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서 서평 > 서(書)

평준서 서평

페이지 정보

작성자 양승국 조회 3,599회 작성일 04-06-04 12:17

본문

<평준서(平準書)>는 한나라시대의 평준정책의 종류와 시행과정을 서술했다.

사실상 한무제 이전의 부국정책을 체계적으로 소개한것이다. <평준서>는 봉건정부가 어떻게 권력을 이용하여 상공업의 발전을 억제하면서 자체의 재정위기를 해결하려 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 주요한 조치로는 전법(錢法), 관작(官爵)과 복도(復徒)의 매매에 관한 법, 소금과 철에 대한 전매정책( 소금과 철기의 매매가 관리들에 의해 행해짐으로 해서 평준법이 시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강제징수에 해당하는 고민법 등에 대한 기술한 것으로, 이는 모든 봉건제도에 대해 말하면 탐색과정이고 또한 후세 사람들에게 심각한 교훈과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한나라 초기, 국가가 빈궁하고 경제가 침체되었다. 새로 건립된 봉건국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전중(錢重)을 경감시켜 유통에 편리하게 했으며 상업을 발전시키는 정책을 모색했다. 그 결과 물가가 폭등하고 통화팽창의 국면이 나타났다. 후에 부득이 화폐의 무게를 무겁게 하고 또한 사전(私錢)을 폐기하고 정부가 주전(鑄錢)을 관리함으로 해서 상인들은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되었으나 한나라 정부는 빈번한 대외전쟁의 수행으로 고갈되어 심각한 수준에 달했던 재정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화폐를 주조하고 기존의 화폐를 폐기함으로 해서 사농공상(士農工商) 각각의 노력에 의해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화폐자산이 하루 저녁 사이에 폐물로 되어버렸고 그 주요한 피해자는 주로 농민과 노동자였으며 상인들에 대한 타격은 아주 제한적이었다. 화폐가 바뀌었지만 상인들은 상품이란 형태로 바꾸어 오히려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정부차원에서도 화폐개혁으로 생긴 이익도 일시적이었다. 장부는 상업을 활성화시키지 못했으며 국가의 경제상황을 근본적으로 개변시키지 못했다.

여기서 볼 수 있는바, 화폐는 다만 유통도구이고 자체의 존재법칙이 있으며 행정수단으로 발행을 개변시키는 이런 약탈적인 조치로 그 속에서 잔꾀를 부리는 것은 백해무익한 것이다. 관작과 복도(復徒)의 매매, 역시 국가재정을 개선시키는데는 일시적인 효과를 얻는 외는 그 효과가 아주 미흡했으며 일련의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시켰다. 이를테면 정부기구가 팽창되고 관리제도가 문란하게 되었으며 법령이 민간에게 서지 않게 되었다.

이런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혹리(酷吏)를 사용하고 가혹한 정치를 펼쳐 감옥을 늘려야 했다. 이것 역시 한나라 이후의 역사에도 흔히 나타나는 사실이다. 관작의 매매정책이나 강제로 상인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하는 제도야말로 한무제가 국가의 재정을 확충하는 가장 주요하고 유효한 조치였다.


하지만 그 정책은 심각한 후유증을 동반했다. 즉 공업과 상업이 억제되고 상업이 파괴된 것이다. 사마천은 그의 저서 <사기(史記)>에서 " 염철(鹽鐵)의 전매제도는 군현이나 제후국들에게 막심한 불편을 끼치고, 값은 비싼 반면에 품질은 조악한 철기를 백성들에게 강매했다. 또한 선박에 과세를 하여 선임이 올라 상인이 줄고 상품의 가격이 폭등했다."고 기술했다. 관리가 파는 상품은 저질이고 가격이 비싸게 된 이유는 정부권력이 상업에 개입함으로 해서 상업발전의 기본적인 원동력인 경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나라이후 계속된 2천 년 동안 계속된 봉건사회는 이 두 가지 정책을 계승해 정책을 시행함으로 해서 국가재정을 해결하려고 했으나 동시에 중국의 상업이 계속 활성화되지 못한 원인도 되었다. 그러나 한무제가 펼친 여러 가지의 재정과 경제정책의 공과(功過)를 지금 시점에서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예악치천하(禮樂治天下)의 유가사상에 속해있기는 하지만 평준서(平準書)에 반영된 사마천의 정치사상은 절약정책이다.


사마천은 글의 마지막 평론에서 "천하가 안정되면 학교가 장려되었고, 농업을 본(本)으로 하고 상업을 말(末)로 했으며, 예의로써 이익을 탐하는 것을 방지했다. 그러나 세상에 변란이 일어나게 되면 이와는 반대가 된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사물도 번영이 극에 달하게 되면 반전되어 쇠퇴하기 마련인 것이다." 라고 했다.


" 한무제는 상무(尙武) 정신을 일으켜 한나라의 새로운 강역을 개척하고 제신(祭神), 봉선(封禪), 순유(巡遊) 등의 많은 일을 행해 정부의 재정을 탕진했다. 이에 대해 사가들은 한무제가 행한 낭비적인 행위에 대해 비난을 했다. 한무제는 사욕을 채우는 신하들을 중용해 국가의 기강이 문란해지고 백성이 가난해졌으며 그 결과 천하가 어지러워지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것은 여러 가지 사상으로 뒤범벅이 된 유가사상의 발로인 것이다.

출전 : 문백대조사기 국민문화출판공사 간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