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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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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 조회 85회 작성일 19-02-2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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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 고도성장의 본질 : 신화에서 과학으로(2011년 4월 13일 작성)

1980년대 세계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일본을 칭찬하기에 바빴으며 일본을 배우자는 열풍이 일어나 저명한 석학부터 어린 아이까지 일본 공부에 열을 올렸다. 2차대전 패전 이후 80년대까지 일본의 고도성장은 놀라운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던 일본의 영화는 80년대 말 거품경제 붕괴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며 이후 세인의 시선은 놀라울 정도로 싸늘해져 90년대부터는 오히려 일본의 후진성과 한계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The Economist 같은 저명한 외신에서 보는 것이 매우 흔한 일이 되었다.
이처럼 거품경제 붕괴로 전후 일본 고도성장은 막을 내렸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인 대부분은 이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의 전후 고도성장은 일제강점과 부역행위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호도하는데 큰 영향을 주기까지 했다. 전후 고속성장한 일본의 우월성에 대한 찬양은 일제부역자에 대한 면죄부로 안성맞춤이었고 부역행위에 대한 평가에 우호적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후 일본 고도성장의 본질은 오히려 일제강점이 얼마나 유해했으며 부역행위 또한 야만에 동참한 것에 불과했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왜냐하면 일본 고도성장의 진정한 원동력은 결코 일제의 연속선에서 획득된 것이 아니라 일제를 파괴하고 단절시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일제의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패전후 고도성장은 결코 가능하지 않았다.
그럼 일본은 어떻게 일제로부터 벗어났는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답은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바로 미국이 일제를 패망시키고 일제의 후진적인 시스템을 파괴했으며 그 자리에 선진적인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미국이야말로 죠셉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를 단행한 주체이며 주인이었다. 거기에 일본인 따위는 없었다. 미국이 선진적인 시스템-균형 잡힌 민주주의 등-을 구축한 주체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럼 일제는 얼마나 후진적이었는가? 이 또한 주의 깊게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판단이 가능하다.

일제는 1차대전이 끝난 뒤 일제시대 동안 그나마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시대로 평가받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길게 지속하지 못했으며 곧 군부독재로 선회했다. 군인들이 정치인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내각을 마비시켰고 정치를 제멋대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해서 일본인들은 민주적이고 포용력이 있으며 활력 있는 정치 시스템을 영위하고 발전시키기는커녕 스스로 파괴했다. 잠시 숨어있던 일본의 역사적 후진성이 실체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인류 역사상 폭정 아래 장기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사례가 없다. 일제 군부독재는 어떤 면을 봐도 폭정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독재에 반대하는 일본인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으며 침략 전쟁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일제의 야만성과 후진성을 정말 잘 보여준 것은 전쟁이었다. 남경대학살은 하나의 단막극에 불과하다. 포로로 잡힌 연합군 병사들을 술안주로 삼기 일쑤였으며 생체 실험도 흔했다. 하물며 인간 이하로 생각하는 한국인과 중국인에 대한 학살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패전이 다가오자 일본은 자국민조차 카미카제, 카이텐 등 자폭의 희생자로 몰아붙였으며 오키나와에선 수많은 민간인이 군인들의 총칼 아래 강요된 학살을 면치 못했다. 한마디로 자국인조차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시스템이 일제 시스템이었다. 이게 폭정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폭정이란 말인가? 이처럼 군부가 지배한 일제는 폭정의 종합세트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폭정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이어간 나라가 있다면 한 번 알려주시기 바란다. 어떤 역사책을 들춰봐도 필자는 그런 얘기를 본 적이 없다. 이처럼 후기 일제는 미래도 희망도 없는 나라였다. 그러니 희망과 미래가 일본 자신이 아니라 미국이란 외세에 의해 강제적으로 다시 살아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80년대를 풍미한 미국의 일본 타령은 참으로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자신이야말로 일본 고도성장의 원동력을 제공한 주역이면서 그것도 모르고 일본이 경제동물이니 어쩌니 하면서 일본 고도성장의 비밀에 대한 온갖 가설이 난무했으니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일본 고도성장의 상징 그 자체인 소니가 창업된 것은 패전 직후인 1946년이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제 시대였다면 독재 군부와 유착한 재벌이 지배했던 일제 시스템 아래에서 소니 같은 기업이 발전할 수 있었을까? 없었다.

1953년 소니가 역사상 최초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제품화하려던 찰나 그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일본 정부였다. 과거 우리나라처럼 외화-달러 등-가 적었던 50년대 일본 또한 정부 관료가 외화배정을 통제했다. 소니는 트랜지스터 라디오 제작에 필수적인 라이선스 계약을 미국 회사와 맺으려고 했고 당연히 외화가 필요했다. 문제는 소니가 정부 관료에게 그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노한 일본 관료는 소니에게 외화를 배정해주지 않았으며 계약을 체결할 수 없었다.

소니는 몇 달 동안 분노한 관료를 달래는데 골머리를 썩어야 했고 마침내 외화배정을 받았지만 이미 리젠시일렉트로닉스란 미국 기업이 세계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 TR-1을 내놓음으로써 소니가 1등이 될 기회를 뺏기고 말았다. 패전후 시대엔 외화배정이 늦어지는게 다였지만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일제시대였다면 아예 소니가 문을 닫아야했을 것이다. 그나마 선진적인 미국 시스템이 상당부분 일본 사회를 변화시킨 패전 이후였기에 소니가 이후에도 기업활동을 영위할 수 있었다고 봐야한다.

관료가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다는 신화는 일본에서도 웃기긴 마찬가지고 우리나라에서도 웃기긴 마찬가지다. 평균적으로 볼 때 관료와 관료주의는 기업활동의 장애물이다. 그리고 당연히 일제의 가혹하고 막강한 힘을 지닌 관료시스템을 파괴하고 상당한 유연성을 갖추도록 변화시킨 것은 미국이다. 미국, 미국의 강제적인 개혁은 전후 일본 고도성장의 알파요 오메가다. 이것이 바로 일본 고도성장의 본질이다.

일본이 외세가 강제로 떠먹여주는 밥을 먹었던 반면 스스로 개혁에 성공한 나라는 바로 한국과 중국이었다. 우리나라는 4.19혁명, 87년 6월 민주항쟁, 97년 선거혁명 등 세 번의 혁명을 스스로 성공시켰으며 이는 곧 한국 경제의 눈부신 발전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대장정을 단행했고 내전을 승리로 이끌어 100여년에 걸친 난세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했으며 모택동 사후 등소평의 과감한 개혁과 개방으로 세계경제의 대양에 뛰어들었으며 등소평 사후에도 끊임없는 정치개혁-최고지도자의 10년 임기제 채택 등-을 시도해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고도성장이 놀랍다면 한국과 중국의 고도성장은 천 배 만 배는 더 놀랍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설픈 신화 따위가 아니라 엄밀한 과학이다.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일본 따위가 아니다. 중국이다. 또한 부러워해야할 것은 일본 따위가 아니다. 중국이다. 일본이 배우고 부러워해야할 대상은 바로 우리나라요 중국이다. 탈아입구와 유럽우월주의 역사관이란 케케묵은 주술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아니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국은 후진국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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