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회. 夾谷却齊(협곡각제) 墮城伏法(타성복법) > 4부7 오자서

제78회. 夾谷却齊(협곡각제) 墮城伏法(타성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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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4,336회 작성일 04-05-1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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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회夾谷却齊 伏法聞人(협곡각제 복법문인)

협곡의 회맹에서 제나라의 불손함을 물리치고

요설을 퍼뜨리고 다니는 문인(聞人)을 법에 따라 처형한 공자

1. 노국문정(魯国紊政)

- 삼환(三桓)은 군주를 능멸하고 가신들은 다시 삼환을 능멸하다.

한편 제경공은 초나라를 정벌할 능력이 없는 당진에게 천하의 인심이 밤하늘의 별처럼 흩어지는 모습을 보고 자기가 당진을 대신하여 패자가 되려는 마음이 더욱 급하게 되었다. 경공은 즉시 위(衛)와 정(鄭) 두 나라를 규합하여 스스로 맹주라 칭했다. 이어서 경공은 옛날에 계손의여(季孫意如)에 의해 군위에서 쫓겨난 노소공(魯昭公)을 다시 노후의 자리에 앉히려고 했으나 의여가 완강하게 항거하며 경공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이에 제나라의 힘만으로는 불가하다고 생각한 노소공은 할 수 없이 마음을 고쳐먹고 당진에 구원을 요청했다. 당진의 대신 순력(荀躒)이 의여로부터 뇌물을 받고 역시 노소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공은 나라 밖에서 방황하다가 병이 들어 객사했다. 의여는 즉시 태자 연(衍)을 폐하고 그 동모제 무인(務人)과 상의하여 소공의 서자인 공자 송(宋)을 세워 군위에 앉혔다. 이가 노정공(魯定公)이다. 계손씨가 당진의 순력에게 뇌물을 바쳐 서로 통하게 되어 노나라는 자연히 당진을 섬기게 되었다. 제경공이 대노하여 국씨 집안의 대신 국하(國夏)를 장수로 삼아 수시로 노나라 영토를 침략했다. 그러나 노나라는 반격할 힘이 없었다. 그 사이에 얼마 후에 의여가 죽고 계강자(季康子) 사(斯)가 그 뒤를 이었다. 노나라는 소공 때부터 계손씨(季孫氏), 맹손씨(孟孫氏), 숙손씨(叔孫氏) 등 삼환씨(三桓氏)에 의해 이미 삼분되어 있었다. 삼환이란 노환공(魯桓公)의 세 아들들 후손들을 말한다. 삼환씨들은 노나라의 땅을 삼분하여 모두 자신들의 영지로 삼은 후에 각기 가신들을 보내 다스리게 했음으로 노나라 공실에 속한 신하는 한 명도 없게 되었다. 그러자 다시 삼환씨 가신들도 각기 권력을 빼앗아 자기들 마음대로 휘둘러 그 주인들을 능욕했다. 근자에 이르러 계강자 사(斯), 맹의자(孟懿子) 무기(无忌), 숙손무숙주구(叔孫武叔) 주구(州仇)가 이끄는 삼가가 정립하여 있었지만 각각의 가신들이 삼가의 봉지에 거주하면서 직접 다스려 모든 것을 자기들 사유물로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삼가의 종주들이 아무리 호령을 해도 가신들은 그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결국 세 집안은 모든 힘을 자기들 가신들에게 빼앗겨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계손씨의 종읍(宗邑)인 비(費)① 땅의 읍재(邑宰)는 공산불뉴(公山不狃)였고, 맹손씨의 종읍인 성(郕)② 땅의 읍재는 공렴양(公斂陽)이었다. 숙손씨는 종읍이 후(郈)③ 땅이었는데 공약막(公若藐)이 그 읍재로 있었다. 삼가는 공히 그 종읍들의 담벽을 높이 쌓아 성을 축조했는데 모두가 삼가의 사유재산으로 축조하여 그 견고하기가 곡부의 도성과 같았다. 그 세 명의 읍재 중 계손씨의 공산불뉴가 가장 세력이 크고 흉포한 자였다. 다시 그에게는 자가 화(貨)인 양호(陽虎)라는 가신이 한 명 있었다. 어깨는 수리처럼 벌어졌고 넓은 이마에 신장은 아홉 자가 넘은 장대한 체구의 양호는 힘이 장사였고 지모도 출중했다. 계손사(季孫斯)가 처음에 심복으로 삼아 그를 자기 집안의 일을 맡아보는 집사의 일을 시켰으나 후에 계씨 집안의 일을 전단하여 자기 마음대로 권세를 부리고 은혜를 베풀었다. 계손씨들은 오히려 양호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나 어쩌는 도리가 없었다.

그때 노나라에는 소정(小正)④ 벼슬을 하고 있던 묘(卯)라는 자가 있었는데 위인이 박학하고 무엇이든지 한번 들으면 잊어 먹는 일이 없는 기억력이 비상한 자였다. 교언에 능한 그를 사람들은 그를 널리 들어 무엇이든지 알고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 문인(聞人)’이라고 불렀다. 삼환씨 사람들은 그를 높이 받들었다. 소정묘(小正卯)는 같은 일에 대해서도 면전에서는 옳다고 하고 등을 돌리면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표리가 부동하게 행동하고 다녔다. 삼가의 사람들을 만나면 군주를 잘 보좌한 공로가 있다고 그들을 칭송하고, 양호(陽虎) 등을 만나면 다시 군주의 세력을 강하게 하고 삼환씨의 세력을 억제해야 한다고 했다. 삼환씨의 가신들에게 노후를 받들어 삼가를 호령하라고 사주하여 그들의 상하를 마치 물과 불처럼 서로 용납하지 못하도록 이간 시켰으나 사람들은 모두가 그의 말을 듣고 즐거워만 했지 아무도 그의 간교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맹의자 무기(无忌)⑤는 곧 중손확(仲孫玃)의 아들이고 중손멸(仲孫蔑)의 손자였다. 중손확이 살아 있었을 때 공자의 이름을 사모한 그는 아들 무기를 보내 예학을 공부하라고 시켰다.

2. 聖人孔子(성인공자)

- 기원전 551년 공상(空桑)에서 태어나는 공자

공중니(孔仲尼)라는 사람은 이름이 구(丘)라 했는데 그 부친은 숙량흘(叔梁紇)이다. 그는 옛날 추읍(鄒邑)⑥의 대부로써 복양성(偪陽城) 싸움에서 현가식 성문을 밑에서 두 손으로 받쳐 올린 용사였다⑦. 숙량흘은 노나라 시씨(施氏) 집안의 딸에게 장가를 갔으나 딸만 많이 낳고 아들은 얻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첩을 얻어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이름을 맹피(孟皮)라 했다. 맹피가 어릴 때 발에 병이 들어 결국은 성인이 되자 폐인이 되었다. 숙량흘이 다시 후사를 얻기 위해 안씨(顔氏) 집안에 구혼을 청했다. 안씨에게는 딸이 다섯이 있었는데 모두가 시집을 가기 전이었다. 안씨가 숙량흘의 나이가 이미 들어 달갑지 않게 생각하면서 그의 딸들에게 물었다.

「누가 추대부에게 출가하겠느냐?」

딸들이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자 징재(徵在)라고 부르던 가장 어린 딸이 나와서 자원하며 대답했다.

「여자의 길이란 집에 있을 때 부모의 뜻에 따라야 하는 법입니다. 단지 부친의 명을 따를 뿐인데 어찌하여 싫고 좋음을 물으십니까?」

안씨가 징재의 말을 기특하게 여겨 즉시 그녀를 숙량흘에게 시집을 보내기로 했다. 징재가 숙량흘에게 출가해서 같이 살았으나 부부사이에 아들이 없어 서로 걱정했다. 부부가 같이 하늘에 기도를 하기 위해 니산(尼山)의 계곡으로 갔다. 징재가 니산에 오르자 초목의 잎들이 그녀를 향해 꼿꼿이 일어서더니, 기도를 마치고 내려올 때는 잎사귀들이 밑으로 향하였다. 그날 밤 흑제(黑帝)가 징재의 꿈에 나타나서 당부의 말을 했다.

「너는 성인(聖人)을 낳으리라! 산달이 다가 오거든 반드시 공상(空桑)8)이 있는 곳을 찾아가 낳아야 하느니라!」

징재가 꿈에서 깨어난 그날 태기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징재가 황홀지간에 꿈을 꾸었다. 노인들 다섯이 뜰에 줄을 지어 서 있으면서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들은 다섯 별의 정령이라고 했다. 그들은 짐승 한 마리를 끌고 있었는데 크기는 마치 작은 소만하고 뿔은 하나고 몸통의 무늬는 용의 비늘 같았다. 그 짐승이 징재를 향하여 엎드리더니 옥으로 만든 자 하나를 토해 냈다. 옥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써 있었다.

「물의 정령 아들이여! 쇠약해진 주왕실을 대신할 지위 없는 왕이 될지어다.」⑨

징재가 비록 꿈속에서였지만 기이하다고 생각하여 비단 실로 만든 끈을 풀어 그 짐승의 뿔에 메어 주었다. 징재가 잠에서 깨어 숙량흘에게 그 꿈 이야기를 했다. 숙량흘이 듣고 말했다.

「그것은 필시 기린(麒麟)이라는 짐승일 것이오.」

이어서 산달이 다가오자 징재가 숙량흘에게 물었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공상이라는 지명을 갖고 있는 곳이 있습니까?」

「남산에 빈 동굴이 하나 있는데 그 굴은 돌로 만든 문이 있으나 물이 없어 사람들이 그 굴을 공상이라고 부르고 있소.」

「제가 장차 그곳에 가서 해산을 해야 되겠습니다.」

숙량흘이 징재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징재가 옛날에 꾼 꿈 이야기를 했다. 즉시 징재가 침구를 챙겨서 남산의 빈 동굴로 갔다. 그날 밤 푸른색 용 두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남산의 좌우를 지키고 다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두 사람이 이슬을 그릇에 받아 모아서 징재의 몸을 씻긴 다음 얼마간 같이 있다가 하늘로 다시 돌아갔다. 징재가 이어 공자를 낳았다. 동굴의 돌로 만든 문에서 갑자기 맑은 샘물이 흐르기 시작했는데 그 물은 따뜻했다. 징재가 그 물로 갓 태어난 아이를 목욕시켰다. 목욕을 끝내자 샘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때가 주영왕 21년, 기원전 551년으로 노양공 22년의 일이었다.⑩

오늘날도 곡부시 남쪽 28리 되는 곳에 여릉산(女陵山)이라고 있는데 그곳이 공자가 태어난 공상이다. 공자는 날 때부터 용모가 다른 사람과는 달리 특이했다. 입술은 소를, 손바닥은 호랑이를 닮았고 어깨는 원앙새처럼 넓었다. 뒷등은 고기등처럼 생겼으며 입과 인두는 넓었고 정수리는 그 가운데는 낮고 주변은 튀어나왔다⑪. 그의 부친 숙량흘이 공자의 생김새를 보고 말했다.

「이 아이는 니산(尼山)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구나!」

그래서 공자의 이름을 니산의 언덕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구(丘)라 하고 자는 중니라 했다. 중니가 태어난 지 얼마 후에 숙량흘이 죽었다. 그의 모친 징재가 홀몸이 되어 중니를 키웠다. 공자가 이미 성인이 됨에 따라 그의 신장은 아홉자 육촌12)에 이르게 되자 사람들이 중니를 ‘ 키다리(長人)’이라고 불렀다. 중니에게는 덕이 있어 아무리 배워도 싫어하는 법이 없었다. 공자가 열국을 돌아다니며 제자를 길러 천하에는 중니의 제자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열국의 군주들은 중니의 명성을 듣고 공경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국정을 담당한 권신들과 귀척들은 중니가 국사를 맡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세상의 군주들은 결국 그를 불러다 쓸 수 없었다. 중니가 노나라에 있을 때, 맹손무기가 계손사에게 공자를 천거하면서 말했다.

「지금 안팎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우리 노나라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공자를 불러 정사를 맡겨야만 합니다.」

계손사가 공자를 불러 종일토록 이야기하였는데 공자의 마음 속은 마치 큰 강이나 바다와 같아 실로 그 뜻을 헤아려 도저히 엿볼 수 없었다. 장시간의 대화로 인해 피로해진 계손사가 내실로 들어가 옷을 바꿔 입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자기의 봉읍인 비읍에서 사람이 달려와 고했다.

「우물을 파다가 땅 속에서 큰 항아리(부:缶)⑬를 하나 파냈는데 그 안에는 양 같은 짐승 한 마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짐승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어 이렇게 아뢰는 것입니다.」

계손사가 공자의 학문을 시험해 볼 생각으로 봉읍에서 온 사람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이르고는 다시 공자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돌아가서 자리에 좌정한 후에 물었다.

「우리 집안의 봉읍에서 우물을 파다가 땅 속에서 개를 닮은 짐승을 한 마리 발견했습니다. 그 짐승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혹시 알고 있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그것은 필시 개가 아니라 양의 형상을 닮았을 것입니다.」

계손사가 놀라 물었다.

「어떻게 그것이 양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산에 사는 귀신은 기(夔)⑭14)와 망량(魍魎)⑮이라 하고 물에 사는 귀신은 용망상(龍罔象)⑯, 땅 속에 사는 귀신은 분양(羵羊)⑰이라 합니다. 우물을 파다가 땅 속에서 얻었다 하니 그것은 필시 양의 모습을 하고 있는 분양이 틀림없습니다.」

「어찌하여 그 괴물을 분양(羵羊)이라고 부릅니까?」

「그것은 수컷도 아니고 암컷도 아니고 다만 그 형태만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손사가 즉시 비에서 온 사람을 불러 땅 속에서 나온 괴물의 모습에 대해 물었다. 비에서 온 사람이 대답하기를 그 괴물은 과연 암수를 구별할 수 없었다고 했다. 계손사가 크게 놀라 말했다.

「중니의 학문은 아무도 따르지 못하겠구나!」

계손사가 이어 공자를 중도(中都)⑱의 재(宰)로 삼았다. 이 일로 인하여 공자에 대한 소문이 초나라에까지 전해져 초소왕이 공자에게 예물을 들려 사람을 보내 옛날에 자기가 청발수(淸發水)를 건널 때 강물 속에서 얻은 이름을 알 수 없었던 과일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사자에게 대답했다.

「그것의 이름은 평실(萍實)입니다. 껍데기를 쪼개서 안에 있는 과실은 먹을 수 있습니다.」

사자가 다시 물었다.

「선생은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내가 옛날에 초나라에 갈 때 강을 건너기 위해 나루터에서 배를 기다리다가 어린 동자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초왕이 강물을 건너다 평실을 얻었네!

크기는 말통만 하고 붉기는 작렬하는 해와 같았네!

껍질을 벗겨 먹어 보니 감미롭기가 꿀과 같구나!

楚王渡江 得萍實(초왕도강 득평실)

大如斗赤如日 (대여두 적여일)

剖而嘗之 甛如蜜(부이상지 감여밀)

그래서 제가 이 노래를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초나라 사자가 물었다.

「그 평실이라는 과일은 다시 구해 먹을 수 있습니까?」

「평실이라는 과일은 뿌리가 없이 강물 위를 떠다니다가 우연히 서로 얽혀 열매를 맺는 식물입니다. 비록 천년을 기다린다 해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진귀한 물건입니다. 이것은 곧 흩어진 것이 다시 모이거나 쇠한 것이 다시 부흥하려고 할 때 나타나는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가히 초왕께 경하를 드릴만한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사자가 돌아와 공자의 말을 초소왕에게 전했다. 소왕이 듣고 탄복해 마지않았다. 공자가 중도(中都)를 맡아 다스리자 크게 다스려져 사방의 모든 제후들이 사람을 보내 공자가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게 하여 그것을 법으로 삼았다. 노정공⑲이 공자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불러서 사공(司空)⑳으로 삼았다.

3. 陽虎之亂(양호지란)

- 노나라의 양호가 란을 일으키다.

주경왕(周敬王) 19년 즉 기원전 500년, 노나라에서 양호(陽虎)가 정권을 잡기 위해 란을 일으켰다. 그때 숙손씨 문중에서 따돌림을 받고 있던 숙손첩(叔孫輒)은 비읍(費邑)의 읍재 공산불뉴(公山不狃)와 교분이 두터웠다. 두 사람과 모의한 양호는 먼저 계손씨와 중손씨들을 죽여 제거한 다음 공산불뉴는 계손사의 자리에, 숙손첩은 숙손씨들의 종주에, 자신은 맹손무기의 자리를 대신하여 노나라의 정권을 탈취하려고 했다. 한편 평소에 공자의 어짐을 경모한 양호는 공자를 불러 자기의 문하에 두어 도움을 받으려고 하였다. 양호가 사람을 시켜 공자를 불렀으나 공자는 그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다시 양호가 삶은 돼지를 공자의 집으로 보냈다. 양호로부터 음식을 받은 공자가 말했다.

「양호가 나를 회유하기 위해 음식을 보내 왔는데 내가 가서 거절하는 말을 해 주어야지 그렇지 않다면 그가 직접 와서 나를 강요할 것이다.」

공자가 즉시 제자 한 사람을 양호의 집에 보내어 그가 외출하기를 기다렸다가 자기의 명패를 양호의 집 문 안으로 던져 넣고 돌아오게 하였다. 양호는 결국 공자의 뜻을 굽힐 수 없었다. 공자가 맹손무기를 찾아가 조용히 말했다.

「양호가 필시 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의 첫 번째 공격 대상은 계손씨입니다. 대부께서는 미리 대비를 하고 있어야 화를 면할 수 있습니다.」

무기는 공자의 말을 듣고 노성의 남문 밖에 자기의 집을 새로 짓는다고 핑계를 대고 재목들을 날라다 방책을 세우고 목장에서 가축을 키우는 힘께나 쓰는 장사 300명을 뽑아 고용하였다. 겉으로는 공사를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으나 실은 양호가 난을 일으킬 때를 대비한 것이다. 또한 성읍의 읍재 공렴양(公斂陽)에게 사람을 보내어 병장기를 정비한 후에 명이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연락을 받으면 즉시 밤낮으로 달려 구원을 오라고 당부해 두었다.

그해 가을 8월 노나라가 체제(禘祭)㉑를 올리는 의식을 치르게 되자 양호는 제례가 끝난 다음 날 교외의 창포 밭에서 잔치를 열어 계손사를 초청했다. 무기가 듣고 말했다.

「양호가 계손사를 위해 잔치를 연다고 하니 수상한 일이로구나! 이것은 필시 음모가 있음에 틀림없다.」

맹손무기는 즉시 사람을 자기의 봉읍에 보내 공렴양에게 자기의 명을 전하게 했다. 그는 공렴양으로 하여금 그 날 중으로 무장한 군사들을 이끌고 곡부성의 동문을 우회하여 남문으로 달려오라고 하고 자기는 방책에 머물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하였다. 이윽고 잔치 날이 되자 친히 계손씨 부중으로 간 양호는 계손사에게 자기가 준비한 잔치에 참석해 주기를 청했다. 양호를 태운 수레가 계손사가 탄 마차의 앞을 인도하고 양호의 동생 양월(陽越)은 그 뒤에서, 그리고 좌우에도 모두 양씨 일당들이 호위하였다. 단지 임초(林楚)라는 마부한 사람만은 대를 이어 계씨 집안의 문객 노릇을 한 사람이었다. 계손사가 마음속으로 변이 있을까 의심이 일어 임초에게 조용히 말했다.

「너는 능히 이 수레를 남문 밖에 있는 맹손씨 별장으로 몰고 갈 수 있겠느냐?」

임초가 그 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행렬이 큰 대로에 이르렀을 때 임초가 갑자기 말고삐를 낚아채더니 수레의 방향을 성의 남문 쪽으로 바꾼 후에 채찍으로 계속 말을 때려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말이 놀라 전 속력으로 달렸다. 양월이 뒤따라오다가 달아나는 계손사의 모습을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마차를 멈추어라!」

임초가 못 들은 체 하고 계속해서 채찍으로 때리자 말이 속도를 내어 마차는 더욱 빨리 달렸다. 양월이 노하여 활에 화살을 메겨 임초를 향해 쏘았으나 맞지 않았다. 양월도 역시 계손사가 탄 마차를 뒤쫓기 위해 채찍으로 말을 휘두르다가 마음이 다급한 나머지 말채찍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양월이 땅에 떨어진 채찍을 주어 들었을 때는 계손사의 마차는 이미 멀리 사라져 버린 다음이었다. 계손사가 남문 밖으로 나가 곧바로 맹손무기가 세운 채책(寨冊) 안으로 들어갔다. 계손사가 채책의 문을 닫으라고 명한 후에 큰 소리로 외쳤다.

「맹손은 빨리 나와 나를 구하시오!」

활과 화살로 3백의 장사들을 무장시킨 맹손무기는 채책 안에 숨어서 양호의 무리들이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양월이 일당들을 이끌고 채책 앞으로 달려와 공격하였다. 3백의 장사들은 일제히 채책 안에서 화살을 쏘았다. 수많은 양월의 부하들이 화살에 맞아 땅위에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반격에 양월은 몸에 화살을 무수히 맞고 숨이 넘어갔다.

한편 양호가 계손사의 마차를 인도하기 위해 앞서 달려가다가 마차가 보이지 않자 즉시 방향을 왔던 길로 돌려 큰길에 다시 나와 사람들에게 물었다.

「상국이 탄 마차를 보았는가?」

길 가던 사람이 말했다.

「말이 갑자기 놀란 것 같더니 남쪽으로 향해 달려갔습니다.」

양호가 미처 다른 말을 다 물어 보기도 전에 양월을 따라갔던 패졸들이 달려와 사건의 전말을 고했다. 그때서야 양호는 그의 동생이 도망치는 계손사를 쫓아갔다가 활에 맞아 죽고 계손사는 이미 맹손씨들이 새로 지은 별채로 들어가 숨어 버린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양호가 대노하여 부하들을 이끌고 궁궐로 쳐들어가 노정공을 붙잡아 나오다가 마침 궁궐로 오고 있던 숙손주구(叔孫州仇) 마저도 붙잡아 정공과 같이 그들 행렬에 앞세웠다. 궁궐의 모든 병사들과 숙손씨들의 가병들을 동원한 양호는 남문 밖 맹손씨의 별채를 공격했다. 맹손무기가 3백 명의 장사와 함께 양호의 공격을 잘 막아냈다. 양호가 명을 내려 별채를 두르고 있던 목책을 불사르라고 했다. 계손사가 듣고 크게 두려워했다. 맹손무기가 하늘을 쳐다보니 그때가 마침 중천에 떠 있는 해를 보고 계손사를 향해 말했다.

「성읍의 군사들이 당도할 때가 되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기가 말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목책 밖 동쪽에서 한 사람이 용맹한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말을 타고 앞장서 달려오면서 목책을 향해 자기들이 왔음을 소리쳐 알렸다.

「나의 주인을 어떤 자가 해치려 하느냐? 이 공렴양이 용서하지 않겠다.」

양호가 듣고 대노하여 자루가 긴 과를 움켜잡고 공렴양과 싸우기 위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두 사람의 장수가 각기 자기들의 무예를 뽐내어 5십 여 합을 싸웠다. 양호는 싸울수록 더욱 기세가 사나워지는데 비해 공렴양은 기력이 떨어져서 양호와 더 이상 대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 숙손주구가 양호의 뒤에서 갑자기 되돌아서더니 소리쳤다.

「양호가 싸움에서 졌다!」

주구가 소리를 친 다음 재빨리 자기의 가병들을 데리고 정공을 호위하고 서쪽으로 달아나 버렸다. 궁궐에서 차출한 병사들도 역시 숙손주구를 의 뒤를 따라 달아났다. 무기가 장사들을 이끌고 목책 밖으로 나와서 양호를 뒤에서 협공하였다. 그때 마침 계손씨의 가신 점월(苫越)도 그들의 가병들을 이끌고 계손사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자 양호는 고립되어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일이 이미 잘못되어 물건너 간 것으로 생각하고 즉시 과를 거꾸로 들더니 수레의 방향을 돌려 도망쳐 환양관(讙陽關)㉒으로 들어가 농성하였다. 세 집안의 가병들이 힘을 합쳐 환양관을 공격하자 양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부하들에게 내문(萊門)을 불태우라고 명했다. 삼가의 가병들이 불을 피해 잠시 물러난 틈을 이용하여 양호는 불길 속을 뚫고 환양관을 탈출하여 제나라로 도망쳤다. 양호는 제경공을 알현하고 자기가 오랫동안 머물면서 다스렸던 환양의 땅을 바친다고 하면서 제나라로부터 군사를 빌려 노나라를 정벌하려고 했다. 대부 포국(鮑國)이 경공에게 간했다.

「노나라는 얼마 전에 공모라는 현인을 등용하여 내정을 정비한 관계로 가볍게 대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양호를 붙잡아서 그가 바친 환양의 땅과 같이 돌려보내어 공모의 환심을 사 두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경공이 포국의 말을 쫓아 양호를 붙잡아서 함거에 실어 제나라 서쪽 변경지방을 통과하여 노나라로 호송하게 하였다. 양호가 호송 중에 자기를 지키던 군사들에게 술을 대접하여 취하게 한 후에 틈을 노려 치거(輜車/짐수레)를 빼앗아 타고 송나라로 도망쳤다. 송나라가 양호를 광(匡)㉓ 땅으로 보내어 살게 했다. 양호가 광 땅에 살면서 주위의 백성들을 못살게 괴롭히자 백성들이 들고일어나 양호를 죽이려고 했다. 양호가 광 땅에서 쫓겨나 다시 당진으로 도망쳐 조앙(趙鞅)㉔의 가신이 되어 그를 섬겼다. 이것은 후일의 일이다.

송조 때 유자 한 사람이 양호가 가신으로써 자신의 주인을 도모하고 나라를 훔치려고 반역을 꾀한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했다.

『양호가 대역죄를 저질렀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양호의 주인이었던 계손씨도 자신의 군주를 내쫓고 노나라의 정사를 전단했다. 양호가 곁에서 계손씨의 참란한 행위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주인들의 행위를 본받아 반역을 일으켰으니, 이것은 곧 하늘의 이치가 항상 그 대가를 치르게 한 것이라, 결코 기이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유자가 시를 지어 이를 한탄했다.

당시 계씨들이 힘없는 주군을 능멸하고 쫓아냈는데

오늘 다시 계씨들의 가신들이 주인에게 반역을 꾀했다.

충신이건 간신이건 모두가 자업자득이나니

앞 수레의 굴러가는 소리가 뒷 수레에 미침이라!

當時季氏凌孤主(당시계씨능고주)

今日家臣叛主君(금일가신반주군)

自作忠奸還自受(자작충간환자수)

前車音響後車聞(전거음향후거문)

그 유자가 다시 말했다.

『노나라는 혜공(惠公) 치세 때부터 제후의 신분으로 천자의 예절과 음악을 참람하게 사용하였고, 그 후에는 심지어 대부의 신분인 삼환의 집안에서조차도 노후의 행위를 본받아 천자만의 예악인 팔일무(八佾舞)㉕를 즐기고 옹철(雍徹)㉖을 연주하도록 했다. 대부들도 그 군주를 안중에 두지 않고 행동했음으로 가신들 역시 주인들을 본받아 대부들을 무시한 것이다. 주인과 가신들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패역(悖逆)을 저지르게 되었음은 옛날부터 그 뿌리가 깊은 것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쓴 시가 있다.

천자가 즐기는 구성㉗을 연주하고 간척무㉘를 추게 하니

묻노니 그 누가 양호의 참람한 짓에 단서를 주었는가?

나라 안에서 반역의 무리가 생겨나지 않게 하려면

다시 한 번 주관(周官)㉙에 기록된 예악을 읽어보기 바란다.

九成干戚舞團團(구성간척무단단)

借問何人啓僭端(차문하인계참단)

要使國中无叛逆(요사국중무반역)

重將禮樂問周官(중장례악문주관)

4. 夾谷却齊(협곡각제)

- 협곡의 회맹에서 제나라의 의도를 분쇄하고 노나라의 자존심을 지킨 공자 -

양호를 노나라로 호송 중에 놓쳐 버린 제경공은 노나라 사람들이 양호를 받아들인 자기를 비난할까 걱정했다. 그는 즉시 사자를 보내 자기의 편지를 노정공에게 전하게 했다. 양호를 붙잡아서 노나라로 호송 중에 달아난 일의 시말을 설명하고, 제와 노 두 나라 군주가 양국의 경계에 있는 협곡산(夾谷山)㉚에서 서로 병거를 이끌고 가서 회맹을 행하여 두 나라는 영원히 싸움을 하지 않는다는 맹약을 맺자고 청했다. 노정공이 편지를 받고 즉시 삼가의 대부들을 불러 상의했다. 맹손무기가 말했다.

「제나라 사람들은 남을 속이기를 잘하니 주공께서는 가볍게 가시면 안 됩니다.」

계손사가 나섰다.

「제나라가 여러 번 우리나라의 경계를 침범하여 우리가 어려움을 많이 당해 왔는데 어찌 그들의 청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정공이 계손사의 말대로 회합에 응하기로 결정하고 물었다.

「과인이 만약 회맹을 하기 위해 간다면 누구를 데려가면 좋겠소?」

맹손무기가 대답했다.

「신의 스승이었던 공모를 데려가십시오.」

정공이 즉시 공자를 불러 정공이 제경공과 회합하는 의식의 상례(相禮)㉛를 맡아 주관하도록 명했다. 정공이 몰고 갈 병거와 어가가 준비가 되어 길을 떠나려고 할 때 공자가 정공에게 상주했다.

「신이 듣기에 문관이 주관하는 회맹을 할 때는 필히 무력이 준비가 되어야 하며 또한 싸움을 하러 갈 때는 문관이 준비가 되어 그 뒤를 바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문무의 일은 서로 떨어져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옛날에 제후가 자기나라를 떠나 타국에 갈 때는 반드시 문관과 무관을 동시에 대동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송양공이 우(盂) 땅에서 회맹할 때㉜의 일을 거울삼으시기 바랍니다. 청컨대 좌우 사마를 모두 데려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십시오.」

정공이 공자의 말을 따라 대부 신구수(申句須)를 우사마로 락기(樂頎)를 좌사마로 삼아 각기 병거 500승 씩을 인솔하여 정공의 원행을 수행하도록 했다. 또한 대부 자무환(玆无還)에게 다시 병거 300 승을 이끌고 출동하여 회맹장에서 10리 되는 곳에 주둔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토록 했다.

노정공의 행렬이 회맹 장소인 협곡산에 당도했을 때는 제경공이 먼저 와서 회맹을 하기 위한 삼층으로 된 간단한 제단을 만들어 놓고 노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경공은 제단의 오른 쪽에다 막사를 지어 머무르고 있었고 노정공은 제단의 왼쪽에다 막사를 세웠다. 제나라 병사들의 수가 대단히 많고 그 위세가 강대한 모습을 본 공자도 역시 신구수와 락기에게 명하여 노후의 곁을 바싹 붙어서 호위에 만전을 기하도록 당부했다. 그때 제나라 진영에는 여미(黎弥)라는 대부가 있었다. 지략이 뛰어나다고 해서 양구거가 죽은 다음부터 경공이 특별히 총애하고 있었다. 그날 밤 여미가 경공에게 알현을 청하자 경공이 불러서 물었다.

「경이 이렇게 밤이 깊은 시각에 알현을 청한 것은 무슨 일 때문이오?」「제와 노 두 나라가 원수 사이가 된 지는 어제오늘이 아닙니다. 노나라가 어질고 덕이 높은 공자를 임용하였으니 장차 우리 제나라에 해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되어 금일의 회맹을 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이 공모라는 위인을 보니 예는 조금 알고 있다고는 하나 용력을 구비하지 못해 싸움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않는 듯합니다. 내일 주공께서 노후를 면담하는 예를 마치신 후에 열국의 음악들을 연주하게 하여 노후의 마음을 즐겁게 하시시기 바랍니다. 악공으로 변장시킨 다시 래(萊)㉝ 땅의 오랑캐 300명을 불러 회맹장에 입장시킨 후에, 북을 두드려 소리를 크게 내게 하고 그 혼란한 틈을 타서 노후와 공모를 같이 붙잡으신다면 신은 군사들을 인솔하여 제단 밑의 노나라 군사들과 신료들을 쫓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노나라의 군주와 신하의 목숨은 우리들의 손에 떨어질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그들을 하시고 싶으신 대로 처분하실 수 있으니 이는 군사를 일으켜 정벌해서 세운 공업 못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일의 실행여부는 마땅히 안상국과 의논해서 실행하도록 하시오.」

「상국께서는 평소에 공모와 두터운 교분을 맺고 계십니다. 만약 상국이 이 일을 알게 되시면 틀림없이 소신의 계획을 행하지 못하게 막으실 것입니다. 청컨대 신이 혼자서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과인이 경의 청을 허락하니 경은 조심하여 일을 처리하기 바라오.」

여미가 경공 앞에서 물러 나와 래읍의 오랑캐 군사들과 다음 날에 거사를 하기로 아무도 몰래 약속했다. 이윽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 두 나라 군주들이 제단 밑에 만나서 서로 읍으로 인사를 행한 후에 제단 위에 올랐다. 제나라 쪽에서는 안영이 노나라 쪽에서는 공자가 상례로 나와서 각기 그들 군주의 뒤를 따랐다. 두 나라의 군신들이 각기 제단 위로 올라가 서로 인사를 나눴다. 태공과 주공의 서약(誓約)㉞을 말하고 각기 자기들이 가지고 온 폐옥과 비단을 교환하였다. 선물을 주고받는 의식이 끝나자 제경공이 먼저 노정공을 향해 말했다.

「과인에게는 천하의 음악을 연주 할 수 있는 악공들이 있습니다. 원컨대 군과 같이 한번 즐겼으면 합니다.」

경공이 즉시 래이(萊夷) 출신의 병사들을 단 위에 오르도록 명한 후에 그들의 토속 음악을 연주하도록 했다. 그러자 제단 밑에서 북소리가 크게 진동하더니 래이의 오랑캐 병사 300명이 방울이 달린 털로 만든 깃발을 휘두르며 마치 벌떼가 몰려들 듯이 뛰쳐나왔다. 그들은 모두 짐승의 깃털로 지은 오랑캐 옷을 입고 모(矛)와 극(戟) 및 칼과 방패를 손에 들고는 한편으로는 입으로 휘파람 소리를 내는데 서로 화답하여 끊이지가 않았다. 그들이 제단을 향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노정공이 놀라 얼굴이 흑색이 되었다. 그러나 정공의 곁에 있던 공자는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곧바로 제경공의 면전으로 다가가더니 소매를 들어 인사를 한 다음 말했다.

「두 나라의 군주님들이 서로 만나 우호를 맺기 위해 우리 중화의 예를 행하고 있는 좋은 자리에서 어찌하여 오랑캐 습속인 이적(夷狄)의 음악을 연주케 하십니까? 청하옵건대 의식을 집행하는 관리에게 명하여 물러가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미의 계교를 알지 못하고 있던 안자가 경공의 곁에 있다가 그 역시 청했다.

「공모가 하는 말은 예에 어긋남이 없습니다.」

경공이 크게 부끄러워하여 급히 소매를 저어 래이의 오랑캐 병사들을 물러가게 하였다. 여미가 제단 밑에서 몰래 숨어 있으면서 오로지 래이의 병사들이 손을 쓰기를 기다려 일제히 일어나려고 하다가 오히려 경공이 명령을 받고 제단 위에서 물러나는 래이의 병사들을 하릴 없이 쳐다만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여미가 마음속으로 분기가 치밀어 즉시 본국에서 데려온 광대를 불러 분부하였다.

「단상 위에서 연회가 무르익으면 내가 너를 불러 음악을 연주하도록 하면 너는 《폐구(敝笱)》㉟>라는 시를 부르면서 기분 내키는 대로 희롱하여 만약 노나라 군주나 신하들이 웃기거나 노하게 하면 내가 너에게 중상을 내리리라!」

원래 폐구는 문강(文姜)의 음란한 생활을 노래한 시가다. 폐구를 부르게 하여 노나라 군신들로 하여금 부끄러운 마음을 품게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광대에게 분부를 마친 여미가 계단을 통하여 제단 위로 올라가 제경공에게 청했다.

「청컨대 궁중의 노래를 부르게 하여 두 분 군주님의 만수무강을 빌도록 하려 하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궁중의 음악은 오랑캐의 노래가 아니니 속히 악사에게 부르게 하라!」

여미가 제후의 명이라고 전하자 이상야릇한 옷을 입고 얼굴에는 물감을 칠한 배우와 곱사등 20여 명이 각각 남자와 여자로 분장한 후에 이대로 나뉘어 단 위로 올라와 노후의 면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또 한 쪽에서는 좌우로 어지러이 돌며 춤을 추면서 폐구의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음탕하기 그지없는 곡조만을 골라 부르며 한편으로는 시시덕거렸다. 공자가 칼을 손으로 붙잡고 눈을 치켜뜨더니 제경공을 쳐다보며 말했다.

「필부들이 제후를 희롱하니 그 죄 죽어 마땅합니다. 원컨대 제나라의 사마를 불러 법을 집행하옵소서!」

경공이 공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사이에 광대와 곱사등들이 여전히 희롱하며 춤을 추며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공자가 보고 말했다.

「두 나라가 이미 통호하여 형제의 나라와 다름이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노나라의 사마는 또한 제나라의 사마도 된다고 하겠습니다.」

공자가 즉시 소매를 들고서 손을 휘두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신구수와 락기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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