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무의(無衣) - 옷이 없으랴! - > 秦風

8. 무의(無衣) - 옷이 없으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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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승국 조회 2,774회 작성일 04-05-12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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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衣(무의)

- 옷이 없으랴? -




진(秦)나라 사람들은의 풍속은 기개를 숭상하고 용력(勇力)을 우선시하여 죽음을 가볍게 여겼다. 그러나 그 근본을 이야기한다면 기풍(岐豊)의 땅을 주문왕(周文王)이 이용하여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의 교화를 일으켜 그 백성들을 충성스럽고 후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진나라 사람들이 그 덕을 사용하기를 거의 하지 않으니 그 풍속이 변하여 이와 같이 이르러 난폭하게 여덟 주를 차지하여 같은 동열의 제후들로부터 조현(朝見)을 받고야 말겠다는 기상을 갖고 있었다. 옹주(雍州)는 땅이 좋고 물이 깊어서 그 백성들이 중후(重厚), 질직(質直)하여 교만(驕慢), 방자(放恣), 경박(輕薄)하며 화려(華麗)함 만을 쫓는 정(鄭)과 위(衛)두 나라와 같은 풍습이 없으니, 선(善)으로써 인도한다면 쉽게 흥기(興起)하여 인의(仁義)가 두터워질 것이요, 사나움으로 몬다면 굳세고 과감한 자질로 군사의 일에 힘쓰고 농사(農事)에 진력하여 부강한 나라를 만들 것이지 산동(山東)의 여러 나라에 비할 바가 아니다. 후세에 도성을 정하고 나라를 세우려고 도모하는 자는 진실로 이것을 본 받아야할 것이다. 대저 나라를 세우려는 자는 그 백성을 인도하는 방법으로 그 갈 바를 기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 송대의 소동파(蘇東波)가 말하기를 “ 진(秦)나라는 원래 주(周)나라의 옛 땅이다. 그러므로, 그 백성들이 주나라의 흥성(興盛)했던 때를 그리워하며 선왕(先王)을 칭송한 것이다.”라고 했다.





豈曰無衣 與子同袍 (개왈무의 여자동포)

어찌 옷이 없다고 하는가

그대와 함께 나의 도포를 같이 입겠오




王于興師 脩我戈矛 (왕우흥사 수아과모)

임금께서 군사를 일으키신다면

내 과(戈)와 모(矛)를 세워




與子同仇(여자동구)

그대와 함께 원수를 무찌르리라!




부(賦)이다. 포(袍)는 견(襺) 즉 솜을 넣어 누빈 도포이다. 과(戈)는 길이가 6자(尺) 6치(寸), 모(矛)는 길이가 2장(丈)인 창이다. 왕우흥사(王于興師)는 천자가 일으킨 군사를 말한다.





豈曰無衣 與子同澤(개왈무의 여자동택)

어찌 옷이 없다고 하는가?

그대와 함께 속옷을 같이 입겠오




王于興師 脩我矛戟(왕우흥사 수아모극)

임금께서 군사를 일으키신다면

내 모와 극을 세워




與子偕作(여자개작)

그대와 함께 일어나리라




택(澤)은 속옷이니 살갗에 닿아서 떼와 기름이 끼어 반들반들하다고 해서 택(澤)이라 한 것이다. 수(脩)는 수(修)로 수리한다는 뜻이다. 극(戟)은 길이가 1장 6척인 날이 갈라진 창이다.








豈曰無衣 與子同裳(개왈무의 여자동상)

어찌 옷이 없다고 하는가?

그대와 함께 바지를 같이 입겠오




王于興師 脩我甲兵(왕우흥사 수아갑병)

임금이 군사를 일으키신다면

내 갑옷과 병장기를 세워




與子偕行(여자개행)

그대와 함께 전장에 나가리다.




상(裳)은 남자들이 입는 치마를 말하고 갑(甲)은 갑옷이다. 행(行)은 전장으로 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춘추좌전 정공 4년 (기원전 506년) 조에 오왕 합려가 이끌던 오군에 의해 초나라의 도성 영성(郢城)이 함락당하고 나라가 멸망 직전에 놓여 있을 때 초나라의 대신 신포서(申包舒)가 진(秦)나라로 가서 구원을 청했다. 진애공이 구원군을 보내는 것을 거절하자 신포사가 진나라 궁전 뜰에서 7일 밤낮 통곡을 한 결과 눈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신포서의 충성심에 강동한 진애공이 이 시를 지어 그를 칭송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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