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회. 西施入吳(서시입오) 說客子貢(세객자공) > 4부7 오자서

제81회. 西施入吳(서시입오) 說客子貢(세객자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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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4,674회 작성일 04-05-11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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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회 美人西施 說客子貢(미인서시 세객자공)

오왕 부차는 미인계로 보낸 월나라의 서시에 빠지고

자공은 열국을 유세하여 노나라를 전쟁의 위험에서 구했다.

1. 沈魚西施(침어서시)

- 서시의 아름다운 미모에 놀란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다. -

나라 안에서 미녀를 구해 오왕에게 바치려는 월왕 구천의 계획을 들은 문종이 계책을 말했다.

「원컨대 왕의 측근 중에 내시 백여 명을 선발하여 미인을 식별하는 방법을 가르쳐 서로 친한 자들끼리 무리를 짓게 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게 하면서, 미녀들을 발견하게 되면 그 미녀의 이름과 땅 이름을 기록해 놨다가 데려와 그 중에서 선발하십시오. 어찌 나라에 미인이 없다고 걱정하십니까?」

구천이 문종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자 월나라의 안의 미녀에 대한 정황을 모두 파악할 수 있게 되어 필요한 2십 명을 훨씬 넘었다. 구천이 다시 사람을 시켜 좀 더 엄격한 기준으로 미인을 선발하라고 하자 그 중 유난히 뛰어난 용모를 갖춘 미녀가 두 명이 있었다. 화공이 두 미녀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구천에게 바쳤다. 그 두 미녀는 이름이 각기 서시(西施)와 정단(鄭旦)이라 했다. 서시는 곧 저라산(苧羅山)① 자락 밑에 살면서 숯을 구워 팔아 산다고 해서 이름을 채신(采薪)이라고 부르는 시(施)씨 성을 가진 사람의 딸이었다. 저라산 밑자락에 동서의 두 촌락에 시(施)씨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채신이라는 사람은 서쪽 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그의 딸 이름을 서시(西施)라 불렀다. 정단 역시 같은 서쪽 마을에 살았는데 서시의 집 근처의 강가에 살고 있으면서 두 사람이 동무하여 매일 강가에 나와 강물에 옷을 빨았다. 두 사람의 꽃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 서로 번갈아 가며 강물 위에 비치는데 마치 무르익은 한 쌍의 부용과 같았다. 어느 날 그녀는 강변에 나가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강물에 비친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 수중의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천천히 강바닥에 가라앉은 일도 있었다.

구천이 범려에게 황금 백일을 주고 저라산의 서시를 사서 궁궐로 데려오라고 명했다. 채신에게 황금을 주고 서시를 산 범려는 아름답게 무늬를 수놓은 비단 옷을 입힌 후에 화려한 색깔의 휘장을 둘러친 수레에 태워 요란한 행렬로 호송대를 만들어 데려왔다. 오성의 백성들이 두 사람의 미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서로 다투어 한 번 구경하고자 모두 성 밖으로 나와 기다렸다. 구름처럼 몰려든 인파에 길이 막혀 범려의 일행은 앞으로 쉽게 나갈 수가 없었다. 범려가 가던 길을 멈추고 성 밖의 역관으로 들어가 서시와 정단을 머물게 하고 밖에 모인 백성들에게 말을 전하게 했다.

「금전 일 문씩을 바친 사람에게는 미인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

범려는 시자에게 명하여 돈을 거둘 수 있는 궤를 만들어 역관 앞에 놓도록 했다. 삽시간에 궤 안에는 금전으로 가득 찼다. 드디어 두 미인들이 모습을 나타내어 붉은 색을 칠한 누각에 올라 난간에 기대어 밑을 굽어보자 표표한 자태는 마치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처럼 보였다. 미인들이 3일을 오성의 교외에 머무르면서 거두어들인 금전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범려가 모두 거두어 들여 수레에 싣고 가져가 국고에 충당시켰다. 친히 나와 미인을 맞이한 구천은 따로 짓도록 한 대궐에 살게 했다. 이어서 나이를 먹은 악사들로 하여금 두 미녀에게 가무와 걸음걸이를 가르치게 했다. 두 미인이 가무와 예절을 다 배우게 되면 오왕 부차에게 바치기 위해서 였다.

주경왕(周敬王) 31년 기원전 489년으로 구천이 월왕의 위에 오른 지 7년 째 되는 해였다.

2. 田乞立齊侯 開田氏專齊政(절걸립제후 개전씨전제정)

- 전걸이 제도공을 옹립하여 제나라의 정권을 차지할 기반을 만들다. -

그보다 1년 전인 주경왕 30년 기원전 490년 제경공 저구(杵臼)가 죽고 그의 어린 아들 도(荼)가 뒤를 이어 제나라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그 해에 초소왕 진(軫)도 죽고 세자 장(章)이 초왕의 자리에 올랐다. 세자 장이 초혜왕(楚惠王)이다. 그 당시 초나라는 나라 안에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 경황이 없었고 또한 당진은 세족들의 권력 다툼에 정사가 어지러운 상태였다. 제나라에서는 안영이 죽었고 노나라에서는 공자가 다른 나라로 떠나가 버려 모든 중원 나라들은 국세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오로지 오나라만이 국세가 흥하여 천하에 군림했다. 부차가 오나라 군사들의 강함을 믿고 산동의 땅에 눈독을 들이며 호시탐탐 그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열국의 제후들은 모두 부차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제경공이 살아 있을 때 그의 부인 연희(燕姬) 사이에 요(夭)라는 적자를 두었으나 어린 나이로 죽고 다른 공자들은 모두가 서출이었다. 모두 여섯 명의 서출 공자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공자는 양생(陽生)이고, 가장 나이가 어린 공자는 도(荼)였다. 도의 모친 죽사(鬻姒)는 신분이 비천한 노비 출신이었지만 경공의 총애를 받았다. 죽사를 사랑한 경공은 자식인 도도 극진히 사랑하여 안유자(晏孺子)라고 불렀다. 경공이 무려 57년을 재위에 있으면서도 세자를 선뜻 세우지 않은 이유도 안유자가 장성하기를 기다려 그를 세우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든 경공은 자신이 일어날 수 없음을 스스로 알고 그 즉시 제나라의 세신 국하(國夏)와 고장(高張)을 불러 나이 어린 공자도를 보좌하여 자기의 뒤를 잇게 하도록 유명했다. 당시 대부 진걸(陳乞)은 평소에 공자 양생과 친교을 맺고 있었다. 안유자가 제후의 자리에 오르면 양생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걱정한 진걸은 그에게 나라 밖으로 나가 잠시 몸을 피해 있으라고 권했다. 양생은 진걸의 말을 듣고 즉시 그의 아들 임(壬)과 가신 감지(闞止)를 대동하고 노나라로 도망쳤다. 경공이 죽을 때가 되자 과연 국씨와 고씨 두 집안을 시켜 여러 공자들을 래읍(萊邑)으로 쫓아내 감시하도록 했다. 이윽고 경공이 죽자 안유자를 제나라 군주로 세우고 국하와 고장 두 사람이 좌우에서 나라의 정사를 전단했다. 진걸은 겉으로는 그들에게 순종하는 척 했지만 사실은 마음속으로는 그들을 눈에 가시처럼 여겼다. 그래서 진걸은 여러 대부들 면전에서 거짓말로 선동했다.

「국하와 고장 두 사람이 음모를 꾸며 옛날 선군 때의 구신들을 모두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안유자를 따르던 무리들을 앉히려고 합니다.」

여러 대부들이 진걸의 말을 믿고 모두 그에게 달려가 무슨 좋은 수가 없냐고 물었다. 진걸과 포목(鮑牧)이 모의하여 여러 대부들과 함께 가병들을 이끌고 고씨와 국씨의 집을 공격했다. 고장은 살해되고 국하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 거나라로 도망쳤다. 그래서 포목은 우상이 되고 진걸은 좌상이 되었다. 다시 국서(國書)와 고무평(高无平)을 국씨와 고씨의 후사를 잇게 하여 두 종족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했다. 그때 나이가 아직 어린 안유자는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의 말을 쫓을 뿐이었고 스스로 자립하여 행할 수 없었다.

진걸의 마음속에 공자 양생을 도와 제후의 자리에 앉히고 싶은 생각이 있어 아무도 몰래 사람을 노나라에 보내 양생을 데려오도록 시켰다. 아들 임과 가신 감지를 대동하고 밤 시간을 이용하여 제나라의 교외에 당도한 양생은 두 사람은 교외에 머무르게 하고 자신은 단신으로 성안으로 들어가 진걸의 집에 숨었다. 진걸이 거짓으로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핑계를 대고 여러 대부들을 자기 집에 모이게 하여 제사를 지낸 음식으로 잔치를 벌였다. 초청한 대부들이 모두 약속한 시간 전에 당도하였지만 포목만은 그날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신 탓으로 제일 늦게 당도했다. 대부들이 모두 자리에 좌정하자 진걸이 말문을 열었다.

「제가 이번에 매우 견고한 갑옷을 한 벌 새로이 얻었는데 여러분들에게 보여 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 대부들이 모두 말했다.

「한번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힘 센 장사 한 명이 커다란 자루를 등에 짊어지고 집안에서 걸어 나왔다. 장사가 자루를 대청마루 위에 내려놓았다. 진걸이 친히 앞으로 나가 큰 자루의 끈을 풀어 자루를 열자 그 안에서 사람 한 명이 머리를 내밀며 나왔다. 사람들이 보니 바로 공자 양생이었다. 여러 대부들이 놀라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했다. 자루에서 나온 양생을 남쪽을 향해 서게 한 진걸은 여러 대부들을 향해 말했다.

「나라의 후계는 장자로 세워야 함은 고금을 통한 법입니다. 안유자는 아직 어린 나이이니 능히 군주의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늘 포상국의 명을 받들어 제일 나이가 많은 공자를 군주로 받들기를 청합니다.」 포목이 듣고 눈을 부릅뜨더니 진걸을 향해 소리쳤다.

「나는 이 음모와는 전혀 무관한데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무고하는가? 내가 취했다고 이렇듯 속이려고 하는가?」

양생이 포목을 향해 읍을 하며 말했다.

「폐군의 일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법인데 다만 그것이 의로운 일이냐 아니냐일 뿐이오. 대부는 단지 지금 행하고자 하는 일이 의롭냐, 아니면 의롭지 않느냐만 말하시오. 어찌 음모에 무관하다는 말만을 하시오?」

진걸은 양생의 말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포목을 강제로 꿇어 앉혀 절을 올리게 했다. 다른 대부들도 할 수 없이 모두 북면하여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렸다. 진걸은 양생을 제나라 군주로 받들기로 여러 대부들과 같이 삽혈을 한 후에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 진걸과 제나라의 여러 대부들은 수레를 준비하여 양생을 태우고 일제히 조정으로 들어가 제나라의 군주 자리에 앉혔다. 이가 제도공(齊悼公)이다. 안유자는 그날로 궁 밖으로 내보낸 자객을 시켜 죽였다. 처음에 자기가 군위에 오르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포목을 의심하게 된 도공은 진걸을 찾아가 상의했다. 진걸도 역시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포목을 시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진걸은 포목이 래읍으로 쫓겨난 여러 공자들과 친교가 있어 만일 포목을 죽이지 않으면 나라를 안정시킬 수 없다고 참소했다. 그래서 도공은 포목과 그 일가족을 모조리 죽이고 포식(鮑息)만을 살려 두어 포숙아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국인들은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사람을 죽인 도공의 처사를 보고 마음속으로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3. 除狼得虎(제랑득호)

- 이리를 잡기 위해 호랑이를 끌어들여 목숨을 잃은 제도공 -

한편 제도공에게는 일찍이 시집을 가서 주(邾)나라 군주 익(益)의 부인이 된 누이동생이 한 명 있었다. 주자(邾子) 익은 원래 사람됨이 오만무례한 자라 노나라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노나라의 상경 계손사가 노애공(魯哀公)에게 고한 후에 군사를 이끌고 주나라를 정벌했다. 주나라의 도읍을 파한 계손사는 주자 익을 사로잡아 부하(負瑕)②의 땅에 가두어 두었다. 제도공이 대노하여 말했다.

「나의 매제 주자를 잡아간 행위는 노나라가 우리 제나라를 기만한 일이다.」

도공은 즉시 사자를 오나라에 보내 두 나라가 힘을 합하여 노나라를 정벌하자고 청했다. 부차가 기뻐하며 말했다.

「내가 평소에 산동에 군사를 보내 우리의 세력을 한번 과시하려고 했는데 이 일로 내가 명분을 얻게 되었구나!」

부차는 즉시 제나라의 요청을 허락하고 군사를 일으켜 노나라로 출병시켰다. 노애공이 크게 놀라 즉시 주자를 석방하여 자기나라로 돌려보내고 사자를 제나라에 보내 사죄했다. 제도공이 대부 공맹작(公孟綽)을 오나라에 보내 부차에게 감사의 말을 올리도록 했다.

「노나라가 이미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고 사죄를 하니 감히 대왕의 군사들로 하여금 수고를 끼칠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부차가 듣고 노하여 말했다.

「오나라의 군사들이 행군하고 멈추고 하는 일을 제나라가 마음대로 한다면 우리 오나라는 제나라의 속국이 된다는 말이 아닌가? 과인이 친히 제나라에 가서 어찌하여 두 가지 명을 내리게 되었는지 그 연고를 물어 봐야 되겠다.」

부차는 공맹작을 꾸짖어 쫓아 버렸다. 노나라는 오왕 부차가 제나라에 대해 노여움을 품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자를 보내 오나라와 친선을 맺고 오히려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제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부차가 흔연히 허락하여 그 날로 군사를 일으켜 노나라와 힘을 합하여 제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출정하여 제나라의 남쪽 지방을 포위했다. 제나라 백성들은 놀라 혼비백산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도공이 공연히 외적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백성들은 자기들의 군주를 원망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져 갔다. 그때 진걸은 이미 나이가 들어 죽고 그의 아들 진항(陳恒)이 뒤를 이어 제나라의 정사를 맡고 있었다. 진항은 국인들이 도공의 명에 따르지 않는 틈을 타서 포식(鮑息)과 상의했다.

「어찌하여 이번에 대사를 도모하여 밖으로는 오나라의 원망을 해결하고 안으로는 가문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포식이 자기는 그럴 능력이 없다고 사양했다. 진항이 다시 말했다.

「내가 대감을 위해 대사를 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항은 보좌에 앉아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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