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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서(樂書) 대역본 1. 서(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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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3,108회 작성일 12-07-27 09:10

본문

악서(樂書)24



1. 서(序)



太史公曰(태사공왈)

태사공이 말한다.



余每讀虞書(여매독우서)

나는 상서(尙書)의 우서(虞書)① 편을 읽을 때 마다



至於君臣相敕維是几安(지어군신상눈유시기안)

「군신 간에 서로 경계를 행하여 잠시 안녕을 이루었으나



而股肱不良萬事墮壞(이고굉불량만사타괴)

다시 측근 신하들의 불량으로 만사가 모두 망가지게 되었다.」



未嘗不流涕也(미상불류체야)

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항상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成王作頌推己懲艾(성왕작송추기징애)

주성왕(周成王)②이 송(頌)을 지어➂

스스로를 징계하여 화난을 막을 수 있었음은➃



悲彼家難可不謂戰戰恐懼(비피가난가불위전전공구)

그의 왕실에 분란이 있음을 슬퍼하여

전전긍긍의 겸손한 자세로 임했기 때문이었으니



善守善終哉(선수선종재)

어찌 기업(基業)을 지키고 그 끝을 잘 맺었다고 말할 수 없겠는가?



君子不為約則修德(군자불위약즉수덕)

군자는 현직에 있을 때는 간약(簡約)➄의 정치를 행해야 하고

물러나 있을 때는 덕을 수련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滿則棄禮(만즉기례)

그렇지 않으면 자만하여 예의를 잃게 된다.



佚能思初(일능사초)

몸이 여유롭게 되었을 때는 처음 어려웠을 때를 생각해야 하며



安能惟始(안능유시)

천하가 안정된 후에는 처음 창업할 때의 간난을 잊지 말아야 한다.



沐浴膏澤而歌詠勤苦(목욕고택이가영근고)

몸이 지극히 존귀한 지위에 처하게 되더라도 항상 삼가고

고생스러웠던 때를 노래하면서 절대 안락에 빠지면 안 된다.➅



非大德誰能如斯(비대덕수능여사)!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와 같이 큰 덕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傳曰「治定功成,禮樂乃興(전왈‘치정성공, 예약내흥’)」

전(傳)에 이르기를 ‘정치를 안정시켜 공업을 이루게 되면

예와 악은 이내 일어나게 된다’라고 했다.➆



海內人道益深(해내인도익심)

세상 사람들의 도가 깊이지면



其德益至(기덕익지)

그 덕도 따라서 지극한 경지에 이르게 되고



所樂者益異(소악자익이)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도 따라서 같지 않게 된다.



滿而不損則溢(만이부손특일)

가득 찼을 때 덜어내지 않으면 넘치게 되고



盈而不持則傾(영이부지즉경)

균형이 이루어지더라도 잡아주지 않으면 넘어진다.



凡作樂者所以節樂(범작락자쇼이절락)

무릇 음악을 만드는 목적은 즐기는 것을 절제하기 위함이다.



君子以謙退為禮(군자이겸퇴위례)

군자는 겸손의 자세로 물러남을 예로 삼으며



以損減為樂(이손감위락)

스스로 덜어내고 빼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樂其如此也(락기여차야)

음악의 효용은 이와 같은 것이다.



以為州異國殊情習不同(이위주이국수정습부동)

지방이나 나라의 정서와 풍습은 서로 같지 않으니



故博采風俗協比聲律(고박채풍속협비성률)

널리 풍속을 채집하고 지방마다의 성률을 비교하여



以補短移化助流政教(이보단이화조류정교)

치도(治道)의 결함을 보충하고 풍속을 바꾸어

정치와 교화의 수단으로 삼는다.



天子躬於明堂臨觀(천자궁어명당임관)

음악이란 천자가 몸소 명당(明堂)➇➈에 나아가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而萬民咸蕩滌邪穢(이만민감탕척사예)

만백성들을 사악하고 더러운 풍습으로부터

정화가 되도록 감화시키고



斟酌飽滿以飾厥性(짐작포만식궐성)

그 인성을 건강하고 완벽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故云雅頌之音理而民正(고운아송지음리이민정)

고로 시경의 아(雅)와 송(頌)의 소리는 백성들을 바르게 이끌고



嘄嘄之聲興而士奮(규규지성흥이사분)

격렬하게 부르짖는 소리는 무사와 선비들의 마음을 격분시키며



鄭衛之曲動而心淫(정의지곡동이심음)

정(鄭)과 위(衛) 두 나라의 노래 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음란하게 만든다고 했다.



及其調和諧合(급기조화해합)

또한 그 곡조가 화음을 이루게 되면



鳥獸盡感(조수진감)

새나 짐승들도 모두가 감화를 받는데



而況懷五常含好惡自然之勢也(이항회오상함호오자연지세야)?

하물며 호오(好惡)의 감정과 오상➉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할 필요도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治道虧缺而鄭音興起(치도휴결이정음흥기)

정치의 도가 무너지자 정나라의 음란한 소리가 일어나게 되어



封君世辟名顯鄰州(봉군세벽명현인주)

정나라와 이웃하고 있는 땅에 분봉을 받거나

군위를 이어받은 명망있는 군주들도



爭以相高(쟁이상고)

서로 앞을 다투어 정나라의 소리를 서로 높였다.



自仲尼不能與齊優遂容於魯(자중니불능여제우수용어노)

노나라가 제나라에서 보내온 아름다운 여자 악사⑪를 받아들이자

공자는 노나라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雖退正樂以誘世(수퇴정락이유세)

정계에서 물러난 공자는 비록 음악을 정리하여

세상 사람들을 계도하기 위해



作五章以剌時(작오장이자시)

오장(五章)⑫의 노래를 지어 세상사를 풍자하기는 했지만



猶莫之化(유막지화)

세상사람들을 여전히 감화시키지는 못했다.



陵遲以至六國(능지이지육국)

이렇듯 쇠락한 음악에 젖은 상태로 세월은 흘러

이윽고 전국시대에 이르자



流沔沈佚(유면침일)

그 군왕들은 주색에 탐닉하여 스스로 헤어나지 못한 나머지



遂往不返(수왕불반)

결국은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卒於喪身滅宗(졸어상신멸종)

몸은 죽어 없어지고 종묘사직은 소멸되어



并國於秦(병국어진)

모두가 진나라에 병탄되고 말았다.



秦二世尤以為娛(진에시우이위오)

진나라의 이세황제는 특히 노래를 오락으로 삼아 즐겼다.



丞相李斯進諫曰(승상이사진간왈):

이에 승상 이사가 진언하여 간했다.



放棄詩書極意聲色(방기시서 극의성색)

「시서를 멀리하고 성색에 탐닉하는 행위를



祖伊所以懼也(조이소이구야)

옛날 상나라 때 조이⑬가 걱정했었습니다.



輕積細過(경적세과)

작은 잘못이라도 쌓이면 재앙이 된 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恣心長夜(자심장야)

방자한 마음으로 날을 지새우며

향락에 젖은 생활을 지속함으로써



紂所以亡也(주소이망야)

주왕은 나라를 망치고 자신은 죽었습니다.」



趙高曰(조고왈):

그러자 조고가 말했습다.



「五帝,三王樂各殊名(오제, 삼왕락각수명)

「오제와 삼왕⑭은 그 즐기는 방법이 각기 같지 않았습니다.



示不相襲(시불상습)

이것은 음악이 서로 계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上自朝廷下至人民(상지자조성하지인민)

위로는 조정으로부터 아래로는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得以接歡喜合殷勤(득이접환회합은근)

음악으로 환희를 느끼고 은근한 뜻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非此和說不通(비차화설부통)

이와 같이 하지 않았더라면

평화롭고 즐거운 마음들은 서로 통하지 못했고



解澤不流(해택불류)

은혜와 혜택은 아래의 백성들까지 미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亦各一世之化度時之樂(역각일세지화탁시지락)

같지 않은 각각의 음악으로

당시의 세상을 감화시킨 음악은 시속을 초월합니다.



何必華山之騄耳而後行遠乎(하필화산지녹이이후행원호)?

그것은 마치 화산의 명마 녹이⑮만이

멀리 갈 수 있다고 고집하는 것과 같습니다.」



二世然之(이세연지)

이세황제가 조고의 말을 따랐다.



高祖過沛(고조과패)

고조가 고향 패현을 지나가다가



詩<三侯之章>(시삼후지장)

삼후지장(三侯之章)⑯의 노래를 지어



令小兒歌之((령소아가지

동자들에게 따라 부르게 했다.



高祖崩(고조붕)

고조가 죽자



令沛得以四時歌舞宗廟(령패득이사시가무종묘).

패현에게 령을 내려 사시사철에 고조를 모신 종묘에

삼후지장의 노래와 함께 춤을 추어 제사를 받들게 했다.



孝惠孝文孝景無所增更(효혜효문효경무소증갱)

혜제(惠帝), 문제(文帝), 경제(景帝) 삼대 동안은

아무것도 바꾸거나 더하지 않았고



於樂府習常肄舊而已(어락부습상사구이기)

악부의 악공들로 하여금 항상 연습하여

옛 것들을 익히게 했을 뿐이었다.



至今上即位(지금상즉위)

현재에 이르러 금상폐하께서 즉위하시자



作十九章(작19장)

19장⑰의 노래말을 지어



令侍中李延年次序其聲(령시중이연년차서기성)

시중 이연년⑱에게 명하여 순서대로 곡조를 붙이게 했다.



拜為協律都尉(배위협률도위)

금상은 그 공로로 이연년을 협률도위(協律都尉)⑲에 임명했다.



通一經之士不能獨知其辭(통일경지사불능독지기사)

한 가지 경전에 통달한 선비일지라도

혼자서는 그 가사를 해석할 수 없었음으로



皆集會五經家(개집회오경가)

오경박사들을 모두 한 곳에 모이게 하여



相與共講習讀之(상여공강습독지)

서로 같이 강독을 통하여 익힌 뒤에야



乃能通知其意(내능통지기의)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으니



多爾雅之文(다이아지문)

그 가사들의 대부분은 참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漢家常以正月上辛祠太一甘泉(한가상이정월상신사태일감천)

한나라 황족들은 정월 상순 신일(辛日)에

감천궁(甘泉宮)⑳에서 태일신(太一神)㉑에게



以昏時夜祠(이혼시야사)

날이 저물 무렵부터 밤을 세우고



到明而終(도명이종)

날이 밝을 때까지 제사를 끝냈다.



常有流星經於祠壇上(상유유성경어사단상)

그럴 때 마다 유성이 제단 위를 지나갔다.



使僮男僮女七十人俱歌(사동남동녀칠십인구가).

그래서 동남동녀 70인을 모아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



春歌青陽夏歌朱明(춘가청양하가주명)


봄에는 청양(靑陽), 여름에는 주명(朱明)을



秋歌西暤冬歌玄冥(추가서호동가현명)

가을에는 서호(西皥)를, 겨울에는 현명(玄冥)을 부르게 했다.㉒



世多有故不論(세다유고불론)

노래말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음으로 여기에 올리지는 않는다.


<계속>


주석


① 우서(虞書)/ 상서(尙書)를 이루고 있는 다섯 편명(篇名) 중의 하나라로 전설 상의 임금인 당요(唐堯)와 우순(虞舜) 두 임금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다섯 편명은 요전(堯傳), 순전(舜傳), 대우모(大禹謨), 고요모(皐陶謨), 익직(益稷)이다. 그 중 요전(堯傳)과 순전(舜傳), 대우모(大禹謨) 등 세 편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요, 순, 우 시기에 군주와 신하들의 대화와 그 사적들을 기록했다.

②주성왕(周成王)/ 상(商)을 멸하고 주왕조를 창건한 주무왕의 아들로 이름은 송(誦)이다. 왕위에 올랐을 때 나이가 어렸음으로 주공(周公) 단(旦)이 섭정을 행했으나 단의 동생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의심하여 은나라 구지에 봉해졌던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武庚)과 공모하여 란을 일으켰다. 주공이 란을 평정하고 섭정을 행하다가 성왕이 장성하자 7년 만에 왕권을 돌려주었다. 성왕은 재위 시 선정을 베풀어 그의 아들 강왕(康王)과 함께 <성강(成康)의 치세>를 이루었다.

③작송(作頌)/ 시경(詩經)은 크게 풍(風), 아(雅), 송(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송(頌)은 조상들의 공업을 찬미한 노래로 주(周), 상(商) 두 왕조와 제후국 노(魯)나라의 군주들이 종묘에 제사를 올릴 때 부른 노래다. 상송(商頌), 주송(周頌), 노송(魯頌) 합해서 삼송(三頌)이라고 칭하고 모두 40편의 가사가 있다. 그 중 주왕가의 선조들의 공덕을 노래한 주송은 <청묘지습(淸廟之什)> <신공지습(臣工之什)> <민여소자지습(民予小子之什) 삼장에 모두 31수의 시가 있다. 대부분은 주공의 작이니 그 중 <민여(民予)>, <방락(訪落)>, <소비(小毖)>등 3편이 성왕의 작으로 여겨지고 있다.

④推己懲艾(추기징애)다./ 자기가 받은 상처와 고통을 뜻하는 말로 성왕의 작으로 여겨지는 소비(小毖) 편의 予其懲而毖後患(여기징이비후환: 전의 잘못을 교훈 삼아 후의 환난을 경계한다.)의 문구를 말한다. 조선 선조 때 조일전쟁을 기록한 유성룡의 징비록은 이 문구에서 차용한 것이다.

⑤약(約) / 간약(簡約)한 정치를 말한다. 원래 한나라를 창건한 한고조 유방(劉邦)이 제창한 정치사상으로 진나라의 도성 함양을 점령한 유방은 진나라의 복잡한 모든 법제는 폐기하고 세 가지 법만을 시행하겠다고 공표했다. 즉 ‘살인자는 죽이고 남의 물건을 훔친 자와 남을 상하게 한 자는 죄를 준다.’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유방이 죽고 그 후계자 들은 정치 행위를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것으로 기본으로 삼았다. 소하가 만든 규정을 조참이 따랐다는 소규조수(蕭規曹隨)라는 고사성어는 간약정치의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이며 원래는 노자(老子)가 주창한 ‘작은정부’의 정치사상이다. 한고조 사후 한나라의 그 후계자들인 문제(文帝)와 경제(景帝)는 그 정책의 방향을 바꾸지 않고 계속 추진한 결과 경제가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중국역사상 문경지치(文景之治)로 불리는 태평성대의 시대를 열었다. 한무제가 중국인들의 가장 큰 우환거리였던 흉노족을 대대적으로 정벌하여 고비사막 밖으로 몰아낼 수 있었던 기반은 문경지치에 의해 확충된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⑥沐浴膏澤(목욕고택)/ 머리감는 것 즉 탁발(濯髮)을 목(沐)이라하고 몸을 씻는 것 즉 쇄신(洒身)을 욕(浴)이라 한다. 고택(膏澤)은 살이 오른 몸을 가리킨다. 즉 고귀한 신분이 되어 윤기 있는 몸에 살이 오른 상태를 비유한 말이다.

⑦전(傳)/ 출전은 악기(樂記)이다. 원문은 “王者功成作樂(왕자공성작락), 治定制禮(치정제례)”이다.

⑧명당(明堂)/ 봉건왕조 때 예제에 따라 축조된 건축물로 그 형태와 종류에 대한 해석은 설이 분분하다. 그 중 4가지 유력설이 있다. 1. 천자가 제후들 나라에서 조현을 받는 장소.(예기 명당 : ‘周公朝諸侯于明堂’) 2. 천자가 정강을 공포하는 궁궐. 3. 왕실의 조상의 신위를 모신 태묘(太廟).(주레 考工記 : 夏侯氏世室,, 殷人重屋, ‘周人明堂’. 4. 채옹(蔡邕)의 月令章句: 明堂旣是太廟, 爲天子祭祀之所,

⑨명당부(明堂賦)

「빛나는 명당은 양지 녘에 자리잡고서 하늘을 향하여 우뚝 솟아 천하를 내려다본다. 하늘 아래 한 명뿐인 천자가 정령을 발하면 만국의 제후들이 달려와 배알하며 조공을 바친다. 명당의 내부는 종횡(縱橫)으로 각각 세 개씩의 방을 만드니 모두 아홉 개의 방으로 나누어지고 정 가운데의 큰방에 태묘(太廟)를 모시고 그곳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태실(太室)을 두었다. 또한 각 태실의 한 가운데는 토지신(土地神)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유(溜)를 두었다. 열고 닫는 단짝 문으로 36개의 문을 내고 72개의 창문을 열을 지어 달았다. 왼쪽 것과 오른 쪽 것은 윗사람과 아랫사람은 그 직분이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명당의 윗 모습은 둥글고 아래 모양은 네모진 것은 하늘과 땅이 기수(奇數)와 우수(隅數)로 이루어진 법칙에 따른 것이다. 관리들이 서는 곳을 여러 군데 만들어 놓은 것은 관리들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은 삼공(三公)이라 마땅히 명당의 가운데 계단에 늘어서서 여러 군신들과는 같이 서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며 작위가 후작인 제후들은 동쪽 계단의 동쪽 편에 서서 서쪽을 쳐다보다가 천자가 나타나면 북쪽으로 몸을 돌려 절을 올리고 백작들은 서쪽 계단의 서쪽으로 서서 동쪽을 바라보다가 천자에게 절을 올린다. 자작(子爵)들은 정문의 동쪽 폄에 늘어서고 남작들은 자작들의 서쪽 맞은 편에 도열한다. 융족은 금(金)이니 서문 밖에, 이(夷)족은 목(木)이니 동문 밖에, 북문 밖에는 화(火)의 종족인 적(狄)족이, 남문 밖에는 수(水)의 종족인 만(蠻)족이 선다. 천하 구주의 지방 관원들은 명당 담장 밖에서 오른 쪽으로 열을 서서 도열하고 변경을 지키는 수장들은 담장 밖에 도열하여 지방 관원들의 맞은 편인 왼쪽에 서서 도열한다. 주홍색 방패와 옥으로 자루를 장식한 의장용 도끼들은 마치 수많은 나무들이 우뚝 솟아나서 앞다투어 천자에게 배알하듯이 하고 표범 가죽으로 깃대를 장식한 용이 그려진 천자의 깃발은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며 또한 엄숙하고 무성한 모습에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이룬 듯 한다. 연기가 걷히고 여러 백관들이 일제히 도열하면 하늘에서 태양이 나타나며 천자께서 주옥을 꿰어 늘어뜨린 면류관을 쓰시고 임하시어 명당의 용좌에 앉으신다. 비단에 도끼의 문양을 수놓은 병풍을 뒤에 둘러치시고 남쪽을 향하여 않으시어 천하 제후들과 구름 같은 관리들이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는 것을 굽어보시며 온 천하가 복종하고 있음을 아신다.(赫赫明堂,居国之阳。嵬峨特立,鎮壓殊方。所以施一人之政令,朝萬國之侯王。面室有三,總數惟九。間太廟於正位,處太室於中霤;啟閉乎三十六戶,羅列乎七十二牖。左個右個,為季孟之交分;上圓下方,法天地之奇偶。及夫諸位散設,三公最崇。當中階而列位,與群臣而不同。諸侯東階之東,西面而北上;諸伯西階之西,東面而相向;諸子應門之東而鵠立,諸男應門之西而鶴望。戎夷金木之戶外,蠻狄水火而位配。九采外屏之右以成列,四塞外屏之左而遙對。朱干玉戚,森聳以相參;龍旗豹韜,抑揚而相錯。肅肅沉沉,巒崇壑深。煙收而卿士齊列,日出而天顏始臨。戴冕旒以當軒,見八紘之稽顙;負斧扆而南面,知萬國之歸.)」

⑩오상(五常)/신(信), 의(義), 예(禮), 지(智), 신(信)과 그에 상응하는 오행의 금(金), 목(木), 화(火), 수(水) 토(土) 등을 말한다.

⑪제우(齊優)/ 직역하면 제나라의 배우다. 공자세가의 기사로 공자가 노나라의 사구(司寇)가 되어 정사를 맡아 하자 노나라가 잘 다스려졌음으로 이웃 나라인 제나라는 노나라의 패권을 걱정했다. 이에 제경공은 노래와 가무에 능한 아름다운 여자 악사 80명을 노나라에 보냈다. 음란한 음악을 좋아하는 군주는 필시 정사를 게을리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공자는 여자 악사들과 함께 노나라 조정에 같이 설 수 없다고 하며 사구의 직을 버리고 노나라를 떠났다.

⑫오장(五章)/ 공자가 노나라의 사직하고 떠날 때 다섯 편의 노래를 지어 세상을 풍자한 시다. 그 중 다음 한 편이 공자세가에 실려 전해진다. 彼婦之口, 可以出走 (피부지구 가이출주)군주가 여인을 좋아하면, 군자는 떠나고/彼婦之謁, 可以死敗 (피부지알 가이사패)/군주가 여인을 너무 가까이 하면, 나라는 망하는도다!/善優哉游哉, 維以卒世 (선우재유재 유이졸세)유유자적하며, 세상을 살리라!

⑬조이(祖伊)/ 상나라 말기 때의 현신이다. 주문왕이 군사를 동원하여 려(黎)를 정벌하자 천하가 주나라에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한 조이가 주왕에게 성색을 삼가고 주나라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간했으나 주왕은 이를 듣지 않았다.

⑭오제삼왕(五帝三王)/ 중국 상고시대의 제왕으로써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다음 두 설이 유력하다.

1) 黃帝, 顓頊, 帝嚳, 唐堯, 虞舜을 五帝, 夏禹, 商湯, 周文王을 三王으로

2) 伏犧, 神農, 黃帝를 三皇, 少昊, 顓頊, 帝嚳, 唐堯 虞舜을 五帝라고 했다.

⑮녹이(騄耳)/ 주목왕(周穆王)이 화산(華山)에서 구했다는 전설상의 팔준마(八駿馬) 중의 한 마리 이름이다. 서왕모를 만나기 위해 나라를 떠난 사이에 서언왕이 반기를 들자 팔준마를 타고 하루에 천리를 달려 나라에 돌아와 반란을 평정했다. (주본기)

⑯삼후지장(三侯之章)/ 고조가 경포(경(黥包)의 난을 진압하고 도성으로 돌아가던 중에 고향 패현을 들려 부로들과 연희를 즐기던 중 흥에 겨워 지은 대풍가(大風歌)를 말한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大風起兮雲飛揚(대풍기혜운비양)/대풍(大風)이 일어남이여! 구름이 날렸도다./ 威加海內兮歸故鄕(위가해내혜귀고향)해내(海內)에 위엄을 떨쳤음이여! 고향으로 돌아 왔도다!/ 安得猛士兮守四方(안득맹사혜수사방) 맹사를 얻었음이며! 사해를 지켰도다!

⑰한무제가 교천제를 지내기 위해 제정한 예악으로써 연시일(練時日), 제림(帝臨), 청양(靑陽) 등 모두 19개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다.

⑱이연년(李延年)/ 李延年(?- 前87年)서한의 음악가로 노래를 작곡하여 한무제에게 바쳤다. “ 북방에 한 가인이 있으니 절세미녀로 혼자 떨어져 외롭게 살고 있다. 한 번 쳐다보면 성이 기울고 다시 쳐다보면 나라가 기운다. 어찌 성이 기울고 나라가 망하는 것을 모를까 보냐마는 가인은 다시 얻기 어려우니... (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寧不知傾城與傾國 佳人難再得) 한무제가 그 누이인 평양공주에게 과연 그와 같은 절세가인이 있느냐고 묻자 그 절세가인은 이연년의 누이동생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이연년의 동생을 입궐시켜 이부인이라고 불렀다. 한무제의 총애를 받게 된 이연년은 협율도위에 임명되어 황궁의 음악에 관한 일을 맡았다. 권력을 얻은 후 교만하게 처신한 이연년은 이부인이 죽은 후에 처형되고 그 가족도 멸족되었다. 대원과 흉노를 정벌한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는 이연년의 동생이다.

⑲협률도위(協律都尉)/ 한무제 때 설치된 관서로 음악에 관한 일과 궁정의 악인들을 관장했다. 상설기구는 아니고 황제들의 필요에 따라 설치와 폐지를 반복했다.

⑳감천(甘泉)/①감천궁을 말한다. 원래 진나라가 지금의 섬서성 함양시 동북쪽 위남에 축조한 궁궐로 진시황본기에 ‘ 진왕이 태후를 옹(雍)에서 맞아들여 옛날 거했던 감천궁에 머물게 했다.’라는 기사가 있다. ②한나라 때 궁궐 이름으로 지금의 섬서성 순화현(淳化縣) 서북 감천산에 있었다.


21.태일(太一)/ 천제의 별칭으로 천신 중 가장 존귀한 신을 일컫는다. 초사에는 동황태일(東皇太一)이라고 했다.

22.청양(靑陽), 주명(朱明), 서호(西皥), 현명(玄冥) 등은 앞서 말한 19장의 속하는 노래로 가사 첫머리를 따서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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