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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 왕계표2-춘추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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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4,866회 작성일 06-11-14 20:22

본문







대수


왕호


이름


즉위-몰년(전)


재위


간 사


15


소오(霄敖)


熊坎


763-758


6년


약오의 아들이다.


16


분모(蚡冒)


웅현(熊眴)


757-741


17년


소오의 아들이다.


17


무왕(武王)


웅통(熊通)


740-690


51년


분모의 동생으로 전740년 분모의 아들을 죽이고 자립했다. 주왕실에 왕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자 스스로 왕호를 사용했다.


18


문왕(文王)


웅자(熊貲)


689-677


13년


도읍을 단양에서 영(郢)으로 옮기고, 군대를 일으켜 신(申)나라를 병합, 전 685년, 채나라를 정벌하고 채애후를 생포했다. 전684년 등국을 멸하다 입은 상처가 덧나 재위 13년 만에 죽었다.


19


堵敖, 莊敖


웅간(熊艱)


676-672


5년


문왕의 장남으로 전676년 즉위하여 그 동생 熊惲, 즉 성왕을 살해하려고 했으나 隨나라로 달아난 성왕이 그들의 도움을 받아 운간을 습격하여 죽였다.


20


성왕(成王)


웅운(熊惲)


671-626


46년


형 웅간을 죽이고 자립했으나 즉위하자 내정을 정비하고 중원제후국들과 통호하여 국세를 신장시켰다. 홍수의 싸움에서 송군을 대파하고 패자 일보직전에 갔으나 중원제후국들을 이끈 진문공에 의해 성복에서 패했다. 말년에 태자 상신을 폐하고 막내아들을 세우려고 시도했으나 상신의 반발로 일어난 변란으로 스스로 목을 메어 죽었다.


21


목왕(穆王)


웅상신

(熊商臣)


625-614


12년


부왕을 시해하고 자립한 목왕은 재위기간 중 江 , 蓼, 六 등의 회수 연안의 소제후국들을 병합했다. 재위기간은 12년이다.


22


장왕(莊王)


웅려(熊侶)


613-591


23년


목왕의 아들로 재위 초에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삼년불비, 삼년불명에 비유한 신하의 간언으로 깨닫고 내정을 정비하여 패자가 되었다. 집정기간 중에 육혼융을 정벌하고 주나라 와성 주변에 열병식을 거행하고 주나라 구정의 무게를 물었으며, 필의 싸움에서 당진군을 물리쳐 중원의 패권을 확립했다. 혜전탈우, 절영대회, 배도 저을 수 있는 재상의 뱃속, 우맹곡마, 인재를 천거하지 않은 재상은 현명한 신하가 아니다...등 수많은 고사성어의 주인공이다.


23


공왕(共王)


웅심(熊審)


590-560


31년


초장왕의 장자. 주간왕 11년 기원전 575년, 당진의 공격을 받은 정나라가 초에 구원을 요청하자 그는 군사를 이끌고 출전했다. 당진과 초가 언릉에서 조우하여 싸웠으나 초군 대장 공자측의 과음으로 인해 크게 패하고 장왕이 이룩한 패권을 잃었다. 이 전투에서 당진군의 화살을 맞아 한 쪽 눈을 잃었다.


24


강왕(康王)


웅초(熊招)


559-545


15년



공왕의 장자이다.


25


겹오(郟敖)


웅원(熊員)


544-540


4년


강왕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나 숙부에게 살해 당했다.


26


영왕(靈王)


웅위(熊圍)


540-529


12년


장왕의 아들이며, 강왕의 둘째 동생이다. 조카 겹오 밑에서 영윤이 되어 초나라의 모든 권력을 손에 넣고 휘두르다가 결국은 겹오를 시해하고 자립했다. 즉위 후, 중원이 제후국들을 申 땅에 대거 소집하여 회맹을 행하고 그 군사들을 이끌고 오나라 정벌에 나섰다. 오나라에 망명하고 있던 제나라 대부 경봉을 사로잡아 죽이고 그 종족들을 멸족시켰다. 다시 그의 동생 기질을 시켜 陳과 蔡를 멸하고 스스로 중원의 맹주임을 자처했다. 전 530년 대군을 이끌고 북상하여 자신의 본대는 건계에 주둔하고 별도의 군대를 보내 서나라를 정벌하여 오나라에 위협을 가했다. 다음 해인 기원전 529년 빈번한 군사행동에백성들의 원성이 높던 중에 동생 기질이 일으킨 반란으로 산중으로 달아나 숨었다가 결국은 스스로 목을 메달아 죽었다.


27


평왕(平王)


웅기질

(熊棄疾)


528-516


13년


공왕의 막내아들에 초영왕의 동생이다. 영왕의 명을 받아 陳과 蔡 두 나라를 멸한 공으로 봉해져 陳公, 蔡公으로 불리웠다. 전 529년 영왕이 원정을 나간 틈을 이용하여 란을 일으켜 스스로 초왕의 자리에 올랐다. 즉위 후, 국인들과 제후들을 회유할 목적으로 형벌을 가볍게 하고 유화정책을 펼쳤으며, 초나라의 현으로 삼은 진과 채 두 나라를 복국시켰다. 간신 비무극을 중용하여 태자비를 가로챘다. 비무극의 모함을 받은 태자 건은 정나라로 달아나고, 그 사부였던 오사와 오사의 아들 오상을 죽였다. 오사의 다른 아들 오자서는 태자건을 뒤따라 정나라로 갔다가 후에 다시 오나라로 들어가 합려를 모셨다.


28


소왕(昭王)


웅진(熊珍)


515-489


26년


평왕이 태자비로 섬진에서 데려온 백희와의 사이에 태어났다. 수시로 초나라 변경을 침범한 오군에 의해 계속 패하다가, 기원전 506년 오왕 합려에 의한 공격으로 초나라의 도성 영도가 함락되었다. 영도를 버리고 수국으로 몸을 피한 소왕은 신포서를 섬진으로 보내 구원을 청하게 했다. 섬진군의 도움으로 영도를 수복하고 오군을 격퇴했다. 오군의 공격에 위협을 느껴 도성을 鄀고으로 옮겼다. 초소왕의 선정으로 초나라는 옛 국력을 회복했다.


29


혜왕(惠王)


웅장(熊章)


488-432


57년


초소왕이 오나라의 공격을 받은 陳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도중에 죽자 태자의 신분으로 종군 중이었던 혜왕이 그 뒤를 이어 초왕의 자리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 영윤 子西와 白公 勝의 불화로 내란이 일어났다. 백공은 자서와 대신들을 살해하고 혜왕은 높은 누각에 유폐시켰다. 葉公의 활약으로 복위한 초혜왕은 내정을 정비하여 진, 채, 기 등의 제후국들을 멸하여 초나라의 영토를 회수 이북과 사수 연안까지 확대시켰다. 혜왕 재위 기간 중인 기원전 453년은 북방의 강국 당진에서 대대로 세가를 형성했던 사가 사이에 내란이 발생했고, 그 결과 진양성 싸움에서 지가를 멸한 한위조 3가 당진국을 실질적으로 3분하여 전국시대가 시작되는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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