 천하의 제후들을 복종시킬 수 있겠습니까?」

성득신이 말했다.

「송공이 회맹을 주재하는 일을 즐겨 하니 이것은 반드시 다른 제후들을 얕보는 오만한 마음에서입니다. 아직 맹주로써 행세하는 송군에 대해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은 제후들은 진심으로 회맹에 참여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선 송공을 사로잡아 우리 초나라의 위엄을 세상에 보이고 그리고 석방한다면 우리 초나라의 덕을 천하에 알릴 수 있습니다. 제후들은 무능한 송공을 맹주로 받들어야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치욕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리되면 우리 초나라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무릇 작은 신의에 집착하면 큰 공을 놓치게 된다고 했습니다. 영윤의 생각은 좋은 계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문이 성득신의 말에 동의했다.

「자옥(子玉)의 계책은 매우 훌륭하여 신도 도저히 그의 생각을 따를 수 없습니다.」

자옥은 성득신의 자다. 초성왕이 즉시 성득신과 투발(鬪勃) 두 사람을 대장으로 삼아 각기 용사 500명씩을 선발하여 송나라에서 열리는 회맹을 습격하기 위하여 조련을 시켰다.

한편 송양공은 녹상에서 회합을 끝내고 귀국하여 얼굴에 기쁜 기색을 띄우며 공자 목이를 향하여 말했다.

「초나라가 이미 우리를 위해서 제후들을 회맹에 불러 주기로 약속 했습니다.」

목이가 듣고 간했다.

「초나라는 남쪽 오랑캐의 나라라 그 속마음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주군께서 초왕의 허락을 얻으셨다 하지만 아직 그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은 주군께서 속임을 당하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됩니다.」

「자어(子魚)는 매사에 너무 소심합니다. 과인이 충심으로 사람들을 대하는데 어찌 사람들이 나를 속일 수 있단 말입니까?」

송양공은 목이가 간한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이어서 격문을 써서 회맹을 연다고 제후들을 소집했다. 동시에 사람들을 우(盂) 땅에 보내 제단을 쌓고, 제후들이 머물 수 있게끔 공관을 수리하고 또한 숙소가 부족하게 되는 경우를 걱정하여 증축했는데 그 화려함은 이루 다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창고에는 식량과 목초를 가득 채워서 각국의 군마가 당도하면 사용하도록 했다. 모든 것은 각국의 제후들과 수행원들을 위하여 잔치를 벌려 접대하기 위해서였으며 하나같이 모두 후하게 행하게 하고 미리 준비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해 가을 7월이 되자 양공이 우 땅의 회맹장으로 가기 위해 수레를 준비하라고 명했다. 목이가 다시 간하며 말했다.

「초나라는 그 세력이 강하나 신의가 없는 나라입니다. 청컨대 가시려거든 군사들을 대동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

「과인과 제후들이 약속하기를 회맹을 의상지회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만약 군사를 끌고 간다면 내가 스스로 한 약속을 스스로 버리게 되는 경우가 되니 훗날 사람들이 신의가 없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주군께서는 수레를 타고 가셔서 신의를 지키십시오. 저는 병거 100승을 몰고 뒤따라가서 회맹의 장소에서 3리 떨어진 곳에 매복하고 있다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군사를 경이 데리고 가는 것이나 내가 직접 데리고 가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절대 불가합니다.」

이윽고 회맹장으로 출발할 날자가 되자 송양공은 목이가 나라 안의 군사를 일으켜 회맹을 위협하여 자기로 하여금 신의를 잃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그를 회맹장에 데려가려고 했다. 목이가 양공을 향해 말했다.

「신 역시 주공만을 회맹장에 홀로 보내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 역시 동행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송나라는 군주와 신하가 같이 회맹에 참가하게 되었다. 초(楚), 진(陳), 채(蔡), 허(許), 조(曹), 정(鄭) 등의 여섯 나라의 군주가 회맹을 하기로 한 날이 되자 차례로 우 땅에 당도했다. 다만 아직도 송공에 대한 감정이 풀리지 않은 제효공과 아직 초나라와 통호를 하지 않은 노희공 등의 두 군주는 회맹에 참석하지 않았다. 양공이 손님을 접대하는 관리인 후인(候人)을 시켜 육국의 군주들을 영접하게 하고 새로 지은 공관에 나누어 들게 하여 휴식을 취하게 했다. 후인이 돌아와 양공에게 고했다.

「육국의 제후들은 모두가 수레를 타고 왔습니다. 특히 초왕은 매우 많은 시종들을 데리고 왔는데 역시 모두가 수레를 타고 왔습니다.」

양공이 듣고 말했다.

「초왕이 나를 속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송양공은 태사에게 점을 치게 해서 회맹의 의식을 행할 길일을 택한 후에 각국의 제후들에게 전하여 알렸다. 회맹의 의식을 거행할 날짜가 가까워지자 양공이 미리 단상에서 의식을 집행할 사람 등을 정하게 했다. 드디어 회맹의 날이 되자 북소리가 다섯 번 울리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제단에 위와 아래에 거대한 촛불을 켜서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다. 제단의 곁에는 별도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여 양공이 먼저 나와 그곳에서 대기했다. 이어서 진목공(陳穆公) 곡(縠), 채장공(蔡庄公) 갑(甲), 정문공(鄭文公) 첩(捷), 허희공(許僖公) 업(業), 조공공(曹共公) 양(襄) 등의 다섯 사람의 제후들이 차례로 회맹장에 당도했다. 여러 제후들이 휴식을 위한 장소에서 얼마간을 기다리는 동안 날은 어느덧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초성왕 웅운(熊惲)이 회맹장에 당도했다. 송양공이 회맹이 열리는 땅의 주인 된 사람의 예로써 양손을 높이 올려 여러 제후들에게 읍을 했다. 이어서 제후들은 좌우로 나뉘어 계단을 밟고 제단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왼쪽 계단으로는 주인 격에 해당하는 송양공이 올라가고 오른쪽 계단으로는 손님에 해당하는 여러 제후들이 올라가는데 여러 제후들이 감히 초성왕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성왕으로 하여금 앞장서서 올라가도록 양보했다. 성득신과 투발 두 장군이 서로 초왕의 뒤를 따라 같이 올라갔다. 여러 제후들도 역시 데리고 온 신하들과 같이 성왕의 뒤를 따라 제단 위로 오르고 왼쪽 계단으로는 송양공과 목이 두 사람이 올랐다. 계단을 통해 제단에 오른 제후들은 즉시 손님과 주인의 신분을 따져 맹단(盟壇) 위로 나아가 희생을 죽여 받아 논 쟁반의 피를 얼굴에 바르고 하늘에 맹세했다. 이어서 각 제후들의 이름을 죽간에 올린 다음 드디어 맹주를 뽑아야 할 순서가 돌아왔다. 송양공은 오로지 초왕이 입을 열어 자기를 지명해 주기만을 기다렸지만 초왕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과 채 두 나라 군주들도 얼굴만 서로 쳐다볼 뿐 감히 먼저 말을 꺼내려고 하지 않았다. 양공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머리를 꼿꼿이 들고는 말을 먼저 꺼냈다.

「금일의 행사는 과인이 죽은 제환공이 이룩한 백업을 이어 받아 주왕실을 받들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며, 군사들은 쉬게 하여 전쟁을 종식시킴으로서 천하의 제후들과 함께 태평성대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여러 군주님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알고 싶습니다.」

제후들이 양공의 물음에 미처 답하기 전에 초왕이 몸을 꼿꼿이 세우더니 앞으로 나와 말했다.

「군주의 뜻은 대단히 훌륭합니다. 단지 오늘 회맹의 맹주는 누가 되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공이 있으면 그 공의 많고 적음에 따라 맹주를 세우고 공이 없으면 작위의 높고 낮음을 따져 세우면 되지 무슨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과인은 작위를 왕으로 한지 매우 오래되었소. 송은 작위가 비록 상공에 이르지만 왕의 대열에 낄 수는 없소. 작위가 제일 높은 과인이 맹주가 되기로 하겠소!」

초성왕이 말을 마치자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제후들의 맨 앞줄에 와서 섰다. 목이가 양공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그에게 잠시 참고 기다리다가 다시 대책을 세우자고 했다. 송양공은 맹주의 자리를 손바닥 안에 잡고 있다가 졸지에 형세가 바뀌어 날아가 버렸다고 생각하여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슴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자 얼굴색이 변하더니 목소리를 높여 큰 소리로 말했다.

「과인이 선대로부터 복을 물려받아 상공의 대열에 끼게 되는 과분한 대접을 받아 왔으며, 주나라 천자도 역시 우리 송나라를 손님의 예를 갖추어 대하고 있습니다. 귀군의 작위가 이곳에서 제일 높다고는 하나 그것은 스스로 만들어서 부르는 호칭이 아니오? 어찌 가짜 왕호가 진짜 상공 위에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대의 말대로 내가 가짜 왕이라면 누가 그대에게 과인을 청하게 하여 이곳까지 오게 만들었는가?」

「귀군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는 지난번 녹상의 회맹 때의 논한 바에 따랐을 뿐이지 과인이 마음대로 약속한 것은 아니오.」

성득신이 초왕 곁에 있다가 큰소리로 말했다.

「오늘의 일을 여러 제후들에게 한번 물어 봅시다. 여러 제후 분들이 여기 오신 것은 초나라의 부름을 받고 오셨습니까? 아니면 송나라의 부름을 받고 오셨습니까?」

평소에 초나라의 위세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진(陳)과 채(蔡) 두 나라 군주는 입을 열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들이 초나라의 부름을 받았는데 어찌 감히 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초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송군께서는 달리 하실 말이 있으십니까?」

송양공은 자기를 편들어 줄 제후들은 한 사람도 없고 또한 그들과 도리를 따져 봐야 아무도 잘잘못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윽고 그는 회맹장에서 몸을 빼어 위험을 벗어나려는 궁리를 해 봤으나 그것 또한 자기 주변에는 단 한 명의 호위병도 없어 어쩔 줄 모르며 망설이고 있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성득신과 투발이 입고 있던 예복을 벗어 던져 안에 껴입고 있던 갑옷을 드러내고, 허리에 꽂고 있던 붉은 기를 꺼내어 제단아래를 향하여 몇 번 좌우로 흔들었다. 그것을 신호로 초왕을 따라 왔던 천 명도 넘는 수많은 수행원들이 모두가 겉옷을 벗어 던지고 안에 입고 있었던 갑옷을 밖으로 들어 내며 손에는 숨겨 두었던 무기를 들고 벌떼처럼 제단위로 뛰어 올라왔다. 각국의 제후들은 모두가 놀라 혼비백산했다. 성득신이 먼저 송양공이 움직이지 못하게 두 소매를 단단히 붙들었다. 투발은 여러 무장병들을 지휘하여 단상에 늘어져 있는 옥백(玉帛)과 제사를 지내는 그릇 및 여러 가지 기구들을 걷어 들이게 했다. 회맹의 의식을 행하기 위하여 파견된 송나라의 일반 관리들은 어지러이 달아나기에 바빴다. 송양공은 자기 곁에 바싹 붙어 따라 다니는 공자 목이를 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내가 경의 말을 듣지 않아 이 지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과인은 염려하지 말고 속히 이곳을 빠져나가 나라를 지키도록 하십시오.」

목이가 양공의 곁에 따라다녀 봐야 별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고 주위가 혼란한 틈을 타서 그곳을 빠져 나왔다.

< 34회로 계속 >


주석

①우수(牛首)/ 지금의 하남성 개봉시 남 통허현(通許縣) 경내

②영가(永嘉)/서진 왕조의 연호로 기원 307-313년이다. 서진의 회제(懷帝) 사마치(司馬熾)의 연호이다. 회제는 서진(西晉)을 세운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의 여섯 아들 중 막내이다. 서진은 무제가 죽자 그의 형제와 아들들인 8왕이 란을 차례로 일으켜 16년간 내란 상태가 계속되었다. 내란이 진행되는 과정에 8왕들은 변방의 이민족들을 끌어들이게 된 결과가 되었다. 그중 흉노족이 세운 한(漢)의 유총(劉聰)이 서진을 공격했다. 갈족 출신의 한의 장군인 석륵(石勒)이 기원 313년 서진의 도성인 낙양성을 함락시키고 회제를 죽였다. 이을 영가의 란이라고 한다. 석륵이 회제의 형인 민제(愍帝) 사마안(司馬晏)을 서진의 황제로 세워 그 명맥이 몇 년간 더 유지되었으나 이때 사실상 서진 왕조는 끝났다고 볼 수 있다.

③천하대란(天下大亂)/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과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시작을 말하며 이로부터 수문제(隋文帝)가 세운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서기 581년까지 약 270년 간 중국의 다섯 이민족이 양자강 이북에서 흥망성쇄를 이루고 후에 전연(前燕), 전진(前秦), 후위(後魏), 북주(北周), 북제(北齊) 등의 북조(北朝)와 서진(西晉)의 세력이 남진하여 세운 동진(東晋)과 그 뒤를 이은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의 남조(南朝)라 하여 이 시대를 남북조시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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