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权舆(권여) - 처음에는 - > 秦風

10. 权舆(권여) - 처음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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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조회 2,335회 작성일 11-10-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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权舆(권여)

- 처음에는 -




한조(漢朝) 때 초원왕(楚元王) 유교(劉交)가 신공(申公)과 백공(白公) 및 목생(穆生)을 공경하여 극진히 대우했다. 술을 좋아하지 않은 목생(穆生)을 위해서 원왕은 매양 술을 준비할 때에 목생(穆生)을 위해서 단술을 따로 두었다. 후에 유교의 뒤를 이은 유무(劉戊)는 처음에는 베풀다가 후에 베푸는 것을 잊었다. 목생(穆生)이 물러나며 “이제 떠날 때가 되었구나! 단술이 없으니 왕의 뜻이 태만한 것이다. 떠나지 않는다면 초나라 사람들이 장차 나를 시장으로 끌고가 목사슬을 맬 것이다.”라고 말하고 질병을 핑계대고 떠나려고 했다. 신생과 백공이 찾아가 간곡히 말리면서 “ 어찌하여 선왕의 덕을 생각하지 않는가? 지금 왕은 하루아침에 작은 예를 잃은 것뿐인데 어찌 이와 같이 심히 대하는가?”라 말했다. 목생이 대답하기를 “선왕이 우리 세 사람을 예우한 것은 도(道)가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 소홀히 한다면 이는 도를 잃은 것일세. 도를 잊은 사람과 함께 어찌 오래도록 살면서 구구한 예를 논하겠는가?”라고 말하고 병을 핑계하여 초나라를 떠났다. 이 시의 뜻이다.

모시서(毛诗序)에 “《권여(权舆)》는 선군을 모시던 구신들과 현자들을 처음과 달리 홀대했던 진강공(秦康公)을 비난했다.”라고 했다.











於我乎 夏屋渠渠(어아호 하옥거거)

나에게 큰 집이 깊고 넓더니




今也每食無餘(금야매식무여)

이젠 늘 먹을 것이 남아있지 않네




于嗟乎 不承權輿(우차호 불승권흥)

오호라, 처음과 같지 않구나!




부(賦)다. 하(夏)는 큼이다. 거거(渠渠)는 깊고 넓은 모양이다. 승(承)은 이음이다. 권여(權輿)는 처음이다.

임금이 처음 넓고 큰 집을 얻어서 현자를 대접하다가 뒤에 예의(禮意)가 점점 쇠하고 제공하는 양식이 박해져서 현자가 매양 먹을 적에 남김이 없었다. 이에 탄식하여 능히 그 처음을 잇지 못함을 노래했다.





於我乎 每食四簋(어아호 매식사궤)

나에게는 늘 먹을 것이 네 바구니였는데


今也每食不飽(금야매식불포)

지금은 늘 먹음에 배가 고프다.




于嗟乎 不承權輿(우차호 불승권흥)

오호라, 처음과 같지 않구나!


부(賦)다. 궤(簋)는 질그릇이니, 한 되 2홉을 담는다. 모난 것을 보(簠)라 하고 둥근 것을 궤(簋)라 하는데, 보는 쌀과 고량을 담고 궤는 서속(黍稷)을 담는다. 4궤는 먹을 것이 많음이다.

‘하옥(夏屋)’에 대하여 우리나라 선유(先儒)는 ‘큰 도마[大俎]’라고 하면서 노송(魯頌)의 ‘대방(大房)’이란 글을 인용하여 증거로 삼았는데, 이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다. 하옥을 궁실이라고 한다면 ‘네 그릇[四簋]’과 맞지 않고, ‘먹을 때에 남는 것이 없다[食無餘]’는 것과도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큰 도마로 보고자 하는데, 어떤지 모르겠다.







[최벽이 대답하였다.]

‘하옥’을 큰 도마라고 한 것은 본래 구주(舊註)에서 나왔는데, 《집전》에서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어진 사람을 봉양할 때 구비하는 것은 먼저 집을 마련한 뒤에 그릇을 마련하는 법이기 때문이니, 바로 제왕(齊王)이 말한, “맹자(孟子)에게 집을 주고 만종(萬鍾)으로 공양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 시는 한갓 먹고 마시려고 하는 듯하기 때문에 첩산 사씨(疊山謝氏)가 기롱하였다. 그러나 먹는 것이 부족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예가 점점 쇠미해졌기 때문이니, 기롱하여 배척해서는 안 될 듯하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 사람의 이름이 실제보다 지나친 것이 마치 한(漢)나라 의 번영(樊英)이 기이함이 없었던 것과 같았기 때문에 대우하는 것이 처음과 같지 못했다.” 하였다. 그러나 굳이 이 설과 같이 볼 필요는 없으니, 인군이 된 자가 이 시를 읽을 적에는 의당 ‘처음처럼 계속하지 못하는 것[不承權輿]’을 경계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약용이 대답하였다.]




‘탄협(彈鋏)의 노래’도 오히려 먹는 데에 뜻이 있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하물며 이 시이겠습니까. 이 시를 읽는 자는 다만 예의(禮意)의 시종(始終)을 관찰해야지 사람의 현부(賢否)는 본래 논할 필요가 없으니, 성상의 말씀이 참으로 마땅합니다.




[이상은 진풍 권여편(權與篇)에 대한 문답이다.]




權輿 二章이니, 章 五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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