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長征) - 모택동 > 근현대

장정(長征) - 모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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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10회 작성일 19-05-23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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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長征)

 

모택동(毛澤東)

 

紅軍不怕遠征難(홍군불포원정난)

원정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은 홍군

 

萬水千山只等閑(만수천산지등한)

만수천산(萬水千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五嶺逶迤騰細浪(오령위이등세랑)

험준한 오령은 굽치치는 파도와 같아

 

烏蒙磅礴走泥丸(오몽방박주니환)

오몽산(烏蒙山)에서 떨어졌던 돌더미들은 진흙탄환 같았다.


金沙水拍雲崖暖(금사수박운애난)

금사강의 사나운 물은 절벽에 깃든 구름 어루만져주고

 

大渡橋橫鐵索寒(대도교횡철삭한)

대도하에 가로 걸친 철선다리는 차거운데


更喜岷山千裏雪(갱희민산천리설)

천리 민산 길에 내린 눈에 마음 들떠

 

三軍過後盡開顏(삼군가후진개안)

산을 넘은 삼군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연하다.

 

오령(五嶺)광동성, 광서성, 호남성, 강서성, 등의 변경을 이루는 다섯 개의 큰 산맥을 합칭하는 지명으로 즉 대수령(大廋嶺), 시안령(始安嶺), 임하령(臨賀嶺), 계양령(桂陽嶺), 게양령(揭陽嶺) 등을 말한다.

오몽산(烏蒙山)은 운귀고원(雲貴高原)에 소재하는 해발 2900미터의 최고봉이다.

금사강(金沙江)은 양자강의 발원지부터 민강(岷江)과 합류하는 의빈(宜賓)까지의 구간을 부르는 강이름이다. 의빈에서 양주까지는 장강(長江), 양주에서 장강구(長江口)까지는 양자강(揚子江)이다.

대도하(大渡河) : 일명 말수(沫水)라고도 부른다. 장강 상류의 최대수계인 민강(岷江)의 지류다. 사천성, 청해성 경계의 과락산(果落山)에서 발원하여 사천성 남동으로 흘러 낙산시(樂山市)에서 민강과 합류한다. 홍군이 장정 중에 대도하의 중류에 있었던 노정교(瀘定橋)를 건널 때 벌린 전투를 하늘을 날아 노정교를 빼앗았다는 뜻의 비탈노정교(飛脫瀘定橋)라고 부른다. 노정교를 점거하고 있던 국민당군이 홍군의 도하를 막기 위해 다리에서 판자를 걷어내고 철선만을 남겨놓았으나 홍군의 결사대가 철선에 메달려 국민당군의 초소를 공격한 후에 대도하를 건넜다. 대장정 때 홍군의 유명한 전적지다.

 

1935년 말 모택동은 험난했던 대장정의 여정을 회고하며 이 시를 지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오몽산은 귀주성에서 가장 높은 2900미터의 산이다. 금사강은 양자가의 상류구간이다. 평균 해발 3000미터 이상의 청장고원(靑藏高原)에서 발원하여 청해성, 사천성, 운남성의 고산지대를 거쳐 다시 사천성으로 흘러들어가 양자강이 된다. 노정교는 홍군이 대도하를 건널 때 도강작전을 벌렸던 곳이다. 민산(岷山)은 감숙성과 경계를 이루는 사천성 북단에서 소재하는 민강의 발원지다.

 

19341016일 강서성 정강산(井岡山) 서금(瑞金)을 출발한 공산당의 홍군부대는 총 연장 1만 키로를 행군하여 19351019일 산서성 오기현(吳起縣)에 도착했다. 그 동안 홍군은 11개 성과 700여 개의 현시(縣市)를 통과했다. 18개의 고산을 넘었으며 24개의 대강을 건넜다. 18개의 고산 중 5개는 해발 4천 미터가 넘는 설산이었다. 또한 인적없는 고지대 초원도 가로질렀다. 장정 중 235일은 주간 행군이었고 18일은 야간 행군만 했다. 나머지 115일은 싸우거나 쉬었다.

 

휴식기간 중 56일 사천성 송반(松潘)에 머물렀다. 모택동이 이끄는 중안군과 장국도(張國濤)가 이끄는 제4방면군 사이에 노선투쟁이 벌어져 예기치 않게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이 중 15일은 행군이나 휴식 없이 하루 종일 전투만 했다. 따라서 행군만 한 날짜를 계산하면 홍군은 하루 평균 무려 40키로를 걸었다. 하루에 한 번꼴로 크고 작은 전투를 벌렸던 점을 감안하면 초인적인 강행군이었다. 강서성의 정강산을 출발했던 홍군 9만 명은 3천 명만이 산서성 오기현에 당도했다. 30명 중 1명 만이 살아남아 최종 목적지에 다다른 것이다. 나머지 5천 명은 장중 중에 보충한 병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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