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山有樞(산유추) - 산에는 느릅나무 – > 당풍

2. 山有樞(산유추) - 산에는 느릅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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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2,044회 작성일 11-10-04 08:36

본문

山有樞(산유추)

- 산에는 느릅나무



산과 들에는 각종 나무가 싱그럽게 자란다. 하늘엔 두둥실 구름이 떠가고 새들은 즐겁게 노래한다. 이 세상은 그대로 낙원이다. 이 즐거운 낙원에서 풍류를 즐기며 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구두쇠는 다르다. 그는 재산을 모으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마치 마라톤선수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달린다. 그리고 모은 재산이 아까워서 쓰지도 못하고 자꾸 더 모으기만 한다. 그리고 그 모아놓은 재산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흐뭇해한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자기 재산은 자기 것이 아니다. 자기는 그 재산을 잠시 보관하고 있는 보관자에 불과할 뿐이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책도 자기의 것이 아니고 자기 집도 자기 것이 아니다. 세월이 흘러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또 다른 보관자의 손으로 넘어간다.


인생은 짧다. ‘앗’하는 순간에 지나가고 만다. 이 짧은 기간 동안을 보관하고 있는 것들을 아까워 쓰지도 못하고 한평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불쌍하다. 시인은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시인은 재산을 모으기 위해 인생을 소모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야 한다고 노래한다.(시경강살)




山有樞(산유추)

산에는 느릅나무,



濕有楡(습유유)

질펄에는 흰느릅나무



子有衣裳(자유의상)

그대 바지와 저고리 있으나



弗曳弗婁 불예불루)

옷자락 끌어 입을 줄 모르네



子有車馬(자유거마)

그대 수레와 말이 있으나



弗馳不驅(불치불구)

달리지 않고 몰지 않으면



宛其死矣(완기사의)

그대가 갑자기 죽고나면,



他人是愉(타인시유)

다른 사람이 좋아하지 않겠나?



()이다. ()는 느릅나무이니, 지금의 자유(刺楡). ()는 백분(白枌)으로 흰누릅나무다. ()는 끄는 것이고 치()는 달아남이다. ()는 말을 채찍질하여 달리게 함이다. ()은 앉아서 보는 모양이다. ()는 기뻐함이다.

○ 이 시는 전편 실솔(蟋蟀)의 뜻에 답하여 근심을 푼 것이다. 산에는 느릅나무가 있고 습지에는 흰누릅나무가 있다. 당신이 의상과 거마(車馬)가 있은데 입거나 타지 않고 아끼면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죽게 되면 타인이 취하여 기쁨을 삼을 것이니, 때에 맞추어 즐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 근심이 더욱 심하면서 뜻이 더욱 소침해졌다.




山有栲(산유고)

산에는 북나무,



濕有杻(습유유)

습지에는 싸리나무



子有廷內(자유정내)

그대는 집에 뜰이 있어도



弗洒弗掃(불쇄불소)

물뿌리고 소재할 줄 모르고



子有鐘鼓(자유종고)

그대는 종과 북이 있어도



弗鼓不考(불고불고)

두드리고 칠 줄 모르네



宛其死矣(완기사의)

그대 갑자기 죽고 나면



他人是保(타인시보)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겠나?



()이다. ()는 북나무이니 가죽나무와 비슷하고 흰색에 잎이 조금 좁다. ()는 싸리나무로 잎이 살구나무와 같은데 뾰족하고 백색에 가죽은 붉은색이요 그 결은 굽은 곳이 많고 곧은 곳은 적으니, 재목은 활의 쇠뇌를 만들 수 있다. ()는 침이요, ()는 살면서차지하는 행위다.





山有漆(산유칠)

산에는 옻나무,



濕有栗(습유율)

습지에는 밤나무



子有酒食(자유주식)

그대는 술과 음식이 있음에도



何不日鼓瑟(하부일고슬)

어찌하여 매일 비파를 타며



且以喜樂(차이희락)

기뻐하며 즐거워하지 않으며



且以永日(차이영일)

하루 해를 길게 하지 않는가?



宛其死矣(완기사의)

그대 갑자기 죽으면



他人入室 타인입실)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산다네



()이다. 군자는 까닭이 없으면 금슬(琴瑟)을 옆에서 놓지 않는다. ()은 길게 만듬이다. 사람이 근심이 많으면 생각이 날로 짧아지니 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마음이 되면 하루 해가 길어 짐이다.

山有樞三章이니, 章 八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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