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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회. 葉公定楚(엽공정초) 滅吳稱覇(멸오칭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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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4,781회 작성일 04-05-1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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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회 葉公定楚 滅吳稱覇(엽공정초 멸오칭패)

백공 미승을 죽여 초나라를 안정시키는 엽공 심제량과

오나라를 멸하고 중원의 패자가 된 월왕 구천

1. 欲加之罪 何患無詞(욕가지죄 하환무사)

- 죄를 주려고 하는데 핑계거리가 없음을 걱정하랴? -

한편 위장공(衛庄公) 괴외(蒯聵)는 위나라의 부고에 있던 금은보화를 출공(出公) 첩(輒)이 도망갈 때 모두 가져가 버려 혼량부와 함께 상의하여 되찾아오려고 했다. 혼량부가 장공에게 말했다.

「태자 질(疾)과 도망친 출공과는 모두 주군의 자식들입니다.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도망간 망군을 택하여 후사로 정하지 않으십니까? 망군을 부르신다면 그가 달아날 때 가져 간 금은보화들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때 조그만 어린 내시 한 명이 혼량부의 말을 듣고 몰래 태자 질을 찾아가 고했다. 태자질이 장사 몇 명과 함께 돼지 한 마리를 수레에 싣고 장공에게 가서 위협하여 잡은 돼지의 피를 발라 절대로 도망간 출공을 불러들이지 않겠다는 맹세를 강제로 시켰다. 또한 혼량부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맹세도 하게 했다. 장공이 태자질에게 말했다.

「첩을 불러 드리지 않는 일은 쉬우나 량부와 같이 복위를 꾀하면서 내가 맹세하기를 그가 죽을죄를 세 번을 지어도 용서한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그를 죽이겠다는 맹세는 하지 못하겠다.」

「혼량부로 하여금 죽을죄를 네 번 짓게 해서 죽이면 됩니다. 그러니 맹세하십시오.」

장공이 허락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장공이 새로이 호랑이 가죽으로 장막을 세우고 여러 대부들을 불러 낙성식을 행하려고 했다. 혼량부가 자색의 옷을 입고 여우털로 만든 갖옷을 겉에 걸치고 락성식에 와서는 갖옷을 벗더니 허리에 찬 칼을 풀지도 않고 식사를 했다. 태자질이 장사를 시켜 혼량부를 잡아 막사 밖으로 끌로 나갔다. 양부가 항의했다.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는 것이오?」

태자질이 혼량부의 죄를 열거했다.

「신하가 군주를 뵈러 올 때는 항상 관복을 착용하여야 하며 식사를 할 때는 필히 허리에 찬 칼을 풀어놓아야 된다. 그러나 너는 자색의 평상복을 입고 왔으니 그 죄가 하나라! 또한 갖옷을 입었으니 그 죄가 둘이라! 칼을 풀지 않고 식사를 했으니 그 죄가 셋이다.」

혼량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주군께서 내가 죽 죄를 지어도 세 번을 용서하여 주시기로 하셨소.」

태자질이 말했다.

「도망친 군주가 자식의 신분으로 그 부친에게 항거하였으니 그 자는 대역무도하고 또한 불효한 자라. 네가 그런 대역불효한 자를 불러들여 다시 군주로 세우려고 했으니 그 죄가 넷이다.」

량부가 태자질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머리를 길게 내밀고 형을 받았다. 후일에 장공의 꿈속에 머리는 풀어헤치고 북면하여 무서운 귀신으로 변한 혼량부가 나타나 시끄러운 소리로 말했다.

「나는 혼량부다. 나는 원통하게 죽었다.」

장공이 꿈에서 깨어나서 복대부(卜大夫) 서미사(胥弥赦)를 시켜 그 꿈의 길흉에 대해 점을 치게 했다. 서미사가 대답했다.

「그 꿈은 그다지 흉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가 장공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 나와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상반되는 말을 했다.

「원귀가 화를 무섭게 내고 있으니 몸은 조만 간에 죽게 되고 나라는 위급하게 되리라는 징조다!」

그리고 나서는 그는 황급히 송나라로 달아나 버렸다.

괴외가 위후의 자리에 선지 2년이 되도록 당진에 래조를 가지 않아 당진이 노하여 상경 조앙(趙鞅)이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정벌하러 왔다. 위나라 사람들이 장공을 쫓아냈다. 장공은 태자질을 데리고 융국(戎國)으로 달아났으나 융인들이 받아 드리지 않고 태자와 함께 죽였다. 위나라 사대부들이 공자 반사(盤師)를 옹립하여 새로운 군주로 세웠다. 당진군이 물러가자 이번에는 제나라의 진항(陳恒)이 군사를 이끌고 출동해서 반사를 사로잡고 공자기(公子起)를 세우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위나라 대부 석포(石圃)가 공자기를 쫓아내고 다시 옛날 장공에 의해 쫓겨난 출공 첩을 데려와 군위에 복위시켰다. 첩이 환국하고 나서 석포를 쫓아냈다. 출공과의 관계가 나빠진 위나라의 여러 대부들이 출공을 공격했다. 출공은 쫓겨나서 월나라로 도망쳤다. 위나라 대부들은 상의하여 공자묵(公子黙)을 새로 세웠다. 이가 위도공(衛悼公)이다. 이때부터 위나라는 당진에 신하의 예로써 복종하였고 위나라의 국세는 더욱 쇠약해져서 오로지 당진의 조씨들 힘에 의지하게 되었다.

2. 백공란초(白公乱楚)

- 초나라에 내란을 일으키는 백공승 -

한편 초(楚)나라에서는 태자건의 아들 백공(白公) 미승(羋勝)은 오자서의 도움으로 오나라에서 귀국하여 초나라의 변경 지방에 봉지를 받아 살고 있었으나 정나라는 자기 부친을 죽인 원수라는 것을 항상 가슴에 품고 있으면서 그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마음뿐이었다. 단지 백공의 은인인 오자서가 옛날에 정나라를 정벌하다가 이미 그 죄를 용서하였고 지금은 정나라가 오히려 초나라를 섬기고 있는 차제에 감히 자기 부친의 원수를 갚을 수 없어 백공은 어쩔 수 없이 가슴속에 묻어 놓고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기원전 489년 소왕(昭王)이 재위 27년 만에 죽자 영윤 자서(子西)와 사마 자기(子期)는 월녀의 소생 태자장을 받들어 초왕으로 세웠다. 이가 초혜왕(楚惠王)이다. 자신이 태자건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백공승은 자서가 자기를 불러 초나라의 정사에 같이 참여시켜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서는 결국 백공승을 부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봉록도 늘려 주지 않았다. 그래서 백공승은 자서의 처사에 앙앙불락했다. 그런 와중에 오왕이 오자서를 살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백공승이 말했다.

「이제야 부친의 원수인 정나라에 대한 원수를 갚게 되었다.」

그는 즉시 사람을 자서에게 보내 군사를 청하며 말했다.

「정나라 놈들이 나의 부친에게 독수를 뻗쳐 죽인 일은 영윤도 익히 아시고 계십니다. 아비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있는 자를 어찌 사람의 자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영윤께서 만약 무고하게 정나라 놈들에게 돌아가신 저의 부친을 애통하게 생각하신다면 한 떼의 군마를 일으켜 정나라의 죄를 물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승이 앞장서서 종군하여 정나라를 정벌하여 부친의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진실로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자서가 거절하며 백공의 사자에게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우리 초나라는 새로운 왕이 선지 얼마 되지 않아 인심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소! 공은 잠시 때를 기다리기 바라오!」

백공승이 오나라의 침략에 대비한다는 핑계를 대고 가신 중에 심복인 석걸(石乞)을 시켜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어 가병들을 훈련시켰다. 그런 다음 다시 자서에게 청하여 자기의 사병들만을 이끌고 선봉이 되어 정나라를 정벌하겠다고 했다. 자서가 허락했다. 백공승의 군사가 미처 출병하기도 전에 당진의 조앙이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공격하자 정나라는 초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자서가 허락하고 군사를 이끌고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병했다. 당진의 군사들은 초나라가 출병한 소식을 듣고 곧 바로 군사를 거두어 되돌아갔다. 자서가 정나라와 동맹을 맺고 돌아왔다. 백공이 노하여 말했다.

「정나라를 정벌하지 않고 오히려 정나라를 구원하니 이것은 영윤이 나를 심히 기만하는 짓이다. 내 마땅히 영윤을 먼저 죽이고 나서 정나라를 정벌하리라!」

백공은 이어서 풍양(灃陽)에 사는 종인 백선(白善)을 불러 자기의 뜻을 말했다. 백선이 듣고 말했다.

「그대의 뜻을 따르면 나라를 어지럽혀 그 임금에게 불충하게 되고 그대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일신의 사사로움만 따지면 그것은 종족에게 너무 몰인정한 처사라 할 것이다.」

그는 즉시 백공으로부터 받은 관직과 록을 버리고 채소와 약초를 기르며 밭에다 물을 주면서 일생을 마쳤다. 초나라 사람들이 그 밭을 이름하여 ‘백선장군의 약초 밭 (白善將軍葯圃)’이라고 불렀다. 백공은 자기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 백선에 대해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백선이 없다고 해서 영윤을 죽이지 못하겠는가?」

그는 즉시 석걸을 불러 자기의 뜻을 말하며 의논했다.

「그대에게 500명의 장사들을 주면 영윤과 사마를 죽일 수 있겠는가?」

「500명의 장사들로는 두 사람을 죽일 수 없습니다. 초도의 남쪽에 웅의료(熊宜僚)라는 장사가 살고 있습니다. 만약 이 사람을 얻는다면 가히 500명의 장사들과 맞먹을 수 있습니다.」

백공이 즉시 석걸과 동행하여 초성의 남쪽에 살고 있던 웅의료를 만나러 갔다. 웅의료가 크게 놀라 말했다.

「고귀하신 왕손께서 무슨 일로 친히 몸을 굽혀 저를 찾으셨습니까?」

「그대와 함께 대사를 이루고자 함이네!」

백공은 웅의료에게 자기를 기만한 자서를 죽이려는 뜻을 말했다. 웅의료가 듣고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영윤은 나라에 큰공을 세운 분이고 또한 이 의료와는 아무런 원수 진 일도 없어 제가 어찌 감히 죽일 수 있겠습니까? 공의 뜻을 받들 수 없겠습니다.」

백공이 노하여 칼을 뽑아 의료의 목을 겨누며 말했다.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너를 죽이겠다.」

그러나 의료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대답했다.

「이 의료 한 사람을 죽이는 일은 마치 개미 한 마리를 죽이는 일과 같은데 어찌 그리 화를 내십니까?」

백공이 즉시 칼을 땅에 던져 버리고 한탄하며 말했다.

「그대는 진정으로 용사다! 내가 한번 그대를 시험해 봤느니라!」

그는 즉시 웅의료를 자기의 수레에 태우고 돌아와 상빈의 예를 갖추어 음식을 먹을 때나 출입을 할 때나 언제나 행동을 같이 했다. 웅의료가 백공의 은혜에 감격했다. 마침내 그는 백공의 뜻을 받들겠다고 허락했다.

그때 오왕 부차가 중원의 황지에 제후들을 불러 놓고 회맹을 주재하자 초나라가 오나라의 강성함을 두려워하여 변경의 관리들에게 경계를 내려 병장기를 손질하여 오나라의 침략에 대비하도록 했다. 백공승은 오나라가 초나라를 습격한다는 핑계를 대며 거꾸로 오나라의 변경을 습격하여 얼마간의 재물과 포로들을 노획하고 돌아와서는 그것을 대대적으로 과장해서 자랑하며 말했다.

「오나라 군사들을 크게 물리치고 그들의 투구와 병장기들을 노획해 왔습니다. 원컨대 초나라 궁궐의 뜰에서 대왕께 전리품을 바치는 의식을 열어 국위를 높이고자 합니다.」

자서가 백공의 음모를 모르고 허락했다. 백공이 자기 휘하의 무장한 갑병들을 모두 동원하여 수레 백여 승에 노획품을 가장한 병장기들을 가득 싣게 하고 다시 천 명의 장사들을 모두 함거에 실어 오나라의 포로로 꾸며 초도로 압송하여 개선식을 올리려고 했다. 혜왕이 전당에 올라 백공에게서 승전보고를 받고 자서와 자기는 혜왕 곁에 시립했다. 백공승이 왕을 알현하는 의식을 끝내자 혜왕이 전당으로 오르는 계단 밑에 전신을 갑옷으로 무장한 두 사람의 장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백공에게 물었다.

「저 장수들은 누구인가?」

「저의 부하 장수인 석걸과 웅의료입니다. 지난번 오나라를 정벌할 때 공을 세웠습니다.」

이어서 백공이 손을 흔들어 두 사람을 전당으로 올라오라는 신호를 했다. 두 사람이 큰 걸음으로 걷기 시작하여 계단을 막 오르려는 찰나에 혜왕 곁에 서 있던 자기가 보고 큰 소리로 외쳐 꾸짖었다.

「여기는 왕이 계시는 어전이다. 변방을 지키는 장수들은 단지 머리를 조아리는 절만을 허락하고 전당으로는 올라오지 못하게 되어 있다. 빨리 물러가지 못할까?」

석걸과 웅의료가 자기가 외치는 소리를 무시하고 발걸음을 빨리하여 계단을 올랐다. 자기가 왕의 호위무사들에게 명하여 두 사람을 막으라고 했다. 웅의료가 손을 들어 한번 휘젓자 호위무사들은 모두가 양쪽으로 넘어졌다. 그 사이에 두 사람은 번개처럼 전당에 올라섰다. 석걸은 칼을 빼어 들고 자서를 찌르고 웅의료는 자기를 공격했다. 백공이 큰 소리로 외쳤다.

「너희 장사들은 어찌하여 일제히 전당으로 뛰어 올라 싸움을 돕지 않느냐?」

백공이 외치자 함거에 갇혀 있던 척 했던 천명의 장사들은 일제히 수레에 싣고 왔던 병장기들을 집어 들고 벌떼처럼 전당으로 올라왔다. 백공이 혜왕을 붙들어 꼼짝 못하게 했다. 석걸이 격투 끝에 자서를 사로잡아 결박하자 전당에 모여있던 백관들은 놀라 모두 흩어져 달아나 버렸다. 그러나 원래 힘이 센 장사였던 자기는 즉시 전당 뒤에 진열되어 있던 극을 뽑아 웅의료에게 대항하여 싸웠다. 웅의료가 칼을 던져 버리고 자신을 향해 찌르려는 자기의 극 한쪽 끝을 붙잡고 빼앗아 버렸다. 자기가 다시 웅의료가 던져 버린 칼을 주어서 그의 어깨를 베었다. 의료 역시 자기에게서 빼앗은 극으르 자기의 복부를 찔렀다. 두 사람이 서로 붙들고는 놔주지 않고 뒤엉켜 몇 번 구르더니 전당 밑으로 떨어져 두 사람이 같이 죽었다. 석걸에게 결박당한 자서가 백공을 보고 말했다.

「옛날 오나라에서 빌어먹고 있던 너를 내가 골육의 정을 못 잊어 데려와 공의 작위를 내려 주어 은혜를 베풀었는데 어찌하여 은혜를 저버리고 이렇듯 반역을 저지르는가?」

「정나라는 나의 부친을 죽인 원수의 나라이다. 그런데 너는 오히려 정나라를 구해 주고 그들과 우호를 맺었다. 따라서 너는 나의 원수인 정나라와 다름이 없다. 내가 부친의 원수를 갚으려 하는데 너에게 입은 사사로운 은혜에 어찌 연연해하겠느냐?」

자서가 한탄하며 말했다.

「내가 옛날에 엽공(葉公)①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참으로 후회스럽구나!」

백공승이 칼을 뽑아 자서의 목을 치고 그 시체를 조당에 늘어놨다. 석걸이 백공에게 말했다.

「왕을 죽이지 않았으니 대사가 이루어 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느냐?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면 그만이다.」

백공이 즉시 혜왕을 잡아서 고부(高府)라는 곳에 감금해 두도록 좌우에게 명했다. 백공은 왕자 계(啓)를 왕으로 세우려 하였으나 왕자계가 거절했다. 백공이 계를 죽였다. 석걸이 백공에게 스스로 왕위에 오르라고 권했다. 백공이 말했다.

「아직도 나를 반대하는 현공(縣公)들이 많이 있으니 모조리 불러들여 우리 편으로 만들던가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야만 내가 왕위를 차지할 수 있음이다.」

백공은 즉시 자기가 데려온 군사들을 태묘에 진을 치고 주둔하게 했다. 대부 관수(管修)가 무장한 가병들을 이끌고 쳐들어와 백공을 공격했다. 양측이 3일 간을 싸운 끝에 관수와 그 가병들은 모두 백공이 거느린 군사들에게 살해되었다. 어공(圉公) 양(陽)이 고부의 담장에 조그만 구멍을 뚫고 밤중에 몰래 잠입하여 혜왕을 등에 업고 빠져 나와 소왕의 부인이 사는 궁궐에 숨겨 두었다.

3. 엽공정초(葉公定楚)

- 엽공 심제량이 백공의 란을 진압하고 초나라를 안정시키다. -

한편 도성에서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엽공 심제량(沈諸梁)은 엽 땅의 모든 군사들과 가병들을 이끌고 초도로 향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군했다. 그의 일행이 초도의 근교에 이르자 백성들이 몰려와 길을 막으며 맞이했다. 백성들은 엽공이 몸에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말했다.

「공께서는 어찌하여 갑옷과 투구를 입지 않으셨습니까? 도성 안의 백성들은 마치 부모를 찾는 갓난아이처럼 공을 기다리고 있는데 만일 역적들의 화살을 잘못해서 맞기라도 해서 공의 몸이 상한다면 백성들은 무엇을 바라고 살 수 있겠습니까?」

엽공이 백성들의 말을 따라 즉시 갑옷을 걸치고 머리에는 투구를 썼다. 다시 행군을 계속하여 성벽 가까이 다가갔을 때 다시 한 떼의 백성들이 엽공을 영접하러 나왔다. 백성들이 엽공을 보고 놀라며 물었다.

「공께서는 어찌하여 투구를 쓰고 계십니까? 백성들은 흉년에 굶주려 양식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공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백성들이 만약에 공의 얼굴을 본다면 마치 죽은 사람이 살아나듯이 비록 늙은이라 하더라도 모두 죽을힘을 다하여 공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어찌하여 공은 얼굴을 투구로 온통 가려 백성들로 하여금 의심하는 마음을 들게 하여 힘들여 싸우려는 생각을 들도록 하지 않으십니까?」

엽공은 백성들의 말을 듣고 다시 투구를 벗어 던지고 앞으로 행군을 계속했다. 엽공은 백성들의 마음이 이미 자기에게 기우려 졌다고 생각하고 즉시 대패기(大旆旗)를 자기의 수레에 세웠다. 잠윤고(箴尹固)는 그때 백공의 부름을 받아 자기의 사병들을 거느리고 성안으로 향하다가 엽(葉)이라고 쓴 대패기를 보고 즉시 방향을 돌려 엽공의 뒤를 따라 성안으로 향했다. 성안의 백성들과 군사들은 엽공이 대패기를 높이 세우고 달려오는 모습을 보자 성문을 활짝 열고 엽공과 그 군사들을 맞아 들였다.

엽공이 엽성에서 데려온 군사와 성안의 백성들을 이끌고 태묘에 주둔하고 있던 백공과 그 군사들을 공격했다. 석걸이 군사를 끌고 나와 엽공을 맞이하여 싸웠으나 당해 내지 못하고 크게 패했다. 석걸은 싸움에서 지자 백공을 부축하여 수레에 태우고 용산(龍山)으로 달아났다. 두 사람이 다른 나라로 달아나려 했으나 마땅한 곳이 없어 주저하는 사이에 엽공과 그 군사들이 뒤를 추격해 왔다. 백공승이 스스로 목을 메어 자결했다. 석걸이 백공의 시신을 거두어 용산의 후면에 묻었다. 엽공의 병사들이 당도하여 석걸을 생포했다. 엽공이 석걸에게 물었다.

「백공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었소.」

「그렇다면 그 시체는 어디에 있는가?」

석걸이 입을 굳게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엽공이 발이 세 개 달린 가마솥을 가져오게 하여 불을 지펴 물을 끓이라 하고 석걸을 그 앞으로 데려가 말했다.

「두 번 다시 묻지 않겠다. 백공의 시체는 어디에 있는가? 말하지 않으면 끓는 물에 삶아 죽이겠다.」

석걸이 듣고 일어나더니 스스로 옷을 벗어 던지며 말했다.

「일을 이룬다면 몸은 귀하게 되어 상경이 되고 그렇지 않고 일을 못 이루게 되면 당연히 죽게 되는 것은 곧 하늘이 정한 도리라! 내가 어찌 죽은 사람의 뼈를 팔아 목숨을 구걸하겠는가?」

말을 마친 석걸은 즉시 가마솥 안으로 뛰어들었다. 석걸의 몸뚱이는 삽시간에 익어 버렸다. 백공승의 시체가 묻힌 곳은 결국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석걸이 비록 옳지 못한 일을 따르기는 했지만 역시 기개가 있는 장부라 할 수 있었다. 엽공은 혜왕을 맞이하여 복위시켰다. 그때 진(陳)나라가 초나라에 내란이 일어난 틈을 타서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의 변경을 침략해 왔다. 엽공이 혜왕에게 청하여 허락을 받아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하여 멸했다. 자서(子西)의 아들 자녕(子寧)에게 그 부친의 직위인 영윤의 자리를 잇게 하고 자기(子期)의 아들 자관(子貫)은 사마의 직을 계승하게 했다. 엽공 자신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아무런 벼슬도 하지 않고 엽 땅으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초나라의 정세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이 일은 주경왕(周敬王) 42년 기원전 478년의 일이었다.

4. 笠澤一戰 夫差自刎(입택일전 부차자문)

- 입택의 한 번 싸움으로 자살하는 부차 -

오왕 부차가 월나라 군사들이 물러난 후로 주색에 빠져 나라의 정사를 전혀 돌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월왕 구천은 염탐꾼을 통해 알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오나라는 매년 계속해서 흉년이 들어 민심은 원망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는 보고를 접한 월왕은 오나라를 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그 즉시 월나라의 모든 병사들을 동원하여 이끌고 오나라 정벌 길에 나섰다. 월왕이 탄 수레가 월성의 교외를 막 통과하려는데 길 가운데에 두 눈을 크게 뜨고 배를 크게 부풀리면서 마치 화가 나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커다란 두꺼비를 보았다. 구천이 보고 수레의 횡목(橫木)에 기대에 일어나 숙연한 자세를 취했다.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구천의 그런 행동을 보고 물었다.

「왕께서는 무엇에게 그렇게 경의를 표하시는 것입니까?」

「저 화가 잔뜩 난 두꺼비의 모습이 마치 투지만만한 병사처럼 보여 내가 일어나 경의를 표하고 있는 중이다.」

군사들이 듣고 모두 칭하의 말을 올렸다.

「우리의 왕께서 화를 내고 있는 하찮은 미물인 두꺼비에게 조차도 경의를 표하셨다. 우리는 수 년 간에 걸쳐 훈련을 해 왔는데 어찌 저 화난 두꺼비만도 못하겠는가?」

병사들은 서로 격려하며 필사의 의지로 싸움에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월나라의 백성들이 싸움터에 나가는 그들의 자제들을 월성의 근교까지 따라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서로 간에 다짐하며 전송했다.

「이번에 출정하여 오나라를 멸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구천이 백성들의 하는 말을 듣고 군중에 조칙을 내렸다.

「부자가 함께 군중에 있는 자들은 그 아비 되는 자는 돌아가도 좋다. 형제가 같이 군중에 있는 자들은 그 형이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 집에 계시는 부모를 모실 형제가 없는 사람은 돌아가 부모를 공양하라. 몸에 질병이 있어 싸움이 벌어지면 적군을 이길 수 없는 자는 고하라! 약도 주고 죽도 끓여 주리라!」

월나라 군사들은 월왕이 베푼 은혜에 감사하여 일제히 우뢰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월나라 군사들이 행군하여 이윽고 강구(江口)에 이르자 군중에서 죄를 지은 자들을 참수형에 처하여 군법을 엄하게 시행하자 군사들의 마음은 매우 숙연해졌다.

월나라 군사들이 다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오왕 부차 역시 오나라의 모든 군사들을 이끌고 출병하여 강상(江上)에서 월나라 군사들을 막으려고 했다. 월나라 군사들은 강남에 오나라 군사들은 강북에 각각 진을 치고 대치했다. 월왕 구천은 군사를 좌우 이군으로 나누어 범려로 하여금 우군을 맡게 하고 문종으로는 좌군을 맡게 했다. 사대부 자제들로 편성된 근위군 6천 명은 월왕의 중군에 속하게 했다. 월왕 구천은 다음 날 강을 건너 오나라 진영을 공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날이 어두워지자 좌군에 속한 모든 군사들에게 함매를 물린 후에 강을 거슬러 올라가 5리 되는 곳에 머물러 있다가 밤이 깊어지면 갑자기 북을 크게 울리며 오나라 진영을 공격하라고 했다. 다시 우군에 속한 군사들에게도 역시 함매를 물리게 한 후 강을 건너서 10리 되는 곳까지 나아가 머물다가 좌군이 공격을 개시하면 오나라 진영의 배후에서 협공을 하도록 명령했다. 특히 좌우 양군은 모두 큰북을 힘껏 두드려 그 소리가 그 일대에 모두 들릴 수 있도록 강조했다.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자 오나라 군사들은 하늘을 진동시키는 북소리를 듣고 그것이 월나라 군사들이 공격하는 신호인 줄 알았다. 오나라 군사들이 황망 중에 횃불을 올려 주위를 밝혔으나 미처 주위의 어둠을 밝히기도 전에 또 멀리서 나는 북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전후 양군이 서로 호응하여 오군을 포위 공격하려는 작전이었다. 부차가 크게 놀라 급히 령을 전하여 오나라 군사들을 두 대로 나누어 양쪽에서 공격해 오는 월나라 군사들을 막게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월왕이 쟁이나 북소리도 울리지 않고 아무도 몰래 근위군 6천 명을 친히 이끌고 어둠 속에서 곧바로 오나라 중군 막사를 들이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했다. 그때는 아직 날이 밝기 전이라 단지 전후좌우에는 모두 월나라 군사들 천지인 것 같아 오나라 군사들은 도저히 당해 내지 못하고 몸을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구천이 다시 삼군을 정비하여 친히 인솔하고 오군의 뒤를 바싹 뒤쫓아 입택(笠澤)②에 이르자 오나라 군사들도 대오를 갖추어 대항했다. 다시 싸움이 벌어졌으나 오군은 당해내지 못하고 패주했다. 오나라의 백전노장 왕자 고조(姑曹)와 서문소(胥門巢) 등은 싸움 중에 전사했다. 부차가 밤새도록 도망쳐 간신히 오성에 입성하여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키려고 했다. 구천이 횡산(橫山)을 넘어 진격했다. 횡산은 지금의 월래계(越來溪)다. 월나라 군사들은 서문(胥門) 앞에 성을 쌓아 월성(越城)이라 부르고 오성을 포위하여 장기전에 대비했다. 월왕이 오성을 오래 동안 포위하자 오성의 백성들은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부차가 할 수 없이 화의를 청하기 위해 백비를 월나라 진영에 사절로 보내려고 했으나 백비는 병을 칭하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부차가 왕손락을 사자로 보냈다. 왕손락은 웃통을 벗고 무릎으로 월왕 앞으로 기어가 화의를 청한다는 오왕의 뜻을 전했다.

「전하의 외로운 신하 부차는 옛날에 회계 땅에서 대왕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그때 부차는 대왕의 명을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대왕과 화의를 맺고 오성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대왕께서 군사를 내어 저를 죽이려 하신다는 뜻을 저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도 저와의 회계의 일을 생각하시어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구천이 말을 듣고 그때의 일이 생각나서 화의를 허락하려고 했다. 범려가 간했다.

「군왕께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정사에 매진하여 이때를 기다리기를 20년이 되었습니다. 어찌하여 화의를 받아들여 그 동안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려 하십니까?」

범려의 완강한 반대로 인하여 구천은 마음을 바꾸어 오나라가 청한 화의를 거절했다. 오나라의 사자가 계속해서 일곱 차례나 다녀갔지만 범려와 문종의 뜻은 변하지 않았다. 이윽고 두 사람은 북소리를 크게 울리게 하여 군사들을 진군시켜 오성을 공격하도록 했다. 오나라 군사들은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었다. 문종과 범려는 서문(胥門)을 부수고 성안으로 진격하려 계책을 짰다.

그날 밤 오나라의 성 남문 위에 오자서의 머리가 마치 큰 수레바퀴처럼 빛나고 두 눈에는 번개가 일고 머리털은 사방으로 흩날려 그 빛이 십리에 뻗친 광경을 보았다. 월나라 장수들이나 군사들은 모두 두려워하여 하던 싸움을 멈추고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이 깊어지자 남문 쪽에서 폭풍이 일고 폭우가 쏟아졌다. 천둥 번개가 치며 돌맹이가 날고 모래바람이 일어났다. 바람에 날린 돌멩이들은 쇠뇌에서 쏘아 대는 화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월나라 군사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돌멩이에 맞은 사람들은 죽거나 중상을 입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배를 묶어 둔 밧줄이 끊어져 배들이 물길을 타고 밑으로 떠내려갔다. 문종과 범려가 마음이 급하게 되어 웃통을 벗은 맨몸으로 밖으로 나와 세차게 휘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남문을 쳐다보고 머리를 조아려 무수히 절을 하며 죄의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얼마 후에 비바람이 멈추었다. 문종과 범려가 안으로 들어와 침상에서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동시에 꿈을 꾸었다. 그들의 꿈속에서 자서가 백마가 끄는 병거를 타고 다가왔다. 그는 마치 생시처럼 의관을 위엄 있게 차려입은 매우 늠름한 모습이었다. 오자서가 입을 열어 말했다.

「내가 옛날 이미 너희들 월나라가 틀림없이 쳐들어 올 줄 알았다. 그래서 나의 머리를 동문에 걸어 놓으라고 부탁하여 그대들이 오는 모습을 살피려고 했지만 오왕이 나의 부탁을 듣지 않고 남문에 걸어 놓았다. 그러나 나의 충성심은 아직 변하지 않아 내 머리 밑으로 입성하는 너희들을 두고만 볼 수 없어 비바람을 일으켜 물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월나라가 오나라를 차지하게 되었음은 하늘이 정해준 바라 내가 어찌 그것을 막을 수 있으리오? 너희들이 도성 안으로 입성하려 한다면 다시 남쪽으로 돌아가 동문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내가 마땅히 너희들을 위해 길을 열어 성안까지 통하게 해주리라!」

두 사람이 꿈에서 깨어 같은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즉시 월왕에게 가서 꿈 이야기를 고하고 사졸들을 시켜 남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물길을 파게 했다. 월나라 군사들이 판 물길이 사문(蛇門-南門)과 장문(匠門-東門) 사이에 이르게 되자 갑자기 태호의 물이 출렁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솟구쳐 올라 파도가 되어 서문(胥門-西門)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거센 물결은 이윽고 나성(羅城) 안에 큰 구멍을 하나 뚫어 놓았다. 그 구멍을 통하여 전어(鱄魚), 부어(䱐魚) 등 큰 물고기들이 무수히 성안으로 파도에 밀려들어갔다. 범려가 말했다.

「이것은 자서가 우리를 위해 길을 열어 주는 바다.」

그들은 즉시 군사들을 독려하여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 오성에는 당시의 파도로 생긴 구멍이 문이 되었는데 이름하여 전부문(鱄䱐門)이라 했고 또 물위에 봉초(葑草)가 많이 나는 곳이라 해서 봉문(葑門)이라고도 하고 그곳을 흐르는 물을 봉계(葑溪)라 했다. 이것은 오자서의 영혼이 나타났다는 유적이 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성안에 있던 부차는 결국은 월나라 군사들이 입성했으며, 또한 백비는 이미 월군에게 이미 항복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즉시 왕손락과 그의 세 아들과 함께 성문을 빠져 나와 양산(陽山)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밤낮으로 도망가느라 아무 것도 먹지 못하여 배가 고파 허기가 지게 되어 정신이 혼미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좌우에 따르던 사람들이 벼이삭을 구해 비벼서 껍질을 벗긴 다음 부차에게 가져다 바쳤다. 부차가 받아서 입에 넣고 씹었다. 다 삼킨 다음 허리를 굽혀 개울가의 물을 마시면서 좌우의 사람에게 물었다.

「지금 내가 먹은 것은 무엇이냐?」

좌우에 따르던 사람들이 대답했다.

「벼이삭을 따서 껍질을 벗긴 생도(生稻)입니다.」

부차가 말했다.

「옛날 공손성(公孫聖)이 ‘익은 음식도 먹지 못하고 창황히 도망치리라!’라고 했는데 그 말이 과연 맞는 말이었구나!」

왕손락이 부차를 재촉했다.

「이제 허기를 면했으니 빨리 앞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앞에 조금만 가면 깊은 계곡이 있으니 그곳이라면 잠시나마 몸을 피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꾼 요사스러운 꿈이 이제 이루어져 죽음이 이미 조석지간에 달려 있게 되었는데 잠시 피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부차는 가던 길을 멈추고 양산에 머물렀다. 부차가 다시 왕손락을 향해 말했다.

「내가 옛날에 공손성을 죽이고 그 시체를 토막 내 이 산등성에 내다 버리라고 했는데 아직도 그의 혼백이 여기에 남아 있지 않겠는가?」

「왕께서 한번 불러 보시지요.」

부차가 큰 소리로 외쳐 불렀다.

「공손성!」

산 속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차가 다시 계속해서 세 번을 부르자 세 번 계속해서 답했다. 부차가 마음속으로 두려운 생각이 들어 즉시 양산을 떠나 간수(干隧)③라는 곳으로 몸을 피했다.

한편 구천은 천 명의 군사를 선발하여 추격하여 부차가 숨어 있는 곳에 당도하여 여러 겹으로 철통같이 에워쌌다. 부차가 편지를 써서 활에 메달아 월나라 군중을 향해 쏘았다. 월나라 군사들이 주워 문종과 범려에게 가져다 바쳤다. 두 사람이 부차가 쓴 편지를 읽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듣기에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을 잘하는 개는 삶겨 죽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적국이 멸망하면 그 지혜 있는 신하들도 틀림없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④ 대부들은 어찌하여 오나라의 명맥을 잇게 하여 스스로의 여생을 도모하지 않으십니까?」

문종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답서를 써서 역시 화살에 메어 부차가 농성하고 있는 곳을 향해 쏘았다. 부차가 답서를 찾아 읽었다.

『오나라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의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 충신 오자서를 죽였다.

둘째 직언을 올린 공손성을 죽였다.

셋째 간사하고 아첨만을 일삼는 백비를 중용하여 그의 말을 따랐다.

넷째 아무 죄도 없는 제(齊)와 진(陳) 두 나라에 정벌을 여러 차례 감행했다.

다섯째 오와 월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나라인데 무단히 침범했다.

여섯째 월왕이 친히 오나라의 전왕을 죽였음에도 그 원수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놓아주어 화근을 키웠다.

이처럼 커다란 잘못을 여섯 가지나 행하고도 어찌 패망을 면하려 하는가? 옛날에 하늘이 월나라를 오나라에 주었건만 오나라가 받지 않아서 이제는 하늘이 오나라를 월나라에 내려 주었는데 월나라가 어찌 감히 하늘의 명을 어기겠는가?』

부차가 문종의 답장에서 커다란 잘못 여섯 가지 항목을 읽고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과인이 구천을 죽이지 않고 선왕의 원수를 갚을 생각을 망각했으니 그것은 바로 불효를 행했음이라! 그래서 하늘이 우리 오나라를 버리고 월나라에 주려고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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