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회. 吹簫乞吳(취소걸오) 進炙刺王(진자자왕) > 4부7 오자서

제73회. 吹簫乞吳(취소걸오) 進炙刺王(진자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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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4,894회 작성일 04-05-1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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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회 吹簫乞市 進炙刺王(취소걸시 진자자왕)

오성에서 피리를 불며 걸식하는 오자서(伍子胥)와

생선구이 속에 숨긴 비수로 왕료를 찔러 죽인 전제

1. 投水自盡 絕疑保密(투수자진 절의보밀)

- 강물에 몸을 던져 오자서의 의심을 푼 어부(漁父). -

오원 일행을 배에 태워 장강을 건네주고 또한 음식을 구해 먹인 후에 다시 오원이 감사의 뜻으로 주는 칼도 한사코 받지 않았던 어옹과 서로 헤어지려는 순간 가던 길을 멈춘 오원이 몸을 다시 돌려 어옹에게 자기를 만난 사실을 비밀로 해 달라는 부탁했다. 혹시라도 뒤에 초나라의 추격병이 있을까 걱정이 된 나머지 오원이 마지막으로 한 당부의 말은 어옹이 베푼 인정을 불신한 결과가 되어 버렸다. 어옹이 하늘을 쳐다보며 한탄해 마지않았다.

「내가 덕으로써 그대를 대했건만 그대는 아직도 여전히 믿지 못하고 있으니 만약에 초나라의 추격병이 나와 상관없이 별도로 강을 건너 그대 뒤를 쫓게 된다면 내가 어찌 그 일을 해명할 수 있겠는가? 내가 죽음으로써 그대의 의심하는 마음을 없어지게 하겠노라!」

어옹이 말을 마치자 배를 묶어 둔 줄을 풀고 강 가운데로 노를 저어 나아가 키를 뽑고 돛은 떼어 강물 속으로 던져 버리더니 배를 뒤집어엎어 그 자신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후세의 사관이 이를 두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목숨을 구해 도망쳐 낚시로 몇 년을 숨어 지내던 와중에서도

일엽편주 한 척으로 초나라의 망명객을 무사히 건너 주었다.

다른 사람의 의심을 덜어 주기 위해 즐거이 목숨을 끊어

이름 없는 고기잡이 노인은 천고에 이름을 전했다!

數載逃命隱釣綸(수재도명은약륜)

扁舟渡得楚亡臣(편주도측초망신)

絶君後慮甘君死(절군후려감군사)

千古傳名魚丈人(천고전명어장인)

지금도 무창(武昌) 동북의 통회문(通淮門) 밖에 해검정(解劍亭)①이라고 있다. 그때 오자서가 허리에 찬 칼을 풀어서 어옹에게 주려고 했던 장소이다. 오원은 어옹이 스스로 물에 빠져 죽는 모습을 보더니 한탄하며 말했다.

「그대는 나를 살려 주었는데 나는 그대를 죽게 만들었구나! 참으로 슬픈 일이로다!」

2. 乞食浣紗女(걸식완사녀)

- 뢰수의 빨래하는 처녀에게 걸식하는 오자서 -

오원과 공자승이 곧이어 오나라 경계에 들어서서 길을 계속 가다가 율양(溧陽)②이라는 곳에 당도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못 먹고 굶으면서 길을 계속 걸어왔기 때문에 배가 고파 할 수 없이 음식을 얻기 위해 구걸을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길을 가던 중 뢰수(瀨水)③가에서 빨래를 하던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 여인 곁에는 밥이 담긴 광주리가 놓여 있었다. 오원이 발길을 멈추고 말을 건넸다.

「부인께서 저에게 약간의 밥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까?」

여인이 머리를 숙이고 대답하였다.

「첩은 홀어미를 모시고 살다가 나이가 30이 되도록 시집을 가지 못한 사람입니다. 어찌 처녀의 몸으로 감히 지나가는 과객에게 밥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내가 길을 가다가 노자가 떨어져 궁벽하게 되어 먹지 못해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부디 얼마간의 밥으로 목숨을 구하려고 합니다. 부인께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덕행을 행하시는데 구태여 예의를 따질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여자가 고개를 들어 오원의 풍모가 웅대하고 기품이 늠름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소첩의 눈에 손님의 풍모를 보아하니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찌 사소한 예의에 구애받아 손님의 곤궁한 처지를 앉아서 쳐다만 볼 수 있겠습니까?」

빨래하던 처녀가 밥이 든 대광주리와 함께 사발을 꺼내어 무릎을 꿇고 바쳤다. 오자서와 공자승이 광주리에서 밥을 한 그릇을 담아서 먹더니 젓가락을 놓고 먹기를 멈추었다. 여인이 보고 말했다.

「손님은 먼 거리를 오면서 오랫동안 먹지 못해 매우 배가 고파 보이는데 어찌하여 배불리 먹지 않습니까?」

두 사람이 그 말을 듣고 먹기를 계속하여 광주리 안에 든 밥을 다 먹어 버렸다. 오자서가 밥을 다 먹고 나서 헤어지려고 하는 순간에 여인에게 당부의 말을 하였다.

「부인의 은혜를 입어 목숨을 구했으니 그 은혜를 나의 가슴속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나는 실은 목숨을 구해 도망쳐 온 망명객이라 만일에 부인께서 다른 사람을 만나시거든 절대 제 이야기를 하지 마십시오.」

그 여인이 오원에게서 당부의 말을 듣자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슬픈 일이로다! 첩은 홀로 된 모친을 모시느라 나이가 30이 넘도록 시집을 가지 않고 몸을 정결히 지켜 추호도 실수를 한 적이 없는 처녀의 몸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밥을 바치고 또한 외간 남자와 말을 주고받았으니 그것은 이미 내가 예의를 버리고 절개도 버리게 된 결과가 되어버렸는데, 손님께서는 어찌 그리도 다른 사람에게 박절하게 대하십니까? 손님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가던 길을 계속 가십시오.」

오원이 작별의 말을 하고 길을 가다가 다시 머리를 돌려 뒤돌아보니 그 여인이 큰돌을 하나 가슴에 품고서 뢰수에 뛰어 들어 스스로 빠져 죽었다. 후세 사람이 그 여인을 찬양하는 글을 지었다.

율수의 남쪽 강변에

빨래를 하던 여인이 있었다.

오로지 모친을 봉양하느라

남자와는 말도 나누어 보지 못했다네!

溧水之陽(율수지양)

擊綿之女(격면지녀)

惟治母餐(유치모찬)

不通男語(불통남어)

그러다가 지나가는 나그네가 있어

그녀의 대광주리를 서슴없이 풀어

그로 하여금 배불리 먹였건만

청백한 그 여인은 절개가 꺾이어

矜此旅人(긍차여인)

發其筐筥(발기광거)

君腹雖充(군복수충)

吾節已窳(오절이유)

강물에 몸을 던지게 되었다!

부녀자들이 지켜야 할 규범을 밝히어

결코 마르지 않는 뢰수와 더불어

이 아름다운 여인의 절개는 천고에 빛났다!

捐此孱軀(연차잔구)

以存壺矩(이존호구)

瀨水不竭(뢰수불갈)

玆人千古(자인천고)

오원은 그 여인이 뢰수에 몸을 던져 빠져 죽는 것을 보자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손가락 끝을 깨물어 흐르는 피로 돌 위에 20자의 글을 썼다.

빨래를 하던 그대에게 내가 음식을 구걸하였다.

나는 배불리 먹고 그대는 물에 빠져 죽었네

십 년 후에는

내 반드시 천금으로 보답하리라!

尒浣紗我行乞(이완사아행걸)

我腹飽尒身溺(아복포이신익)

十年之后(십년지후)

千金報德(천금보덕)

3. 俠客專諸(협객전제)

- 협객 전제와 의형제를 맺는 오자서 -

글을 다 쓰고 난 오원은 후에 사람들의 눈에 띠일까 걱정되어 글씨를 흙으로 덮었다.

오원의 일행이 율양을 지나서 다시 300여 리를 앞으로 나아갔는데 땅 이름이 오추(吳趨)④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그들이 오추의 시내에 들어서자 이마가 튀어나오고 눈이 움푹 들어간 장사 한 사람이, 길거리에서 마치 굶주린 호랑이처럼 사나운 기세에 천둥번개 같은 목소리로 바야흐로 상대방의 등치가 큰 사람과 한 바탕 싸움을 벌이려고 하던 참이었다. 주위의 사람들이 힘들여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리려 했으나 힘이 미치지 못하여 그치게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길가의 집에서 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한 부인이 나와 그 장사를 향하여 불렀다.

「전제(專諸)야, 싸움을 그만 두지 못할까?」

그 소리를 들은 장사는 마치 무섭고 두려워하는 기색을 하며 즉시 손을 거두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원이 보고 매우 기이하게 생각하여 그 곁에 사람에게 물었다.

「저와 같은 장사가 어찌하여 부인을 그렇게 무서워합니까?」

곁에 있던 사람이 대답했다.

「저 사람은 이 마을의 유명한 장사라, 만인을 상대할 만한 힘을 갖추어 어떤 힘센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평생 의로운 일만을 즐겨 왔습니다. 이번에도 그가 불의한 일을 보게 되자,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우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조금 전에 문을 열고 그를 집안으로 불러들인 부인은 그의 모친이고 그 부인으로부터 전제라고 불린 사람은 바로 그 장사의 이름입니다. 평소에 효성이 지극하여 그 모친이 하는 말을 한 번도 어겨 본 적이 없으며 비록 그가 매우 노했다고는 하나 그 모친이 말하자 즉시 싸우려는 생각을 멈춘 것입니다.」

오원이 찬탄해 마지않으며 말했다.

「이 사람은 진실로 열혈남아로다!」

다음날 오자서는 전제의 집을 방문했다. 전제가 나와 맞이하며 그가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오원이 자기의 성과 이름을 말하며 또한 지금까지 당해 온 억울한 일의 전말을 이야기했다. 오원의 이야기를 들은 전제가 말했다.

「오공께서 그런 큰 원한을 갖고 계시다면 어찌하여 오왕을 찾아뵈어 군사를 빌려 원수를 갚지 않으십니까?」

「아직 나를 오왕 앞으로 인도해 주는 사람이 없어 감히 스스로 찾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기회를 얻어 뜻하시는 바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누추한 저희 집을 방문하신 뜻은 저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까?」

「그대의 효행을 내가 존경하여 친구로 삼고자 함이오!」

전제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오원을 방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그의 모친에게 고하고 즉시 오원과 결의형제를 맺었다. 오원이 전제보다 두 살이 연상이라 전제가 오원을 형님이라 불렀다. 전제가 다시 그의 처를 불러 오원에게 인사를 올리게 하고 닭을 잡고 기장으로 밥을 지어 접대하면서 마치 골육을 새로 만난 것처럼 기뻐하였다. 오원과 공자승은 전제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 다음날 아침이 되자 오원이 전제에게 말했다.

「내가 오늘 동생과 이곳에서 작별을 고하고 오도(吳都)에 들어가 오왕에게 출사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겠네.」

「오왕은 용기는 있으나 교만합니다. 차라리 현자들과 친하고 선비들을 존대하는 공자광(公子光)을 찾아가십시오.」

「동생의 가르침을 가슴에 깊이 새겨 둠세! 후일 내가 동생의 도움이 필요하여 부르면 절대 거절하지 말기 바라네!」

전제가 허락했다. 오원과 공자승은 전제와 작별을 고하고 오도를 향하여 길을 출발했다.

4. 吹簫乞食(취소걸식)

- 퉁소를 불며 오나라 시정에서 걸식하는 오자서 -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으로 계속 길을 가서 매리(梅里)⑤라는 곳에 당도하였는데 조그만 고을이라 성곽은 낮았고 시정은 조밀하지 못했지만 수륙의 요충지라 오고가는 배들과 수레소리는 제법 요란하였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오자서는 미승(羋勝)을 교외의 외딴 곳에다 숨겨 놓고 자기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맨발에 얼굴에는 시커먼 숯으로 칠하고는 미친 사람 행세를 하고 손에는 반죽(斑竹)⑥으로 만든 피리를 들고 시중에 돌아다니면서 불며 구걸행각을 했다.

오자서야! 오자서야!

산과 물을 건너 송나라와 정나라로 갔건만

아무도 의탁할 데가 없었네!

천신만고 끝에 이곳에 왔건만

내 마음은 더욱 처량해 지는구나!

그러나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수 없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을 살겠는가!

伍子胥! 伍子胥(오자서, 오자서)

跋涉宋鄭身無依(발첩송정신무의)

千辛萬苦凄復悲(천신만고처복비)

父仇不報何以生爲(부구불보하이생위)

오자서야! 오자서야!

소관을 한번 넘다가

머리칼과 눈썹이 하얗게 변했고

수없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마음만 더욱 서러워지지만

형의 원수를 갚지 않는다면

내가 살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

伍子胥! 伍子胥!(오자서, 오자서)

昭關一渡變須眉(소관일도변수미)

千驚萬恐凄復悲(천경만공처복비)

兄仇不報何以生爲(형구불모하이생위)

오자서야! 오자서야!

갈대밭에서 배를 타고 대강을 건너고

율양의 냇가를 지나

천신만고 끝에 오나라에 당도하였으나

피리를 불며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마음만 더욱 처량해 지는구나!

이 몸의 원수를 갚지 않는다면

살아서 무엇하리요?

伍子胥! 伍子胥!(오자서,오자서)

蘆花渡口溧陽溪(로화도구율양계)

千生萬死及吳陲(천생만사급오수)

吹簫乞食凄復悲(취소걸식처복비)

身仇不報何以生爲(신구불보하이생위)

그러나 매리의 저잣거리에는 오자서의 노랫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주경왕 25년은 오왕 요(僚) 7년으로써 기원전 520년의 일이었다.

한편 오나라 공자광은 곧 오왕 제번(諸樊)의 아들이었다. 옛날 부왕인 제번이 죽을 때 그 뒤는 당연히 자기가 이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제번의 부왕이었던 수몽(壽夢)이 죽을 때 했던 유명에 따라, 오나라 왕위를 막내 계찰(季札)에게 넘겨주기 위해 그 형제들 순서에 의해 여제(餘祭)와 이매(夷昧)로 잇게 되었다. 드디어 여제와 이매가 죽게 되어 그 차례가 계찰이 되었다. 그러나 계찰은 사양하며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다음 왕위는 마땅히 제번의 아들인 공자광이 이어야 되었으나 이매의 아들인 왕료가 욕심을 내어 왕위를 광에게 넘기지 않고 자기가 차지하고 말았다⑦. 공자광이 마음속으로 승복을 하지 않고 가슴 한가운데에는 왕료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군신들은 왕료와 같은 무리들이었기 때문에 같이 일을 도모할 측근들이 없어 은인자중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관상을 잘 보는 피리(被離)라는 사람을 얻게 된 공자광은 그를 오도(吳都)의 관리로 천거하고는 그에게 호걸들을 수소문하여 발견하면 자기에게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하루는 오원이 피리를 불며 오도의 저자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피리는 그 소리가 매우 애처로워 다시 한 번 귀를 기우려 들은 결과 그 노래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피리가 피리소리를 찾아 밖으로 나와 오원을 보자 크게 놀라 말했다.

「내가 수많은 사람들의 관상을 보아 왔지만 아직까지 이와 같은 상을 보지 못했다.」

피리가 오원에게 읍을 한 후에 자기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상좌에 앉기를 청했다. 오원이 사양하며 감히 상좌에 앉지 못했다. 피리가 오원에게 말했다.

「제가 들으니 초왕이 충신 오사를 죽이자 그의 아들 오자서는 쫓기는 몸이 되어 외국으로 도망쳤다고 하는데 혹시 귀하가 그 사람이 아닙니까?」

오원이 주저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피리가 다시 오원을 향하여 말했다.

「나는 귀하를 해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관상을 보니 귀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귀하의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도와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대로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오원이 사실대로 피리에게 고했다. 그런데 피리의 옆에 있던 시자가 피리를 불면서 다니던 미친 사람이 초나라의 망명객인 오자서라는 것을 알고서는 그 사실을 오왕 요에게 고했다. 오왕이 피리에게 오원을 자기에게 데려오라고 명했다. 피리는 사람을 시켜 아무도 몰래 공자광에게 오원의 일을 알리고 목욕시키고 옷을 바꾸어 입힌 오원을 데리고 궁궐에 들어가 오왕을 알현했다. 오원의 풍모가 하도 기이하여 몇 마디 말을 나누어 번 결과 그가 매우 현능한 사람임을 알게 된 왕료는 즉시 오원을 대부의 직에 임명했다. 다음날 오원이 입조하여 오왕에게 감사의 말을 올리고 그의 부친과 형이 억울하게 죽은 일을 호소했다. 그때 오원은 원한에 사무쳐 격분한 나머지 이빨을 갈고 눈에는 이글거리는 불꽃이 튀었다. 왕료는 오원의 기개를 장하게 여기고 또한 그가 당한 억울한 일에 대해서 동정하는 마음이 일어 장차 군사를 내어 원수를 갚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허락했다.

한편 공자광은 피리의 통보를 받기 전에도 평소에 오원이 지용을 겸비한 인재라고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오원을 거두어 자기 곁에 두고 싶어 했으나 오원이 먼저 왕료에게 알현을 하러 갔다는 소식을 접한 공자광은 왕료가 그를 중용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생겨 안절부절 하다가 왕료를 찾아가 말했다.

「제가 들으니 초나라의 망명객 오원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로 도망쳐 왔다는데 왕께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계십니까?」

「어질고 또한 효성이 있는 사람이오.」

「무슨 연유로 그렇게 보셨습니까?」

「그는 용력과 기개가 매우 비상한 사람이오. 과인이 그와 함께 나라의 일에 대해 한번 의논하며 살펴본 결과 그의 말에는 빈틈이 하나도 없었소! 이것은 그가 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또한 그의 부친과 형의 원한을 아직까지 잊지 않고 가슴속에 품고 있으면서 나에게 군사를 빌려 달라고 하니 이것으로 그가 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소!」

「왕께서는 그가 원수를 갚을 수 있게 군사를 빌려주신다고 허락하셨습니까?」

「과인은 그의 처지가 매우 불쌍하다고 생각되어 이미 허락했소.」

「만승의 군사를 이끌고 계시는 왕께서 어찌 한낱 필부를 위해 군사를 일으키겠다고 허락하셨으니까? 지금 우리 오나라는 초나라와는 창칼을 맞대고 피를 흘리며 싸우기를 이미 오래 되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승리도 취하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오자서를 위해 우리가 군사를 일으킨다면 그것은 필부의 원한을 나라의 수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군사를 동원하여 우리가 싸움에서 이긴다면 오자서로써는 그의 원한을 풀 수 있어 호쾌한 일이 되겠지만 불행히도 싸움에서 지게 된다면 우리의 치욕을 더욱 깊게 됩니다. 왕께서는 대 허락하시면 안 되는 일입니다.」

왕료는 공자광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즉시 초나라를 정벌할 계획을 취소했다. 오원은 공자광이 입조하여 오왕에게 출병을 만류하게 했다는 소식을 듣고 말했다.

「공자광의 뜻은 나라 안에 있기 때문에 나라 밖의 일에 대해 반대함은 당연한 일이다.」

오자서는 즉시 왕료에게서 받은 대부의 직책을 사양했다. 공자광이 다시 왕료에게 말했다.

「자서는 왕께서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여 대부의 직을 받지 않으니 아마도 왕을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듯 합니다. 곁에 두고 쓰시지 마십시오.」

그래서 왕료는 오원을 소원하게 대했고 다시 그가 사양한 대부의 직을 되돌려 주지 않고 거둬들였다. 오원에게는 단지 양산(陽山)⑧의 땅에 있는 전답 100무만을 하사했을 뿐이었다.

5. 夫魚在千仞之淵(부어재천인지연), 而入漁人之手者(이이입어인지수자), 以香餌在也(이향이재야).

- 천길의 깊은 연못의 고기가 어부의 손에 잡히는 것은 어부의 손에 향기로운 미끼가 있기 때문이다. -

오원과 공자승이 양산의 들판에서 밭을 갈았다. 공자광이 아무도 몰래 양산에서 밭일을 하고 살고 있는 오원을 찾아와 양식과 포백을 주면서 물었다.

「귀하가 오초(吳楚) 두 나라의 경계를 돌아다닐 때 혹시 귀하와 비슷한 용력과 재주를 갖춘 사람을 만나 보지 못했습니까? 」

「제가 어찌 이 나라의 재사들을 다 만나 볼 수 있었겠습니까마는 단지 전제라는 사람을 만났었는데 그야말로 진정한 용사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귀하가 소개를 해 준다면 내가 용사 전제와 교우관계를 맺고 싶소.」

「전제는 이곳에서 머지않은 곳에 살고 있으니 지금 당장 부르면 내일이라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이미 재주와 용기를 갖춘 선비라는 사실을 알았는데 어찌 감히 그를 부를 수 있겠소? 내가 지금 당장 그가 사는 곳으로 찾아가 볼까 하오.」

이어서 공자광과 오원이 수레를 함께 타고 전제의 집을 향해 출발했다. 그때 전제는 길모퉁이에서 돼지를 잡기 위해 칼을 갈고 있었다. 그는 수레 한 대가 쏜살같이 자기 앞으로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전제가 달려오던 수레를 피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수레가 그 앞에 멈춰 서더니 그 안에서 오원이 머리를 내밀며 전제를 보고 소리쳐 불렀다.

「이 형이 돌아왔네.」

전제가 황망 중에 칼 가는 일을 멈추고 오원이 마차에서 내리기를 기다렸다. 마차에서 내린 오원이 곁에 있던 공자광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분은 오왕의 사촌형님 되시는 공자광님이시네! 동생의 영명한 이름을 듣고 이렇게 특별히 찾아오셨으니 동생은 사양하지 말게나.」

「저는 시정의 골목에서 사는 보 잘 것 없는 백성일 뿐입니다. 본의 아니게 부덕한 제가 감히 대인으로 하여금 번거로움을 끼쳐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전제가 공자광에게 읍을 한 후에 집안으로 모셨다. 전제의 집은 섶나무로 만든 사립문에 다 허물어져 가는 초가집이었다. 공자광과 오자서는 그 집안으로 들어 설 때는 머리를 숙여야만 했다. 공자광이 먼저 절을 올리고 자기는 평생 전제와 같은 호걸들과 사귀고 싶었다는 뜻을 전했다. 전제가 맞절을 올려 답례했다. 공자광이 가지고온 황금과 비단을 전제에게 주었으나 전제는 한사코 받기를 거부했다. 오원이 곁에 있다가 받으라고 강권하자 전제는 그때서야 할 수 없이 받았다. 이때부터 전제는 공자광 문하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공자광이 사람을 시켜 매일 고기와 양식을 보내고 면포와 비단은 달마다 보내 주었다. 또한 어떤 때는 공자광이 몸소 불시에 전제의 집을 찾아와 그 모친에게 문안을 드리곤 했다. 전제는 공자광의 은혜에 대해 매우 감격하였다. 어느 날 전제가 자기 집에 들른 공자광을 향해 물었다.

「저는 시골의 한 소인에 불과할 뿐입니다. 공자님께서 저희 가속들을 보살펴 주시는 은혜를 입고 있는데, 저는 그에 대한 보답을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저에게 시킬 일이 있다면 저는 오로지 공자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공자광이 즉시 좌우의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그가 왕료를 죽이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제가 듣고 말했다.

「선왕이신 이매가 죽고 그 아들이 자기의 자리를 찾아 스스로 그 뒤를 이었는데 공자께서는 무슨 이유로 그를 해치려고 하십니까?」

공자광은 조부 수몽이 죽을 때 오나라의 왕위를 부자지간으로 전하지 말고 형제지간으로 전하라고 한 유언을 상세하게 전했다.

「숙부 계찰님이 왕위를 사양했으니 왕위는 당연히 제번 왕의 적장자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매 왕의 아들인 왕료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왕위를 스스로 차지하여 버렸소. 이 사람 광이 바로 제번 왕의 적장자요. 요가 감히 나를 제치고 왕위를 차지했지만 단지 내가 힘이 약하여 대사를 도모할 수 없어, 주위의 호걸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려고 하오.」

「어찌하여 공자님은 측근들로 하여금 왕의 근신들에 종용하여 전왕의 명을 밝혀 지금의 왕을 왕위에서 퇴위토록 하시지 않으시고, 하필이면 자객을 길러 암살하여 선왕이 베푼 덕을 해치려고 하십니까?」

「왕료는 욕심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세력을 믿고 나아갈 줄만 알지 물러설 줄은 모르는 사람이오. 내가 만약 그 말을 했다가는 오히려 그가 나를 해치려 들것이오. 이 광과 요는 양립할 수 없소.」

전제가 정색을 하며 의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단지 저에게는 노모가 아직 계셔 봉양을 해야 하는 몸이니 지금은 감히 제 목숨까지 바쳐서 공자님의 일을 돕지는 못하겠습니다.」

「나 역시 그대의 모친이 늙고 또한 그대의 아들은 아직 어리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러나 그대가 아니면 이 일을 맡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소. 만약에 그대가 일을 맡아 다행히 성사된다면 그대의 아들과 모친은 바로 나의 아들과 모친이 될 것이오. 내가 마음을 다하여 노모를 봉양하고 어린 아들을 기르겠소. 어찌 감히 내가 그대의 은혜를 저버릴 수가 있겠소!」

전제가 마음속으로 오랫동안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무릇 일이란 가볍게 움직이면 아무런 공을 세우지 못하는 법이라 반드시 만전을 기해야만 합니다. 천 길의 깊은 연못의 고기도 어부의 손에 잡히고 마는 것은 어부의 손에 향기로운 미끼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왕료를 암살하시고자 하신다면 필히 왕료가 좋아하는 것을 미끼로 먼저 주고 이어서 그 옆에 가까이 접근해야 합니다. 혹시 왕이 특별히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왕은 음식의 맛을 즐기는 사람이오.」

「음식 중 특히 즐겨 먹는 것은 무엇입니까?」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구운 생선이오.」

「제가 잠시 하직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그대는 어디로 가려고 하오?」

「제가 생선구이를 맛있게 굽는 방법을 배워야만 오왕의 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제가 즉시 공자광에게 하직인사를 한 후에 생선 굽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태호(太湖) 가의 어촌으로 갔다. 어느덧 시간은 세 달이 지나가 이윽고 전제가 생선 굽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자기가 구운 생선을 맛 본 사람들은 모두가 맛이 훌륭하다는 칭찬을 듣게 된 전제는 어촌에서 돌아와 다시 공자광을 찾아왔다. 공자광은 전제를 자기 부중의 깊은 방안에 숨어 있게 하였다. 염옹이 이를 두고 시를 지었다.

사람들은 오자서를 강직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 역시 공자광에게 전제를 바쳐 아첨했다!

왕료에 대한 시해음모가 어디서 시작 되었는지를 알려면

세 달 동안 호반에서 생선 굽는 기술을 배울 때부터라고!

剛直人推伍子胥(강직인추오자서)

也因獻媚進專諸(야인헌미진전제)

欲知弑械從何起(욕지시계종하기)

三月湖辺學炙魚(삼월호변학자어)

6. 欲制鴻鵠(욕제홍곡), 必先去其羽翼(필선거기우익)

- 홍곡을 잡으려면 먼저 그 날개를 잘라라! -

공자광이 오자서를 불러 말했다.

「전제의 요리 솜씨는 이미 경지에 달했는데 어찌하면 오왕 가까이 보낼 수 있겠소?」

「무릇 사람들이 홍곡(鴻鵠)을 마음대로 부릴 수 없는 이유는 홍곡에게 날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홍곡을 잡으시려고 하신다면 먼저 홍곡의 날개를 잘라내야 합니다. 왕료의 아들 경기(慶忌)는 그 근골은 무쇠처럼 단단하여 만부부당의 힘을 갖추고 손으로는 능히 날아가는 새를 잡을 수 있고 그 발로는 맹수를 때려잡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왕료가 경기를 늘 곁에 두고 있기 때문에 손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그의 동모제인 엄여(掩餘)와 촉용(燭庸)이 오나라의 병권을 장악하고 있어 비록 우리가 용을 붙들고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용기와 귀신도 모르는 기발한 계책이 있다 한들 어찌 일을 성사시킬 수 있겠습니까? 공자님께서 왕료를 죽이려고 하신다면 우선 이 세 사람을 왕료 곁에서 떼어 내어 멀리 보내 놓은 연후에 일을 도모해야만 대위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비록 우리의 일이 일단 성사가 되었다 하더라도 공자께서는 두 다리를 뻗고 왕자리에 앉아 계실 수 없을 것입니다.」

공자광이 머리를 숙이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머리를 쳐들고 오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대의 말이 옳소. 잠시 밭에 돌아가 있으면 그대의 말대로 일을 어느 정도 진행시켜 놓고 다시 만나 상의 드리도록 하겠소.」

오원이 즉시 작별의 인사를 올리고 자기가 살고 있던 산양의 밭으로 돌아갔다.

그해 기원전 520년에 주경왕이 재위 25년만에 죽었다. 경왕은 정비로부터 아들 둘을 낳았는데 장자는 세자로써 이름이 맹(猛)이라 했고 차남은 이름이 개(匃)라 했다. 또한 두 적자보다 나이가 많은 서자에 이름이 조(朝)라는 아들이 있었다. 경왕이 조를 평소에 총애하여 대부 빈맹(賓孟)에게 부탁하여 세자를 다시 세우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 일을 미쳐 행하기도 전에 경왕이 죽게 되었다. 경왕의 신하였던 유헌공(劉獻公) 지(摯)가 동시에 죽자 그의 아들 유권(劉券)이 부친의 작위를 이어 받았다. 유권의 자는 백분(伯蚡)이라고 했다. 평소에 빈맹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유권은 선목공(單穆公) 기(旗)와 공모하여 빈맹을 죽이고 세자 맹을 주왕으로 세웠다. 이가 주도왕(周悼王)이다. 평소에 왕자조와 사이가 좋았던 윤문공(尹文公) 고(固), 감평공(甘平公) 추(鰌), 소장공(召庄公) 환(奐)은 자기들 삼가의 가병들을 모아 상장 남궁극(南宮極)에게 주어 유권 일당을 공격하도록 했다. 유권은 양(揚)땅으로 도망치고 선기(單旗)는 왕맹(王猛)을 모시고 황(皇)땅으로 도망쳤다. 왕자조가 그의 무리에 속하는 욕힐(鄏肹)을 시켜 황(皇)땅에 가 있는 왕맹과 선기를 토벌하도록 했으나 욕힐은 오히려 싸움에서 패하여 죽었다.

당진의 경공(頃公)은 왕실에 대란이 일어난 것을 듣고 대부 적담(籍談)과 순력(荀躒)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황 땅으로 가서 왕을 도와 왕성으로 모시게 했다. 윤고도 역시 왕자조를 경(京)땅에서 주왕으로 세웠다. 그리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왕맹(王猛)이 죽자 선기와 유권은 다시 그의 동생 왕자 개(匃)를 주왕으로 세워 적천(翟泉)의 땅에 머물렀다. 이가 주경왕(周敬王)이다. 주나라 사람들은 왕개(王匃)를 동왕이라 하고 왕자조를 서왕이라 했다. 두 왕이 서로 싸워 죽고 죽이기를 6년이 넘도록 끝나지가 않았다. 얼마 후에 소환이 병으로 죽고 남궁극이 벼락에 맞아 죽자 인심이 갑자기 흉흉해졌다. 당진의 대부 순력(荀躒)이 다시 제후들의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경왕을 모시고 낙읍으로 쳐들어가 대항하는 윤고(尹固)를 사로잡자 왕자조의 군사들은 무너지고 말았다. 소환의 아들 소은(召嚚)은 자기 아버지와는 달리 사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오히려 왕자조를 공격했다. 왕자조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초나라로 달아났다. 이윽고 제후들은 성주(成周)에 성을 다시 쌓고 경왕을 모셔와 주왕의 자리에 복위시켰다. 경왕은 소은의 반복된 배신을 벌하여 윤고와 함께 시정에서 참수형에 처했다. 주나라 사람들이 쾌재를 불렀다. 이것은 나중의 일이다.

7. 계보지전(鷄父之戰)

- 오나라가 계보에서 초군을 크게 물리치다. -

주경왕(周敬王) 즉위 원년이며 오나라 왕료 재위 8년째 되던 해는 기원전 519년이다. 초나라 태자건의 생모는 초평왕에게 쫓겨난 이래로 채나라 경계의 운양(鄖陽)⑨ 땅에 살고 있었다. 이 해에 비무극은 그녀가 오원과 내통하지나 않을까 걱정한 나머지 평왕에게 간하여 잡아다 죽이려고 했다. 태자건의 모가 알고 몰래 사람을 오나라에 보내어 구원을 청했다. 오왕 요가 공자광에게 군사를 주어 운양에 가서 태자건의 모를 모셔 오라고 명했다. 공자광이 이끄는 오나라 군사들이 종리(鍾離)에 이르자 초나라 장수 원월(薳越)이 군사를 이끌고 계보(鷄父)⑩에 주둔하여 공자광의 행군을 가로막고 한편으로는 영도에 사람을 보내 급보를 띄워 구원을 청했다. 초평왕은 영윤 양개(陽匃)를 대장으로 삼아 진(陳), 채(蔡), 호(胡), 심(沈), 허(許), 돈(頓) 등 여섯 나라의 군사를 동원하여 원월을 도와 공자광의 초군을 막도록 했다. 호국의 군주 곤(髡)과 심국의 군주 영(郢)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참전하고 진나라는 대부 하교(夏嚙)를 보냈으며 채, 허, 돈 삼국도 대부들에게 군사를 주어 초나라를 돕도록 했다. 이윽고 육국의 제후군을 이끌고 계보에 당도한 양개는 호, 심, 진 삼국의 병사들은 우군으로, 돈, 허, 채 삼국의 병사들은 좌군으로 삼고, 원월의 초나라 대군은 중군이 되어 오군의 침입에 만반의 대비를 갖추었다. 오나라 공자광도 본국에 급보를 띄어 원군을 청했다. 오왕 요가 공자 엄여을 데리고 만 명의 대군과 죄인으로만 구성된 3천의 군사를 친히 이끌고 계보(鷄父)의 땅에 당도하여 진채를 세웠다. 두 나라 진영이 교전 일을 정하기도 전에 초나라 영윤 양개(陽匃)가 갑자기 폭질로 급사했다. 원월이 제후국들의 군사들을 양개를 대신하여 지휘하게 되었다. 이것을 본 공자광이 왕료에게 말했다.

「초나라의 대장이 죽어 그 군사들의 사기가 이미 꺾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후들이 이끌고 온 군사들의 수효가 비록 많다고는 하나 모두가 소국들이라 초나라의 위세를 무서워하여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선 것뿐입니다. 호와 심 두 나라의 군주는 직접 참전하였지만 그들은 모두 나이가 어리고 실전 경험이 없는 애송이에 불과합니다. 또한 진나라의 하교는 용기는 제법 있다 하나 계략을 쓸 줄 모르며, 오랫동안 초나라로부터 시달림을 받고 있는 돈, 허, 채 3국의 군사들은 마음속으로 불복하고 있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싸우려는 투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일곱 나라가 같이 참전하기는 했으나 마음이 한결 같지 않아 초나라 대장의 령은 위엄이 서지 않고 있으니 만약에 우리가 군사를 나누어 먼저 호, 심, 진 3국으로 이루어진 우군 진영을 공격한다면 그들은 달아나기 바쁠 것이고 제후국 군사들이 무너지면 초나라 본국 군사들의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어 그들로부터 전승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청컨대 먼저 우리의 약함을 보여 적군을 유인한 후에 우리의 정예병들을 후방에 배치하여 진세를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공자광의 계책을 따fms 왕료가 즉시 오나라 군사들을 3대로 나누어 자기는 중군을 맡고 공자광은 좌군을 엄여는 우군을 맡게 했다. 모든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진영을 굳게 지키도록 한 오왕은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도록 명했다. 이윽고 왕료가 명을 내려 먼저 죄인으로 구성된 3천 명의 군사를 출전시켜 초나라 우측 진영을 향하며 대오도 갖추지 않은 상태로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그 때는 가을철인 7월 그믐날이었는데 그믐날은 싸움을 하지 않았던 관습이 당시에는 있었다. 호자 곤(髡), 심자 영(逞), 그리고 진나라의 대부 하교 모두는 오나라가 감히 그믐날의 관습을 깨고 쳐들어오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싸움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오나라 병사들이 돌격해 오는 소리를 듣게 된 3국의 군사들은 허둥대며 진영의 문을 열고 앞으로 나가 적군을 맞이해 싸우려고 했다. 오나라의 군사들은 죄인으로 된 군사들이라 기율도 없이 어떤 자는 앞으로 나아가고 어떤 자는 중간에 멈추고 하여 각기 제멋대로 행동했다. 3국의 병사들은 산만하고 어지럽게 진격해 오는 오나라 군사들을 보고 서로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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