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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毛澤東)과 노신(魯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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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928회 작성일 13-02-0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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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毛澤東)과 노신(魯迅)



魯迅이 사망한 이후 재난을 맞은 그의 제자들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나 魯迅만은 사후에도 변함없이 毛澤東의 지지를 받고 다른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연구대상이 되고 지금까지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毛澤東은 그의 생전에 魯迅과 그의 작품들을 인용하여 여러 차례 칭송했고 인용했다. 그래서 먼저 毛澤東이 魯迅과 그의 작품에 관해서 언급한 것들을 차례대로 정리한다.

1937년 3월 1일 미국의 진보기자 겸 작가인 A. Smedle(1890~1950)가 毛澤東에게, 외부에서 전하기를 공산당의 현재 정책은 국민당에게 굴복하거나 투항하거나 잘못을 인정한다고 하는데 당신의 의견은 어떤지요? 라는 질문을 한다. 이 때의 중국의 정세는 抗日 전쟁 시기였다. 毛澤東은 <中日問題與西安事變>에서 스메드리와의 담화에서 그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이때 毛澤東은 처음으로 魯迅의 소설 ≪阿Q正傳≫에 나오는 주인공 阿Q를 언급하고 있다.



* 그러나 국내 일부에 阿Q정신을 띠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의 이런 양보를 “굴복, 투항과 뉘우침”이라고 오히려 득의만면하게 일컫는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서거한지 얼마 안 된 魯迅이 그의 한 편의 소설에서 阿Q라는 사람을 묘사하였는데 언제든지 이 阿Q는 승리한 것이고 남들은 실패한 것이었다. 남들이 마음대로 말하게 하라. 어쨌든 세상에는 阿Q 같은 이런 종류의 인물이 많다.

이 내용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毛澤東은 이때부터 魯迅의 작품을 읽고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毛澤東이 공식적으로 魯迅의 작품을 거론한 첫 번째인 것이다. 동년 10월 19일 毛澤東은 “論魯迅”에서 오늘 우리의 중요한 임무는 抗日선봉대를 배양하는 일과 그에 따르는 임무를 강조하면서 魯迅의 특징을 3가지로 요약하여 강연했다.


* 魯迅 선생의 첫째 특징은 그의 정치적인 선견이다. 내가 보기에 魯迅이 중국에서 지니는 가치는 중국 제일의 성인으로 꼽을 수 있다는 것이다. 孔夫子는 봉건사회의 성인인데 魯迅은 현대중국의 성인이다. 魯迅 선생의 둘째 특징은 그의 투쟁정신이다. 그는 정치방향을 똑똑히 보고 나서 다음의 목표를 향하여 투쟁해 나가고 절대로 중도에서 투항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魯迅 선생의 셋째 특징은 그의 희생정신이다. …… 우리는 魯迅의 이런 정신을 배워야 하고 그를 전 중국에 운용해야 한다. 상술한 몇 가지 특징을 종합해 보면, 위대한 “魯迅정신”이 형성되는 것이다. …… 魯迅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이 문장은 <延安陝北公學紀念魯迅逝世周年大會>에서, 魯迅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로서 그는 조금도 타협함이 없으며, 그는 견결한 마음을 갖추고 있다.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으면 도리어 개에게 물린다고 하면서 魯迅이 1925년 12월 29일 쓴 <論‘費厄潑賴’應該緩行>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하였다. 이때부터 毛澤東의 말 한마디에 魯迅정신은 형성되었고 중국인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1938년 4월28일 毛澤東은 <魯迅藝術學院的講話>에서 徐志摩ㆍ蘇汶ㆍ胡適之, 소련의 고리키 등을 함께 거론하면서 魯迅의 方向에 대해서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毛澤東 자신의 예술상의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 중국 문예계에는 소위 “제3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오늘도 우리는 그들을 배척하지 않는다. 오늘의 첫째 문제는 모든 애국자의 항일민족통일전선이다. 둘째 문제는 우리 자신들 예술상의 입장이다. …… 그러나 통일전선 원칙 아래에 있어야 한다. …… 남을 배척하는 것은 폐쇄주의이고 통일전선이 아니다. 그러나 통일전선에서 우리는 자신의 입장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바로 魯迅 선생의 방향이다. 여러분들의 魯迅예술학원은 魯迅 선생의 방향을 따라야 한다.


1939년 9월 24일 미국기자 Edgar Snow(1905~1972)와의 담화에서, 스노우가 毛澤東에게 현재 통일전선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면서, 중국에는 합법적인 당인 국민당이 있고, 합법적인 정부인 국민정부가 있다. 그리고 통일전선의 법률적인 근거는 어디에 있으며, 공산당의 법률적 지위는 있는 것인가? 국민당과 공산당간의 이름으로 통일전선은 있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 우리가 예전에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이와 같은 태도를 阿Q주의라고 일컬었다. 왜냐하면 魯迅 선생의 소설에서 묘사하는 그 阿Q는 날마다 자기는 옳고 승리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은 그르고 실패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阿Q주의자가 보기에 소위 통일전선이라는 것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믿지 않으면 魯迅 선생의 <阿Q正傳>을 봐야 한다.


이것은 미국기자 스노우와의 대담 중 일부분으로서 魯迅의 ≪阿Q正傳≫을 또 인용하여 그의 생각을 피력하면서 그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毛澤東은 魯迅의 ≪阿Q正傳≫을 탐독한 것이 증명된다.


≪中國文化≫는 1940년 1월 延安에서 창간한 잡지이다. <新民主主義論>은 이 잡지의 창간호에 제일 먼저 발표했다. <新民主主義論>의 내용에는 중국혁명의 성질, 특징과 규율을 분석하여, 新民主主義 理論과 강령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新民主主義論>이 비록 문예 전론은 아니지만, 그 중 5절 마지막은 비교적 “5ㆍ4” 신문학 운동 이래의 문화운동사를 전면적으로 결론지었고 아울러 신민주주의문화의 이론과 강령을 상세히 천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毛澤東은 魯迅에 대한 평가를 결정적으로 하고 있다.


* 魯迅은 바로 문화신군의 가장 위대하고 영웅적인 旗手이다. 魯迅은 중국 문화혁명의 主將이다. 그는 위대한 문학가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와 혁명가이다. 魯迅의 기개는 가장 강직하고 노예와 같은 얼굴이나 아첨하는 듯한 기질이 추호도 없다. 이것은 식민지나 반식민지 인민의 가장 귀중한 성격이다. 魯迅은 문화 전선에서 전민족의 대다수를 대표한다. 적을 향하여 용감하게 돌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용감하고、단호하고、충실하며 가장 열정적인 공전의 민족영웅이다. 魯迅의 방향은 바로 중화민족 신문화의 방향이다.

여기서 더 주의해 볼 점은 魯迅藝術學院의 講話에서 “方向”이라는 말로 魯迅을 결론지었다. 그러나 新民主主義論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旗手”ㆍ“主將”ㆍ“文學家”ㆍ“思想家”ㆍ“革命家”ㆍ“大多數”ㆍ“民族英雄”, 중화민족


“新文化의 方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결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魯迅에게 최고의 칭호와 찬사를 보냈으며,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중국 지도자들과 중국인들의 관심과 주의를 끌기 시작했으니, 魯迅은 점점 그 명성을 얻고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1942년 2월 8일 <反對黨八股>에서는 魯迅의 1931년 작품집 ≪二心集≫ 중에 있는 <答北斗雜誌問> 문장을 인용하여 魯迅의 글을 칭송하고 毛澤東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 제3편의 글은 <魯迅全集>에서 고른 것인데 魯迅이 어떻게 문장을 써야 하는지 토론한 것을 “北斗雜誌社 ”에 답신한 것이다. 그는 문장을 쓰는 규칙을 총 8가지를 열거하였다. 그가 말한 것들은 무엇입니까? 내가 그 중의 몇 가지를 골라 얘기해 보겠습니다.


첫째, “여러 가지 일들에 유의하여 많이 보며 조금 보고는 곧 쓰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에 유의한다”는 것은 한두 번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많이 봐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와 반대로 조금만 보고 쓰지 않습니까?


둘째, “쓸 수 없을 때는 억지로 쓰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분명히 머릿속에는 쓸 것이 거의 없는데도 억지로 많이 쓰려고 하지 않습니까? 조사도 안 하고 연구도 안 하고 억지로 붓을 들어 쓰는 것은 바로 책임지지 않는 태도이다.


셋째, “다 쓴 후 적어도 두 번은 읽어보며 있어도 되고 없어도 좋은 글자ㆍ문구ㆍ단락은 가능한대로 삭제를 해도 조금도 아깝지 않다. 소설로 쓸 수 있는 재료를 스케치로 줄이기는 할지언정 결코 스케치 재료를 늘려서 소설로 쓰지 않는다.” …… 魯迅이 적어도 두 번은 봐야 한다고 말했는데, 많아야 몇 번 봐야 하는지 그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중요한 문장은 십여 번을 봐도 무방하다. 진지하게 고쳐 다듬고 난후에 발표한다. 문장은 객관적 사물의 반영인데 사물은 곡절이 많고 복잡하므로 반드시 반복해서 연구해야 적절하게 반영할 수 있다. 여기서 세심하지 못하면 문장을 쓰는 기본적인 지식을 모르는 것이다.


넷째, “자기 이외에 아무도 모르는 형용사 따위를 제멋대로 만들어 내지 않는다.” 우리가 제멋대로 만든 것이 너무 많다. 하여튼 아무도 모른다. 구법에서는 길게는 글자 사오십 개로 하나의 문장을 만든 것이 있다. 그 중에 “아무도 모르는 형용사 따위”가 넘친다. 말끝마다 魯迅을 옹호하는 많은 사람이 바로 魯迅을 위배하는 것이다.

동년 5월 2일 毛澤東은 <延安文藝座談會上的講話>에서 <對于左翼作家聯盟的意見>에 나오는 글을 인용하고 있다.


* 문예계의 종파주의 이것 또한 원칙문제이다. 그러나 종파주의를 떨어뜨려야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종파주의 문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魯迅이 “연합 전선은 공통된 목적이 있는 것을 필요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의 전선이 통일될 수 없으면 소단체만 고려하거나 사실상 개인만 고려하기 때문에 우리의 목적도 통일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만약 목적이 모두 노농대중에 있다면 물론 전선도 통일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 문제는 그 때 上海에 있었는데 지금 重慶에도 있다.

毛澤東은 魯迅의 작품 ≪且介亭雜文末編≫ <死>에 나오는 이름뿐인 문학가나 이름뿐인 예술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인용하고 있으며, 魯迅의 잡문과 魯迅의 필법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 “아직도 잡문 시대이고 魯迅의 필법이 여전히 필요하다.” 魯迅은 암흑세력의 통치 아래 살면서 언론자유가 없어서 조소와 신랄한 풍자가 넘치는 잡문 형식을 이용하여 작전을 한 魯迅은 완전히 정확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魯迅의 詩句를 인용하여 인민들을 독려하고 있다.

* 사나운 눈초리는 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냉정하게 대하고 머리를 숙여 달갑게 인민을 위해서 복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는 마땅히 우리들의 좌우명이 되어야만 한다. “千夫”는 여기서 바로 적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어떤 흉악한 적들을 막론하고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孺子”는 여기서 바로 무산계급과 인민대중을 가리키는 말로서 일체의 공산당원, 일체의 혁명가 일체의 혁명문예공작자들이 모두 魯迅의 모범을 배워야 하며, 무산계급과 인민대중의 “소”가 되어 나라를 위하여 온 힘을 다 바쳐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아야 한다.

동년 9월 15일 毛澤東은 <關于報紙和飜譯工作問題下給何凱豊的信>에서, 凱豊에게 보내는 서신 중 번역 작업에 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 번역 작업은 唐나라의 三藏 및 魯迅에게 배우는 것이 실로 공적과 덕행을 무한하게 하는 것이다.

1942년에는 무려 5차례에 걸쳐 魯迅의 작품을 인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45년에는 두 차례에 걸쳐 魯迅의 작품 ≪阿Q正傳≫과 ≪風波≫를 언급하고 있다. 4월 21일 <中國共産黨第七次全國代表大會的工作方針>에서,


* 阿Q는 도대체 성이 무엇인지 비록 분명하지는 않지만 가적에서 제명당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阿Q는 투쟁할 때도 영특하고 용맹한 편이다. 그의 결점은 주관주의ㆍ종파주의 그리고 공산당의 형식적이고 교조적인 지시문에 빠지고 자아비판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상처자국을 들추어야 하지만 그의 상처자국을 다른 사람이 들추어내면 안 된다. 교조주의와 당팔고는 아주 심하다. “條凳”은 반드시 “條凳”이라고 해야 하고 “條凳”이라고 하면 안 된다. “條凳”이라고 하는 것은 노선이 옳지 못하다고 할 정도로 교조주의와 당팔고가 심하다. 그러나 阿Q를 쓴 작가는 여전히 阿Q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반혁명이 그를 죽였기 때문에 결점과 착오가 있는 사람과 우리는 단결해야 한다.

이 문장은 毛澤東이 中國共産黨第七次全國代表大會豫備會議 석상에서의 보고이다. 동년 4월 24일 中國共産黨第七次全國代表大會上的口頭政治報告에서는 路線問題를 언급하면서 魯迅의 작품 ≪故鄕≫에 나오는 문장과 ≪風波≫를 예로 들었다.


* 魯迅이 길은 사람이 걸어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였다. 우리의 이 노선도 중국 사람이 발로 밟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 魯迅이 <風波>를 쓰지 않았습니까? …… 우리 당은 지금 늘 풍파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대풍파도 있고 중풍파도 있고 소풍파도 있습니다. 우리는 풍파를 무서워하면 안 됩니다. (희망은 원래 있다거나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지상의 도로와 똑같다. 땅에는 원래 도로가 없는데. 걷는 사람이 많다 보면 도로가 된다.)

이것은 毛澤東이 中國共産黨第七次全國代表大會에서 ≪論聯合政府≫의 서면정치보고를 회부하면서 동시에 정치보고를 작성한 것이다.

이 당시의 魯迅의 인기는 절정에 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문장이 있다. 1951년 6월 6일 <人民日報>사설에,


* 조국의 언어 사용은 정확히 하고 언어의 순결과 건강을 위하여 투쟁하자!

라는 제목으로 毛澤東과 魯迅을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산문가 孟子ㆍ莊子ㆍ荀子ㆍ司馬遷ㆍ韓癒 등, 시인 屈原ㆍ李白ㆍ杜甫ㆍ白居易ㆍ關漢卿ㆍ王實甫 등, 소설가 <水滸傳> 작자 施耐庵, <三國志演義> 작자 羅貫中, <西遊記> 작자 吳承恩, <儒林外史> 작자 吳敬梓, <紅樓夢> 작자 曹雪芹 등 그들의 저작은 우리나라 역대 언어(엄격히 말하여 한어이다.)의 보고이다. 특히 백화소설은 아직도 여전히 인민 군중에게 깊을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 언어는 우리나라 언어 고유의 우수한 점을 보존해 왔다. …… 그래서 우리나라의 현대 언어는 고대 언어보다 더욱 엄밀하고 표현력이 풍부하다. 毛澤東 동지와 魯迅 선생은 이렇게 활발하고 풍부하며 아름다운 언 어를 사용하는 모범이다. 그들의 저작에는 우리나라 현대 언어의 가장 능숙하고 정확한 용법을 표현하였고 또한 우리에게 언어 측면의 중요한 지시를 많이 주었다. 우리는 毛澤東 동지와 魯迅 선생에게 열심히 배우고 우리나라 언어의 훌륭한 전통을 계속 발양시켜야 한다. 그러나 毛澤東 동지와 魯迅 선생이 언어 문제에 관한 지시를 근거로 현재의 신문ㆍ잡지와 책에 있는 문자 그리고 당과 정부기관의 문건을 점검하면, 우리는 언어 측면에 용인할 수 없는 혼란한 상황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魯迅은 “다 쓴 후 적어도 두 번은 읽어보며 있어도 되고 없어도 좋은 글자ㆍ문구ㆍ단락은 가능한대로 삭제를 해도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말하였다. 毛澤東 동지와 魯迅 선생의 이러한 지시에 우리는 똑같이 많은 사람이 실시를 하지 않고 있다.


1956년 4월 25일부터 28일까지 北京에서 중공중앙정치국확대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는 각 성ㆍ시 자치구 당서기가 참가했으며. 毛澤東은 이 자리에서 예술 문제상의 百花齊放, 학술 문제상의 百家爭鳴을 제기했다. 이 자리에서 毛澤東은 우리의 방침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면서 <論十大關係> 중 9번째 항목에 들어 있는 <是非關係>에서 魯迅의 소설 ≪阿Q正傳≫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 <阿Q正傳>은 한편의 좋은 소설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어본 동지는 한 번 더 보고 안 본 동지는 잘 보라고 권한다. 魯迅은 이 소설에서 낙후되고 자각하지 못한 농민을 주로 썼다. 그는 특별히 “不准革命”이라는 장을 써서 가짜 양놈이 阿Q가 혁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실, 그 당시에 阿Q가 말하는 혁명이란 그저 다른 사람처럼 물건을 좀 가지고 싶었던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마저 가짜 양놈이 허락을 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점에서 가짜 양놈과 다소 비슷하다.


1957년은 중공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 건설 시기이다. 이 해에 毛澤東은 3차례나 魯迅의 잡문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동년 3월 8일 <文藝界代表的談話>에서,


* 魯迅은 공산당원이 아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있다. 그는 시간을 내어 연구하고 또 자기의 실천을 통해서 마르크스주의는 진리라고 믿었다. 특히 그의 후기 잡문은 아주 힘이 있다. 그의 잡문이 힘이 있는 것은 마르크스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魯迅이 살아 있다면 잡문을 여전히 쓰고 있을 것이고, 아마 소설은 쓸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 문련 주석으로서 회의를 할 때 이 33개의 제목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그는 말을 하거나 혹은 잡문을 써서 문제를 해결한다. 그는 꼭 말할 것이다. 그리고 아주 용감하게.

이것은 毛澤東이 중국 공산당 전국선전공작회의 기간에 문예계대표들과의 담화에서 나온 주요부분이다. 이것은 바로 魯迅의 당당한 기개를 높이 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中國共産黨全國宣傳工作會議 기간에 毛澤東은 신문출판계 대표를 소집하여 1次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는 신문작업 중의 중요한 문제가 다루어지고 논의되었다. 동년 3월 10일 <新聞出版界代表的談話>에서,


* 당신들은 魯迅을 찬성 하십니까 찬성 안하십니까? 魯迅의 문장은 너무 부드럽지도 강경하지도 않으니 보기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바로 잡문을 쓰는데 어려운 점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魯迅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어떻게 되었을 거냐고 묻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는 魯迅이 살아 있다면 감히 쓸 수도 있고 쓰지 못할 수도 있다. 비정상적인 분위기에서는 그도 안 쓸 것이다. 그러나 쓸 가능성이 더욱 많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몸은 비록 동강이 나도 황제를 말에서 들어내릴 수도 있다 魯迅은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철저한 유물론자이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와 철저한 유물론자는 무서워할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魯迅은 쓸 것이다. …… 魯迅의 시대에 비난을 받는다는 것은 감옥에 가거나 죽는 것이었다. 그래도 魯迅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은 잡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경험이 없다. 내가 보기에는 魯迅을 청하여 여러분들은 그에게 배우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의 잡문은 다방면적인데, 정치ㆍ문학ㆍ예술에 대해 다 언급했다. 특히 후기에는 정치에 대해서 많이 언급했는데 경제에 대해서는 너무 적게 언급했다. 魯迅의 것은 모두 핍박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마르크스주의도 핍박을 받아서 배웠다. 그는 학자 집안의 출신이다. 그가 봉건잔여세력이라서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魯迅은 여전히 쓰고 있었다.


동년 3월 12일 中國共産黨全國宣傳工作會議上的講話에서,


* 어떤 사람은 몇백 자나 일이천 자의 잡문은 어떻게 분석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왜 할 수 없느냐고 묻는다. 魯迅은 바로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분석하는 방법은 바로 변증적 방법이다. …… 魯迅 후기의 잡문은 가장 깊이 있고 힘이 있으며 단편적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때 그가 변증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 魯迅의 잡문 절대 부분은 적들에 대한 것이다. …… 魯迅의 잡문은 인민 내부의 잘못과 결점을 처리할 수 있겠는가?

1964년 8월 24일 <關于人的認識問題>에서, 이것은 毛澤東이 북경대학부총장 周培源과 中共中央宣傳部科學處處長겸 國家科委主任인 于光遠과의 담화이다.




毛澤東과 魯迅과의 관계 考察


* 일은 항상 뜻밖의 결과에서 나온다. 孫中山은 의학을 배웠으나 후에 정치를 했다. 郭末若도 처음에는 의학을 배웠으나 후에 역사가가 되었다. 魯迅도 의학을 배웠지만 후에 대문학가가 되었다. 내가 정치를 한 것도 한걸음 한걸음씩 해온 것이다. 6 동안 공자의 서적을 읽었고, 년간 학당에 다녔으며, 이후에 초등학교 선생님을 했고 또 중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이상과 같이 毛澤東이 魯迅과 그의 작품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阿Q正傳≫을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으며, 毛澤東은 그의 생전에 魯迅과 관계된 작품을 17차례 언급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毛澤東이 魯迅과 그의 작품을 인용하여 魯迅에 대한 많은 연구와 배려를 하고 있었음이 증명된다.


박길장, 2009, <毛澤東과 魯迅과의 관계 考察>, <中國人文科學> 42, 302~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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