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遊說天下(유세천하) 會稽之恥(회계지치) > 4부7 오자서

제79회. 遊說天下(유세천하) 會稽之恥(회계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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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4,651회 작성일 04-05-1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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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회 遊說天下 會稽恥辱(유세천하 회계치욕)

노나라를 떠나 천하의 제후들에게 유세를 행하는 공자와

회계에서 오왕에게 치욕을 당한 월왕 구천

1. 隣國有聖 我國之懮 (인국유성 아국지우)

- 이웃나라의 성인은 우리나라의 우환이다.

한편 제경공 일행은 협곡에서 노정공(魯定公)과 회맹을 맺고 임치성으로 돌아왔으나 며칠 후에 안영이 노환으로 죽었다. 몇 날을 슬피 울며 제나라 조정에 인물이 없음을 걱정하던 경공은 다시 공자를 임용한 노나라가 크게 다스려 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공이 놀라 조당에 나가 말했다.

「노나라가 공자를 임용하여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틀림없이 천하의 패권을 노릴 것이다. 패권을 다투는 일이란 필시 땅을 두고 싸우는 일인데 그 첫 번째 대상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우리 제나라가 아니겠는가? 그 화가 제나라에 가장 먼저 미칠 것인데 참으로 걱정되는 구나!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부 여미가 경공이 걱정하는 소리를 듣고 나와 말했다.

「주군께서 노나라가 공자를 등용하는 일을 걱정하시면서 어찌하여 막지 않으십니까?」

「노나라가 이제 금방 공자에게 정사를 맡겼는데 우리가 어떻게 공자가 노나라의 정사를 맡아보지 못하도록 막는단 말인가?」

「신은 듣기에 나라가 크게 다스려져 국내사정이 안정이 되면 반드시 나라 안에 교만한 마음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청컨대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한 여자 악사를 노나라에 보내면 노후는 기뻐하며 악사들을 받아 들여 즐기느라 틀림없이 정사를 태만히 하고 공자를 멀리 할 것입니다. 노후가 자기를 멀리하면 공자는 필시 노나라를 버리고 다른 나라로 갈 것입니다. 그 때는 주공께서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 女樂文馬(여악문마)

- 아름다운 여악사와 채색말에 현혹되어 정사를 팽개친 노후 -

경공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여미에게 명하여 시중의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용모가 아름다운 20세 미만의 여인들 중에서 80명을 뽑아 10대로 나누어 각기 아름다운 비단 옷을 입히고 노래와 춤을 가르쳤다. 그 노래의 곡명은《강락(康樂)》이라 하는데 곡조와 춤사위를 새로 만들어 예전에는 본적이 없는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노래와 춤을 여자 악사들에게 가르치기를 다하자 다시 좋은 말 120필에 금으로 만든 마구를 채우고 정교한 조각을 새긴 말안장을 얹힌 후에 말들의 털색을 각기 다른 색으로 준비했다. 그 120필의 말들이 움직일 때 멀리서 보면 마치 비단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듯 보였다. 드디어 아름다운 여자 악사 80명과 예물을 실은 말 120필이 끄는 수레 30대에 싣고 노나라에 보내어 노후에게 바치도록 했다. 이윽고 노나라의 남문 밖에 당도한 제나라 사자는 비단 천막을 두 곳으로 나누어 치게 하고 동쪽 천막에는 말들을 묶어 두게 했고 서쪽 천막에는 여자 악사를 머물게 했다. 그리고 나서 노성으로 들어가 먼저 제후의 친서를 노정공에게 바쳤다. 정공이 제나라의 국서의 봉함을 뜯고 읽었다.

『제나라의 저구(杵臼)가 머리를 숙여 존경하는 노 현후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제가 협곡에서 현후 전하께 무례를 범하여 그 마음 아직도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현후 전하께서 저의 사과하는 마음을 너그러이 받아 주시어 마침내는 두 나라가 수호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 나라의 많은 국사로 노심초사 하시는 노후 전하께 위로의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에 여자 악사 10대를 보내오니 여흥을 즐기시는데 쓰시기 바랍니다. 양마 120필은 또한 예물을 실은 수레를 끌기 위함이니 존경하는 좌우의 신하들에게 나누어주시어 그들을 그리는 저의 마음을 표할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변변치 못한 예물이나마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한편 노나라의 상국 계손사는 공자로 인하여 나라가 크게 다스려져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자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도 잊어버리고 사치와 오락만을 가슴속에 품고 다녔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제나라가 성대하게 치장을 한 아름다운 여자 악사를 보내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것들을 보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했다. 그는 즉시 백성들이 입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심복 몇 사람과 함께 수레에 타고 아무도 몰래 남문을 빠져나가 제나라 여자 악사들이 머물고 있는 막사를 찾았다. 그때 마침 여자 악사들은 열을 크게 지어 가무를 연습 중이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는 지나가는 구름이라도 멈추게 하는 듯 하고 춤을 추는 모양은 마치 향기 나는 바람을 일으키기는 듯이 황홀했다. 앞으로 나갔다 뒤로 물러갔다 하며 춤을 추는 여자 악사들의 화려한 모습은 사람들의 넋을 빼앗는 천상에서 노니는 선녀들 같아 도저히 이 세상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계손사가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보다가 또한 그들의 용모는 모두 천하절색에 화려한 비단 옷으로 치장하고 있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에는 감각이 없어지고 다리에는 힘이 빠져 노곤해 지면서 눈동자가 풀리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멍하게 벌어졌다. 이윽고 시간이 얼마간 지나가자 계손사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정신이 혼미해지더니 혼백이 나가 버렸다. 노정공이 그날 하루 동안 세 번이나 불렀지만 계손사는 여자 악사들의 가무에 넋이 나가 그 부름에 응하지 못했다. 계손사는 다음 날이 되자 곧바로 입궐하여 정공을 배알했다. 정공은 계손사에게 제나라에서 온 국서를 보여주며 읽어보도록 했다. 계손사가 국서를 다 읽고 나서 말했다.

「이것은 제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아름다운 마음에서이니 물리치지 마십시오.」

정공도 역시 제나라 여자 악사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던 참이라 계손사에게 슬며시 물었다.

「제후가 보내 온 제나라 여자 악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남문 밖에 거하면서 열을 지어 가무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주공께서 어가를 움직여 가보시겠다 하시면 제가 마땅히 모실 수 있겠지만 단지 백관들도 같이 따라 나서겠다고 하면 일이 번거롭게 되니 차라리 미복으로 한번 가보심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법복을 벗어버리고 평민복장으로 바꿔 입은 정공과 계손사 두 군신이 각기 작은 수레를 타고 남문을 향하여 달려 나갔다. 그들의 일행이 이윽고 남문 밖 서쪽에 친 비단 장막에 당도하였다. 제나라 사신 일행 중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가 정공과 계손사의 모습을 보고 장막 안으로 달려가 보고하였다.

「노나라 군주가 우리 제나라 여자 악사들의 가무를 구경하시고자 평복 차림으로 친히 왕림하셨습니다.」

제나라의 사자가 여자 악사들에게 온갖 기예를 발휘하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도록 독려했다. 노래 소리는 더욱 아름다워졌고 춤을 추던 여인들의 옷소매는 한층 요염하게 보였다. 십대로 이루어진 80명의 여자 악사들이 순서에 따라 나오고 들어가며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노나라의 군주와 신하는 진실로 귀와 눈을 빼앗겨 제나라 사신의 접대에 응할 겨를도 없이 자기들도 몰래 신이 나서 어깨춤을 추었다. 그때의 일을 노래한 시가 있다.

노래 한 곡에 금 덩어리가 한 개씩 떨어지고

절묘한 춤 한 마장에 옥구슬이 한 쟁반 생겼다.

단지 80명의 아름다운 여자 악사들로 인하여

노나라의 군주와 신하는 마음을 돌리게 되었다.

一曲嬌歌一塊金(일곡교가일괴금)

一番妙舞一盤琛(일번묘무일반침)

只因十隊女人面(인지십대여인면)

改盡君臣兩個心(개진군신양개심)

제나라의 사자를 따라왔던 종자들이 정공과 계손사를 동쪽의 비단 천막으로 데려가 그곳에 메어 있던 양마들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정공이 보고 말했다.

「오늘 와서 내가 평생보기 드문 구경을 이미 했는데 또다시 말 따위의 일을 논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 날 밤에 정공이 궁궐로 다시 돌아와서 잠을 청했으나 귀에서는 낮 동안에 보았던 아름다음 노래 소리가 맴돌고, 또한 아름다운 무희들이 자기 침상 곁에 누워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제나라에서 보내 온 여자 악사들과 양마 120필에 싣고 온 예물에 대해 군신들과 의논했다가는 군신들이 혹시 반대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한 정공은 다음 날 아침 일찍 계손사 한 사람만을 불러서 입궁 하도록 하여 아름다운 미녀들과 양마를 보내 준 제후의 은혜에 감격하였다는 내용의 답서를 쓰도록 명했다. 그 편지의 내용은 구태여 모두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다시 황금 백일을 제나라 사자에게 하사한 정공은 제나라에서 보내 온 여자 악사들과 양마를 모두 궁궐 안으로 들어오게 한 후에 80인의 여자 악사들 중 30인은 계손사에게 주고 양마 120필은 모두 마굿간 일을 돌보는 어인(圉人)에게 맡겨 돌보게 하였다. 정공과 계손사가 새로이 제나라의 아름다운 악사와 무희를 얻어 각자 나누어 갖고는 낮에는 가무를 즐기고 밤에는 그 여인들과 잠자리를 같이하여 3일을 계속해서 조정에 나오지 않아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3. 因膰去魯 遊說天下(인번거노 유세천하)

- 제사고기로 인해 노나라를 떠나 천하의 제후들에게 유세하는 공자 -

공자가 그 일에 대해 소식을 듣고 마음이 처연해 지며 장탄식을 하였다. 그때 공자의 제자 중에 자로(子路)가 곁에 있다가 공자에게 말했다.

「노군이 정사에 태만해하니 선생님께는 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교외에서 드리는 노나라의 제일 큰 제사의 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만일 노군이 큰 예의를 잊지 않고 있기만 한다면 노나라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 할 것이다.」

이윽고 제를 드리는 날이 되자 정공이 제사를 주재하여 제례는 행했으나 의식이 끝나자마자 득달같이 궁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공은 예전과 다름없이 국사를 돌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내고 남은 고기들을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는 의식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제사 음식을 담당한 관리가 정공이 있는 궁궐로 가서 궁문을 두드리며 남은 음식의 처분에 대해 물었으나 정공은 모두 계손사와 상의해서 처분하라고 명했다. 그러자 계손사는 다시 그 일을 자기 가신과 상의해서 처리하도록 했다. 제사를 지내는 교외까지 따라 나섰다가 저녁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온 공자는 그때까지도 제사 음식이 자기 집에 당도하지 않은 것을 보고 자로에게 말했다.

「내가 가슴에 품은 뜻을 세상에 펼치지 못함은 바로 하늘의 뜻인 것 같다.」

자로에게 거문고를 가져오라고 해서 뜯으며 곡조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그 여자들의 노래 소리에

내가 이곳을 떠나게 되었구나!

그 여자들이 주군을 넋을 빼앗아

내일이 수포로 돌아갔구나!

근심일랑 버리고 유우자적이나 하다가

때가 되면 돌연히 저 세상으로 갈꺼나?

彼婦之口(피부지구)

可以出走(가이출주)

彼女之謁(피녀지알)

可以死廢(가이사폐)

優哉游哉(우재유재)

聊以卒歲(요이졸세)

공자는 노래를 부르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행장을 꾸려 노나라를 떠났다. 자로와 염유가 노나라의 벼슬을 버리고 공자의 뒤를 따랐다. 이때부터 노나라는 다시 쇠퇴해지기 시작했다.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두고 노래했다.

붉은 연지가 예리한 창검보다 강했던 이유는

교묘한 여미의 계략 때문만은 아니었고

국세가 쇠약해질 운명은 하늘의 명 때문이었으니

어찌 노나라가 홀로 패업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幾行紅紛勝鋼刀(기행홍분승강도)

不是黎弥巧計高(부시여미교계고)

天運凌夷成瓦解(천운능이성와해)

豈容魯國獨甄陶(개용노국독견도)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갔다. 위영공(衛靈公)은 기뻐하며 공자 일행을 맞이하고 나서 공자에게 싸움에 임하는 진법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이 구(丘)는 싸움에 대한 학문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이 되어 공자가 다시 위나라를 떠나 송나라로 가면서 광읍(匡邑)을 지나게 되었다. 광읍의 백성들이 양호와 비슷하게 생긴 공자의 용모를 보고 양호가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서 몰려와 공자의 일행을 둘러쌌다. 자로가 앞으로 나가 대항해서 싸우려고 하자 공자가 말리며 말했다.

「내가 광읍의 사람들에게 원수 진 일이 없는데 이렇듯 사납게 우리를 향하여 달려드는 이유는 필시 무슨 곡절이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참으면 스스로 오해가 풀릴 것이니 잠시 기다리도록 하라!」

공자는 즉시 그 자리에 앉더니 거문고를 타기 시작했다. 그때 위영공의 명을 받은 사자가 공자의 뒤를 쫓아와서 돌아오라는 영공의 유지를 전했다. 그때서야 광읍의 백성들은 자기들이 사람을 잘못 보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공자에게 사죄를 하고 물러갔다. 공자가 다시 위나라로 돌아가서 위나라의 현인 거원(蘧瑗)①의 집에 묵었다.

4. 矯命駕車 食桃啖君(교명가거 식도담군)

- 미자하(彌子瑕)가 위영공의 어가를 훔쳐타고 먹다 남은 복숭아를 먹이다. -

한편 남자(南子)라고 불리던 위영공의 부인은 송나라 출신의 여인이었다. 용모는 아름다웠지만 행실은 음탕한 여자였다. 그녀는 위영공에게 시집을 오기 전 송나라에서 살고 있었을 때 이미 송나라의 공자조(公子朝)와 사통하고 있었다. 공자조 역시 남자로써 찬하의 미남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미남미녀가 서로 사랑하여 그 사이가 부부이상으로 친하게 지냈다. 남자가 위영공에게 시집을 와서 괴외(蒯聵)②라는 아들을 낳아, 지금은 이미 장성하여 위나라의 세자가 되었음에도 옛날 송나라의 공자조와의 옛정을 그 때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위나라에는 이름이 미자하라는 또 한 사람의 천하미남이 살고 있었다. 평소에 위영공의 총애을 얻게 된 미자하는 그 곁에서 모시게 되었다. 위나라의 법에 군주의 수레를 훔쳐 타는 사람은 발을 잘랐다. 그런데 어느 날 미자하의 모친이 병이 나서 집안사람이 밤중에 와서 알리자 미자하는 군주의 명이라고 속이고 어가를 타고 모친에게 달려갔다. 위영공이 듣고 미자하가 어질다고 하면서 말했다.

「참으로 효자로다! 어머니를 뵙기 위해 다리를 잘리는 죄를 짓는 일도 마다않는구나!」

그리고 어느 날 그가 복숭아를 먹다가 남긴 반을 영공의 입에 넣어 주자 영공이 즐겨 받아먹으며 곁의 사람들에게 미자하의 충성을 자랑하며 말하였다.

「자하가 나를 사랑하기를 이렇듯 극진히 하는구나! 복숭아를 먹다가 그 맛이 별미라서 차마 혼자 다 먹지 못하고 나에게 나누어 주어 먹게 해주었도다!」

나라의 군신들이 속으로 웃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영공의 총애를 믿고 권세를 부리기 시작한 미자하는 못하는 짓이 없었다. 영공이 자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남자가 질투를 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서 가끔가다가 송나라의 공자조를 위나라로 불러 남자와 만나게 해 주었다. 더러운 소리가 궁내에 가득 찼음에도 영공은 전혀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세자 괴외가 자기 모친의 음행을 심히 부끄럽게 생각하여 가신 중에 희양속(戱陽速)이라는 사람을 자기가 아침 문안 인사를 드릴 때 궁 안으로 데리고 가서 남자를 죽여 공실의 추문을 없애려고 하였다. 남자가 사전에 괴외의 계획을 알아차리고 영공에게 세자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고 눈물로 호소하였다. 영공이 듣고 괴외를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 괴외는 위나라에서 쫓겨나자 송나라로 들어갔으나, 송나라는 그를 반기지 않았다. 그래서 괴외는 할 수 없이 당진으로 다시 발길을 옮겼다. 영공이 괴외의 아들 첩(輒)을 세자로 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南子)가 사람을 시켜 공자에게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우리 군주와 만나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 사방의 군자들은 필히 우리 군주의 부인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부인께서 공자를 뵙고 싶어합니다.」

공자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사양하다가,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들어가 남자를 만났다. 공자가 부인은 휘장 안에 앉아 있었다. 공자는 남자를 향해 북면하여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드렸다. 남자도 휘장 안에서 절을 두 번 올렸다. 부인의 허리에 찬 패옥들이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공자가 부인을 만나고 나와서 말했다.

「내가 만나기를 원하지 않았으나, 이왕 만나게 되었으니 예로 대해 주었을 뿐이다.」

자로가 듣고 기뻐하지 않았다. 공자가 하늘에 맹세를 하며 말했다.

「내가 한일이 만일 잘못이라면 하늘이 용납하지 않으리라! 하늘이 용납하지 않으리라!」

위나라에 돌아와 머문 지 한 달여가 되었을 때, 영공이 남자와 같은 수레를 타고 환관(宦官) 옹거(雍渠)를 시자(侍者)로 태워 궁문을 나섰다. 영공이 공자를 다른 수레에 타게 하고 뒤따르게 하면서 거드름을 피우며 시내를 지나갔다. 위영공 부처와 공자가 한 수레를 타고 시정을 지날 때 백성들이 보고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말은 다음과 같았다.

미색은 군주의 수레에 같이 타고

덕인은 뒷수레에 타고 따르는구나!

同車者色耶(동거자색야)

從車者德耶(종거자덕야)

공자가 노래 말을 듣고 한탄하였다.

「나는 덕을 좋아하기를 예쁜 여인을 좋아하듯 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공자가 위영공의 행동에 실망하여 위나라를 떠나 조(曹)나라로 갔다. 이 해에 노정공이 죽었다. 이 때가 노정공 재위 15년으로 기원전 495년, 공자의 나이 57세 되던 해였다.

5. 在陳絶糧(재진절량)

- 진나라에서 양식에 떨어져 곤궁한 처지에 빠진 공자 -

공자가 다시 행장을 꾸려 조나라를 떠나 송나라로 가서 제자들과 큰 나무 밑에서 예에 대해 공부했다. 송나라의 사마 환퇴(桓魋)도 역시 그 잘 생긴 용모로 송경공(宋景公)에게 총애을 받아 얼마 전에 송나라의 요직에 임용되었기 때문에 공자가 송나라에 머무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환퇴가 사람을 시켜 그 큰 나무를 베어 버리고 이어서시 공자를 죽이기 위해 별도로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다. 환퇴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공자는 옷을 바꾸어 입고 몰래 송나라를 떠나 정나라를 경유하여 당진(唐晉)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공자의 일행이 하수에 이르렀을 때 조앙(趙鞅)이 당진의 현신 두주(竇犨)③와 순화(舜華)④를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탄식하였다.

「새나 짐승들도 같은 동류는 서로 상하게 하지 않는 법인데 어찌 사람이 하는 짓이 금수만도 못하다는 말인가?」

공자는 즉시 당진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위나라로 돌아갔다. 공자가 위나라에 돌아오고 나서 얼마 안 있어 위영공이 죽었다. 백성들이 괴외의 아들인 세자 첩을 세워 위군으로 삼았다. 이가 위출공(衛出公)이다. 영공에게 쫓겨난 괴외도 역시 당진의 도움을 얻어 양호(陽虎)와 함께 척(戚) 땅을 습격하여 그것에 머물면서 복국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래서 위나라는 아버지와 자식간에 군위를 놓고 다투는 형세가 되었다. 당진은 괴외의 편을 들었고 제나라는 첩의 편을 들었다. 부자지간이 서로 싸우는 것은 순리에 어긋나는 짓이라고 생각한 공자는 다시 위나라를 떠나 진(陳)나라로 갔으나 그곳도 여의치 않아 채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길을 떠났다. 공자가 진(陳)과 채(蔡) 두 나라 사이에서 배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초소왕은 사람을 보내 공자를 초빙했다. 그 소식을 들은 진과 채 두 나라 대부들이 모여서 의논하며 말했다.

「공자는 현자(賢者)다! 그가 비난하고 풍자하는 것들은 모두가 제후들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에 대해서이다. 그는 오랫동안 진(陳)과 채(蔡) 두 나라를 오가며 머물면서 그의 뜻과는 맞지 않은 생활을 영위한 우리 두 나라의 대부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었을 것이다. 대국인 초나라가 오늘 공자를 초빙하는 목적은 그를 쓰기 위해서인데 그렇게 되면 진과 채 두 나라의 국정을 맡고 있는 우리들이 위험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즉시 군사들을 동원하여 들판에서 공자를 포위하고 초나라로 들어가는 길을 막았다. 진채 두 나라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양식이 떨어진지 3일이 지났지만 공자는 거문고의 현을 뜯기를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다.

지금의 개봉부(開封府)⑤와 진주(陳州)⑥의 경계 상에 상락(桑落)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땅에 아직 높은 고대가 남아 있다. 고대의 이름을 액대(厄臺)라 하는데 당시에 공자가 초나라로 가다가 양식이 떨어져 액난을 당하자 그 곳에 앉아 거문고를 뜯었던 곳이다. 송조 때의 유자 유창(劉敞)⑦이 이때 공자가 당한 어려운 처지에 대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천하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여행객이여!

3일을 굶어 죽음이 목전에 달했구나!

하늘이 목탁을 연마시키려는 뜻이라고 했지만

어찌 어리석은 진채의 신하들에게 시켰단 말인가?

四海棲棲一旅人(사해서서일여인)

絶糧三日死生隣(절량삼일사생린)

自是天心勞木鐸(자시천심노목탁)

豈關陳蔡有愚臣(개관진채유우신)

공자의 일행이 양식이 없어 계속 고통을 당하고 있다가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신장이 9척이나 되는 괴인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몸에는 비단 옷을 입고, 머리에는 관을 쓴 괴인이 몸에는 갑옷을 걸치고 손에는 과를 들고서 공자를 향하여 큰소리를 치며 꾸짖자 주위가 그 목소리로 찌렁찌렁 울렸다. 자로도 역시 손에 과를 들고 들판으로 나가 그 대한을 상대하여 싸웠다. 그 대한의 힘은 대단하여 자로가 도저히 당할 수 없었다. 공자가 옆에서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한참 살펴보더니 자로를 향해 소리쳤다.

「자로야 그 대한의 옆구리를 찔러라!」

자로가 공자의 말을 듣고 들고 있던 극으로 괴한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괴한은 갑자기 힘이 빠지더니 손이 늘어지며 이어서 땅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괴한은 즉시 점어(鮎魚) 즉 메기로 변했다. 제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무릇 세상의 모든 생물들은 나이가 들면 그 기가 쇠하게 되어 많은 정령들이 변해 요괴가 되는 법이다. 그 요괴를 이미 죽였으니 어찌 괴이타 하겠는가?」

공자가 명하여 제자들에게 그 메기를 삶도록 하여 허기를 채우게 했다. 제자들은 메기를 삶아 먹고 기운을 차린 뒤 모두 기뻐하며 말했다.

「하늘이 우리가 굶어 죽지 않도록 메기를 보내 주셨구나!」

기운을 차린 공자는 자공을 초나라에 보내 진채 두 나라 군사들의 방해를 받아 초나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게 했다. 초소왕이 군사를 보내 공자를 맞이해 갔다. 공자는 비로소 진(陳)과 채(蔡) 두 나라 사이에서 빠져 나와 초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공자를 맞이한 초소왕은 그를 천사(千社)⑧ 땅에 봉하려고 했다. 초나라의 영윤(令尹) 자서(子西)⑨가 말했다.

「왕의 신하 중 제후들에게 사신으로 보낼만한 사람이 자공만한 인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왕의 신하 중 재상으로서 보필 받을만한 사람 중 안회만한 인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왕이 거느린 장수 중 자로만한 인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왕의 신하 중 재여(宰予)만큼 일을 잘하는 장관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리 초나라의 조상이 주왕으로부터 처음 봉해졌을 때⑩ 그 봉지는 사방 오십 리에 불과했습니다. 지금 공자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치국(治國) 방법에 통달하여 주공(周公)⑪과 소공(召公)⑫의 이룬 공업에 밝으니, 만일 왕께서 공자를 불러 쓰신다면 어찌 초나라가 당당하게 세세대대로 다스려온 사방 수천 리의 땅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겠습니까? 무릇 주문왕(周文王)은 풍(酆)에 주무왕은 호(鎬)⑬에 도읍하여 사방 백리의 땅에서 출발했으나 천하를 다스리는 천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공자가 우리 초나라에서 봉함을 받아 그 땅을 얻게 되면 어진 제자들의 보좌를 받아 나라가 크게 번성할 것인데 그것은 우리 초나라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소왕이 자서의 말을 듣고 공자를 봉하려는 생각을 그만 두었다. 그해가을 초소왕이 성보(城父)로 출전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초나라에 미치광이 접여(接與)⑭가 공자의 곁을 지나가며 노래를 불렀다.

鳳兮 鳳兮(봉혜, 봉혜)

봉황새야! 봉황새야!

何德之衰(하덕지쇠)

너의 덕은 어찌 이리 쇠락해 졌던 말인가?

往者不可諫兮(왕자불가간혜)

지난날의 잘못이야 돌이킬 수 없지만

來者猶可追也(래자유가추야)

앞날의 잘못이야 피할 수 있으리!

已而已而(이이,이이)

그만두어라!

今之從政者殆而(금지종정자태이)

지금은 정치에 관여하게 되면 위태로울 진데!

공자가 마차에서 내려 접여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했으나 그가 급히 몸을 피하는 바람에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가 없었다.

노애공 6년 기원전 489년은 공자의 나이 63세 때다. 그 해에 공자가 초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돌아갔다. 위출공이 공자를 등용하여 위나라의 국정을 맡기려고 하였으나 공자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때 노나라는 계손사가 죽고 그의 아들이 비(肥)가 그 뒤를 이어 상국이 되었다. 계손비(季孫肥)가 사람을 보내어 계손씨 종족으로 공자를 따라 나선 염유(冉有)를 불렀다. 공자가 그의 제자인 염유를 따라 노나라로 돌아갔다. 노나라는 돌아온 공자를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한 대부의 예로써 대했다. 공자의 제자로써 자로(子路), 자고(子羔) 두 사람은 위나라에 남아 벼슬을 하고 자공(子貢), 염유(冉有), 유약(有若), 복자천(宓子賤)은 노나라에서 벼슬을 했다. 이것은 모두 나중의 일이다.

6. 齊女墳(제녀분)

- 고향을 그리다가 향수병에 걸려 죽은 합려의 며느리 소강(小姜) -

한편 오왕 합려는 초나라 군사를 파한 이래로 그 이름이 중원에 진동하게 되었다. 오나라로 돌아온 합려는 그 후로 즐거운 일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궁궐을 크게 증축하고 다시 도성 안에 별도로 장락궁(長樂宮)이라는 별궁을 축조하고 고소산(姑蘇山) 자락에 높은 누각을 지었다. 고서산(姑胥山)의 북동쪽 30리 되는 곳에 산성을 쌓고 오도의 서문(胥門) 밖 굽이쳐 돌고 도는 계곡 길을 따라 고소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뚫었다. 봄과 여름에는 성 밖의 고소산성에서, 가을과 겨울에는 도성 안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옛날 월나라에 의해 침략을 당한 일을 기억해 낸 합려는 그들을 정벌할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초와 제 두 나라가 통호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합려가 노하여 말했다.

「제와 초가 수호를 한다고 하니 이것은 우리 오나라 북쪽 변경의 우환 거리가 새로 생겼음이다.」

합려가 우선 제나라를 정벌한 후에 월나라를 치려고 했다. 상국 자서가 합려에게 말했다.

「이웃나라끼리 하는 수호는 늘상 있는 일입니다. 제나라가 아직은 초나라를 도와 우리 오나라에 해로움을 끼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갑자기 군사를 동원하여 제나라를 정벌할 수 없습니다. 오늘 태자파의 원비께서 돌아가셨음에도 아직 그 계실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어찌하여 대왕께서는 사자를 제나라에 보내 태자의 혼사를 구하시어 제나라와 수호를 맺으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제나라가 우리의 청혼을 거절하면 그때 가서 정벌하여도 늦지 않습니다.」

합려가 자서의 말을 쫓아 대부 왕손락(王孫駱)을 사자로 제나라에 보내 태자파의 혼사를 청하도록 했다.

그때는 이미 나이가 70이 넘어 기력이 쇠잔하게 된 제경공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해 스스로 일을 주재 할 수 없었다. 제나라의 궁중에는 시집을 가지 않은 여자아이는 단지 어린 갓난 여아 한 명뿐이었는데 그 여아는 도저히 시집을 보낼 수 없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리고 그 때는 제나라에는 그런 일을 감당할 만한 현명한 신하도 없었고 그렇다고 오나라의 공격을 막아 낼만한 장수도 또한 없었다. 그래서 오나라의 청을 거절할 경우 그들이 군사를 일으켜 공격해 와서 옛날에 초나라가 입은 전화를 입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제경공은 초나라와 맺은 수호에 대해 후회막급했으나 이미 엎지러진 물이라 어쩌는 수가 없었다. 모사 여미도 역시 제경공에게 오나라의 청혼을 받아들여 그들의 분노를 사면 안 된다고 말했다. 경공이 할 수 없이 그의 나이 어린 딸 소강(小姜)을 오나라에 시집보내기로 했다. 왕손락이 오나라로 돌아가 합려에게 제나라가 청혼을 받아들였다고 복명했다. 합려가 다시 왕손락을 제나라에 보내 폐백을 예물로 바치게 하고 소강을 맞이해 오도록 했다. 경공은 나이 어린 딸을 매우 사랑했지만 오나라도 매우 두려워하여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리며 한탄하며 말했다.

「만약 평중이나 양저가 살아 있었더라면 내가 어찌 한갓 오나라 따위로 걱정을 하겠는가?」

경공이 대부 포목(鮑牧)을 향해 말했다.

「번거롭겠지만 과인을 위해 나의 어린 딸을 오나라에 데려다 주고 오기 바라오! 소강은 나의 사랑하는 어린 딸이니 오왕에게 잘 보살펴 주도록 부탁하시오!」

포목과 왕손락이 제나라의 어린 소강을 모시고 길을 떠날 때가 되자 경공이 친히 소강을 안아서 수레에 태우고 남문 밖까지 따라가 전송을 한 후에 돌아갔다. 포목이 소강을 모시고 오나라에 당도하여 오왕에게 제후가 당부하는 말을 전했다. 포목은 또한 오자서가 어진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와 교분을 맺고 서로 두터운 우정으로 사귀게 되었다.

한편 소강은 나이가 매우 어렸기 때문에 부부 사이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태자파와 혼인을 한 후에도 그녀는 마음속으로 오직 부모 생각만 하게 되어 매일 밤낮으로 흐느껴 울기만 했다. 태자파가 계속 달랬지만 소강은 슬퍼하기를 멈추지 않다가 결국은 그것이 원인이 되어 병을 얻게 되었다. 합려가 듣고 불쌍하게 여겨 즉시 북문의 성루를 개조하여 극히 화려하게 꾸민 다음 그 이름도 제나라를 볼 수 있다는 뜻의 망제문(望齊門)이라 고치고 소강에게 명하여 그 위에 올라 놀 수 있도록 했다. 소강이 누각에 올라 난간에 기대어 북쪽을 쳐다보았으나 제나라가 보이지 않자 마음속의 슬픈 마음이 더욱 깊어져 그녀의 병은 더욱 심해졌다. 그녀가 죽음에 임하여 태자파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첩은 우산(虞山)⑮의 꼭대기에 오르면 저희 제나라가 있는 동해가 보인다 하니 제가 죽으면 그곳에 묻어 주어 만약에 혼백이 있다 한다면 그나마 한 번 제나라를 볼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태자파가 그 부왕인 합려에게 말하여 소강을 우산의 꼭대기에 상자 지냈다. 지금도 상숙현(常熟縣) 북쪽의 우산 꼭대기에는 소강의 무덤이 있고 또한 망해정(望海亭)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바로 그녀가 죽어서 나마 제나라를 쳐다 볼 수 있게 세운 정자다. 명초의 장홍(張洪)이라는 시인이 《제녀분(齊女墳)》이란 제목으로 지은 시가 있다.

남풍은 사납게 불고 북풍은 잔잔한데

장강의 야심 많은 오나라가 제나라에 청혼을 했다.

국경을 넘을 때 황금 천냥을 주어 보내겠지만

도중에 흘린 눈물은 만 번도 더 되었으리라!

南風初勁北風微(남풍초경북풍미)

爭長諸姬復娶齊(쟁장제휘부취제)

越境定須千兩送(월경정수천양송)

半途應拭萬行啼(반도응식만행제)

고향이 그리워 먼 고대에도 마다 않고 올랐고

한을 품고 묻힌 무덤이 낮아 일어나기 싫다 했다!

저 늘어진 잡초에 맺힌 이슬은 제녀의 눈물이러니

누가 그녀의 눈물로 그녀의 고향 땅을 적셔줄꼬?

望鄕不憚登臺遠(망향불선등대원)

埋恨惟嫌起冢低(매한유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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