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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회. 諸侯圍齊(제후위제) 計逐欒盈(계축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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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5,825회 작성일 04-05-1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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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회 諸侯圍齊 計逐欒盈(제후위제 계축란영)

제후들은 군사를 합하여 제나라를 포위하고

당진의 세가들은 계략을 꾸며 란영을 쫓아냈다.

1. 참정(慙丁)

- 스승의 스승을 모욕하여 목숨을 잃은 윤공타 -

윤공타는 유공차의 말을 듣지 않고 말머리를 돌려 위헌공의 뒤를 쫓아갔다. 윤공타가 20여 리를 앞으로 달려서야 비로소 위후의 일행을 따라 잡을 수 있었다. 공손정이 윤공타를 향하여 무슨 이유 때문에 다시 뒤를 따라 왔느냐고 물었다. 윤공타가 말했다.

「나의 스승인 유공께서는 그대와 사제지간의 정리를 생각해서 놓아주었다. 나는 곧 유공의 제자라, 그대로부터는 아무런 은혜를 받은 바 없으니 마치 길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어찌 사사로운 정을 이끌려 그 주인에 대한 의리를 저버릴 수 있겠는가?」

「그대가 이미 유공에게 궁술을 배웠다 했으니 그렇다면 유공은 궁술은 누구에게서 배웠는가? 사람으로서 어찌 그 근본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대는 속히 말머리를 돌려 돌아가 사제지간의 좋은 감정을 상하게 하지 말라!」

윤공타가 공손정의 말을 듣지 않고 활에 화살을 재더니 공손정을 향하여 곧바로 당겼다. 공손정이 당황해 하지 않고 잡고 있던 말고삐를 헌공에게 넘겨주고 자기 앞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손을 위로 한 번 올려 가볍게 받아 쥐었다. 공손정은 윤공타가 쏜 화살을 자기의 활에 재어 윤공타를 향하여 다시 쏘았다. 윤공타가 급히 몸을 피하려고 했으나 화살은 이미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왼쪽 어깨에 꽂혀 관통을 해 버렸다. 윤공타가 아픔을 참지 못하고 활을 버리고 달아났다. 공손정이 다시 화살 한 대를 쏴서 윤공타의 목을 꿰뚫어 죽였다. 윤공타를 따라온 수행 군사들이 놀라서 병거도 버리고 달아났다. 헌공이 옆에서 보고 있다가 말했다.

「만약 그대의 귀신같은 활 솜씨가 아니었더라면 과인의 이 한 목숨은 이미 끝났을 것이다.」

공손정이 다시 말 고삐를 잡고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10여 리를 갔는데 다시 후면에 병거 소리가 진동하여 처다 보니 나는 듯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아 자기들을 잡으러 오는 추격군으로 보였다. 헌공이 말했다.

「다시 추격군이 오는 것 같은데 어찌 달아 날수 있을꼬?」

황급한 마음에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뒤따라 달려오고 있던 병거들이 가까이 다가와서 보니 그들은 곧 죽음을 무릅쓰고 어가를 호위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던 헌공의 동모제 공자전(公子鱄)과 그 가병들이었다. 헌공이 비로소 겨우 마음을 놓고 한 달음에 달려 제나라에 당도했다. 제영공(齊靈公)은 위헌공을 래성(萊城)①에 있는 공관에 묵도록 배려했다. 이때가 주영왕 13년으로 기원전 557년, 위헌공 재위 18년째 되는 해였다. 위헌공이 대신들을 예를 갖추지 않고 함부로 대해 스스로 화를 자초하여 군주의 자리에서 쫓겨나 제나라로 망명하게 된 일을 송나라 때 유학자 한 사람이 시를 지어 한탄했다.

군주란 하늘처럼 존귀하고 신과 같이 빛나는 존재인데

무엇 때문에 남의 신하된 자가 감히 군주를 쫓아내는가?

이때부터 군신간의 강령이 없어지게 되었으니

원래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尊如天地赫如神(존여천지혁여신)

何事人臣敢逐君(하사인신감축군)

自是君綱先缺陷(자시군강선결함)

上梁不正下梁蹲(상량부정하량존)

2. 諸侯伐齊(제후벌제)

- 패권에 도전하는 제나라를 정벌하는 제후연합군 -

한편 위헌공을 축출한 손림보는 영식과 상의하여 공자표를 모셔다 위나라 군주로 삼았다. 이가 곧 위상공(衛殤公)이다. 손림보는 사자를 당진에 보내 헌공이 무도하여 쫓아내고 유덕한 공자를 군주로 세웠다는 사실을 고했다. 당진의 도공이 중행언(中行偃)에게 물었다.

「위나라 사람들이 한 사람의 군주를 쫓아내고 다시 한 사람의 군주를 세웠으니 이것은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어찌 처리해야 하겠습니까?」

「위헌공 간(衎)의 무도함은 제후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근자에 위나라의 신하들과 백성들이 스스로 원하여 공자표를 자신들의 군줋 세웠으니 우리는 그저 모르는 척하면 되겠습니다.」

도공은 중행언의 말을 따랐다. 당진의 군주가 위나라의 손림보와 영식에게 그 군주를 쫓아낸 죄를 묻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제영공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당진의 군주가 패주로써의 직분에 매우 태만하구나! 내가 이번 기회를 타서 패업의 뜻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언제 다시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겠는가?」

제영공은 즉시 군사를 동원하여 노나라의 북쪽 변경지방의 성읍(郕邑)②을 포위하고 주변의 땅에서 대대적으로 노략질을 한 후에 귀환하였다. 그때가 주영왕 14년 기원전 558년의 일이었다.

원래 제영공은 처음에 노나라 여인 안희(顔姬)를 부인으로 맞이했으나 그 사이에서 자식을 낳지 못했다. 그래서 안희의 몸종인 종희(鬷姬)를 취하여 아들을 낳아 이름을 광(光)이라 했다. 영공이 광을 태자로 세웠다. 또한 비천한 신분으로써 영공의 총애를 받게 된 비첩(嬖妾)에 이름이 융자(戎子)라고 있었다. 그녀도 역시 아들을 낳지 못했다. 그래서 융자의 동생 중자(仲子)를 취하여 아들을 낳아 이름을 아(牙)라 했다. 융자는 공자아(公子牙)를 자기 자식으로 삼았다. 제영공에게는 다른 희첩의 아들로 저구(杵臼)가 있었지만 공자아 이외는 사랑하지 않았다. 융자가 영공의 총애를 믿고 공자아를 태자로 세워주기를 청하자 영공이 허락했다. 융자의 동생 중자가 영공에게 간했다.

「태자광을 세자로 세운지 이미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쳐 제후들의 회합에 참석하여 서로 인사를 나눈 사이가 되었습니다. 오늘 광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태자의 자리에서 폐한다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게 되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일을 당하실 것입니다.」

「태자를 세우고 폐하는 일은 모두 나의 마음에 달려있음인데 누가 감히 따르지 않는단 말인가?」

영공은 즉시 태자광에게 군사를 이끌고 가서 즉묵(卽墨)③을 지키라고 했다. 태자광이 임지로 출발하자마자 영공은 광을 태자의 자리에서 폐한다는 전지를 내렸다. 공자아를 태자로 새로 세운 제영공은 상경 고후(高厚)를 태부로 삼았다. 또한 용력과 지혜를 겸비한 시인(寺人) 숙사위(夙沙衛)를 소부로 삼아 태자가 된 공자아를 돌보도록 했다. 제나라가 태자광을 폐했다는 소식을 들은 노양공(魯襄公)은 사자를 보내 태자가 무슨 죄를 지어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났는지를 물어 보게 했다. 노나라 사자에게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던 영공은 오히려 노나라가 장차 광을 도와 제나라의 국권을 다투게 만들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영공은 이 일로 해서 더욱 노나라를 원수같이 생각했다. 제나라는 우선 먼저 군사를 보내어 노나라를 위협하고, 후에 광을 죽이려고 했다. 이처럼 영공은 무도하기가 그지없는 위인이었다.

노나라가 사자를 당진에 보내 제나라가 쳐들어와 사태의 위급함을 알렸으나 그때 마침 도공이 병이 들어 노나라를 구할 수 없었다. 그해 겨울에 당진의 도공이 마침내 죽었다. 주영왕 14년 기원전 558년의 일로써 당진의 도공은 15년 동안 재위에 있었다. 당진의 군신들이 세자 표(豹)를 받들어 뒤를 잇게 했다. 이가 당진의 평공(平公)이다. 노나라가 다시 도공의 문상과 평공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하여 숙손표(叔孫豹)를 사절로 보내 제나라의 침략을 고하고 원군을 파병하여 제나라의 군사를 물리쳐 주기를 청했다. 당진의 집정 중행언이 듣고 말했다.

「잠시 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제후들을 모이게 하고 그때 만약 제후(齊侯)가 회맹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제후들의 군사들을 이끌고 토벌하여도 늦지는 않으리라!」

다음 해인 주영왕(周靈王) 15년은 기원전 557년으로 당진의 평공 원년이다. 그 해에 평공은 제후들을 추량(溴梁)④의 땅으로 대거 소집했다. 제영공은 직접 오지 않고 상경 고후를 대신 참석시켰다. 순언이 대노하여 고후를 잡아서 가두려고 하자 그 사실을 미리 알게 된 고후는 중도에 제나라로 도망쳤다. 제영공이 다시 군사를 일으켜 노나라의 북쪽 변경에 쳐들어와 수비하는 군사들을 포위한 후에 그곳을 지키는 수장 장견(臧堅)을 죽였다. 숙손표가 다시 당진에 달려와 나라의 위급함을 고하고 구원군을 청했다. 평공이 중행언에게 명하여 제후들의 군사를 소집하여 당진의 군사들과 합쳐 대거 제나라를 정벌군을 일으키게 했다.

순언이 군사들의 점고를 끝내고 그날 밤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노란 옷을 입은 사자를 보았는데 손에 한 권의 책을 들고서 순언을 붙들어 대질 심문을 하려고 했다. 순언이 사자의 뒤를 따라 가자 이윽고 커다란 대전 밑에 이르게 되었다. 대전의 옥좌에는 몸에 곤룡포를 입고 머리에는 면류관을 쓴 사람이 단정하게 좌정하고 있었다. 사자가 명하여 순언을 붉은 색 섬돌 밑에 꿇어앉게 하였다. 그런데 그곳에는 자기처럼 꿇어 앉은 사람이 많이 있었는데 살펴보니 려공(厲公), 란서(欒西), 정활(程滑), 서동(胥童), 장어교( 長魚矯), 그리고 삼극(三郤) 및 일반 여러 사람들이었다. 순언이 마음속으로 매우 놀랐다. 서동과 삼극이 서로 말다툼을 오랫동안 하는데 그 시시비비가 분명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자 옥졸이 들어와서 삼극과 서동을 데려가고 자기와 함께 남은 사람들은 려공, 란서, 정활 등 네 사람뿐이었다. 려공은 자기가 시해 당한 일의 시말을 말하면서 그 억울함을 상제에게 호소하자 란서가 자기를 변호했다.

「손을 직접 써서 시해 한 자는 정활이지 내가 아니오.」

정활이 말했다.

「모든 일은 란서와 순언의 머리에서 나왔습니다. 나는 단지 그들의 명을 따랐을 뿐이었습니다. 어찌 모든 죄를 저에게만 씌우려고 하십니까?」

대전의 상좌에 앉아 있는 상제가 전지를 내리면서 말했다.

「당시는 란서가 정사를 맡아 하고 있던 때라! 마땅히 그 죄가 맨 앞에 있으니 지금부터 5년 이내에 란씨의 자손을 끊어지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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