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회. 泣庭借兵(읍정차병) 退吳返國(퇴오반국) > 4부7 오자서

제77회. 泣庭借兵(읍정차병) 退吳返國(퇴오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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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4,304회 작성일 04-05-1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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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회 泣庭借兵 退吳返國(읍정차병 퇴오반국)

칠주야를 눈물로 호소하여 군사를 빌린 신포서와

오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나라를 다시 찾은 초소왕

1. 報漁丈人之恩(보어장인지은)

- 정나라를 용서하여 어장인에게서 입은 은혜를 갚다. -

오원이 수나라의 남쪽 국경에 군사들을 이끌고 주둔하고 있으면서 편지를 써서 수나라 군주에게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주나라 왕실의 자손으로써 한수 부근에 있던 거의 모든 나라는 초나라에 의해 병탄 되었습니다. 오늘 하늘이 오나라를 도와 초나라 임금에게 그 죄를 묻게 하셨습니다. 만약에 초왕 진(珍)을 잡아 바친다면 우리 오나라와는 우호를 맺고 한수 부근의 땅은 모두 수나라의 차지가 되고 우리 오왕과는 대대로 형제의 의를 지키면서 같이 주나라 왕실을 받들 것입니다.』

수나라 군주가 오원이 보낸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여러 군신들을 불러모아 상의를 하게 했다. 초나라의 자기(子期) 공자결(公子結)이 수후에게 가서 자기가 초왕과 얼굴이나 풍채가 비슷하다고 하면서 말했다.

「사태가 매우 급하니 나를 초왕으로 가장시켜 오나라 병사들에게 보내어 그 사이에 우리 왕이 몸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수후가 태사를 시켜 그 길흉을 점치게 했다. 태사가 점을 쳐서 나온 점괘를 지어 수후에게 바쳤다.

내리막이 있으면 반드시 오르막이 있고

가는 길이 있으면 반드시 오는 길이 있다.

옛 것을 버리지 말 것이며

새 것을 탐하지 말라

서쪽나라는 호랑이가 되고

동쪽나라는 호랑이 밥이 되리라!

平必陂(평필파)

往必復(왕필복)

故勿棄(고물기)

新勿欲(실물욕)

西隣爲虎(서린위호)

東鄰爲肉(동린위육)

수후가 점괘를 읽고 말했다.

「초나라는 옛것이고 오나라는 새것이다. 귀신이 우리에게 나아 갈 길을 계시하고 있다.」

즉시 오원에게 사자를 보내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우리나라는 초나라에 의지해서 지탱해 왔으며 대대로 초나라에 조공하기로 맹세한 처지라 초나라 임금이 만약 이 곳에 임한다면 우리가 감히 거절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러나 지금 초나라 왕은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 이곳에 없으니 장군께서는 우리의 처지를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오원이 낭와가 정나라에 있어 초왕도 역시 낭와를 쫓아 정나라로 간 것으로 의심했다. 또한 태자건을 살해한 정나라 군중에게 원수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 오자서는 즉시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행군하여 이윽고 정나라 교외를 포위했다.

그때 정나라에서는 현신 유길(游吉)이 얼마 전에 죽고 없었기 때문에 오나라 병사들이 쳐들어오자 정헌공(鄭獻公) 채(蠆)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두려움에 떨었다. 정군이 그 모든 일은 낭와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하자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낭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백은 낭와의 시신을 오나라 진영으로 보내면서 초나라 왕은 아직 정나라에 당도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오나라 군사들은 선뜻 물러가지 않고 기어이 정나라를 멸망시켜 태자건의 원수를 갚으려고 했다. 정나라의 여러 대부들은 성을 의지하여 죽기 살기로 일전을 하여 정나라의 존망을 정하자고 말했다. 정헌공이 듣고 말했다.

「우리 정나라 군사들과 말은 초나라의 군마들과 비교하면 어느 편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오? 우리보다 수십 배나 강한 초나라도 싸움에서 졌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조그만 나라가 어찌 오나라 병사들에게 대항할 수 있겠소?」

정백이 즉시 령을 내려 나라 안에 방을 붙이게 했다.

「능히 오나라 군사를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과인이 정나라를 나누어 그와 함께 다스리겠노라!」

이윽고 방을 붙인 지 3일 째 되는 날이었다. 그 때 마침 악저(鄂渚)①땅 어장인(漁丈人)의 아들이 오나라 군사들을 피해 도망 쳐와 정나라 도성 안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 오나라 군사들의 대장이 오원임을 알게 된 그는 즉시 정백을 찾아와 알현을 청하면서 말했다.

「제가 능히 오나라 군사들을 물러가게 할 수 있습니다.」

헌공이 말했다.

「경이 오나라 군사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필요한 병거와 군사들이 얼마나 있어야 되겠소?」

어장인의 아들이 대답했다.

「신에게는 단 한 명의 군사도, 단 한 말의 양식도 필요 없습니다. 단지 배 젓는 노 한 개만 주십시오. 제가 그것을 메고 오나라 진영으로 가면서 노래 한 곡조만 부르면 오나라 군사들은 저절로 물러날 것입니다.」

정백이 믿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별다른 대책이 없었음으로 할 수 없이 좌우에게 명하여 노 한 개를 가져와 어장인의 아들에게 주면서 말했다.

「그대의 말대로 오나라 군사들을 물러가게 할 수만 있다면 과인이 어찌 그대에게 내리는 상을 아까워하겠는가?」

어장인의 아들은 정나라 도성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곧바로 오나라 진영으로 가서 그 앞에서 들고 있던 노를 두드리면서 노래를 불렀다.

갈대밭 속의 사람이여! 갈대밭 속의 사람이여!

허리에는 보검 칠성검을 차고

강을 건널 때 잊었는가?

보리밥과 생선국을!

蘆中人! 蘆中人!(노중인, 노중인)

腰間寶劍七星劍(요간보검칠성검)

不記渡江時(불기도강시)

麥飯鮑漁羹(맥반포어갱)

오나라 군사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던 어장인의 아들을 붙잡아 오원에게 데리고 왔다. 그가 오원 앞에 끌려와서도 노중인(蘆中人)으로 시작되는 노래를 다시 불렀다. 오원이 듣고 깜짝 놀라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그 노래를 알고 있소?」

어장인의 아들이 노를 들면서 오원을 향해 말했다.

「장군께서는 저의 손에 들려 있는 노를 보시지 못하십니까? 저는 곧 악저 땅에 살았던 어장인의 아들입니다.」

오원이 듣고 마음이 측연해져서 말했다.

「그대의 부친이 나로 인해 목숨을 끊어 내가 그에 대한 보답을 하고자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 방법을 찾지 못해 한탄하고 있었소. 오늘 다행히 그대를 만나 기쁘기 한이 없소. 그대가 노래를 불러 나를 보기를 청했으니 나에게 바라는 바가 있을 것이니 무엇이든지 말해 보기 바라오.」

어장인의 아들이 대답했다.

「달리 바라는 바는 없습니다. 단지 정나라 군주가 장군이 이끌고 온 병사들을 두려워하여 나라 안에 령을 내려 오나라 병사들을 물러가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라를 나누어 같이 다스리겠다고 했습니다. 신이 생각하기에 돌아가신 저의 부친께서 장군을 창졸지간에 만난 인연이 있어 오늘 장군께 정나라의 용서를 빌고자 온 것입니다.」

오원이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해 마지않았다.

「오호라! 이 오원이 오늘이 있게 된 것은 모두가 어장인이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 준 덕분이라! 하늘이 저렇게 창창한데 내가 어찌 그 은혜를 잊을 수 있겠는가?」

오원은 즉시 그날로 령을 내려 정나라 교외의 포위망을 풀고 군사를 이끌고 물러갔다. 어장인의 아들이 돌아와 정백에게 오나라 군사들이 물러갔음을 고했다. 정백이 크게 기뻐하면서 정나라 땅 중에 사방 백 리의 땅을 떼어 어장인의 아들을 그 곳에 봉했다. 정나라 백성들이 어장인의 아들을 어대부(漁大夫)라고 불렀다. 지금도 진수(溱水)와 유수(洧水)② 사이의 장인촌(丈人村)이라고 있는데 그 곳이 즉 어장인의 아들이 봉해진 땅이다. 염옹이 이일을 두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갈대 섬에서의 밀어로 생사가 갈라지고

노를 들고 크게 부르는 노래는 마치 초가와 같았다.

삼군은 이미 물러가고 봉토을 나누어 받았으니

당시 강 위에서 받은 은혜를 갚았음이라!

密語蘆洲隔死生(밀어로주격사생)

橈歌强似楚歌聲(요가강사초가성)

三軍旣散分茅土(삼군기산분모토)

不負當時江上情(불부당시강상정)

오원은 정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고 군사를 돌려 초나라 경계에 주둔하고는 각기 군사를 나누어 길을 지키게 하고는 본대는 미(穈)③땅에 영채를 세우게 하고 그곳에 머물면서 사방의 초나라 속국에 사신을 보내어 항복을 권하고 겸하여 초소왕의 행방을 탐문하였다.

2. 日暮途遠(일모도원)

- 해는 지는 데 갈 길은 멀구나! -

한편 신포서(申包舒)는 영도가 함락되자 몸을 피하여 이릉(夷陵)④의 석비산(石脾山) 산중으로 도망쳤다가 오자서가 평왕의 묘를 파고 시신을 꺼내어 채찍질을 하고 이어서 소왕의 행방을 찾아다니며 잡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를 써서 사람 편에 들려 오자서에게 보냈다. 신포서의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자네는 옛날 평왕을 신하의 신분으로 북면하여 모셨던 처지였으나 지금은 그의 시신에다가 칼질을 하고 욕을 보였으니 그대가 비록 원수를 갚는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지 않는가? 모든 일은 정도가 지나치면 반작용이 일어나는 법이네. 이에 자네는 이쯤해서 마땅히 군사를 물리쳐 돌아가가게나. 그렇지 않고 계속 초나라에 머문다면 내 마땅히 옛날 그대에게 맹세한 초나라의 복국에 대한 약속을 실천하겠네!」

오원이 신포서의 편지를 받아 읽고 나더니 반 시진 정도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신음만 하더니 곧 이어 편지를 가져온 사자를 향하여 말했다.

「내가 군무에 분주하여 편지를 쓸 시간이 없다. 내가 너의 입을 빌리고자 하니 옛날 신공과 나눈 친구의 정리를 전하여 주기 바란다. ‘충효를 양전하지 못했고, 그리고 나에게는 갈 길은 먼데 해는 이미 저물어 바쁜 마음에 이렇듯 거꾸로 행하여 원수를 갚았을 뿐이라네!’」⑤

사자가 돌아와 보고하자 신포서가 말했다.

「자서가 기어코 초나라를 멸하려는 구나! 내가 어찌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3. 泣庭借兵(읍정차병)

- 섬진의 궁궐 뜰에 엎드려 7주야를 울어 군사를 빌린 신포서 -

초평왕의 부인은 곧 진애공(秦哀公)의 누이동생이기 때문에 평왕의 아들 초소왕은 곧 애공의 생질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신포서는 섬진으로 들어가 초나라의 위급함을 알리고 구원병을 청해야겠다고 결심한 신포서는 그 즉시 석비산을 나와 섬진을 향해 밤낮으로 길을 달려갔다. 신포서의 발바닥은 물집이 잡히고 갈라졌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바닥에서 피가 흘러 길을 적시었고 옷은 찢어져 속살이 다 보이게 되었다. 2천 리 길을 쉬지 않고 걸어 마침내 섬진의 도성 옹성(雍城)에 당도한 신포서는 애공을 배알하고 말했다.

「오나라는 탐욕스럽기가 마치 돼지와 같고 악독하기가 독사와 같습니다. 오나라는 천하의 제후국들을 모두 집어삼킬 계획을 세우고 먼저 초나라부터 쳐들어온 것입니다. 우리 주군께서 사직을 지키지 못하고 잡초만 우거진 황량한 벌판으로 몸을 피하시면서 특별히 신에게 명하여 초나라의 위급함을 상국에 고하게 했습니다. 원컨대 여동생의 아들이라는 정리를 생각하시어 일단의 군사를 내어 초나라의 위기를 구해주소서!」

「우리 섬진은 서쪽의 외딴 곳에 자리 잡은 변방의 조그만 소국이라, 군사의 수효는 적고 장수는 부족하여 스스로 지키기에도 바쁜 실정이오. 어찌 다른 나라를 위해 군사를 일으킬 수 있겠소?」

「초와 섬진은 서로 국경이 접해 있어 침략을 당한 초나라를 구하지 않고 좌시만 하다가 만약 오나라가 초나라를 멸한다면 그 다음에는 필시 그 화가 섬진에 미칠 것입니다. 군주께서 초나라를 구원하여 존속케 한다면 섬진의 안위도 공고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초나라를 구해 섬진의 편에 서게 한다면 어찌 오나라를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또한 초나라 백성들을 위무하여 나라를 존속케 하고 제사를 끊이지 않게 한다면 초나라는 진심으로 그 덕에 감사하여 연년세세로 북면하여 신하의 예로써 섬진을 모시게 될 것입니다.」

애공이 주저하며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말했다.

「대부는 잠시 역관에 머물러 휴식을 취하기 바라오. 그 동안 내가 군신들과 상의하여 보리다.」

「우리 주군께서는 잡풀만 우거진 황량한 벌판에서 방황하며 몸 쉴 곳도 찾지 못하고 계시온데 그 신하인 제가 어찌 감히 역관에 들러 몸을 편히 쉴 수 있겠습니까?」

그때 섬진의 애공은 음주에 빠져서 나라 일을 전혀 돌보지 않고 있었다. 신포서가 더욱 절박한 심정으로 구원군의 파견을 청했으나 애공은 결코 군사를 내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포서는 머나먼 길을 오느라 다 헤진 의관도 갈아입지 못한 상태로 섬진국 조정의 뜰에 엎드려 밤낮으로 목소리를 높여 통곡하여 그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그와 같이 7일 밤낮을 계속해서 통곡을 하면서 한 모금의 물이나 음식을 취하지 않았다. 애공이 듣고 크게 놀라 말했다.

「초나라 신하가 그들 임금의 위급함을 이렇듯 간절하게 생각한단 말인가? 초나라에는 아직도 이와 같은 현신이 있음에도 오나라가 여전히 초나라를 멸하려고 하는구나! 과인에게는 저와 같은 현명한 신하조차 없으니 오나라가 초나라를 멸한 후에 우리나라로 쳐들어온다면 어찌 그들을 막을 수 있겠는가?」

애공이 눈물을 흘리며 <무의(舞衣)>⑥라는 시를 지어 싸움터에 들고 나갈 깃발에 쓰게 하였다.

어찌 옷이 없다고 하는가?

그대와 같이 입으리라!

내가 군사를 일으킬 테니

그대와 함께 원수를 무찌르리라!

豈曰無衣(개왈무의)

與子同袍(여자동포)

王于興師(왕우흥사)

與子同仇(여자동구)

신포서가 애공에게 머리를 조아려 감사의 말을 올리고 나서야 가져온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섬진의 애공은 자포(子蒱)를 대장으로 자호(子虎)를 부장으로 삼아 전차 5백 승을 이끌고 신포서를 따라가서 초나라를 구하라고 명하였다. 신포서가 자포와 자호에게 말했다.

「우리 임금이 지금 수나라에 있으면서 구원군을 기다리기를 마치 큰 가뭄 뒤에 한 줄기 비를 갈망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과 같이 하고 계십니다. 이 포서가 먼저 한 걸음에 우리 임금이 계시는 곳으로 달려가 이 일을 알려야 되겠습니다. 원수들께서는 우선 상(商)⑦과 곡(穀)⑧ 두 땅을 경유하시어 동쪽으로 나아가시면 5일이면 양양(襄陽)⑨에 이르실 것입니다. 그곳에서 행군로를 남쪽으로 꺾으면 바로 형초(荊楚)에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이 포서는 남아있는 초나라 군사들을 끌어 모아 석량산(石梁山) 남쪽으로 나오겠습니다. 생각하건대 지금부터 두 달 후면 원수의 부대와 그곳에서 합류하겠습니다. 지금 오나라 병사들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필시 아무런 방비도 세우지 않고 또한 그들이 자기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되어 귀국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들의 일부 군사들만이라도 파할 수만 있다면 오나라 군사들은 스스로 무너질 것입니다.」

자포가 듣고 말했다.

「우리는 초나라로 들어가는 빠른 길은 모르고 있으니 필시 초나라가 군사를 내어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대부께서는 절대 우리와 약속한 기일을 어기지 마십시오.」

4. 楚秦聯軍 打敗吳師(초진연군 타패오사)

- 초진 연합군이 오군을 격파하다. -

신포서가 섬진의 장수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밤낮으로 말을 달려 수나라로 들어가서 소왕을 알현하고 말했다.

「소신이 섬진에 가서 구원군을 청해 얻었습니다. 섬진군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미 출병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중입니다.」

소왕이 뛸 듯이 기뻐하며 옆에 있던 수후를 보고 말했다.

「태사의 점괘에 ‘서쪽에 있는 나라가 호랑이로 변하여 동쪽의 나라를 먹이로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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