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서(平準書)-세계 최초의 재정 및 경제정책 지침서 > 서(書)

평준서(平準書)-세계 최초의 재정 및 경제정책 지침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양승국 조회 5,077회 작성일 04-06-04 12:16

본문

한나라가 세워지고 나서부터 무제에 이르기까지의 100여 년 기간 동안 국가의 재정정책과 경제발전 과정을 서술한 책이다. 평준서는 세계 최초의 정부 재정정책에 대한 저술로 주로 국가의 재정과 경제정책의 변동 및 그 성공과 실패에 대해 논했다. 가격이 싼 지방에서 상품을 구입하여 비싼 지방으로 운송하여 제값을 받게 하는 것이 균수법(均輸法)이라고 한다면 화폐제도의 변동이나, 가격이 폭락할 때 사 두었다가 비쌀 때 팔거나, 수확기에 싸게 사두어 저장했다가 가격이 오르면 팔아 물가를 조절하기 위한 법은 평준법(平準法)이다. 평준서는 균수법과 평준법에 관해서 저술한 책이다.

----------------------------------


태사공이 말한다.


“ 농(農), 공(工), 상(商)이 서로 교역을 하게 되면 귀패(龜貝), 금전(金錢), 도폐(刀幣) 등이 생겨난다. 이런 현상의 유래는 참으로 오래되어 고신씨(高辛氏) 제곡(帝嚳) 이전부터 있었으나 너무 옛날이라 기술하기 어렵다. 고로 <상서(尙書)>에서 말하는 요순(堯舜) 시대나 <시경(詩經)>에서 말하는 은주(殷周) 시대는 천하가 안정되어 학교를 장려하였고, 농업을 본(本)으로 하고 상업을 말(末)로 하여, 예의로써 이익을 탐하는 것을 방지했다.

그러나 세상에 변란이 일어나게 되면 이와는 반대가 된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사물도 번영이 극에 달하게 되면 반전되어 쇠퇴하기 마련인 것이며, 어떤 시대도 발전하여 태평성대를 이루어 그 극에 다다르게 되면 반전됨으로 해서 질박한 시대와 난숙한 시대가 번갈아 나타나는 것은 모든 사물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며, 하나의 종말은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자연의 법칙에 따른 변화라 하겠다.

<상서(尙書)> <우공(禹貢)> 편에 따르면 우임금은 천하를 구주(九州)로 나누어 각기 그 토지에 맞는 작물을 심은 후에 백성의 많고 적음에 따라 그 공물을 바치게 했다고 한다. 은나라의 탕왕(湯王)과 주나라의 무왕(武王)이 각기 전대(前代)의 나쁜 정령을 이어받아 그 풍속을 개변시키면서 백성들로 하여금 싫증을 내지 않도록 하여 두 왕조는 각기 조신한 자세로 온힘을 다하여 치적을 이루기 위해 백성들을 다스렸으나 결국 두 나라 또한 점점 쇠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제환공(齊桓公)은 관중(管仲)의 정책을 채용하여 화폐를 통일하고, 소금과 철의 전매제를 시행하여 국가의 재정을 확충한 힘으로 제후들을 호령하여 천자에게 조현을 올리도록 함으로 해서 동방의 조그만 제후의 신분에서 패자가 되어 그 명성을 천하에 떨쳤다.

위문후(魏文侯)는 이극(李克)의 <진지력지교(盡地力之敎)>를 채용하여 전국시대 초기에 강국이 되었다. 이어 전국시대에 이르러 천하가 서로 다투며 속임수와 무력을 중시하고 인의(仁義)를 천시하였으며 부를 앞세우고 겸양을 무시했다. 그 결과 서민출신이 부를 쌓아 거만금의 부자가 된 사람도 있었지만, 반대로 겨나 술지게미도 없어 굶주리는 가난한 사람도 많았다. 또한 강국의 군주 중에는 군소제후국들을 겸병하여 신하로 삼기도 했지만, 후사가 끊기어 조상에게 제사도 드릴 수도 없었던 약소국의 제후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진나라가 천하를 병합하게 되었다.

순임금 시대와 하나라 시대 때부터 이미 황금(黃金), 백금(白金), 적금(赤金) 등의 금속화폐가 있었고, 이외에도 동전이나, 포폐(布幣), 도폐(刀幣), 귀패(龜貝) 등이 있었다. 진나라가 서자 전국의 화폐를 2종류로 하여 일(鎰)을 단위로 하는 황금이 상폐(上幣)이고 반량(半兩)이라고 문자를 새긴 동전을 하폐(下幣)라 했다. 주옥(珠玉), 귀패(龜貝), 은(銀)이나 주석(朱錫)과 같은 것은 장식품이나 재보로 여겼지 화폐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진나라의 화폐는 시대에 따라 변화가 무상하였다. 밖으로는 오랑캐를 물리치고 안으로는 토목공사를 일으켜, 나라 안의 남자들이 농사를 힘써지어도 식량은 부족하였고, 여자들이 열심히 베를 짰으나 의복을 해 입기에 부족하였다.

옛날에는 이미 천하의 재물들을 모두 빼앗아 그들의 임금을 받들었지만, 임금은 그래도 여전히 재물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정황이 서로간에 영향을 미치어 조성된 풍조로 그리 된 것이니 어찌 이상하다 하겠는가?”


▶진지력지교(盡地力之敎)/ 전국시대 초기 위(魏)나라 문후(文侯) 때 이극(李克)이 제창한 것으로 토지의 생산력을 최대한 높여 국부를 증가시켜야 한다는 정책이다. 이회(李悝)라고도 한다. 또한 이회와 이극은 동일인이라는 설과 다른 사람이라는 설이 있다.

▶일(鎰)/ 한나라 때 1일(鎰)을 1금(金)으로 바꾸어 1금 당 1만 전으로 정했다. 1일의 중량은 대략 230그람에 해당한다.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