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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회. 計逐慶封(계축경봉) 弑侄簒奪(시질찬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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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6,420회 작성일 04-05-1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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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회 計逐慶封 弑侄簒奪(계축경봉 시질찬탈)

계략을 써서 경봉을 쫓아내 제장공의 원수를 갚은 노포계와

조카를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초영왕

1. 王子晉成仙(왕자진성선)

-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른 주나라 왕자진 -

한편 주영왕(周靈王)의 장자는 이름이 진(晉)이라 하고 자는 자교(子喬)라 했는데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총명하고 생황을 잘 불었다. 왕자진(王子晉)이 생황을 불 때면 봉황이 날아들어 우는소리를 내고 돌아 다녔다. 영왕은 그를 태자로 세웠다. 그의 나이가 17세가 되었을 때 이락(伊洛)①으로 놀러 나갔다 돌아오던 길에 죽었다. 영왕이 매우 애통해 하였다. 어떤 사람이 와서 영왕에게 고했다.

「태자가 구산(緱山)② 고개 마루에 백학을 타고 내려와 생황을 불며 그곳 사람에게 말하기를 ‘나는 천자의 자리를 마다하고 부구공(浮丘公)③을 따라가서 숭산(嵩山)④에 같이 살고 있는데 내 마음이 매우 즐거우니 나로 인해서 너무 슬퍼하지 마시라고 부왕에게 전하시오.’ 라고 했습니다.」

― 부구공(浮丘公)이란 황제(黃帝)와 함께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 상의 사람이다.― 주영왕이 사람을 시켜 왕자진의 무덤을 파 확인하게 했는데 과연 관 안에는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영왕은 곧 태자가 신선이 되어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게 되었다. 주영왕 27년 기원전 545년에 영왕이 잠을 자다가 태자가 학을 타고 와서 자기를 맞이하려는 꿈을 꾸었다. 그는 잠에서 부지 간에 깨어났으나 꿈속에서 들은 생황 소리는 창 밖에서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영왕이 말했다.

「태자가 나를 맞이하려 하니 내가 마땅히 가야 되겠구나!」

주영왕은 즉시 왕위를 둘째 아들 귀(貴)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기고 아무런 병도 걸리지 않고 잠결에 세상을 떠났다. 영왕의 뒤를 이어 왕자 귀가 즉위하였다. 이가 주경왕(周景王)이다.

그 해에 초나라 강왕(康王)이 죽었다. 영윤 굴건이 군신들과 상의하여 강왕의 어린 아들 웅미(熊穈)를 추대하여 왕으로 세웠다. 그리고 얼마 후에 굴건도 역시 죽었다. 공자위(公子圍)가 굴건을 대신하여 초나라의 영윤이 되었다. 공자위는 강왕의 동복동생으로 웅미에게는 숙부였다.

2. 경봉독상(慶封獨相

- 최저를 숙청하고 제나라 정권을 멋대로 휘두른 경봉 -

한편 최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경봉은 제나라의 재상을 혼자 차지하고 국정을 전단하면서 한층 더 황음하고 방자하게 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노포별의 집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노포별이 그의 처를 나오게 하여 경봉에게 술을 따르게 했다. 노포별 아내의 미색에 매혹된 경봉은 곧이어 그녀와 사통하게 되었다. 경봉은 국정을 모두 그의 아들 경사(慶舍)에게 맡겨 놓고 그의 처첩과 재물들을 전부 노포별의 집에 옮기도록 했다. 경봉은 노포별의 처와 매일 밤마다 잠자리를 같이 잤다. 아내를 경봉에게 빼앗긴 노포별 역시 경봉의 처첩들과 정을 통했다. 두 사람이 한 집에 살면서 아무 것도 꺼리지 않고 자기들 마음내키는 대로 했다. 하루는 경봉과 노포별이 그들의 처첩들과 한자리에 모여 술을 마시며 서로 희롱하며 놀다가 이윽고 모두가 술에 취하자 못하는 짓들이 없이 소란을 피웠다. 좌우에 시중들던 사람들이 그들의 짐승과 같은 짓을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경봉과 노포별은 그 일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노포별이 기회를 보아 그의 형 노포계(盧蒲癸)를 노나라에서 불러 주기를 경봉에게 청했다. 경봉이 허락했다. 노포계가 돌아오자 경봉은 그에게 경사를 받들라고 했다. 경사는 완력이 뛰어난 장사였다. 노포계 역시 힘이 센 장사이고 또한 경봉에게 아첨을 잘하여 경사가 이윽고 노포계를 총애하게 되었다. 경사가 그의 딸 경강(慶姜)을 노포계에 주어 사위로 삼았다. 두 사람은 옹서지간이 되어 경봉은 노포계를 한층 더 총애하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노포계는 오로지 장공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 마음뿐이었으나 자기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어느 날 경사와 함께 사냥을 하던 중에 노포계가 왕하(王何)의 무용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경사가 듣고 물었다.

「지금 왕하는 어디에 있는가?」

「거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경사가 왕하를 불러오게 했다. 왕하도 제나라에 돌아와 경사를 모시게 되었다. 왕하 역시 경사의 총애를 받았다. 경봉이 옛날 최저와 함께 반란을 일으킨 이래로 사람들이 자기를 암살하지나 않을까 항상 두려워했다. 그가 집밖으로 나갈 때는 반드시 자기가 믿는 심복 장사들을 과를 들고 따르게 하여 앞뒤에서 호위를 받았다. 경사도 그 아버지의 행동을 본받아 따라하고 있었다. 노포계와 왕하 두 사람을 총애한 경사는 두 사람으로 하여금 과를 들게 하여 자기를 앞뒤에서 호위하게 하고는 다름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게 했다.

옛날에 공경대부의 밥상에는 매일 의례적으로 닭 한 쌍을 잡아서 올려야 되는 법이 있었다. 그 때 제경공은 원래 닭발을 매우 좋아했다. 경공은 식사 때마다 공경대부들을 초청하여 수천 개의 닭발을 소비하였다. 공경대부들의 집에서도 경공의 식사법을 본받아 모두가 닭발을 음식 중에 최고로 생각하게 되었다. 닭 값이 폭등하여 궁중 요리사는 궁실의 음식을 준비하는데 옛날의 경비로는 같은 수의 닭을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리사는 궁리 끝에 경씨부를 찾아가 궁중의 음식비용을 늘려 달라고 청했다. 노포별이 경씨들의 잘못된 점을 부추기려는 마음으로 경사에게 음식비용을 올려 주지 말라고 하면서 궁실의 요리사에게 말했다.

「주공에게 바치는 음식은 허락된 비용 내에서 전부 그대가 알아서 하면 될 일이지 하필이면 비싼 닭만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궁실 요리사가 할 수 없이 오리를 사서 요리해 바쳤다. 궁중의 주방에서 일하던 비복들이 오리고기 요리는 경공의 수라상에 올라가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그 고기를 훔쳐 먹게 되었다. 그날은 자를 각각 자미(子尾)와 자아(子雅)라고 부르던 대부 고채(高蠆와 란조(欒竈)가 경공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올라온 음식을 살펴보았다. 음식 중에 닭고기는 없고 단지 살을 다 발라먹고 남은 오리 뼈만 있었다. 두 사람이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서 말했다.

「경씨 놈들이 국정을 맡더니 심지어는 공궁의 음식비용까지 깎는 구나! 어찌 이렇게 까지 우리를 기만하는가!」

두 사람이 음식을 먹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물러가 버렸다. 고채가 가서 경봉에게 따지려고 하였으나 란조가 말렸다. 어떤 사람이 이일을 경봉에게 전했다. 경봉이 노포별을 불러 말했다.

「자미와 자아가 나에게 매우 노해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그 놈들이 어찌 감히 노한단 말입니까? 죽여 버리면 그만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노포별이 그 일을 그의 형인 노포계와 상의했다. 다시 노포계가 왕하를 불러 계략을 꾸미며 말했다.

「고씨와 란씨 두 집안이 경씨들과 틈이 벌어졌으니 우리가 고채와 란조를 돕도록 합시다.」

왕하가 밤이 되어 아무도 몰래 고채의 집을 찾아 접견을 청해 경씨들이 고씨와 란씨 두 집안을 공격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말했다. 고채가 크게 노하며 말했다.

「경봉이란 놈은 실은 최저와 공모하여 장공을 시해한 놈이다. 오늘 최씨가 이미 멸족되어 이제는 경씨들만 남아 있는데 내가 마땅히 장공을 위해 원수를 갚아야 되겠다.」

「대부의 말씀은 이 왕하의 뜻과 같습니다. 대부께서는 밖에서 도모하시고 이 하와 노포 형제는 안에서 도모한다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3. 계축경봉

- 계략을 꾸며 경봉 일당을 축출한 노포계 -

고채가 은밀히 란조를 만나 상의하여 기회를 기다리다가 일제히 일어나 경씨들을 공격하기로 했다. 그밖에 제나라의 어진 신하들인 진무우(陳无宇), 포국(鮑國), 안영(晏嬰)등은 그 낌새를 알고 있었지만 경씨들의 전횡에 분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 일을 경씨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노포계와 왕하가 경씨들을 공격하는데 길흉을 알아보기 위해 점을 쳤다. 점괘가 다음과 같이 나왔다.

虎離穴 彪見血(호리혈 표견혈)

호랑이가 굴을 떠나니, 호랑이 새끼는 피를 흘리는 구나!

노포계가 점을 칠 때 사용한 거북등의 갈라진 모양을 경사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제가 원수들을 공격하기 전에 길흉을 알아보기 위해 점을 쳐봤습니다. 점괘와 함께 점을 칠 때 사용한 거북등을 가져왔습니다. 그 길흉이 어떤지 알 수 있겠습니까?」

경사가 거북등의 갈라진 모양을 보더니 말했다.

「싸우면 틀림없이 이길 수 있겠다. 호랑이와 그 새끼는 부자지간을 말하는 것이라 집을 나가서 피를 본다는 뜻이니 어찌 이길 수가 없겠는가? 원수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고향의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경사가 의심하지 않았다. 그해 가을 8월에 경봉이 족인들인 경사(慶嗣), 경유(慶遺)등을 데리고 동래(東萊)⑤로 사냥을 나가면서 진무우도 동행시키려고 했다. 진무우가 그의 부친인 진수무를 찾아가 출행 인사를 드렸다. 진수무가 아들 무우에게 말했다.

「경씨들이 조만간에 화를 당할 텐데 그들과 같이 출행을 나가서 변이나 당하지 않을까 근심된다. 어찌하여 사양하지 않았느냐?」

「제가 사양하면 의심을 받을 것 같아 감히 사양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에 부친께서 다른 핑계를 대어 저를 부르시어 제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해주십시오.」

경봉의 일행이 사냥터로 떠나가자 노포계가 기뻐하며 생각했다.

「점괘에 ‘호랑이가 그 굴을 떠난다’고 했는데 과연 그 점괘가 맞는 것 같구나!」

곧이어 노포계는 노포별 및 왕하와 함께 비밀리에 고채와 란조와 회동하여 상제(嘗祭)⑥를 올리는 날을 정해 일제히 일어나 경씨 일족들을 공격하기로 했다. 상제(嘗祭)는 천자나 제후들이 4계절에 맞추어 지내는 제사 중에 가을에 지내는 추제(秋祭)다. 진수무가 눈치채고 경봉과 함께 있는 아들 진무우가 함께 화를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사람을 보내 그의 처가 위독하다고 거짓 핑계를 대고 불러오게 했다. 진무우가 경봉에게 자기 모친의 병환이 낳을 수 있는지를 거북점을 쳐 달라고 부탁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진씨와 경씨의 길흉을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다. 경봉이 불에 태워 갈라진 거북등을 보며 점괘를 말했다.

「이것은 멸신(滅身)의 점괘라. 하극상이 일어나 그 비복이 상전을 해치는 괘다. 노부인은 병으로 일어나지 못하겠다.」

무우가 거북등을 받아 들고는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경봉이 측은하게 생각하여 그를 집으로 돌아가게 허락했다. 무우가 수레를 타고 돌아가려는 순간 경사(慶嗣)가 보고 물었다.

「어디를 가는가?」

「모친께서 위독하시어 돌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쏜살같이 말을 몰아 달려갔다. 경사가 경봉을 찾아가 말했다.

「무우가 그의 모친이 병이 들어 위독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도성 안에서 변이 일어 날 것 같습니다. 빨리 돌아가 대책을 세우셔야 합니다.」

「경사가 굳게 지키고 있는데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무우가 임치성을 향해 전속력으로 수레를 달리게 하여 이윽고 치수(淄水)에 당도했다. 치수를 건넌 무는 다리를 부수고 모든 배에는 구멍을 내어 강물에 가라 앉혀 경봉이 돌아오는 길을 끊었다. 경봉은 그때까지도 자기를 몰아내려는 음모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때는 가을 초순도 다 지나가고 거사를 하기로 한 날이 닥쳐왔다. 노포별이 가갑들을 모아 배치해 놓고는 드디어 경씨들을 공격하려는 채비를 갖추었다. 그의 처 경강이 보고 노포계에게 물었다.

「당신이 무슨 일인가를 꾸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하고 상의하지 않으시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노포계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신은 아녀자의 몸인데 어찌 나와 더불어 일을 도모할 수 있겠소?」

「지혜로운 부인의 생각은 남자보다 낫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셨습니까? 주무왕 때 열 명의 신하들이 란을 일으키자 읍강(邑姜)⑦이 한 일을 모르십니까? 어찌 아녀자와는 일을 같이 도모하지 못한다고 하십니까?」

「옛날 정나라 대부 옹규(雍糾)가 정려공(鄭厲公)의 밀명을 받아 제중(祭仲)을 죽이려고 했다가 그의 처 옹희(雍姬)에게 그 계획을 발설하여 자기는 죽고 정려공은 제중에게 쫓겨났었소. 그것은 몇 대를 내려온 큰 교훈이라 할 수 있는데 내가 그리 될까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오!」

「부인되는 사람에게는 그 지아비는 하늘과 같은 존재라 부창부수(夫唱婦隨)는 당연한 일인데 항차 지아비의 명은 중하기가 군명과 같다고 하지 않습니까? 옛날 정나라의 옹희는 그 모친의 말에 혹하여 그 지아비를 해치고 말았는데 그것은 옹희가 규방에서 한 역적질과 같습니다. 하필이면 옹희에 빗대어 말하십니까?」

「만약에 당신이 옹희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어떻게 처신하겠소?」

「능히 행할 수 있으면 도와 드리고 만일에 제가 도와 드릴 수 없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발설하지는 않겠습니다.」

「지금 제후(齊侯)와 백성들은 경씨들의 전횡으로 고통을 받고 있소. 그래서 내가 고씨와 란씨들과 힘을 합하여 경씨들을 몰아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오. 당신은 절대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마시오.」

「제 조부이신 상국이 사냥을 나가 도성에서 멀리 떠나 있는 지금이 거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추제(秋祭)를 지내는 날에 거사할 예정이요.」

「제 친정아버님은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습니다. 또한 주색에 빠져 공사에 태만하십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실을 만들어 마음을 움직이게 하지 않는다면, 추제에 참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는 어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제가 친정에 가서 제사에 참석하지 말라고 하면 아버님은 오히려 제사에 참석할 것입니다.」

「나의 목숨을 당신에게 맡겼으니 당신은 옛날 옹희의 전철을 밟지 말기 바랄 뿐이오.」

경강이 친정에 가서 친정아버지 경사에게 말했다.

「제가 들으니 자아와 자미가 상제를 지낼 때를 이용하여 부친에게 못된 짓을 하려고 한다 합니다. 부친께서는 제사에 나가지 마십시오.」

경사가 화를 내며 말했다.

「고채와 란조 두 놈은 개돼지만도 못한 보잘 것 없는 놈들이라, 그 놈들은 내가 밑에 깔고도 잘 수 있는 자들이다. 누가 감히 란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이냐? 설사 그놈들이 란을 일으킨다 한들 어찌 내가 두려워하겠느냐?」

경강이 집에 돌아와 노포계에게 경과를 말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게 하였다.

이윽고 추제를 올리는 날이 되자 경공이 제사를 올리기 위해 태묘로 향하자 제나라의 모든 대부들이 그 뒤를 따랐다. 경사가 나와 제사를 주관하고 경승(慶繩)이 술을 따라 올렸다. 경씨들이 그들 집안의 가갑을 동원하여 태묘 주위를 동그랗게 둘러싸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경계를 철저히 했다. 노포계와 왕하가 과를 들고 경사의 좌우에 붙어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호위했다. 진씨와 포씨 두 집안의 말을 기르는 사람들 중에 희극을 잘하는 자가 있었다. 진포 집안의 두 어인들을 어리(魚里)라는 길목에 놀이판을 마련하여 재주를 부려 경씨들이 데리고 온 가병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다. 그때 마침 경씨의 가병들이 타고 왔던 말 한 마리가 소란 중에 놀라 달아났음으로 모두가 몰려가 잡아가지고 와서는 모든 말들을 한 곳의 기둥에 묶어 놓았다. 이윽고 놀이판이 벌어지자 경씨의 가병들은 갑옷을 벗어버리고 무기를 내려놓고 앉아서 두 사람이 벌리고 희극을 구경했다. 그러는 사이에 란(欒), 고(高), 진(陳), 포(鮑) 등 네 집안의 가병들이 모두 태묘의 문밖에 모여들었다. 노포계가 소변을 본다는 핑계를 대고 태묘 밖으로 나와 네 집안의 가병들이 약속대로 모두 모였는지를 확인한 후에 그들에게 아무도 몰래 태묘 주위를 몇 겹으로 에워싸게 했다. 노포계가 다시 들어와서 경사의 뒤에 서서 극을 거꾸로 잡아 고채에게 신호를 보냈다. 고채가 알아채고 종인들을 시켜 문짝을 세 번 막대기로 쳐서 신호를 보냈다. 태묘 밖에 대기하고 있던 갑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벌떼처럼 안으로 쳐들어 왔다. 경사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미처 자리를 뜨기도 전에 노포계가 들고 있던 극으로 있는 힘을 다해 그의 등을 찔렀다. 노포계의 극은 경사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다시 왕하가 달려들어 들고 있던 과로 찌르자 경사의 팔이 떨어져 나갔다. 경사가 왕하를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란을 일으킨 놈들이 너희들이었구나!」

경사가 남아 있던 오른 손으로 제사용 항아리를 들어 던지자 왕하가 맞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노포계가 갑사들을 불러 경승을 먼저 잡아오게 하여 죽였다. 로포계와 왕하로부터 몸에 깊은 상처를 입은 경사는 그 고통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남은 한 손으로 태묘의 기둥을 흔들어댔다. 그 바람에 기둥이 심하게 흔들려 태묘 건물이 진동했다. 이윽고 경사가 큰 소리로 한번 절규하더니 숨을 거두었다. 뜻하지 않게 경사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목도하게 된 경공은 크게 놀라 달아나서 몸을 피하려고 하였다. 곁에 있던 안영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 신하들이 주군을 위해 경씨들을 죽여 사직을 안정시키려고 하는 의로운 일입니다. 놀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진정시킨 경공은 제복을 벗어버리고 수레에 올라 내궁으로 돌아갔다. 노포계가 선두에 서서 네 집안의 가갑들과 함께 경씨부로 가서 경씨 일당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주살했다. 그리고 각 성씨별로 성문 하나씩을 맡아 지키게 했다. 경봉이 돌아올 때를 대비해 방비를 엄밀히 하여 철통같이 지키기 해서였다.

4. 善人富賞 淫人富殃(선인부상 음인부앙)

- 선한 사람의 부는 상이고, 악한 사람의 부는 재앙이다. -

한편 경봉은 사냥을 마치고 도성으로 돌아오던 도중에 경사의 집에서 도망쳐 온 가정들을 만나서 도성에서 란이 일어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봉은 그 아들이 상제를 지낼 때 피살되었음을 전해 듣고 대노하여 즉시 도성으로 진격하여 서문을 공격했지만 그 전에 성안에서 사전에 방비를 매우 철저하게 해놓았기 때문에 성문을 결코 깨트릴 수 없었다. 이윽고 시간이 흐르자 경봉을 따르던 군사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경봉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후환이 두려워 노나라로 도망쳤다. 제경공이 노나라에 사자를 보내 역신을 받아 주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노나라 대신들이 경봉을 잡아 제나라로 보내려고 하였으나 경봉이 미리 알고 방향을 바꾸어 오나라로 도망쳤다. 오왕 이매가 경봉에게 주방(朱方)⑧의 땅을 주어 그곳의 수장으로 임명하여 녹봉도 매우 후하게 주었다. 경봉은 제나라에 있을 때보다 더 잘 살게 되어 오나라를 위해 초나라의 동정을 수시로 살폈다. 노나라 대부 자복하(子腹何)가 알고 숙손표(叔孫豹)에게 물었다.

「경봉이 오나라로 도망치더니 제나라에 있을 때 보다 더 잘산다고 합니다. 이것은 도대체 하늘이 그 음탕하고 포악한 사람에게 계속 복을 내리는 연유가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마음이 착한 사람이 부를 얻게 되면 그것은 복이라 할 수 있지만 악한 사람이 부를 얻게 되면 이것은 곧 재앙이라 화가 머지 않아 경봉에게 미칠 것이오. 어찌 그것이 또 다른 복이라 하겠소?」

한편 제나라에서는 경봉이 나라 밖으로 도망쳐 버리자 그때부터 고채와 란조가 정사를 맡아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이 최저와 경봉의 죄를 나라 안에 널리 알리고 경사의 시체를 조당에 전시하여 장공의 넋을 위로했다. 최저의 시체도 찾아 전시하려고 했으나 찾을 수가 없어 방을 붙여 현상금을 걸었다.

「최저의 시체가 묻혀 있는 곳을 아는 자에게는 최씨가 갖고 있던 벽옥을 상으로 주겠다.」

최저의 어인(圉人)이 그 벽옥을 탐내어 즉시 관아에 출두하여 사실을 고했다. 경공이 사람들을 보내 최씨들의 조상묘를 파헤쳐 최저의 시체를 찾아오라고 명했다. 사람들이 최저가 들어 있는 관을 얻어 그 뚜껑을 뜯었다. 관 안에는 두 구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 경공이 두 구의 시체를 같이 시정에 기시하려고 하자 안영이 말리면서 말했다.

「부인의 시체를 기시하는 행위는 예의가 아닙니다. 」

경공은 안영의 말대로 최저의 시체만을 저자 거리에 전시하여 도성 안의 백성들이 모여 구경시켰다.

제나라의 여러 대부들은 최씨와 경씨의 봉읍들을 나누어 가졌다. 경봉의 모든 재산은 노포별이 차지가 되어 자기 집으로 옮겼다. 여러 대부들이 보고 노포별이 경봉과 함께 음란한 짓을 저질렀다고 비난하고 연나라로 추방했다. 노포계 역시 연나라로 추방된 노포별을 뒤따라가 같이 살았다. 경공은 최씨와 경씨 두 집안의 재산들을 따로 거두어 여러 대부들이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진무우 만은 혼자 아무 것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대부들은 상의하여 경씨의 장원에 있던 백여 수레가 넘는 목재를 모두 진무우에게 주기로 했다. 무우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도성 안의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 일로 해서 백성들은 무우의 덕을 칭송하게 되었다.

이 일은 주경왕 원년 즉 기원전 544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음 해에 란조가 죽자 그의 아들 란시(欒施)가 그 부친의 직을 이어 받아 고채와 같이 국정을 맡게 되었다. 고채는 죽은 고후(高厚)의 아들 고지(高止)를 시기했다. 또한 고채는 고후와 함께 자신이 이고(二高)라는 칭호로 대등하게 사람들에게 호칭되었던 일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윽고 고채에 의해 쫓겨난 고지는 연나라로 망명하여 살았다. 고지에 아들에 고수(高竪)라고 있었다. 자기의 부친이 나라 밖으로 추방당하자 고수가 로읍(盧邑)⑨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경공이 대부 여구영(閭邱嬰)을 시켜 군사를 이끌고 가서 로읍을 포위하고 고수를 토벌하라고 명했다. 고수가 사람을 보내 여구영에게 자기의 뜻을 전했다.

「내가 나라에 반역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고씨들의 제사가 끊기지 않을까 걱정하여 군사를 일으켰을 뿐입니다.」

여구영이 고씨들의 후사를 세우고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허락했다. 고수는 군사들을 해산시키고 자신은 당진으로 도망쳤다. 여구영이 돌아와 경공에게 복명하였다. 경공이 즉시 고연(高酀)을 세워 고혜(高傒)의 제사를 지내게 했다. 고채가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원래 여구영을 고수의 토벌군으로 보낸 목적은 고씨들의 후사를 끊기 위해서였는데 한 사람을 쫓아내고 한 사람을 다시 세웠으니 이것은 무슨 경우인가?」

고채는 즉시 사람을 시켜 여구영을 죽였다. 자산(子山), 자상(子商), 자주(子周) 등 제나라의 공자들은 고채의 처사에 대해 모두 불평을 하며 그 지나친 행위에 대해 비난했다. 고채가 듣고 노하여 다른 트집을 잡아 그들마저도 다른 나라로 추방해 버렸다. 제나라의 백성들도 모두 고채를 곱지 않은 눈길로 쳐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고채가 죽었다. 그의 아들 고강(高彊)이 대부의 직을 이었으나 그의 나이가 아직 어려 경으로 세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제나라의 모든 대권은 란시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5. 子産執政(자산집정)

- 자산이 정나라의 집정이 되어 나라를 안정시켰다.

이때 당시는 당진과 초가 통호하여 두 나라 사이에 평화가 찾아와 중원의 열국들도 편안한 날을 보낼 수 있었다. 정나라 대부 양소(良宵)는 자를 백유(伯有)라 했다. 그는 공자거질(公子去疾)의 손자이고 공손첩(公孫輒)의 아들이었다. 양소는 원래 성격이 거만하고 지나치게 사치했을 뿐만 아니라 술을 너무 좋아했다. 항상 밤을 새워 술을 마시기 일쑤였고 더욱이 음주 중에는 다른 사람은 절대 만나 주지 않는 괴상한 버릇의 소유자였다. 양소는 또한 어떤 일에 대해 물어 보는 것도 싫어했기 때문에 땅을 깊이 파서 방을 만들고는 음구(飮具)와 종과 북을 지하실에 비치해 놓고 그 안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셔대곤 했다. 가신들이 와서 아침 문안 인사를 드리려 해도 아무도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낮 시간임에도 술에 취해 입조하여 정간공(鄭簡公)에게 공손흑(公孫黑)을 우호사절로 초나라에 보내야겠다고 말했다. 자사(子駟) 공자비(公子騑)의 아들로 양소에는 당숙이 되는 공손흑은 당시 공손초(公孫楚)와 서오범(徐吾犯)의 여동생을 놓고 다투고 있는 중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행차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양소를 만나서 초나라에 가는 우호사절의 임무를 면하게 해 달라고 청하려고 했다. 공손흑이 양소의 집에 찾아와 만나기를 청하자 집안의 심부름하는 하인이 나오더니 말했다.

「주인님께서는 이미 지하실에 들어가버려 감히 말씀을 올리지 못하겠습니다.」

공손흑이 대노하여 인단(印段)과 함께 자기 집의 가병들을 모두 끌고 나와 밤을 틈타 양소의 집을 포위하고는 불을 질러 모두 태워 버렸다. 술에 취한 양소를 주위 사람들이 부축하여 수레에 태우고는 옹량(雍梁)⑩으로 달아났다. 양소가 술에서 깨어나서 공손흑이 자기를 공격하였음을 알고 크게 노했다. 며칠이 지나자 양소의 가신들이 모두 옹량에 모여들더니 도성 안의 정세를 말해 주었다.

「공손흑이 우리 양씨 집안에 대항하려고 성안의 여러 집안들이 서로 연합하였으나 단지 국씨(國氏)와 한씨(罕氏)들 만은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

양소가 기뻐하며 말했다.

「두 집안이 우리를 도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양소가 즉시 가병들을 거느리고 정성으로 돌아가 북문을 공격하였다. 공손흑이 그의 조카 사대(駟帶)로 하여금 인단과 같이 가병들을 인솔하여 양소를 막게 했다. 양소가 싸움에 패하여 옹량의 양을 잡는 도살장으로 도망쳤으나 공손흑의 가병들에게 잡혀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의 가신들 역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양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자산(子産) 공손교(公孫僑)가 즉시 옹량으로 달려가서 양소의 시체를 붙잡고 통곡을 하며 말했다.

「형제간이 서로 싸워 죽이니, 하늘이여 어찌 이런 불행한 일이 있단 말입니까?」

양소와 그 가신들의 시신을 거두어 모두 렴을 한 후에 투성촌(鬪城村)이라는 시골에 장사를 지내어 주었다.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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